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번역문투, 우리글 뼈대까지 흔든다”

법률문장 등 일본어투 사회영향 크고 

영어번역투 어색한 문장 갈수록 남발 

‘문체 바로잡기·순화 운동’ 필요성 제기

한겨레기사등록 : 2006-12-06 오후 08:59:17

안창현 기자 김봉규 기자

한겨레말글연구소 학술발표회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76631.html

 

“외래·번역문투, 우리글 뼈대까지 흔든다”

법률문장 등 일본어투 사회영향 크고 영어번역투 어색한 문장 갈수록 남발 ‘문체 바로잡기·순화 운동’ 필요성 제기

www.hani.co.kr

 

 

한겨레말글연구소 제2회 학술발표회

 

우리글에 스민 외래․번역말투  

  

 

□ 때 : 12월6일 오후 2시부터

□ 곳 :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강당

□ 후원 : 한국언론재단 한글학회 국립국어원

◎ 한겨레말글연구소 (02-710-0625 / www.hanmalgal.org)

 

 

<차례>

 

사회 -유재원(외국어대 교수)

 

1. 법률․실용문에 나타난 일본어 문투 ․․․․․․․․․․․․․․․․․․․․․․․․․․․․․․․․․․․․․․․․․․․․․․․․․․․․․․․․․․․․․․․․․․․․․․․ 3

발표 박갑수(서울대 명예교수․국어학)

<토론>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2. 고종의 국문에 관한 공문식 칙령 반포의 국어사적 의미 ․․․․․․․․․․․․․․․․․․․․ 33

발표 김슬옹(목원대 겸임교수)

*참고발표문. 김정수 교수의 ‘번역문투의 역사’를 대신합니다.

<토론> 김정수(한양대 교수․국어학)

 

 

3. 영어교육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 55

발표 이근희(세종대 교수․번역학)

<토론> 한학성(경희대 교수․영어학부)

 

 

4. 외래․번역문투 바로잡기 시론(보도문투 중심) ․․․․․․․․․․․․․․․․․․․․․․․․․․․․․․․․․․․․․․․․․․․․․․․․․․․․․․․․․ 81

발표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토론> 정상훈(과천외고)

 

 

5. 총평

 

 

 

<제1주제>

 

법률과 실용문에 나타난 일본어 문투

 

박갑수(서울대 명예교수)

 

1. 서언

 

언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요, 또한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언어는 일차적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말에 일본어가 들어와 쓰이고 일본어 문투가 나타난다는 것은 지난날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멀리 임진왜란 때를 들 수 있고, 가까이는 한일합방 이후의 식민시대를 생각할 수 있으며, 최근의 일로는 한일수교 이후의 문화적인 영향을 들 수 있다. 이런 것이 언어를 문화의 색인(索引)이라 하는 까닭이다.

언어를 주고받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순수한 언어란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언어는 주고받음에 의해 국제화하고 변용(變容)되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탓할 일만은 아니다.

주어진 제목이 “법률과 실용문에 나타난 일본어 문투”다. “외래ㆍ번역문투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 아래 일본어의 문투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에 여기서는 일본어 문투의 실상을 살피고, 이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하기로 한다.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두 가지 면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문투, 곧 문체의 면이고, 다른 하나는 순화(醇化)의 면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실상을 살피는 자리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급될 것이다. 그리고 종합적 견해는 결론에서 피력하기로 한다.

 

 

2. 법률문장의 일본어 문투

 

법이나 법률이란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며, 사람들의 배분 및 협력 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발달된 것이다. 법이란 이렇게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실천 규범(實踐規範)이다. 따라서 이는 쉽고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지키고 실천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법은 모두 해방 후에 제정된 것이다. 현행 육법은 헌법이 1987년, 민법이 1958년, 상법이 1962년, 민사소송법이 2002년, 형법이 1953년, 형사소송법이 1954년에 만들어졌다.

한일합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조선에 시행할 법령에 관한 건”이란 일본 천황의 칙령(勅令)과, 조선총독부의 제령(制令)에 의해 일본법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미 군정기(軍政期)에는 “법률 제 명령의 존속”이란 법령에 의해 일본 법령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일본 법령은 광복 후에도 ‘의용’(依用) 법률로 남아 쓰였고, 1950년대 이후 새로운 법이 제정되며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1950년대 이후 새로 제정된 우리의 법도 많건 적건 일본법의 영향을 받았다. 심한 경우는 일본 법령을 직역(直譯)하여 토와 어미만 바꾼 모습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이라도 한자어와 일본식 용어가 많이 섞인 것이었다. 참고로 닮은 법률 조문 몇 개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민사소송법>

第3條 [大公使 등의 普通 裁判籍] 大使, 公使 기타 外國에서 治外法權있는 大韓民國 國民이 第2條의 規程에 의한 普通 裁判籍이 없는 때에는 그 普通 裁判籍은 大法院 所在地로 한다.

第3條 [大公使の 普通 裁判籍] 大使, 公使 其ノ他 外國ニ在リ治外法權ヲ享クル日本人カ前條ノ規定ニ依リ普通裁判籍ヲ有セサルトキハ其ノ者ノ普通裁判籍ハ最高裁判所ノ定ムル地ニ在ルモノトス

第10條 [事務所, 營業所所在地의 特別裁判籍] 事務所 또는 營業所가 있는 者에 대한 訴는 그 事務所 또는 營業所의 業務에 關한 것에 限하여 그 所在地의 法院에 提起할 수 있다.

第9條 [事務所․營業所所在地の裁判籍] 事務所又ハ營業所ヲ有スル者ニ對スル訴ハ其ノ事務所又ハ營業所ニ於ケル業務ニ關スルモノニ限リ其ノ所在地ノ裁判所ニ之ヲ提起スルコトヲ得

<민법>

제64조 [특별대리인의 선임] 법인과 이사의 이익이 상반하는 사항에 관하여는 이사는 대표권이 없다. 이 경우에는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야 한다.

제57조 [特別代理人] 法人ト理事トノ利益相反スル事項ニ付テハ理事ハ代理權ヲ有セス此場合ニ於テハ前條ノ規定ニ依リテ特別代理人ヲ選任スルコトヲ要

<상법>

제26조 [상호 불사용의 효과] 상호를 등기한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2년간 상호를 사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이를 폐지한 것으로 본다.

제30조 [商號 廢止] 商號ノ登記ヲ爲シタル者ガ正當ノ事由ナクシテ二年間其ノ商號ヲ使用セザルトキハ商號ヲ廢止シタルモノト看做

 

위의 민사소송법은 韓ㆍ日 모두 개정 이전의 것이다. 우리는 2003년, 일본은 1996년 개정하여 현재는 두 법이 차이를 보인다.

우리의 법률 문장은 이렇게 일본의 법률 문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률 문장이 일본 법률의 그것과 같거나 비슷하다 하여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말이 아니거나,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말답지 않은 어색한 문투일 때이다. 그런데 법률 문장에는 이런 것이 많다. 다음에는 이러한 법률 문장의 일본어투의 문제를 어휘와 문장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2.1. 법률문장의 일본식 용어

 

법률 문장에는 난해한 한자어보다는 적지만 일본식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법이 모법(母法)이다시피 되어 있어 빚어진 현상이다.

일본식 용어는 음독(音讀)되는 한자어와 훈독(訓讀)되는 한자어가 있다. 음독되는 한자어는 일단 귀화(歸化)된 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近代語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조어한 한자어들로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의 탈을 쓴 훈독어(訓讀語)의 경우는 다르다.

다음의 한 예를 보기로 한다.

 

民法 제781조 [子의 입적, 성과 본] ① 子는 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父家에 입적한다. 다만 父가 외국인인 때에는 母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고, 母家에 입적한다.

民法 제844조 [父의 親生子의 推定] ① 妻가 婚姻中에 胞胎한 子는 夫의 子로 推定한다.

 

여기에는 “父, 子” 등 친족어가 쓰이고 있다. 이들은 외형상 한자어다. 그러나 이들은 실은 한자어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父, 子, 母” 및 “妻, 夫”는 순수 한자어라기보다 훈독되는 일본어를 그대로 한자로 옮겨 놓은 음독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론은 위의 민법 제844조에 해당한 일본의 舊 民法 제772조를 보면 그 정황이 이해된다.

 

第772條 [嫡出性의 推定] ① 妻が婚姻中に懷胎した子は夫の子と推定する

 

일본어 “지치, 고, 하하” 및 “쓰마, 오또”가 우리 법에 한자의 형태로 수용된 것이다. 그래서 국한혼용(國漢混用)의 문체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의 법도 당연히 “부, 자, 모”와 “처, 부”가 아닌, “아버지, 아들, 어머니”와 “아내, 남편”이라 해야 할 문장이다.

다음에 이러한 한자어의 탈을 쓴 일본의 훈독어를 몇 개 보기로 한다. 참고로 옆에는 우리말, 순화어(醇化語)도 아울러 제시하기로 한다.

 

가건물(假建物)- 임시건물 가집행(假執行)-임시집행

견본(見本)- 본(보기) 권취조절(券取調節)- 감기조절

도선(渡船)- 나룻배 매상(賣上)- 팔다

명도(明渡)- 내주다, 넘겨 주다 물치(物置)- 광 헛간

부물(附物)- 부속물, 딸린 것 불하(拂下)- 매각, 팔아버림

상회(上廻)하다- 웃돌다, 넘다 선교(船橋)- 배다리

송부(送付)하다- 보내다 수불(受拂)- 받고 치름

수입(受入)하다-받아들이다 수취(受取)하다- 받다

승입(乘入)- 탑승, 타기 신립(申立)- 신청

신병(身柄)- 몸체, 신분 월할계산(月割計算)-달셈

육절기(肉切機)-고기 자르개 인도(引渡)하다- 넘기다

인수서(引受書)- 수용확인서 인장력(引張力)- 당길힘

인출(引出)하다- 찾다, 찾아가다 인하(引下)하다- 낮추다, 내리다

전차금(前借金)-미리 받은 돈, 빌린돈 절상(切上)하다- 올리다, 끌어올리다

절취(切取)-자름, 잘라 가짐 조상(繰上)- 앞당김

조적(組積)- 벽돌 쌓기 조체(繰替)- 일시 전용

주취자(酒醉者)- 술취한 사람 지불(支拂)하다- 지급하다, 치르다

차관선(借款先)- 차관공여자 차수(借受)- 빌림

차인(差引)- 빼냄, 뺀 착출(搾出)한- 짜낸

초생지(草生地)- 풀밭 추월(追越)- 앞지르기

취급(取扱)한- 다룬 취입(吹入)- 녹음

취체(取締)- 단속, 규제 취출(取出)- 꺼냄

취하(取下)- 철회, 취소 토취장(土取場)- 취토장, 흙파는 곳

하상(河床)- 강바닥, 냇바닥 하조(荷造)- 포장, 짐꾸리기

하주(荷主)- 짐임자, 화물 주인 할인(割引)- 에누리 깎음

행선지(行先地)- 가는 곳

 

이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일본의 훈독어인가 의심될 정도의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들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의 훈독어다. 이러한 훈독어 수용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외래어(外來語) 수용의 적부와 함께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수용되어 정착되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어휘는 일반화할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가능하다면 우리말에 동의어(同義語)가 있는 경우 이로써 대체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풀어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2. 법률문장의 일본식 문투

 

법률문장에 끼친 일본어의 영향은 단순히 용어에 그치지 아니하고, 문장의 구조에까지 미치고 있다. 일본어가 문장에 문법적으로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예는 우리말의 용법과 다른 “對シテ”, 또는 “付”를 번역하여 “대하여”라 한 것과, 일본 법률 문장에 많이 쓰이고 있는 “有ス, 在ル”를 오남용(誤濫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일본어 문투를 민법, 민사소송법 등을 자료로 살펴보기로 한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대법원에 위탁을 받은 순화안(박갑수, 1997)을 바탕으로 2002년 전면적으로 개정된 것이다. 따라서 민사소송법의 경우는 구법의 조항을 보기로서 제시하기로 한다.

1) 대하여 < 對シテ、付

 

우리말 “대하다”는 “①마주 향하여 있다 ②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③대상이나 상대로 삼다”의 뜻을 지니는 것으로 되어 있다(국립국어연구원, 1999). 그런데 우리 법률 문장에는 일본어 “對シテ”, 또는 “付”의 부적절한 번역으로 말미암아 “대하여”가 남용되고 있다. 그것은 “-에/-에게”라고 격조사를 써야 할 곳에 “-에/-에게 대하여”라고 “대하여”를 군더더기로 붙여 놓은 것이다.(예문 끝의 괄호 안 표현은 순화의 예이다.)

舊 민사소송법 제63조는 일본어투 “대하여”가 잘못 쓰인 대표적 조항이다 여기 쓰인 “대하여”는 모두 우리말에는 필요 없는, 일본어 “對シテ, 付”를 번역한 것이다. 우리의 자연스런 표현은 여격조사 “-에게”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개정된 법은 다음과 같이 순화되었다.

 

新 民訴 [필수공동소송에 대한 특별규정] ① 소송목적이 공동소송인 모두에게(< 전원에 대하여: 全員ニ付) 획일적으로 확정되어야 할 공동소송의 경우에 공동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의 소송행위는 모두의 이익을 위하여서만 효력을 가진다.

② 제1항의 공동소송에서 공동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한 상대방의 소송행위는 공동소송인 모두에게(< 전원에 대하여: 全員ニ對シテ) 효력이 미친다.

③ 제1항의 공동소송에서 공동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에게(< 1인에 대하여: 一人ニ付) 소송절차를 중단 또는 중지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경우 그 중단 또는 중지는 모두에게(< 전원에 대하여: 全員ニ付) 효력이 미친다.

