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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 인근의 치장에 도착한 직후인 1939년 8월 좌우익 진영의 7개 정당 및 단체가 단일당을 결성하자는 목표 아래 7당 통일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통일의 방법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민족주의 세력은 1930년대 중반 이래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국민당, 조소앙과 홍진이 주도하던 재건한국독립당, 이청천을 비롯하여 만주에서 이동하여 온 독립군 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혁명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3당은 정치적 이념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옹호·유지하여야 한다는 입장도 같았다. 이 3당은 1940년 5월 8일 공동 명의로 3당 해체 선언을 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다.” ■ 좌우가 함께 싸운 임시정부의 역사한겨레 2017. 6. 2..
■ 일제수뇌폭살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김삼웅의 인물열전 - 자주독립 의열사 열전 36] 자신의 몸을 던져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을 이끈 선구자오마이뉴스 김삼웅기자 2024.12.22 17:38 ▲윤봉길 의사 처형장면 기록 사진 (CG 부분 수정). 일본 육군의 비밀보고서인 만밀대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 대전MBC관련사진보기 25세의 대한 청년이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현 뤼순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천장절 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 일제 고위 장성 등 여럿이 폭사하거나 부상 당했다.의거의 주인공은 바로 윤봉길의사이다. 이 의거는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주고, 특히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지..

국내는 물론 만주·중국·러시아에서 각종 의열투쟁이 전개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적도 한복판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것은 이봉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23년 박열이 일왕 부자를 폭살시키려는 거사를 일본에서 준비하다가 검거되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 일왕마차에 폭탄 던진 한인애국단원 이봉창오마이뉴스 김삼웅기자 2024. 12. 21. 18:48 [김삼웅의 인물열전 - 자주독립 의열사 열전 35] 비록 실패하기는 했으나 한민족으로서는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이 져야 했던 역사의 무게 때문에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봉창 의사이다ⓒ 국가보훈처 한인애국단원 이봉창(李奉昌)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오전 11시 44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