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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3) “한국史 시야 金-淸 역사로 확대해야”

대야발 2025. 4. 2. 11:43

 

 

 

 

 

 

김위현 명지대 명예교수는 '한국사로서의 금의 역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면서 역사학적, 민족학적, 영역적, 관계사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김 교수는 그 대표적인 근거 중 하나로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혹 고려)에서 옮겨 온 유이민이고 나라를 세울 때 협력한 발해 유민들은 곧 고구려계"라면서 "아골타 근족들의 혼인 대상 민족은 요양에 거주하던 발해 귀족의 여식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주 지역에서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나 고조선(단군조선,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강대한 국가를 유지·경영하다가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 내로 위축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만주지역에서의 우리 역사는 여기서 단절되지 않았으며 금나라도 우리나라 역사의 범주 내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금나라는 우리 역사, 요하문명은 '고조선문명'"

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2012-10-31 

 

 

한중연, '한국사 시공간적 범위·정체성' 세미나 개최

 

 

"금나라는 어느 모로 보나 고구려와 발해 못지않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는 신라, 백제와 함께 3국 정립시대에 한 축이었으며 발해는 신라와 남북국을 이루었다. 또 금나라는 고려와 다시 남북국을 이루었다."(김위현 명지대 명예교수)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을 만주와 몽골초원 더 넓게는 중앙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넓혀서 교류와 이동의 역사관으로 새롭게 바라보아야한다."(우실하 항공대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한민족공동체연구소가 다음 달 2일 주최하는 '한국사의 시공간적 범위와 정체성을 재검토하는 연속 세미나'에서 발표될 연구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중국이 동북공정 등을 통해 역사 왜곡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지금 귀가 번쩍 뜨이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역사학계에는 한국사의 시공간적 범위에 대해 주류학계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이른바 '비주류 학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 비주류 학자들은 주류학계 관점이 식민사학이 만든 틀 안에 갇혀 한민족 역사의 전모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중연은 31일 "비주류 학자들의 이론과 입장을 중심으로 토론의 자리를 만들고 한국사의 진정한 범위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위현 명지대 명예교수는 '한국사로서의 금의 역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면서 역사학적, 민족학적, 영역적, 관계사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김 교수는 그 대표적인 근거 중 하나로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혹 고려)에서 옮겨 온 유이민이고 나라를 세울 때 협력한 발해 유민들은 곧 고구려계"라면서 "아골타 근족들의 혼인 대상 민족은 요양에 거주하던 발해 귀족의 여식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주 지역에서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나 고조선(단군조선,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강대한 국가를 유지·경영하다가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 내로 위축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만주지역에서의 우리 역사는 여기서 단절되지 않았으며 금나라도 우리나라 역사의 범주 내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실하 항공대 교수는 '요하문명과 한민족 고대사 - 단군신화 다시 읽기와 고대사 연구방향'이란 연구논문에서 "이제까지 신화로만 보던 '단군시대'를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홍산 문화의 토템은 곰"이라면서 홍산 문화의 주도세력인 곰 토템족이 단군신화의 웅녀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중국은 최근 홍산문화를 포함한 만주 지역의 고대 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이를 중국의 황제문화에 편입하려 하고 있다.

그는 "요하일대에 중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제5의 문명권이 있었다"면서 "그 주도 세력들이 우리 민족의 선조들과 연결된다는 것을 바탕으로 동북 고대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수 천 년 전 요하문명이 탄생할 때에는 중국도 한국도 없었으며 요하문명은 동북아 모든 국가의 '공통의 시원(始原) 문명'으로 봐야 한다고 우 교수는 분석했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는 '복식과 예술로 본 홍산문화와 고조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문화인 소하서 문화의 뒤를 이은 흥륭와문화와 홍산문화는 분포지역이 거의 같고 계승관계를 나타낸다"면서 "이 문화유적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유물은 옥기와 새김무늬 질그릇으로, 신석기 초기부터 한반도지역의 유물과 성격을 같이해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같은 문화권이었음을 밝혀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요하문명을 '고조선 문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1)

 

 

 

 

