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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 시골 마을 2500명이 몽둥이 들고 日帝와 싸웠다[3·1운동, 임시정부 100년 - 1부]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3] 화수리 항쟁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화성=김상윤 기자 입력 2019.01.16. 03:01 평일 낮인데도 행인 한 사람 찾아보기 힘든 시골 마을이었다. 수원 시내에서 차를 타고 50분 정도 가면 닿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 이곳이 100년 전 3·1운동 당시 격렬한 항쟁이 벌어진 지역이라고는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았다. 화수초등학교 정문에 있는 독립운동기념비만이 그때 흘린 피를 증언해주고 있었다. 당시 주민들이 공격한 일제의 주재소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다. 마을 하나가 불타 없어진 학살의 현장이었다. "28명이 살해당한 인근 제암리보다 더 큰 규모의 피살자가 발생한 것..

■서대문 형무소에서 다시 외친 '대한독립 만세'[3·1운동 100년, 임시정부 100년][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7] 유관순의 두 번째 3·1운동 조선일보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2.18. 03:00 "전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거예요. 만세 1주년 되는 날인데 빨래나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각본·감독 조민호)에서 유관순(고아성)은 1920년 서대문 형무소의 세탁실에서 노역을 하다가 짐짓 쓰러지는 시늉을 한 뒤 동료 수인(囚人)들이 기다리는 8호실로 돌아온다. 3·1 운동 1주년을 앞두고 옥중 항거를 계획한 것이다. 10㎡(3평) 남짓 좁은 감방에는 20여 명이 갇혀 있다.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를 알리는 괘종 소리가 울리자 유관순은 ..
1919년 1월 21일 새벽 고종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승하하셨습니다. 당시 68세였던 고종은 평소 지병이 없고 건강했기 때문에 일제에 의한 독살설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소문들이 퍼져나갔습니다. ■ 그의 죽음이… '만세운동'과 '민주공화정'의 기폭제 됐다[3·1운동, 임시정부 100년 - 1부]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4] 고종 승하 미스터리조선일보 유석재 기자입력 2019.01.21. 03:00업데이트 2019.01.21. 19:20 1919년 1월 21일 새벽 1시, 경술국치 이후 이왕(李王)으로 강등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거처하던 창덕궁에 전화벨이 가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든 순종은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부왕(父王)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황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