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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4) 본문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4)
대야발 2024. 2. 9. 12:04《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4)
2012년 9월 24일 동아일보 기사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동글게 벌리고 호흡하며 수행하는 모습의 남자 인물상. 올해 5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발굴된 이 토기 인물상으로 홍산(紅山)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임이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요하(遼河)문명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은 허구가 된다.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를 비롯한 5개 대학 연합연구팀은 26일 인천 남구 인하대에서 '동북아 고대 국제관계와 한민족의 선진 문화 역량'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용역 연구결과 발표회를 연다.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밝히는 이 발표회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네이멍구 츠펑(赤峰) 시 아오한치(敖漢旗)의 싱룽거우(興隆溝)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에 대한 분석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높이 55cm인 이 인물상은 상투를 틀고 관모(冠帽)를 쓰고 있다.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다. 상투를 틀 땐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밀었는데, 이 인물상도 정수리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지금까지 홍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인물상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데 중국 한족의 문화유적에선 모자 쓴 인물상이 나온 적이 없다.
인물상이 수행 중인 종교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김연성 연구팀장(인하대 경영학부 교수)은 "이 인물이 세속적 권력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훗날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지도자급 존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 토템족 수행의 문화적 뿌리로 볼 수 있으며, 같은 시기에 중원지역에서는 지도자급 인물의 수행 모습을 묘사한 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
홍산문화(기원전 4700년∼기원전 3000년 추정)는 1980년대부터 유적과 유물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홍산문화를 포함한 요하문명은 만주에 흐르는 요하 주변에서 발원한 신석기·청동기 문명으로, 중국 문명의 기원인 황하(黃河)문명보다 1000년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만들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인물상은 그 과정에서 발굴됐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국학과 교수는 "중국이 홍산문화에 관심을 갖기 전인 1980년대 초까지 홍산문화는 북방인들의 문화로 간주됐다"며 "이번에 발견된 인물상을 계기로 홍산문화가 다시 북방인들의 문화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서는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 허난(河南) 성 하나라 이리두 유적과 고조선의 핵심 지역으로 추정되는 네이멍구 츠펑 시의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조개화폐를 토대로, 당시 하나라보다 고조선이 선진적인 국가역량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 교수는 "하나라는 내륙 국가였기 때문에 바닷가에서 귀하게 채집되는 '카우리(개오지·조개의 일종) 화폐'는 해양세력이 유통시킨 화폐로 추정된다."며 "한민족은 신석기 시대부터 고래를 잡는 등 해양성이 강한 반면 하나라 유물에서는 해양활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 간 무역에 통용되는 기축통화를 공급하는 국가는 강대국인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성규 단국대 몽골학과 교수는 발해문자와 거란문자의 유사성에 주목해, 거란이 고구려식 한자 표기법을 계승한 발해의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성미 기자』
(출처; http://v.media.daum.net/v/20120924030910705)
2017년 9월 12일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기사 〈과학이 밝혀낸 홍산문화, 중국산 아니다〉
『외부의 혼혈과 상관없이 우리 모습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있다
생물학 존재로서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아프리카 대륙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왔을까
북방시베리아에서 왔을까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는 민족역사와 필연으로 이어져 있다.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역사내전을 치르고 있는데 민족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에 가닿는다. 역사내전 당사자는 하나는 민족사학이고 상대방은 강단식민사학 특히 우리고대사를 점령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다. 민족사학은 우리기원을 우리가 현재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을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반면에 강단식민사학은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학문은 모두 서양 중심으로 짜여 있어 사실상 서양학이 지배하고 있다. 서양학문기준으로 우리 국학을 하고 있는 실정을 부인 못한다. 강단식민사학이 이런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다. 이 역사전쟁 뿌리인 민족기원을 과학적으로 푸는 시도가 있어 눈길을 끈다.
