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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나라시대 문화유산 (1) 일본 왕실이 꼭꼭 숨긴 ‘쇼소인’ 백제·신라 보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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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나라시대 문화유산 (1) 일본 왕실이 꼭꼭 숨긴 ‘쇼소인’ 백제·신라 보물

대야발 2025. 2. 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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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소인은 일본 천년고찰 도다이지(東大寺)의 목조 창고다. 쇼무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묘황후가 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에 756년 헌납하면서 왕실 보물창고가 됐다. 이후 왕실·귀족들이 바친 다양한 종류의 보물과 문서 등 고대 유물 9000여점이 탁월한 보존·관리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쇼소인 유물은 대부분 일본제이지만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도 다수 있다. 화려한 바둑판, 신라시대 묵, 백동가위, 신라촌락문서 등이 한국 유물로 흔히 거론된다.

 

 

■ 2024년 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2024. 11. 4.)

 

일본 왕실창고 쇼소인 보물전 현장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200여년 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과 신라인 후손들은 당시 세계 최대 절집을 만들었다. 정쟁, 천재지변, 역병에 시달리던 일왕 쇼무가 나라와 민중을 태평하게 해달라는 발원을 안고 건립한 절이었다. 8세기 이후로 수백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찰이자 가장 거대한 불상 봉안처로 명성을 쌓은 도다이사(동대사)다.

 

 

오사카 인근 옛 도읍 나라의 진산 와카쿠사 기슭에 자리한 절은 뛰어난 건축술과 공예술을 지닌 한반도 도래인이 아니었다면 지어질 수 없었다. 752년 봄, 8년간의 대공사 끝에 가람이 완공됐다. 축구장 넓이의 바닥에 천장 높이가 50m를 넘고 동서 길이 100m에 육박하는 거대 불당과 높이 15m에 무게 300t 넘는 금동 노사나불상이 나타났다.

 

 

당대 일본 민중을 구제하는 복지사업과 토목사업을 일으켜 성인 칭송을 받은 교키(행기) 스님이 공사 비용을 모았고, 불상에 입힐 황금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3대손 경복왕이 열도 북쪽 아오모리에서 캔 사금으로 조달했다. 7세기 망명한 백제인 왕족의 후손 구니나카노무라지 기미마로가 대불상 제작을 진두지휘했고, 대목수는 신라계 도래인 이나베노 모모요가 맡았다.

 

 

그해 4월 절집 낙성행사으로 열린 대불개안공양회에선 백제인 미마지가 들여온 기가쿠 극의 가면을 쓴 배우들의 공연 무대가 백제악과 신라악이 울리는 가운데 펼쳐졌다. 신라 왕실 축하사절단과 신라·중국·인도 승려들이 함께 지켜보았다.

 

 

 

풀꽃을 아리땁고 정겨운 금박 무늬로 표현한 신라금의 앞부분 몸체. 위쪽 양이두와 몸체를 잇는 현줄과 연결한 노끈의 모습도 1000년 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노형석 기자

 

 

 

 

동아시아가 하나의 문화세계를 이루었음을 보여준 당시 낙성식에 나왔으리라 짐작되는 희귀 유물들이 지금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제76회 쇼소인(정창원) 특별전에 나와 눈길을 받고 있다. 이 특별전은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1300여년 전 일본 왕실의 옛 보물창고 쇼소인의 소장 보물들 가운데 일부를 해마다 엄선해 선보이는 일본 최고의 문화유산 전시다.

 

 

쇼소인이란 왕실 수장고 자체가 사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도다이사 건립을 추진한 쇼무 일왕의 사후 그의 애장품을 고묘왕후가 기증한 것을 계기로 왕실과 도다이사 일급 유물들을 계속 수용해 보관하면서 컬렉션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건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이다.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한국엔 없는 유일한 유물이다. 앞부분인 양이두와 몸체 일부가 좀먹어 때운 것을 제외하면 몸체와 줄의 보존 상태가 놀랄 만큼 좋다. 도다이사 낙성식을 비롯해 절과 왕실의 여러 행사에서 선율을 울렸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9세기 후지와라 가문의 한 중신이 지금 전래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금박 신라금을 반출해 갔다는 기록이 전해져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신라금의 앞부분과 뒷부분 몸체를 상세히 살펴보면, 풀꽃을 아리땁고 정겨운 금박 무늬로 표현해놓은 것이 보인다. 양의 귀 모양을 하고 있는 현줄 고정 부분인 양이두와 몸체 사이의 현줄, 노끈의 상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787년 쇼소인 보물들을 밖에 내놓고 통풍시킨 기록물(‘폭량사해’)의 내용 가운데 신라산 양의 비곗덩어리(양지)를 적은 부분. 노형석 기자

 

 

 

 

787년 쇼소인 보물들을 밖에 내놓고 통풍시킨 기록물(‘폭량사해’) 가운데 신라산 양 비곗덩어리(양지)를 적은 내용도 눈길을 끈다. 양지는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약재로 호평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쇼소인 소장 기록 가운데는 이처럼 오늘날 전하지 않는 신라산 제작품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아 역사적 상상력을 일으키곤 한다.

