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여러나라시대/가야(가라) (13)
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 창녕 송현동 고분군 15호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2007년 12월 22일 개최한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은 올해 조사된 유적 중에서도 대형급 무덤에 속하는 15호분 구조가 횡구식(橫口式) 석실분(石室墳)인지, 아니면 수혈식(竪穴式) 석실분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 제15호 석실분 내부(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 벽에 순장자와 각종 부장품을 넣었다. 이 석실은 맞배지붕 모양을 본떴다. 창녕/연합뉴스 석실분이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돌로 쌓아 만든 무덤을 말한다. 석실 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석실분을 ..
2019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은 1587년 편찬된 함주지(咸州誌)에 옛 나라에 터가 있던 곳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여겨져 왔습니다. “백사리 북쪽에 옛 나라의 유허(遺墟)가 있는데 주위 둘레가 1606척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가야국의 도읍이라 한다.” 1587년 편찬된 조선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경남 함안군 가야리 일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곳에는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일제강점기 이래 각종 조사에서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한국 고대사의 한 주역으로 꼽히는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됐습니다. 2018년 사..
고령군이 2024년 6월 18일 대가야 궁성지 발굴과 정비사업 일환으로 추진 중인 ‘추정 대가야궁성지 I-1구역 정밀발굴조사’에서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궁성의 북벽부 토성벽 일부와 해자 등 궁성의 존재와 범위를 알려주는 방어(放語) 관련 시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고령군은 2017년 대가야읍 연조리 594-4번지에서 토성과 해자로 추정되는 시설을 발굴한 이후, 2019년 '대가야 궁성지 발굴 ․ 정비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해 대가야 궁성과 관련된 발굴조사를 수차례 진행했다. 그러나 아싑게도 통일신라시대 토축시설만 확인돼 대가야 궁성과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고령군은 2024년 3월부터 대가야읍 연조리 555-1번지 일원에 대한 ‘추정 대가야궁성지 I-1구역 정밀발굴조사’..
신용하교수는 5세기 초 일본열도를 정복한 기마민족의 주체 이름을 가라(加羅), 특히 금관가라(金官加羅) 기마부대와 그 연합 세력이라고 특정해 설명하였습니다. 『AD 399년에 백제 아신왕은 신라를 병합하고자 백제·금관가야·왜의 동맹을 맺어 3국 연합군을 편성했다. AD 399년에 왜는 기병이 없이 모두 보병이었다. 백제·금관가야·왜의 연합군은 신라군을 격파해 400년에 신라 수도 경주를 점령했다. 그러나 신라 왕이 고구려에 구원을 청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5만 명의 동아시아 최강의 기병 부대를 남하시켜서 백제의 3국 연합군을 참패시켰다. 백제 4만 명의 보병은 대부분 전사하고 포로가 8000명이었다니 그 참패를 추정할 수 있다. 금관가라의 기병부대와 왜 보병도 참패해, 금관가라의 수도 김해까지 점..
국가유산청과 경상남도는 삼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24년 5월부터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의 매장주체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가야 왕릉 밀집 지역인 고성박물관 쪽 고분군과 직선거리로 700m가량 떨어져 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이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가야 고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철기 유물과 토기 400여점이 발굴됐습니다. 철기 유물은 갑옷 한벌과 투구, 대도(긴칼) 4점, 농경시대 우두머리의 상징물인 살포 1점, 꺾쇠, 화살촉, 창날 등으로 가야는 물론 왜·백제 유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토기는 전형적인 소가야 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왜계 원통형 토기도 나왔습니다. 박천수 경북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에 발굴한 매장주체..
1992년 6월 6일 오전. 함안 성산산성을 한창 발굴 중이던 박종익 당시 학예연구사(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가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일간지 지국장으로부터 자신이 데리고 있는 배달소년이 인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암만 봐도 문화재 같은” ‘요상한’ 물건을 주워 왔다는 사학과 출신 지국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박종익은 꽃삽을 내려놓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주워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넣은 쇳조각을 본 순간 그는 ‘말 갑옷(馬甲·마갑)’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조영제 경상대 교수와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을 발굴할 당시 비슷하게 생긴 말 갑옷 조각을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이 발견한 조각은 황갈색 녹이 두껍게 낀 상태였고, 말에 두른 갑옷답게 길이는 10cm가 넘었다." ■ 함안 말이산..
가야고분군은 2023년 9월 17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고분군은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 7개입니다. 한국의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옥전고분군, 지산동고분군,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사진출처-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신청유산은 지리적 분포, 입지, 묘제, 부장품을 통해 다수의 개별..
■ 1977년 고령 지산동 고분군 - 44호분, 45호분 발굴 1977년 11월 고령 지산동 고분 44호분과 45호분 발굴을 경북대와 계명대가 각각 맡았다.함께 답사에 나선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66·고고학)는 “44호분 옆 공터에 베니어판으로 지은 가건물을 짓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발굴을 했다”며 “1977년 겨울은 유독 추웠다”고 회고했다. 발굴한 지 39년 만에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앞에 선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 그의 등 뒤로 산 능선을 따라 대가야 고분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 산에는 고분 70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한반도 최다(最多) 순장묘 발굴 1977년 11월 시작된 44호분과 45호분 발굴은..
■ 김해 대성동 고분 “예전부터 ‘애꾸지’ 아이가.”1989년 7월 경남 김해시 대성동. 온통 밭이던 야트막한 구릉 일대를 조사한 신경철 당시 경성대 교수(65·현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가 동네 토박이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애꾸지가 혹 ‘애기 구지봉’을 줄여 사투리로 부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구지봉은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의 탄생지. ‘그렇다면 애기 구지봉은 그의 후손인 역대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신경철 부산대 교수가 21일 경남 김해시 대성동 29호 고분을 복원한 노출전시관에서 발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해=서영수 기자 kuki@donga.com“할배, 여기 옛날 이름이 뭡니까?” 이곳은 반경 500m 안에..
지금까지 가야의 건국 연대, 건국 초의 사회수준, 건국 뒤의 성장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야에 관한 기본사료인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삼국사기》 김유신전에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이 연대를 믿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신라 · 백제 · 고구려의 건국과 한韓의 쇠퇴라는 당시 주변의 정치 상황을 살펴볼 때 서기 42년에 가야가 독립국으로 출범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기 42년은 기본사료에 나타난 가야의 건국 연대이므로 이를 부인할 분명한 근거가 없는 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야는 그 지역 토착인들이 건국하였는데 그들은 가야를 건국하기 훨씬 전부터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