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겨레력사 (32) 이찬구박사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

이 박사의 해석이 주목받는 것은 하은주(夏殷周)가 아닌 적봉 일대의 북방지역에 ‘천자국’의 존재 가능성을 입증한 문자라는 사실이며, 또 적봉 지역 문자에서 한자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박사의 주장대로라면 기존 학설과 달리 한자의 기원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찬구 고문자연구가 “중국 적봉 근처서 갑골문보다 몇 세기 이상 앞선 문자 확인”
“중국 적봉시 옹우특기 두패자(頭牌子) 유적에서 발굴된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의 청동시루에 글자 2개가 새겨져 있다. (宁,저)는 ‘천자(天子)가 제후의 조회(알현)를 받는 자리’, (墉,용)은 ‘천자국의 궁성(용성)’을 표시한 ‘갑골문형 고금문(古金文)’으로 고석(考釋)된다.”

고문자연구소장 이찬구 박사는 최근 ‘역사와 융합’에 발표한 ’적봉지역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발굴된 고문자 저(宁)와 용(墉) 고찰’ 이라는 학술 논문을 통해 “중국 적봉 근처에서 나온 청동시루, 갑골문보다 몇 세기 이상 앞선 문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갑골문을 포함한 한자의 성립 시기를 대체로 기원전 1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찬구 박사가 주목한 청동시루(靑銅甗)는 하가점하층문화 청동기술의 초기 단계의 산물로 갑골문 사용 시기보다 몇 세기 이상 앞선 유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고고학계는 적봉 일대의 하가점하층문화를 기원전 2300년~기원전 1600년의 문화로 보고 있고, 그 중간 연대를 추정한다고 하더라도 기원전 2000년경의 청동기로 볼 수 있다.

고문자가 발견된 두패자 유적의 청동시루

이 박사의 이런 연구에 실마리를 준 것은 중국학자 소혁(蘇赫· 1925~1999)이다. 소혁의 독음(讀音)을 참고하되 갑골문을 비롯한 각종 경전을 비교 분석해 해독했다. 이 박사의 해독 결론은 이 두 개의 문자가 ‘천자국의 궁궐 문자’인 ‘저(宁)’와 ‘용(墉)’이며, 문자의 형태는 ‘갑골문형 고금문’이라는 것이다.
소혁의 논문 발표 이후 40여년만에 ‘저’와 ‘용’을 해독한 이 박사는 “이 문자가 천자의 예제(禮制)와 관련 있으며, 고조선의 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어 이 박사는 같은 적봉 일대 삼좌점(三座店) 석성에서 출토된 도문을 각각 기(其)와 전(典)으로 고석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요(堯)의 도사(陶寺) 유적에서도 유사한 2개 글자가 발굴돼 고조선과 요가 『삼국유사』에서 말한 여요동시(與堯同時)임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의 해석이 주목받는 것은 하은주(夏殷周)가 아닌 적봉 일대의 북방지역에 ‘천자국’의 존재 가능성을 입증한 문자라는 사실이며, 또 적봉 지역 문자에서 한자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박사의 주장대로라면 기존 학설과 달리 한자의 기원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우실하 교수는 이 박사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석기시대 토기에도 도문(陶文)이라고 불리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지만, 아직은 ‘문자’ 단계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하가하층문화 시기의 두패자(頭牌子) 유적의 명문을 ‘문자’로 볼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이 두패자 유적의 명문은 이후의 상대 갑골문이나 금문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어서, ‘문자’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우 교수는 이어 “이것이 요하문명의 초기 청동기 유적의 최대 밀집 지역이자,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로 보이는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고조선 문자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해 향후 고조선 문자와 한자의 기원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찬구 박사는 지난 6월 ‘고대 정전제의 시원 문제와 고조선’ 이라는 학술 논문을 통해 “왕도정치의 기반인 정전제(井田制)가 고조선에서 시작되었다”라는 학설을 발표했다.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 16지점에서 발견된 ’정전벽돌‘과 각종 경전을 근거로 정전제의 시원이 고조선이라는 것을 논증했다.(1)
그동안 학계는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해 자방고전(字倣古篆)설에 따라 범자(梵字) 기원설, 몽고자 기원설, 파스파문자 기원설, 티베트문자 기원설 등으로 설명해 왔다. 특히 당대에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는 ‘전조(前朝)의 언문’을 언급해 고려에 문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고, 18세기 신경준도 ‘동방의 옛 속용 문자’를 말해 훈민정음 이전에도 한자가 아닌 우리 고유문자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 문자연구가 이찬구 박사, 한글의 기원과 역사를 재조명한 「한요부 타ᄉᆞᆷ(삼)오해의 발견과 고한글에 대한 고찰」 논문 발표
세계일보 박태해기자 2023. 11. 9. 18:51
문자연구가인 이찬구 박사(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상임대표) 가 훈민정음 이전의 고(古)한글 문헌을 발굴해 한글의 기원을 새롭게 재조명한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박사는 최근 바른역사학술원의 ‘역사와 융합’ 제7권 2호에 실린 「한요부 타ᄉᆞᆷ(삼)오해의 발견과 고한글에 대한 고찰」제목의 논문을 통해 “타ᄉᆞᆷ오해가 훈민정음과 가장 가까우나, 서로 다른 또 하나의 문자체계를 갖추고 있다. 타ᄉᆞᆷ오해가 훈민정음의 기원이 된 소리글자의 문자체계”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학계는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해 자방고전(字倣古篆)설에 따라 범자(梵字) 기원설, 몽고자 기원설, 파스파문자 기원설, 티베트문자 기원설 등으로 설명해 왔다. 특히 당대에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는 ‘전조(前朝)의 언문’을 언급해 고려에 문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고, 18세기 신경준도 ‘동방의 옛 속용 문자’를 말해 훈민정음 이전에도 한자가 아닌 우리 고유문자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최근까지도 일부에서 고대문자설과 속용문자설을 기반으로 훈민정음 이전에도 고대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이를 이어받아 개량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실물 자료(언어재)를 찾지 못해 설득력을 얻지 못했었다.

