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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조선의 강역 (1) 고조선은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 유역과 갈석산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여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로부터 내몽고자치구 동부 · 요령성 전부 · 길림성 전부 · 흑룡강성 전부 및 한반도 전부를 그 강역으로 하고 있었다 본문

고조선시대/고조선

2. 고조선의 강역 (1) 고조선은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 유역과 갈석산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여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로부터 내몽고자치구 동부 · 요령성 전부 · 길림성 전부 · 흑룡강성 전부 및 한반도 전부를 그 강역으로 하고 있었다

대야발 2024. 4. 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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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는 오늘날 봉천성의 서북과 동북(개원 이북과 흥경 이동)인 길림성·흑룡성 및 지금의 연해주 남쪽은 신조선의 소유였고, 요동반도(개원 이남과 흥경 이서)는 불조선의 소유였으며, 압록강 이남은 말조선의 소유였다고 보았다.(1)

 

 

 

 

정인보는 한반도와 개원(開原) 이북, 흥경(興京) 이동으로, 길림(吉林)과 봉천(奉天)에서 흑룡강성(黑龍江省)에 이르는 지역을 거의 전부 영유하고 중국과 패권을 다투었다.(2)

 

 

 

리지린은 고조선 위치에 관한 사료를 가능한 정도로 수집하여 종합한 결과 기원전 3세기 초까지는 료동, 료서, 우북평에까지 이르렀고, 기원전 3세기 초에 서방의 광대한 령역을 연에게 탈취당한 결과 오늘의 대능하(패수) 이동 지역으로 축소되였다고 인정하였다.(3) 

 

 

 

 

 

유 엠 부틴은 요동 지방의 대부분 지역, 길림 지방의 대부분(길림의 서북과 동쪽 지역 제외), 한반도 북부(함경북도의 북쪽 지역과 강원도의 남쪽 지역 제외)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요서 지역은 기원전 3세기에 연이 흥기하기 전까지 고조선에 속했으며 고조선의 후기 단계에서는 동쪽 지역으로 한정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4)

 

 

 

 

윤내현은 고조선은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 유역과 갈석산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여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로부터 내몽고자치구 동부 · 요령성 전부 · 길림성 전부 · 흑룡강성 전부 및 한반도 전부를 그 강역으로 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고조선 말기인 중국의 전국시대로부터 서한 초기까지 서기전 5세기경부터 서기전 2세기 경까지의 고조선 서쪽 국경은 지금의 난하와 갈석산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국시대 연나라와 진제국이 쌓았던 연장성과 진장성은 바로 이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상에 위치해 있었다. 서한 초에 이르러서는 고조선의 서쪽 국경이 서한지역으로 옮겨져 고조선의 강역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고조선의 국경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만조선이 건국되기까지 변화가 없었다.

 

 

고조선 중기인 서기전 16세기경까지도 난하 유역은 고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보다 앞선 고조선 초기의 서쪽 국경은 분명하게 알 수가 없으나 중국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며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자료에 난하 유역은 고조선과 동일한 문화권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고조선의 서쪽 국경을 고증한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도 확인되었다. 지난 날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과 중국 사이에 동호의 영토가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조선은 중국의 연 · 진제국 · 서한제국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조선과 중국 사이에 동호의 영토가 있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이 그 말기에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략을 받아 서부 영토 2천여 리를 빼앗겼던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고조선은 붕괴되기까지 그 서쪽 국경이 난하 유역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적이 없다. 오히려 때에 따라 난하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견해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진개의 침략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고조선은 서부 영토를 바로 수복했을 뿐만 아니라 연나라의 영토 일부를 빼앗아 침략을 응징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고조선 후기의 강역도

 

 

고조선의 중기인 서기전 16~14세기 이후 고조선의 북쪽 경계는 대체로 지금의 흑룡강 유역과 그 상류인 어르구나하(額雨古納河) 유역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이었다. 그리고 고조선의 세력은 필요에 따라 때로는 동북쪽으로 흑룡강을 넘어 연해주지역까지 미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조선의 강역은 고조선 초기부터 유지되어 왔을 가능성이 많은데, 고조선 초기에 관한 자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고조선 초기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필자의 견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의 견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고조선의 북계와 남계에 대한 필자의 고증 결과를 이미 확인된 고조선의 서쪽 경계와 연결시켜 보면 고조선은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 유역과 갈석산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여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로부터 내몽고자치구 동부 · 요령성 전부 · 길림성 전부 · 흑룡강성 전부 및 한반도 전부를 그 강역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5)

