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1. 환경력사학과 고고학 본문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1. 환경력사학과 고고학
대야발 2024. 2. 8. 16:55《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1. 환경력사학과 고고학
2019년 4월 5일자 한국경제 〈'뜨거웠다, 차가웠다' 반복하는 지구…5000년 前에는 지금보다 더 더웠다〉라는 기사에서 90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가 홀로세기후최적기로 지금보다 더 따뜻했다고 한다.
『2100년엔 서울에 야자수 나무?
자연적 기온상승에 산업화 겹쳐
2100년 평균 3~5℃ 상승 전망도
2100년 대한민국은 아열대 국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야자수가 자라고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한반도의 최남단인 제주도는 동남아시아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금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지구 온도 5000년 전 수준 도달하나
1700년께 소빙기가 끝나면서 지구의 온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190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인 현대 온난기에 진입했다. 온도가 오르는 구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까지 늘면서 온도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2100년이 되면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3~5도가량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산화탄소는 지표면이 머금고 있는 열에너지가 우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지구 온난화 원인 중 60% 정도를 차지한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원리가 온실과 비슷해 ‘온실효과’란 용어가 생겼다. 메탄과 수증기도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온실 기체로 꼽힌다.
온난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평균기온 14.96도)이다. 2위는 2015년(14.88도), 3위는 2017년(14.84도)이며 4위가 지난해(14.7도)였다. 최근 4년이 1~4위를 모두 차지했다.
한반도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의 최근 30년 기온은 1912~1941년보다 1.4도 높아졌다. 20세기 초와 비교해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하지만 최근 100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시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9000~5000년 전 지금보다 기온이 2~3도가량 높은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존재했다.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 최적기는 약 7600~48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과학계는 이 시기가 2100년 이후의 기후와 상당히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분석해 미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잇따르는 이유다.
그다음에 찾아온 ‘중세 온난기’는 1300~900년 전이다. 평균기온은 9.5~10도 수준으로 지금보다 다소 낮지만, 해당 시기 전후 한랭기 때보다는 기후가 높았다. 중세 온난기의 원인으론 태양 활동의 강화, 화산 활동 감소, 해류의 변화 등이 꼽힌다.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400년 전 소빙기 재출현에 관심
지구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꾸준히 온난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보는 학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 기후에는 일종의 주기가 있기 때문에 급격히 온도가 올라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소빙기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최근의 소빙기는 400~300년 전이다. 당시 평균기온은 8~8.5도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한반도 기온보다 평균 5도 정도 낮았다. 소빙기의 근거는 극지방에 있는 빙하 높이다. 알래스카나 아이슬란드에서 측정한 빙하의 높이는 1560년, 1750년, 1850년 무렵 최고에 달했다고 기록돼 있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이유 중 하나로 ‘강추위’가 꼽히는 것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한파가 들이닥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소빙기의 원인 역시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 지구가 따뜻해져 빙하가 녹으면 극지방과 중위도 지방의 기온차가 작아진다. 이렇게 되면 찬 공기를 가둬놓는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이를 틈타 북극의 추운 공기가 제트기류를 뚫고 다른 지역까지 흘러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혹한기가 찾아온다.
일부 기후학자는 최근 급격한 온난화에 접어든 점을 고려해 30여 년 정도의 소빙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400~300년 전처럼 북극의 추운 공기가 남쪽으로 이동해 뜨거운 지구를 식혀줄 것이란 관측이다.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는 1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급격하게 올라가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는 주기성이 있다”며 “다만 데이터가 최근 100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니 단기 사이클은 예측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예측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희은 기자』
(출처; 뜨거웠다, 차가웠다 반복하는 지구…5000년 前에는 지금보다 더 더웠다 | 한국경제 (hankyung.com) )
이진아는 《지구위에서 본 우리 역사》 〈인류 최초의 문명, 주인공은 누구의 조상이었을까?〉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천 년 전에 끝난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 간빙기가 오래 계속되면서 인류의 문명도 축적되어 올 수 있었고,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적어도 요하문명이 지속되는 기원전 1천 년 무렵까지 약 1만 년 동안, 이 지역은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리고 지금의 기온분포 패턴에 비해서 기온이 높은 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단 장기적인 기후변화의 그래프를 확인해보자.
