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1. 가야(가라) (2) 고구려에 맞선 신라·백제·임나가라·아라가라 4국 동맹 본문
고구려에 맞선 신라·백제·임나가라·아라가라 4국 동맹
장수태왕이 신위례성을 침입하자, 근개루의 태자인 문주는 신라에 가서 급난을 알렸다. 신라는 꼭 동맹의 의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출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비마립간이 병력 1만을 보냈지만, 근개루왕은 이미 죽고 신위례성도 파괴된 뒤였다.
문주왕은 수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물러나와 웅진에 도읍을 정했다. 웅진은 광개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고모나라(古模那羅)다. 웅진과 고모나라는 똑같이 곰나루로 읽어야 한다. 전자는 뜻에 근거한 이두문자이고 후자는 음에 근거한 이두문자다. 지금의 공주가 당시의 곰나루다.
당시 한강 이남에는 신라·백제 외에 가라 등 6개국이 있어, 이들이 지금의 경상남도를 차지했다는 점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에서 설명했다. 처음에는 신가라가 종주국이고 임나·아라·고자·고령·벽진 다섯 가라가 그 아래에 있었다.
나중에 신가라와 고자·고령·벽진 가라가 약해져 정치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상실하고, 임나·아라 두 가라만이 강성하여 신라와 대립했다. 두 가라는 광개토태왕이 왜군을 칠 때 상당한 병력을 동원해서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도와 왜군과 싸웠다.
그러나 신위례성이 무너지고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자, 놀란 두 가라는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에도 급급했다. 신라·백제는 자기들의 힘으로는 고구려를 막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두 가라에게 동맹 가입을 종용했다. 이로써 신라·백제 양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이 신라·백제·임나·아라 4개국의 대고구려 공수동맹으로 바뀌게 되었다.
광개태왕이 왜군을 물리쳐준 은혜를 잊고 신라가 백제와 연합한 사실에 크게 분노한 장수태왕은 서기 481년에 대군을 동원해서 신라의 동북 지방을 침입했다.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몸소 비열홀 즉 지금의 안변1)까지 가서 방어했지만 대패했다. 고구려군은 승세를 타고 남진하여 고명 즉 지금의 회양2) 등 일곱 성을 함락했다.
이에 두 가라국과 연합한 백제 동성대왕은 여러 길로 구원병을 파견해 고구려 군대를 깨뜨리고 잃은 땅을 회복했다(다음 장 백제의 북위 격퇴와 해외식민지 획득 참고).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에 맞선 신라·백제·임나가라·아라가라 4국 동맹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4국 동맹의 40년 지속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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