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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2.6 제주 고산리유적(1) 본문

지음/《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2.6 제주 고산리유적(1)

대야발 2024. 2. 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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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2.6 제주 고산리유적; 10000년 전~8000년 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석기시대 융기문토기 · 화살촉 · 자르개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개설

제주도 최고의 신석기시대 유적이자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말기 또는 중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표지유적(標識遺蹟)으로 중요하다. 1998년 12월 2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내용

고산리 자구내의 해안가 남쪽 대지상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제주도 해안지역에서 보기 드문 너른 들판이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현재 밭과 논이 크게 발달되어 있다. 속칭 ‘한장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적의 북서쪽으로는 해발 148m의 당산봉(唐山峰)이라고 하는 바위산이, 남동쪽으로는 해발 65m의 수월봉(水月峰)이라고 하여 오름이 해안절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이 일대에는 수천 평에 걸쳐 다량의 석기와 토기파편이 산포되어 있다. 해안가이면서 패총 유구를 갖고 있지 않은 점은 남해안지역의 비슷한 시기의 유적인 상노대도(上老大島) 등의 초기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사하다.

1988년과 1990년에 걸쳐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석촉 등의 석기가 채집되었다. 1988년 유적을 지나는 해안관광도로 확장공사 때 구제발굴과 1996년 정식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 결과, 유물포함층은 해안절벽쪽으로 갈수록 더욱 두터워져 1m 남짓되며, 하천쪽으로 가면서 점차 얇아져 30cm 내외가 된다. 크게 표토층, 흑색부식토층, 황갈색점토층, 황갈색 생토층의 4개 층위로 구성된다.

유물은 흑색부식토층과 황갈색점토층에서 주로 출토된다. 두 층간의 확실한 시기적 차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유적에는 집터나 성격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구덩이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그 중 1994년에 조사된 구덩이 하나는 길이 2m, 폭 1m, 깊이 50cm의 장방형 유구로 검게 탄 재층이 많았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것이 일본 죠몬(繩文)시대 조기(早期)와 초창기에서 확인된 바 있어 일종의 화덕시설로 추정된다. 1997년 조사에서는 석기제작장소로 판단되는 유구(遺構)와 기둥구멍일 가능성이 있는 유구가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크게 2종이 있다. 한 형식은 이른바 융기문토기로 1988년에 해안가 절벽 바로 위 경비참호에서 1m 이하의 퇴적층에서 수집된 1개체분이다. 평평바닥에 광구대발형(廣口大鉢形)으로 구연부(口緣部)에 3줄의 굵은 융기대문이 돌아가는데 파상곡선문을 이루고 있다.

유적발굴을 통해 확인되는 대부분의 토기편은 식물줄기와 같은 섬유질 보강제를 섞어 성형해 소성한 뒤 그 자국이 남아 있는 토기이다. 또 다른 형식도 직립구연에 평저이며 융기문토기와는 달리, 점토질이 강하다. 양자의 공반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형식의 토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알려진 것이다. 섬유질의 토기형식은 연해주(沿海州)와 일본의 신석기시대 초기 또는 죠몬 초창기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다. 석기 중 완성형 석기는 1997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면적 대략 1,500㎡에서 1,000여 점이 나왔다.

그 구성을 보면, 화살촉, 긁개·자르개·새기개·뚜르개·톱니날·양면석기·홈날 등이 있다. 화살촉은 700여 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길이 3cm 미만으로 형식이 다양하다. 슴베가 없는 삼각형식, 슴베가 있는 형식, 촉신 하단의 둥글거나 뾰족하게 마무리 된 형식 등이 있다.

이들 석기와 공반된 석재로서 몸돌곽 돌날, 격지도 다량 수습되었다.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이 유적에서 좀돌날이 만들어졌음을 입증해주는 좀돌날과 그 몸돌이다.

