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

 

출처; 전체 < 기사목록 - 주간조선 (chosun.com)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직전 가미카제(神風)호가 도쿄-런던 비행에 성공했다. 영국왕 조지 6세의 대관식 축하를 겸해 일본의 항공력을 과시한 것이다. 다음 해 9월 영국, 프랑스는 소련의 팽창을 의식하며 나치 독일과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1939년 8월 소련도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아시아는 중일전쟁 중이었지만 유럽은 계속 평화를 구가하는 듯했다. 불과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4.01.18

시청률 50% 이상의 경이적 기록을 세우고 해외로도 수출된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 속 이승만 대통령은 “나는 주로 미국에 살아서 한문은 잘 몰라요”라고 말한다. 실제 이승만은 한시를 즐겨 쓸 정도로 한문에 능통했다. 이승만은 만주사변 이후 제네바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대변하면서 영어는 물론 한문으로 중화민국(현재 대만) 외교관들과 소통했다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4.01.0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푸틴은 지정학적 에세이 한 편을 인터넷에 올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 요지였다. 현상 변경을 위해 역사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면 끝이 없다. 그러면 러시아의 연해주도 불안해진다. 러시아는 1689년 청나라 만주 황실과 체결했던 네르친스크조약을 깨고 만주 동쪽 연해주를 차지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2.21

러시아 내전과 대한 독립 운동의 분열 1917년에 시작된 러시아 내전으로 5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미국 남북전쟁(1861~65)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은 20세기 세계 제국이 되면서 내전의 상처를 덮었다. 러시아도 1922년 공산 제국 소련으로 팽창하며 내전의 상처를 미봉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 내전의 상처는 다시 터졌다. 푸틴은 공산당을
오피니언 > 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2.07

제1차 세계대전은 약 15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청나라에서 벌어졌던 태평천국내전(1850~1864)보다 사망자 수는 적었지만 그 영향은 더 세계적이었다. 세계의 여러 제국이 해체되고 독립국들이 늘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여러 독립국들이 생겨났다. 아프리카에서 칭다오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렀던 독일 제국도 해체되었다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1.23

1895년 청일전쟁에서의 참패로 청 황실의 권위는 무너졌다. 전제정을 고수하면서 서양의 군사 기술만 이식하려던 양무운동은 실패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처럼 입헌군주정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족 유교 지식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던 광서제와 달리 서태후(西太后) 등은 입헌군주론을 만주 황실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1910년 8월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오피니언 > 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1.09

▲26일 자 A35면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에서 이범진(李範晉) 공사가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즈음해서 ‘프랑스 대통령의 신임장을 받았다’를 ‘프랑스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로 바로잡습니다. 신임장은 특정인을 외교 사절로 파견하는 취지와 그 사람의 신분을 상대국에 통고하는 문서입니다.
스페셜 > 알립니다 | | 2023.10.28

에펠탑이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상징했듯이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는 화려한 알렉산드르 3세교(橋)가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1892년 프랑스와 동맹을 맺을 당시에는 황제정 러시아와 공화정 프랑스의 동맹이 ‘야수와 미녀의 동맹’처럼 풍자되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프랑스는 비스마르크 국제 체제가 강박했던 국제적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0.26

1894년 조선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은 유교 성리학적 관념에 기초한 천하 질서에 조포(弔砲)를 쏘았다. 그 충격은 인도인들까지 동원한 영국군이 청군을 압도했던 아편전쟁(1840~1842) 때보다 컸다. 유교적 천하 질서는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약 1500만명)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태평천국의 도전(1850~1864)도 이겨냈었다. 서양 열강은 예수의 동생이라고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10.12

“조선 국왕은 공문서와 모든 조약에 청나라의 연호와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 만약 허약한 조선이 지금 당장 독립한다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 머지않아 코리아라는 나라(a Korean nation)가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쓴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穆麟德, 1847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9.14

 

 

1588년 잉글랜드는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상륙을 막아냈다. 훗날 스코틀랜드를 아우르며 해양 패권 국가로 성장한 영국은 영어와 그리니치 표준시로 상징되는 세계적 표준 국가로 성장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지만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나라를 지키는 것이 남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보다는 낫다.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이웃 국가의 힘을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8.31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은 청 제국과 러시아의 대전을 막았다. 라틴어로 조약문을 쓴 페레이라(Thomas Pereira) 신부는 북경에서 네르친스크까지 갔다. 직선으로 약 1350km가 넘는 거리다. 페레이라 신부의 고국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와 맺은 토르데시야스조약(1494)에 따라 브라질 지역부터 태평양까지 가톨릭을 전파, 보호하는 보교권(保敎權, Protectorate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8.17

