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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덕수궁에 다녀왔습니다.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었습니다.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
고종황제는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고종실록》에 대한제국의 영토가 4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압록강, 두만강 넘어 만주 땅까지 우리 영토였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주재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윌리엄스 웰스(Williams S. Wells)가 1884년 뉴욕에서 발간한 중국지도는 당시 조선과 중국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보다 훨씬 북쪽에다가 붉은 선으로 표시했다.이처럼 간도를 조선 영토로 간주한 이 지도는 붉은 색으로 두텁게 칠한 국경선 일대를 중국과 한국의 중립지대(Neutral Territory between China and Corea)로 명기하기도 했다.(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1053..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은'조선시대의 서울'(상설전시 1존),'개항, 대한제국기의 서울'(상설전시 2존),'일제 강점기의 서울'(상설전시 3존),'대한민국 수도 서울'(상설전시 4존),'도시모형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서울'(상설전시 1존)은'조선의 건국과 수도 한양','한양의 변화','한양의 번영','한양도성 안 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조선전기 문신 김사형·이무·이회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포함하여 14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한국 천문학 최고의 자랑거리인 문화재로, 현재까지 발견된 천문도 중 관측연대 기준 세계..
국립고궁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은 3개의 층, 7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로 전시된 ‘조선의 국왕’실과 조선 5대 궁궐의 역사와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실이 있습니다. 2층 상설전시실은 임시휴관 중입니다.(재개관일시 : 2024. 11. 19.(화), 오후 2시) 1층에는 황제국의 선포와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살펴볼 수 있는 ‘대한제국’실이 있으며, 전시실 로비에서는 순종 황제와 황후가 타던 자동차 [어차]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즉위한 고종은 1875년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개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
고종 친서 원본.."을사늑약은 무효" 항일 활동최효안 기자2016. 11. 17. 21:10 https://tv.kakao.com/v/v1ebfU8089FYUlLzF78FJh7@my 그런데 오늘(17일)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11년째 되는 날입니다.당시 고종이 열강에 보낸 친서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고종의 항일 활동이 담겨 있는데, 고종 친서의 원본을 최효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 컬럼비아대 도서관 내의 희귀문서실.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담아 독일, 프랑스 등 9개국에 보낸 친서들입니다.이 친서에서 고종은 을사늑약이 왜 무효인지를 명확하게 밝힙니다.[일제가 위협해 강제로 이뤄진 것이며][나는 정부에 조인을 허가한 적이 없으며][이는 국제법을 위배한 것..
[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1-2]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바꿔라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입력 2019-03-12 08:00근세 세계 모든 문헌과 지도는 말한다. ‘만주는 한국땅’이라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최초 임시헌법의 ‘구한국(Old Korea)의 판도’가 최종 임시헌법 ‘대한(Great Korea)의 고유한 판도’로 해상도와 배율이 더욱 뚜렷해지고 확대된 배경과 취지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뇌부들의 국토인식이 한반도와 간도를 아우르는 ‘큰 한국, 대한(大韓)’일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다음 여덟 부문으로 요약해본다.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토는 삼천리 한반도뿐만 아니라 사천리 만주까지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을 이어받은 것은 국호뿐만 아니다. 대한제국의 사천리 ..
“대한제국 → 임시정부 → 대한민국 … 근대국가 정신 이어졌다” 중앙일보입력 2017.10.12 01:41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003406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를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 알고 있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근 기자] 120년 전 오늘이었다. 고종 황제는 근대국가의 시발점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그는 ‘국가(國家)’라는 말보다 ‘민국(民國)’이란 용어를 더 즐겨 쓰던 군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나라를 지칭하며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 예가 70%나 된다. 당시 고종을 직접 인터뷰했던 선교사들이 남긴 글에는 ‘고종 황제는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