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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1권에서는 산맥ㆍ하천ㆍ기후구 등을 모두 한반도로 제한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에서도 선사시대 유적 분포를 한반도로 제한하거나 고려의 국경을 압록강 입구~함흥 선으로 하고, 서희가 담판으로 얻은 강동6주를 압록강 남쪽에 표시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이라고 하여 윤관의 동북9성이 있었던 두만강 북쪽 연해주 지역은 제외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왜곡한 ‘반도사관’의 잔재다. 최근에는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왕조 중기까지의 국경이 지금의 압록강이 아닌 요하까지였고, 동북쪽도 연해주 지역까지라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이제 반도사관 학자들은 학계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 [민족NGO 새해 외침]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3) 기사입..

정부에서는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 단국 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國祖)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단군사화가 기록된 책에서는 ‘환웅이 하늘을 열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고 되어있다. 환웅이 ‘개천’한 국조이며, 최초의 나라 이름은 ‘신시’였다는 말이다. ■[민족NGO 새해 외침]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2)기사입력 2018.01.22 14:10기자명민족NGO면 편집장 [민족NGO전면기사]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제4산업혁명은 인문학이 그 바탕이고, 문사철(文史哲)..

2016년부터‘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를 통해 이미 45회의 억지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고 시정을 요청하였으나 고대사학계에서는 학문적인 답이나 공개토론회 제안에는 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겨레가 역사의 처음부터 중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는 거짓말투성이 시민강좌를 더 강화하고 있다. 새해에는 공개토론회를 통해 이런 것을 바로잡아 ‘한강의 기적’과 한류의 뿌리가 되는 민족 저력이 포함된 우리 겨레의 바른 역사를 복원하는 데 나라가 앞장서기를 바란다. ■ [민족NGO 새해 외침] 겨레의 미래를 위한 바른 역사 복원을 바란다!기사입력 2018.01.02 17:04기자명민족NGO면 편집장 [민족NGO전면기사]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제4산업혁명은 인문학이 그 바탕이고,..
따라서 실제 고려 천리장성은 요하를 따라 길림성 장춘 서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축조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고구려 천리장성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 천리장성이 실은 고려 천리장성이었을 수도 있고 고구려 천리장성을 고려가 개축(改築)한 것일 수도 있다. [강동 6주를 찾아서 ⑥] 고려 천리장성은 어디에?고려 천리장성의 위치와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들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입력 2023.12.10 20:33수정 2023.12.11 08:31 사서의 기록을 통해 본지에서 밝힌 고려 강동 6주의 위치와 고려 천리장성을 표시한 지도.(지도 제작 :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고려 천리장성 우선 『고려사』에 기록된 천리장성의 기록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고려사』 권..

윤 교수는 스다가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인 서희의 강동6주는 압록강 동남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요하 동쪽에 존재했으며, 요하가 고려의 서쪽 경계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사’ ‘요사’ 등을 근거로 고증했다. 고려 시대의 압록강은 현재 북한쪽 압록강(鴨綠江)이 아니라 고대 요하를 가리키는 압록강(鴨淥江)이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이는 ‘록’자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강동6주는 압록강쪽 아니라 中 요하 근처"..고려 국경선 지도 바뀌나?동아일보 2018. 8. 31. 17:14 서희를 거짓말쟁이로 몬 일본학자 스다 소키치스다의 저의를 의심한 한국학자 윤한택 스다의 고려 국경선 “서쪽으로는 고구려를 넘어서지 못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보다 더 넓었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

이번 연구논문들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낸 결론이 아니라 각자가 별도의 지역에서 연구한 결과들인데, 고려의 북계는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는 압록강 하구에서 원산만이 아니라는 주장은 동일하게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에 실려 있는 기록대로 북으로는 두만강 넘어 선춘령이 맞고, 서로는 고구려 땅을 모두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간 지역으로 추정되는 현재 중국의 요하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획기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 인하대 연구팀, 고려 서북쪽 국경선 새학설 제기 중국 요녕성 요하지역이라는 학술연구 결과 나와인천=정창교 기자 2017. 11. 13. 20:22 고려의 서북쪽 국경선이 중국 요녕성의 요하지역이라는 학술연구서가 고조선연구소(소장 김연성) 연구 총서가 ‘압록..

국가유산청은 2025년 2월 6일 "신라 태자의 공간으로 알려진 동궁이 그동안 알려졌던 것처럼 월지(月池·옛 명칭은 안압지)의 서편에 있는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월지 동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간 학계에서는 월지의 왼쪽, 즉 Ⅰ-가 지구 일대가 동궁 터라고 여겨왔다. 1975년부터 약 2년간 월지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679년을 의미하는 '의봉4년'(儀鳳四年)을 새긴 기와가 나왔고, 동궁을 연결할 만한 여러 유물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신라 왕성이었던 경주 월성(月城)의 동쪽에 있다는 점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했다. ■ 넓은 마당에 연못 갖춘 대형 건물…신라 태자의 '동궁' 찾았다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2025. 2. 6. 09:00 국가유산청, 조사 성과 공개…"월지 서편 아닌 동편이..

신채호로 대표되는 민족사학자들은 편협한 국수주의자도 팽창적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신채호는 영토와 국권(國權)을 확장하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서의 민족주의, 즉 민족을 보존하기 위한 ‘저항적 민족주의’를 주장하였을 뿐이다. 신채호는 만주를 독립운동 근거지나 조선인 이주지로 생각했을지언정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만주를 고토회복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신채호의 고대사에 대한 저술에서도 만주수복론이 명시적으로 표명되어 있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920년대 아나키스트로 변신한 신채호를 주목한다면, 그의 민족주의 사상은 국수적인 자강주의의 낡은 옷을 벗고 인류공동의 국제주의적 세계관 속으로 민족의식을 흡수하여 열려진 민족주의로 승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

단군왕검 실재에 대한 인식이 모호하고 단군조선 역사도 공백으로 비워두는 주류 강단사학은 기자조선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자조선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과 기자조선이 있었고 그 후손들이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이 아직도 병립하고 있다. 주류 강단사학이 유교사학과 식민사학에서 바라보는 기자조선을 그대로 수용하진 않지만 결별하지도 못하여 선도사학 관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기자조선에 대한 애매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13) 주류 강단사학의 성립과 식민사학의 계승 K스피릿 입력 2022.07.16 08:13기자명 소대봉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 8.15 광복은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을 해체하고 한민족의 자주적이..

계몽사학에서는 중국에 대해서는 자주독립을 주장하였으나 일본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일본인이 쓴 역사책(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朝鮮史》(1892))의 영향을 받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계몽사학자들은 반청독립을 주장하였으나, 그들이 쓴 교과서들은 조선시기 전 기간에 걸쳐 유지되던 사대주의 유교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반청독립 정신은 청의 정치적 간섭에서 독립한다는 정당성은 있었으나 많은 부분은 일본의 부추김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일본으로의 예속’으로 연결되었다. 유교사학에서는 탈피도 못한 채 오히려 친일화되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논리를 자발적으로 조선인에게 교육하는 역할을 하는 형편이었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10)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