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조유전과 떠나는 한국사 여행]

27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전남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예기

고고학자 조유전 토지박물관장(67)과 함께 한국사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절대적 사료의 부족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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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장선리 유적의 비밀

“선생님은 ‘발굴복(福)’이 있으셨나요?”(기자) “허허, ‘발굴복’이라. 글쎄…. 그저 ‘소소(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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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 공주 수촌리 고분

2003년 12월2일 아침. “빨리 와달라”는 이훈(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의 급보를 받은 조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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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공주 수촌리 고분

“제 사촌형수가 여기(수촌리) 살았는데 예전에 저기 보이는 학교(수촌초교)를 조성할 때 ‘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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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전의 세계 제주 고산리

1987년 5월 어느 날. 제주도 서쪽 끝 마을인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흙을 갈고 있던 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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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전의 세계 제주 고산리

1만1000~1만년 전 제주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후기 구석기 최말기(세형돌날문화)~신석기 여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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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전의 무역항 해남 군곡리

1983년 3월 어느 날. 황도훈이라는 해남의 향토사학자가 있었다. 해남문화원장을 지내면서 고향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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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上 - 고대사의 블랙박스 열리다

1995년이었다. 전남 나주시는 영산강 중류, 즉 나주 다시면 너른 들에 자리잡고 있는 복암리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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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中- 무덤박물관이 던진 고대사 실마리

1996년 영산강 유역에 자리잡은 나주 복암리 3호분의 발굴성과는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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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下 - 마한의 수수께끼

“마한의 시작은 BC 3세기 무렵이다. 영산강 유역에서 백제와는 전혀 다른 정치체를 유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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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의 청동기마을

“무릇 나흘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도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1690~1756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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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 걸린 신라 적성비

1978년 1월6일. 정영호 교수가 이끄는 단국대조사단이 충북 단양을 찾았다. 온달의 유적을 찾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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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05호 중원 고구려비 上

“중원 고구려비를 말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어요.”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이 지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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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05호 중원고구려비 下

“옛 기록을 보면 의미심장한 일화가 많아요.” 조유전 관장(토지박물관)이 빛바랜 책을 하나 건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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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신봉동 유적 上

“허허, 술 덕분이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조유전 관장(토지박물관)과 차용걸 교수(충북대)가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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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신봉동 유적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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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 화천 용암리·위라리 유적

BC12세기부터 1000년이상 지속된 대규모 취락31평형 대형 주거지·선반·벤치·침상생활 흔적마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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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동삼동패총 유적 上

“저기에 해동여인숙이 있었는데…. 횟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어디갔노?” 10월15일 가을 한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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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동삼동패총 유적 下

최고급 장신구 ‘투박조개 팔찌’ 유물 무더기로 출토일본 흑요석 수입해 석기제작 왕성한 교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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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上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무허가 판자촌. 지상의 가난한 이들의 삶터 밑엔 부유하고 강력했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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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下

흥분한 조합원이 휘두른 호미는 조합과 부산시의 창구역을 맡은 박유성의 귀 밑을 아슬아슬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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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上

1731년(영조 7년) 어느 날. 동래성 수축을 위해 공사를 벌이던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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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下

“조선을 정벌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라.” 1592년 1월, 일본 전역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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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를 지은 까닭 上

671년 7월26일, 당나라 총관 설인귀(薛仁貴)가 신라 문무왕에게 편지를 보낸다. “~슬프다. 예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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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를 지은 까닭 下

670년. 당나라 유학 중인 의상대사로부터 당나라 50만 대군의 침공 급보를 들은 신라 조정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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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산성

2005년 5월11일.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인천 계양산성 내부의 집수정을 발굴하고 있었다. 계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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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활’ 알린 청진동

2003년 12월 말. 문화운동가 황평우씨가 종로 청진동을 기웃거렸다. 건설사(르메이에르 건설)가 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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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재 | 고고학자 조유전과 떠나는 한국사 여행 - 경향신문 (khan.co.kr)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관련기사 39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무령왕릉” 한마디에 법석… 주위 독촉에 이틀만에 서둘러 발굴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에서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역사적 과오였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7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서전 ‘고고학과 박물관 그리고 나’(학연문화사)에서 무령왕릉 발굴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그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한 당사자다. 고고학자…2017-12-27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둥근고리칼-쇠갑옷… 재갈… 백제 전사들의 魂을 만나다