이들은 시베리아 남부와 일본에서 확인되는 좀돌날 또는 세석린(細石刃) 몸돌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중석기 또는 구석기시대 말기의 석기제작 전통이 고산리 유적의 단계에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절대연대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제2층에서 일본의 가고시마현(鹿兒島縣) 유황도(硫黃島)의 귀계(鬼界) 칼데라에서 날라 온 아카오야 화산재가 있는 것이 확인되어 서기전 6,300년경 이전에 유적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좀돌날석기와 식물줄기 혼입의 토기가 대체로 일본과 연해주에서 1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초기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고산리 유적의 연대도 대체로 이와 같으리라 추정된다.

(출처;  제주 고산리 유적(濟州 高山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

 

 

 

 

2012 7 25일 제주의 소리 기사 만 년 전 제주도엔 옥 귀고리 찬 사냥꾼 살았다

 

제주 고산리서 신석기초기 한반도 최고 집단취락지 발굴학계 관심 비상

둥근 귀고리 1·화살촉 등 교역물 추정유물도 다량1만 년 전 이미 대외교류?

지금부터 약 1만년에서 12000년 전 신석기시대 초기, 제주 섬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한경면 고산리의 속칭 한장밭 해안가에는 한반도 최고(最古)의 마을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한반도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가 제주 고산리다.

 

 

 이번 시·발굴에서 원형주거지 10, 수혈유구 80여기, 집석유구(추정 야외노지) 10여기, 다수의 주혈이 화살촉 등의 석기류 및 고산리식 토기와 동반 출토되는 점은 한반도 최고 신석기시대 주민집인 고산리유적의 정주취락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됐다. 25일 열린 고산리 선사유적 시.발굴 중간설명회. 뒤로 고산리 자구내포구 앞 당산봉이 보인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이 시대 고산리에 살던 선사인들은 절해고도의 섬에서 육지부나 혹은 대륙·일본 등과 문물교류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 지역 시굴현장에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되는 결상이식’(둥근 귀고리) 1점이 발견됐기 때문으로, 고산리식 토기 양상이 한반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석촉 등 일부 석기류 재질도 제주에선 나지 않는 것들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 고산리 신석기인들은 수렵 전문가발굴유물 대부분 화살촉·석창 등 사냥도구

 

 고산리 선사유적에 대한 이번 시.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결상이식(둥근귀고리)과 화살촉 등 석기류. 결상이식은 출토 당시 반파된 상태였고, 상부는 편평하며 하부는 원형을 띠고 있다. 재질은 현재 정확한 성분분석을 조사 중으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토된 석기류는 대부분 화살촉과 찌르개 등 수렵용도의 석기류가 대다수다. 제주의소리

 

 

제주시와 ()제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김은석) 25일 오후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에서 실시한 1단계 시·발굴조사 중간보고 및 1차 자문위원회의에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제주에서 이미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바다 건너 육지부와 문물교류를 벌였을 가능성과, 이 시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했다.

신석기시대 고산리 선사인들은 해안가에 마을을 이루고, 주로 수렵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가 섬이 된 이후 최초의 원주민들이 그들이다이보다 앞서 제주에 사람이 살았던 최초의 흔적은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동굴에서 발견된 석기류와 갈색곰뼈에서 찾아볼 수 있다.  4만 년 전 중기구석기 시대지만, 이 시기 제주는 섬이 아니라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 구주 지역과 육지로 연결된 빙하기였기에 현재까지 확인된 제주도가 섬이 된 이후 최초의 원주민은 고산리 선사인인 셈이다.

고산리 선사유적은 지난 1987년 고산리 주민(좌정인 씨)이 타제석창과 긁개 등을 발견한 후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 곳이다. 이를 계기로 1991년과 1992년 지표조사를 통해 자구내 포구 하천변을 따라 수월봉에 이르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를 확인하고 융기문토기와 찌르개·타제석기·석촉 등을 수거했다.

