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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현대사, 객관적 연구 난망” 내세우지만총독부 주택난 해결 정책은 세밀 묘사1920년대 참의부 등 일제와 숱한 교전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엔 이름만 삐죽 ■ ‘현대사 연구 금기’는 독립운동사 말살 의도[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⑪ 무장독립투쟁 연구 빈약한 이유수정 2009-07-22 14:58 등록 2009-07-22 14:58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역사학도들에게 현대사는 일종의 금기 영역이었다.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가 만들었다는 이 금기는 표면상 현대사는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명분이었다. 청동기 시대가 되어야 고대 국가가 시작된다는 국사 교과서의 공식이 단군 조선을 부인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한국에만 있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 또한 독립..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한국인에 의해 공개됐다. 완전한 형태로 30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홍도관에는 은왕조 마지막 帝王(제왕)인 帝辛(제신)이 주나라 무왕과의 국가 흥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별점을 친 기록이 은문(=갑골문과 동일)으로 기록돼 있다. ■ 고대중국 은왕조 유물 '홍도관' 공개뉴시스 박상대기자 2008. 8. 12. 10:49 【가평=뉴시스】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

상나라의 실체를 알면 더욱 확실해진다. 하·상·주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다. 지금의 개념대로라면 동이족이 한족(漢族)과 처절한 중원쟁탈전을 벌인 끝에 하나라를 무찌르고 550년 가까이 천하를 통일했다. 그것이 바로 상나라이다.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8)천하를 제패한 동이족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2008.02.01 17:14 중원통일 상나라는 발해문명의 후예 “은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 그녀는 제곡(帝곡·황제의 증손자라 함)의 둘째부인이다. 간적 자매가 목욕을 하러 가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했다. 그가 설이다.”(사기 은본기) 안양 인쉬(殷墟)에서 확인된 상나라 말기의 건축유적. 주 무왕에 의해 패배하여 분신자살..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1)상나라와 한민족 下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 2008.03.07 17:46 수정 : 2008.03.07 17:47 ‘갑골문화’ 동이족이 창조 한자는 발해 문자 였을까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빛바랜 논문 한 편을 꺼냈다. 1981년 국립 대만대 유학 시절 작성한 중국어 논문(‘渤海沿岸 早期無字卜骨之硏究’)이었다. 그는 논문 뒤편에 쓴 후기(後記)를 보여주며 추억에 잠겼다. “여기 후기에 ‘내가 병중에 초고를 완성했다(病中完成草稿)’고 했어요.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할 무렵 대장암 진단을 받았거든. 의사가 수술을 빨리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기 전에 이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 수술 날짜도 받지 않고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신들린 듯 논문을..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0)상나라와 한민족 中 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 2008.02.22 17:05은·부여는 ‘君子의 후예’ 풍류 즐기고 禮 중시 은(상) 마지막 왕 주(紂)의 악행에 대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충신의 심장을 갈랐고, 육포를 뜨고 젓을 담가 맛보게 했으며, 녹대(鹿台)를 만들어 세금으로 거둔 돈을 가득 채웠으니까. 폭군은 더 나아가 수많은 악공과 광대들을 불러놓고 주지육림의 난행을 펼쳤다.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사기 ‘은본기’) 안양 인쉬 거마갱(車馬坑)에서 발굴된 마차유적. 은(상)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주(紂)왕을 위한 변명- 주왕의 악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지만 “악공..
결국 이 모든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로 미루어 보면 BC 6000년(차하이·싱룽와 문화)부터 시작된 발해문명의 창조자들이 그 유명한 훙산문화(BC 4500~BC 3000년)를 거쳐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BC 2000년 무렵~BC 1500년·즉 고조선 시기)를 이뤘다. 그리고 상나라의 시조 설은 차하이·싱룽와 문화-훙산문화의 맥을 이은 발해문명의 계승자로서, 샤자뎬 하층문화의 주인공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설과 그의 손자 상토, 그리고 7~8대인 왕해와 상갑미 대를 거치면서 발해문명의 계승자들은 남으로 뻗어갔으며, 급기야 BC 1600년 무렵 중원의 하나라를 대파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9)상나라와 한민족(上) 경향신문 이기환선임기자 입력 : 2008.02.15 ..

정부에서는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 단국 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國祖)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단군사화가 기록된 책에서는 ‘환웅이 하늘을 열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고 되어있다. 환웅이 ‘개천’한 국조이며, 최초의 나라 이름은 ‘신시’였다는 말이다. ■[민족NGO 새해 외침]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2)기사입력 2018.01.22 14:10기자명민족NGO면 편집장 [민족NGO전면기사]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제4산업혁명은 인문학이 그 바탕이고, 문사철(文史哲)..

2016년부터‘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를 통해 이미 45회의 억지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고 시정을 요청하였으나 고대사학계에서는 학문적인 답이나 공개토론회 제안에는 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겨레가 역사의 처음부터 중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는 거짓말투성이 시민강좌를 더 강화하고 있다. 새해에는 공개토론회를 통해 이런 것을 바로잡아 ‘한강의 기적’과 한류의 뿌리가 되는 민족 저력이 포함된 우리 겨레의 바른 역사를 복원하는 데 나라가 앞장서기를 바란다. ■ [민족NGO 새해 외침] 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기사입력 2018.01.02 17:04기자명민족NGO면 편집장 [민족NGO전면기사]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제4산업혁명은 인문학이 그 바탕이고,..

이익은, 단군조선은 요와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웠으나 독자적인 문화가 아니라 순(舜)의 통치권 내에 들어가 중국 문화 영향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然則檀君亦必在虞廷風化之內 而東邦之變夷爲夏久矣”, 『성호사설』)고 보았다. 이익이 하(夏)문화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본 편발개수(編髮蓋首)는 이암의 『단군세기』와 『정조실록』과, 홍만종의 『동국역대총목』, 이종휘의 『東史』에도 실려 있다. 다른 사서에서는 모두 단군이 제정한 제도(『단군세기』에는 2세 단군 부루)라고 인식하고 있는데도, 오로지 이익만은 하(夏)의 예(禮)가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000여 년 동안 원시적이고 개척되지 못했던 문화는 기자 시대가 되어서야 암흑이 걷혔다는 인식(“檀君之世鴻濛未判 歴千有餘年 至箕子東封天荒始破”, 『성호사..

당시 만주와 몽골에는 크게 만주인(만주 쥬신)과 몽골인(몽골 쥬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몽골이란 민족적 의식은 칭기즈칸의 원나라 이후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명나라 때까지도 여진(만주 쥬신)은 여전히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 통일적인 구심체가 없었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한족(漢族)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요동 - 만주 - 몽골의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한 분이 바로 청태조(김누루하치)입니다.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환국(桓國)·칸국(汗國)·한국(韓國) 김누루하치와 산채나물김운회 동양대 교수 | 2005.08.17. 대부분의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저는 야구(baseball)를 좋아합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타자가 홈런을 치고,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의 한국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