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1) 본문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1)
신시시대 환웅천황, 안부련환웅, 사와라환웅, 자오지환웅(치우천왕) 때의 기사가 나온다. 먼저 환웅천황 기사이다.
『태백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 경계에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이다. 지금은 완달이라 하는데 그 음이 비슷하다.
太白山北走, 屹屹然立於斐西岬之境, 有負水抱山, 而又回焉之處. 乃大日王祭天之所也. 世傳, 桓雄天王, 巡駐於此, 佃獵以祭. 風伯天符刻鏡而進, 雨師迎鼓環舞, 雲師佰劍陛衛. 盖天帝就山之儀仗, 若是之盛嚴也. 山名曰不咸, 今亦曰完達, 音近也.』
묘환苗桓은 환국시절 구황족의 하나로 배달 신시가 개천되자 처음으로 토의 중정의 덕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웅족과 호족이 서로 다투던 때는 환웅천황께서 아직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이다. 묘환은 환국시절 구황족의 하나로 그 땅은 옛적에 이미 우리 환족이 유목과 농경을 하던 곳이다. 배달 신시가 개천되자 처음으로 토의 중정의 덕으로 다스렸다. 1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운동이 쌓여 그 궁극에 천지의 결실하는 음 기운 10이 성립하고, 이 10이 크게 열려서 만물이 다시 양 기운 1로 통일된다. 이러한 1과 10의 순환 운동 속에서 천지의 참마음이 생겨난다.
熊虎交爭之世, 桓雄天王, 尙未君臨. 苗桓乃九皇之一也. 在昔, 已爲我桓族, 遊牧農耕之所, 而及神市開天, 以土爲治. 一積而陰立, 十鉅而陽作, 无匱而衷生焉.』
『옛적에 환웅천황께서 천하가 광대하여 한 사람이 능히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이에 풍백과 우사와 운사를 거느리시고 농사 왕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관하게 하시고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1년으로 삼으셨다. 이것이 바로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에 계시는 상제님께서 남겨 주신 법도이다.
그러므로 천황께서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세우고 그 품고 계신 뜻을 전하는 글을 지으시니 그 〈염표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 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본성은 본래 신의 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천지광명의 뜻과 대이상을 성취하는 홍익인간의 길을 갈지어다.(弘益人間)
이때부터 소도가 건립되어 도처에서 볼 수 있었고 산상과 웅상이 산꼭대기마다 세워졌다.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이 둥글게 마을을 이루고 네 집이 정전의 단위를 이루어 농사를 짓고 조세는 20분의 1을 바쳤다. 사시가 고르고 풍년이 들어 집 밖에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니 온 백성이 기뻐하여 태백환무라는 노래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昔者, 桓雄天王, 思天下之大, 非一人所能理化.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作曆以三百六十五日, 五時, 四十八分, 四十六秒, 爲一年也 此乃三神一體上尊之遺法也. 故, 以三神立敎, 乃作布念之標, 其文曰,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自是, 蘇塗之立, 到處可見. 山像雄常, 山頂皆有, 四來之民, 環聚墟落, 四家同井, 二十稅一. 時和年豊, 露積邱山, 萬姓歡康之, 作太白環舞之歌, 以傳.』
8세 안부련환웅 때의 기사이다.
『웅씨족에서 갈려 나간 후손 중에 소전이 있었다. 안부련환웅 말기에 소전이 명을 받고 강수에서 군병을 감독했다. 소전의 아들 신농은 온갖 풀을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후에 열산으로 이주하여 한낮에 시장을 열어 물건을 교역하게 하였는데 백성이 이를 매우 편리하게 여겼다. 소전에서 갈라진 파로 공손이란 인물이 있었다.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에 귀양가서 살았는데 헌원의 족속이 모두 그 후손이다.
熊氏之所分, 曰少典, 安夫連桓雄之末, 少典以命, 監兵于姜水, 其子神農, 嘗百草制藥. 後徙列山, 日中交易, 人多便之. 少典之別派, 曰公孫, 以不善養獸, 流于軒丘, 軒轅之屬, 皆其後也.』
13세 사와라환웅 때의 기사이다.
