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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서거정(徐居正, 1420년~1488년)은 조선 문종, 세조, 성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대구,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亭亭)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直長)을 지내고 이조 참의, 사헌부 대사헌(1478년),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부수찬(副修撰)·응교(應敎)를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

신라인은 나당전쟁 시기에 당군을 물리쳐 왕조와 국가를 보존하고, '삼한일통'했던 자신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역사 기록으로 남겼고, 그 내용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열전 곳곳에 담겨 있다. 이런 신라인의 의식을 읽어내고 이해할 때 나당전쟁의 실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고구려사 명장면-139] 신라는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는가? (2)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2021. 12. 23. 한국사 교과서에는 나당전쟁에 대해서 675년 매초성(買肖城) 전투,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군이 당군을 격퇴함으로써 나당전쟁을 신라의 승리로 종결시킬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나당전쟁의 승리로 비로소 삼국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매초성 전투와 기벌포..

지금까지 신라의 건국과 관계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후한서》 《삼국지》 등의 기록을 분석하여 신라 건국의 핵심세력과 건국 연대 및 신라 초기의 사회성격 등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얻어진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는 신라를 건국한 핵심세력은 북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보았으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건구 연대에 대해서도 고구려보다 앞선다는 이유 때문에 그 신빙성에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라 초기사회를 역사학이나 인류학이 말하는 국가사회 단계에 이르지 못한 낮은 사회단계였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들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신라를 건국한 핵심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고조선시대부터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북..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청의 중국 지배삼번의 난을 진압해 중국 지배를 완성하다몽골 평정 후 국호를 청으로 바꾼 청 태종은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제압하고 요동 지배를 확고히 하는 등 청나라의 기초를 수립하였다. 여덟 살에 즉위한 4대 황제 강희제는 마지막 남은 한인 세력인 삼번의 난을 진압하며 청조의 중국 지배를 완성했다. 청은 번영을 누리며 이후 약 250여 년간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1683년 :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1689년 : 김만중, 《구운몽》 지음1696년 : 안용복, 독도에서 일인 추방1699년 : 괴질로 25만여 명 사망 목차청 태종, 만주족 · 한족 · 몽골족을 지배하다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제압하다강희제, 청조의 중국지배를 완성해 번영기를 열다삼번의 오삼계, 이..

1115년, 여진족 최초의 국가 금이 건설되었다. 금은 요와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며 세력을 떨쳐나갔다. 이 무렵 송나라는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는데 형세를 오판해 금과 손을 잡고 요를 협공하였고, 이때 금의 지원을 받은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송의 약속 파기로 격분한 금은 송나라(북송)를 멸망시켰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 금의 건국 - 쇠퇴하는 송나라, 금에 의해 멸망하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1126년 : 이자겸의 난이 일어남1135년 : 묘청, 서경에서 대위국 세움; 김부식이 평정함1145년 : 김부식, 《삼국사기》 50권 편찬1170년 : 정중부 등, 무신난(경인의 난)을 일으킴; 이후 100년간 무신집권1198년 : 만적의 난목..

한국 고대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말갈이다. 그것은 바로 만주사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한반도에 갇힌 역사가 아닌 민족의 원류가 북방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한반도로 귀착되기 전에 만주가 주된 역사 공간이었다. 현재 만주는 역사연구적으로 보면 비어있는 공간이다.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강제로 현재 기준으로 만주를 비롯 동북아지역에 존재했던 민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탈바꿈시켰다. 그 만주지역에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가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존재했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지금의 중국을 만든 한족의 역사와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역사왜곡이고 옛 역사터전을 잃고 한반도에 갇혀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