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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3 《태백일사》 〈신시본기〉 본문

지음/《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3 《태백일사》 〈신시본기〉

대야발 2024. 2. 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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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3 태백일사》 〈신시본기

 

환단고기에 신시배달국 기사는 삼성기 전 상편, 삼성기 전 하편그리고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나온다.

 

삼성기 전 상편에는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백산과 흑수 사이 지역에 내려오셨고, 천부인을 지니고 오사를 주관하시어 세상에 교화를 베풀고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였고,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렸다고 나온다.

 

, 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培達.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呪願有功, 服藥成仙. 劃卦知來, 執象運神, 命群靈諸哲爲輔. 納熊氏女爲后定婚嫁之禮, 以獸皮爲幣. 耕種有畜, 置市交易, 九域貢賦. 鳥獸率舞, 後人奉之爲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神市之季, 有蚩尤天王, 恢拓靑邱.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삼성기 전 하편에는 1세 환웅천황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웅녀 기사, 10세 갈고환웅과 14세 치우천왕의 기사 그리고 신시역대기가 나온다. 밀기사기를 인용하였다.

 

於是, 桓雄率衆三千, 降于太白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 雨師, 雲師, 而主穀, 主命, 主刑, 主病, 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 有一熊一虎, 同隣而居. 嘗祈于神壇樹, 願化爲神戒之氓, 雄聞之曰, 可敎也. 乃以呪術, 換骨移神, 先以神遺靜解靈, 其艾一炷, 蒜二十枚, 戒之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二族皆得而食之, 忌三七日, 熊能耐飢寒, 遵戒而得儀容. 虎則放慢, 不能忌而不得善業. 是二性之不相若也.

熊女者無與爲歸故, 每於壇樹下, 呪願有孕. 乃假化爲桓而使與之爲婚, 懷孕生子有帳.

桓雄天王, 肇自開天生民施化, 演天經, 講神誥, 大訓于衆. 自是以後, 蚩尤天王, 闢土地, 採銅鐵, 鍊兵興産. ~

, 有葛古桓雄, 與炎農之國, 劃定彊界. 又數傳, 而有慈烏支桓雄, 神勇冠絶以銅頭鐵額, 能作大霧, 造九冶, 而採鑛, 鑄鐵作兵, 天下大畏之, 世號爲蚩尤天王. 蚩尤俗言, 雷雨大作, 山河改換之義也.

蚩尤天王見炎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 自索度進兵據有淮岱之間, 及軒侯之立也. 直赴 鹿𣵠 之野, 擒軒轅而臣之. 後遣吳將軍, 西擊高辛, 有功.

, 天下鼎峙, 𣵠之北, 有大撓, 東有倉頡, 西有軒轅, 自相以兵欲專其勝而未也. , 軒轅稍後起於蚩尤, 每戰不利, 欲依大撓而未得, , 依倉頡而不得. 二國皆蚩尤之徒也. 大撓嘗學干支之術, 倉頡受符圖之文, 當時, 諸侯罔不臣事者亦以此也.

司馬遷史記曰, 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爲暴, 天下莫能伐. 軒轅攝政, 蚩尤有兄弟, 八十一人. 竝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 造五丘杖, , , 太弩, 威振天下. 蚩尤古天子之號也.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진역유기, 삼성밀기, 설문해자, 춘추, 조대기, 운급》 〈헌원기, 한서지리지, 대변경, 삼한비기, 밀기, 관자, 사기, 상서, 위서, 선가서, 천문지, 고려팔관잡기등의 사서를 인용하였다.

 

 

1세 환웅천왕이 천부인 세 개를 갖고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곰족과 호랑이족의 기사, 웅녀 기사, 1세 환웅천황과 5세 태우의환웅, 6세 다의발환웅, 태우의환웅의 막내 아들인 태호 복희씨 기사, 14세 치우천왕의 기사가 나온다.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은 많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더니 서자부 대인 환웅이 민정을 두루 살펴 듣고 천계에서 내려와 지상에 광명 세상을 열고자 하셨다.

이때 안파견 환인이 금악산과 삼위산과 태백산을 두루 살펴보시고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태백산은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로다.” 라고 하셨다.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인간과 만물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를 거느리고 몸소 하계에 내려가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을 세우라.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려 깨우쳐서 자손만대의 홍범으로 삼을지어다.” 하셨다.