《지난달 31일 충북 오송역에서 차로 30분. 청주 북서쪽 외곽에 이르자 야트막한 봉분들이 이어진 능선이 보였다. 동네 뒷산 같은 아늑한 분위기랄까. 왕릉급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본 시리즈 20회) 같은 웅장한 스케일은 아니다. 국내 최초로 백제 재갈과 발걸이가 출토돼 고고학계로부…2017-11-02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이성산성 주인, 백제냐 신라냐… 미스터리 풀어줄 목간 한 점“기술은 시간을 절대 추월할 수 없어요. 기술이란 때가 되어야 나타나는 겁니다.” ‘구루(Guru)’의 말은 짧고 단정적이지만 그 속에 힘이 있다. 단순한 교과서 지식이 아니라 수십 년 세월 자신이 경험한 산지식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경…2017-10-11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신문배달 소년, 아라가야 왕국의 1500년 잠을 깨우다야트막한 구릉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봉긋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봉분들이 지평선까지 죽 이어져 있다. 그 뒤로 펑퍼짐한 능선에 자리 잡은 성산산성(城山山城)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1400여 년 전 아라가야를 점령한 신라군의 위세가 멀리서도 느껴진다. 3일 찾은 경남 함안…2017-07-05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神話, 역사가 되다… 박혁거세 탄생의 비밀 깃든 ‘나정’경주 도심 남천(南川)을 건너 남산(南山) 방향으로 차를 몰자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물 댄 논 사이로 황구가 어슬렁거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탑동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를 지키는 육중한 조선시대 기와 건물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6부 촌장(…2017-06-21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백제시대 최고급 옻칠 갑옷, 왜 저수지 한가운데 묻혔을까발아래 금강은 유유히 흐르는데 백제 700년 역사는 온데간데없었다. 지난달 31일 충남 공주시 공산성(公山城) 꼭대기 정자(亭子)에 오르자, 공북루(拱北樓)로 뻗어 내린 성벽 옆으로 금강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서기 660년 이곳에서 당나라와 최후 결전을 벌인 의자왕도 …2017-06-07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가야의 위엄 서린 황금칼, 전설의 왕국 ‘다라국’의 실체 밝히다19일 경남 합천군 옥전서원(玉田書院) 옆 야산에 들어서자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무덤들이 나타났다.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길게 늘어선 20여 기의 봉분은 멀리서 보면 마치 낙타 혹 같다. ‘어딘가 눈에 익은 풍경인데….’ 지난 시리즈에서 취재한 발굴 유적 32곳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2017-05-24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신라 왕궁 연못에서 건진 목제 남근…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여긴 사방 어디서도 전체를 볼 수 없는 무한(無限)의 공간이오.” 8일 경북 경주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안압지)’를 함께 찾은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70)이 건넨 선문답 같은 말이다. 과연 그러했다. 천년왕성 월성(月城) 동문 터와 맞보고 있는 월지 남쪽에 들어…2017-05-10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누가 알았을까, 판자촌 아래 금관가야의 魂이 잠들어 있을줄빼곡히 밀집된 주택가 한복판 풀 떼를 입은 거대한 구릉이 나타났다. 거북이 등처럼 야트막한 언덕들 사이로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들이 펼쳐져 있다. 정상부에 있는 대형 무덤은 길이가 7, 8m에 이른다. 21일 답사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과 더불어 금관가야 지배층이 묻힌…2017-04-26 03:00

천오백년 견딘 신라 목간 308점, 석성의 진짜 주인 밝히다가파른 경사를 헐떡이며 15분쯤 올라갔을까. 약 3∼5m 높이의 흙벽이 사방을 두른 넓은 풀밭이 펼쳐졌다. 고원에 자리 잡은 아늑한 분지를 연상시켰다. 풀때 입은 흙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온통 돌무더기. 자연석이 아닌 축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다듬은 돌들이었다. 10일 박종익 국립중원…2017-04-12 03:00