 

여격에 불필요한 “대하여”가 붙은 예를 몇 개 보이면 다음과 같다.

 

民法 제121조 [임의대리인의 복대리인 선임의 책임] ①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대리인이 복대리인을 선임한 때에는 본인에게 대하여(本人ニ對シテ) 그 선임감독에 관한 책임이 있다. (> 본인에게)

民法 제362조 [저당물의 보충] 저당권 설립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저당물의 가액이 현저히 감소된 때에는 저당권자는 저당권 설정자에 대하여 그 원상회복 또는 상당한 담보제공을 청구할 수 있다. (> 설정자에게)

民法 제547조 [해지, 해제권의 불가분성] ①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수인인 경우에는 계약의 해지나 해제는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 대하여(其全員ニ對シテノミ) 하여야 한다. (> 전원에게)

民法 제758조 [공작물 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③전2항의 경우에 점유자 또는 소유자는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있는 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책임있는 자에게)

民法 제764조 [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 자에게는)

 

민사소송법의 예도 한두 개 보면 다음과 같다.

 

舊 民訴 제22조 [관련재판적] ② 제1항의 규정은 소송의 목적인 권리나 의무가 수인에 대하여 공통되거나, 동일한 사실상과 법률상의 원인에 기인하여 그 수인이 공동소송인으로서 당사자가 되는 경우에 준용한다. (>수인에게)

舊 民訴 제166조 [무능력자에 대한 송달] 소송 무능력자에 대한 송달은 그 법정 대리인에게 한다. (무능력자에게 할)

 

2) 있다 < 有ス, 在ル

 

우리 법률 문장에는 일본법에서 즐겨 쓰이는 “有ス, 在ル”가 “있다”로 직역되어 많이 쓰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법률 문장이 우리말답지 않고 어색하게 되었다.

 

民法 제49조 [법인의 등기사항] ① 법인설립의 허가가 있는 때에는 3주간 내에 주된 사무소 소재지에서 설립 등기를 하여야 한다. (> 허가를 받은)

民法 제67조 [감사의 직무] 4. 전호의 보고를 하기 위하여 필요 있는 때에는(必要アルトキハ)총회를 소집하는 일 (> 필요할)

民法 제400조 [채권자 지체]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있는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 이행이 제공된)

民法 제1019조 [승인, 포기의 기간]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다. (> 상속이 개시되었음을)

民法 제1046조 [분리명령과 채권자 등에 대한 공고, 최고] 법원이 전조의 청구에 의하여 재산의 분리를 명한 때에는 그 청구자는 5일내에 일반상속채권자와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재산분리의 명령있는 사실과 일정한 기간내에 그 채권 또는 수증을 신고할 것을 공고하여야 한다.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 명령이 내려진)

 

위의 보기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있다”는 앞에 오는 명사에 접사「하다/되다」를 붙여 용언화하거나, 아예 빼버리거나, 助詞를 붙여 사용하거나, 다른 말로 바꾸거나 해야 자연스러울 우리말이다. “불복이 있으면, 선고 있는, 송달이 있으면, 신청이 있는, 염려 있는, 위반이 있음, 의심 있는, 청구가 있는, 판결이 있는, 필요 있는, 합의가 있으면” 따위는 명사에 접사 “-하다/ -되다”를 붙여 용언화하면 대체로 무난할 말들이다. 이에 대해 “권리 있는, 명령 있는, 시가 있는, 이유 있는, 의의 있는, 이해관계 있는, 집행력 있는, 허가 있는” 따위는 “있다”를 다른 말로 바꾸거나, 앞말에 조사를 붙여 쓸 수 있을 것이다. 舊 민사소송법의 예를 두어 개 더 보이면 다음과 같다.

 

民訴 제189조 [직접주의] ② 법관의 경질이 있는(更迭アル) 경우에는 당사자는 종전의 변론의 결과를 진술하여야 한다. (> (법관이) 경질된)

民訴 제394조 [절대적 상고이유] ② 전항 제4호의 규정은 제56조 또는 제88조의 규정에 의한 추인이 있는(追認アルタル) 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 추인하면)

民訴 제409조[항고의 대상] 소송절차에 관한 신청을 기각한 결정이나 명령에 대하여 불복이 있으면 항고할 수 있다. (> 불복하면)

 

이 밖에 일본법에는 “有ス, 在ル”가 쓰이고 있지 않은 데, 우리 법률 문장이 오히려 일본어 문투 “있다”를 사용한 곳도 많다.

 

3) “-는 ... -는” < “-ハ ... -ハ”

 

“-는 ... -는”은 일본어 “-ハ...-ハ”를 번역한 것이다. 이들은 “부사어-주제격”이거나, “주제격-부사어” 등과 같이 성분이 이어진 것인데 어조상(語調上) 거부감을 갖게 하고, 의미 파악을 어렵게 하는 어색한 표현이다. 따라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주제격(主題格)을 다른 조사로 바꾸거나, 부사어에 쓰인 “-는”을 생략하여 “-는”의 반복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사소송법을 순화 개정함에는 이 점도 고려되었다. 참고로 옛 조문과 순화된 조문의 예를 두어 개 보면 다음과 같다.

 

舊 民訴 제240조 [소취하의 효과] ① 訴는 취하된 부분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계속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 > (新)제267조 [소취하의 효과] ① 취하된 부분에 대하여는 소가 처음부터 係屬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

舊 民訴 제316조 [문서제출의의무] 다음 경우에는 문서소지자는 제출을 거부하지 못한다. > (新)제344조 [문서의 제출의무] ① 다음 각호의 경우에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제출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 밖에 “-는 ... -는”이 쓰인 예를 민법에서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民法 제97조 [벌칙] 법인의 이사, 감사 또는 청산인은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5만환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청산인은... 경우에)

民法 제431조 [보증인의 조건] ① 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는 경우에는  보증인은 행위능력 및 변제력이 있는 자로 하여야 한다. (> 경우 그 보증인은)

②보증인이 변제 자력이 없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보증인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 (> 때에 채권자는)

民法 제565조 [해약금] ①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 교부한 때에.... 교부자는.... 수령자는)

民法 제559조 [증여자의 담보책임] ② 상대부담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증여자는 그 부담의 한도에서 매도인과 같은 담보의 책임이 있다. (> 증여에 대하여 증여자는)

民法 제713조 [무자력 조합원의 채무와 타조합원의 변제책임] 조합원중에 변제할 자력없는 자가 있는 때에는 그 변제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조합원이 균분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 (> 때에 그 변제할 수 없는 부분은)

民法 제821조 [재혼금지기간 위반 혼인취소 청구권의 소멸] 제811조의 규정에 위반한 혼인은 전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거나 재혼후 포태한 때에는 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 (혼인은... 포태한 때에)

 

4) 관형격 “-의” < “-ノ”

 

법률 문장에 많이 쓰이는 관형격 “-의”는 의미상 문제성이 있는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흔히 일본식 표현이라 하여 많이 논의되는 것이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관형격 “-의”는 부문장에서 의미상 주격 구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알타이어의 한 특징이다. 고전에서 그 용례를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이 東山은 須達 산 거시오 <석보상절 6>

浩의 욘 이리라 여 니더이다<번역소학>

내 닐오 듣고<법화경언해>

意根 淸淨호미 이러싸ㅣ<석보상정 19>

 

이러한 의미상 주격인 관형격 표현이 종종 문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의미 파악을 어렵게 하거나, 혼란을 빚는다. 명료해야 할 법률 문장이 이렇게 혼란을 빚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많다. 이들 표현은 가급적 관형격을 주격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예로 구 민사소송법 제13조는 관형격 “-의”로 말미암아 제소(提訴)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대표적 조문이다. 곧 부문장의 관형격 조사 “-의”가 의미상 속격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주격을 나타내는지 구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들 “-의”는 다음에 제시한 바와 같이 의미상 주격으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주격으로 나타내어 그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새 민사소송법에서는 이들을 모두 주격으로 바꾸었다.

 

舊 民訴 제13조 [사원 등에 대한 특별재판적] ① 회사 기타 사단의 사원에 대한 訴 또는 사원의 다른 사원에 대한 訴는 사원의 자격에 기인한 것에 한하여 회사 기타 사단의 보통재판적소재지의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 회사 기타 사단이/ 사원이)

② 제1항의 규정은 사단 또는 재단의 그 임원에 대한 訴와 회사의 발기인 또는 검사인에 대한 訴에 준용한다.(> 사단 또는 재단이/ 회사가)

新 民訴 제15조 [사원 등에 대한 특별 재판적] ① 회사 그 밖의 사단이 사원에 대하여 訴를 제기하거나, 사원이 다른 사원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 사원의 자격으로 말미암은 것이면, 회사, 그 밖의 사단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사단 또는 재단이 그 임원에 대하여 訴를 제기하거나, 회사가 발기인 또는 검사인에 대하여 訴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제1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이 밖에 민법에서 이러한 용례를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民法 제180조 [재산관리자에 대한 무능력자의 권리, 부부간의 권리와 시효정지] ② 부부의 일방의 타방에 대한 권리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때로부터 6월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 혼인관계가)

民法 제400조 [채권자 지체]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있는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 이행이 제공된)

民法 제546조 [이행불능과 해제]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 채무자가 책임질)

民法 제106조 [유언의 요식성]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하지 않는다. (> 본법이 정한)

民法 제821조 [재혼금지기간 위반 혼인취소 청구권의 소멸] 제811조의 규정에 위반한 혼인은 전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거나 재혼후 포태한 때에는 그 청구를 취소하지 못한다. (> 전혼인관계가)

民法 제1035조 [변제기 전의 채무 등의 변제] ② 조건 있는 채권이나 존속기간의 불확정한 채권은 법원의 선임한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변제하여야 한다. (> 존속기간이/ 법원이 선임한)

 

위 법조문 가운데 밑줄 친 부분은 모두 의미상 주격인 관형격 “-의”가 쓰인 것이다. 이러한 관형격은 비문은 아니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괄호 안에 제시한 바와 같이 명시적으로 주격을 드러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5) 이익(손해)을(를) 받다 < 利益(損害)ヲ受ケル

 

“이익을 얻다”, “손해를 받다”는 우리말답지 않은 일본어 문투다. 이는 “利益ヲ受ケル”, “損害ヲ受ケル”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익을 보다/ 이익을 얻다”, “손해를 보다/ 손해를 입다”라고 해야 우리말다운 표현이 된다.

 

民法 제542조 [채무자의 항변권] 채무자는 제539조의 계약에 基한(基因スル)항변으로 그 계약의 이익을 받을(利益ヲ受クヘキ)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이익을 볼/ 이익을 얻을)

民法 제748조 [수익자의 반환범위] ① 선의의 수익자는 그 받은(受ケタル) 이익이 현존한 한도에서 전조의 책임이 있다. (> 받은 이익)

② 악의의 수익자는 그 받은(受ケタル) 이익에 이자를 붙여 반환하고 그 해가 있으면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 받은 이익)

民法 제688조 [수임인의 비용상환 청구권 등] ③ 수임인이 위임사무의 처리를 위하여 과실없이 손해를 받은(損害ヲ受ケタル) 때에는 위임인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 손해를 본)

民法 제740조 [관리자의 무과실 손해보상 청구권]관리자가 사무관리를 함에 있어서 과실 없이 손해를 받은 때에는 본인의 현존 이익의 한도에서 그 손해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 손해를 본)

 

6) -에 있어서 < -ニ於イテ

 

“-에 있어서”도 일본어투라고 많이 지적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문장에는 이것이 그렇게 많이 쓰이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에 있어서”는 일본어 “ニ於イテ”의 번역어로 장소ㆍ경우ㆍ시간ㆍ관점ㆍ이유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본 법률문장에는 “場合ニオイテ”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우리 법률문장에서는 이것이 “경우에”로 번역되어 문제가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民法 제80조 [잔여재산의 귀속] ②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단법인에 있어서는(社團法人ニ在リテハ) 총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 사단법인은/ 사단법인의 경우는)

民法 제1113조 [유류분의 산정] 유류분은 피상속인의 상속개시 시에 있어서(時ニオイテ) 가진 재산의 가액에 증여재산의 가액을 가산하고그 채무의 전액을 공제하여 이를 산정한다. (> (개시) 시에)

民法 제740조 [관리자의 무과실 손해보상청구권] 관리자가 사무관리를 함에 있어서 과실 없이 손해를 받은 때에는 본인의 현존 이익의 한도에서 그 손해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함에)

民法 제1113조 [관리자의 무과실 손해보상 청구권] ① 유류분은 피상속인의 상속 개시시에 있어서 가진 재산의 가액에 증여재산의 가액을 가산하고 채무의 전액을 공제하여 이를 산정한다. (>개시시에)

 

7) -에 위반하다 < -ニ違反スル, ーニ反スル

 

법률은 규정 위반을 규제하는 것이므로 법률문장에는 “위반하다, 위반되다, 반하다” 등의 용어가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는 “ -을 위반하다, -에 위반되다, -에 반하다”와 같이 구별되는 말이다. 그런데 법률문장에는 일본어투 “-ニ違反スル, -ニ反スル”로 말미 “-에 위반하다”가 많이 쓰이고 있다.

