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코리아시대 (96)
력사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유럽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사진)의 행적이 담긴 자료들이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국가유산청은 ‘독립운동가 서영해 관련 자료’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고 2025년 4월 17일 밝혔다. 서영해는 유럽에서 작가, 언론인, 교육인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1929년 프랑스 파리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에서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는 일을 했다. 고려통신사는 임시정부 외무부 소속의 외교기관 역할을 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 임시정부 파리 특파원, 서영해 활동 자료…‘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 눈앞에경향신문 윤승민 기자 2025. 4. 17. 20:31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 공식 등록 독립운동가..
등록문화재 제740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은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사상가 조소앙(본명 조용은, 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입각해 독립운동과 건국의 방침 등을 정리한 국한문 혼용의 친필문서이다. 삼균주의는 개인간·민족간·국가간 균등과 정치적·경제적·교육적 균등을 근간으로 해 조소앙이 제창한 정치사회사상이다.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통과됐으며 1948년 제헌헌법의 기본 바탕이 됐다. 조소앙은 광복 후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하다 6.25전쟁 중 납북됐으며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경희대 본관 문화재 됐다 뉴스1 여태경 기자 2019. 1. 2...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독립의 열망을 담은 전단지가 문화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고 2024년 9월 12일 밝혔다. ■ 1919년 독립 열망 담은 임시정부 전단지, 문화유산 등록이데일리 장병호기자 2024. 9. 12. 10:28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전개 양상 보여줘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독립의 열망을 담은 전단지가 문화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고 12일 밝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사진=국가유산청)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
■ 24人의 독립투사들, 남북이 함께 기린다중앙선데이특별취재단 강영진·이철희·정용수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자문위원=유영구·정창현입력 2007.07.29 01:51 평양 대성산 주작봉 정상에 조성된 혁명 열사릉 전경. 김일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인물 중 간부급 160명이 묻혀 있다. 북한은 일제시기독립운동사를 김일성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혁명 열사릉은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상징조작물이다. 평양=김형수 기자 양세봉 열사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독립유공자로 기리는 대표적 인물이다. 1920년대와 34년 순국 때까지 남만주 지역의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특히 32년부터는 조선혁명군 총사령으로 활동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남한에서는 62년 독립장이..

■ 백범 가라사대..한겨레 강성만기자 2007. 11. 14. 20:01 백범 김구는 해방 공간에서 정세 판단과 정치적 선택에 따라 여러 차례 노선의 변화를 꾀했다.1947년 말 단정을 추진하던 이승만과 합작하기로 한 뒤 1948년 1월 '6개항 의견서'를 내어 미소 양군 철수 뒤 전국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밝힌 게 대표적인 보기다. 그는 1948년 3월21일 신영철 사장과 대담에서 이와 관련된 해명을 요청받는다. 이런 변화가 정의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정권을 잡기 힘들어 택한 정략적 결정이 아니냐는 질문에 백범은 당시까지만 해도 이승만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봤다고 항변했다. 창원대 사학과 도진순 교수가 엮고 보태어 최근 펴낸 (돌베개)은 해방 공간 백범의 정치적 선택과 그 배경을 이해..

김구(1876~1949)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군을 국내에 진입시키려고 했다.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이끌던 프랑스 샤를 드골(1890~1970)이 레지스탕스 부대를 이끌고 파리에 입성했듯 임정도 광복군을 모아 서울로 들어가려고 했다. 미국 OSS와 한반도 진공을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 산시성 옌안에 있던 김두봉(1889~1961)의 조선의용군, 소련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일성(1912~1994)의 항일유격대 등과 손잡고 압록강을 넘어가려고도 했다. 임정이 실제로 미국, 중·소 한인부대와 연계해 대일전쟁을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군사작전 5일 앞두고 日 패망..물거품 된 '자주독립의 꿈'서울신문 류지영기자 2019. 2. ..

1919년 4월 11일 임정 수립 이후 21년만에 광복군 창군일제 패망 직전 서울 진공 작전 추진..항복으로 실행은 못 해미 군정에 정식 정부 인정 못 받고 광복군도 1946년 해체장제스에게 "한국 독립 주장 지지해 달라" 외교전 펼쳐라디오 방송 선전전, 교포·일본군 탈출 청년들 모아 군사훈련"피 흘리며 싸운 독립운동 역사, 가볍게 평가해선 안 돼" ■ '국군의 뿌리' 광복군 80주년 "조국과 더불어 영원할 것"CBS노컷뉴스 김형준·김광일 기자2020. 9. 17. 17:21 1940년 8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성립 전례식(사진=독립기념관 제공) 1940년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만들어진 한국광복군이 17일 창군 8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국군은 광복군..

■ 나치박물관에서 만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4명의 눈빛쾰른/글·사진 장예지 특파원 2025. 3. 10. 16:30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7일 사진전 시작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에 전시된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초상화. 인도계 네덜란드인인 얀 배닝 작가의 작품으로, 독일에서는 처음 전시됐다.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김순옥, 박두리, 문필기, 길원옥, 강덕경, 이용수, 이옥선, 김순덕, 김군자, 심달연, 박옥련, 송신도, 김용숙(북한), 곽금례(북한), 이상옥(북한), 박용심(북한).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

일제 실인원 200만명, 연인원으론 780만 강제동원 추산죽창 들고 강제동원에 저항도..탄광·공사장이 가장 열악정부 보상 2차례 실시, 액수 적고 못 받은 피해자도 많아2012년 첫 대법 판결 뒤 6년 동안 정부 뒷짐만 지고 방관정부 책임감 갖고 나서서 일본의 태도 변화 이끌어내야문희상 '1+1+α'는 한-일 갈등 막자는 미봉책..해법 안돼 ■ "강제동원 진상규명부터 제대로 해 '피해자성' 회복해야"한겨레 박병수 2019. 12. 10. 18:16 [박병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강제동원 전문가 정혜경 박사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가 한-일 갈등의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일 기업과 일반인의 자발적 기금으로 위로금을 ..

일제는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실시하여 1만 7,664명,해군특별지원병 2만 1,316명을 동원했으며,1938~1945년까지 육·해군 군속으로 각각 7만 7,652명과 7만 7,915명을 별도로 동원하였다.이와는 별도로 1934년부터 패전 직전까지 노무자·여성위안부·징용 등으로 총 731만 6,234명을 강제 동원했으며,이 중 612만 6,163명은 일본내 탄광, 광산촌 등과 동남아 각지와 남양군도 등지에 끌려갔다. 1944년 1월 19일~20일에 학병 적격자 7,200여 명 가운데 한국내 학생 959명(적격자 1,000명), 귀성중인 일본 유학생 1,431명(적격자1,529명), 일본에 남아있는 유학생 719명(적격자 1,524명), 취업중인 졸업생(적격자 약 700명) 등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