‘반구대 암각화’ 미스터리 푼 열쇠, 5천년 전 토기에 새겨져 있었다《 한적한 어항(漁港), 배를 수리하는 어부들이 보인다. 8000여 년 전에도 고래와 물고기, 조개를 잡아 올린 어부들이 여기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데자뷔인가. 27일 부산 동삼동 패총(貝塚·조개무지) 유적에서니 코앞에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선사(先史)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2017-03-29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금빛 봉황이 날아오를 듯… 현존 最古 백제 금동관의 자태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금빛 봉황’을 보았다. 6일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본 수촌리 고분 출토 금동관은 신라 금관과 또 다른 아취를 담고 있었다. 온몸에 달개를 매단 세 줄기 입식(立飾)은 정면에서 보면 꼿꼿이 세운 봉황 머리와 양옆으로 활짝 편 날개를 연상시켰다. …2017-03-08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조각 한쪽 한쪽 맞추자…‘신라의 미켈란젤로’ 걸작이 생생경주 낭산(狼山)은 예부터 신들이 노닌다는 신유림(神遊林)이 있던 상서로운 곳이다. 20일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을 거쳐 선덕왕릉에 다다르자, 낭산 아래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숲길을 10분쯤 내려갔을까. 철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폐사지 한 곳이 보였다. 통일신라시…2017-02-23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1500년 전 백제 청동사리합, 아들 잃은 위덕왕 슬픔 고스란히1일 충남 부여군 왕흥사 터. 백마강 너머로 백제 멸망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낙화암이 멀리 보였다. 백제 위덕왕은 자신이 지은 화려한 왕실 사찰을 드나들며 보았을 낙화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을까. 도도히 흐르는 저 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펼쳐진…2017-02-08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남한 최초 발굴된 구석기시대 집자리… 日 식민사관 잠재우다이달 18일 충남 공주시 석장리 유적. 나뭇가지로 ..2017-01-25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수세식 공중화장실-화려한 정원… 절터 아래 펼쳐진 백제 왕궁9일 찾은 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은 이름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했다. 축구장 20배 크기(21만 m²)의 부지에 홀로 우뚝 솟은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멀리서도 보였다. 석탑 주변엔 1400년 전 궁궐터와 절터 흔적을 보여주는 초석과 적심(積心·기둥을 올리기 위해 밑바닥에 까…2017-01-11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경주 경마장 부지에서 신라 숯-토기가마 무더기로 쏟아져23일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 경작 행위를 금지한다는 마사회 표지판 너머로 대나무와 억새가 수북이 자란 구릉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가마처럼 완만한 경사였다. 주변은 온통 황량한 겨울 벌판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답사에 나선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56)이 손가락으로…2016-12-28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열쇠구멍 닮은 ‘장고분’… 고대 韓日교류 비밀의 문 열까9일 광주 광산구 월계동 ‘장고분’. 사진기자가 띄운 드론이 1호분 위로 날아오르자 열쇠구멍 모양의 봉분이 모니터에 잡혔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봉토가 연결된 일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닮았다. 무덤 길이가 45m에 이르다 보니 지상에서는 모양을 가늠하기 힘들다. 장고분은 …2016-12-14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1600년 전에도 호수공원이… 백제 유일의 지방도시 찾았다“1600년 전에 거대한 호수공원이라니….” 2010년 10월 초 충남 연기군 나성리(현 세종시 나성동) 발굴 현장. 밤새 내린 가을비로 유적이 물에 잠겼다는 보고를 듣고 부랴부랴 현장을 찾은 이홍종(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58)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백제시대 도시 유…2016-11-30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한 무덤에 30여 명 최다(最多) 순장… ‘잊혀진 왕국’ 대가야를 만나다10일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마치 낙타 혹처럼 능선을 따라 거대한 봉분들이 주산(主山)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수백 개의 고분이 빽빽이 들어선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선산(先山)이나 다름없었다. 백제 왕릉이 모여 있는 공주 송산리나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규모를 모두 능가했다. 약…2016-11-16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국내 첫 발굴 환호… 日 청동기문화 한반도 전래설 밝혔다지난달 26일 울산 검단리 유적. 10분 정도 올라갔을까, 구릉 위로 평탄한 잔디밭이 넓게 펼쳐졌다. 인위적으로 흙을 파내고 땅을 고른 흔적이 역력했다. 안재호 동국대 교수(62·고고학)는 “지금 우린 청동기시대 마을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릉 서쪽에는 강이 흐르고 북쪽과…2016-11-02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기묘한 꿈 덕분인가… 논바닥에서 8000년 전 배가 떠올랐다“저 논바닥 보이죠? 이곳이 8000년 전에는 바다였습니다.” 14일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전시관 앞.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이 11년 전 발굴 현장을 내려다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시대 나무배를 비롯해 첫 ‘똥 화석(분석·糞石)’, 멧돼지가 …2016-10-19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천마총 금관에 손을 뻗는 순간…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광복 이후 ‘3대 발굴’에 모두 참여한 건 제게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경북 경주시 천마총 앞에 선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73·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푸른 뗏장을 입은 고총(古塚)을 바라보며 4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1968년 무령왕릉을 시작으로…2016-10-05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백제 왕궁 풍납토성, 그 한가운데 뚫린 우물의 정체는?2008년 9월 초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내 우물터 발굴현장. 현 지표면으로부터 5m 아래 구덩이에서 젊은 여성 조사원의 환호가 들려왔다. 발굴책임자였던 권오영 당시 한신대 교수(현 서울대 교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꽃삽으로 자갈과 흙을 조심스레 걷어내던 한지선 한신대 …2016-09-21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의암댐 물 빠지자 드러난 ‘중도식 토기’… ‘원삼국’ 역사 다시 써지난달 24일 이강승 충남대 교수(67)와 찾은 강원 춘천시 중도(中島). 그가 1980년 발굴해 대학 교재와 교과서에도 실린 ‘중도식(中島式) 토기’가 나온 1호 집자리(주거지 흔적)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흔한 표지판조차 없이 삭막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만 유적 위를 덮고 있었다…2016-09-07 03:00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백제 정지산 유적 〓 빈전’ 무령왕릉 지석으로 풀었다“초석(礎石·주춧돌)도 없는 건물에 연꽃무늬 기와라니….” 1996년 8월 충남 공주시 정지산 유적 발굴 현장. 그해 발굴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연꽃무늬 수막새를 발견한 이한상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49·현 대전대 교수)는 ‘대박’ 예감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연꽃무늬…2016-08-17 03:00