 

 

 

신용하는 고조선 연방제국의 최성기 영역은 북으로는 흑룡강 계선, 남으로는 제주도와 대마도, 서로는 요서의 난하를 건너서 북경 부근의 영정하(永定河), 동으로는 연해주 오호츠크해안까지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고조선 중앙 본국과 후국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리면, 입체적으로는 고조선 제왕(단군)이 정상에 있고, 그 아래 각급 후국들이 피라미드형으로 종속돼 있는 형태였다. 고조선 본국을 중심에 놓고 후국들을 방위별로 재분류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고조선의 중앙본국: 조선(직령지·밝달조선·發朝鮮·고조선)

②남부 후국: 진(辰·震)국

③동부 후국: 옥저(沃沮)·읍루(읍婁)

④북부 후국: 부여(夫餘)

⑤요동지역 후국: 양맥(良貊)·구려(句麗)·비류(沸流)·개마(蓋馬)·구다(句茶)·행인(荇人)·임둔(臨屯)

⑥요서지역 후국: 고죽(孤竹)·불영지(弗令支)·불도하(不屠何)·청구(靑丘)·진반(眞潘)·동호(東胡)·원오환(原烏桓)·선비(鮮卑)·고마해(庫莫奚)·원정령(原丁零, 원 투르크족)·오손(烏孫)

⑦동부 내몽골지역 후국: 산융(山戎, 원 훈족)·원유연(原柔然, 원 아발족)·실위(室韋, 원 몽골족).

이를 평면으로 그리면, 고조선 본국이 정중앙에 있고, 다수의 후국이 그 지배와 영향을 받으면서 주변에 연결돼 있다.

 

 

고조선의 4대 후국으로서는 남으로 진국, 북으로 부여, 동으로 옥저, 서로 고죽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수십 개의 후국이 있었다. ‘고려사’에는 단군조선의 후국이 약 70개국이었다고 시사했다. 이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그림 1> <그림 2>는 고조선 영역의 제1단계와 제2단계. <그림 3>은 제3단계 최전성기. <그림 4>는 제4단계 위만조선 시기(BC 194∼BC 108).

 

 

 

 

고조선이 고(古) 한반도에서 건국돼 고대 연방제국의 최전성기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눠 볼 때, 제1·2 단계의 영역을 <그림 1>과 <그림 2>와 같이 대강 그려 볼 수 있다. 고조선 국가 조직의 연맹적 연방제국의 강점은 중앙 본국이 비교적 안정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중앙 본국이 강력해 후국들을 통제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중앙 본국이 쇠약해지고 지방 후국이 강성할 때에는 후국의 분리독립이 용이해진다는 것이 약점이다.

 

 

고조선의 통치 영역에 반드시 후국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 선학은 신채호 선생이었다. 그는 “단군조(檀君朝)의 정치통일구역이 그와 같이 넓어, 북으로 흑룡강을 지나며, 남으로 현해(玄海)를 건너며, 서로 지나(支那)의 연해안과 동몽고(東蒙古)를 포내(抱內)했다”(‘조선상고문화사’)고 썼다. 

 

실제로 고조선 연방제국의 최성기 영역은 북으로는 흑룡강 계선, 남으로는 제주도와 대마도, 서로는 요서의 난하를 건너서 북경 부근의 영정하(永定河), 동으로는 연해주 오호츠크해안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것이었다. (<그림 2> 참조) 

 

일찍이 신채호 선생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BC 343∼BC 277)이 ‘동황태일’(東皇太一·동쪽의 황제가 가장 첫째다)이라는 노래를 ‘초사’(楚辭)의 첫머리에 수록해 단군왕검을 동방의 최초·최고의 ‘황제’로 기렸음을 시사한 바 있다(‘조선상고사’).(6)

문화일보, <신용하의 지식카페>고조선 ‘8방의 후국들’ 통해 고대 연방제국 발전 기반 다졌다,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⑧ 고조선의 발전과 영역확대, 2019-10-08 

 

 

 

 

 

<자료출처>

 

 

(1) [네이버 지식백과] 삼조선의 위치와 범위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2) 정인보, 조선사연구 상, 우리역사연구재단, 167-168쪽

 

 

(3) 리지린 지음 이덕일 해역, 고조선연구, 말, 740-741쪽

 

 

