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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 창녕 교동 63호분, 창녕 계성고분군 1호분을 알아 봅니다. 국가유산청과 경상남도는 삼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24년 5월부터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의 매장주체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가야 왕릉 밀집 지역인 고성박물관 쪽 고분군과 직선거리로 700m가량 떨어져 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이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가야 고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철기 유물과 토기 400여점이 발굴됐습니다. 철기 유물은 갑옷 한벌과 투구, 대도(긴칼) 4점, 농경시대 우두머리의 상징물인 살포 1점, 꺾쇠, 화살촉, 창날 등으로 가야는 물론 왜·백제 유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토기는 전형적인 소가야 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왜..
‘한사군 한반도설’ 근거 목곽묘, 한사군 앞서 이미 축조 (hani.co.kr)2009-06-09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⑤ 유적·유물로 보는 한사군북한학자 안병찬은 ‘평양일대 락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1995)에서 ‘평양시 락랑구역 안에서만도 2600여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백 평방미터의 건축지가 발굴되었으며 1만5000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면서 “이것은 일제가 ‘락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하기 위해 조선 강점 기간에 도굴한 무덤수보다 무려 26배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연구 결과에 대해 남한의 한 사학자가 ‘새로 발견된 낙랑목간’이란 논문에서 “(북한에서) 근래 연구서 형태의 몇몇 자료가 나왔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특히 문자 유물의 보고는 더욱..
금관총은 처음으로 금관이 출토되어서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고요,식리총은 금동 장식신발(식飾 장식, 리履 신)이 확인되어서 '식리총'(장식신발총),금령총은 금방울(금金, 령鈴 방울)이 출토되어서 '금령총'(금방울총),서봉총은 스웨덴(서전·瑞典)의 황태자(아돌프 구스타프 6세·재위 1950~73)가 봉황(鳳凰) 장식이 달린 금관을 수습해서 '서봉총',호우총은 청동제 그릇(호壺 병, 우杅 사발)이 출토되어서 '호우총'(병사발총),천마총은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이 출토되어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왕가의 무덤’으로 꼽히는 대릉원 지구에는 60여기의 고분(형태가 남아있는 고분만)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고분의 90% 이상이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무지덧널무덤..
일본 왕실이 꼭꼭 숨긴 ‘쇼소인’ 백제·신라 보물을 엿본다입력 : 2018.02.28 20:53 수정 : 2018.02.28 21:03도재기 선임기자나라 ‘쇼소인’ 소장 유물 관련 심포지엄 7일 열려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공개…전체 소장품은 아직 베일당나라·인도·페르시아 유물도 있는 ‘동아시아의 타임캡슐’1300여년 전 삼국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식기와 수저, 악기, 백제 의자왕과 관련된 가구, 호구조사 문서와 사경, 각종 옻칠공예품…. ‘국보’가 되고도 남을 희귀한 문화재들이다. 모두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정창원·맨 위 사진)에 소장돼 있다. 백제·신라와 일본 간 무역, 선물로 전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유물들이다. 쇼소인에 소장된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6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구려는 황제국임을 보여주고 연호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세 고주몽성제, 연호는 평락, 2세 유리명제, 3세 대무신열제, 6세 태조무열제, 연호는 융무, 10세 산상제, 11세 동천제, 19세 광개토경호태황, 연호는 영락,20세 장수홍제호태열제, 연호는 건흥, 21세 문자호태열제, 연호는 명치, 25세 평강상호태열제, 연호는 대덕, 26세 영양무원호태열제, 연호는 홍무, 27세 영류제, 28세 보장제, 연호는 개화 등 황제라 칭하였으며 연호를 사용하였다. 연타발, 소서노, 을파소, 을지문덕, 연개소문, 을밀이 나오고, 백제, 신라, 왜의 력사도 나온다. 고구려의 천도과정을 보면 고주몽성제가 평락 11년 갑오(단기 2307년, B..