비파형동검 발굴의 달인… 국내 40점중 18점을 그의 손으로지난달 20일 전남 여수시 적량동 GS칼텍스 정유공장. 저유탱크들 사이로 나란히 선 거대한 돌덩이 두 개가 멀리서도 눈에 보였다. 덮개돌 무게만 90t에 이르는 고인돌 2개. 하나는 고임돌 4개가 육중한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바둑판식, 다른 것은 덮개돌만 있는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이…2016-08-03 03:00

“일본보다 600년 앞선 탄화미 발견… 내 인생 최고의 유물”“허 참, 임 선생이 미국서 ‘요상’한 걸 배워왔네.” 1975년 11월 경기 여주시 흔암리 발굴 현장. 이곳을 찾은 선배 교수들이 임효재 당시 서울대 고고학과 전임강사(75·서울대 명예교수)를 미덥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땅을 파기도 빠듯한 시간에 임효재가 이끄는 발굴팀은 화덕…2016-07-13 03:00

‘자연의 타임캡슐’ 저습지… 수천년전 유기물까지 원형 그대로《 고고학자들에게 저습지(低濕地) 유적은 ‘대박’으로 통한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저습지에서는 수천 년 전 유물이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심지어 썩기 쉬운 나무나 풀, 씨앗 등 온갖 유기물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보존은 유물이 포함된 연못이나 우물과 같은 습지 위에 흙이 뒤…2016-06-30 03:00

아무도 기대 안한 폐고분서 국내 최초로 토용 수십점 발굴“아이고 망측시러버라. 뭐 이래 생긴 게 여깄노….” 1986년 7월 18일 경북 경주시 용강동 고분 발굴 현장. 한 대학원생이 흙이 잔뜩 묻은 조각상 하나를 조유전 당시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74)에게 가져오자 이를 본 인부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조유전과 발…2016-06-16 03:00

