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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이형구교수는 1980년 초 길림시 동쪽 교외 송화강 유역의 용담산(龍潭山) 줄기의 동단산성(東團山城)에서 동남쪽으로 연이어 펼쳐진 속칭 남성자(南城子)라는 곳에서 원형의 토성(土城)이 발견되었는데, ‘전기 부여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여 전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요녕성 서풍현(西豊縣) 서차구(西岔溝) 유적을 들 수 있고, 송화강 유역의 용담산·동단산(東團山)·서단산(西團山)·모아산(帽兒山)·포대산(炮臺山) 등지에서 전기 부여 시기의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부여 중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길림성 유수현 노하심(老河深) 유적이 있습니다. 서차구 유적과 노하심 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금 귀고리가 출토되었습니다. 부여문화의 귀고리는 고리 모양의 귀고리, 걸개와 드리개 장식으로 된 귀고리..
《환국-가사라국》 3. 환국은 어디인가?(6) 3.3.4 윤복현 -12환국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 『한민족의 고대사의 범위는 [12환국]으로 대변되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이다[자료]고대 중국 문헌이 증언하는 고대12환국한국(桓國)과 한국의 12 연방국(聯邦國) 실체 ㅡ 위치 1편 고대 중국[진서(晉書) - 사이전(四夷傳)]에서 전한다. 裨離國在肅愼西北 馬行可二百日 領戶二萬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 領戶二萬비리국재숙신서북 마행가이백일 령호이만 양운국거비리마행우오십일 령호이만 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 領戶五萬餘 一群國去莫汗又百五十日 計去肅愼五萬餘裡구막한국거양운국우백일행 령호오만여 일군국거막한우백오십일 계거숙신오만여리 해설: "비리국은 숙신의 서북쪽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을 가며 가구의..
《환국-가사라국》 3. 환국은 어디인가?(2) 3.1.2 흑수는 내몽고 자치구와 감숙성 동부 지역에 있는 위치한 고원(固原)의 북쪽에 있는 강 백산(白山)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Kyrgyzstan)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신강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族自治區)지역 사이에 위치하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한 봉우리 또는 천산산맥에 속하며 항시 눈이 덮여있는 봉우리 전체 윤복현의 〈한국고대사를 새로 쓰는 사람들의 주장-한민족의 고대사의 범위는 [12환국]영토였던 유라시아 대륙 전역이다〉에 따르면 흑수는 내몽고 자치구와 감숙성 동부 지역에 있는 위치한 고원(固原)의 북쪽에 있는 강으로, 백산은 천산산맥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환국시대 때 흑수, 백산과 환웅시대 때 흑수..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5.16 하가점(샤쟈덴)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3000년 전~2300년 전(BC 1000년~BC 300년) 『중국 동북지방의 청동기시대 후기 문화로 그 연대는 B.C. 1000~300년까지에 해당된다. 샤쟈덴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의 유적은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동남부의 昭烏達盟, 哲里木盟, 遼寧省 朝陽 지구를 비롯한 요서(遼西)지방, 그리고 하북성(河北省) 承德지구 등에서 발견된다. 샤쟈덴상층문화의 연대를 보면, 西拉木倫河 이북의 林西縣 大井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가 B.C. 1000년 전후의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서랍목륜하 이남에 분포하는 유적은 연대가 상대적으로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燕)나라와 진(秦)나라의 장성(長..
《갑골음; 나라 이름》 출처; 최춘태 지음, 갑골음으로 식민사학·동북공정 桓國(환국); [gəsər(ᄀᆞᄉᆞㄹ)], [ᄀᆞᄅᆞᄉᆞᄅᆞ], [ᄀᆞᄉᆞᄅᆞ] 『설문>에 桓(환)은, 木이 의미부이고 亘(긍)은 聲符(성부)라 했네. 木이 의미부라는 것은 오행의 東夷(동이)에 해당하는 덕목일세. 亘의 本字는 亙(긍)인데, 求回也라 하여 무엇을 구하여 빙빙 돈다는 뜻이라네. 𠄠는 ‘구하는 곳’이라 하고 그 사이에 있는 日은 갑골문, 금문, 소전에서 나선형을 그린 것일세. 이 回 또한 지금의 작은 입구(口)와 큰 입구(口)의 합성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의 나선형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일세. 𠄠를 上, 下라 하고 ‘구하는 곳’이라 했는데, [하늘과 땅 사이(𠄠)]에 나선형으로 도는 것은 은하계..