그리고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시고 세상에 보내어 다스리게 하셨다. 환웅께서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처음으로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한다.

또한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시고 주곡, 주명, 주형, 주병, 주선악 하게 하시고 인간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재세이화 홍익인간하시니 이분이 환웅천황이시다.  

朝代記曰, , 人多産乏, 憂其生道之無方也. 庶子之部, 有大人桓雄者, 探聽輿情, 期欲天降, 開一光明世界于地上. , 安巴堅, 遍視金岳·三危·太白, 而太白可以弘益人間, 乃命雄曰, 如今人物業已造完矣. 君勿惜勞苦, 率衆人, 躬自降往下界, 開天施敎, 主祭天神, 以立父權, 扶携平和歸一, 以立師道, 在世理化, 爲子孫萬世之洪範也. 乃授天符印三個,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初降于太白山神壇樹下, 謂之神市.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是謂桓雄天王也.

 

 

 

1세 환웅천황은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이를 주곡이라 하였다.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풍백 석제라를 시켜 새, 짐승, 벌레, 물고기의 해를 없애게 하셨으나 사람들은 아직 동굴과 움집 속에서 거처하였기 때문에 땅의 습기와 바깥바람의 기운 때문에 질병이 생겼다. 이에 우사 왕금을 시켜 사람이 살 집을 짓고 소와 말, , 돼지, 독수리, 호랑이 같은 짐승을 잡아 길러서 이용하게 하셨다. 운사 육약비를 시켜 남녀가 혼인하는 법을 정하게 하시고 치우로 하여금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잡는 직책을 관장하게 하셨다.

 

震域留記, 神市紀云, 桓雄天皇, 見人居已完, 萬物各得其所, 乃使高矢禮, 專掌餽養之務, 是爲主穀. ~ 桓雄天皇又復命神誌赫德, 作書契. ~ 桓雄天皇使風伯釋提羅, 雖除鳥獸蟲魚之害, 而人民猶在洞窟土穴之中, 下濕外風之氣, 逼人成疾. 且禽獸蟲魚之屬, 一經窘逐, 漸自退避藏匿, 不便於屠殺供饋. 於是, 使雨師王錦, 營造人居, 主致牛馬狗豚雕虎之獸, 而牧畜利用, 使雲師陸若飛, 定男女婚娶之法焉. 而治尤則世掌兵馬盜賊之職焉.

 

 

 

이때 웅족과 호족이 이웃하여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와서 기도하며 환웅께 하늘의 계율을 지키는 신시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청하였다. 환웅께서 신령한 주문으로 체질을 개선시켜 신명을 통하게 하셨다. 또 삼신이 내려 주신 물건으로 신령한 삶을 얻게 하시니 바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매였다.

그리고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지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여야 스스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르게 구제하며 진정한 사람다운 인격을 갖춘 대인이 되리라하셨다.

웅족과 호족 양가는 이것을 먹고 삼칠일 동안 삼가며 스스로 수련에 힘썼다. 웅족은 굶주림과 추위와 고통을 참으며 하늘의 계율을 준수하고 환웅과 한 언약을 지켜서 건강한 여자의 모습을 얻었으나 호족은 거짓과 태만으로 하늘의 계율을 어겨 끝내 천업을 함께 이루지 못하였다. 이것은 두 부족의 천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웅씨족 여성들은 고집이 세고 어리석음이 지나쳐서 이들과 혼인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매양 신단수 아래에 함께 모여 주문을 읽으며 아기를 가져 환웅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환웅께서 임시로 이들을 환족 백성으로 귀화시켜 살 곳을 주시고 환족 남자와 혼인하게 하여 자녀를 낳게 하시니 이로부터 모든 남녀가 점차 인륜의 도를 얻게 되었다.  