寒窯賦(한요부)를 ‘타ᄉᆞᆷ오해’로 표기했다.
이 박사는 최근 지방의 한 소장자(박찬 비봉컬렉션 대표)로부터 『한요부(寒窯賦)』라는 한자로 쓴 문장 옆에 한글과 비슷한 글자로 음(音)을 달은 문헌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한요부(寒窯賦)는 한자 이름이고, 타ᄉᆞᆷ오해는 한요부를 한글과 같은 낯선 글자로 음을 단 것이다. 이 박사는 한요부를 ‘한요부’라 하지 않고 낯선 한글로 ‘타ᄉᆞᆷ오해’라고 쓴 것을 ‘고(古)한글’이라 부르고, 문헌 이름을 “한요부 타ᄉᆞᆷ오해”라 정했다.
한요부는 인생의 운명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한 600여자의 한문 문체의 하나로, 중국의 여몽정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600여자의 한자에 오늘날 훈민정음과 같은 한글 글꼴로 음을 표기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한요부 타ᄉᆞᆷ오해”(이하 타ᄉᆞᆷ오해)는 고려시대인 1079년(원풍2년)에 작성된 폭 65cm, 길이 8m의 두루마리에 쓴 수고본(手稿本)으로 실물 언어재라는데 의미가 있다.
이 박사는 이번 논문의 연구 초점을 고한글 형태의 타ᄉᆞᆷ오해와 훈민정음을 비교하는데 두었다. 그 결과 타ᄉᆞᆷ오해와 훈민정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같은 점은 ▲ 자음과 모음이 처음부터 구별되어 쓰인 점 ▲ 음절의 구성은 초성, 중성, 종성의 3분법으로 한 점이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타ᄉᆞᆷ오해와 훈민정음과의 다른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의 한자음과 차이가 났으며, 자모음의 표기와 음절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 타ᄉᆞᆷ오해에만 있는 특징으로는 ▲ 天을 하늘 천(天)이라 하지 않고 ‘안’이라 발음했고, 地를 땅 지(地)라 하지 않고 ‘뉘’라고 발음해 현행 한자음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과 ▲ 물 水(수)를 ‘니어’, 나무 木(목)을 ‘마벼’로 적은 것처럼 1자 2음절(다음절어)이 나온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의 원칙인 1자 1음절과 차이가 난다는 점 ▲ 자음끼리 합용병서한 글자가 1자 1음절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 훈민정음이 초성 중성의 결합을 원칙으로 한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특징을 참고로 이 박사는 타ᄉᆞᆷ오해와 훈민정음의 선후 관계에 대해 타ᄉᆞᆷ오해가 훈민정음에 비해 고(古)한글이라 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타ᄉᆞᆷ오해가 훈민정음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박사는 “훈민정음은 파스파 문자 등과 같은 다른 나라 문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고대문자인 고(古)한글에서 자음과 모음, 초중종성의 결합원리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세종의 훈민정음이 그보다 앞선 고려시대의 고한글을 모방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소리글자를 계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세종 당대 학자들이 말한 ‘자방고전’(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뜻)의 진정한 뜻이라고 보았다.
이 박사는 “한글의 기원은 훈민정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그 이전 고한글인 타ᄉᆞᆷ오해로 올라갈 때 우리가 쓰는 소리글자의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나아가 고조선 시대의 첨수도 화폐문자나 가림토 문자와도 교차비교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번 논문 발표를 계기로 고한글의 훈민정음 고대문자 기원설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2012년 7월에 2500~3000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돈’자 모양이 새겨진 첨수도 화폐를 발견했고, 이런 사실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한중간에 고문자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2)
■ 이찬구 철학박사,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 출간