 

民法 제324조 [구류자의 善管의무] ③ 유치권자가전2항의 규정에 위반한(規定ニ違反シタル)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 (> 규정을 위반)

民法 제629조 [동산질권의 내용] ②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규정을 위반)

民法 제881조 [입양신고의 심사] 입양신고는 그 입양이 제866조 내지 제877조, 제878조제2항의 규정 기타 법령에 위반함이 없는(法令ニ違反シナイ) 때에는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 (> 법령을 위반함이 없는/ 법령에 위반됨이 없는)

民法 제903조 [파양신고의 심사] 파양의 신고는 그 파양이 제878조제2항, 제898조 내지 전조의 규정 기타 법령에 위반함이 없으면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 (> 법령을 위반함이 없으면/ 법령에 위반됨이 없으면)

民法 제817조 [연령위반 혼인 등의 취소청구권자] 혼인이 제807조, 제808조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당사자 또는 그 법정 대리인이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고, 제809조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당사자, 그 직게존속 또는 8촌 이내의 방게혈족이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 규정을/ 규정을)

商法 제23조 [주체를 오인시킬 상호의 사용 금지] ② 제1항의 규정에 위반하여(前項ノ規定ニ違反シテ) 상호를 사용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 (> 전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8) 依하다 < 依ル, 因ル, 從フ

 

법률문장에는 “의하다”가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依하다”가 “의거하다”를 의미하는 “의하다” 외에 “因하다, 따르다(從)”의 의미에 까지 확대 적용될 뿐 아니라, “定하다”에까지 대치됨으로 많이 쓰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의미의 모호성을 드러낸다. 일본 법률문장은 “依, 因, 從, 定”을 구별하여 사용함으로 그 의미가 좀 더 잘 구별되고 있다.

 

民法 제31조 [법인성립의 준칙]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規定ニ依ル)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

民法 제59조[이사의 대표권] 그러나 정관에 규정한 취지에 위반할 수 없고 특히 사단법인은 총회의 의결에 의하여야 한다(決議ニ從フコトヲ要ス). (> 따라야 한다)

民法 101조 [천연과실, 법정과실] ① 물건의 용법에 의하여(用方ニ從ヒ) 수취하는 산출물은 천연과실이다. (> 따라서)

民法 제110조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 표시] ① 사기나 강박에 의한(强迫ニ因ル)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 강박으로 인한)

民法 제185조 [물권의 종류] 물권은 볍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法律ニ定ムルモノ)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9) -월(月) < -月

 

법률문장의 특징의 하나가 달 수를 셀 때 “한 달, 두 달, 석 달”을 “일월, 이월 삼월”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표현이 아니다. 일본어를 번역한 문투다. 우리는 “한 달, 두 달, 석 달”이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1개월, 2개월, 3개월”이라 한다. 일본어에서도 일상용어로는 “1個月, 2個月, 3個月”이라 한다. 법률에서만 “1月, 2月, 3月”이라 한다.

 

民法 제88조 [채권신고의 공고]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2개월)

民法 제180조 [재산관리자에 대한 무능력자의 권리, 부부간의 권리와 시효정지] ② 부부의 일방의 타방에 대한 권리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때로부터 6월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 6개월내에는)

民法 제811조[재혼금지 기간]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 6개월을)

民法 제1019조 [승인, 포기의 기간]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다. (> 3개월내에)

民法 제1046조 [분리명령과 채권자 등에 대한 공고, 최고]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 2개월)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일본에서도 법률문장에 “-个月”이 쓰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법에서는 “-월”로 바뀌었다. 우리 법조인들의 “-월” 증후군에 경고를 하는 것이다.

 

民法 第51條5 [財産目錄, 社員名簿] ① 法人ハ設立ノ時及ヒ每年初ノ3个月內ニ財産目錄ヲ作 リ常ニ之ヲ事務所ニ備ヘ置クコトヲ要ス

民法 제55조 [재산목록과 사원명부] ① 법인은 성립한 때 및 매년 3월내에 재산목록을 작성하여 사무소에 비치하여야 한다.

 

한국의 법률문장은 “3개월 안에”를 의미하는지, “3월(march) 안에”를 의미하는지 혼란을 빚게 한다. “3개월 내에/ 3개월 안에”라고 해야 의미가 분명해진다.

 

 

3. 실용문장의 일본어 문투

 

3.1. 실용문장의 일본식 용어

 

우리의 일상어에는 일본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따라서 실용문에 일본어가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일본어는 직접차용에 의한 것과 한자어를 통한 간접차용 및 번역차용에 의한 것의 세 가지가 있다. 직접차용에 의한 일본어는 기술용어 및 생활용어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이들 예를 몇 개씩 보면 다음과 같다.

 

1) 편집ㆍ인쇄ㆍ제본

가시라(頭ㆍ머리글자), 나카구로(中點ㆍ가운뎃점), 도지메(綴目ㆍ매는 쪽), 도비라(扉ㆍ표제지), 무라(斑ㆍ얼룩), 스리(刷ㆍ교정지), 아카지(赤子ㆍ오식), 이도도지(絲綴ㆍ실제철)

2) 건축

가이당(階段ㆍ게단), 구미다테(組立ㆍ조립), 데모토(手許ㆍ조수), 덴죠(天井ㆍ천장), 도키다시(硏出ㆍ갈기), 사깡(左官ㆍ미장이), 아시바(足場ㆍ발판), 하바(幅ㆍ폭)

3) 이ㆍ미용

가리아게(刈上ㆍ치켜깎기), 고데(鏝ㆍ인두), 미나라이(見習ㆍ견습), 마루가리(丸刈ㆍ막깎기), 소도마키(外卷ㆍ바깥말이), 시아게(仕上ㆍ끝손질), 야스리(鑢ㆍ줄)

4) 복장

가부라(鏑ㆍ접단), 가타마에(片前ㆍ홑자락), 고마타(小股ㆍ샅기장), 누이시로(縫代ㆍ시접), 세다케(背丈ㆍ키), 소데구치(袖口ㆍ소매부리), 에리(襟ㆍ깃),

5) 일상 용어

<의생활> 가라(柄ㆍ무늬), 기지(生地ㆍ천), 도쿠리(德利ㆍ긴목셔츠), 뗀뗑이(點點ㆍ점박 이), 소데나시(袖無ㆍ민소매), 우와기(上着ㆍ상의)

<식생활> 가마보코(蒲鉾ㆍ생선묵), 다마네기(玉葱ㆍ양파), 미소(味噲ㆍ된당), 벤토(弁當), 사시미(刺身ㆍ생선회), 스시(壽司ㆍ초밥), 와사비(山葵ㆍ고추냉이), 이타바(板場ㆍ조리사)

<주생활> 다이(臺ㆍ대), 단스(簞笥ㆍ장), 마호병(魔法甁ㆍ보온병), 사라(皿ㆍ접시), 오시이레(押入ㆍ벽장), 자부동(座蒲團ㆍ방석)

<기타> 기스(傷ㆍ상처), 보로(襤褸ㆍ결점), 심삥(新品ㆍ신품), 아다리(當ㆍ적중), 와리캉(割勘ㆍ각자 부담), 잇빠이(一杯ㆍ한껏), 조시(調子ㆍ상태), 히야시(冷ㆍ채움)

 

간접 차용어로는 번역 차용한 것과 훈독어의 차용이 있다. 번역차용은 바람직한 것이나, 훈독어의 차용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녀(彼女), 뒷맛(後味), 밑돌다(下回), 불꽃(花火), 색종이(色紙), 윗돌다(上廻), 짝사랑(片戀), 타오르다(燃上)

견본(見本), 견적(見積), 계원(係員), 가부시키(株式), 내역(內譯), 나마카시(生菓子), 대합실(待合室), 매장(每場), 매절(賣切), 명도(明渡), 승환(乘換), 수당(手當), 수부(受付), 신입(申込), 이서(裏書), 일부(日附), 입구(入口), 입장(立場), 입체(立替), 입회(立會), 적자(赤字), 주형(鑄型), 지분(持分), 지불(支拂), 지입(持込), 출영(出迎), 취급(取扱), 취조(取調), 취체(取締), 토산(土産), 품절(品切), 하주(荷主), 할인(割引), 할저(割箸), 할증(割增), 행선(行先),

 

이 밖에 번역차용이라 할 음독하는 일본의 한자어가 우리말에는 많이 들어와 있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에서 조어한 것이다. 이러한 것에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과 같은 요일명을 비롯하여, “산소, 수소, 질소, 원소, 탄소”, “구심력, 압력, 인력, 중력”, “기압, 대기, 수압, 우주, 위성, 지구”와 같은 과학용어에 이르기까지 무수하다. 따라서 이러한 일본어 투는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문제는 전통적인 우리말이 있는데 일제 한자어가 들어와 종전의 우리말을 내어 쫓고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家族(식구), 果實(실과), 交際(상종), 口錢(구문), 口座(게좌), 露店(가가), 相互(호상), 商店(전방), 野菜(소채), 旅費(노자), 午前(상오), 外出(출입), 元金(본전), 裁縫(침선), 出迎(영접), 兄弟(동기), 化粧(단장), 活字(주자), 地震(지동),

 

외래어도 어종(語種)은 일본어가 아니나, 일본에서 변형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제 외래어가 많다. 이들은 발음 또는 어형이 바뀌었거나, 그 의미가 바뀌었다.

 

① 발음이 달라진 것

게라(galley), 고로께(coroquette), 기브스(gips), 다스(dozen), 라지에타(radiator), 로스(roast), 메리야스(medias), 바께쓰(bucket), 뻰치(pinchers), 삐라(bill),, 세멘(cement), 쓰봉(jupon), 왁진(vakzin), 지루박(jitter bug), 하이라이스(hashed rice), 항카치(handkerchief)

② 어형이 바뀐 것

골덴(corded velveteen), 넘버링(numbering machine), 니스(varnish), 다이야(diamond), 도란스(transformer), 디스코(discotheque), 레지(register), 리모콘(remote control), 르포(reportage), 비디오(video tape recorder), 수퍼(super market), 스텐(stainless steel), 아파트(apartment), 에어콘(air conditioner), 에키스(extract), 오바(over coat), 인테리(intelligent), 인플레(inflation), 타이프(typewriter), 텔레비(television), 푸로(program), 하이야(hired car), 하이힐(high heeled shoes), 호후론트(front desk),

③ 의미가 변한 것

Arbeit(부업), avec(동반), business man(회사원), handle(조향장치), high collar(멋쟁이), lumpen(부랑자, 실업자), Mrs(기혼여성), post(우체통), stand(탁상등)

 

이 밖에 본고장에서는 쓰이지 않는, 일본에서 만든 西歐語도 많이 들어와 쓰인다.

 

골인(reach the goal), 로우틴(early teens), 리야카(bicycles cart), 밀크커피(coffee and milk), 백미러(rear-view mirror), 샤프펜(automatic pencil), 슈크림(cream puff), 스프링코트(topcoat), 싸인북(autograph album), 아프터 서비스(after sale service), 올드미스(old maid), 카레라이스(curry and rice), 콘센트(plug socket), 플러스 알파(plus something), 하이틴(late teens), 홈인(reach home)

 

 

3.2. 실용문의 일본식 문투

 

실용문에는 관용적 표현과 통사 구조에 일본어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어의 관용어라 할 것이 많이 나타난다. 우선 일본어 관용어의 차용으로 보이는 것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박갑수, 1984).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다(猫の首に鈴をつける), 귀가 멀다(耳が遠い), 귀를 의심하다(耳を疑う), 꿈처럼 지나가다(夢の樣に過ぎる),낯가죽이 두껍다(面の皮が厚い), 눈시울이 뜨거워지다(目頭が熱くなる),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目に入れても痛くない), 닻을 내리다(碇を降ろす), 도토리 키 재기(とんぐりの背くらべ), 마각을 드러내다(馬脚を現わす), 마음에 새기다(心に刻む), 말 뼈다귀(馬の骨), 머리를 짜다(頭を絞る), 벼락이 떨어지다(雷が落る), 벽에 부딪치다(壁に突き當る), 뿌리를 내리다(根を下ろす),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想像に固くない), 새빨간 거짓말(眞赤な噓), 손에 땀을 쥐다(手に汗をにぎる), 손을 끊다(手を切る), 숨을 죽이다(息を殺す), 순풍에 돛을 달다(順風に帆を揚げる), 시험에 미끄러지다(試驗にすべる), 애교가 넘치다 (愛嬌が溢れる), 어깨가 무겁다(肩が重い),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欲に目をくらむ), 얼굴을 내밀다(顔を出す), 얼굴이 넓다(顔が廣い), 이야기에 꽃을 피우다(話に花が咲く), 입을 모으다(口を揃える), 입이 가볍다(口が輕い), 흥분의 도가니(興奮の坩堝), 희망에 불타다(希望に燃る)

 

이렇게 많은 관용어가 일상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문학작품을 통해 한국어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에는 구문상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본어 문투를 몇 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피동 표현

 

현대어의 특징의 하나는 피동 표현이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옛말은 피동어간의 용례를 많지 않다. 이는 현대어도 마찬가지다(이기문, 1972). 이러한 현상은 상대적으로 피동 표현이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에서 영어, 일어 등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은 피동 표현이 지천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피동 표현의 증가는 시대적으로 일단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영어의 영향으로 강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피동 표현을 하여야 할 것을 법률문장에서는 오히려 하지 않은 것이 많다. 그런데 실용문은 이와 다르다. 문제가 되는 피동 표현에는 우선 능동으로 표현하여도 좋을 것을 피동으로 표현한 것이 있고, 피동사에 다시 “-지다”를 첨가하는 등 이중 피동의 표현을 한 것 등이 있다. 이러한 피동표현의 애용은 발상의 전환을 가지고 온다. 그리하여 오늘날 국어의 표현은 주체적 표현이라기보다 객체적 표현, “위장된 객관”의 표현을 많이 보인다. 이는 매스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체상의 특징이다.

이중 피동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또 하나의 국제정세라고 보여집니다. (> 국제정세로 보입니다)

국민과 국회 경시태도는 차제에 철저히 뿌리뽑혀져야 할 것이다. (> 뿌리뽑혀야)

잘못 쓰여진 글은 고치기가 더 힘든다. (> 쓰인)

그렇게 되어진 원인은 알 수 없다. (> 된)

가슴 속에 각인되어진 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 각인된)

 

위장된 객관을 위해 피동 표현을 하는 것은 능동 표현을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을 피동으로 표현하는 것과, “지적되다” 등의 표현을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발상을 달리하게 한다.