, 有一熊一虎, 同隣而居, 常祈于神壇樹 ,而又請於桓雄, 願化爲天戒之氓. 雄乃以神呪, 換骨移神, 又以神遺得驗靈活, 乃其艾一炷, 蒜二十枚也. 仍戒之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自由成眞, 平等濟物, 便得化人踐形之大人者也. 熊與虎兩家, 皆得而食之, 忌三七日, 務自修鍊, 而熊耐飢寒痛苦, 遵天戒, 守雄約, 而得健者之女容, 虎則誣慢不能忌, 違天戒而終不得與之贊天業. 是二姓之不相若也. 熊氏諸女, 自執愚强而無與之爲歸, 故每於壇樹下, 群聚以呪願, 有孕有帳, 雄乃假化爲桓, 得管境而使與之婚, 孕生子女, 自是群女群男, 漸得就倫

 

 

 

 

5세 태우의환웅의 기사이다.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6세 다의발환웅이고, 막내 아들은 태호 복희씨이다.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의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법방이다.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환웅이시오 막내는 태호이시니 복희라고도 불렸다.

 

自桓雄天皇, 五傳而有太虞儀桓雄, 敎人, 必使黙念淸心, 調息保精, 是乃長生久視之術也. 有子十二人, 長曰多儀發桓雄, 季曰太皞, 復號伏羲.

 

 

 

태호복희씨의 기사이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掛圖)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 세 개는 이어지는 음양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함은 오묘하게 삼극과 부합하여 변화가 무궁하였다.

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雨師) 직책을 대물림하셨다. 후에 청구(靑邱), 낙랑(樂浪)을 지나 진()땅에 이주하여 수인(燧人), 유소(有巢)와 함께 서쪽 땅에서 나라를 세우셨다.

그 후예가 풍산(風山)에 나뉘어 살면서 역시 풍()으로 성을 삼았다. 후에 패(((((((()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지금 산서 제수(濟水)에 희족(羲族)의 옛 거주지가 아직 남아 있는데 임 ((宿수구(須句수유(須臾) 등의 나라가 모두 에워싸고 있다.

대변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 관직을 맡으셨다. 신룡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를 만들고, 신시 시대의 계해를 고쳐 갑자로 첫머리를 삼으셨다. 여와(女媧)는 복희의 제도를 계승하고 주양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세상에 전하였다. 복희씨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 남쪽에 있다.  

季曰太皞, 復號伏羲. , 夢三神, 降靈于身, 萬理洞徹, 仍往三神山, 祭天, 得卦圖於天河, 其劃三絶三連, 換位推理, 妙合三極, 變化無窮. 密記曰, 伏羲出自神市, 世襲雨師之職, 後經靑邱樂浪遂徙于陳, 幷與燧人有巢, 立號於西土也. 後裔分居于風山, 亦姓風, 後遂分爲佩····(·(, 八氏也. 今山西濟水, 羲族舊居尙在, 任宿須句須臾等國, 皆環焉. 大辯經曰, 伏羲出於神市而作雨師, 觀神龍之變而造卦圖, 改神市癸亥而爲首甲子, 女媧承伏羲制度, 朱襄仍舊文字而始傳六書, 伏羲陵, 今在山東魚臺縣鳧山之南.

 

 

 

고시씨의 방계 자손; 소호, 소전, 소전의 아들 신농

 

신농은 열산에서 창업을 하였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고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 자손이다. 당시 백성이 정착하여 각기 생업에 종사하여 점차 인구가 증가하였다. 곡식과 삼을 많이 생산하고 각종 의약과 치료법도 점점 갖추어지자 한낮에 저자를 열어 교역을 하고 돌아갔다.  

神農起於列山, 列山列水所出也. 神農, 少典之子. 少典與少皞, 皆高矢氏之傍支也. 盖當世之民, 定着爲業, 漸至成阜, 穀麻藥石之術, 亦已稍備, 日中爲市, 交易以退也.

 

 

 

치우천황의 기사이다.

 

유망의 정치력이 쇠약해지자 치우천황께서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셨다. 형제와 부계 일족 중에서 장수가 될 만한 인물 81명을 뽑아 모든 군사를 거느리게 하시고 갈로산의 쇠를 캐어 칼과 갑옷과 창과 큰 활과 호시를 많이 제작하셨다. 그리고 전군을 모아 대오를 정비하여 탁록을 함락시키고 구혼에 올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셨다. 그 형세가 자못 질풍과 같아 만군을 복종시키고 천하에 위엄을 떨치셨다.

