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고조선 (5) BC 1782년~BC 1721년 13세 단군 흘달, BC 1733년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서쪽 방위의 루성에 모였다. 본문
1. 고조선 (5) BC 1782년~BC 1721년 13세 단군 흘달, BC 1733년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서쪽 방위의 루성에 모였다.
대야발 2020. 9. 7. 21:25
13세 단군 홀달(혹은 대음달) 재위 61년
기묘 원년(BC 1782)
갑오 16년 주와 현을 나누어 정하고 직책의 한계를 정하였다. 관리는 권력을 겸하는 일 없고 정치는 법칙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니 백성은 고향을 떠나는 일 없 이 스스로 일하는 곳에서 편안하여,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넘쳤다.
이 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홀달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하니, 은나라의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은 조약을 위배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고 하였다.
이에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 우량을 파견하여 견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과 합쳐서 진격하여 관중의 빈 기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
무술 20년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은 돌아다닐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이라고도 불렀다.
무진 50년 (BC 1733)
오성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기묘 61년
단제께서 붕어하시니 백성들은 모두 밥도 먹지 않 았으며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명을 내려 죄수들을 석방하고 산것을 죽이지 않으며 널 리 놓아주도록 하였다. 해를 넘겨 장사지낸후 우가인 고불이 즉위하였다.
13세 흘달 단군 오성취루(五星聚婁)기사
재위 50년 무진(단기 601, BC 1733)년
오성(五星)이 루성(婁星)에 모이고, 황학(黃鶴)이 날아와 금원(禁苑)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BC 1733년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서쪽 방위의 루성에 모였다는 것인데 서울대학교 라대일, 박창범 두 박사가 과학적 사실임을 검증하고 1993년 한국천문학회지에 ‘단군조선시대 천문기록에 관하여(ON ASTRONOMICAL RECORDS OF DANGUN CHOSUN PERIOD)’라는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오차가 1년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 박사도 5행성이 모였고 《단군세기》의 기록이 옳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역사의 블랙홀 한복판에 천문관측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의 ‘무진오십년오성취루’ 기록이다. 이 기록은 한자로 ‘戊辰五十年五星聚婁’ 같이 적는다. 여기서 ‘무진오십년’은 BC 1733년을 말하고 ‘오성’은 물론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을 말한다. ‘취’는 모인다는 뜻이고 ‘루’는 동양 별자리 28수의 하나다. 즉 이 문장은 ‘BC 1733년 오성이 루 주위에 모였다’ 같이 해석된다.
이 기록을 처음으로 검증해 본 천문학자는 라대일 박사와 박창범 박사다. 그 검증 결과는 ‘단군조선시대 천문기록에 관하여’ 논문으로 작성돼 1993년에 발행된 한국천문학회지에 실렸다. 나는 큰일을 해낸 두 후배 천문학자가 너무 자랑스럽다. 안타깝게도 라대일 박사는 요절했다.

라대일-박창범 박사의 역사적 논문 첫 페이지.
이 기록을 천문학적으로 확인하는데 슈퍼컴퓨터 같은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도 천문 소프트웨어를 노트북에서 돌려봤다. 그 결과 BC 1734년 7월 중순 저녁 서쪽 하늘에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수성·토성·목성·금성 순서로 5행성이 늘어서 ‘우주쇼’를 연출했다!

천문 소프트웨어 'Starry Night' 이 보여주는 BC 1734년 7월 12일 오성취루.
오차가 1년 있기는 하지만 4천 년 전 일을 추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오성취루라고 봐야 한다. 그 당시 달력이 어땠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28수 중 ‘루’가 아니라 ‘정’ 옆에 모인 것도 4천 년 전 28수가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똑같으면 이상한 것 아닌가.
중요한 사실은 5행성이 모였고 옛 기록이 옳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보름 이상 계속됐기 때문에 장마철이었어도 고조선 천문학자들이 놓쳤을 리 없었다. 특히 제일 아래쪽에 있었던 행성이 가장 밝은 금성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위 결과를 바탕으로 BC 1734년 7월 12일의 오성취루 상상도를 그려봤다. 위쪽부터 화성, 수성, 달, 토성, 목성, 금성의 순서로 황도를 따라 배열돼 있다. 아름답지 않은가?

BC 1734년 7월 12일 오성취루 상상도.
달은 하루에 약 13도씩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 전인 7월 11일에는 목성과 금성 사이, 하루 후인 7월 13일에는 화성 위에 자리를 잡는다. 7월 11, 12, 13일을 벗어나면 달은 더 이상 오성취루에 참여하지 않는다.
오성취루 같은 천문현상을 임의로 맞추거나 컴퓨터 없이 손으로 계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BC 1734년 우리 조상들은 천문현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조직과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천문대를 가진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고조선을 신화의 나라로 치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최근 오성취루 기록이 남아있는 ‘환단고기’를 놓고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혐오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극한대립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무엇이든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유행병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경우든 ‘환단고기’를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채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옛날에는 복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일일이 옮겨 적었다. ‘환단고기’의 내용 중에는 후세 사람들이 옮겨 적으며 추가한 부분, 즉 ‘가필’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 가필됐다 해서 ‘환단고기’를 쓰레기 취급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이 세상에 전혀 가필되지 않은 경전이나 역사서가 있을까? 아마 파피루스도 가필됐을 것이다.
왜 ‘환단고기’에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과연 그 많은 내용을 한 사람이 다 창작해낼 수 있었을까? 언뜻 생각해봐도 ‘환단고기’ 내용이 전부 엉터리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내용 중 일부는 진실일 수 있는 것이다.
Premium Chosun, 박석재의 우주 이야기(24) 〈'환단고기' 내용 중 개천에 관련된 부분은 진실이다〉, 2014년 10월 1일.
<자료출처>
https://www.hwandan.org/?m=bbs&bid=news4&uid=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