 

전작권 환수돼야 ( : 환수해야)

보험회사의 일방적 약관 시정돼야 (: 시정해야)

‘高분양가’ 세무조사 확대될듯 ( :확대할 듯)

“앗! 휴대폰” 올해도 26명이나 걸려“ ( : 적발)

정부당국자 “결의안 찬성한다고 기조 바뀐 것 아니다” ( : 바꾼)

“PSI 불참결정 존중하지만... 한국 생각 바뀌길 바란다” ( : 바꾸길)

특별소비세 인하 보류 등 수입 건전화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 지적하고)

 

2) 연어 “-에 있어서”

 

“-에 있어서”는 “ーに於いて”를 번역한 말로, 이는 “-에서, -에, -이,” 등 여러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 말이다. “-에 있어서”는 일본어를 직역한 우리말답지 않은 일본식 문투다. 그런데, 이 “-에 있어서”가 법률문장과는 달리 일상 언어에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혼란 시에 있어서는”과 같이 “-에”와 함께 쓰이는 “이 말은 “-에서, -에는”이라 해야 할 말이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이”가 되어야 한다.

 

연구를 천착함에 있어서 실험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구를 천착함에)

김삿갓에 있어서 풍자는 생명 같은 것이다. (> 김삿갓에게)

학문에 있어 그를 능가한다.(學に於いて彼にまさる) (> 학문이)

인물에 있어서 그만 못하다(人物において彼に劣る) (> 인물이)

 

이와는 달리 “나에게 있어서 대학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와 같은 문장의 경우에는 “-에게 있어서”의 “있어서”를 제거하거나, “나의 대학생활은”과 같이 관형격 “-의”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3) 관형격 “-의”

 

“-의”는 관형격조사다. 우리말에서 이 관형격 조사는 생략, 달리 말하면 내현(內顯)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체언과 체언이 직접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어와 다른 점이다. 일본어의 경우는 우리말과는 달리 고유어의 경우 관형격 조사 “の”를 언제나 삽입한다. 그리고 일본어 “-の”는 우리와 달리 그 용법이 다양하다. 이런 문법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일본어에는 한국어에 비해 관형격 조사가 많이 쓰인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근대에 접어들어 이 관형격 조사가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앞의 법률문장을 살피는 자리에서 본 바 있다. 실용문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다. 관형격 조사의 많은 사용은 대체로 일본어의 “-の”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관형격 “-의”의 용법을 최현배(1961)는 의미의 면에서 “소유, 관계, 소재(所在), 소산(所産), 소기(所起), 비유, 소작(所作), 대상, 소성(所成), 명칭, 소속” 등 11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기능을 나타내자니 자연 “-의”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용되는 경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서술적 표현이 아니라, 명사적 표현, 달리 말하면 名詞句(NP)를 많이 사용함으로 빚어지게고 있다. 이들 명사구는 동사구(VP)로 바꿀 때 자연스런 우리말이 된다.

<의미상 주격>

서로의 소중함을 대화로 일깨운다. (> 서로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내가)

<명사적 표현>

농촌활동을 간 학우들의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 학우들이)

개척교회 때부터의 주보가 교회의 발전상을 보여 준다. (> 개척교회 때부터 나온)

재물을 놓고서의 송사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 놓고서)

<오남용>

나의 첫번째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 내가)

한국의 최초의 신부이자 선각자인 김대건님 (> 한국)

 

이 밖에 관형격 “-의”는 복합조사로도 많이 쓰인다. “-와의/-과의(ーとの)”, “에의(ーへの)”, “-에서의(ーからの)”, “-에로의(ーへの)”, “-(으)로의(ーへの)”, “-(으)로서의(としての)”, “-(으)로부터의(ーからの/ よりの)”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들도 다 명사구에 의 한 표현을 함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말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와의/-과의”는 우리고어에서는 “-괏/-왓”과 같이 쓰이던 말이요, “-에의”는 “-엣/-/-옛”과 같이 쓰이던 말이다. 다만 일본의 영향으로 확산되었다 할 것이다. 이들 예를 한두 개씩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 미국과)

학부모와의 면담 (> 학부모와)

민주화에의 동참 촉구(> 민주화에)

탄광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고달픈 줄 몰랐다. (> 탄광의)

정치생활 접고 교수에로의 복귀 (>교수로)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 다짐(> 차원으로/ 차원의)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인으로서 갖는)

복잡한 도시로부터의 탈출 (>도시에서)

 

4) -에 다름 아니다

 

멋있게 쓴다고 쓰는 표현에 “-에 다름 아니다”가 있다. 이는 “他ならない”의 번역어로, “틀림없다, 바로 ... 이다”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 행위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와 같이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그의 행위는 분명히 범죄행위다”와 같이 되어야 우리말다운 우리말이 될 말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표현인 “-나 다름 없다”는 우리말이다. “그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와 같이 쓰이는 것이 그것이다. “-にほかならない”의 번역어인 이 말은 일상 언어에 많이 나타난다.

 

조용필의 ‘허공’은 절규에 다름 아니다. (> 분명히 절규다)

민중의 촛불시위는 정권 퇴진의 함성에 다름 아니다. (> 함성이 분명하다)

경제 각료의 사표 수리는 정책 실패를 자인함에 다름 아니다. (>바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다)

사교육의 확산은 공교육 실패에 다름 아니다. (> 틀림없이 공교육 실패다)

이러한 것이 그 예다. “-에 다름 아니다”와 형태 및 의미가 비슷한 말에 “-에 틀림없다”가 있다. 이 말도 일본어투의 말로, “ーに違いない”의 번역어이다. “꼭 그러함에 틀림없다”와 같이 쓰이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합은 이길 것임에 틀림없다. (> 틀림없이 이길 것이다)

내가 잘못했음에 틀림없다.(> 틀림없이 잘못했다)

그는 가수임에 틀림없다. (> 틀림없이 가수다)

 

 

4. 결어

 

언어는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기도 하고 사멸하기도 한다. 그리고 변화(變化)한다. 이 변화는 언어체계의 균형을 파괴하려는 요인과, 이를 회복ㆍ발전시키려는 요인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말의 유기음과, 경음의 발달, 한자어를 비롯한 많은 어휘의 차용, 경어와 피동 표현의 발달 등은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변화에 속하는 것이다.

언어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세계의 언어정책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폐쇄정책(閉鎖政策)을 펴는 것과 개방정책(開放政策)을 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폐쇄정책을 펴도 언어의 변화는 많건 적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보다 자국어 보호정책을 펴는 것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에도 외래어는 스며들고 있고, 영국 여왕의 언어도 바뀌고 있으며, 소위 BBC 영어란 것도 해외방송에서만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는 언어가 세계화, 국제화하며 촉진된다. 외국인은 목표언어를 배울 때에 그 언어를 모국어 화자처럼 능숙하게 사용하기 쉽지 않다. 다소간에 소위 중간언어(中間言語)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때의 중간언어는 모어 화자의 말과는 달리 변모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목표언어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아니한다. 피진 영어라도 영어는 영어이다.

외래어는 크게 보았을 때 필요적(必要的) 동기와 위세적(威勢的) 동기에 의해 차용된다. 외래어는 물론 한 언어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는 장점도 지닌다. 국어에 차용된 일본 한자어는 이러한 것의 대표적 예다. 문법요소의 차용도 이러한 필요적 동기와 위세적 동기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우리말은 한문의 영향을 받아 어휘의 수용은 말할 것도 없고, 문법 면까지 간섭을 받아 변해 왔다. 한 예로 “與, 以, 使, 及” 등의 번역은 우리말에 “다, , 여(곰), 밋”과 같은 문체를 생성해 내었고, 이는 국어에 일반화하게 되었다.

법률문장과 일상언어에 일반화한 일본어 문투도 이런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순화의 차원에서 볼 때에는 변화를 인정하되, 필요적 동기에 의한 것은 수용하고 위세적 동기에 의한 것은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귀화한 음독어는 수용하고, 훈독어는 가급적 대체한다는 원리에 대응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문법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둘째, 문체의 면에서는 “번역문체”라 일러지는 것으로, 국어의 문체와 다른, 그리하여 어색하고 난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문체는 원칙적으로 순화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면 국어의 발전과 다양한 표현 특성을 살리기 위해 수용하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확립된 표현문법을 순화 대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언어의 문법적인 면은 잘 바뀌지 않는 것이고, 나아가 이미 정착한 구문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문법면의 한문(중국어)의 영향을 언급했거니와 이렇게 외래적 구문법(構文法)을 수용함에 의해서도 문법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어휘나 문법이나 본래적인 것, 고유하고 순수한 것만을 고집하게 되면 발전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고, 퇴보를 자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번역한, 그리고 우리가 수용한 그 많은 일제 한자어를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언어생활을 할 것인가? 그리고 법률문장에서 건물, 취소(建物, 取消)를 일본의 훈독어라 하여 배제한다면 그 법률 조항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언어도 개선 발전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광의의 일본어 문투도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할 것이다.

끝으로 이상 논의한 결론을 요약하면 일본어 문투는 순화하되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일본인과는 달리 광의의 외래어의 수용을 반대하는 순화론자들이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외래어를 많이 쓴다. 이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어 문투에 대한 논의도 순화를 전제로 하되, 필요한 것은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강조하는 바다. 이러한 주장에는 다른 외국어와는 달리, 우리말의 일본어투는 일제의 강점 하에 강제로 학습된 면이 없지 않다는 특수성도 배경에 깔려 있다.

 

 

 -참고 문헌-

 

김문오(2001), 법조문의 문장 실태 조사, 국립국어연구원

박갑수(1984), 국어의 표현과 순화론, 지학사

박갑수 외(1990), 신문기사의 문체, 한국언론 연구원

박갑수(1994), 우리말 사랑 이야기, 한샘출판사

-----(1994), 올바른 언어생활, 한샘출판사

-----(1995), 우리말 바로 써야 한다, 1, 2, 3, 집문당

-----(1997), 민사소송법의 순화 연구, 대법원 보고서

-----(1998), 신문․광고의 문체와 표현, 집문당

-----(1988), 일반국어의 문체와 표현, 집문당

박용찬(2005),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 국립국어원

법제처(1995), 법령용어정비대상자료집(안), 법제처

법제처(1996), 법령용어 순화편람, 법제처

이기문(1972), 개정 국어사개설, 민중서관

이수열(1995),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 지문사

이오덕(2004), 우리글 바로쓰기, 1, 2, 3, 한길사

최현배(1961), 우리말본, 정음사

박갑수(1990), 법률 용어 문장 왜 이리 어려운가, 언론과비평 12, 언론과 비평사

-----(1997), 법률용어와 문장의 순화, 한글 사랑 제5호, 한글사랑사

-----(1997), 법률문장 순화돼야 한다, 새국어생활 제7권 4호, 국립국어연구원

-----(1988), 민사소송법의 문제와 그 순화 방안, 국어교육 96, 국어교육연구회

-----(1998), 민사소송법의 순화, 그 필요성과 실제, 사대논총 제57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003), 개정 민사소송법의 순화와 향후과제, 개정민사소송법의 법령용어 및 법률문장의 순화와 향후과제, 한국법제연구원

신각철(1995), 법령에서 쓰이고 있는 일본식 표기 용어의 정비, 새국어생활 5-2, 국립국어연구원

 

 

 

<토론문>

 

우리말 갈고닦기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머리말

 

언어는 그 자체가 문화이면서 모든 문화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잘 갈고 닦는 일은 말과 글을 한껏 간명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서 전달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언어의 예술적 가치를 높여 문화의 터전을 튼튼하게 다지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말・글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자어에 짓눌리고 일어와 영어에 심각하게 오염해 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지식인, 특히 문화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긴급히 할 일은 우리말을 깊은 한자어 수렁에서 건져 내고 일어와 영어투 표현으로 일그러진 표현구조를 바로잡아 언어생활의 이상인 언문일치를 완성해서 모든 국민이 평등한 언어생활을 누리면서 우리말을 세계어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1919. 3. 1에 다음 글을 읽어서 내용을 바로 알고 느끼면서 독립만세를 부른 백성이 얼마나 있었을 것인가?

“동빙설한에 호흡을 폐칩한 것이 피일시의 세라하면, 화풍난양에 기맥을 진서함은 차일시의 세니, 천지의 복운에 제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한 오인은 아모 주저할 것이 없으며, 아모 기탄할 것이 없도다. 아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하야 생황의 낙을 포향할 것이며, 아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에 민족적 정화를 결유할지로다.” (기미 독립선언문 중에서)

요즘 신문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 다음 글을 일별(一瞥)해서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 글을 쓴 교수는 이런 말을 순화하면 국수주의에 빠져 우리 문화를 위축시키므로 그렇게 써야 우리 문화가 풍성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하려고 해도 자기를 과시하는 궤변으로만 들린다.

“문화인프라는 모뉴멘탈한 건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적 발상에서 벗어나 독립기념관에 사이버역사관을 마련하면 거기서 우리 거북선이 일본배를 쳐부수는 생생한 현장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문화는 이미 만들어진 에르곤이 아니라, 앞으로 창조해 가는 에네르게이여야 한다. 문화네트워크는 새로운 컨텐츠를 부가하는 것이 문화행정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1998. 3. 9 조선일보「시론」)

해마다 연말에 풍성하게 열리는 각종 시상식에서 사회자들은 판에 박은 듯이"이 상이 주어진 분에게는 백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고, 저마다 새 문화의 첨단을 걷는 듯 뽐내지만 일어투와 영어투 구조를 짜맞춰 배달민족의 사고체계를 파괴하고, 동방예의 나라를 동방의 버릇없는 나라로 전락 시키는 꼴이다.

