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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안도패총은 여수 돌산 송도, 신안 가거도, 완도 여서도 패총에 이어 지금까지 전라남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패총으로 네 번째이지만,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다량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남해안지역 전체로 보았을 때에도 매장 방식의 특징이나 대외교류와 관련된 유물 등은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남해안지역과 일본 규슈지역의 신석기시대 매장 풍습과 문화교류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각 층에서 출토된 뼈와 패각을 시료로 실시한 연대 측정 결과도 각각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2500년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각 문화층의 연대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1)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은 전남 여수시가 금오도..
인류의 진화 단계상 최초로 시신을 매장한 것은 호모사피엔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집단적인 공동묘지를 따로 만든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어패류 주로 섭취..신장 타지역보다 작아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발굴된 신석기인의 흔적.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집단무덤 유적으로는 부산 가덕도 북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장항유적이 대표적이다.이 유적에서는 인골 48개체와 돌무지 유구 90여기, 구덩이 100기 등이 발굴됐다. 인골이 출토된 경우는 장항유적 발굴 이전만 해도 전국을 통틀어 불과 33개체뿐이었다. 장항유적에서 발굴된 인골은 대체로 머리를 북쪽에 두고 있었다. 팔다리를 바로 펴거나 굽힌 상태로 묻혔는데 대다수가 굽혀묻기로 돼 있었다. 남녀의 성비는 비슷하고 연령은 유소아부터 70대의..
동삼동패총은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특징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이른 시기부터 해양 활동을 통해 일본 규슈지역까지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 1929년 일제강점기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 오이가와〔及川民次郞〕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 1963∼196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모어(Mohr, A.) 및 샘플(Sample, L.L.)에 의해 시굴조사가 그 후 2015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서 10여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약 12,000년 전은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구석기시대에 비해 기후가 급속히 따뜻해집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식물 채집, 사냥, 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이다. 1971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사냥과 어로와 관련된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중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고래사냥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냥하는 사람과 동물, 어로 및 사냥 도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7,000년~3,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 ■산타크로스가 전해준 선물 신라시대 명문이 눈에 도드라지기는 했지만 암벽에 새겨진 선사시대 기하학 문양과 각종 동물상 등 또한 학계를 깜짝..
국가가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작은 전시관이나마 만든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빙하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환경의 도전에 놓였던 한반도 선주민들의 진보하는 문화를 담은 유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너무 적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전시관에 전시된 신석기시대 비봉리마을 복원 그림.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다. 그런데 인류사의 99% 이상은, 95% 이상 식물성 음식으로 살아왔다. 동물성 식료도 그나마 뭍짐승보다는 벌레나 동물을 잡아먹었다. 사냥은 사실 쉽게 잡으면 수지가 맞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에너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초기에는 다른 맹수류 짐승이 먹고 난 찌꺼기들을 먹는 소위 '시체청소부' 역할을 했다고 인류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런데 인류가 진화하고 시대가 흘러 지금으로부터 1만8,0..
신석기시대 문화의 대표적 생활 유물인 토기는 선사시대인들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바꿔준 발명품입니다. 또한 디자인의 개념이 일상 생활에 처음으로 도입된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산리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예술품이라고 할 만합니다. 특히 산화철로 빨갛게 장식한 적색마연토기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 C지구(예맥 발굴)에서 출토된 토기류 모음 인류사의 문화대혁명을 체감할 수 있는 곳 신석기시대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삶의 방식이 가장 크게 달라졌던 시기다. 아이를 들쳐없고 돌아다니면서 먹거리를 구하고, 밤이면 쉴 곳을 찾아다니던 '노마드 시대'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한 곳에 오래 눌러 앉아서 살 수 있게 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정주생활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
홍산 문화 전문가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에 따르면 문암리 옥 귀걸이의 모양은 흥륭와 옥 귀걸이와 모양이 거의 같습니다. 옥 귀걸이를 고리로 한반도 동해안의 문암리가 중국 동북부 흥륭와~사해~부하 문화 시대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7000년 이전,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두고 비슷한 모양의 옥 귀걸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들. 신석기 조기(早期)의 융기문 토기와 돌칼, 돌 도끼, 돌 낚시 등이다. 그 가운데 옥 귀걸이(가운데 붉은 원 내)는 BC 5000년쯤 내몽골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증거로 추정된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1990년대 말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인근 동해안에 군사보호구역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해변에 뒹구는 토기 파..
30년간 발해문명권을 연구해온 이형구 선문대 교수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선양을 출발하여 8000년 유적인 차하이(査海·사해)~싱룽와(興隆窪·흥륭와) 탐사에 나서는 길.중국인들이 ‘중화 제1촌(차하이)’, ‘화하(華夏) 제1촌(싱룽와)’이라 하여 중국 시조의 마을로 떠받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발해문명. 즉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일본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문명의 여명을 열어젖힌 곳이 아닌가. # 8000년 전의 용(龍) 다링허 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차하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무더기 용의 형상이다.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서 발견됐으며, 용 신앙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뻥뻥 뚫린 채 방치된 수풀이 무성한 발굴 흔적 너머로 인공 울타리가 보인다. 가..
2021년 11월 1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알타이어족'으로도 불리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의 기원지가 '서요하 유역 기장 농업 지역'이라는 중요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현재 한국어를 포함해 98개 언어가 속해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사진= 우실하 교수 제공) 2021.11.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논문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의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10개국의 학자들이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분야를 종합한 대규모 공동 연구의 결과였다. 연구 결과는 '농경'의 확산을 통해서 언어의 확산이 이뤄졌는..
신용하교수는 신석기 혁명으로 농업이 시작되자 古한반도에 태양숭배 '밝족'이 형성되었는데 3갈래로 분화·발전했다고 합니다. 고한반도의 북위 40도 이남의 강변과 해안에 그대로 계속 남아 정착해서 ‘고대’를 맞은 신석기인들은 ‘한’족이 되었습니다. '한'족 신석기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세계 최선진 신석기 농업혁명의 성취와 그에 인과관계를 가진 모든 문화항목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태양’ 숭배, 태양이 있는 푸른 하늘 숭배, 천손의식, ‘새’ 토템 등이었습니다. 약 9000년 전∼6000년 전에 한반도에서 압록강을 건너서 또는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요하 동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의 요동반도 · 태자하 · 목단강 · 제2북류 송화강 · 두만강 하류 일대를 중심으로 널리 분산해서 정착한 신석기인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