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4. 가야 문화유산 (1) 세계문화유산 : 김해 대성동고분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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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대표고분…가야 성립·전개 연구에 절대적 가치
중국∼가야∼일본 동아시아 국제교역 입증 유물 가득
[경남 김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대성동고분군은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자리 잡고 있다.
고분이 위치한 곳은 시민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주택과 아파트 등이 코앞이다.
고분 명칭도 지역 명칭을 땄다.
대성동고분군은 1∼5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대성동 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과 봉황동유적 사이의 표고 22.6m의 왜(애)꼬지(애구지: 애기 구지봉)라 불리는 구릉과 구릉의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애구지 구릉은 길이 약 280m, 너비 약 50m에 이르며 북쪽에서 남동쪽로 완만하게 뻗은 독립 구릉이다.
유적의 동쪽에는 김수로왕릉이 인접해 있고 서쪽에는 해반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고분군 발굴조사는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모두 4차례의 발굴이 이뤄졌고 이후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2009년부터 2020년까지 6차례의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모두 10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대성동고분군은 전기 가야의 중심 고분군으로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 사회 구조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층의 묘역이 별도로 조성됐음이 밝혀져 금관가야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해석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무덤은 지석묘, 옹관묘,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수혈식석곽묘 등 여러 종류가 확인됐다.
목관묘는 주로 구릉 주변의 낮은 곳과 평지에 조성됐다. 목곽묘, 수혈식 석곽묘와 같은 대형 무덤은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 자리 잡았다.
고분군이 형성될 당시엔 남쪽이 바다였으나 점차 퇴적물이 쌓이고 20세기 들어 여러 차례 매립공사가 이뤄지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 도시 건설을 위한 넓은 대지가 조성됐다.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을 찾아 김해시 칠산동고분군을 발굴했던 경성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990년 6월 대성동고분군 학술발굴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중요성이 인정돼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주변 일대가 유적공원으로 정비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금관가야의 최상위 지배층 고분군인 대성동고분군은 김해분지 내 있으며 1세기부터 5세기 후반까지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됐다.
초기에는 구릉지 주변 평지에 목관묘가 축조되고 2세기 후반부터 구릉지 상부로 목곽묘가 확장해 간다.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 구릉 등선 매장부의 공간이 넓은 대형 목곽묘가 축조되고 중·소형 목곽묘는 대형 목곽묘의 주위와 구릉지 사면부에 축조됐다.
구릉지 남쪽 끝과 수릉원에서 금관가야 멸망 직전까지 석곽묘가 조사됐다.
문헌에도 금관가야는 532년에 멸망했고 이후 김해지역은 신라에 복속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형 목곽묘와 석곽묘에 부장된 가야토기는 고배·기대·장경호로 구성되며 가야연맹의 공통적 장례풍습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특히 중국에서 수입한 청동거울과 용무늬 허리띠,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솥, 일본에서 수입한 청동제 의기 등의 교역품은 대성동고분군을 조성했던 정치체가 중국∼가야∼일본열도로 이어진 동아시아 국제교역 체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해시는 이번 대성동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다양한 후속 사업을 한다.
우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통합관리기구 유치와 대성동고분군 세계유산방문자센터 건립, 세계유산 표지석 설치로 대성동고분군의 가치를 더 높인다.
또 내년에 열리는 전국체전을 비롯해 2024 동아시아 문화도시, 김해방문의 해 등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김해시 브랜드를 국내외 방문객에서 널리 홍보할 계획이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된 김해를 비롯한 경남, 경북, 전북 등 관련 지자체의 브랜드 가치 상승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1)
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도심 속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해 대성동고분군 가볼까, 2023-09-28
가야를 흔히 ‘철의 왕국’으로 알로 있지만 실은 ‘유리의 왕국’이기도 합니다. 문화재청은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20년 9월 7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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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인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삼국지> ‘위서·동이전’)
가야를 흔히 ‘철의 왕국’으로 알로 있지만 실은 ‘유리의 왕국’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20년 9월 7일 밝혔다.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만 알려진 가야가 다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났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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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도 완전해서 보물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동안의 발굴결과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 곡옥이나 둥근 옥을 만들어 목걸이로 착용했다.
구슬의 재질도 금, 은, 유리, 금박 입힌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등으로 다양했다. 형태도 판옥(板屋·편평하게 가공한 옥제품), 곡옥, 대롱옥(대롱처럼 기다란 형태의 옥제품), 다면옥(多面玉, 여러 면을 깎은 옥제품) 등 다채롭다.