요하문명의 기후변화. 우실하 ‘요하문명, 홍산지역의 지리적·기후적 조건’(2014) 게재 그래프와 Singer&Avery, ‘Unstoppable Global Warming’(2006) 게재 그래프를 변형 대조함. © 사진=이진아 제공
위의 그래프는 우실하 교수의 논문에 게재된 것으로 요하지역의 과거 기후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S. F. 싱거 및 D. T. 에이버리 박사의 2006년 저서 《멈출 수 없는 지구온난화》에서 나온 그래프로, 우리가 지금까지 기후변화의 장기적 흐름을 볼 때 참고자료로 삼아왔던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한 가운데, 요하지역의 기후가 좀 더 굴곡이 없이 온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래프로 보아 요하문명은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갑자기 기온이 상승하는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문명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도 지구평균기온이 영하 10℃까지 내려가는, 즉 지구의 대부분 지역이 꽁꽁 얼어붙는 지경이 되어버리는 빙하기와 지금보다도 더 따뜻한 적도 많았던 간빙기가 반복됐지만, 간빙기의 기간이 대체로 아주 짧아서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활발한 활동을 오래 전개하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천 년 전에 끝난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 간빙기가 오래 계속되면서 인류의 문명도 축적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선물처럼 주어진 이 적당히 따뜻하며 길게 지속되는 간빙기에서 제일 먼저 문명이 싹텄다는 것은 요하지방이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어서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곳이 사람들이 살기에 얼마나 적합한 지역이었는지, 지형과 기후변화 양상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적어도 요하문명이 지속되는 기원전 1천 년 무렵까지 약 1만 년 동안, 이 지역은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리고 지금의 기온분포 패턴에 비해서 기온이 높은 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에 나온 요하문명 기후변화의 그래프를 보면, 지구가 온난화되어간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요즘 지구평균기온보다도 2℃ 정도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평균기온에서 섭씨 2도의 차이는 대단한 차이다. 날씨가 추워져 사람들이 살기 고단했던 것으로 악명 높은 소빙하기의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2도 낮았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빙하기 이후 동아시아 지형 변화와 요하문명권의 지형. 출처: Proudman Oceanographic Laboratories, ‘Southeast Asia Post Ice Age Inundation’ © 사진=이진아 제공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2만 년 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낮아져서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가 거의 붙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1만 4천년에는 육지 중에서 낮은 곳부터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8천 년 전쯤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요하문명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요하 강 일대는 거대한 다싱안링 산맥 뒤로 몽고로 이어지는 산지와 한반도 북부를 가로지르는 장백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비옥한 땅으로, 앞으로는 발해만에서 한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개펄이 펼쳐져 있는 너른 땅이다. 위도가 높아서 한랭기동안에는 생산성이 대폭 낮아지겠지만,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육지와 바다, 그리고 개펄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풍성한 천혜의 땅이 될 수 있다.
요하문명은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유물들로만 봐도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약 6천년 동안 융성했던 엄청난 문명이다. 그 시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현재 지구평균기온보다도 온도가 더 높았으므로 최적의 생활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다싱안링산맥과 장백산맥에서는 삼림이 울창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깊고 유속이 빠른 강과 하류에 비옥한 농토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발해만으로 이어지는 서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풍성한 갯벌생태계와 더불어 한반도 서남부 및 중국대륙 동남부까지, 거기서 그보다 더 먼 곳까지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뱃길을 제공했을 것이다. 세계를 통틀어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최상의 조건이다.
