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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우리의 역사는 환웅의 태백산 신시(神市)로부터 시작했다. 신시를 알기 위해 홍산문화에 집중하였다. 그 중에 우하량유적을 이해하기 위해 이중토템으로서의 ‘연합토템’과 공존토템으로서의 ‘토템연합’이라는 용어가 사용하였다. 토템신앙은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밝히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식민사학과 동북공정에 의해 빼앗긴 환웅과 단군의 역사를 바르게 되찾고, 나아가 환웅시대의 역사를 ‘신시문화’ 또는 ‘신시고국(神市古國)’이라는 이름으로 밝혔다. ■ "단군사는 신화(神話)가 아니라 사화(史話)다"세계일보 조정진기자 2019. 10. 23. 03:01 단군연구가 이찬구 박사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우하량 유적의 새토템과 조이족' 출간 백두산에 오른 단군연구가 이찬구 박사. 겨레 얼을..

지난 세기에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21세기에는 대한민국이 홍익인간 사상을 기반으로 인류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당사자인 우리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도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 그렇게 될 수 있는가?’를 몰라 ‘글쎄?’하며 쉽게 수긍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세기 말에 성취한 한강의 기적과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 그리고 최근 UN에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지정하는 상황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석학들이 말한 민족 재도약의 호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 민족 재도약의 원동력, 겨레 얼!박정학박사 2021.09.22 15:08 ▲ 박정학 사) 한배달 이사장 1. 우리의 민족 저력, ‘함께 DNA’ 지난 세기에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21세기..

2016년부터‘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를 통해 이미 45회의 억지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고 시정을 요청하였으나 고대사학계에서는 학문적인 답이나 공개토론회 제안에는 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겨레가 역사의 처음부터 중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는 거짓말투성이 시민강좌를 더 강화하고 있다. 새해에는 공개토론회를 통해 이런 것을 바로잡아 ‘한강의 기적’과 한류의 뿌리가 되는 민족 저력이 포함된 우리 겨레의 바른 역사를 복원하는 데 나라가 앞장서기를 바란다. ■ [민족NGO 새해 외침] 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기사입력 2018.01.02 17:04기자명민족NGO면 편집장 [민족NGO전면기사]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제4산업혁명은 인문학이 그 바탕이고,..

다산 정약용은 중국 는 깊이 읽었지만, 우리 고전은 안 읽어국가가 아닌 서자 신분인 유득공이 발해 역사를 써야 하는 비극만 제대로 파악해 봐도 한사군은 서북한이 아닌 요동 지역일제 치하 일인이 쓴 우리 통사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수많은 가능성 열어두고 끊임없이 가설을 세워서 대토론을 해야 ■ 도올 김용옥, ‘식민사관으로 우리 역사 보면 안 돼’오종홍 기자 입력 2020.10.06 17:05수정 2020.11.09 18:56 역사복원을 위해 국학 대토론을 벌여야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서기2018.10.28. 서울 국립극단에서 노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자료: 도올티비 갈무리 서울대학 국사학과, 연세대, 고려대 역사학 출신 교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역사학회가 한국고대사학회다...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메이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법학부에서 수학하여 법철학 및 상법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 및 강사로 일하면서 경신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에서 변호사 자격을 인증받은 뒤, 1946년부터 부산대학교 교수 겸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1947년..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입니다. 원통부 27단은 27대 선덕여왕, 쓰인 돌 362개는 음력 1년을 뜻한다고 합니다. 동양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 ▲ 첨성대 경주의 랜드마크 첨성대ⓒ 문운주 ▲ 첨성대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 수를 상징하고,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한다.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표시한다.[경주 시청]ⓒ 문운주 높이, 형태 등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통사 1.8 2008년 8월 31일 신동아 2008년 9월호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 신동아 2008년 09월 호 ● 황하문명과 분리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홍산문명 ● ‘알타이語族’은 람스테드의 실수, 이제는 홍산語族이다 ● 전쟁으로 꽃핀 청동기문화, 난하에서 만난 홍산과 황하문명 ● 고원 초원의 한계, 일정한 수 이상의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 왕소군과 문성공주 사례로 본 중국의 역사의식 ● 몽골을 지배한 흉노-선비-돌궐-요-금-몽골-청은 같은 뿌리 ● 홍산은 토기와 옥기와 청동기가..

《환국-가사라국》 2. 환국은 어떤 나라인가?(1) ‘환국(桓國)’은 《삼국유사》, 《유헌집(遊軒集)》, 《약천집(藥泉集)》, 《풍암집화(楓巖輯話)》, 《수산집(修山集)》, 《해동악부(海東樂府)》, 《관암전서(冠巖全書)》 외에도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4종 사서를 하나로 묶은 책이고, 《삼성기》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 전 상편》과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 전 하편》을 합친 것인데 《삼성기 전 상편》, 《삼성기 전 하편》, 《태백일사》에 ‘환국(桓國)’이 기록되어 있다. 《조대기(朝代記)》, 《삼성밀기(三聖密記)》에도 ‘환국(桓國)’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사서들은 현재 전하지 않고 《태백..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4) 성삼제는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환국은 환인의 오류가 아니라고 한다. 《삼국유사》 임신본은 목판인쇄이고 목판본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면 환인이 환국으로 잘못 새겨졌다고 주장하기 어렵다고 한다. 『목판본은 금속활자 인쇄와 달리 한 번 잘못 새기면 판 전체를 새로 새겨야 한다. 금속활자는 판을 짜고 시험적으로 인쇄해서 활자가 제대로 뽑혔는지 교정을 본 후 잘못 뽑힌 활자는 뽑아내고 다른 활자로 교체하여 인쇄한다. 그러나 목판본은 글자를 쓴 종이 한 면 전체를 뒤집어 나무 원판에 붙인 다음 글자를 새기기 때문에 일단 글자가 새겨지면 수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판인쇄의 경우 활자판을 만든 다음 교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나무에 뒤집어 붙이기 전에..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3) 앞글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기록된 판본이 있고 ‘석유환국(昔有桓國)’으로 기록된 판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 초기 간행본인 파른본은 ‘석유환인(昔有桓𡆮)’으로 되어 있고, 조선 중기 이후 간행본인 중종임신본으로 서울대규장각본과 만송문고본에는 ‘석유환국(昔有桓国)’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교감내용을 보면 '𡆮'은 '囗' 안의 '大'를 흘려 써서 판각할 때 나타나는 글꼴로, 고려대장경에도 동일한 자형이 확인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교감하였다. 『“조선 중종 임신본(1512년)에는 '囯'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임신본보다 이른 조선 태조 3년(1394)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른본 ≪삼국유사≫에 '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