17세기의 이상 저온은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서 러시아인들의 동진을 촉진시켰다. 강추위로 인해 모피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시베리아의 담비, 수달, 밍크 등을 사냥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시베리아의 하천들은 결빙기에는 썰매, 해빙기에는 배로 종횡무진 이동 가능한 고속도로가 되었다. 청나라는 양자강 이남에서 만-한(만주족-한족) 대결에 골몰하느라 러시아 원정대의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8.03

1637년 인조의 항복을 받은 만주인들은 왜 조선을 점령하지 않고 떠났을까? 첫째, 당시 조선에서 천연두가 유행했기 때문에 서둘러 조선을 떠났다는 해석이 있다. 둘째, 몽골인들과 달리 만주인들은 적어도 당시까지는 한반도를 발판 삼아 일본 정복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셋째, 역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홍타이지가 그의 아버지 누르하치의 뜻을 따라 명나라 정복에 집중하고자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7.20

1592년 이후 1598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전쟁에 대한 기억은 워낙 강렬해서 다른 기억들을 지워버린다. 임진왜란 이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오래된 위협은 남쪽 바다보다 아코디언처럼 경계선이 요동쳤던 북쪽 대륙으로부터 왔다. 히데요시가 침략하기 5년 전인 1587년 녹둔도를 침략했던 만주인들은 육군으로 복무 중이던 이순신 등에 의해 격퇴되었다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7.06

임진왜란 전후 유럽은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에 이어서 중부 유럽마저 1618년부터 30년 종교전쟁에 휩싸였다. 축구 리그전이 열리듯 참혹한 전투들이 이어졌고, 1648년까지 4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전쟁의 광기를 봉인하고 평화의 염원을 실현한 것은 웨스트팔리아(베스트팔렌) 지역에서 체결된 오스나브뤼크조약과 뮌스터조약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6.22

제국들의 해체… 최초의 ‘세계전쟁’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은 약 15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청나라에서 벌어졌던 태평천국내전(1850~1864)보다 사망자 수는 적었지만 그 영향은 더 세계적이었다. 세계의 여러 제국이 해체되고 독립국들이 늘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여러 독립국들이 생겨났다
뉴스Q | | 2023.06.08

임진왜란은 16세기 세계에서 둘째로 사상자가 많았던 전쟁이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왜 대륙을 침공했는지에 관한 정설은 아직 없다. 일본 통일 이후 남아돌던 군사력의 배출, 1591년 아들 쓰루마쓰의 급사에 따른 보상심리, 명나라와의 무역 문제 등이 거론되어 왔다. 일본 주재 예수회 선교사 프로이스(Luís Fróis)는 히데요시의 개인적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6.08

몽골 제국의 칸은 그의 후예들이 황궁 안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으로 나가기를 바랐다. 위대한 제국의 명분과 함께 정복지도 나누어 주었다. 제국은 4개의 울루스(국가)로 분양되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 지역의 주치 울루스, 스탄 계열 국가들과 신장 위구르 지역에 걸친 차가타이 울루스, 이란과 이라크 지역을 통치한 훌레구 울루스, 그리고 예케 유안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5.25

세계사에서 독립국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제국들은 분열했고, 국제사회는 확대되었다. 국제연합(UN)에 가입한 독립국들은 193개에 달한다. 현재 유라시아의 많은 독립국들도 과거 몽골제국의 권역 안에 있었다. 알렉산더제국에 비해 4배 이상 넓었던 몽골제국은 대영제국보다는 작았지만 소련제국보다 넓었다. 칭기즈 칸이 되는 테무진(1162~1227)은 초원의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5.1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거리가 멀수록 관심은 작아진다. 1950년 코리아의 6·25전쟁 당시도 비슷했다. 많은 세계인은 브라질 월드컵에 더 열중하고 있었다. 무관심해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1950년대 코리아에서의 열전(熱戰)은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뻔도 했지만 국제적 노력으로 정전에 성공하면서 세계대전으로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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