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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조선의열단오마이뉴스 김삼웅기자 2024. 12. 19. 16:54 [김삼웅의 인물열전 - 자주독립 의열사 열전 33] 의열단은 '7가살'과 '5파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 의열단과 김원봉 단장을 다룬 신문기사. 발췌ⓒ 오나이뉴스 심규상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의열(義烈) 투쟁은 여러 독립운동 방략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쟁노선이었다.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많은 효과를 내는 것이 의열투쟁이다. 또 수단과 방법, 시간과 장소, 인물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예외적으로 이번에는 개인이 아닌 단체를 소개한다. 일제는 조선의열단의 존재가 얼마나 공포심을 불러온 대상이었던지 일본 외무대신은 "김원봉 체포시 즉각 나가사키(長崎) 형무소로 이송할 것..

1926년 12월. 지리멸렬하던 임정에서 잠시 국무령을 맡았던 이동녕(1869~1940)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후배 운동가에게 자리를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하겠다는 이가 없어 억지로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임정 최고 지도자에 오른 이가 바로 김구(1876~1949)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리더십 잃은 통합 임정.. 3대 구심점 '이·창·만' 모두 떠나.. '채소장수' 윤봉길의 폭탄, 꺼져가던 임정 불씨 살렸다서울신문 류지영기자 2019. 1. 17. 03:36 2부 통합과 갈등 : 상하이 시기 ③ 임정, 외교에서 투쟁으로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이 집회 장소로 사용했던 기독교 교회 ‘무얼탕’.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도 여기서 열렸다.상하이 ..

■ 좌우익 모두와 손잡고 독립운동 이끈 홍진김형민기자 2019. 4. 23. 14:02 홍진은 우리 역사에서 입법부의 장과 행정부 수반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반목하던 우리 내부를 하나로 모으려 했다. 좌우익 모두와 손을 잡고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중국 상하이의 임시정부 말고도 3·1운동 이후 곳곳에서 ‘임시정부’ 깃발이 솟았던 것을 알고 있니?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러시아령 연해주의 조선인들이었어. 이동휘·문창범·김철휘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은 대한국민의회를 만들어 행정부를 조각한 뒤 발표했지. 이게 1919년 3월17일의 일이었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4월11일 상하이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깃발이 올랐고, 4월23일에는 식민지 조선 땅 한복판,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