1년 사이에 아홉 제후의 땅을 함락시키고 다시 옹호산에 나아가 구치로써 수금과 석금을 캐어 예과와 옹호극을 만드셨다.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몸소 거느리고 양수로 출진하여 빠르게 공상(空桑)까지 진격하셨다. 당시 공상은 지금 진류로 유망의 도읍지였다.

이 해에 치우천황이 12제후의 나라를 모두 병합하실 때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니 서토의 백성들이 간담이 서늘하여 도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 유망이 소호(少昊)로 하여금 막아 싸우게 하였다. 이에 천황께서 예과와 옹호극을 휘드르며 소호와 크게 싸울 때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수와 병졸로 하여금 혼미하여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하니 소호가 대패하여 황급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달아났다.

치우천황이 즉시 하늘에 제사 지내어 천하를 태평하게 할 것을 맹세하여 고하시고 다시 진군하여 탁록을 포위 압박하여 일거에 멸망시키셨다.  

及楡罔衰政, 乃興兵出征, 選兄弟宗黨中, 可將者八十一人, 部領諸軍, 發葛盧山之金, 大制劍鎧矛戟大弓楛矢, 一幷齊整, 拔涿鹿而登九渾, 連戰而捷, 勢若疾風, ()伏萬軍, 威振天下. 一歲之中, 凡拔九諸侯之地. 更就雍狐之山, 以九治發水金石金, 而制芮戈雍狐之戟, 更整師躬率, 而出陣洋水, 殺至空桑, 空桑者, 今之陳留, 楡罔所都也. 是歲之中, 兼倂十二諸侯之國, 殺得伏尸滿野, 西土之民, 莫不喪膽奔竄, , 楡罔使少昊拒戰, 天王揮芮戈雍狐之戟, 與少昊大戰, 又作大霧, 使敵將兵昏迷自亂, 少昊大敗, 落荒而走, 入空桑, 偕楡罔出奔. 蚩尤天王, 乃卽祭天而誓告, 天下泰平, 更復進兵, 圍迫涿鹿, 一擧而滅之. 管子所謂天下之君, 頓戰一怒, 伏尸滿野者, 是也.

 

 

 

이때 공손 헌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다. 치우천황께서 공상에 입성하여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펴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히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병마를 크게 일으켜 치우천황과 승부를 겨루려 하였다. 천황께서 항복한 장수 소호를 먼저 보내 탁록을 포위하여 멸하려 하실 때 헌원이 오히려 항복하지 않고 감히 수많은 전쟁에 나섰다.

천황께서 9군에 명하여 네 길로 나누어 진군하게 하시고 몸소 보병과 기병 3천을 거느리고 곧장 탁록의 유웅 들판에서 여러 번 헌원과 맞붙어 싸울 때 군사를 풀어 사방에서 협공하여 참살하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치적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전투를 독려하시니 적군은 두렵고 손이 떨려 바쁘게 도망쳐 백 리 안에 병마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기주·연주·회수·태산 땅을 모두 차지하고 탁록에 성을 쌓으시고 회대에 집을 지으시니 헌원의 무리가 모두 신하를 칭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체로 당시 서쪽 땅의 사람들은 한갓 화살과 돌팔매만 믿고 갑옷의 사용을 알지 못하였다. 또한 치우천황의 뛰어나고 강력한 법력에 부딪혀서 두려운 망이 들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하였다.  

, 有公孫軒轅者, 土着之魁, 始聞蚩尤天王, 入城空桑, 大布新政, 而敢有自代爲天子之志, 乃大興兵馬, 來與欲戰. 天王先遣降將少昊, 圍迫涿鹿而滅之, 軒轅猶不自屈敢出百戰. 天王動令九軍, 分出四道, 自將步騎三千, 直與軒轅, 連戰于涿鹿有熊之野, 縱兵四蹙, 斬殺無算, 又作大霧, 咫尺難辨而督戰. 賊軍乃心慌手亂, 奔竄逃命, 百里兵馬不相見. 於是, 冀兗淮岱之地, 盡爲所據, 乃城於涿鹿, 宅於淮岱. 軒轅之屬, 皆稱臣入貢. 盖當時西土之人, 徒憑矢石之力, 不解鎧甲之用, 又値蚩尤天王之法力高强, 心驚膽寒, 每戰輒敗.

