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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 시조온조왕조에 백제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3년(B.C. 6)〕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요사이 요망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께서 돌아가셨다. 형세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으니, 장차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의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오래도록 편안한 계책을 도모해야 하겠다.』 (한국고대사료DB,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23r_0020_01..
한반도의 독자적 역사가 서기까지... 한반도 역사지리의 뿌리를 읽다 (daum.net)2024. 1. 14. [김성호의 독서만세 213] 박인호 지음 [김성호 기자]한때는 역사란 그저 외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의 하나쯤으로 여겼을 때였다. 그 시절 역사는 간명했다. 책에 쓰인 옛 이야기였고, 그 책이란 교과서였다. 교과서는 언제나 명확했다.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를 거쳐 여러 나라가 일어서고 쇠망했다. 그로부터 반도체를 팔아 지구 반대편에서 에너지를 사오고 K-Pop 스타를 배출해내는 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편 끝자락에서 고조선부터 삼한, 삼국시대가 이어졌고, 고려와 조선, 나아가 오늘에 이르는 역동적인 이야..
리지린 이상에서 렬거한 우리나라 청동기 유물들의 대표적인 것들은 중국의 청동기 문화와 거진 련계가 없으며, 모두가 소위 《북방계》문화와 관련되여 있다. 오늘 우리나라 령역 내에서 중국 청동기가 전파된 것도 매우 적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도 매우 적다. ......둘째로 고대 조선족의 많은 부분이 압록강 이북에서(료동, 료서, 열하, 내몽고의 일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경과하고 철기 시대로 이행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한 종족들이 진국보다 문화가 선진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문화가 남하하여 압록강 이남으로 전파되였다. 이 청동기 문화는 고조선인과 맥국인이 창조한 문화이였다.필자는 고대 조선족의 청동기 문화의 기원은 료동, 료서, 열하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패수는 어디인가? 신채호 조선상고사불조선과 진나라·한나라의 관계연나라왕 희희(姬喜)는 진시황제에게 패해 요동으로 천도했다. 불조선은 이전부터 연나라를 증오했기 때문에, 진나라와 동맹하여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얼마 후 진시황제는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고 요동에 접근했다. 이로써 불조선과 진나라가 국경을 정하게 됐다. 양국은 오늘날의 헌우락(패수_옮긴이) 이남 수백 리를 중립지대로 정하고 양국 인민의 주거를 금지했다. 《사기》에서 말하는 진고공지(秦故空地, 진나라 때의 옛 공터라는 의미_옮긴이)는 이것을 가리킨다.《위략》에서는 당시 불조선왕의 이름이 부(否)라고 했다. 그러나 《위략》처럼, 관구검이 실어간 고구려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쓴 《삼국지》 및 《후한서》의 〈동이 열전〉에는 ‘부’가 기록되지 ..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통사 1.1 신채호저 《조선상고사》 〈조선 민족의 구별〉 『고대 동아시아 종족은 우랄 어족과 중국 어족의 두 파로 나뉘었다. 한족·묘족·요족 등은 후자에, 조선 민족·흉노족 등은 전자에 속한다. 조선 민족이 분화하여 조선·선비·여진·몽골·퉁구스 등이 되고, 흉노족이 분화하여 돌궐(신강족)·헝가리·터키·핀란드 등이 되었다. 오늘날 몽골·만주·터키·조선 네 개 민족 간에는 유사한 어휘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것은 몽골제국시대에 상호작용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고대사를 보면, 조선과 흉노의 인명·지명·관직명이 동일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들이 상고시대에 동일한 어족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1. 환경력사학과 고고학 2019년 4월 5일자 한국경제 〈'뜨거웠다, 차가웠다' 반복하는 지구…5000년 前에는 지금보다 더 더웠다〉라는 기사에서 90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가 홀로세기후최적기로 지금보다 더 따뜻했다고 한다. 『2100년엔 서울에 야자수 나무?자연적 기온상승에 산업화 겹쳐2100년 평균 3~5℃ 상승 전망도 2100년 대한민국은 아열대 국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야자수가 자라고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한반도의 최남단인 제주도는 동남아시아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금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지구 온도 5000년 전 수준 도달하나1700년께 소빙기가 ..
정인보 즉 장성이 끝나는 지점이 바로 요동인 셈이다. 장성은 그 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시대에 따라 이름이 변경되기 일쑤인 강이나 산에 비하면 확실한 기준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시황본기〉 〈몽염전〉 〈흉노전〉 등에서 모두 장성이 요동에서 끝난다고 적고 있는데 거기에 언급된 장성이 끝나는 지점은 지금의 산해관이므로 이곳이 바로 고대의 요동이었음이 확실하다. 만약 이곳이 '요'의 '동'쪽이라면 장성은 요수를 가로질러 흘러야 할 것이다. 《통전(通典》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갈석산은 한대의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데 진나라의 장성이 요수를 동쪽으로 가로질러 여기에서 시작되며【또는 그치며】 그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기록이 옳다면 장성이 갈석산【진황도(秦皇島) 바..
신채호 조선상고사불조선의 서북 변경 상실불조선이 신조선과 연합했다가 연나라에 패했다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이때 상실한 영토가 얼마나 되는지 이제 설명하고자 한다. 《위략》에서는 “진개가 그 서쪽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땅을 빼앗으니, 만반한을 경계로 삼았다”고 했다. 옛날 학자들은 조선과 연나라의 원래 국경이 지금의 산해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개가 탈취한 2천여 리가 산해관 동쪽으로 2천여 리였다고 판단하고, 만반한을 대동강 이남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착오에 근거한 억측이다.《사기》나 《위략》을 보면 진개가 탈취한 영토는 분명히 상곡(북경 서북쪽 근처_옮긴이)부터 요동까지였다. 그러므로 만반한을 요동 밖에서 찾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요동군에 문(汶)..
한국사학사 - Daum 백과 목차개요고대사학중세사학근대사학현대사학개요한국사학사는 크게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즉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시대구분이 아직 정설화되지 않았으므로 여러 견해가 있지만, 역사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시대구분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고대사학은 역사서가 정식으로 편찬된 삼국 초기로부터 10세기초 신라의 멸망까지, 중세사학은 고려왕조와 16세기말의 조선왕조 중엽까지, 근대사학은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현대사학은 1945년 민족해방 이후의 역사학으로 구분한다. 고대사학 우리나라에서 역사학의 시작은 한자(漢字)가 전래되어 역사를 기록한 때부터이다.한자는 BC 2세기말 한군현을 통해 전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기록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