말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진리라는 것이"말은 살아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지만, 올곧게 흐르던 시냇물이나 강물이,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서, 그 물줄기가 농지와 주거지로 범람하게 할 수 없듯이, 한자어, 일어, 영어의 홍수로 엉망진창이 된 우리말의 현실을 , 변하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전국의 크고 작은 책방에 쌓인 학문, 예술과 교양도서나, 신문, 잡지, 교과서, 국어사전의 뜻풀이 문장과 예문, 법률문장 등 모든 글 중에서 국어 문법에 따라 올바르게 쓴 글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어서 우리 말의 앞날이 걱정스러운데, 정부에서 늦게나마 법률 문장 바로잡는 작업을 시작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던 중, 그 일의 한 부분으로 민법에서 일어투 표현 바로잡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말하게 되었으므로 박갑수 교수님의 발표문 중에 보이는 일어투 표현들을 유형별로 정리해서 소견을 밝힌다.

 

 

내용

 

Ⅰ. 관형격 조사 ‘의’로 표현한 일어투 고치기

우리 말・글의 표현구조를 심하게 일그러뜨리는 일어투 표현에 매김자리토 ‘의’로 표현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저희말의 매김자리토씨 の를 임자자리와 부림자리에 돌려쓰는 표현을 흉내 내서 쓰는 형식이다. 박 교수께서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시어 그러한 표현들을 잡아내 고치신 점에 경의를 표하면서, 몇 군데 빠진 곳을 보충한다.

 

(가) 임자말 밝히기

첫째, p 4 끝줄에 보이는 민법 제 121조 [임의 대리인의 ‘복대리인 선임의 책임’]에서 은 임자자리토씨로 는 남움직씨 ‘선임하다’를 매김꼴로 바꾸어 ‘ ’ 부분의 구조를 뜯어 고쳐 ‘임의대리인이 복대리인을 선임할 책임’이라고 고쳐 쓴다.

둘째, p 8 - 5항 민법 제 180조 “부부의 「일방의 타방에 대한 권리」는 ‘혼인관계의’ 종 ⑴ ⑵ 료한 때로부터 6월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에서 ⑵만 ‘혼인관계가’로 고치고, ⑴은 그대로 두었는데, ‘일방’도 임자말이므로 ‘의’를 임자자리토씨로 바꾸어 「 」 부분을 ‘일방이 타방을 대하는 권리는’으로 고친다.

셋째, p16- 13

“사교육의 확산은 공교육 실패에 다름아니다”에서 ‘사교육’이 임자말이므로 매김자리토씨 ‘의’를 임자자리토씨 ‘이’로 바꾸어 ‘사교육이 확산한 것은 공교육이 실패했기 때문이다’나 ‘사교육이 확산한 것은 공교육이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고 고쳐야 한다.

 

(나) 부림말 밝히기

‘의’를 부림말에 쓴 보기도 꽤 많은데 박 교수께서 이런 사실을 모르셨는지 고치지 않고 놓아 두셨으므로, 차례차례 집어서 고친다.

(1) p 2 -13

민법 제 64조 [특별대리인의 선임]

이 조문 끝에 기술한 대로 ‘특별대리인을 선임하는 것’이므로 [ ]안의 표현을 ‘대리인을 선출하기’로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말에서 ‘밥을 먹는다’를 ‘밥 먹는다’, ‘옷을 입는다’를 ‘옷 입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부림자리토씨 ‘을/를’을 줄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으므로 ‘특별대리인 선임’으로 고친다.

(2) p 5 - 밑에서 9째줄

민법 제 400조 [채권자 지체]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있는’ 때부터 지체책임이 있다.에서 ‘ ’ 부분을 ‘이행이 제공된’으로 고친 것은 ‘이행의’를 임자말로 오인한 것이므로 부림말로 바로잡아 ‘이행을 받은’으로 고친다.

(3) p5 - 6행

민법 제 547조 [해지, 해제권의 불가분성]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수인인 경우에는 ‘계약의 해지나 해제는’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게 하여야 한다.에서 ‘계약의’는 부림말이므로 ‘ ’ 부분을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제하는 일은’으로 고친다.

(4) 10 - 3 행

상법 제 23조 [주체를 오인시킬 ‘상호의 사용금지’]에서 ‘상호의’는 부림말이므로 ‘ ’부분을 ‘상호를 사용하는 일 금지’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림자리토씨를 줄여서 ‘상호 사용 금지’로 고친다.

(5) 10 - 밑에서부터 12 행

민법 제 88조 [채권 신고의 공고]에서 ‘신고’는 남움직씨 ‘공고한다’의 부림말(목적어)이므로 ‘신고를 공고하기’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림자리토씨 ‘를’을 줄여 ‘채권 신고 공고’로 고친다.

(6) 15 - 8

“「관형격 조사의 많은 사용은」 대체로 일본어의‘-の’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는 문장에서 ‘조사의’는 ‘사용한다’의 부림말이므로 ‘조사를’로 고치고, 「 」 부분을 ‘관형격 조사를 많이 쓰는 현상은’으로 고친다.

 

(다) 매김말 밝히기

(1) p 4 - 3행

‘이러한 훈독어 수용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문장에 쓴 두 매김자리 토씨는 겉보기에 당연한 듯하지만 문장의 짜임새가 완전한 일어투여서 우리말 본연의 형식을 파괴했으므로, 문형을 모두 개조해서 “훈독어를 이렇게 수용하는 문제에는 논란거리가 있다.‘고 표현해야 한다.

(2) p5 - 12

민법 제 764조 [명예 훼손의 경우의 특칙]은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적용할 특칙’이라고 고쳐야 한다.

(3) p5 - 밑에서부터 13행

민법 제 49조 [법원의 등기 사항] ‘법원 설립 허가를 받은’ 때에는 3주간 안에 주된 사무소 소재지에서 설립등기를 하여야 한다. 이 조문의 ‘ ’ 부분은 ‘법원을 설립할 허가를 받은’ 으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림자리토씨를 줄여 「법원 설립허가를 받은」으로 표현한다.

(4) p 7 - 1 행

민법 제 565조 [해약금]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 ‘ ’ 부분은 ‘매매하는 당사자 / 매매 당사자’로 고친다.

(5) 9 - 10 행

민법 제 80조 [잔여 재산의 귀속]

사단법인은 / ’사단법인의 경우는’에서 ‘ ’ 부분은 ‘사단법인인 경우에는’으로 고친다.

관형격 조사 ‘의’로 표현한 일어투에는 위에서 살펴 본 ‘의’ 단독형 이외에 여느 조사에 ‘의’를 덧붙인 겹토씨, 마다의, 부터의. 에의, 에게로의, 에서의, 와의, 으로의, 만으로의, 으로서의. 에 있어서의, 나름대로의 따위로 몹시 어리둥절하데, 박교수님께서는 이 가운데서 일곱 가지 용례를 잡아내 적절히 고쳐주셨지만 그 중에서 ‘탄광에서의 생활은’은 ‘탄광에서 하는 생활’이나 ‘탄광생활’로 고치는 편이 좋겠고, 그 밖에도 실용문장이나 특히 학생들의 교과서 문장에 지천으로 쓴 겹토씨 표현을 고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바로잡아 주셨으면 좋겠다.

 

 

Ⅱ. 입음꼴로 나타낸 일어투 문장 고치기

가) 되다

(1) 남움직씨

남움직씨로 서술하는 우리말의 기본구조는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하였다.”인데 요즈음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전기는 에디슨에 의하여 발명되었다.”는 표현은 소리내어 읽을 때 ‘에 의하여’가 매우 거북할 뿐 아니라, 그 구조에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고 체계를 뒤집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므로, 모든 지식인들이 각성해서 순화해야 할 문제이므로, 박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재료 중에 보이는 예문들을 들어 고친다.

1) p 1 - 17

이들에 대해서는 실상을 살피는 자리에서 필요한 때마다 ‘언급될 것이다.’→ 언급할 것이다

2) p1 - 21

법이란 이렇게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실천 규범이다. → 제정한

3) 1 - 25

우리 나라 법은 모두 해방 후에 ‘제정된’ 것이다. → 제정한

4) 1 - 29

조선총독부의 ‘제령(制令)에 의해서 일본법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 제령에 따라 일본법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5) p 1 - 밑에서 5째 줄

1950년 이후 새로운 ‘법이 제정되며 쓰이지 않게 되었다.’ → 법을 제정함에 따라 안 쓰게 되었다.

6) p2 -밑에서 6째 줄

일본식 용어에는 ‘음독(音讀)되는 한자어와 훈독(訓讀)되는’ 한자어가 있다. → 음독하는 한자어와 훈독하는

7) p4 - 4・5

더구나 이미 ‘수용(受用)되어 정착되었을 때’ 더욱 그러하다. → 수용(受用)한 것이 정착하였을 때

8) 4 - 밑에서 11째 줄

㉠‘개정된’ 법은 다음과 같이 ㉡‘순화되었다.’ ㉠→ 개정한 ㉡→ 순화하였다

9) 6 - 밑에서 10・11째 줄

신(新) 제 267조 [소취하의 효과]

① ‘㉠취하된’ 부분에 대하여는‘㉡소(訴)가’ 처음부터 ‘㉢계속(係屬)되지’아니한 것으로 본다. ㉠ →취하한 ㉡ →소(訴)를 ㉢ →계속(係屬)하지

10) 6 - 밑에서 13째 줄

민사소송법을 순화 개정함에는 이 점도 ‘㉠고려되었다. 참고로 옛조문과 ’㉡순화된‘ 조문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고려하였다. ㉡ →순화한

11) 민법 제 90조 [파양 신고 심사] 중에서 전조의 규정 기타 ‘법령에 위반함이 없으면’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는 문장의 ‘ ' 부분을 고친 표현 ‘법령을 위반함이 없으면 / 법령에 위배됨이 없으면’은 둘 다 적절하지 못하므로 ‘법령을 위반하니 않았으면’으로 고친다.

 

(2) 제움직씨

남움직씨로 서술할 문장의 부리말을 임자말로 내세워서 입을꼴로 서술하는 외국어에서도 제움직씨로 서술하는 문장은 그럻게 하지 않는데, 우리 나라 학자들은 영어 공부를 철저히 해서 영어의 남움직씨와 제움직씨는 잘 구별해 쓰지만 우리말로 글을 쓸 때는 남움직씨와 제움직씨를 가리지 않고 ‘~한다’를 모두 ‘~된다’로 바꿔 서술한다.

1) p 1 - 12

이렇게 언어는 주고받음에 의해 국제화하고 ‘변용(變容) 된다’ →변용(變容)한다.

2) p 2 - 밑에서 5째 줄

음독(音讀)되는 한자어는 일단 ‘귀화(歸化)된’ 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귀화(歸化)한

3) 5- 4

민법 제 362조 (저당물 보충) 저당권 설립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저당물의 가액이 현저히 ‘감소(減少)된’ 때에는 저당권자는 ・・・・・・ . → 감소한 / 준

4) 5 - 17

구민소(舊民訴) 제 22조 [관련 재판적]

② 제 1항의 규정은 소송의 목적인 권리나 의무가 수인에게 ‘공통되거나’ 동일한・・・・・・

→ 공통하거나

5) 5 - 끝줄

위의 보기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있다”는 앞에 오는 명사에 접사 ‘「하다 / 되다」’를 붙여 용언화 해야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된다. → 「하다」를

*‘되다’를 붙이면 여기 열거한 것처럼 기형(畸形) 표현이 된다.

6) 15 - 밑에서 9째줄

다만 일본말의 영향으로 ‘확산(擴散)되었다’ 할 것이다. →확산하였다.

나) ~어지다

8・15 해방 이전에 ‘만들었다’를 ‘만들어졌다’, ‘깨졌다’를 ‘깨뜨려졌다’ ,‘녹았다’를 ‘녹아졌다’ 처럼 하는 말은 유아기(幼兒期)의 언어현상으로 성숙하면 저절로 바로잡혔는데, 요즈음은 이런 말이 지식인의 상징이 된 듯해서 몹시 어리둥절하다.

1) p 1 - 13

「주어진」 제목이 법률과 실용문에 나타난 일어문투다. 「 」 →지정(指定)한

2) p 1 - 26

~ 형사 소송법이 1954년에 만들어졌다. → 1954년에 형사 소송법을 제정하였다.

*오류 시정 1 - 25

현행 육법은 헌법이 1987년에 만들어지고,

→ 헌법은 1948년 7월 12일에 제헌 국회를 통과해 같은 해 7월 17일에 공포한 이래 8차에 걸쳐, 개악과 개정을 거듭한 끝에 1987년 10월 29일에 현행헌법으로 개정한 것임.

3) p 2 - 밑에서 7째줄

그것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일본법이 모법(母法)이다시피 ‘되어있어 빚어진’ 현상이다. →되어서 생긴

4) p 5 - 밑에서 2째 줄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명령이 내려진) → 명령이 내린

참고. ‘내리다’는 제움직씨와 남움직씨가 같은 꼴임

5) p 6 - 18

"-는 ・・・・・・ -는“은 ・・・・・・ 등과 같이 ‘성분이 이어진’ 것인데 ‘어조상 거부감을 갖 게하고’, 어미파악을 어렵게 하는 어색한 표현이다.  → 성분을 연결한 → 어조가 거북하고

6) p 14 - 7

국민과 국회 경시 태도는 차제에 철저히 ‘뿌리뽑혀져야’ 할 것이다. (< →「뿌리 뽑혀 야」 「 」 →뿌리뽑아야 / 근절(根絶)해야

다) 쓰이다

일본어 ‘カく’의 입음꼴 ‘かかれる’를 직역한 꼴이어서 몹시 유치하고 거북하게 들리는데,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요즈음 식자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했다.