예로부터 살기 좋은 땅은 강자가 차지한다. 요하를 생활무대로 삼았던 사람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파워가 큰 집단을 형성하고 살았을 것이다. 이들이 이 일대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하는 데 근본적인 도움을 준 중요한 생태적 조건이 따로 또 있다. 』(위 책, 171~172쪽)
(출처; 인류 최초의 문명, 주인공은 누구의 조상이었을까?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
강인욱은 〈문명은 구석기시대에 시작되었다〉라는 글에서 인류 최초의 마을 차탈회위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완전히 빙하기가 끝난 1만년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따뜻한 날씨가 되면서 사람들은 마을을 만들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초기 농사는 우리 생각과 달리 위험한 모험이었다. 초기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체구도 훨씬 작아졌고, 영양 상태도 불량했다. 식량 대부분을 일부 곡식에만 의존했고 흉년에 쉽게 대처할 정도의 농사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까지 각자 떠돌며 살던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되었으니 전에 없었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조선 시대 사람들이 아파트에 모여 사는 셈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소통과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해나갔다.
아주 사실적이어서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 3000년 전에 유행한 동물장식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출처 위키피디아
괴베클리 이후인 지금으로부터 약 9500년 전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형성된 인류 최초의 마을 차탈회위크가 그 상황을 보여준다. 서로 밀집해 집을 만들어 살았던 차탈회위크 사람들은 집 안에서 제사를 지내고 벽화를 그려서 자신들의 신화를 보존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기억하고 공동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출처: 한겨레, 문명은 구석기시대에 시작되었다 (hani.co.kr) )
신용하는 《고조선문명의 사회사》에서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서비스(E. R. Service)의 사회진화론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여기서 군장사회 또는 군장국가의 개념과 용어는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서비스(E. R. Service)의 사회진화론의 개념과 용어를 차용하여 수정해서 사용한 것이다. 스펜서는 인류사회가 진화해 왔는데 ‘복합성의 정도’에 의거해 진화 단계를 가족과 같은 단순사회→씨족과 같은 복합사회→부족과 같은 2중복합사회→국가와 같은 3중복합사회로 진화했다고 설명하였다. 즉 그는 인류사회조직의 진화가 무리(bands)→가족(families)→씨족(clans)→부족(tribes)→국가(states)의 진화 단계를 거쳤다고 설명한 것이다. 또한 그는 각 단계의 수장 유형을 ①우두머리 없는 사회(headless), ②간헐적 우두머리(occasional headship), ③불안정한 우두머리(unstable headship), ④안정적 우두머리(stable headship)로 진화론적으로 유형화했으며, 주민의 정착 정도를 ①유목, ②반정착, ③정착으로 유형화하여 우두머리의 유형과 조합시켰다. 스펜서는 2중복합사회인 부족의 안정적 수장의 정착사회가 부족의 마지막 단계로서 국가형성 직전의 단계이며, 이러한 마지막 단계의 부족의 사례로서 고대 과테말라인 사회, 고대 고 페루인 사회, 아랍의 오만 사회, 고대 이집트 왕국, 고대 영국의 왕국, 기타 등을 들었다.』(신용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 82쪽)
윤내현은 《한국열국사연구》 ‘한국고대사도표’에서 고조선을 state society로, 고조선이전시대를 무리사회(band society), 마을사회(tribal society), 고을나라(chiefdom society)로 구분하면서, 무리사회는 BC10,000년 이전시대로 환인시대이자 구석기시대로, 마을사회는 BC10,000년부터 BC4000년까지로 환웅시대이자 전기신석기시대로, 고을나라는 BC4000년부터 BC2333년까지로 환웅과 웅녀결혼시대이자 후기신석기시대로, 고조선은 BC2333년부터 BC 108년까지로 단군조선시대이자 청동기시대로 보았다.
〈위키피디아〉는 사회의 단계를 구석기시대는 Band(25명~100명), 중석기시대는 Tribes and Bands, 신석기시대는 Tribes and Chiefdoms, 청동기시대는 City-states, 철기시대는 Large Tribes, Kingdoms, Empires로 보고 있다. 초기 청동기시대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국가형성이 시작되었고 후기 청동기시대에 첫 제국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출처; Three-age system - Wikipedia )
<참고자료>
이진아,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 루아크, 2017
신용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8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강인욱, 문명은 구석기시대에 시작되었다 (hani.co.kr)
이진아, 인류 최초의 문명, 주인공은 누구의 조상이었을까?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뜨거웠다, 차가웠다 반복하는 지구…5000년 前에는 지금보다 더 더웠다 | 한국경제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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