이도학 교수는 사료와 문헌을 제시하면서 12세기 이후 정치적으로 만주 지역의 지배 종족이 된 여진족의 국가 기원이 한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려사'는 물론 '이역지'(異域志)와 '신록기'(神麓記) 등 중국 문헌들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역사학자 손진태가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의 역사 인식을 이어받아 금나라 역사를 한국사에 편제시켰지만 이러한 역사 인식이 계승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여진의 존재는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에 의해 우리 역사로 인식됐으며 해방 후 출간된 손진태의 저작물에선 숙신 이래 여진의 금사(金史)까지 한국사에 편재했다"면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후금의 역사까지도 한국사 체계에 편제하는 작업이 유효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간도 문제와 엮어져 있는 이 사안과 관련해 후금의 역사를 한국사에 편제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 "여진족 역사, 한국사에 넣어야"

연합뉴스 황윤정기자 2012. 7. 15. 07:38

 

이도학 교수 주장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장백산 문화론'을 내세워 고구려·발해사가 여진족(만주족)의 금·청나라로 연결된다는 논리를 펴는 가운데 여진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오는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연구논문 '한국사의 확대과정과 여진사(女眞史)의 귀속 문제'를 발표한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청나라 이전의 여진족의 역사는 중국사로 볼 수 없다면서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만주 지역에서 생성과 성장·소멸을 거듭했던 종족의 역사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에 편입됐는데 동일하게 만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여진족의 역사는 숙신(肅愼)→읍루(邑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만주족으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여진족이 세운) 후금(後金)이 산해관 이남으로 진격해 중원 대륙을 제패하고 청(淸)이 되었을 때는 중국사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그 이전의 여진사는 "중국사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사료와 문헌을 제시하면서 12세기 이후 정치적으로 만주 지역의 지배 종족이 된 여진족의 국가 기원이 한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려사'는 물론 '이역지'(異域志)와 '신록기'(神麓記) 등 중국 문헌들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역사학자 손진태가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의 역사 인식을 이어받아 금나라 역사를 한국사에 편제시켰지만 이러한 역사 인식이 계승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여진의 존재는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에 의해 우리 역사로 인식됐으며 해방 후 출간된 손진태의 저작물에선 숙신 이래 여진의 금사(金史)까지 한국사에 편재했다"면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후금의 역사까지도 한국사 체계에 편제하는 작업이 유효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간도 문제와 엮어져 있는 이 사안과 관련해 후금의 역사를 한국사에 편제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2)

 

 

 

 

중국 동북공정의 연구결과를 종합평가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고구려연구회 학술토론회에서 한국사의 시야를 금과 청의 역사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2009년 9월 14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성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 학술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동북공정 배후의 역사관에 대응할 한국의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 “한국史 시야 金-淸 역사로 확대해야”

 

 

이날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중국의 역사침탈이 왜곡단계를 넘어서 주변지역 역사를 아예 말살하는 4단계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서길수(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 교수는 “몽골에서는 우리가 중국사라고 생각하는 원제국의 역사뿐 아니라 흉노, 선비(연·진·양·북위), 돌궐, 위구르, 거란(요)의 역사를 모두 자신들의 역사로 간주한다”며 “한국도 중국에 들어선 모든 왕조사를 중국사로 인정하는 사대주의적 역사관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고구려, 발해의 뒤를 이어 그 땅에 나라를 세운 금과 청의 역사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역사관이 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금사를 전공한 김위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여진이 세운 금의 역사에는 금의 왕족이 고구려 또는 신라에서 왔다는 내용이 있고, 금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가 ‘여진과 발해는 본동일가(本洞一家)’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발해사 전공자인 한규철(고구려연구회 회장) 경성대 교수는 “여진은 고구려인의 후손인 발해 주민과 헤이룽(黑龍) 강 유역에 있던 흑수말갈이 합쳐져 이뤄졌다”며 “요·금의 주민 대다수도 발해인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는 “발해와 통일신라만 남북(南北)국시대로 볼 것이 아니라 발해의 뒤를 이은 요·금과 통일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 역시 남북국시대로 봐야 한다”며 “동북공정을 통해 한반도에만 갇혀 있던 한국사의 시야가 새롭게 개안되고 있다”고 말했다.(3)

 

 

 

 

<자료출처>

 

 

(1) "금나라는 우리 역사, 요하문명은 '고조선문명'" | 연합뉴스 (yna.co.kr) 2012-10-31 

 

 

(2) "여진족 역사, 한국사에 넣어야" (daum.net)  2012. 7. 15. 

 

 

(3) “한국史 시야 金-淸 역사로 확대해야”|동아일보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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