 

 

 

치우천황이 더욱 군용을 정비하여 사방으로 진격하셨다. 10년 동안 헌원과 73회를 싸웠으나 장수는 피로한 기색이 없었고 군사는 물러날 줄 몰랐다.

헌원은 여러 변 싸워 천황에게 패하고도 군사를 더욱 크게 일으켰다. 우리 배달을 본받아 무기와 갑옷을 많이 만들고 또 지남거를 만들어 감히 싸움마다 출전하였다.

이에 천황께서 불같이 진노하여 형제 종족으로 하여금 대격전에 힘써 싸우게 하여 위엄을 확고히 세우셨다. 그리하여 헌원의 군사로 하여금 감히 추격하거나 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시고 더불어 대전을 치뤄 한바탕 몰아쳐서 휩쓸어 버리신 뒤에야 비로소 싸움을 그치셨다.

이 싸움에서 우리 장수 치우비라는 자가 급히 공을 세우려다가 불행히도 전쟁터에서 죽었다. 사기에 이른바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라고 한 구절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천황께서 진노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새로 비석박격기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시니 적진이 마침내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에 정예병을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으로 예()와 탁(涿)을 지키게 하시고 동쪽으로 회대(淮岱)를 취하여 성읍을 만들어 헌원이 동쪽으로 침투할 길을 막으셨다. 천황께서 붕어하신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진실로 길이 남을 찬란한 그 위엄이 후세인의 가슴속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蚩尤天王, 益整軍容, 四面進擊, 十年之間, 與軒轅戰七十三回, 將無疲色, 軍不退後. 軒轅旣屢戰敗, 尤益大興士馬, 效我神市, 而廣造兵甲, 又制指南之車, 敢出百戰. 天王赫然震怒, 使兄弟宗黨, 務要大戰而立威, 使軒轅之軍, 不敢生意於追襲, 與之大戰, 混殺一陣, 然後方熄. 是役也, 我將蚩尤飛者, 不幸有急功, 陣沒. 史記所謂擒殺蚩尤者盖謂此也. 天王赫怒動師, 新造飛石迫擊之機, 成陣聯進, 賊陣終不能抗也. 於是, 分遣精銳, 西守芮涿之地, 東取淮岱爲城邑, 而當軒轅東侵之路, 及至崩逝數千載, 而猶有萬丈光烈, 能起感於後人者也.

 

 

 

 

출처; 신시 배달국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민족의 영산(성산) 백두산 (tistory.com)

 

 

 

 

치우천황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궐향성에 있다고 한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치우천황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궐향성에 있으며 높이는 7장이라 한다. 진한시대에 주민들이 항상 10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붉은 기운이 진홍색 비단처럼 뻗치므로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아마도 그 분의 영웅적인 기백은 보통 사람과 아주 달라 수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헌원은 이 뒤로 쇠미해졌고 유망도 따라서 영구히 몰락하였다.

치우천황의 웅렬하심은 대대로 온 천하를 진동시켰다. 특히 유주(幽州), 청주(靑州) 지방에서 그 명성과 위엄이 지속되니 헌원 이래 대대로 스스로 불안하여 그 치세가 끝날 때까지 베개 베고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없었다.  

今據漢書地理志, 其陵, 在山東, 東平郡, 壽張縣, 闕鄕城中. 高七丈. 秦漢之際, 住民猶常以十月祭之, 必有赤氣, 出如疋絳, 謂之蚩尤旗. 其英魂雄魄, 自與凡人逈異, 歷數千歲而猶不泯者歟. 軒轅以是索然, 楡罔亦從以永墜矣. 蚩尤天王之餘烈, 世襲能振, 盡有幽靑, 聲威不墜, 軒轅以來, 世不自安, 終其世而未嘗安枕而臥.

 

 

 

 

치씨, 창힐, 고신, 강태공이 다 치우의 후손이라고 한다.