1) p 1 - 31

이러한 일본 법령은 광복 후에도 의용“依用” 법률로 남아 ㉠‘쓰였고’ 1950년대 이후 새로 운 ㉡‘법이 제정되어 쓰이지 않게 되었다.’ ㉠ → 작용(作用)하였고 ㉡ →새로 법을 제정함에 따라 안 쓰게 되었다.

2) p 2 - 밑에서 8째 줄

법률 문장에는 난해한 한자보다는 적지만 일본식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 용어를 많이 썼다.

참고 : ‘・・・・・・고 있다.’에 대하여, 이 경우에 일본식 용어는 이미 ‘써 놓은 것이지, 쓰는 중에 있는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함.

3) p3 - 3

여기에는 “父, 子” 등 ‘친족어가 쓰이고 있다.’ → 친족어를 썼다.

4) p 5 - 22

우리 법률 문장에는 일본법에서 즐겨 「쓰이는 “有ス, 在ル”가」 “있다”로 「직역되어 많이 쓰이고 있다.」  →쓰는 “有ス, 在ル”를  →직역해서 많이 쓴다 / 썼다.

5) p 14 - 6

잘못 ‘쓰여진’ 글은 고치기가 더 힘든다. (>쓰인) →쓴

 

 

Ⅲ. 일어투 어찌말 고치기

가) ~에 의하여

1) p 1 - 7

조선총독부의 ①‘제령(制令)에 의해’ 일본법이 그대로 ②‘적용되었다.’

①→ 제령(制令)에 따라 → 적용하였다.

2) p 1 - 30

미군정기(美軍政期)에는 “법률제 명령의 존속”이란 ‘법령에 의해’ 일본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 법령에 따라

3) p1 - 12

이렇게 언어는 ‘주고 받음에 의해’ 국제화하고 변용한다. → 주고 받으면서

4) p 5 -13

민법 제 764조 [명예 훼손의 경우의 특칙]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 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

→피해자가 청구하는 데 따라

5) 10 - 18

민법 제 185조 [물권의 종류]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 관습법에 따르지 않고는

6) 11 - 10

이러한 일본어는 ‘직접 차용에 의한 것과’ 한자어를 통한 간접 차용 및 ‘번역 차용에 의한 것의’ 세 가지가 있다.

 → 직접 차용한 것과

 → 번역 차용한 것의

 

나) 인하여 / 기인하여

1) p 5 - 3

민법 제 362조 [저당물 보충] 저당권 설립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여’ 저당물의 가액이 현저히 감소한 때에는 ・・・・・・

→ 사유로 *‘사유로’의 토씨 ‘로’가 원인을 나타내는 어찌자리토씨이므로. ‘인하여’는 사족(蛇足)이다.

2) 5 - 18

구민소 제 22조 [관련 재판적]

 제 1항의 규정은 소송의 목적인 권리나 의무가 수인에게 공통하거나, 동일한 사실상과 법률상의 ‘원인에 기인하여’ 그 수인이 공동소송인으로서 당사자가 되는 경우에 준용한다. →원인으로

*기인(起因)은 ‘일이 생긴 원인’이므로 ‘기인하여’는 ‘원인으로’와 같은 뜻이 겹쳤다.

 

다) 또는

일본말에는 また(ヌ)は가 필요하고 영어에는 or이 필요하지만 우리말에 그것들을 번역한 ‘또는’이 전혀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애물단지이므로 다음 예문들에 쓴 부분을 모두 →표가 보이는 대로 고쳐야 한다.

1) p 2 - 8

민소법 제 10조 [사무소, 영업소 소재지의 특별재판적]

‘사무소 또는’ 영업소가 있는 者 →사무소나

2) p 4 - 밑에서 4째 줄

新民訴法 제 ☓☓조 [필수 공동 소송에 대한 특별규정]

 제 1항의 공동 소송에서 공동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절차를 ‘중단 또는 중지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경우 ‘그 중단 또는 중지는’ 전원에게 효력이 미친다.

 →중단하거나 중지하여야 할

 →그 중단이나 중지는

3) p 5 - 6

민법 제1019조 [승인 포기의 기간] 상속인은 상속을 개시하였음을 안 날부터 석달 안에 ‘단순 승인이나 한정 승인 또는’포기할 수 있다.

→ 단순 승인하거나 한정해 승인하거나

4) p 6 - 6

민법 제 97조 [벌칙] 법인의 ‘이사, 감사 또는 청산인은’ 다음 각호의 경우에 5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이사와 감사, 청산인은

 

라) 및 (及)

국어사전들이 ‘및’을 올림말로 싣고 이음어찌씨라고 궁색하게 규정했지만, 문장에서 어찌씨 같은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므로, 어찌씨가 아니며, 문장에서 꼭 띄어쓰므로 토씨도 아니고, 다른 어느씨도 아니므로 말이 아닌 소리마디에 지나지 않으며, 문장의 흐름을 방해하므로 다음 예문들에서 ‘ ’안의 표현을 →표가 보이는 대로 고쳐야 한다.

1) p 1 - 21

법이나 법률이란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며 사람들의 ‘분배 및 협력 관계를’ 규율한 것이다. →분배와 협력 관계를

2) p 3 - 4

「"父, 子, 母“ 및 ”妻, 夫“는」 순수 한자어라기보다 훈독하는 일본어를 한자로 옮겨 놓은 음독어다. → ”父, 姿, 母"와 “妻, 夫”는

3) p 6 - 밑에서 3째 줄

민법 제 431조 [보증인의 조건]

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는 경우에 그 보증인은 ‘행위 능력 및 변제력이 있는’ 자로 하여야 한다. →행위 능력과 변제력이 있는

 

마) 내지(乃至)

9 - 밑에서 5째 줄

민법 제 903조 [파양 신고 심사] 파양 신고는 그 파양이 제 878조 2항, ‘제 898조 내 지 전조의 규정’ 기타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

→ 제 898조와 전조의 규정

 

바) 으로부터

p 5 - 6

민법 제 547조 [해지, 해제권의 불가분성]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수인인 경우에는 계약의 해지나 해제는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게 하여야 한다. →전원에게서나

 

사) 모두

p 4 - 밑에서 10째

신 민소 [필수 공동 소송에 대한 특별규정]

 소송 목적을 공동소송인 ‘모두에게’ 대하여 획일적으로 확정하여야 할 공동 소송의 경우에 공동 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의 소송행위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만 효력이 있다.  → 전원에게  →모든 소송인의

 

아) 서로

15 - 16

서로의 소중함을 대화로 일깨운다. (>‘서로가’)

‘ ’ →서로

설명 : ‘서로, 모두’는 임자씨가 아니어서 월에서 으뜸조각(주체성분)이 되지 못하므로 자리토씨(격조사)를 붙여 쓸 수 없음

 

자) ~상(上)

1) p 5 - 18

구민소 제 22조 [관련 재판적]  제 1항의 규정은 소송의 목적인 권리나 의무가 수인에게 공통하거나 동일한 ‘사실상(事實上)과 법률상(法律上)의 원인에 기인하여’ 그 수인이 공동 소송인으로 당사자가 되는 경우에 준용한다. → 사실과 법률 때문에

2) p 14 - 3

피동 표현은 매스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체상(文體上)의’ 특징이다. →문체의

3) p 6 - 18

이런 표현은 “부사어 - 주제격“이거나 ”주제격 -부사어“ 등과 같이 성분을 연결한 것인데 ‘어조상(語調上) 거부감을 갖게 하고’, 의미 파악을 어렵게 하는 어색한 표현이다.

→ 어조가 부자연하고

Ⅳ. 풀이자리토씨 ‘이다’

가) 닿소리로 끝난 말에

국이다, 눈이다, 말이다, 감이다, 밥이다, 굿이다, 적이다, 꽃이다, 부엌이다, 밭이다 잎 이다

나) 홀소리로 끝난 말에

누나다, 전야(前夜)다, 문어다, 상여다, 정오다, 담요다, 노루다, 우유다. 정의다, 뿌리다.

 

 

맺음말

 

우리나라의 모든 법률은 철저히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아무가 봐도 티끌만한 흠도 찾아낼 수 없도록 완벽한 문장으로 서술해, 모든 국민의 언어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거북한 한문투와, 일어, 영어단어나 번역투 문장으로 때를 묻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운동선수가 세계무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음식 이외에 중국, 일본 음식과 서양 음식도 먹는 것이 좋고, 우리나라 문화를 세계에 빛내려면 동・서 고금의 모든 학문과 선진기술을 배워들여야 하지만, 변화에 순응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외국어 단어를 남용해 우리말을 죽이거나 서투르게 번역한 문투로 글을 써서 한국인다운 사고체계를 무너뜨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쉬운 예로 중국인들은 물건을 세는 기본 단위 개(個)를 사람을 세는 데도 쓰지만, 우리는 사람이 아닌 것에도 아무데나 ‘개’를 붙여서 네 개 마을, 20개 소, 50개 대학, 3개 사단 따위로 말하지 말고 네 마을, 스무 곳, 쉰(50) 대학, 세 사단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 일본 사람들이 두 명의 아들을 군에 보냈다고 말해도, 우리는 아들 둘을 군에 보냈다고 해야 하며, 미국인들이 “대통령은 실정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해도, 우리는 “대통령은 국정을 그르친데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해야 한다. 낱말도 그렇다. 경우에 맞게 쓸 말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얻어들은 일본말이나 섣부르게 배운 영어 단어를 끌어들여 국어를 더럽히면서, 언어는 변하는 것이라느니, 많이 수용해야 문화가 풍성해진다는 궤변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 표현 구조를 파괴하는 외래구문으로 우리 문법이 발전한다는 논리는 언어종속을 자초하는 것이며, 때 묻은 옷은 애써 빨아 입기보다 그대로 입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말과 같다.

오늘날 우리 국어가 이토록 처참하게 된 것은 우리 교육이 입시준비에만 매달려 정상 교육을 하지 못하고, 국어학자들도 우리 문법을 알차게 공부하지 못해서 실력이 부족하니, 말이 국어 교육이지, 명실이 상부한 국어 교육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만시지탄이 있지만 최우선으로 국어 교육자들이 불타는 정성으로 국어를 사랑하고 국어지식을 철저히 연마해 정성껏 가르치면 국어가 더 오염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래도 독거미처럼 스며드는 오염은 단호한 의지로 순화해야 한다.

 

 

<제2주제 참고 발표문>

  

고종의 국문에 관한 공문식 칙령 반포의 국어사적 의미

 

김슬옹(목원대학교 겸임교수)

 

 

* 출전 : 최유찬․허경진․표언복․다무라․이승이․김광해․김남돈․김슬옹․허재영․박헌수․백지운(2006). 해방 60년, 한국어문과 일본, 보고사.

 

 

1. 머리말

 

교수신문에서 이태진․김재호 외 9인 지음(2005)으로 정리한 고종 황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 논쟁은 총체적으로 보면 고종 평가에 대한 이분법, 근대화 문제에 대한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틀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는 논쟁을 주관한 교수신문 발행인 이영수(위책 머리말:6쪽)의 “이번 논쟁 과정에서 양측은 ‘역사에 대한 단정적 판결을 유보하고 좀 더 실증적이고 통합적인 콘텍스트를 마련하자‘는 점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선언과 푸른역사 편집부에서 “고종과 대한제국을 어느 한쪽으로만 조명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총체적인 시각으로 다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정리한 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역사가 사건의 연속적 의미의 집합 또는 연속적 의미의 사건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떤 특정 사건의 의미를 단면적으로 또는 단정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미 역사화된 ‘역사적 사건’은 복합적 사건으로서 과정일 뿐이다. 다면적 총체적 시각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역사적 해석과 의미부여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 특정 의미를 더 강조할 수는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고 해서 그러한 의미들이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면 그 때의 다양성은 의미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은 고종 31년, 1894년에 칙령으로 제정되고 1895년에 공포된 공문서 작성 법률 칙령에 대한 기존의 단면적, 불연속적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다면적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이 칙령은 고종 재임 기간 중 가장 격동기라 할 수 있는 1894년 말에 제정되어, 그 시대의 역동적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김슬옹(2005a, b)에서는 이 칙령에 대한 기존의 불연속적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다 보니 다면적 의미 부여를 하지는 못했다. 또한 위 글은 조선시대 전반적인 언문의 제도적 사용 문제를 다루면서 위 문제를 극히 일부로 다룬 것이므로 총체적 조명을 할 수 없었다. 바로 이 글에서 그러한 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다만 본 논문이 단행본의 일부로 기획되어 그러한 취지에 맞게 글을 쓰다 보니 김슬옹(2005a, b)에서 언급한 주요 논지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보완, 완결성을 높이는 기술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2. 칙령의 실체와 정치적 상황

 

칙령의 총체적 분석과 해석을 위해 고종실록에 실려 있는 관련 칙령 전문을 인용한다.

