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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이름과 달리 녹둔도는 섬이 아니라 서울의 6분의 1 크기에 이르는 거대한 저습지였다. 우리의 국운이 다하던 구한말 러시아에 편입된 이래 지금은 그 흔적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되었다. 녹둔도는 조선시대에는 변두리와 오랑캐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동시에 중국으로선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할 교두보이기도 하다. 이런 현대사적 의의 이전에도 한-러 국경지역은 선사시대 이래 유라시아와 한반도의 고대를 잇는 거점이기도 했다. ■ 이순신 장군의 신화가 시작된 환상의 섬 녹둔도[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2021. 4. 16. 03:01 한-러 국경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마을의 흔적. 러시아 학자들은 군사 요충지인 수류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만강 이북의 러시아 영토인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한 연해주지역에서 러시아 과학원 고고학자들은 연해주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고려·조선시기의 유적과 유물들이 최근 발굴됐다고 2017년 11월 17일 인하대에서 보고했다. 인하대 국제학술회의는 러시아 극동고고학계 권위자들은 발표를 통해 ‘피터 대체만 수역의 고려 및 조선시대 고고학 유적들’ 등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고려의 국경사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기존 통설에 대한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 인하대, "조선시대 연해주는 성웅 이순신의 군사작전지역" 한국 중세사 국경 연구 공개토론 제안국민일보 인천=정창교 기자 2017. 11. 19. 12:47 인하대(총장 최순자) 고조선연구소(소장 김연성) ‘조선사’ 연구팀은 러시아 과학원의 고고학자들을 초..

요하문명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한국방송 '역사스페셜'( 2009년 8월29일 방영)이 방송된 뒤에 많은 사람한테 전화를 받았다. 어떤 역사 교사가 전화를 해서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되느냐"고 묻더라. 아직 역사 교과서에는 단군이 신화로만 나오는데, 단군의 실체에 대해 학생들이 물어보고, "요하문명이 우리 문화와 연결돼 있는데, 왜 우린 그런 것을 배우지 않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교사들도 혼란스럽다고 한다. 이제까지 아무도 모르고 어떤 기록에도 없는 새로운 문명이 발견되었으니까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 [한민족 시원, 만주]동방 르네상스를 꿈꾸다 (1)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우실하 교수, 정리=박종찬 기자 수정 2019-10-19 20:29등록 ..
따라서 실제 고려 천리장성은 요하를 따라 길림성 장춘 서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축조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고구려 천리장성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 천리장성이 실은 고려 천리장성이었을 수도 있고 고구려 천리장성을 고려가 개축(改築)한 것일 수도 있다. [강동 6주를 찾아서 ⑥] 고려 천리장성은 어디에?고려 천리장성의 위치와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들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입력 2023.12.10 20:33수정 2023.12.11 08:31 사서의 기록을 통해 본지에서 밝힌 고려 강동 6주의 위치와 고려 천리장성을 표시한 지도.(지도 제작 :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고려 천리장성 우선 『고려사』에 기록된 천리장성의 기록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고려사』 권..

민족사학에서는 고유의 신선사상을 민족종교로, 만주를 민족사의 중심무대로, 민족사의 연원을 단군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된 고고학 성과로 인해 요서지역 청구문화(홍산문화)와 요동지역 천평문화를 두 중심으로 하는 배달국이 단군조선 선행문화임이 밝혀졌으므로, 고대사인 단군조선 역사는 물론 상고사인 배달국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는 선도사학을 민족사학의 ‘원형’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생명을 존중하고 조화・평화・공생을 속성으로 하는 선도적 세계관인 홍익주의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홍익사관’이라고 명명하였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1) 홍익사관은 共生의 역사관 K스피릿 입력 2022.04.25 10:19 업데이트 2022.05.23 10:36기자명 소대봉 민족..