아홉달 애태운 접시 반쪽 찾은 날 ‘기쁨의 회식’20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 등산로. 가파른 산길을 지나 능선을 따라 1시간을 걷자 어른 키 높이의 성벽이 나타났다. 고구려 산성의 전형...2016-05-26 03:00

1978년 미군 병사가 주운 돌, 세계 고고학계 발칵 뒤집어4일 경기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곳곳에 화려한 전시물과 행사용 텐트가 들어서 보통의 유적지와는 색다른 분위기였다. 다음 날…2016-05-12 03:00

30t 심초석 들어올리자 생각도 못한 유물 3000점이 우르르“아이고마 보는 사람 심장이 다 떨어지겠습니더.” 1978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터 발굴 현장. 포항제철의 크레인 기사가 최병현 조사원(현 숭실대 명예교수)에게 소리쳤다. 30t 무게의 목탑터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을 대형 크레인으로 들어올…2016-04-28 03:00

석탑 해체 중 새어 나온 1370년前 황금빛에 모두가 ‘동작 그만’“솔직히 다보탑이나 석가탑 해체보수 때에도 느끼지 못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실수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4일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쪽 석탑 해체보수 현장. 석탑 1층 기단 위에서 첫 번째 심주석(心柱石·탑의 중심 기둥 돌)을 바라보던 배병선 국립부여…2016-04-13 03:00

20년만에 찾은 금관가야 왕릉… “이게 꿈인가” 등골이 오싹“할배, 여기 옛날 이름이 뭡니까?” “예전부터 ‘애꾸지’ 아이가.” 1989년 7월 경남 김해시 대성동. 온통 밭이던 야트막한 구릉 일대를 조사한 신경철 당시 경성대 교수(65·현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가 동네 토박이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애꾸지가 혹 ‘애기 구지봉’을…2016-03-30 03:00

2000년 전 붓과 삭도… 한반도 문자문명 시대를 알리다“이 연구관, 창원 다호리 유적에 도굴이 심하다는데 직접 가서 조사해 보시오.” 1988년 1월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이건무 학예연구관(전 국립중앙박물관장·현 도광문화포럼 대표)에게 현장조사를 지시했다. 경남 창원시 다호리 고분군은 도굴꾼들…2016-03-16 03:00

석달간 맞춘 토기 조각… 몽촌토성의 비밀을 밝히다1989년 1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6층 박물관. 몽촌토성에서 발굴한 토기 조각을 하나씩 붙여 나가던 박순발 조교(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토기 가운데 귀가 네 개나 달린 묘한 토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특이한 형태였다. 박순발은 …2016-03-02 03:00

용꿈꾼 날 건져올린 백제 최후의 걸작 ‘금동대향로’“여보, 간밤에 용꿈을 꿨지 뭐예요.” “당신 늦둥이라도 낳으려는가. 하하.” 1993년 12월 12일 오후 8시 반.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능산리 사지) 발굴 현장에 있던 신광섭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65·현 울산박물관장)은 이날 아침 출근길에 아내와 나눈 대화가 …2016-02-17 03:00

1600년 깊은 잠 깬 비단벌레 장식… 영롱한 빛깔에 숨이 멎었다《 중국 뉴허량(牛河梁) 홍산문화박물관에 가면 주 전시관 입구에 고고학자들의 인물사진과 기록이 전시돼 있다. 홍산문화 발굴과 연구에 기여한 수빙치(蘇秉琦), 궈다순(郭大順) 등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적, 유물만 강조될 뿐 정작 그것들을 땅속에서 찾아내 생명력을 불…2016-0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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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UPDATE : 2016-04-05 18:59

 

 

<한겨레>는 1909~1921년 조선의 고적, 유적들을 조사했던 식민사학자 야쓰이 세이치(1880~1959)의 비망록과 유품 등을 최근 단독입수했다. 고고학자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지난해 일본에서 매입해 <한겨레>에 분석내용과 함께 공개한 이 야쓰이 문서들은 일제강점 초기 한반도 유적 발굴의 비사와 유물 반출의 숨은 경위 등을 담고있는 일급사료들이다. 정 교수가 연구해온 야쓰이 문서의 전모를 통해 일제 식민사학의 뿌리를 파헤쳐보는 연재물을 격주로 싣는다. 