현대 일본인의 뿌리는 3000년 전 한반도 도래인…유전체로 확인곽노필 기자2024. 10. 17. 09:35곽노필의 미래창현대 일본인 게놈의 80%는 비토착민 계열고대 유전체 분석하니 한국인과 가장 비슷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 된 야요이 시대 이주민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으로 나타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오늘날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 가운데 하나이지만 선사시대 일본은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약 1만6500년 전에 시작돼 1만년 이상 이어진 이 시기를 조몬시대라고 부른다. 조몬이란 ‘줄무늬’란 뜻으로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줄무늬토기를 가리킨다.약 3000년 전 규슈 북부지역에서부터 벼 농사가 시작되면서 사냥과 채집 위주의 조몬시대는 끝나고 야요이시대(기원전 1000∼서기 300년..
신채호 조선상고사진흥대왕의 화랑 설치화랑은 신라를 발흥시킨 계기에 그치는 정도의 존재가 아니다. 훗날 중국문화의 융성으로 사대주의 사상과 언론이 사회의 민심·풍속·학문을 지배하고 전 조선을 중국화하려 할 때 이에 맞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것이 화랑이었다. 고려 중엽 이후로 화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져 직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과거의 유풍을 통해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것은 화랑이다. 그러므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는 것은 골수를 빼고 인간의 정신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그런데 화랑이 직접 기술한 《선사》·《화랑세기》·《선랑고사(仙郞故事)》 등의 문헌은 다 사라졌다. 그래서 화랑의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화랑의 문외한인 유교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불..
신채호 조선상고사신라·백제 양국 관계와 비밀동맹의 성립장수태왕의 남진정책은 일시적으로 백제를 약화시키는 데 그쳤다. 이것은 결국 남방 3국인 신라·가라·백제의 동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어 역사상 초유의 대변동을 초래했다. 이 동맹의 주체가 신라였으므로, 동맹의 경과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신라와 백제·고구려의 관계부터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이전에 신라는 고구려와는 멀고 백제와는 근접했기 때문에, 고구려보다는 백제와의 관계가 더욱 더 복잡했다. 그렇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백제 관련 기사 중에는 신뢰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한두 가지 예를 제시하겠다.첫째, 《삼국사기》에서는 신라가 탈해 이사금 이후로 거의 매년 백제와 전쟁을 벌였으며, 각각 200명 정도의 소수 병력으로 어딘지도 알 수 없는 ..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인하대, "통일신라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연변 용정시 부근"함상환2022. 3. 22. 12:05기사내용 요약“통일신라 국경선인 정천군은 지금의 중국 길림성 용정시 지역”고구려 압록강·평양은 현 중국 요녕성 요하·요양 연구결과 발판삼국사기 신당서 요사 등 관련 사료 비교 분석 결과일제의 한국사 왜곡, 실증적 증명 … ‘패수’, ‘발해 동경’도 재확인통일신라 국경 연구보고회, 24일 오전 10시, 경북도의회 회의실[인천=뉴시스] 용정시 우물과 지명 유래비[인천=뉴시스] 함상환 기자 = 통일신라의 국경선이 지금의 원산만 이남 지역이 아니라 중국 길림성 용정시 부근이라는 견해가 제기됐다.인하대 고조선연구소는 24일 오전 10시부터 경북도의회(안동) 회의실에서 “통일신라 북계 위치 연구”라는..
왜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왜국(倭國, 일본어: 倭国, わこく 와코쿠[*]), 왜(倭)는 일본의 일본 열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의 부족국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이들 주민들을 왜인(倭人)이라 기술하고 있다. 왜는 701년[1] 국호가 일본(日本)으로 바뀌기 전까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의 대외적인 명칭이었다. 과거 15세기까지는 단순히 일본 열도의 고대 부족국가만을 한정지어 정의했으나, 일본이 통일된 후에도 간혹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었다.한국과의 연관성[편집]백제와의 관계[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단을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