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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본래 마한은 압록강 이남을 거의 다 점유했다. 그러다가 낙랑·진한·변한 삼국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조령 이북과 임진강 이남을 점유하게 되었다. 진·변 두 한은 명의상으로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신·불 두 조선 유민의 자치구였다. 이들은 마한에 대해 조공과 조세를 납부했다. 그러므로 낙랑 같은 적국은 아니었다. ■ 남삼한 70여 국 삼한의 소속 국가 중에서 역사 기록에 나타난 것은 70여 개다. 마한은 원양·모수·상외·소석색·대석색·우휴모탁·신분활·백제·속로불사·일화·고탄자·고리·노람·월지·자리모로·소위건·고원·막로·비리·점비리·신흔·지침·구로·비미·감해비리·고포·치리국·염로·아림·사로1)·내비리·감해·벽비리·구사오단·일리·불미·지반·구소·첩로·모로비리·신소도·고랍·임소반·신운신·여래비리·초산도비리·일난·..

백제계 망명 관리의 지도 아래 축성된 성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보살입상과 백제 성씨인 ‘진씨(秦氏)’ 목간…. 지난 2007년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縣) 북부의 야마가시(山鹿市) 기쿠치성(鞠智城) 북부 저수지에서 의미심장한 유물들이 발견됐다. 저수지 북쪽 1.5m 지하에서 발굴된 유물 중 손꼽히는 것이 바로 금동보살입상 1점과 ‘秦人忍□五斗’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간 1점이다. 그러나 한국학계에서 이 유물들과 관련된 연구는 없었고, 따라서 제대로 공개된 적도 없다. 일본 구마모토현 백제계 성인 기쿠치성 저수지에서 확인된 금동불상. 보주나 항아리, 그릇을 공손히 받든 이른바 봉지보주형 보살상이다. 오른쪽은 발굴품을 토대로 일본에서 제작된 복원품이다.|이장웅 한성백제 박물관 학예연구사 제공 2019년 2..

중국 헤이룽장성 동북부에 있는 면적 12만 km²의 삼강평원에서는 두만강, 연해주 일대에서 발굴된 집자리, 토기와 비슷한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두만강 유역에서 발흥한 옥저 계통의 문화가 삼강평원까지 북상한 흔적이다. 농사를 지어 생활했던 옥저인은 북쪽에서 찾은 기름진 땅에서 300여 년간 살며 거대한 성터를 일궜다. 이곳에서는 250여 기의 성터가 발견됐고, 이 중 가장 큰 성터는 풍납토성의 규모를 능가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기 전 근무지가 과거 옥저의 영토였던 함경북도 녹둔도다. 북방민족의 영토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옥저와 읍루' 펴낸 강인욱 교수삼강평원 성터, 옥저 문화 밝혀읍루..
러시아 연해주에서 2300년 전의 옥저 온돌(쪽구들)과 발해 온돌이 한꺼번에 확인됐다.2007년 6월28일부터 8월3일까지 러시아 조사단과 함께 연해주 체르냐치노 발해유적을 발굴한 한국전통문화학교 발굴단(단장 정석배)은 주거지 1기에서 발해 온돌과 옥저 온돌을 차례로 발굴했다. ◇옥저·발해 온돌이 한꺼번에=지난 7월22일이었다.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눈이 빛났다. 발굴단은 이미 이 발해 주거지에서 발해시대 쪽구들(부분 온돌) 1기를 확인한 바 있다. 그때 확인한 발해 쪽구들의 길이는 4.5m가량이었고, 아궁이 일부와 ‘ㄷ’자 모양의 구들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날 발해인들이 버린 생활 폐기물 구덩이를 파다가 바닥 땅부분에 불에 탄 흙(소토) 2줄기를 본 것이다. “아, 이건 옥..

옥저(沃沮, 기원전 3세기 ~ 285년)는 함경남도 영흥 이북에서 두만강 유역 일대에 걸쳐 있었던 종족과 읍락 집단을 가리킨다.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을 생산하였고, 어물과 소금 등의 해산물이 풍부했는데,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다. 옥저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달랐다. 신랑과 신부가 어린 나이에 약혼을 하고, 신부가 신랑 집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면 예물을 주고 신부를 데려오는 민며느리제가 있었고,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풀이나 흙으로 가매장한 후에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공동묘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는 세골장도 있었다. 그 입구에는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죽은 자의 양식으로 하였다. 고구려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한 옥저는 조위의 고구려 정벌의 여파로 동천왕 ..

