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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가야와 관련한 고분군이 780여 곳에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연합뉴스, 김예나기자, 사진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2023.9.17 백제와 가야의 흔적이 모두 묻어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와 아영면 두락리 일원에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2호로 지정했다.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 전경/사진제공=문화재청 호남 지역 ..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는 창녕군의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 포함됐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5~6세기 가야연맹의 하나였던 창녕지역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발굴 초기 신라 유적이냐 가야 유적이냐 논란이 있었지만, 무덤 전체 형태와 부장품을 통해 신라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분군은 창녕분지의 배후 산지에서 서쪽 평야를 향해 뻗은 구릉지에 조성됐다. 모두 115기의 봉토분이 분포하며, 봉토분이 분포하지 않는 지대에도 지하에 많은 수의 고분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군 창녕읍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전경 /창녕군 ◇순장 소녀 '송현이'로 상징 = 또 다른 특징도 있다. 5세기에 축조된 고분은 구릉지 능선을 따라 위치하고, 조금 늦게 6세기에 축조된 고분이 구릉지..
20~30m 내외 높은 봉분 27기 모여, 전체 고분 숫자 1000여기 추정 일본보다 빠른 말머리가리개 6점, 임나일본부설 극복 강력한 근거 금동장식 투구·금동제허리띠 등, 여러 나라 교류 유물 다수 발견 합천 옥전고분군. 하지만 특이하게 언덕의 한쪽 지역에는 지름 20~30m 내외의 높은 봉분을 가진 무덤이 27기가 모여 있으며 전체 고분의 숫자는 약 1000여기로 추정하고 있다. 옥전고분군은 언덕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묘역을 넓혀가면서 축조되었다. 무덤 형태는 일반적인 덧널무덤과 덧널의 바깥쪽에 돌로 보강한 이 지역의 독특한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하다. 보물 제2043호,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화려한 장신구로는 귀걸이와 목걸이, ..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5세기부터 가야 연맹의 유력한 해상 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고성읍 무기산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위치한 고성 송학동고분군./고성군/ 송학동고분군은 소가야의 중심 고분군으로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1호 무덤은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이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
함안박물관을 시작점으로 하면 드라마 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 나홀로 나무(벚나무)가 7, 8호분 사이에 보인다. 말이산고분군은 해발 40~70m의 구릉 능선에 남북으로 2km 규모로 자리한다. '언덕을 오르는가. 산을 오르는가. 무덤을 오르는가.' 삶과 죽음이 하나의 계단을 오르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말이산고분군은 말하고 있다. 말이산고분군의 주능선, 4호분을 따라 완만한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다 '가야'는 기원 전후로 형성되어 6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연맹 왕국이다. 함안의 아라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고성의 소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상주의 고령가야로 구분해 6가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가야는 땅이 비옥해 농업이 발전했으며, 철 기술 또한 뛰어났다. 그러나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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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금관은 높이 11.5㎝, 밑지름 20.7㎝로 머리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 4개의 풀꽃 장식이 꽂혀 있습니다. 띠에는 아래위에 점을 찍었으며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했습니다. 드문드문 굽은 옥이 달려 있지만 출토된 이후에 부착한 것입니다. 원형, 은행형, 꽃형, 곡옥, 금고리, 금제 드리개(수식) 등 부속 금제품도 함께 보관 중인데 금관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양으로 붙어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국보의 자취-30] 1963년 대구 현풍읍 유가면의 속칭 '8장군묘'를 불법으로 파헤친 도굴꾼 일당이 경찰에 의해 일망타진된다. '현풍도굴사건'으로 알려진 희대의 도굴사건이다. 대구의 유명 골동상 3명이 주도한 전문적·조직적 도굴이었다. 범인들은 고분 유물 400여 점을 2년 동안이나 들키지 않고 곶..
금관가야 대표고분…가야 성립·전개 연구에 절대적 가치중국∼가야∼일본 동아시아 국제교역 입증 유물 가득 하늘에서 본 김해 대성동고분군 전경[경남 김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대성동고분군은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자리 잡고 있다.고분이 위치한 곳은 시민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주택과 아파트 등이 코앞이다.고분 명칭도 지역 명칭을 땄다.대성동고분군은 1∼5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대성동 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과 봉황동유적 사이의 표고 22.6m의 왜(애)꼬지(애구지: 애기 구지봉)라 불리는 구릉과 구릉의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애구지 구릉은 길이 약 280m, 너비 약 50m에 이르며 북쪽에서 남동쪽로 완만하게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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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송현동 고분군 15호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2007년 12월 22일 개최한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은 올해 조사된 유적 중에서도 대형급 무덤에 속하는 15호분 구조가 횡구식(橫口式) 석실분(石室墳)인지, 아니면 수혈식(竪穴式) 석실분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 제15호 석실분 내부(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 벽에 순장자와 각종 부장품을 넣었다. 이 석실은 맞배지붕 모양을 본떴다. 창녕/연합뉴스 석실분이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돌로 쌓아 만든 무덤을 말한다. 석실 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석실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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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과 경상남도는 삼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24년 5월부터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의 매장주체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가야 왕릉 밀집 지역인 고성박물관 쪽 고분군과 직선거리로 700m가량 떨어져 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이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가야 고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철기 유물과 토기 400여점이 발굴됐습니다. 철기 유물은 갑옷 한벌과 투구, 대도(긴칼) 4점, 농경시대 우두머리의 상징물인 살포 1점, 꺾쇠, 화살촉, 창날 등으로 가야는 물론 왜·백제 유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토기는 전형적인 소가야 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왜계 원통형 토기도 나왔습니다. 박천수 경북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에 발굴한 매장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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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6일 오전. 함안 성산산성을 한창 발굴 중이던 박종익 당시 학예연구사(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가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일간지 지국장으로부터 자신이 데리고 있는 배달소년이 인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암만 봐도 문화재 같은” ‘요상한’ 물건을 주워 왔다는 사학과 출신 지국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박종익은 꽃삽을 내려놓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주워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넣은 쇳조각을 본 순간 그는 ‘말 갑옷(馬甲·마갑)’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조영제 경상대 교수와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을 발굴할 당시 비슷하게 생긴 말 갑옷 조각을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이 발견한 조각은 황갈색 녹이 두껍게 낀 상태였고, 말에 두른 갑옷답게 길이는 10cm가 넘었다." ■ 함안 말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