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4. 대한제국 문화유산 (1)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 환구단 본문
1897년 고종 황제가 황제 즉위식을 하고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환구단(또는 원구단)에 다녀왔습니다.
1896년 2월 경복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여간 생활한 고종은 1897년 2월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하였습니다.
1897년 8월 14일 연호를 ‘광무(光武)’라고 정하고,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에 나아가 수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등극했습니다.
이때 조선의 국호를 ‘대한’으로 고쳐 대한제국의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했습니다.
다음 날 고종황제는 외국 공사들을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초청해 대한제국 선포를 알렸습니다.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리며 대한제국을 선포한 과정은 ‘고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고유제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십시오’라 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金)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십이장곤면(十二章袞冕:12개의 무늬가 들어간 곤룡포와 면류관)을 올리고 성상께 입혀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니 상이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국궁, 삼무도(三舞蹈), 삼고두(三叩頭), 산호만세(山呼萬世), 산호만세, 재산호만세(再山呼萬世)를 창(唱)하였다.”
▲ 원구단 원형 모습 © 권병주 |
환구단(또는 원구단)은 오랜 상고시대부터 매년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단군께서 친히 하늘에 제사를 올려 국태민안을 기원하여 왔는데 이 제천단이 바로 환구단(원구단)인 것입니다.
이 환구단(원구단)의 유래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등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고려사’에 의하면 서기983년인 고려 성종2년 정월에 황천상제인 삼신과,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의 오방위의 신위를 모시고 왕이 친히 ‘원구제’ 를 드렸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3년인 1394년과 세종 원년인 1419년에 ‘원구제’를 올렸고, 세조 임금때는 천제를 나라의 최대 행사로 제도화하여 세조 3년인 1457년부터 매년 ‘원구제’를 올렸으나, 천자가 아닌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중국의 압력과 사대주의자들의 강압에 의해 1464년 ‘원구제’를 마지막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433년이 지난 후 고종때에 이르러 천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의정 심순택의 상소를 가납하여, 팔도의 가장 명당 명소, 길지인 소공동에 환구단을 세우고, 천제제천권 회복과 함께,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 즉위의식을 올리고, 자주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 하였던 것입니다.
환구단 정문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지었습니다.
1967년 철도호텔이 철거되고 다시 조선호텔이 들어설 때 정문을 포함한 환구단의 대부분 시설도 함께 철거됐습니다. 다행히 황궁우와 석고(石鼓·돌북) 그리고 석조 대문(삼문)은 훼손을 면했습니다.
이때 철거돼 행방을 감춘 환구단 정문이 40년 만인 2007년 8월 발견되어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뒤쪽, 서울광장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왼쪽에 황궁우, 오른쪽에 석조대문(삼문)이 보입니다.
현재의 웨스턴조선호텔 자리에 있었던 환구단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부속건물인 황궁우는 원형대로 남아 있습니다. 팔각의 황궁우는 신위(神位)를 봉안하던 건물로 1899년에 환구단 북쪽 모퉁이에 세워졌습니다.
황궁우는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내부는 통 건물로 천장에는 황금색 용무늬 등 황제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황궁우
환구단 입구에 있는 석고(石鼓)는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세운 석조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용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정교하게 조각돼 눈길을 끕니다.
석고
석조대문(삼문)
황궁우에서 바라본 석조대문(삼문) 건너편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 조선호텔이 보입니다.(출처; 위키백과)
석조대문(삼문) 너머에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 조선호텔이 보입니다.(출처; 위키백과)
환구단의 난간석 석물
그런데 위에 보이는 석물은 일제가 1913-1914년 조선 경성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을 헐어서 남게 된 '환구단 난간석 석물'이라고 합니다.
환구단의 난간석 석물
환구단을 구성했던 3개 층의 원형 난간석의 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환구단의 역사적 실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환구단의 난간석 석물
황궁우
서울시는 환구단 주변에 공원을 만들어 서울광장, 덕수궁을 연결하는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참고자료>
[신병주의역사저널]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 환구단 (daum.net) 2023. 12. 15.
<우리 마을 문화재>1897년 고종이 황제 즉위식과 제사 위해 옛 남별궁터에 조성 (naver.com) 2018.02.21.
고종의 혼 서린 환구단 정문, 42년만에 제모습 (chosun.com) 2009.12.10.
민족성지 '환구단'은 하늘민족의 자부심!: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06/11/24
환구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남국 > 대한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대한제국 (6) 1909년 안중근의사 하얼빈 의거 (21) | 2024.12.28 |
---|---|
4.대한제국 문화유산 (2) 경운궁(덕수궁) (147) | 2024.11.27 |
2. 대한제국의 강역 (1) 대한제국의 북계 (46) | 2024.11.08 |
1. 대한제국 (5) 1907년~1910년 정미의병 (22) | 2024.10.04 |
1. 대한제국 (4) 1905년 을사늑약 (21)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