이후 1994 신창-무릉간 해안도로 건설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1997년과 1998년 다시 고산리유물산포지 1지구에서 집중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출토된 유물은 고산리식 토기와 석촉을 포함한 각종 성형석기·폐기석재들이 대부분으로 1991년 지표조사에서 1998년 시·발굴 조사에 이르기까지 석기 99000여점, 토기조각 1000여점 등 10만여 점이 발굴된 바 있다.

 

# 한반도 신석기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집단주거지는 제주 '고산리'

 

당시 발굴 작업을 통해 한반도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고산리식 토기(섬유질토기), 첨두형석기 등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완형의 석기 출토 유물 중에는 화살촉이 1700여점으로 가장 많았고 긁개 50여점, 창끝 40여점 등은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신석기 초기시대의 제주 고산리 선사인들은 수렵생활 중심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 시·발굴 조사에서도 고산리식 토기와 다양한 타제석기류(화살촉, 찌르개, 밀개 등 성형석기와 돌날, 박편, 망치돌)들이 출토됐다. 이러한 유물상(遺物相)은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수렵과 채집이 이루어지고 저장과 조리시설 등 토기제작이 이루어진 시기가 고산리유적 단계에 비롯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발굴에서 원형주거지 10, 수혈유구 80여기, 집석유구(추정 야외노지) 10여기, 다수의 주혈이 화살촉 등의 석기류 및 고산리식 토기와 동반 출토되는 점은 한반도 최고 신석기시대 주민집인 고산리유적의 정주취락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됐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출토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결상이식’(둥근 귀고리) 1점이다. 원형 중 40% 정도가 깨진 상태로 출토됐고, 육안으로는 옅은 하늘빛과 살구빛 사이의 색으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성분분석을 실시 중에 있다.

신석기 시대 전공자인 하인수 복천박물관장은 이날 설명회 자문위원으로 참석, “귀고리의 재질이 옥으로 보인다. 옥은 지금도 귀하지만 당시에도 매우 귀했을 텐데 한반도 남해안 어느 지역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전라도 광주시에도 옥산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 관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옥으로 만든 귀고리가 발견된 곳은 이번 제주 고산리를 포함해 총 7곳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사천 선진리 유적·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여수 안도 패총 등으로, 모두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그러나 고산 선사유적의 경우, 제주도내에 ‘옥’ 산지가 없기 때문에 1만 년 전 이미 제주 선사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육지부와의 교역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이청규 영남대 교수(고고학) 아직도 한반도에서는 고산리유적과 같은 시기의 유적이 조사돼지 않아서 더욱 더 고산리 유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종전 고산리 유적 발굴조사에선 약 1만 년 전 유물만 확인됐지, 이곳에 살던 선사인들의 정주생활이나 가옥생활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원시적이나마 가옥구조를 만들고 집단 정착생활을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앞으로 이 조사가 더욱 확대된다면 당시 1만 년 전 제주 최고 원주민의 마을모습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은 이번 시·발굴조사를 통해 기원전 1만년을 전후한 시기 한반도의 구석기 후기문화에서 신석기 초기문화로 옮겨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시베리아, 만주, 일본, 한반도지역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신석기 초기문화 연구의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출처; “만년전 제주도엔 옥 귀고리 찬 사냥꾼 살았다”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에 대한 시.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특히 왼쪽 상단의 결상이식(귀고리) 유물은 제주에서 처음 발굴된 신석기시대 귀고리 유물이다제주의소리

(출처; 제주 고산리서 한반도 최고 집단주거지 발굴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고산리유적 주거지 단계설정 개념도. <사진 제공=제주문화유산연구원>

(출처; 국내 '최고' 제주 고산리 유적.."활용은 언제쯤?"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토기류 일괄. <사진 제공=제주문화유산연구원>

(출처; 국내 '최고' 제주 고산리 유적.."활용은 언제쯤?"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참고자료>

 

 

 

 

제주 고산리 유적(濟州 高山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만년전 제주도엔 옥 귀고리 찬 사냥꾼 살았다”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제주 고산리서 한반도 최고 집단주거지 발굴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국내 '최고' 제주 고산리 유적.."활용은 언제쯤?"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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