『사와라환웅 초기에 웅족 여왕의 후예를 여黎라 하였는데 처음으로 단허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다. 왕검이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영토가 점점 넓어졌다. 여러 지역 왕검이 와서 방물을 바쳤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14세 치우천황 기사이다.
『이어서 치우천황이 계셨는데 구치를 만들어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셨다. 또 비석박격기를 만드시니 천하에서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헌구가 불복하므로 치우천황께서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탁록에서 대전쟁을 벌이셨다. 탁록은 지금 산서성 대동부이다.
전투를 시작하려 할 때 탁록격문을 짓고 종당대인 81명을 소집하여 먼저 치우천황의 형상을 그려 반포하고 아울러 신하들에게 경계의 글을 내려 알리셨다. 치우천황께서 말씀하셨다. “너 헌구는 짐의 말을 똑똑히 들으렷다. 태양의 아들은 오직 짐 한 사람이니라. 짐이 천자로서 이 세상을 만세토록 공의롭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닦는 경계의 글을 짓노라.
너 헌구는 우리의 삼신일체 원리를 우습게 알고 태만하여 삼륜구서를 실행하지 않았느니라. 이에 삼신상제님께서 오랫동안 너의 더러운 행위를 싫어하여 짐 한사람에게 명하시어 삼신의 토벌을 행하게 하셨노라. 네가 하루속히 불의한 마음을 씻고 행동거지를 뜯어고쳐 타고난 삼신의 본성에서 진리의 열매를 구하여라. 그러면 상제님의 성령이 너의 머리에 내려오시리라. 만일 네가 천명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하여 네 목숨이 온전치 못하리니 너는 두렵지도 않으냐?” 이때에 헌구가 평정되어 복종함으로 천하가 우리 배달을 종주로 받들게 되었다.
繼有蚩尤氏, 作造九治以採得鑄鐵作兵, 又制飛石迫擊之機. 天下莫敢讐之. 時, 軒丘不服. 蚩尤躬率, 往征之. 大戰於涿鹿. 涿鹿, 今山西大同府也. 將戰, 作涿鹿檄, 乃召八十一宗黨大人, 先以頒示蚩尤形像, 具命誓而告之.
蚩尤天王, 曰爾軒丘, 明聽朕誥, 日之有子, 惟朕一人, 爲萬世爲公之義, 作人間洗心之誓. 爾軒丘, 侮我三神一體之原理, 怠棄三倫九誓之行, 三神久厭其穢, 命朕一人, 行三神之討, 爾早已洗心改行, 自性求子, 降在爾腦, 若不順命, 天人咸怒, 其命之不常, 爾無可懼乎哉. 於是, 軒丘乃平服, 天下宗我焉.』
자부선생 기사이다. 공공, 헌원, 창힐, 대요의 무리가 찾아와서 모두 자부선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봉황새가 백아강에 모여 깃들고 선인이 법수교를 왕래하였다. 법수는 신선 이름이다. 일찍이 인문이 발달하였고 오곡이 잘 익었다.
마침 이때 자부선생이 《칠회제신력》을 만들고 《삼황내문》을 천황께 바쳤다. 천황께서 기뻐하시고 삼청궁을 지어 기거하게 하셨다.