 

 

화려한 꽃줄기 덩굴무늬가 들어간 펠트 천 양탄자도 고대 한-일 교역사와 관련해 주목받는 유물이다. 서역 계통 물품이지만 당시 일본과 주로 교역한 신라 상인단을 통해 왕실이 구입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매신라물해’라는 당대 일본에서 펴낸 신라산 수입품 목록 문서에도 관련 기록이 전한다.

 

 

 

화려한 꽃줄기 덩굴무늬가 들어간 펠트 천 양탄자도 전시 중이다. 노형석 기자
 
 
 
 
 
8세기 도다이사 등의 기가쿠 가면극에 쓰였던 ‘취호종’이란 이름의 가면도 전시장에 나왔다. 노형석 기자

 

 

 

8세기 도다이사 등의 기가쿠 가면극에 쓰였던 ‘취호종’이란 이름의 가면은 익살스러운 술꾼의 모습을 표현했다. 원래 백제인 미마지가 백제악과 함께 전래했던 것으로, 서역과 중국 남조, 백제 기예극의 양상이 골고루 반영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나 일본 중세 헤이안시대 이래 전승이 끊겨 정확한 실체를 모르는 신비스러운 유물이다. 도래인 가능성도 제기되는 샤모쿠시라는 당대 작가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칠보와 유리, 귀금속으로 장식한 거울. 서아시아 고대 장식공예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경주 계림로 출토 신라 황금보검과 맥락이 닿는 고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거울 공예품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칠보와 유리, 귀금속으로 장식한 거울은 왕실 애장품으로 추정된다. 서아시아 고대 장식공예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경주 계림로 출토 신라 황금보검과 맥락이 닿는 고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거울 공예품으로, 박물관 쪽은 전시의 얼굴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8~9세기 당대 불교의 정토 이념 아래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했던 고대 동아시아의 싱그러운 예술사의 마당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체험의 자리다.(1)

 

한겨레, 나라/글·사진 노형석 기자, 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 2024. 11. 4. 

 

 

 

 

 

쇼소인 보물이 주목받는 것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와 생활문화상 연구·복원에 획기적인 자료들이어서다. 8세기를 중심으로 7~9세기 일본은 물론 백제·통일신라·당나라·인도·사산조 페르시아의 귀한 유물들이 온전한 상태로 있다.

 

 

 

1300여년 전 삼국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식기와 수저, 악기, 백제 의자왕과 관련된 가구, 호구조사 문서와 사경, 각종 옻칠공예품….

 

 

 

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공개…전체 소장품은 아직 베일

당나라·인도·페르시아 유물도 있는 ‘동아시아의 타임캡슐’

 

 

 

‘국보’가 되고도 남을 희귀한 문화재들이다. 모두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정창원·맨 위 사진)에 소장돼 있다. 백제·신라와 일본 간 무역, 선물로 전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유물들이다.

 

 

 

쇼소인에 소장된 ‘백동 가위’.

 

 

 

 

■ 비밀공간 쇼소인과 국제학술심포지엄

 

국제적으로 주목받지만 쇼소인 소장품은 아직까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 왕실 재산으로 궁내청에서 엄격하게 폐쇄적으로 관리하면서다. 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골라 인근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한다. 따라서 소장품들은 특별전과 전시도록, 학술지, 논문 등으로 극히 일부만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일본 연구자들의 종합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폐쇄적 공간인 정창원 유물은 일본을 벗어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신라 먹’. 신라 이두 등이 새겨진 명문도 있다.

 

 

 

 

■ 쇼소인의 한반도 유물들

 

나이토 학예부장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이란 주제발표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쇼소인 보물들을 개괄한다. 백제 유물로는 의자왕과의 관련 여부가 주목되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가 있다. 국내에는 이 같은 7세기대 백제 목칠공예품이 없다.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은제 다리가 있는 코발트블루의 유리잔.

 

 

 

 

은제 다리가 있는 코발트블루의 ‘유리잔’도 있다. 그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잔이 백제로 와 은제 다리가 접합된 뒤 백제 멸망 이전 일본으로 온 것으로 본다”며 “당시 동아시아 격동의 시대를 빠져 나와 전해진 기적의 유리그릇”이라고 말했다.

