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야 (9)
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 창녕 교동 63호분, 창녕 계성고분군 1호분을 알아 봅니다. 국가유산청과 경상남도는 삼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24년 5월부터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의 매장주체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가야 왕릉 밀집 지역인 고성박물관 쪽 고분군과 직선거리로 700m가량 떨어져 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이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가야 고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철기 유물과 토기 400여점이 발굴됐습니다. 철기 유물은 갑옷 한벌과 투구, 대도(긴칼) 4점, 농경시대 우두머리의 상징물인 살포 1점, 꺾쇠, 화살촉, 창날 등으로 가야는 물론 왜·백제 유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토기는 전형적인 소가야 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왜..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을 알아봅니다.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인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 125개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습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별자리가 새겨진 구덩식 돌덧널 무덤방의 벽면이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은 왜 남두육성을 무덤방 덮개돌에 새겨 넣었을까요. 한국에서는 궁수자리에 속한 6개의 별을 일컬어 남두육성이라고 합니다. 북천에 걸린 큰 국자(북두칠성)를 축소한 것처럼 은하수에 반쯤 잠긴 국자모양이라 해서 남두육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남두육성은 북두칠성과 견줄 수 없습니다. 별 밝기가 북두칠성(1~2등급)에 비해 어두운 2~3등급이고 왜소한 편입니다. ..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3.3 흥륭와(싱룽와)문화; 8200년 전~7400년 전(BC 6200년~5400년) 『중국 내몽고자치구 오한기(敖漢旗) 보국토향(寶國吐鄕) 흥륭와촌(興隆窪村)에서 확인되었다.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는 서요하(西遼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분포하는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문화이다. 이 지역은 중국의 고고학적인 구분에 의하면 요서지구에 해당하며, 후대에 북방유목민들이 활동하던 무대이기도 하다. 1983년에 조사된 흥륭와유적의 발굴조사로 인해 동남부 지역의 선사고고학상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흥륭와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6200∼5400년 사이에 해당하며, 황하유역 중원지구의 노관대(老官臺), 자산(磁山)문화와 동일한 발전단계에 있었던 것..
현대 일본인의 뿌리는 3000년 전 한반도 도래인…유전체로 확인곽노필 기자2024. 10. 17. 09:35곽노필의 미래창현대 일본인 게놈의 80%는 비토착민 계열고대 유전체 분석하니 한국인과 가장 비슷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 된 야요이 시대 이주민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으로 나타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오늘날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 가운데 하나이지만 선사시대 일본은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약 1만6500년 전에 시작돼 1만년 이상 이어진 이 시기를 조몬시대라고 부른다. 조몬이란 ‘줄무늬’란 뜻으로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줄무늬토기를 가리킨다.약 3000년 전 규슈 북부지역에서부터 벼 농사가 시작되면서 사냥과 채집 위주의 조몬시대는 끝나고 야요이시대(기원전 1000∼서기 300년..
코벨 美 학자 코벨, '일본왕가는 가야인들이 세웠다'기자명차태헌 기자 입력 2018.06.01 23:43수정 2018.06.20 23:59통일시대를 맞이하여 남북한 역사 간극을 좁히는 것이 숙제다. 고대한일관계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은 하나같이일본열도는 우리 땅에서 이주해간 사람들 역사라고 한다미국인 코벨, 북한학자 김석형, 한국 최재석 등이 대표학자다북한은 이미 50년전에 임나일본부설 극복하다반면에 국내 강단식민사학계는 여전히 일제치하에서 살다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은 미국인으로서 일본 미술사를 전공했다. 처음에는 일본에 심취하여 일본 역사와 문화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원류가 한국임을 깨닫고 한국역사문화 연구로 여생을 마친다. 그녀는 '한국은 일본의 부..
뛰어난 조형미 갖춘 갑옷, ‘철의 왕국’ 증명가야 문화 복원 프로젝트 (1) 고고학으로 본 가야 전사 기자명김혁중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입력 2019.04.02 17:59수정 2019.04.09 16:29 국립김해박물관은 2018~2023년 가야 문화 복원 연구사업을 추진한다. 사업내용은 가야사 기초자료 정리, 가야출토품·선주민 연구 등 6개 중장기 계획을 포함한다. 또한 이와 관련한 전시·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금관가야의 옛 땅인 김해를 더욱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는 김해시민과 함께 가야 문화 복원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앞으로 5회에 걸쳐 '가야 문화 복원 프로젝트'를 게재한다. ▲ 김해 퇴래리 유적에서 나온 종장판갑. 지산동 고분군 조사 계기가야 갑옷..
왜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왜국(倭國, 일본어: 倭国, わこく 와코쿠[*]), 왜(倭)는 일본의 일본 열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의 부족국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이들 주민들을 왜인(倭人)이라 기술하고 있다. 왜는 701년[1] 국호가 일본(日本)으로 바뀌기 전까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의 대외적인 명칭이었다. 과거 15세기까지는 단순히 일본 열도의 고대 부족국가만을 한정지어 정의했으나, 일본이 통일된 후에도 간혹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었다.한국과의 연관성[편집]백제와의 관계[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단을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김수로왕은 어디에서 왔나?다시 보는 가야사②이덕일등록 2020.11.16 06:00:00▲ 나무곽(목곽)무덤(모형) 관 밖에 다시 나무로 곽을 설치한 무덤이다. *아주 구체적인 가락국 건국 사화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모두 김수로왕이 서기 42년 가야를 건국했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그 내용이 아주 구체적인데, 핵심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개벽 이후 가야지역에는 나라의 이름과 군신의 칭호가 없었다. 다만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간·유수간·유천간·신천간·오천간·신귀간이라고 불리는 9간(干)이 7만5천여 명의 백성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후한(後漢)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서기 42) 임인 3..
신채호 조선상고사가라 6국의 건설지금의 경상남도 일원에 변진(弁辰)의 열두 자치국이 세워졌다는 점은 제3편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에서 설명했다. 이들 자치국은 흔히 가라로 불렸다. 가라는 ‘큰 못’이란 뜻이다. 자치국들이 둑으로 물을 막고 큰 연못을 만든 뒤 그 부근에 자치부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가라는 이두로 가라(加羅)·가락(駕洛)·가야(加耶)·구야(狗耶)·가야(伽倻) 등으로 표기됐다. 야(耶)·야(邪)·야(倻) 등은 고어에서 ‘라’라 발음됐다. 가라는 관국(官國)으로도 표기됐는데, ‘관’에서 초성 ‘ㄱ’과 더불어 중성 ‘ㅘ’의 ‘ㅏ’을 떼어 ‘가’로 읽고, ‘국’의 뜻인 ‘나라’에서 한쪽을 떼어내어 ‘라’로 읽은 것이다.서기 42년 무렵에, 아홉 가라의 지도자인 아도간·여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