공공, 헌원, 창힐, 대요의 무리가 찾아와서 모두 자부선생에게 배웠다. 그때 윷놀이를 만들어 환역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대체로 신지 혁덕이 기록한 《천부경》이 전하는 취지이다.』
『斯瓦羅桓雄之初, 熊女君之後, 曰黎. 始得封於檀墟爲王儉. 樹德愛民, 土境漸大, 諸土境王儉, 來獻方物, 以歸化者, 千餘數.』
자부선생의 제자 유위자선생 기사이다. 유위자는 《단기고사》에서는 11세 도해단군의 태자의 스승이라 하였고, 《단군세기》에는 11세 단군 때에 국자랑을 가르친 스승으로 묘향산에 은거한 선인이라 하였다. 또 공자의 10세 손인 공빈이 지은 《동이열전》에는 “유위자는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도 넘쳐흘렀다.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학업을 전수받아 은나라 탕왕의 훌륭한 재상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고조선의 신교 문화가 동이족인 은나라의 정치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다리를 놓기도 한 유위자는 치우천황 때 태백산 사선 중의 한 사람인 자부선생의 후학이다. 신교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킨 분이 자부 선생이고,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유위자이다(정명악, 국사대전 참조)(1)
『이때 유위자가 묘향산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그의 학문은 자부선생에게서 나온 것이다. 지나는 길에 웅씨 임금을 알현하니 임금이 나를 위해 도를 설명해 주겠소? 라고 청하였다.
이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나옵니다. 도에는 이미 대립도 없고 이름도 없으니 대립이 있으면 도가 아니요 이름이 있어도 도가 아닙니다.
도에는 고정불변의 도가 없으나 천지의 때를 따르는 것이 도가 귀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도에는 일정한 이름이 없으나 백성을 평안하게 함이 도의 이름이 담고 있는 바입니다. 밖이 없는 극대 세계와 안이 없는 극미 세계에 이르기까지 도가 품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기틀이 내 마음의 기틀에 나타나고 땅에 있는 상이 내 몸의 상에 나타나며 만물의 주재는 내 몸의 기의 주재에서 나타나니 이것이 바로 하나에는 셋이 깃들어 있고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이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입니다.
일신이 내려 주신 바가 만물의 이치이니 바로 천일이 물을 생하는 도입니다. 인간의 본래 성품이 광명에 통해 있는 것이 생명의 이치이니 바로 지이가 불을 생하는 도입니다. 세상을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다스려 깨우치는 것이 마음의 이치이니 바로 인삼(人三)이 나무를 생하는 도입니다.
대개 대시에 삼신상제님께서 천지인 삼계를 만드실 때 물로써 하늘을 상징하고 불로써 땅을 상징하고 나무로써 사람을 상징하였습니다. 무릇 나무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솟아나온 것인데 사람이 땅에 우뚝 서서 하늘을 대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時, 有爲子隱於妙香山. 其學出於紫府先生也. 過見熊氏君, 君請爲我陳道乎. 對曰, 道之大原, 出乎三神也. 道旣無對無稱, 有對非道, 有稱亦非道也. 道無常道, 而隨時乃道之所貴也. 稱無常稱, 而安民, 乃稱之所實也. 其無外之大, 無內之小, 道乃無所不含也. 天之有機, 見於吾心之機, 地之有象, 見於吾身之象, 物之有宰, 見於吾氣之宰也. 乃執一而含三, 會三而歸一也. 一神所降者, 是物理也. 乃天一生水之道也. 性通光明者, 是生理也. 乃地二生火之道也. 在世理化者, 是心理也. 乃人三生木之道也. 盖大始, 三神造三界, 水以象天, 火以象地, 木以象人. 夫木者, 柢 地而出乎天, 亦如人, 立地而出, 能代天也. 君曰, 善哉! 言乎.』
단군 왕검의 기사이다.
『그 뒤 460년이 지나 신인 왕검이 출현하여 백성에게 신망을 크게 얻어 비왕에 올라 24년간 섭정하였다. 웅씨 왕이 전쟁에서 죽자 왕검이 드디어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을 통일하였다.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이때에 나라 사람들을 불러 이렇게 공약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백성의 뜻을 들어 공법을 삼노니 이를 천부라 이르노라. 무릇 천부는 만세불변의 기본 경전이요 지극한 존엄성이 담겨 있으니 범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마침내 삼한으로 영토를 나누어 다스릴 때 진한은 천왕께서 친히 맡아서 통치하셨다.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이분이 바로 1세 단군이시다. 아사달은 삼신께 제사지내는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왕검의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後四百六十年, 有神人王儉者, 大得民望, 陞爲裨王, 居攝二十四年. 熊氏王崩於戰, 王儉遂代其位, 統九桓爲一, 是爲檀君王儉也. 乃召國人, 立約曰, 自今以後, 聽民爲公法, 是謂天符也. 夫天符者, 萬世之綱典, 至尊所在, 不可犯也. 遂與三韓, 分土而治. 辰韓天王自爲也.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是爲 一世檀君. 阿斯達, 三神所祭之地. 後人, 稱王儉城以王儉舊宅, 尙存故也.』
출처; https://blog.naver.com/greatcorea10/220060911441
〈마한세가〉 상· 하와 〈번한세가〉 상· 하로 이루어져 있다.