 

『《통지》 〈씨족략치씨는 치우의 후손이다.” 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창힐과 고신이 다 치우의 후손으로 대극성에서 태어나 산동, 회수 북쪽에 옮겨 살았다. 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치우천황의 영웅적인 풍채와 굳세고 맹렬한 기상이 아주 멀리까지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옛날 여상(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인데, 치우가 강수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가 되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릴 때 먼저 도술을 닦고 천제지에서 천제를 올렸다. 또한 제에 봉토를 받으니 팔신의 풍속이 제나라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후에 그 땅에 도술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나와 신선 황로와 뒤섞이고 부연하여 더욱 풍속을 윤색시켜 놓았으니 이것은 강태공이 그 풍속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강태공이 음부경주를 지어 자부선생의 삼황내문의 뜻을 조술하였으니 연나라 제나라 선비가 어찌 괴이하고 허황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이 부루태자(2세단군)에게서 나와 우 사공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가 은나라 주왕에게 진술한 홍법구주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대저 그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과 균전법에서 전해 내려온 법이다.  

通志, 氏族略, 蚩氏蚩尤之後, 或曰, 蒼頡與高辛, 亦皆蚩尤氏之苗裔, 生大棘城, 而轉徙於山東淮北者也. 盖蚩尤天王之英風雄烈, 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 ~

, 呂尙亦蚩尤氏之後, 故亦姓姜. 盖蚩尤, 居姜水而有子者, 皆爲姜氏也. 姜太公治齊, 先修道術, 祭天於天齊池, 而亦受封於齊. 八神之俗, 尤盛於此地. 後世, 其地多好道術者出, 與神仙黃老, 混會敷演, 尤爲之潤飾, 則此又姜太公, 爲之助俗也.

嘗作陰符經注, 祖述紫府三皇之義, 則燕齊之士, 安得以不好恠異浮誕之說哉. 且其五行治水之法, 黃帝中經之書, 又出於太子扶婁, 而又傳之於虞司空. 後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 亦卽黃帝中經, 五行治水之說, 則蓋其學,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

 

 

 

 

신시시대에 칠회제신력이 있었다고 한다.

 

신시시대에 칠회제신력이 있었다. 첫째 날에 천신께, 둘째 날에 월신께, 셋째 날에 수신께, 넷째 날에 화신께, 다섯째 날에 목신께, 여섯째 날에 금신께, 일곱째 날에 토신께 제사 지냈다.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예전에는 계해를 쓰다가 구을 단군(5)께서 처음으로 갑자를 쓰시고 10월을 상달로 삼으시니 이것이 한 해의 처음이 되었다. 6계는 신시 환웅께서 신지에게 명하여 지은 것으로 그때부터 계로써 첫머리를 삼았다. ()는 계()의 뜻이며 해()는 핵()의 뜻이니 해가 뜨는 뿌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계()는 소라(蘇羅), ()은 청차이(淸且伊), ()은 적강(赤剛),

()은 중림(仲林), ()은 해익(海囚), () ()는 중황(中黃), () 는 열호수(烈好遂), () 은 임수(林樹), ()은 강진(强振), ()은 유불지(流不地)이다.

또 해()는 지우리(支于離), ()는 효양(曉陽), ()은 가다(加多), ()은 만량(萬良), ()는 신특백(新特白), ()은 밀다(密多), ()는 비돈(飛頓), ()는 융비(隆飛), ()는 순방(順方), ()은 명조(鳴條), ()는 운두(雲頭), ()은 개복(皆福)이다.  

神市之世, 有七回祭神之曆, 一回日祭天神, 二回日祭月神, 三回日祭水神, 四回日祭火神, 五回日祭木神, 六回日祭金神, 七回日祭土神, 盖造曆始於此.

, 舊用癸亥, 而檀君邱乙, 始用甲子, 以十月爲上月, 是謂歲首. 六癸, 自神市氏, 命神誌所製, 而以癸爲首. 癸啓也. 亥核也. 日出之根. , 癸爲蘇羅, 甲爲淸且伊, 乙爲赤剛, 丙爲仲林, 丁爲海囚, 戊爲中黃, 己爲烈好遂, 庚爲林樹, 辛爲强振, 壬爲流不地. 亥爲支于離, 子爲曉陽, 丑爲加多, 寅爲萬良, 卯爲新特白, 辰爲密多, 巳爲飛頓, 午爲隆飛, 未爲順方, 申爲鳴條, 酉爲雲頭, 戌爲皆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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