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 한국의 세계유산 (heritage.go.kr)

고인돌은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거석기념물의 하나이며 피라미드(Pyramid), 오벨리스크(Obelisk)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고인돌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고인돌 유적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창고인돌유적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화순고인돌유적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96기(고인돌 287기, 추정고인돌 309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또한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강화고인돌유적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60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6.399m, 높이 2.454m의 우리나라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세계유산적 가치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유적들은 거대한 석조로 만들어진 2,000∼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의식 기념물로서 선사시대 문화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당시의 기술과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등재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III)
  • (III)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청동거울]

2008-10-14 16:09

<국보 다뉴세문경 제작비밀 풀렸다> | 연합뉴스 (yna.co.kr)

제작비밀 풀린 국보 다뉴세문경

(서울=연합뉴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이 입자가 가는 모래를 이용해 만든 거푸집인 사형(砂型)으로 주물했음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런 흔적은 사진에서 보이는 주연부(테두리)에 존재하는 주조 결함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했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구리와 주석 비율 66:34..'砂型' 거푸집 활용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최병현)이 소장한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정확한 출토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짜 유물일 가능성은 "제로"라고 최병현 관장은 자신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자나 전문가들이 그 복원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실패했다. 현대의 어떠한 기술로도 복제 불가능하니 "어찌 가짜이겠느냐"는 것이다.

 
국보 다뉴세문경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을 지난해 7월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이 분석하고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왼쪽은 보존처리 전이고 오른쪽은 보전처리를 완료한 상태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이 다뉴세문경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그 비밀의 문이 마침내 열리기 시작했다.

기독교박물관 의뢰로 지난해 7월부터 이 국보경에 대한 과학적 보존처리를 맡아온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이 성분을 분석하고 제작 방법을 구명하려는 노력을 펴왔다.

그 구체적인 성과가 16일 오후 2시 기독교박물관이 이 대학 한경직기념관에서 개최하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과학적 보존처리' 학술대회에서 공개된다.

이에 따르면 우선 이 거울은 구리(Cu)와 주석(Sn)을 65.7 대 34.3 비율로 섞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를 주물해 낸 거푸집을 입자가 가는 모래를 재료로 해서 만들고 그에다가 각종 문양을 조각한 "사형(砂型)임을 확인함으로써 그동안 다뉴세문경의 제작에 사용한 거푸집의 재질에 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고 보존과학실은 말했다.

제작비밀 풀린 국보 다뉴세문경

(서울=연합뉴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이 입자가 가는 모래를 이용해 만든 거푸집인 사형(砂型)으로 주물했음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런 흔적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거울 단면에 존재하는 거푸집(사형)에서 분리한 주물사가 발견됨으로써 가능했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지름 21㎝인 이 다뉴세문경은 거울 뒷면에 0.3㎜ 간격으로 무려 1만3천개에 이르는 가는 선을 새겨넣은 섬세한 제작 기법으로 인해 청동기시대 말기 한반도에서 어떤 기술로 이처럼 정교한 금속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보존과학실은 이 거울을 만든 거푸집이 사형이라는 사실은 "거울 면과 문양 면에 걸쳐 있는 주조 결함에서 거푸집에 사용한 주물사(鑄物砂.거푸집 모래)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구리와 주석의 혼합비율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라는 중국 고대 문헌에 보이는 동경 제작 기법과 유사하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보존과학실은 덧붙였다.

16일 학술대회에는 청동기시대 고고학 전공인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다뉴정문경(다뉴세문경의 다른 이름)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다뉴세문경의 도안과 제작기술의 발전(이양수.국립경주박물관) ▲국보경의 성분 조성(유혜선.국립중앙박물관) ▲국보경의 제작기술(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등 세 가지 주제 발표가 있다.

토론자로는 이청규 영남대 교수와 조진선 전남대 교수가 나선다.

 

 

 

2008.11.11위클리경향 799호

[문화]2400년 전 청동거울 ‘신비한 비밀’ - 주간경향 (khan.co.kr)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초정밀 문양’ 제작 비법 실마리 나왔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경향신문사>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한반도에 최첨단 나노 기술이 존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이 시기 한반도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밀 기술이 존재했음을 웅변하는 유물이다. 다뉴세문경 제작 방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다.

다뉴세문경은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한 청동 거울이다. 다뉴(多紐)란 뉴(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는 뜻으로,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이 고리에 끈을 걸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 뒷면에는 직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세문(細汶)은 이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무늬가 굵고 거친 거울은 따로 다뉴조문경(多紐粗汶境)이라고 부른다. 다뉴조문경은 청동기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름 21㎝ 공간에 수많은 선과 원 새겨
다뉴세문경은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같은 종류의 청동 거울이 발견된다. 숭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숭실대 국보경)은 1960년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100여 점의 다뉴세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숭실대 국보경은 한때 출토지가 강원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고(故)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을 빌려 국보경은 원래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발견했는데 중간상인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원도에서 발견한 것으로 둔갑했다고 전했다.