〈마한세가 상〉
마한의 초대 왕 웅백다 기사이다.
『단군왕검께서 천하를 평정하고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릴 때 웅백다를 마한 왕으로 임명하셨다. 도읍을 달지국에 정하였는데 백아강이라고도 불렀다. 마한산에 올라 천제를 지내실 때 천왕께서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울을 보면 잘나고 못난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고 백성이 임금을 보면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운 것이 정사에 나타나나니 거울 볼 때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임금을 볼 때는 반드시 먼저 정사를 보아야 하느니라.”
마한 왕이 차자를 올려 이렇게 아뢰었다.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성군은 뭇 사람의 의견을 잘 좇으므로 도가 높아지고 어리석은 임금은 독선을 좋아하므로 도가 작아지나니 참으로 자신을 돌이켜 살펴서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檀君王儉, 旣定天下, 分三韓而管境. 乃封熊伯多爲馬韓, 都於達支國, 亦名曰白牙岡也. 登馬韓山, 祭天. 天王下詔曰, 人視鏡則姸醜自形, 民視君則治亂見政, 視鏡須先視形, 視君須先視政. 馬韓上箚曰, 聖哉! 言乎. 聖主能從衆議, 故道大, 暗君好用獨善, 故道小. 可無內省而不怠乎.』
3세 불여래
가을 10월(BCE 2229년)에 명을 받들어 칠회력을 백성에게 널리 반포하였다.
다음해 봄 3월에 처음으로 백성으로 하여금 백아강(伯牙岡)에 버드나무를 심게 하고 도정(都亭)을 지었다.
병진년(BCE 2225년)에 삼일신고비를 새겨서 남산에 세우고
경신년(BCE 2221년)에 논을 개간하였다.
기해년(BCE 2182년)에 소도를 세워 삼륜구서의 가르침을 베푸니 나라를 다스리는 덕화가 널리 미쳤다.
6세 근우지
경인년(BCE 2131년) 장정 30명을 보내 살수에서 배를 건조하게 하였는데 그곳은 진한의 남해안이다.
임자년(BCE 2109년) 마한 왕이 명을 상춘에 들어가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드리는 일을 도왔다. 10월에 모란봉 산기슭에 별궁을 지어 천왕께서 순수하실 때 머무실 장소로 삼았다. 단군께서 매년 3월에 마한에 명하여 친히 군대를 사열하시고 사냥을 하셨다. 16일에 기린굴에서 천제를 올릴 때 조의를 하사하고 관을 씌우는 예식을 행하셨다. 이어서 가무와 온갖 놀이를 행하고 파하셨다.
9세 막연
무신년(BCE 1993년)에 우서한단군께서 백아강에 순행하여 머무시며 밭의 경계를 정해 땅을 나누어 주고 네 집을 한 구역으로 정하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각 구역에서 일승씩 내어 마을을 나누어 지키게 하셨다.
10세 아화
이때 도해단군께서 강력한 의지로 개화에 힘써 평등하게 다스리실 때 명을 받들어 대성산 기슭에 대시전을 짓고 대동강에 큰 다리를 건설하였다.
세 고을마다 전(佺)을 두어 경당(扃堂)을 설림하고 칠회 제신 의례를 정하여 삼륜구서의 가르침을 강론하니 환도문명이 번성하여 국경 밖까지 소문이 나게 되었다. 하나라 왕 근(厪)(13세왕)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14세 을아
기유년(BCE 1632년)에 탐모라 사람이 말 30필을 바쳤다.