 

(1) 1894년 11월 21일(계사), 고종 31년/고종실록 32권

 

勅令第一號。朕裁可公文式制。使之頒布。從前公文頒布例規。自本日廢止。承宣院公事廳。竝罷之。 第二號。朕當御正殿視事。惟爾臣工勗哉。條例由議政府議定以入。第三號。朕以冬至日。率百官當詣太廟。誓告我獨立釐正事由。次日當詣太社。[以上總理大臣金弘集。外務大臣金允植。度支大臣魚允中。學務大臣朴定陽奉勅】第四號。命朴泳孝爲內務大臣。趙羲淵爲軍務大臣。徐光範爲法務大臣。申箕善爲工務大臣。嚴世永爲農商大臣。李重夏爲內務協辦。李完用爲外務協辦。安駉壽爲度支協辦。高永喜爲學務協辦。權在衡爲軍務協辦。鄭敬源爲法務協辦。金嘉鎭爲工務協辦。李采淵爲農商協辦。尹雄烈爲警務使。第五號。扈衛副將統衛使壯衛使總禦使經理使。竝減下。所隷將卒及禁軍武藝別監別軍官前親軍營吏隷等內待令者。令軍務衙門照法編制。第六號。機務處議員。竝減下。設中樞院會議官制章程。自議政府商定施行。第七號。從前儀式之稍涉浮文者。一切節省。務期幹當。第八號。命原任議政大臣金炳始。爲中樞院議長。趙秉世爲左議長。鄭範朝爲右議長。【以上總理大臣金弘集奉勅】

 

公文式。

第一。公文式。

第一條。法律勅令。以上諭公布之。

第二條。法律勅令。自議政府起草。又或各衙門大臣具案提出于議政府。經政府會議擬定後。自總理大臣上奏而請聖裁。但法律勅令之不要緊急者。自總理大臣。可諮詢于中樞院。

第三條。凡係法律及一般行政之勅令。親署後鈐御璽。總理大臣記入年月日。與主任大臣共行副署。其屬各衙門專任事務者。主任大臣記入年月日副署之。

第四條。 總理大臣及各衙門大臣。在法律勅令範圍內。由其職權或由其特別委任。而爲行法律。勅令與保持安寧及秩序。得發議政府令及各衙門令。

第五條。警務使及地方官。係其管內行政事務。遵依職權。若特別委任。在法律命令範圍內。得發警務令地方官令于其管內。 一般或一部。

第六條。警務令地方令。在內務大臣。其他主任大臣。認爲害公益違成規犯權限。則當使之註銷或中止。

第七條。議政府令緦理大臣發之。 衙門令各衙門大臣發之。

第八條。議政府令記入年月日總理大臣署名。

第九條。衙門令記入年月日。 主任大臣署名。

第十條。警務令記入年月日。 警務使署名。

第十一條。地方令記入年月日。 地方官署名。

第十二條。凡係各官廳一般所關規則。經議政府會議而施行。各廳庶務細則。其主任大臣定之。

第十三條。總理大臣各衙門大臣。達於其所管官吏及屬於其監督之官吏。訓令亦依第八第九第十二條之例。

第十四條。法律勅令。總以國文爲本。漢文附譯。或混用國漢文

第二。 布告。

第十五條。凡係法律勅令。以官報布告之。其施行期限。依各法律命令之所定。

第三。 印璽。

第十六條。國璽。宮內大臣管藏之。

第十七條。法律勅令。親署後鈐御璽。

第十八條。國書條約批準。外國派遣官吏委任狀。在留各國領事証認狀。親署後鈐國璽。

第十九條。勅任官任命則鈐御璽於辭令書。奏任官任命則鈐御璽於其奏薦書。

 

(2) 1895년 5월 8일(무인), 고종 32년/ 고종실록 33권

 

勅令第八十六號。公文式。裁可頒布。

公文式。

第一章。頒布式。

第一條。法律勅令은 上諭로 頒布홈。

― 생략 ―

第九條。法律命令은다 國文으로 本을삼 漢譯을 附며 或國漢文을 混用홈。

第二章。布告。

第十條。凡法律命令은 官報로 頒布니 其頒布日로붓터 滿三十日을 經過 時 遵守이 可 者로홈。 各部大臣의 發 部令은 官報로 頒布 同時에 舊慣을 從야 適當 處所에 揭示이 亦可홈。

---- 생략-----

 

위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1894년에는 김홍집 내각에 의해 칙령이 제정되고 1895년에 정식 반포되었다. 1894년에서는 공문서에 관한 칙령 1호부터 다른 칙령까지를 포함한 종합 제정이고 1895년에는 공문서에 관한 86호만을 따로 반포하게 된다. 1894년은 내각에 지시한 것이고 1895년은 정식으로 반포한 것이지만, 칙령은 임금이 관부에 내리는 명령의 일종으로 그 자체가 법적 효력이 있었으므로, 1894년 칙령 1호 14조가 반포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 칙령 1호, 86호 모두 관보에도 실려 있다. 칙령 1호는 위와 같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칙령 86호는 국한문 혼용으로 실려 있다. 이 때의 칙령 반포문 자체가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1894년 칙령 제정이 이미 그 효과를 발휘한 공적 증거임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86호 칙령은 반포 규정에 의하면 관보에 실린 지 만 30일이 지나야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

 

1894년 공문 규정은 그 취지가 명기가 되어 있다. 칙령 제1호에서는 “내가 결재한 공문 규정을 공포하게 하고 종전의 공문 공포 규정은 오늘부터 폐지하며 승선원(承宣院) 공사청(公事廳)도 전부 없앨 것이다.”라고 하면서, 3호에서 “내가 동지(冬至)날에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고 종묘(宗廟)에 가서 우리 나라가 독립하고 모든 제도를 바로잡은 사유를 고하고 다음 날에는 사직단(社稷壇)에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이날로부터 21일 후인 12월 12일 홍범 14조와 독립서고문을 종묘에 고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중국의 속국이 아님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근대 개혁의 기치를 내 건 것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영향과 그 구속력이 더욱 심해지는 시기에 일어난 것이므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규정과 그 당시 맥락으로 본다면 국문(언문)을 기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한문과 한문으로 상징되는 중국에 대한 정치적 의미이지 한자 자체에 대한 정치적 자주 선언은 아닌 셈이다. 일종의 상징적 선언이라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규정대로라면 현실적인 실효성은 국한문 혼용문이 공식문서로서 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문으로 공문서를 작성할 경우는 한역을 붙여야 하는데 이런 번거로움보다는 국한문 혼용문을 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그 때 정황도 그러했다.

그리고 이 때는 이미 일본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인 친일 내각 아래에서 선포된 공문서 규정이라는 점이다. 선포 전후의 주요 사건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3) 1894-5년대의 주요 사건 연표

 

1894/01/10(고종31) 전라도 고부 군민,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 전봉준의 영도하에 고부관아 점령.

1894/01/22(고종31) 한성부 거주 일인 아다치 등, <한성신보漢城新報> 창간.

1894/05/23(고종31) 일본공사, 왕에게 내정개혁을 건의.

1894/06/09(고종31) 일본공사, 내정개혁방안 강령세목을 제시, 시행 강요.

1894/06/21(고종31) 내각 관보과, <관보> 제1호 발행.

1894/06/23(고종31) 일본군함,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군함을 격침시킴(청일전쟁 일어남).

1894/06/25(고종31) 김홍집, 영의정에 임명됨. 군국기무처 설치(갑오경장 시작됨).

1894/06/29(고종31) 개국기원 사용(고종 31년 개국 503년).

1894/07/11(고종31) 군국기무처, 은본위제의 신식화폐 발행장정 의결 공포. 도량형기 개정(10.1. 시행, 장척⋅두곡⋅칭형). 군국기무처, 전국 각 가호에 문패를 달게 함(7.20. 시행).

1894/07/12(고종31) 군국기무처, 전고국조례⋅명령 반포식⋅선거조례 등 공포 시행.

1894/07/15(고종31) 제1차 김홍집내각 성립.

1894/07/20(고종31) 국왕, 갑오경장 윤음 반포. 조일잠정합동조관 체결.

1894/07/26(고종31) 조일공수동맹 체결.

1894/07/28(고종31) 군국기무처, 소학교 교과서를 학무아문에서 편찬케 함.

1894/10/23(고종31)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2차 내정개혁 신안 20조 제의.

1894/11/21(고종31) 제 2차 김홍집내각 성립(박영효 참여). 호위부장⋅통어사⋅장어사⋅경리사⋅군국기무처 폐지, 중추원 신설.

1894/11/21(고종31) 고종 국문을 기본으로 삼고 국한문 혼용문을 쓸 수 있다는 공문서 칙령 내각에 지시

1894/12/12(고종31) 국왕, 홍범 14조와 독립서고문(獨立誓告文)을 종묘에 고함.

1894/12/12(고종31) 공문서 사상 최초로 홍범 14조와 독립서고문을 한글로 반포.

1894/12/??(고종31) 관보에 국한문 혼용.

1895/02/02(고종32) 학교설립과 인재양성에 관한 조칙 발표.

1895/03/24(고종32) 을미개혁 단행. 재판소구성법 포함 개혁안 34건 의결 공포.

1895/04/01(고종32) 유길준 저 <서유견문>, 일본 교순사에서 간행.

1895/05/01(고종32) 외부, 주일공사관에 시범⋅소학교의 교과서 편찬에 참고키 위해 각종 일본교과서를 구입하여 보낼 것을 훈령. 한인유학생 114명, 게이오 의숙에 집단입학.

1895/05/01(고종 32) 공문식에 관한 86호 칙령 재가 반포함

1895/07/05(고종32)제3차 김홍집내각 성립(내부 박정양, 중추원의장 어윤중, 부의장 신기선).

 

1894년은 그야말로 대외적으로 격동기였다. 갑오농민전쟁같은 거센 민중의 저항과 청일전쟁과 같은 국제 정세, 갑오경장 같은 일본 중심의 개혁 등이 쉼없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일본의 청일전쟁의 승리와 민씨 정권 유린 등에 이어 친일 내각에 의한 이른바 갑오 개혁이 이루어지게 된다. 김홍집, 어윤중, 유길준 등의 친일 혁신 관료들에 의해 6월 26일 군국기무처가 설치되고 갑오개혁이 본격화 된다. 칙령이 공식 제정된 11월 21일은 2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된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이 칙령의 주체와 동기 등이 어느 정도 명확해진다. 공문식 규정만 세밀하게 따져보기로 한다.

 

 

3. 칙령의 국어사적 의미

 

3.1. ‘國文’의 의미

 

‘국문’의 기존의 국어사적 의미는 고영근(2000:6-7)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4) 한글이 15세기에 창제되었지만 공용문자의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 공용문자는 여전히 한자․한문이었다. 한글은 불교나 유교의 경전을 번역하는데 이용되는 언해문이 고작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한자를 앞세운 일종의 국한문혼용체였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한글은 그 사용기반을 넓혀 나갔다.-줄임-고종의 두 번째 칙령에 의하여 한글이 비로소 한국사회의 공용문자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한글은 창제 이래 ‘언문(諺文)’이란 이름을 붙임으로써 ‘어리석은 백성’에 국한되었던 한글의 사용범위가 전 인민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국어학계의 보편적 인식이요 평가였다. 이런 통념의 문제점은 김슬옹(2005a)에서 전면 비판한 바 있다. 곧 이는 ‘언해문’이 단지 번역문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적 문건이었음을 잊거나 과소평가한 것이었으며 이밖에 폭넓은 분야에서 공용문자로 쓰였음을 제대로 못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필자의 비판은 공용문자의 개념을 근대적 법률이나 제도 차원의 공용어(official language)로 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적 차원의 폭넓은 권력 차원에서 본 것이다. 설령 공용어 차원에서 본다 하더라도 칙령 선포 이전의 언문의 권력적 사용을 과소 평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공용문자로서의 비중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곧 근대 이전에는 한자(한문)가 주류 공용문자, 언문이 비주류 공용문자였는데 칙령 선포로 언문이 주류, 한자가 비주류로 바뀌었을 뿐이다. 칙령 선포에서 한문 번역을 공용문서 양식의 일부로 설정함으로써 한자도 공용문자로서의 가치를 여전히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한문 혼용문을 주류 공용 문서 양식으로 설정한 것이다.

 

결국 ‘공용문자’라는 용어가 ‘근대적 공용어’라는 개념으로는 ‘국문’ 칙령 이후에나 사용될 수 있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문자’라는 의미로는 근대 이전의 사용 문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필자의 김슬옹(2005a,b)에서는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용문자’라는 용어 대신에 ‘공식문자’라는 용어를 썼다.

 

필자가 고영근(2000)과 같은 불연속적 역사 인식을 비판한다고 해서 ‘국문’ 칙령이 의미하는 정치적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가 근대적 행정 절차 개혁과 더불어 대한제국을 표방하면서 ‘국문’ 칙령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용어 자체의 정치적 무게가 다르다. 조선 왕조는 한글의 공식 명칭을 ‘언문’으로 내내 불러왔기 때문이다. ‘국문’이란 말은 “本國文字, 我國文字”등과 같이 연어 구조로 쓰이다가 개화기에 이르러 “國文綴字”와 같은 독립된 어휘로 설정되었다. 이는 독립된 근대 국가의 문자라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國’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 근대 이전의 ‘國’은 단지 대국인 ‘중국’에 속하되 일정한 권한을 부여받은 작은 ‘나라’의 의미지만, 근대 이후의 ‘국’은 다른 나라와 대등한 독립된 국가로서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현배(1940/1982:고친판:85)에서와 같이 “이것(칙령)은 똑바로 세종 대왕의 이상과 솜씨를 그대로 실행하려는 국가적 처단이었으니, 이도 또한 당시 내부대신인 兪吉濬의 힘씀에 말미암은 바이다.”와 같이 언문 자체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하기 이전에 언문 창제 이후의 글말살이가 다층적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 조선시대는 입말은 조선말이라는 단일 층위였지만 글말은 한문, 이두문, 언문, 혼합문 등 다층적이었다. 공식문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근본적으로 공식문자와 통용 문자를 혼동한데서 비롯되었다. 사대부층에게 기본적인 통용 문자(학문 도구 포함)는 한문이었다. 그러나 언문은 사대부층의 통용 문자는 아니었지만 공식문자였다. 그러니까 언문은 지배층에게 통용 문자로서는 배척당했지만 제도 문자로서는 별 이의제기 없이 수용되어 온 것이다. 물론 언문도 준통용 문자로서의 구실을 했기 때문에 1894년 국문 칙령 반포가 가능했다고 보자는 것이다.