서기2017.09.11.서울 광화문 한국통신(KT) 창조경제중심(CENTER) 회의실(CONFERENCE ROOM)에서 ‘유라시안네트워크(이민화 이사장)’이 주최한 시민강좌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유전인자와 언어를 추적해서 민족기원을 밝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시민강좌는 이전의 강좌와는 달리 2명의 강사가 등장했다. 각각 1시간씩 발표했다. 첫 번째 강좌는 산스크리스트 연구가인 권중혁 선생이 맡았다. 권중혁 선생은 유전인자와 언어를 통해서 민족기원을 밝혀나갔다. 그는 먼저 빙하기에 우리나라와 주변 지형이 어떤 상태였는지 상기시켰다. 서해에서 동지나해에 이르는 지역이 모두 육지였다고 한다. 이 지역은 해안선이라 먹을 것이 많아 사람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인류아프리카 기원설을 바탕으로 이 해안선을 타고 올라온 사람들을 우리조상으로 추정했다. 또 초기 남방계 인류언어를 분석하여 이동경로를 추적해 나갔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순다지역의 인도네시아어를 주목했다. 그가 소개한 것을 보면 언어구조가 현재 우리말과 반대다. 이 언어는 북상하여 필리핀에 닿았는데 필리핀 남부 타갈로그어도 이런 구조를 띠고 있다. 지금 우리말 순서를 보면 예를 들어 ‘밥을 먹었다’ 와 같이 목적어가 먼저 오고 술어가 뒤에 온다. 그러나 순다지역이나 필리핀은 ‘먹었다, 밥을’ 이라고 해서 우리말과 반대구조를 띠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호주 원주민 언어는 말 순서가 우리가 같다고 한다. 어째서 같은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호주에서 씨이(C) 유전자가 생겨났고 분포지역을 보면 호주에서 시작해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중국 북부, 만주와 동시베리아 그리고 캄차카 및 알래스카 등에 나타나고 있다. 이 유전자 분포를 통해서 호주원주민들의 말이 우리말 순서와 같은 이유가 드러난다.
▲ 권중혁 산스크리스트 연구가가 유전인자와 언어이동과정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뿌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홍산문화가 북방 부리야트 계열 사람들이 만든것이라며 유전자 분포도를 제시했다. 중국이 자신들 조상이 건설했다며 내놓은 논문에서 이 같은 증거를 찾아 역발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유럽과 중앙아시아 언어도 우리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유럽인의 유전자가 동아시아 영향을 받았다는 자료를 제시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또 러시아에서 발표한 논문에도 유럽인이 동 시베리아인의 유전자와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흑해연안의 이른바 코카서스 지방이 유럽인의 기원 지임을 집중 소개했다. 또 현재 유럽인은 약2만4천 년 전에 바이칼 말타부렛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이 이들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우리말은 알타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지금 까지 알타이어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고립된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홍산 문화를 이룩한 주인공을 유전자 분포로 밝혀서 방청객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이 홍산 문화를 중국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논문을 내놨는데 오히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이 논문에 유전자 분포를 실어 놨는데 중국인이 아닌 북방인의 유전자로 나타났다고 한다. 서기전 5백년에 나타나는 유전자는 동호나 선비족 것이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역사의 시작이라고 하는 주나라 시기 이 지역 유전자를 살펴보면 모두 북방에서 온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동북시베리아 유전자와 같다. 중국 앙소문화도 마찬가지다. 결국 홍산 문화나 앙소문화는 바이칼에 모여 사는 부리야트인들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건설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조용진 전 서울교대 교수가 두상으로 보는 한국인 원형을 추적했다. 조 전 교수는 먼저 지금 통용되고 있는 투시원근법 그리기가 서양 중에서 프랑스, 독일, 영국, 덴마크 쪽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아주 작은 지역인데 여기서 나온 화법이 전 세계 화법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투시원근법은 우리에게는 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우리 화법은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려 넣는 아는 것을 그리는데 이 서양화법은 보이는 그대로 만 그린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의식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뇌구조를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보를 인지하는 뇌 각 부분이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같은 물건을 4개 놓고 어느 것이 커 보이는 가를 조사한 결과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다르게 선택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양은 보이는 그대로부터 시작하는 논리가 발달해 있고, 동양은 직관이 발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 전 교수에 의하면 2만5천년에서 1만년 사이에 우랄산맥과 알타이 산맥이 빙하로 덮여 버렸는데 이 때 동양과 서양의 형질적 차이가 커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조 전 교수는 우리민족 구성을 북방계와 남방계가 합쳐진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고인골古人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 전 교수가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발굴된 고인골을 복원해 보았는데 모두 동남아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충북 제천 고인돌에서 나온 인골은 북방계통의 두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신화분포를 가지고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했다. 알에서 나왔다는 난생신화는 동남아시아에서부터 북상하여 우리나라를 거쳐 만주일대까지로 나타난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신화는 우리나라에서 시작하여 몽골초원으로 뻗어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신화가 겹친다. 이를 통해서도 우리가 남방계 혈통과 북방계 혈통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조 전 교수는 이외에 얼굴형태와 눈 크기, 눈썹의 진한정도, 코 뼈대의 높이, 다리근육, 다리길이, 허리길이 정도를 가지고도 어디서 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 전 서울교육대학교 조용진 교수가 얼굴모양을 가지고 민족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조 전 교수는 10대부터 사람 두상에 관심을 두어 60년이상을 연구했다며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오종홍 기자』
(출처;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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