15세 두막해
임신년(BCE 1549년) 3월 16일에 여을단군께서 친히 마리산에 행차하여 참성단에서 삼신께 천제를 지내실 때 은나라 왕 외임(11세왕)이 사신을 보내 제사를 도왔다.
19세 아라사
『이 해(BCE 1323년)에 고등이 개성(開城)에서 반역하여 천왕(21세 소태단군)에게 항명하였다. 마한 왕이 바야흐로 군사를 일으켜 고등을 치려 하는데 홍석령에 이러러 천왕께서 고등을 우현왕(右賢王)으로 삼을 것을 윤허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다.
을미년(BCE 1286년) 천왕(21세 소태단군)께서 해성 옥살 서우여에게 선양하려 하시자 마한 왕이 불가하다고 간했으나 허락하지 않으셨다. 색불루가 즉위하자 마한 왕이 군사를 정비하여 몸소 이끌고 가서 해성에서 일전을 겨뤘으나 싸움에서 패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是歲, 高登, 叛據開城, 抗命天王. 馬韓, 方擧兵討之. 到紅石嶺界, 聞天王, 許高登爲右賢王, 乃止. 乙未, 天王欲讓禪于海城褥薩徐于餘, 馬韓諫不可, 而不允, 及索弗婁之立, 而馬韓, 整師躬率, 往戰于海城, 戰敗不還.』
〈마한세가 하〉
『색불루단군께서 조부(우현왕 고등)의 공덕을 계승하여 병권을 장악하니 진한이 스스로 무너지고 마한·번한 역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패멸하였다. 이에 전제(21세 수태단군)께서 사람을 보내어 옥책과 국보를 전하고 선양하셨다.
새로 등극한 임금께서 도읍터를 백악산으로 정하시자 모든 욕살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여원홍과 갑천령 등이 조칙을 받들어 설득하니 마침내 모든 욕살이 복종했다.
檀君索弗婁, 承祖父功, 手握重兵, 辰韓自潰, 二韓亦未一勝而敗滅. 前帝, 使人傳玉冊國寶以讓. 新帝, 相都於白岳山, 諸褥薩執不可, 黎元興·蓋天齡等, 奉詔諭之. 於是, 諸褥薩畢服.』
재위 원년 병신년(단기1049, BCE1285);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꿈
『재위 원년 병신년 정월에 색불루단군께서 마침내 녹산에서 즉위하시니 이곳이 백악산 아사달이다. 3월에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근자에 아사달에서 사람을 보내 옥책과 국보를 짐에게 전하여 제위를 선양하였느니라. 전제께서 아직 존호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해내의 산천과 백성의 명부가 이미 짐에게 돌아왔으니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예법은 나라의 전례에 합당하게 하여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지어다. 반드시 옛 전통을 잘 헤아려서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하라. 이제 천제일을 맞이하여 먼저 가서 몸과 마음을 재계하며 천제 지낼 장소를 살펴 잘 청소하고 희생과 폐백을 깨끗하게 준비하여 삼신께 보답토록 하라.” ~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의 땅 그대로이다. 정치는 천왕에게서 나오니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여원흥을 마한 왕으로 삼아 막조선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를 번한 왕으로 삼아 번조선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 관경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辰國)이다. 역사에서 일컫는 단군조선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丙申元年, 正月, 遂卽位于鹿山. 是爲白岳山阿斯達也. 三月下詔曰, 邇者, 阿斯達使人傳玉冊國寶以讓, 前帝今雖襲號以尊, 而其海內山川, 旣歸名帳. 祭天之禮, 當在國典, 不可濫也. 必須徵古實, 以達誠敬者. 今當祭迎, 前往擇齋, 審掃神域, 潔備牲幣, 用答三神. ~
五月, 改制三韓, 爲三朝鮮. 朝鮮謂管境也. 眞朝鮮, 天王自爲, 而地則仍舊辰韓也. 政由天王, 三韓皆一統就令也. 命黎元興爲馬韓, 治莫朝鮮, 徐于餘爲番韓, 治番朝鮮, 總之名, 曰檀君管境, 是則辰韓. 史稱檀君朝鮮, 是也.』
20세 여원흥
임금의 명을 받고 대동강을 굳게 지키니 이곳을 왕검성이라고도 불렀다. 천왕께서 매년 중춘에 반드시 마한을 순행하여 머물며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셨다.