 

 

연재리스트

 

 

‘신라 정벌 흔적 찾겠다’ 왜곡된 역사에 심취한 야쓰이의 야심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① 경주발굴 첫발은 ‘진구왕후에 대한 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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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쓰이 문서’란? 초창기 한반도 고적조사 핵심 참고자료…메모·사진목록 등 1만점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① 경주발굴 첫발은 ‘진구왕후에 대한 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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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거다!” 야쓰이는 경주 봉분을 파헤쳤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② 경주 고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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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침총 이어 황남리 남총…파고보자식 발굴은 계속됐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③ 경주 고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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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낙랑유적 조사, ‘고대사 전쟁’의 씨앗으로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④ 평양 일대 고분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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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파내려간 대동강변 고분, 거기 중국식 벽돌 무덤이…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⑤ 평양 일대 고분 발굴 인부들의 삽날에 무언가 ‘턱’ 중국풍 벽돌무덤 천장이 드러났다 훗날 낙랑군 논란 첫 실체인 ‘갑총’ 석암동 고분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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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덤? 야쓰이는 낙랑군에 관심이 없었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⑥ 평양 석암동 벽돌무덤의 수수께끼 벽돌 중국식 알고도 `고구려로 단정 임진왜란만 관심…발굴하다 신의주로 “압록강변서 임진년 생각” 딴소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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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고분서 나온 한나라 거울의 정체는 무엇일까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⑦ 석암동 무덤 출토품 논란 1 석암동 고분서 한나라식 유물 쏟아져 야쓰이, 한나라 거울 지칭 눈길 낙랑군 유적 연관성은 생각 못해 경성 복귀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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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이마니시의 또다른 발굴…낙랑유적설이 되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⑧ 석암동 무덤 출토품 논란 2 이마니시 발굴 계획 야쓰이는 몰라 야쓰이와 별개로 평양 무덤 조사 출토품서 ‘왕’자 발견 ‘낙랑’ 단서돼 고구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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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이가 처음 꺼내고 이마니시가 굳힌 한반도낙랑군설

야쓰이 조선발굴비사 9회 석암동 무덤 출토품 논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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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타고 가다 우연히 발견한 대방태수의 무덤, 식민사관의 초석을 놓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⑩ 황해도 봉산 대형무덤 발굴 야쓰이가 발견한 봉산 장무이 무덤과 평양 토성리 토성은 한반도 낙랑군설의 유력한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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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터뜨린 석암동 9호분 발굴,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조선발굴비사 11회 놀라운 출토품 쏟아낸 석암동 9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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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고분 서너개 파보고 “왜의 땅” 못박은 야쓰이

1917~1918년 나주 반남고분 발굴 전말 남도를 왜의 땅으로 단정, 임나일본부 왜곡 씨앗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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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팠던 익산 쌍릉은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⑬ 익산 고분발굴 마한무덤으로 알고 팠던 쌍릉 조사 이제야 재조명 목관, 치아 등 주목할 만한 유물 나왔지만, 이후 외면당해 신라 고구려 유적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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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최악의 발굴 ‘악명’…만신창이가 된 창녕 고분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⑭ 1918~19년 창녕고분 발굴의 참극 화차 2대 분량의 어마어마한 유물들 쏟아졌지만 야쓰이는 보고서 한장 내지않고 유물들 빼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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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고분들 이 잡듯 파헤쳤지만, 진구왕후 흔적은 안나왔다

경주고분 후속 발굴과 귀국 경주 집착 깊었던 야쓰이 1910~20년 마구잡이 발굴 지속 총독부 비호아래 검총 보문총 등 뒤졌지만 성과 미미 1920년 김해 패총 발굴 마지막으로 21년 돌연 귀국 돌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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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학자들이 뭘 조사했는지도 모르면서 식민사학 극복할 수 있나

‘조선발굴비사’ 연재 끝낸 정인성 교수 경주답사 인터뷰 야쓰이비망록 연구는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한 것 일본학자들 독점한 일제강점기 고적조사 진실 온전히 밝혀야 목적도 원칙도 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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