신채호 조선상고사첫째는 부여에 관한 설명이다. 신조선은 세 개의 부여로 나뉘었다.하나는 북부여다. 북부여는 아사달에 도읍을 두었다. 《삼국지》에서 “현도군의 북쪽 1천 리”라고 했으므로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기존의 학자들은 아사달이 지금의 요령성 개원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동부여다. 동부여는 갈사나에 도읍을 두었다. 대무신왕이 동부여를 ‘북벌’했다고 했으므로, 고구려의 동북쪽인 지금의 훈춘 쪽이 동부여였다. 그런데도 기존의 학자들은 갈사나가 지금의 강릉이라고 말했다. 셋째는 남부여다. 대무신왕이 동부여를 격파한 뒤 동부여가 양분됐다. 하나는 기존의 갈사나에 머문 북동부여이고, 또 하나는 남방에 새로운 갈사나를 건설하니 곧 남동부여다. 전자는 오래지 않아 고구려에 투항하고 국호를..
현대 일본인의 뿌리는 3000년 전 한반도 도래인…유전체로 확인곽노필 기자2024. 10. 17. 09:35곽노필의 미래창현대 일본인 게놈의 80%는 비토착민 계열고대 유전체 분석하니 한국인과 가장 비슷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 된 야요이 시대 이주민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으로 나타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오늘날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 가운데 하나이지만 선사시대 일본은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약 1만6500년 전에 시작돼 1만년 이상 이어진 이 시기를 조몬시대라고 부른다. 조몬이란 ‘줄무늬’란 뜻으로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줄무늬토기를 가리킨다.약 3000년 전 규슈 북부지역에서부터 벼 농사가 시작되면서 사냥과 채집 위주의 조몬시대는 끝나고 야요이시대(기원전 1000∼서기 300년..
신채호 조선상고사무령왕의 북진과 고구려의 위축백제 동성대왕이 반역자 백가에게 암살되자, 유능하고 용맹한 사촌형제인1) 무령왕이 백가의 난을 토벌했다. 같은 해에 무령왕은 고구려의 방비 소홀을 틈타 달솔인 부여우영에게 정예병 5천 명을 주고 고구려 수곡성(지금의 신계군)2)을 기습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장령(지금의 서흥군)3)과 철령4)을 차지하고 성책을 세워 예족을 막았다. 이로써 백제의 서북 경계가 지금의 대동강까지 미치게 됐다. 근구수대왕 시대의 형세가 회복된 것이다.서기 505년에 고구려 문자왕은 치욕을 씻고자 대군을 동원해서 가불성(위치 미상)을 침입했다. 이에 맞서 무령왕은 정예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출전했다. 고구려인들은 백제군이 소수인 것을 보고 방비를 소홀히 했다. 이것을 ..
신채호 조선상고사남낙랑·동부여의 존망과 고구려·백제의 관계1)고추모와 소서노라는 한 쌍의 부부가 고구려와 백제라는 남북의 두 왕국을 각각 건설한 이래로, 고구려는 북방 열국을 잠식하며 북방의 유일 강국이 되고 백제는 온조왕이 마한 50여 국가를 통일하고 진한·변한에 각각 속했던 신라·가라를 제압하여 남방의 유일 강국이 되었다는 점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와 제5편 고구려의 전성시대에서 서술했다. 이처럼 남과 북의 두 강국이 대치했는데도 수백 년간 상호간의 접촉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남낙랑과 동부여가 두 나라 사이에서 장벽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려면, 남낙랑과 동부여의 존망에 관한 사실부터 언급할 수밖에 없다.남낙랑과 동부여 열국..
왜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왜국(倭國, 일본어: 倭国, わこく 와코쿠[*]), 왜(倭)는 일본의 일본 열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의 부족국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이들 주민들을 왜인(倭人)이라 기술하고 있다. 왜는 701년[1] 국호가 일본(日本)으로 바뀌기 전까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의 대외적인 명칭이었다. 과거 15세기까지는 단순히 일본 열도의 고대 부족국가만을 한정지어 정의했으나, 일본이 통일된 후에도 간혹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었다.한국과의 연관성[편집]백제와의 관계[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단을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