『고려사』에 보면 건녕 3년 왕융(王隆)이 군(郡)을 들어 궁예(弓裔)에게 귀부하자 궁예는 크게 기뻐하여 왕융을 금성태수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왕융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만약 조선ㆍ숙신ㆍ변한의 땅을 통치하는 왕이 되시려면 무엇보다도 송악에 먼저 성을 쌓으시고 저의 맏이(고려 태조 왕건)를 그 주인으로 삼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궁예가 이를 따라 왕건을 그 성주로 삼았다고 합니다[여기서 왕융은 고려 태조의 부친으로 후일 추존하여 고려의 세조(世祖)가 되는 분입니다].[原文] 乾寧三年 丙辰 以郡歸于裔裔大喜以爲金城太守 世祖說之曰 大王若欲王朝鮮肅愼卞韓之地 莫如先城松嶽以吾長子爲其主 裔從之使太祖築勃禦塹城仍爲城主 時太祖年二十(『高麗史』太祖紀).그런데 이상하죠? 왕융이 궁예에게 “대왕께..
2013년 7월 5~6일 경주시 우양미술관에서 열린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둔황 석굴군(群) 중 40개에서 고대 한국인 인물상이 확인됐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한 리신(李新) 중국 둔황연구원 연구원은 둔황 지역의 한국 관련 자료에 정통한 중국인 학자이다. "둔황 석굴의 고대 한국인 인물상은 종류와 수량도 많고 보존 상태도 좋습니다. 한국 고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둔황학(學)의 범위를 넓히는 새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북사범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1992년 둔황연구원에 들어간 리 연구원이 둔황 석굴들의 고대 한국인 인물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5년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경변도(經變圖) 연구를 시작하면서였다. 경변도에..

쇼소인은 일본 천년고찰 도다이지(東大寺)의 목조 창고다. 쇼무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묘황후가 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에 756년 헌납하면서 왕실 보물창고가 됐다. 이후 왕실·귀족들이 바친 다양한 종류의 보물과 문서 등 고대 유물 9000여점이 탁월한 보존·관리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쇼소인 유물은 대부분 일본제이지만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도 다수 있다. 화려한 바둑판, 신라시대 묵, 백동가위, 신라촌락문서 등이 한국 유물로 흔히 거론된다. ■ 2024년 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2024. 11. 4.) 일본 왕실창고 쇼소인 보물전 현장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

전남 함평군이 2024년 12월 13일 전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함평 진양리 화동고분군'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군은 '함평 진양리 화동고분군'의 보존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고자 지난 10월부터 학술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결과 1호분은 분구의 크기가 직경 16m인 원형으로 무덤방(玄室)과 출입시설(羨道)을 갖춘 전형적인 백제(사비)시대의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 진양리 화동고분군 1호분/사진=함평군 칼집장식/사진=함평군 무덤방은 하나의 봉분 속에 두 개의 돌방을 갖춘 쌍실분으로, 대형판석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당시의 정교한 석재 가공 기술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1호 돌방은 도굴돼 바닥석까지 전부 파헤쳐진 상태로 훼손됐지만, 출입구의 퇴적토에서 육각형에..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유물 공개토기로 얼굴 형상화한 '인물식륜'.. 마한시대 지배층 무덤서 출토日고분시대의 대표적 유물, 돗토리현서 출토된 것과 비슷마형식륜-자라병 등도 발견 전남 함평군 방대형 고분에서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의 인물식륜. 일본 돗토리현에서 발견된 식륜(아래 사진)과 유사 한 모양으로 코 주변에 수염을 표시하는 등 자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누구의 얼굴일까.전남 함평군 금산리 방대형(方臺形) 고분에서 2018년 12월 20일 열린 전문가 현장설명회에서는 한 점의 토기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치 마스크를 쓴 것 같은 사람 얼굴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가 공개됐기 때문. 평행하게 배치한 눈과 얼굴의 양쪽에는 귀로 추정되는 원형의 투공(透孔) 흔적이 선명했다. 코 주변에는 수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