보물로 지정예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2011년 발굴조사 중 목곽묘에서 발견됐다. 6가야 중 하나인 금관가야는 서기 전후~532년까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존속한 전기 가야연명채의 맹주국으로 알려져왔다.
가락국이라고도 했다. 목걸이가 출토된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은 3~5세기 무렵 금관가야 시대 수장층(首長層)의 공동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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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되었다.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수정 같은 석영광물, 말의 뇌수 즉 머릿골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다.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었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이 목걸이는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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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목걸이인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 박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에서 발굴됐다. 양동리 고분 270호는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고배(高杯· 높다리 그릇)를 비롯해 토기류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고분으로 꼽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됐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다.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그동안에는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水晶)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梁山) 등 국내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다.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드물다. 가공 기법 또한 요즘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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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 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나라 시대 청동 세발 솥(靑銅鼎·청동정)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됐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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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됐고,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다. 또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또한 금과 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작품이다.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1700년 전 가야인이 찬 영롱한 유리 목걸이..'철의 왕국' 아닌 '유리의 왕국'이었다, 2020. 9. 7.
금관가야 왕급 무덤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 글라스'가 출토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해시는 4세기 전반(서기 340년 전후)에 조성된 대성동91호분에서 약 5㎝ 길이의 유리병 손잡이가 출토됐다고 2013년 3월 8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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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연합뉴스) 금관가야 왕급 무덤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 글라스'. 4세기 전반(서기 340년 전후)에 조성된 대성동91호분에서 출토된 약 5㎝ 길이의 유리병 손잡이.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만 글라스는 5세기 전반 경주 월성로 가13호분에서 출토된 것이었다. 2013.3.8 <<지방기사참고>>
choi21@yna.co.kr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만 글라스는 5세기 전반 경주 월성로 가13호분에서 출토된 것이었다.
대성동91호고분에서 나온 로만 글라스는 이보다 70년가량 앞선 것이라고 김해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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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연합뉴스) 금관가야 왕급 무덤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 글라스'. 4세기 전반(서기 340년 전후)에 조성된 대성동91호분에서 출토된 약 5㎝ 길이의 유리병 손잡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만 글라스는 5세기 전반 경주 월성로 가13호분에서 출토된 것이었다. 2013.3.8 <<지방기사참고>>
choi21@yna.co.kr
대성동91호분은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6월 4일부터 9월 26일까지 벌인 대성동고분군 7차 학술발굴조사에서 왕급 무덤으로 확인된 바 있다.
박물관 측은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이 유리 조각의 성분을 국립김해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 분석했다. 그 결과 유리조각의 화학 조성이 로만 글라스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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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연합뉴스) 금관가야 왕급 무덤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 글라스'의 유리병 손잡이 부분(원으로 표시). 4세기 전반(서기 340년 전후)에 조성된 대성동91호분에서 출토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만 글라스는 5세기 전반 경주 월성로 가13호분에서 출토된 것이었다. 2013.3.8 <<지방기사참고>>
choi21@yna.co.kr
박물관 발굴팀은 로만 글라스가 금동제 유물들과 함께 중국의 전연(前燕)을 거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해시 문화재과 심재용 학예사는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로만 글라스로 확인됨에 따라 금관가야의 국력과 국제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2)
연합뉴스, 최병길기자, 금관가야 왕급무덤서 국내 最古 '로만 글라스' 출토, 2013-03-08
![](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challenge/large/005.png)
<자료출처>
(1) 도심 속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해 대성동고분군 가볼까 | 연합뉴스 (yna.co.kr)2023-09-28
(2) 1700년 전 가야인이 찬 영롱한 유리 목걸이..'철의 왕국' 아닌 '유리의 왕국'이었다 (daum.net) 경향신문2020. 9. 7.
(3) 금관가야 왕급무덤서 국내 最古 '로만 글라스' 출토 | 연합뉴스 (yna.co.kr) 2013-03-08
<참고자료>
가야고분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국가문화유산포털 | 한국의 세계유산 (heritage.go.kr)
https://www.gimhae.go.kr/ds.web
능선 따라 빼곡히 들어선 가야의 무덤…"역사·문화의 타임캡슐" | 연합뉴스 (yna.co.kr)20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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