우리 역사에서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독립국이 존재했던 남북국 시대가 있었다. 신라와 발해(669~926), 고려와 요(遼ㆍ916~1129), 고려와 금(金ㆍ1115~1234), 조선과 청(淸ㆍ1616~1912)이 병립한 시기가 남북국 시대였다. 우리 역사를 이렇게 인식하면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도 우리 역사 일부가 된다. 이는 필자가 처음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유득공(1748~1809) 선생이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하여 발해와 신라가 병립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로 규정했다. 김교헌(1868~1923), 박은식(1859~1925) 같은 선학들도 이미 주장한 내용이다. 이 두 분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유학 사대주의에서 찾았다. 유학 사대주의를 버리니 비로소 동이족 여러 나..

이렇게 해서 ‘세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청 시조 포고리옹순은 조선 태조 이성계 시절 회령 지방의 여진 통치자 ‘동(童)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라는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포고리옹순은 설화 속 영웅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인 것이다. 신화는 처음부터 신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기록이다. 결국 청 황실의 시조 포고리옹순, 달리 맹가첩목아는 고려 중기부터 속속 고려에 귀부하여 고려 백성으로 살던 여진 부락에서 첨이(僉伊) 벼슬을 한 보가(甫哥)의 딸 야오거(也吾巨)라는 여인을 어머니로 하고, 이 야오거의 첫 남편인 두만(豆萬) 벼슬을 한 동휘후(童揮厚)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다. 포고리옹순의 후손인 청 황가가 지은 역사책 는 청 황실은 ‘대금부족(大金部..
오랑캐. ‘여진’은 때로는 복속하고 때로는 침탈하며 조선의 변방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이들은 조선을 제압하고 나아가 대륙의 주인이 됐다. 바로 청나라다. 그런데 이 청나라의 시조설화 ‘백두산의 세 선녀’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흡사하다. 같은 전래 설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과 여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암시하는 우리 역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새연재 | ‘異論’의 역사] ‘나무꾼과 선녀’ 설화에 얽힌 비밀 청(淸) 왕조 세운 여진족과 우리 민족의 관계를 밝히는 열쇠 전원철 미국변호사, 법학박사월간중앙 입력 2016.12.29 15:41 수정 2017.01.05 15:52 호수 201701 포고리 옹순(布庫哩雍順)을 손가마에 태우고 가는 삼성인(三姓人)들. 에 실린 삽화..

북한 함경북도와 간도 두만강연안에서 조선민족들가운데서 만주와 관련된 고기와 형태의 전설이 가장 많다. 고고학자료에 따르면 청조의 누르하지부족의 발상지는 북한함경북도의 3진과 간도지역으로 이씨조선왕실의 조상과 누르하지의 조상은 매우 밀접한 혈육관계가 있다고한다. 그러나 조선전설은 중화(대중국)사상으로 여진(麗地고려-고구려-부여의 준말여땅의 발음그대로 부른것의 변화라한다.)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분열임을 알수 있다. ■ "여진은 조선을 대함에 있어 '타민족'이 아닌 동일 민족으로 보았다"김관웅박사(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1) 여진과 두만강연안 및 조선왕실과의 조상혈통 처음에 여진은 당조시기 예맥(貊貉-黑水靺鞨이라고도 하는데 濊貊의 한갈래)에서 발전하여 나온것이며 발해가 거란에 망하면서..

황금항아리 세 아들의 지파들 가운데 맏지파 ‘콩그라트’ 종족은 압록강 건너 오늘날의 갈소관으로 피신했습니다. 둘째 지파 ‘예키라스’ 종족은 원래의 길주보다는 좀 더 북쪽으로 잠시 옮겼지만, 그래도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함경북도의 두만강 강기슭 지구에 남았습니다. 결국 막내 지파로 칭기스 칸의 직계선조 지파인 ‘코를라스’ 지파는 카이도와 그의 종숙부 나친 때 속말강과 서북의 흑룡강을 따라 오늘날 부랴티아를 거쳐 몽골리아로 불리는 땅으로 떠나 간 것입니다.” 전 박사는 결국 “또 다시 전쟁에 지고 밀려서 그들은 이 땅을 떠나, 오늘날 몽골과 투르크 종족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방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라며 “그러나 그로부터 6세대 후에 그들은 결국 세계사의 주역을 맡는 세계정복자 징기스칸을 탄생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