저자 이찬구 철학박사
최근 독서계는 ‘우리 역사와 우리 것’을 알자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상고시대 고조선을 학문적으로 제대로 알자는 열기도 이어지고 있다. 도올 김용옥이 쓴 ‘노자가 옳았다’(2020년 간)에서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라고 하였고, ‘동경대전’(2021년 간) 역해본에서는 ‘동학은 고조선의 부활이다. 고조선은 홍익인간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했다. 기존의 관념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즈음에 출간한 이찬구 철학박사의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연구’는 처음으로 시도된 고조선의 저변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 평가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있는 오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과는 다른 개념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오행은 중국을 통해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조선의 오행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1에서 9까지의 수에서 5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고, 중앙과 4방위에서 중앙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고조선의 철학은 역사를 함께 이해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단군과 요(堯)는 동시대의 같은 때라고 했다. 그래서 오행도 이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요가 오행의 하나인 5토(土)가 중(中)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에 단군은 토를 ‘숨어 있는 토(土)’로 보아 그 중(中)의 사용을 금했다. 이 5중(中)을 지키기 위해 단군과 요가 전쟁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중국과의 전쟁에 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한다. 35년간 주역을 연구한 저자는 처음에 이 문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단군이 말한 오행철학의 핵심은 ‘숨어 있는 토’의 이해에 있다. 토는 오행의 전체이면서 부분이기 때문에 구태여 밖으로 드러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단군의 사상을 ‘노자’(72장)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부자현(不自見), 부자귀(不自貴)라는 것이다. 스스로 나타나지 않고,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과 ‘숨어 있는 토’가 그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숨어 있는 토’는 ‘숨어 있는 전체’를 의미하므로 4방을 조절하고 조화(調和)하는 자리이지 군림(君臨)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이다. 그래서 홍익인간과 사해동포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행과 함께 요와 전쟁의 요인이 된 것이 달력 제정이었다. 예로부터 책력은 천자(天子)의 고유권한이었다. 단군은 이런 오행론의 기초 위에서 13월28일이라는 독특한 달력을 만들었고, 요에게 고조선의 달력을 권했으나 그가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요가 사용한 달력은 12월30일 달력이었다. 13월28일 달력은 364일을 기본으로 삼고, 경우에 따라 1일 또는 2일을 윤일(閏日)로 처리하였다. 그 원리는 147, 258, 369라는 삼정(三正)의 수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수리체계는 어디에도 없는 고조선의 역법원리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단군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단군의 정치사상은 부도(符都)로써 사해(四海)의 평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부도는 중앙에 천부단(天符壇)을 모시고 사방에 각각의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하늘을 섬기는 천도(天道) 정치를 실현하고, 이를 위해 제사(祭祀)가 행하여진 고조선의 천제(天祭)문화를 상징한다. 강화 참성단은 단군 부도의 하나로 동쪽을 맡은 동보단(東堡壇)이라고 처음으로 밝혀 주목된다.
둘째, 고조선의 문자에 관한 자료 발굴이다. 저자는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중국의 보정시(保定市) 인근에서 나온 109자를 ‘고조선의 원시문자’로 추정하여 발표했다. 한 나라가 아무리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도 문자가 나오지 않으면 설득력이 약한 것이 사학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된다면 고조선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부도지’의 역법(曆法)을 연구한 바 있는 김상일 교수(전 한신대)는 서평을 통해 “요(堯)와의 전쟁은 우리 조선 오행으로 확고한 정신세계의 축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책으로 우리 고대사의 네 기둥을 확고히 세워 우리 정신세계의 본향(本鄕)을 찾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로가는 바른역사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는 식민사관의 청산 없이는 고조선사의 연구가 의미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책이 최초로 연구된 고조선 오행과 역법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분야 연구에도 촉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3)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41101163102248
(2) https://v.daum.net/v/20231109185110693
(3) https://v.daum.net/v/20210522030207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