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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마도 4호선은 나주(영산포)에 거둬둔 전라도 세곡 및 특산물을 서울의 광흥창으로 옮기는 ‘조운선’이었습니다.이 조운선은 1403~1413년 이후 15세기 초 사이에 마도 해역에서 침몰했을 것입니다. ■ 조선시대 세금 운반선의 비밀 마도 1·2·3호선에 비해 조명받지 못한 마도 4호선에는 매우 중요한 코드가 숨겨져 있다.‘마도 4호선’은 마도 해역의 확장 조사 중에 확인된 ‘조선시대 조운선’이다. 선체 내부에서 분청사기 150여 점 확인됐다. 제작기법이나 문양 등으로 보아 15세기 초의 작품으로 판단됐다. 그 중에는 구체적인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 유물이 보였다. 우선 ‘내섬(內贍)’명 사기가 3점 눈에 띄었다.1403년(태종 3) 6월 29일 설치된 ‘내섬(시)’은 궁궐의 물품을 관리하는 호조 산..
고종황제는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고종실록》에 대한제국의 영토가 4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압록강, 두만강 넘어 만주 땅까지 우리 영토였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주재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윌리엄스 웰스(Williams S. Wells)가 1884년 뉴욕에서 발간한 중국지도는 당시 조선과 중국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보다 훨씬 북쪽에다가 붉은 선으로 표시했다.이처럼 간도를 조선 영토로 간주한 이 지도는 붉은 색으로 두텁게 칠한 국경선 일대를 중국과 한국의 중립지대(Neutral Territory between China and Corea)로 명기하기도 했다.(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1053..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에 다녀왔습니다. 창덕궁 전경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순종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되었고 1463..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은'조선시대의 서울'(상설전시 1존),'개항, 대한제국기의 서울'(상설전시 2존),'일제 강점기의 서울'(상설전시 3존),'대한민국 수도 서울'(상설전시 4존),'도시모형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서울'(상설전시 1존)은'조선의 건국과 수도 한양','한양의 변화','한양의 번영','한양도성 안 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조선전기 문신 김사형·이무·이회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포함하여 14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한국 천문학 최고의 자랑거리인 문화재로, 현재까지 발견된 천문도 중 관측연대 기준 세계..
국립고궁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은 3개의 층, 7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로 전시된 ‘조선의 국왕’실과 조선 5대 궁궐의 역사와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실이 있습니다. 2층 상설전시실은 임시휴관 중입니다.(재개관일시 : 2024. 11. 19.(화), 오후 2시) 1층에는 황제국의 선포와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살펴볼 수 있는 ‘대한제국’실이 있으며, 전시실 로비에서는 순종 황제와 황후가 타던 자동차 [어차]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즉위한 고종은 1875년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개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
2019년부터 진행한 광화문광장 조성 과정에서 조선시대 주요 관청의 흔적이 발굴됐습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로 일대까지 뻗어있었던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서울의 핵심거리로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를 비롯한 6조(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가 있었습니다. 삼군부(지금의 합동참모본부)의 외행랑, 배수로, 건물지의 터가 확인됐고요, 중추부의 건물자리, 사헌부(지금의 감사원, 검찰)와 병조의 문지, 행랑, 담장, 우물, 배수로 터, 형조와 공조의 배수로 터, 그리고 민가 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서 드러난 조선시대 육조거리.①지점에선 삼군부의 외행랑, 배수로, 건물지의 터가 확인됐다.②지점에서는 중추부의 건물 자리가,③지점에선 사헌부와 병조의 문지·행랑·담장·우물..
2003년 12월말 문화운동가 황평우씨가 종로구 청진동에서 건설사(르메이에르건설)가 주상복합건물 사업시행을 위해 낡은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있는 현장에서 건물 기초석인 장대석(長臺石·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은 돌)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문화재를 발견했다’고 신고하여, 한국건축문화연구소(명지대 부설)가 본격 발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울=연합뉴스) 서울 도심 종로 한복판인 '서울 종로 청진2-3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바닥을 드러낸 조선시대 시전행랑(아래쪽). 조사 결과 시전행랑 뒤 피맛길에서 청진동으로 통하는 쪽에서는 이문(里門)이라는 조선시대 문터가 드러나기도 했다. 오른쪽 사람의 왼쪽에 노출된 초석 4개가 이문의 흔적이다. 2010.6.20 > ..
임기환교수는 각저총(씨름무덤)의 축조 시기는 5세기 초반 혹은 중반으로 추정하고, 광개토대왕 · 장수왕 때로 고구려인들의 활달한 기운이 넘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역시 씨름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저총의 씨름그림 한 장면에는 고구려가 고조선 이래의 문화 전통 위에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전통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갖춘 문화를 향유하였던 모습이 담겨 있으며, 바로 이런 점이 오늘 우리가 고구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이라고 보았습니다. 임기환교수 [고구려사 명장면-33] 각저총 씨름도가 말하는 고구려의 전통과 개방성 『무용총과 마치 쌍둥이 무덤처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벽화고분이 각저총(씨름무덤)이다. 각저총의 축조시기는 5세기 초반 혹은 중반으로 추정되..
2012년 2월 22일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사직단'(社稷壇:사적 제121호)의 원형복원을 위해 우선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시설물에 대해 자체적인 정비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그 동안 서울특별시 종로구가 관리하던 사직단을 올해부터 문화재청이 이관 받아 현황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원형복원을 위해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올 2월 말부터 자체 직영사업단을 투입, 주원(周垣:유원 주변을 다시 둘러싸고 있는 담)권역 양식에 맞지 않는 수목과 가로등 제거, 동파된 전(塼)돌 교체, 안향청 번와 보수, 덧달아낸 후면 창고 철거 등의 정비사업을 우선 시행하게 된다. 아울러 신성시 돼 있는 유원(壝垣:사단 등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담)과 주원 권역 안의..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 배달국 3.1 2003년 10월 28일 신동아 2003년 11월호 〈동아시아 고대사의 열쇠 ‘치우천왕’ 논쟁 “치우를 잃으면 고조선 역사도 사라진다”〉 글: 박정학 치우학회 회장 ●‘붉은악마’와 함께 부활한 군신 치우는 역사인가 신화인가 ● 동아시아판 트로이 전쟁 ‘탁록대전’ ● 염·황·치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중국의 속내 ● 치우는 동아시아 공동의 조상이다 2002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치우의 모습으로 분장한 응원단 『중국이 지난해부터 5년에 걸쳐 200억위안(약 3조원)을 투입해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광명일보’는 아예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