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홍산문화 (18)
력사를 찾아서

2006년 9월 14일 고구려연구회 주최로 열린 '동북공정 분석과 평가' 토론회에서는 금·청나라 역사를 한민족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이른바 재야사학계의 논리가 강단사학계에서 처음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는 20일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를 만났다.서 교수는 "중국은 한국사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 역사를 파악한다'는 반박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우리도 중국사를 해체해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 "닫힌 반도사관으론 동북공정 못 막는다"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2006. 9. 22. 그는 "중국의 정사인 25사에 들어간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인정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전통..

'흑피옥의 숨겨진 역사는 무엇일까?' 광주광역시차이나센터가 2024년 2월 26일 흑피옥을 주제로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중국 내이멍구 흑피옥 유물 출토지를 최초로 발견한 고미술품 수집가 고(故) 김희용씨의 삶을 재조명하는 세미나에서다. 흑피옥이란 검은 염료를 칠한 옥돌 조각상을 말하는데, 1993년부터 흑피옥을 수집해 온 고인은 생전 동아시아 '초고대(超古代) 문명'의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 "흑피옥은 한민족 뿌리 동이족 역사 유물"안경호2024. 2. 26. 17:14 정건재 동아시아옥문화연구학회장 26일 오후 광주광역시차이나센터에서 중국 고유물 수집가 김희용의 삶과 흑피옥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흑피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옥문화는 역사의 진공 상태에 빠져 있다..

“발해만에서 동북쪽 일대가 활동 영역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부근이 고조선의 중심지입니다. 송나라 때 태평환우기>의 기록에 여기에 ‘조선성(城)’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로는 증거가 부족한데, 사고전서>에서 노룡의 서쪽 북경 부근에 조선하(朝鮮河)가 있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조선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혹은 압록강 부근이 아니라, 발해만 부근을 중심으로 노룡과 북경-천진을 아우르는 지역,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오늘날의 보정시까지 이어진 하북성 일대라는 말씀이신데요. “그 일대가 우리 민족, 즉 동이족(조선족)의 활동무대였습니다. 물론 동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조양시를 포함하는 ..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통사 1.9.1 2010년 1월 14일 한겨레 〈[한민족의 시원, 만주] 대한민국 청년에게 고함 (1)한민족의 광활한 뿌리, 고려에서 맥 끊겨〉 법륜 스님 『[한민족의 시원, 만주] 대한민국 청년에게 고함 (1) 환인 한나라, 환웅 배달, 고조선, 고구려 터전 신라는 정통성 없고 조선은 사대로 역사 ‘망각’ 일본강점기까지 ‘만주’라고 불렸던 중국의 동북 3성인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 발해, 고려 등의 터전이었고,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진 우리 민족의 주요한 활동무대였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 곳곳에는 한민족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근 만주 일대에서는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유적과 유물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통사 1.8 2008년 8월 31일 신동아 2008년 9월호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 신동아 2008년 09월 호 ● 황하문명과 분리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홍산문명 ● ‘알타이語族’은 람스테드의 실수, 이제는 홍산語族이다 ● 전쟁으로 꽃핀 청동기문화, 난하에서 만난 홍산과 황하문명 ● 고원 초원의 한계, 일정한 수 이상의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 왕소군과 문성공주 사례로 본 중국의 역사의식 ● 몽골을 지배한 흉노-선비-돌궐-요-금-몽골-청은 같은 뿌리 ● 홍산은 토기와 옥기와 청동기가..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6.6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 초재의 《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보는 한국인의 기원》 4. F-statistics다음은 한국인을 포함하는 몇 개의 D-statistics의 결과를 가지고, 그 의미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그림 18) D-stat (Korean,Chinese-Han, Ancient East-Asians, Mbuti) 위의 D-statistics 그래프는 한국인과 중국 한족이, 선사시대의 여러 동아시아 고인골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 지 비교하는 것으로서, 오른쪽에 0 보다 큰 값이 나온 샘플들은 중국 한족보다 한국인과 보다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거나, 혹은 한국인과 보다 많이 혼혈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왼쪽의 ..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5.3 조선(2) 〈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21] 다뉴세문경 무늬는 천문과 삼각형 구름과 비〉 2019년 4월 8일 오마이뉴스 ▲ 〈사진159〉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높이 36.8cm.ⓒ 국립중앙박물관 『청동거울 무늬의 기원은 암사동 신석기 토기'사진160-161' 중국 칠성각 거울을 보기에 앞서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문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암사동 토기 문양에 중국 청동거울 문양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159'는 서울 암사동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아가리 부분이다. 가장 위쪽에 하늘 속 물(水) 층을 6층으로 새겼다. 왼쪽과 중간을 보면 무늬를 새기다 만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하늘 속 ..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22 용산문화(龍山文化); 4900년 전~4000년 전(BC 2900~2000년) 『중국 산동성(山東城) 장구현(章丘縣) 용산진(龍山鎭)에 위치하는 성자애(城子厓)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용산문화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신석기시대 만기(晩期) 문화이다. 1928년 처음 확인되었고, 1930년에 발굴이 이루어졌다. 용산문화는 산동 용산문화(山東 龍山文化), 묘저구2기문화(廟底溝2期文化), 후강2기문화(後崗2期文化), 객성장2기문화(客省庄2期文化)의 4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전형(前型)을 띠는 것이 산동 용산문화로 방사성탄소 보정연대로는 기원전 2500∼2000년에 해당하며, 이전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의 계통을 잇고 악석문화(岳..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4) 2012년 9월 24일 동아일보 기사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동글게 벌리고 호흡하며 수행하는 모습의 남자 인물상. 올해 5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발굴된 이 토기 인물상으로 홍산(紅山)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임이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요하(遼河)문명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은..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3) 〈요서지역 홍산문화와 요동~압록강 유역의 토기 비교〉 (출처; https://eastsearoad.tistory.com/316?category=73522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묘’에 대한 의심〉 『홍산문화의 논점의 중심에는 ‘우하량’이라고 하는 유적이 있다.우하량 유적은 홍산문화의 핵심유적이다. 중국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의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성격은 이 유적에서‘만’ 확인된다.요녕성 서부 구릉산지대의 조양시 능원현의 산등성이에 위치한다(그림 1).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었고, 옥기가 출토되었다. 그림1. 우하량 유적의 전경(이른바 여신묘는 NIJI이다) 그 중에서는 제2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