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지음/《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15)
력사를 찾아서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8 《태백일사》 〈고려국본기〉 고구려 왕족의 후손 궁예, 고려 태조 신성태왕(神聖太王), 16세 예종 문효대왕(文孝大王), 23세 고종 안효대왕(安孝大王, 25세 충렬왕 경효대왕(景孝大王), 28세 충혜왕 헌효대왕(獻孝大王), 31세 공민왕 경효대왕(敬孝大王), 32세 강릉왕 우왕의 기사와 서희장군, 윤관의 여진정벌, 윤언이, 이존비, 이암, 정지상 등의 기사가 실려 있다. 고구려 왕족의 후손 궁예 『태봉국(泰封國) 왕 궁예(弓裔)는 그 선조가 평양인으로 본래 보덕왕(報德王) 고안승의 먼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 강(剛)이 술가의 말을 듣고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여 궁씨가 되었다.이보다 앞서 고구려 수림성 사람 모잠 대형이 유민을 모아 안승을 후고구려 왕으로 받..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7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1세 세조 진국열황제(668년~699년), 연호는 중광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개화 27년(단기 3001년, 668년) 9월 21일 평양성이 함락될 때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開原)을 지나는데 소문을 듣고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8,000명이었다.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하고, 성벽을 굳게 쌓고 스스로 보전하여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칭하고 연호을 중광(重光)이라 하셨다.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멀고 가까운 여러 성에서 합류하는 자가 많았다.오로지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6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구려는 황제국임을 보여주고 연호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세 고주몽성제, 연호는 평락, 2세 유리명제, 3세 대무신열제, 6세 태조무열제, 연호는 융무, 10세 산상제, 11세 동천제, 19세 광개토경호태황, 연호는 영락,20세 장수홍제호태열제, 연호는 건흥, 21세 문자호태열제, 연호는 명치, 25세 평강상호태열제, 연호는 대덕, 26세 영양무원호태열제, 연호는 홍무, 27세 영류제, 28세 보장제, 연호는 개화 등 황제라 칭하였으며 연호를 사용하였다. 연타발, 소서노, 을파소, 을지문덕, 연개소문, 을밀이 나오고, 백제, 신라, 왜의 력사도 나온다. 고구려의 천도과정을 보면 고주몽성제가 평락 11년 갑오(단기 2307년, B..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5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신시시대 선인 발귀리, 복희씨가 지은 환역, 발귀리의 후손인 자부선생이 지은 《칠정운천도》와 배달의 《황부중경》, 《삼황내문경》, 《천부경》, 《삼일신고》, 발리가 지은 《신지비사》, 대부여 《구서지문》, 을파소 선생이 전하여 대대로 내려온 《참전계경》이 들어있다. 가륵단군(3세) 2년에 삼랑 을보륵이 지은 정음 38자 가림다도 나온다. 『신시시대에 선인 발귀리가 있었다. 대호와 동문수학하였는데 도를 통한 후에 방저와 풍산지역을 유람하며 자못 명성을 얻었다. 아사달에 와서 제천행사를 보고 예식이 끝난 후에 찬송하는 글을 지었다. 神市之世, 有仙人發貴理, 與大皞, 同門受學, 而道旣通遊觀乎方渚風山之間, 頗得聲華. 及觀阿斯達祭天, 禮畢..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2) 〈번한세가 상〉 치우천황께서 영토를 확장한 기사와 요 순이 단군조선의 제후였음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온다. 『치우천황께서 서쪽으로 탁예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를 평정하여 산을 헤치고 길을 내신 그 영토가 만 리였다. 단군왕검 때는 당 요와 같은 때인데 요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왕께서 우순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우순과 함께 당요를 정벌할 것을 언약하시니 요임금이 힘에 굴복하고 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주었다. 이때 순 부자와 형제가 다시 돌아가 한 집안을 이루니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1) 신시시대 환웅천황, 안부련환웅, 사와라환웅, 자오지환웅(치우천왕) 때의 기사가 나온다. 먼저 환웅천황 기사이다. 『태백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 경계에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이다. 지금은 완달이라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3 《태백일사》 〈신시본기〉 《환단고기》에 신시배달국 기사는 《삼성기 전 상편》, 《삼성기 전 하편》 그리고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나온다. 《삼성기 전 상편》에는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백산과 흑수 사이 지역에 내려오셨고, 천부인을 지니고 오사를 주관하시어 세상에 교화를 베풀고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였고,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렸다고 나온다. 『後, 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培達.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呪願有功,..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2 《태백일사》 〈환국본기〉 《환단고기》에 환국 기사는 《삼성기 전 상편》과 《삼성기 전 하편》 그리고 《태백일사》 〈환국본기〉에 나오는데 《삼성기 전 상편》에는 우리 환의 건국이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동녀 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 보내셨고 이 나라를 환국이라 하고 천제환인씨라 하며 또한 안파견이라고도 불렀고, 7세를 전했으나 년대는 살필 수 없다고 하였다. 『吾桓建國最古. 有一神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生萬物. 長生久視, 恒得決樂, 乘遊至氣, 妙契自然.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 於是, 桓因亦以監群居于天界. 掊石發火, 始敎熟食, 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亦稱安巴堅也. 傳七世, 年代不可考也.』..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 《태백일사》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1455년~1528년)은 《단군세기》를 지은 이암의 현손으로 조선 연산군때 사헌부 장령, 찬수관을 지냈다.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로 이루어져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조선전기 성균관전적, 사헌부장령, 동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정부(井夫). 이강(李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원(李原)이다. 아버지는 이지(李墀)이며, 어머니는 정보(鄭保)의 딸이다.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 4)..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4. 《북부여기》 《북부여기》를 지은 범장은 고려말 사람으로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여 충절을 지킨 72인 중 한 분이다. 이암, 이명과 함께 천보산 태소암에 머무를 때 소전거사에게서 많은 고서를 얻어 《북부여기》를 저술하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범장은 범세동이라고 한다. 『범세동(范世東, ? ~ 1397?)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제자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범장(范樟) 혹은 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북부여기〉를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이다.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 華海師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