국보 다뉴세문경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문양의 정교함에 있다. 국보 다뉴세문경은 지금껏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21.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한데다, 원과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최고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린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로지 육안과 초보적인 수준의 기구에 의존해서 이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신비감은 물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 논란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위_ 수많은 직선을 이어서 그린 다뉴세문경의 삼각 문양. 아래 _ 다뉴세문경 외구의 동심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다뉴세문경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것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만든 주물 작품이라는 점이다. 도안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그 도안을 바탕으로 주물을 떠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주물 기술이 필요하다. 주물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안의 정교함이 희생되어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거울이 도안과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푸집이 출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푸집의 재질과 형태는 더욱더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었다.

지난 10월 16일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이 개최한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과학적 보존 처리’ 학술대회에서 다뉴세문경의 제작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이 발표한 두 개의 논문이 그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7월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올해 8월까지 거울 표면이 갈라지는 현상이 발생한 다뉴세문경에 대한 보존 처리를 진행하면서 제작 방법을 규명했다. 보존과학팀은 이 과정에서 국보경을 발견 당시와 같은 19개의 파편으로 분리하고 파편의 단면을 X-선형광분석기와 입체 현미경 등을 동원하여 분석했다.

다뉴세문경 제작의 비밀을 푸는 관건은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 제도 방법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국보 다뉴세문경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중요한 것은 주석 함유량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지지만 주석 함유량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인장 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작은 충격만으로도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에 따르면 다뉴세문경의 구리 대 주석 비율은 65.7:34.3으로 다른 청동 거울에 비해 주석 함유량이 높은 편이고, 제작 당시 거울면의 빛깔은 은백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푸집의 재료는 모래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거푸집의 재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았다. 몇 차례 복원 시도에서도 동판이나 납 등에 무늬를 새긴 뒤 밀랍판으로 눌러 모양을 본뜨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종 주물에서 무늬가 망가지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보존과학팀은 거울 면과 문양 면에 걸쳐 있는 주조 당시 발생한 결함 부위를 분석했을 때 거푸집에 사용한 주물사(거푸집 모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거푸집의 재질이 모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완성된 거울의 단면에 모래가 밀려 올라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푸집이 그리 튼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가장 큰 관심거리다. 보존과학팀은 화상분석기로 21개의 원에 대해 반지름을 구한 결과, 반지름 분포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미루어볼 때 이 원들은 다치구(일종의 컴퍼스로 여러 개의 바늘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컴퍼스를 사용하여 한 번에 원을 하나씩 그린다면 이처럼 일정한 분포의 반지름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은 또 각각의 선과 동심원이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놓았다.

 

거품집 재료는 모래로 추정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부분 또한 많다. 우선 다치구를 사용하여 원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 다치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1㎝ 길이 안에 무려 20개의 바늘을 박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정밀 기계의 도움 없이 어떻게 다치구를 만들어냈는지는 수수께끼다. 또한 직선과 동심원이 그려진 순서를 추정했다고 하지만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 없이 청동기 시대의 장인이 어떻게 그처럼 복잡한 문양을 그려냈는지도 상상력의 영역에 있다. 무엇보다도 제작 방법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과 실제 복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의 장인이 실제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비밀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뉴세문경 복원에 도전했던 한 장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정밀한 제작 기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찬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역사채널e - The history channel e_청동거울의 비밀

 

 

 

[간두령]

입력 2016. 7. 5. 03:08
작년 7월 태양광시설 불법공사.. 기원전 2세기 묘 1기 파헤쳐4m 떨어진 지점서 간두령 발견 등.. 청동유물 대부분 제 위치 잃어문화재청, 사고 25일뒤 현장조사
[동아일보]
지난해 7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 과정에서 파괴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 불법 굴착으로 &lsquo;ㄱ&rsquo;자의 토광 일부(위 사진 원 안)만 남아 있다. 토광 아래로 청동투겁창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국보급 유물인 &lsquo;간두령&rsquo;(아래) 한 점 등 33점의 유물이 나왔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 토광묘(土壙墓·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는 무덤)가 불법 공사로 90%나 파괴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보급 ‘간두령(竿頭鈴·청동방울)’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이 제 위치를 잃고 흩어져 출토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국가 사적인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굴착기에 잘려 나가는 등 중요 유적에 대한 파괴가 잇따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최근 입수한 ‘부여 세도면 청송리 35-42번지 긴급발굴조사 약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발전 시설 건설업체인 ㈜유엔알이 지난해 7월 3일 공사를 벌이면서 입회조사(문화재 조사 전문가의 참관 아래 굴착을 개시하는 것)를 거치지 않고 땅을 파다 기원전 2세기의 토광묘 1기를 파괴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9월 문화재청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것이다.
 