(4) 유 엠 부틴, 고조선연구, 아이네아스, 52쪽

 

 

(5) 윤내현, 고조선연구, 일지사, 290-292쪽, 207-210쪽

 

 

(6) <신용하의 지식카페>고조선 ‘8방의 후국들’ 통해 고대 연방제국 발전 기반 다졌다 :: 문화일보 munhwa 2019-10-08

 

 

 

 

 

<참고자료>

 

 


신채호, 조선상고사, 일신서적출판,

신채호, 조선상고문화사, 비봉출판사, 2007

정인보, 조선사연구 상·하,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

문정창, 고조선사연구, 한뿌리, 1969

리지린 지음 이덕일 해역, 고조선연구, 말, 2018

유엠부틴, 고조선연구, 아이네아스, 2019

 

윤내현, 고조선연구, 일지사, 1994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6

윤내현, 우리고대사-상상에서 현실로, 만권당, 2016

윤내현, 고조선연구 상·하, 만권당, 2016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만권당, 2017

윤내현, 한국고대사, 만권당, 2021

 

신용하,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0

신용하, 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연구, 2017

신용하,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8

 

심백강, 황하에서 한라까지, 참좋은세상, 2007

심백강,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 바른역사, 2021

심백강,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2021

 

이덕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역사의 아침, 2006

김운회,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역사의 아침, 2012

정형진, 고깔모자를 쓴 단군, 백산자료원, 2003

정형진,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 알에이치코리아, 2014

유정희,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고구려의 역사, 아이네아스, 2018

 

 

 


“난하 현장조사·자료 재분석…고조선 강역설 재검토해야” (hani.co.kr) 2019-10-19

 

 

 

강단 고대사 연구자들, 대중에게 다가서다 : 한겨레 (hani.co.kr)2017-02-20

 

 

진 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1)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김봉렬 2016.06.08 

 


진 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2)?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김봉렬 2016.05.10 10:17

 

 

진 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3)?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김봉렬 2016.05.11 

 


진장성의 동쪽끝은 어디인가(4)? -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2016.05.13

 

 

 

고조선-한나라 국경은? “란하”-“혼하” 팽팽히 맞서 : 한겨레 (hani.co.kr)2016-06-21 

 

 

 

[INTERVIEW] 한국 고대사 연구에 한 획 그은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고조선, 중국 하북성 동남쪽 요서까지 지배했다” (economychosun.com) 122호 2014년 12월 01일

 

 

 

"고조선은 중국 북경을 지배했다" (archivesnews.com) 심백강2014-10-17

 

 

 

사고 전서 기록 中 요서 지역에 최초의 조선이 있었다 | 한국경제 (hankyung.com)2014.10.02

 

 

 

揆園史話에 나오는 놀라운 ‘고조선의 강역’: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10/01/26

 

 

 

"고조선, 대동강 유역 아닌 중국 요서 지역" (daum.net) 2007.03.30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신동아 (donga.com)2006년10월호.2006-10-04

 

 

 

 

지금 의무려산이 요하의 요령성에 있는데,

중국 인문지리서인 <대명일통지>에는 현재의 북경 근처 계현으로 나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명이 동쪽으로 대대적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어...

문성재 박사, 중국의 유물조작은 아주 쉬운일이라고 사례까지 들어...

 

 

 

 

 

[단독]단군조선 강역은 아래로 하남성까지:플러스 코리아(Plus Korea)심제 역사칼럼 2008/12/09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디인가?:플러스 코리아(Plus Korea)성훈 칼럼니스트 2009/03/31

 

 

 

˝요동과 요서의 구분은 현 산서성 분하˝:플러스 코리아(Plus Korea)성훈 칼럼니스트 2009/04/21

 

 

 

안시성, 환도산성, 평양성이 있는 요동은 어디?:플러스 코리아(Plus Korea)성훈 칼럼니스트 2009/04/30

 

 

 

당태종이 빠진 요택으로 본 '요수'는 어디?:플러스 코리아(Plus Korea)성훈 칼럼니스트 2009/05/19 

 

 

 

 

[공유] 고조선의 강역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12136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 고조선의 핵심강역발견 - Daum 카페

 

 

 

 

 

 

 

[이덕일의 한국통사] 북한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로 본 고조선 강역과 한사군 위치는 고조선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동검과 중국 역사서를 근거로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us9g14OnjvY?list=PLRAmvpNm4pmmRSyCOBUipzw4lmxC6b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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