 

 

 

신라시대의 포장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사하리 수저) 묶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나무 본체에 상아로 선을 긋고 17곳의 화점을 표시한 바둑판(목화자단기국)과 바둑판을 담기 위해 금박·은박·상아 등으로 장식한 함(금은귀갑기국감)도 있다. 바둑알을 넣는 서랍까지 있는 이 바둑판은 일찍부터 국내 학자들에게 알려진 한반도 유물이다.

 

 

나이토 부장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던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과 수저(사하리 수저)는 당시의 포장상태 그대로다. 그릇과 수저 사이에는 신라 문서들이 끼여 있다.

 

 

박남수 신라사학회장은 ‘정창원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본 신라 물품 교역’이란 주제를 발표한다. ‘매신라물해’는 752년 일본에 파견된 신라 왕자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가격을 기록한 문서다.

 

 

 

 

각종 보석류와 나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동경’.

 

 

 

 

이난희 학예사는 ‘정창원의 칠공(漆工)기법-한국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를 통해 옻칠공예품과 기법 등을 고찰하며 한반도 칠공예품과의 관련성을 조명한다. 이 학예사는 “쇼소인의 칠공예품은 종류의 다양성은 물론 최고급 재질, 갖가지 기법이 사용돼 격조 높은 칠공예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며 “일부 유물은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백제의 유물 문양과의 관계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쇼소인에 소장된 유물인 1300여년 전 바둑돌.

 

 

 

‘백제와 일본 정창원 소장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쇼소인 소장품과 백제의 관계를 집중 조명한 신 교수는 “국내에 비교할 만한 백제 미술품이 적다는 이유로 그동안 백제와의 관계가 부정되거나 판단이 유보된 쇼소인 소장품들이 있다”며 백제 유물들과의 비교연구를 강조했다. 신 교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바둑돌의 경우 그 장식기법이 삼국시대 ‘상아제 사리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창원 금속공예의 연구 현황과 과제’를 통해 쇼소인 소장 각종 금속공예품의 연구 상황을 분석한 최응천 교수는 특히 “쇼소인 유물은 동아시아의 타임캡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최 교수는 문화재청의 일본 궁내청과의 교류 확대와 창구 일원화, 한반도 관련 유물의 체계적인 목록화 작업과 데이터베이스화, 양국 공동연구의 적극적인 시도와 교류 전시 등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한반도 유물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2)

 

경향신문, 도재기 선임기자, 일본 왕실이 꼭꼭 숨긴 ‘쇼소인’ 백제·신라 보물을 엿본다, 2018.02.28

 

 

 

 

 

쇼소인에는 모두 9천여 건의 유물이 있다고 전하는데, 아직도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매년 한 차례씩 열리는 특별전을 통해 60∼75점이 공개되지만, 종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쇼소인의 보물 목록인 '국가진보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에는 8세기에 창건돼 1천200년 넘게 이어져 오는 왕실의 보물창고 '쇼소인'(正倉院·정창원)이 있다.

 

 

 

쇼소인의 적칠문관목주자. [국립경주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쇼소인 유물 중에는 불교 공양물 보관장으로 짐작되는 '적칠문관목주자'(赤漆文<木+觀>木廚子)라는 가구도 있다.

쇼무(聖武) 천황이 756년 세상을 떠난 뒤 도다이지에 헌납된 보물을 정리한 목록인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에는 '적칠관목주자'와 '적칠문관목주자'가 나오는데, 적칠관목주자는 백제 의자왕이 내대신(內大臣)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적칠관목주자는 오늘날 남아 있지 않고, 아무런 기록이 없는 적칠문관목주자만 쇼소인에 보관돼 있다. 적칠문관목주자는 과연 7세기 백제 유물일까.

 

 

이번 심포지엄은 쇼소인에 있는 백제와 신라 유물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박남수 신라사학회장은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 본 신라 물품 교역에 대해 발표하고, 나이토 사카에(內藤榮) 나라국립박물관 학예부장은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쇼소인 유물을 설명한다.

 

 

이어 이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국 관련 유물의 칠공(漆工) 기법을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고, 히가사 이쓰토(통<木+通>笠逸人) 나라국립박물관 연구원과 신숙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는 각각 쇼소인의 신라 사경과 백제 유물에 대해 논한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쇼소인 금속공예 연구 현황을 발표하면서 향후 연구 과제도 제시한다.

최 교수는 "쇼소인 유물 조사 기구를 일원화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며 "그 결과는 정확하게 목록화하고, 일본과의 공동 연구와 유물 교류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3)

 

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일본 왕실 보물창고에 있는 가구는 의자왕의 하사품일까, 2018-02-27

 

 

 

 

https://youtu.be/UlyHyQUyk7k

 

 

 

 

 

 

https://youtu.be/rlxEe3r5T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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