이 토광묘 일대는 반경 300m 안에서 고려, 조선시대 유물이 나온 적이 있어 2년 전 지표조사 때 입회조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사업시행자는 입회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불법으로 땅을 팠다. 입회관이 도착했을 당시 이 무덤은 굴착기에 의해 훼손돼 길이 1.2m, 너비 0.6m, 높이 0.2m만 남아 있었다. 무덤 깊이가 최소 1.5m 이상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불법 공사로 토광묘의 약 90%가 무너진 셈이다.

무덤에서는 간두령뿐 아니라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청동투겁창, 청동 꺾창(동과·銅戈), 청동도끼(동부·銅斧), 대롱옥(관옥·管玉), 돌화살촉 등 33점에 이르는 유물이 나왔다. 특히 학계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제사장이나 수장이 농경의례를 집전할 때 사용한 무구(巫具)인 간두령에 주목한다. 수량이 극히 드문 데다 삼한지역의 초기 철기문화를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앞서 충남 논산과 덕산에서 출토된 간두령 4점은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무단 굴착으로 토광묘에서 4m나 떨어진 지점에서 간두령이 발견되는 등 대부분의 유물이 제 위치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간두령은 통상 2개가 한 쌍으로 나오지만 이곳에서는 한 개만 찾을 수 있었다.

정인성 영남대 교수(고고학)는 “유물은 원래대로 유구와 함께 발견돼야 출토 정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고대사 해석에 중요한 단서가 될 자료들이 훼손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늦장 대응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사건 발생 뒤 25일이나 지나 토광묘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다시 20여 일이 흐른 뒤 긴급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현재는 원래대로 복토된 상태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고고학)는 “유적 파괴로 중요한 청동 유물이 여기저기 흩어진 상황에서 현장조사와 긴급 발굴조사에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입법 미비로 시굴없이 공사 개시… ‘유물 훼손’ 사전 못 막아 ▼

잇단 유적 파괴 원인과 대책
올 4월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 역사문화관 불법 공사로 파괴된 통일신라시대 건물 유적. 굴착기로 구덩이를 파면서 적심석(원으로 표시된 곳)이 잘려나갔다. 동아일보DB
 

 

최근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皇龍寺址)에 이어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土壙墓)도 불법 공사에 의해 파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잇단 유적 파괴의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장문화재보호법 등 관련 법규의 허점과 문화재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발굴법인 부실화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 구멍 뚫린 문화재 보호 법제

지난해 7월 훼손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에서 발견된 잔줄무늬거울(多紐細文鏡). 동경 가운데 조각은 끝내 찾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7월 파괴된 이 토광묘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에 앞서 2014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쳤다.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사업 면적이 3만 m² 이상이면 유물이나 유적이 지표에 노출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지표조사를 받아야 한다.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입회조사 혹은 시굴, 발굴조사 여부가 결정된다. 문제는 지표조사로는 유물, 유적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입회조사는 굴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일단 공사가 중단되는 시굴이나 발굴조사에 비해 문화재 보호 조치가 훨씬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번 토광묘의 경우 입회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불법으로 땅을 파긴 했지만, 만약 시굴 결정이 났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입회조사는 개발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생긴 제도”라며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일본처럼 입회조사 없이 시굴조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표조사나 입회조사는 시굴과 발굴 등 모든 문화재 조사 비용을 사업 시행자가 부담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조사에 들어가는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이 지연되는 데 따른 금융비용 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학계 일각에서는 일본처럼 시굴조사를 의무화하되 국가 예산을 일부 투입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 문화재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잇단 유적 파괴에는 문화재 보호 주무 관청인 문화재청의 허술한 관리감독에도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문화재 업무를 위임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황룡사지와 세도면 토광묘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업시행자에 대해 문화재청은 직접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자체에 고발 조치를 요청하는 공문만 보냈을 뿐이다.

문제는 황룡사지 내 역사문화관 건립 공사의 경우 경주시가 직접 추진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공사 과정에서 경주시가 시공업체를 압박해 준공을 서두른 정황까지 확인됐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올 4월 경주시 책임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시에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 넘치는 발굴법인 부실화

요즘 국내 유적 발굴은 대부분 발굴 전문 법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로 발굴 수요가 줄고 있지만, 발굴법인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발굴 전문 조사기관 수는 2009년 67개에서 지난해 160개로 2배 넘게 급증했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른바 ‘발굴 단가 후려치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2011∼2013년 표준품셈(정부가 고시하는 적정 발굴 비용) 대비 실제 발굴 비용은 공공시행 사업 79%, 민간시행 사업 58%로 조사됐다. 통상 발굴법인이 최소한의 이윤을 내려면 이 수치가 70∼80%는 돼야 한다. 민간 시행 사업의 경우 발굴법인이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한 고고학계 관계자는 “발굴법인들이 손실을 내지 않기 위해 조사 인원이나 기간을 줄이면 발굴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조선시대 > 고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조선 영토  (0) 2021.01.30
고조선 고고학  (0) 2020.09.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