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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한뫼 안호상(1902년(고종 39)~1999년)은 본관 탐진(耽津)출생지 경상남도 의령이다. 해방 이후 초대 문교부장관, 경희대학교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민족사상연구가이다. 본관은 탐진(耽津). 호는 한뫼. 경상남도 의령 출생. 안석제(安奭濟)의 독자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집안 어른인 홍문각 교리를 역임한 항일운동가 안효제(安孝濟)와 독립운동가이자 실업가인 안희제(安熙濟)의 뜻에 따라 신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9년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을 다니면서 대종교에 입교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 가서 독일국립동제대학(獨逸國立同濟大學)에 재학중 김구·안창호·신채호·이시영·전진한·조소앙·이동녕 등 민족지도자들..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메이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법학부에서 수학하여 법철학 및 상법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 및 강사로 일하면서 경신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에서 변호사 자격을 인증받은 뒤, 1946년부터 부산대학교 교수 겸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1947년..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대구 출생이며, 변호사 김의균(金宜均)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구한말 법관양성소 출신으로, 해방 후 미군정 시대에 경상북도 도지사를 역임한 바 있다. 김석형은 1946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한국사 ..

홍이섭(1914년~1974년)은 해방 이후 『조선과학사』,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 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이고, 아버지는 홍병선(洪秉璇)이다. 1933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서울기독교청년회학교 교사가 되었다. 8·15 광복 이후 국학대학,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1953년부터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뒤 사학과장·문과대학장·동방학연구소장·출판부장 등 교내 보직을 맡기도 하였다. 1966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광복 이후 줄곧 교수직에 있으면서, 학계와 사회 각 분야의 학술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특별시 문화위원회 학술부위원·해군본부 전사편찬실편수관·역사학회회장·고시위원회 보통고시위원·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