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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6가라의 멸망 김수로 6형제가 신가라(지금의 김해), 밈라가라(지금의 고령), 안라가라(지금의 함안), 구지가라(지금의 고성), 별뫼가라(지금의 성주), 고령가라(지금의 함창)1)를 각각 통치했다는 점과, 임라·안라 두 가라가 4국 동맹에 참가해서 백제를 돕고 고구려를 막았다는 점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및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에서 서술했다. 신라의 지증·법흥·진흥 세 대왕은 지속적으로 6가라를 잠식했다. 그러다가 진흥 때 6국이 모두 신라의 소유가 됐다. 이로써 지금의 경상 좌우도가 완전히 하나가 됐다. 이제 6가라 흥망의 역사를 약술하고자 한다. 신가라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서 금관국으로 표기된 나라다. 시조인 수로 때는 신라보다 강성했다. 신라 파..
고구려에 맞선 신라·백제·임나가라·아라가라 4국 동맹 장수태왕이 신위례성을 침입하자, 근개루의 태자인 문주는 신라에 가서 급난을 알렸다. 신라는 꼭 동맹의 의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출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비마립간이 병력 1만을 보냈지만, 근개루왕은 이미 죽고 신위례성도 파괴된 뒤였다. 문주왕은 수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물러나와 웅진에 도읍을 정했다. 웅진은 광개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고모나라(古模那羅)다. 웅진과 고모나라는 똑같이 곰나루로 읽어야 한다. 전자는 뜻에 근거한 이두문자이고 후자는 음에 근거한 이두문자다. 지금의 공주가 당시의 곰나루다. 당시 한강 이남에는 신라·백제 외에 가라 등 6개국이 있어, 이들이 지금의 경상남도를 차지했다는 점은 제3편 삼조선 분립시..
가라 6국의 건설 지금의 경상남도 일원에 변진(弁辰)의 열두 자치국이 세워졌다는 점은 제3편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에서 설명했다. 이들 자치국은 흔히 가라로 불렸다. 가라는 ‘큰 못’이란 뜻이다. 자치국들이 둑으로 물을 막고 큰 연못을 만든 뒤 그 부근에 자치부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가라는 이두로 가라(加羅)·가락(駕洛)·가야(加耶)·구야(狗耶)·가야(伽倻) 등으로 표기됐다. 야(耶)·야(邪)·야(倻) 등은 고어에서 ‘라’라 발음됐다. 가라는 관국(官國)으로도 표기됐는데, ‘관’에서 초성 ‘ㄱ’과 더불어 중성 ‘ㅘ’의 ‘ㅏ’을 떼어 ‘가’로 읽고, ‘국’의 뜻인 ‘나라’에서 한쪽을 떼어내어 ‘라’로 읽은 것이다. 서기 42년 무렵에, 아홉 가라의 지도자인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