22세 아도
기묘년(단기1212, BCE 1122)에 은이 멸망하였다. 3년이 지난 신사년에 자서여(기자)가 태항산 서북 땅에 피하여 사는데 막조선 왕이 전해 듣고 모든 주군을 순행하여 살피고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왔다.
27세 사우
무자년(단기1581, BCE 753)에 주나라 임금 의구(13세 평왕)가 사신을 보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28세 궁홀
갑인년(단기1667, BCE 667)에 협야후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
33세 가리
을묘년(단기1908, BCE 426)에 융안(隆安) 사냥꾼 수만 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관병이 이들과 싸울 때마다 이기지 못하였다. 드디어 반란군이 도성을 공격하여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가리가 출전하였다가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34세 전내
병진년(단기1909, BCE 425년)에 상장 구물(후에 44세 단군)이 마침내 사냥꾼 우화충을 죽이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
36세 맹남
무술년(단기2011, BCE 323년)에 수유사람 기후가 군사를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스스로 번조선 왕이라 하였다. 연에서 사신을 보내 아군과 함께 이를 정벌하자고 하였으나 막조선이 응하지 않았다.
계해년(단기2096, BCE 238년)에 고열가단군(47세)께서 마침내 제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은둔하셨다. 진조선은 오가가 공동으로 집행하는 공화정체제(단기2096, BCE 238년~단기2102, BCE 232년)를 유지하다가 끝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종말을 고했다.
〈마한세가〉
1세 웅백다 ( ~BCE2279년)
2세 노덕리
3세 불여래 (BCE2229년~BCE2180년)
4세 두라문 (BCE2180년~ )
5세 을불리
6세 근우지 (BCE2136년~BCE2107년)
7세 을우지 (BCE2107년~ )
8세 궁호
9세 막연 (~ BCE1939년)
10세 아화 (BCE1939년~BCE1864년)
11세 사리(BCE1864년~BCE1806년)
12세 아리(BCE1806년~BCE1716년)
13세 갈지(BCE1716년~BCE1633년)
14세 을아(BCE1633년~BCE1550년)
15세 두막해(BCE1550년~BCE1483년)
16세 자오수(BCE1483년~BCE1412년)
17세 독로(BCE1412년~BCE1371년)
18세 아루(BCE1371년~BCE1323년)
19세 아라사(BCE1323년~ )
20세 여원흥(단기1049, BCE1285년~단기1101, BCE1232년)
21세 아실(단기1101, BCE1232년~)
22세 아도(~단기1243, BCE1091년)
23세 아화지(단기1243, BCE1091년~단기1279, BCE1055년)
24세 아사지(단기1279, BCE1055년~단기1400, BCE934년)
25세 아리손(단기1400, BCE934년~ )
26세 소이( ~단기1580, BCE754년)
27세 사우(단기1580, BCE754년~단기1657, BCE677년)
28세 궁홀(단기1657, BCE677년~ )
29세 동기( ~단기1746, BCE588년)
30세 다도(단기1746, BCE588년~단기1825, BCE509년)
31세 사라(단기1825, BCE509년~단기 )
32세 가섭라( ~단기1907, BCE427년)
33세 가리(단기1907, BCE427년~단기1908, BCE426년)
34세 전내(단기1908, BCE426년~ )
35세 진을례( ~BCE366년)
36세 맹남(BCE366년~ )
<참고자료>
'지음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5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1) | 2024.02.04 |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2) (1) | 2024.02.04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3 《태백일사》 〈신시본기〉 (1) | 2024.02.04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2 《태백일사》 〈환국본기〉 (1) | 2024.02.04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 《태백일사》 5.1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0) | 2024.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