 

언문은 지배층에게 주된 통용 문자는 아니었지만 제도 차원의 공식문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종 칙령에 의해 언문이 공식 기본 문자가 되었음에도 실제 통용 문자로는 부차적인 문자 양식으로 규정한 국한문 혼용문이 오랜 세월 동안 주류 생활문자로 자리매김 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문 본위’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국문만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자도 쓸 수 있지만 국문이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언문’은 칙령 제정 전에도 공식문자였다. 다만 칙령 전에는 ‘한문’이 공식 기본(주류) 문자이고 언문이 부차적인 문자였다면, 칙령 다음에는 국문이 기본(주류) 문자이고 한문을 부차적인 문자로 제도화하였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볼 때, 김영황(1978:456) 등 대부분이 기존 국어사 기술에서 ‘한문과 이두’가 조선의 공식문자였는데 갑오개혁으로 언문, 즉 국문이 공식문자로 되었다는 시각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언문도 공식문자였다는 것이다. 다만 갑오개혁 이전과 이후의 언문의 공식문자로서의 가치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굳이 그 차이를 강조한다면 주류나 비주류 또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공식문자냐 아니냐의 차이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문을 기본으로 삼지만 한문 번역을 붙인다는 상황도 한문 공문서와 언문 공문서를 동시에 발표하던 상황을 뒤집어 놓은 셈이다. 고종 때만 보더라도 실록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사건이 아래와 같이 13 건이나 보인다.

 

(5) 가. 대왕대비가 경복궁 공사에 나오지 말고 농사를 짓는 것에 힘쓰라고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할 것을 지시하다-고종 2년(1865) 5월 3일(정유)

나. 대왕대비가 천주교를 금하는 교서를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하도록 지시하다--고종 3년(1866) 1월 24일(갑신)

다. 법령을 엄격히 하고 토호(土豪)의 악습을 없애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공문을 띄우라고 지시하다 -고종 3년(1866) 2월 27일(정사)

라. 군정과 전정의 폐단을 바로잡도록 공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내리다 -고종 3년(1866) 6월 2일(기축)

마. 서학을 하는 불순한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윤음(綸音) 규례에 따라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게 하다-고종 3년(1866) 8월 2일(무자)

바. 밭 면적을 조사할 때 백성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교서를 반포할 것을 지시하다-고종 3년(1866) 9월 7일(계해)

사. 경기, 삼남, 황해도에 사창을 설치하는 교지를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하다 -고종 4년(1867) 6월 11일(계사)

아. 의정부에서 4도에 구제곡을 내려주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할 것을 제의하다.-고종 4년(1867) 6월 11일(계사)

자. 북관의 변경 지역 백성들의 형편을 돌보아 주도록 하라는 교서를 한문과 언문으로 마을까지 반포하라.-고종 6년(1869) 11월 23일(경인)

차. 호포법 문란을 징계하는 내용을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기를 청하다.-고종 16년(1879) 11월 15일(갑신)

카. 도박과 양곡유출을 금지하는 공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도록 의정부에서 제의하다 -고종 20년(1883) 10월 27일(갑술)

타. 아이를 납치하는 범인들을 잡는 법을 한문과 언문으로 공포하도록 지시하다.-고종 25년(1888) 5월 10일(신유)

파. 북쪽의 환곡 정책을 안무사로 하여금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모든 마을에 알리게 하다.-고종 25년(1888) 5월 17일(무진)

 

이렇게 볼 때, 칙령 1호 14조와 칙령 89호는 표면적으로는 종전의 “언문은 공식적으로 ‘나랏글’ 즉 ‘국문’으로 그 위상이 격상된 것(백두현:2004:8)”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 이면에는 언어 차원에서는 한문과 국한문 혼용과의 복잡한 관계가 설정되어 있고, 그에 따른 정치적 위상 관계가 얽혀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3.2. 국한문 혼용문의 의미

 

그동안 조선 말기나 일제 시대의 국한문 혼용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어 왔으나 공문서 칙령에서 왜 국한문 혼용문을 공용 문서 양식으로 설정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없었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공문서 칙령을 연구한 쪽에서는 국문을 기본으로 삼았음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국한문 혼용이 공용 문서 양식임을 망각하거나 과소평가한 것이고, 국한문 혼용 연구 쪽에서는 국한문 혼용체에서 1894년의 공문서 칙령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이다.

 

이러한 연구의 문제점은 실제 상황을 짚어보면 금방 드러난다. 공문서 칙령 그 자체로만으로는 국문을 기본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국한문 혼용문이 주류 공용 문서 양식이었으므로, 국문을 기본으로 삼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낭만적 인식인 셈이다. 국한문 혼용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칙령의 정치적 비중으로 보면, 칙령을 결부시키지 않은 국한문 혼용문 연구는 핵심 사건을 놓친 잘못을 보여준다.

 

1948년 10월 9일 공포한 ‘한글전용법’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고 하여 국한문 혼용문을 공용 문서의 주요 양식으로 공포할 만큼 국한문 혼용문은 광복 이후까지도 우리 사회의 주요 문체로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칙령에서 못박은 국한문 혼용문의 문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볼 있지만 그 성격은 사뭇 다르다.

 

문체 측면에서 보면 1894년의 국문 선포 칙령은 국문체보다는 국한문혼용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국문만의 공용문서를 지지한다면 한역을 붙이는 번거로움을 따를 리 없고, 한문 공용문서에 얽매여 있는 부류들도 그러한 문체를 따르기보다는 국한문 혼용체를 따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칙령을 아예 “국한문혼용체 사용에 관한 법령”으로 못박은 김영황(1978:457)의 평가는 칙령의 본질을 간파한 셈이다. 형식적 조항 내용만으로 본다면 국문체가 주류 문서 양식이 되어야 하지만, 조항 전체 맥락과 그 시대 상황 맥락으로 보면 국한문 혼용체가 주류 문서양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칙령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때의 국한문 혼용문이 공식 문서 양식으로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 맥락과 가치는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흐름으로 볼 때 지배층과 지식인 측면에서 보면 사용 문체가 4원 구조에서 2원 구조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한문체 사용 계열로 보면 혼용체는 상대적 진보 입장에 서게 되고 언문체 계열로 보면 상대적 퇴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조규태(1992:38)에서 인용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6) ……이렇듯한 천대 아래에 거의 전연히 그 본래의 사명을 잊어버리게 된 한글에도, 큰 시대적 각성으로 말미암아 부흥의 새벽이 돌아왔으니, 그것은 곧 고종 31년의 갑오경장이다. 이때로부터 중국 숭배, 한문 존중의 수 백년 미혹의 꿈을 깨뜨리고, 제 글자 한글을 높혀쓰기 비롯하여, 소설은 물론, 과학, 종교, 예술, 기행 등 각종 저서와 신문, 잡지,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글을 쓰게 되었다. 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일어난 한글 부흥의 선구자는 矩堂 兪吉濬 선생이다. 선생이 미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근 600쪽의 큰 지음 “西遊見聞”(을미년 간행, 양장본)을 지으니 이것이 참으로 최근세 조선문화사에 있어서 국한문체의 맨 처음이다. -최현배(1940/1982:83)

 

(7) 조선 전기에서부터 이른바 국한혼용의 문건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은 극히 제한된 것이었고, 그것이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다소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다가, 이른바 개화기에 오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이른 것은 극히 타율적인 힘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문자사적으로 보나, 정치적인 배경으로 보나 타락의 과정이었지 결코 발전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이 개화기에 와서 비로소 나라글자의 구실을 감당하기 시작했다는 견해는 너무도 피상적인 관찰이요 오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 김종택(1992:107)

 

당대의 가까운 시기의 변화 소용돌이를 살았던 최현배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현배는 한글전용주의의 대표 지식인이지만 초기 저술에서 어느 정도 국한문 혼용체를 구사했던 내력으로 보아 시대 논리를 따른 측면을 이해할 만하다. 다만 갑오 개혁의 정치적 배경과 한계 등을 지나치게 소홀히 평가한 듯하다. 김종택의 견해는 역사의 연속성 속에서 한글의 위상을 바라본 것은 좋으나 타락과 발전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극단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어느 누구의 견해가 옳으냐보다는 그 당시 국한문 혼용체의 양면적 특성에 따른 평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국한문 혼용체의 연원에 대해서도 대립된 관점이 형성되어 왔다.

 

(8) 가. 海東 六龍이 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시니 -「용비어천가」 1장

나.셰世존尊ㅅ일리니먼萬링里외外ㅅ일이시나눈에보논가너기쇼셔-「월인천강지곡」 기이

(9) 關關雎鳩ㅣ 在河之州ㅣ로다. 窈宨淑女ㅣ 君子好逑ㅣ로다. -「시경언해」 권.

(10) 大槪開化라 者 人間의千事萬物이至善極美 境或에抵홈을胃홈이니然故로開化境或은限定기不能者라人民才力의分數로其等級의高低가有나然나人間의習尙과邦國의規模를隨야其差異홈도亦生니此開化軌程의不一綠由어니와大頭腦人의爲不爲에在이라 -유길준의 『西遊見聞』의 「開化의 等級」중에서

 

김종택(1992)과 같은 계열에서는 (10)와 같은 문체는 일본 영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규태(1992:55)에 의하면 “한글이 창제된 이후 초기의 한글 문헌들은 국한문이 거의 대부분이며, 국한문으로 쓰여 있거나 국문으로 쓰여 있거나 모두 우리말 입말과 별로 다름이 없는 글”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비롯한 일제시대 국한문은 단적으로 말해서 일본글을 모방한 것(59)”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쓰는 한자-가나 혼용문은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모두 『서유견문』의 문체와 같다고 본 것이다.

이에 반해 김완진(1983:245-6)에서는 유길준 문체는 (9)와 같은 경전언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독립신문에서의 서재필 문체와 같은 한글전용체는 거의 언문만으로 언해된 ‘소학언해’와 같은 문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유길준의 문체가 귀족적이요 장중한 문체라 한다면 서재필류의 문체는 평민적이요 친절감을 주는 문체(김완진:1983, 247)”라고 대조하고 있다. 이러한 김완진의 견해는 유길준의 문체를 내적 전통 속에서 찾은 것으로 조규태의 견해와는 대조될 뿐만 아니라 역사적 평가도 사뭇 다르다.

유길준의 문체가 경전언해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문체는 전체 문체로 보나 국한문체로만 보나 주류 문체는 아니었다. 결국 유길준식 문체는 가능성 있는 전통적 문체 양식에 일본식 문체와 정치적 상황이 강하게 투사된 문체라고 볼 수 있다. 친일 내각의 핵심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철저히 현실주의자였던 유길준의 언어관은 『서유견문』 머리말에서 스스로 밝혀 놓고 있다.

 

(11) 서유견문’이 완성된 며칠 뒤에 친구에게 보이고 비평해 달라고 하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참으로 고생하기는 했지만, 우리글과 한자를 섞어쓴 것이 문장가의 궤도를 벗어났으니, 안목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방과 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유길준)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나라의 글자는 우리 선왕 세종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이니, 나는 오히려 우리 글자만을 순수하게 쓰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과 국교를 이미 맺었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상하 귀천이나 부인과 어린이를 가릴 것 없이 저들의 형편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서투르고도 껄끄러운 한자로 일크러진 글을 지어서 실정을 전하는 데 어긋남이 있기보다는, 유창한 우리 글과 친근한 말을 통하여 사실 그대로의 상황을 힘써 나타내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국한문체의 지나친 진보성을 우려하는 친구에게 우리글로만 쓰고자 하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현실주의를 따랐을 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고백으로 볼 때, 국한문체로나마 우리 글을 사용하는 것이 대단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의 의도를 존중하여 후세 학자들은 그를 한글 발전의 선구자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허웅:1974, 186).

 

이런 관점대로라면, 개화기 국한문 혼용체가 일본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해서 일본식 국한문혼용체라고 못을 박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영향과 일본 문체와의 유사성으로 보아 일리는 있지만, 그렇게만 한정해 놓으면 내적 요인을 놓치는 격이 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런 문체를 ‘이두식 국한문혼용체’ 또는 기존 논의에서 더러 나온 바 있는 ‘한주국종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이두는 한문을 우리말 어순으로 배열한 뒤 조사나 어미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 때의 조사나 어미를 한자 방식에서 한글로 바꾼 것이 바로 개화기 때의 국한문 혼용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식 개화를 주도한 지식인들이 이두문의 주된 사용자였던 중인 계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런 용어가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두식 국한문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일본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체의 내적 외적 요인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내적 요인으로 첫째는 이두식 국한문체가 언어 문체 차원에서 조선시대 다중 문체 흐름이 복합된 문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중 문체 경험이 또 다른 문체를 생성하는 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두식 국한문체가 일본식 모방이라 하더라도 이미 한문을 오래 사용해온 흐름으로 보면, 글말에서는 토박이말보다는 한자식 어휘의 생산성이 높기 마련이다. 양반 지배층이 한문체를 주로 써왔다 하더라도 언문의 실용성이나 필요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양한 변종체를 통해 중국 정통 한문식 문화와 다른 특이성을 배양해 온 셈이다. 이두체는 한문과 한자의 기본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문화의 특이성, 언어의 특이성을 반영하려는 몸부림에서 나온 절충 문체이다. 한자를 이용해 어거지로 표현해 온 조사와 어미라는 허사를 언문으로 옮기면 바로 이두식 국한문체가 되는 것이다. 혼용체는 이두식 국한문체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질적인 두 문자를 섞는다는 측면에서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

 

둘째는 뭔가 새로운 문체가 필요한 시기에, 이두식 국한문체는 한자 중심의 보수 세력과 언문 중심의 개혁 세력 모두를 거스르지 않는 대안 문체가 된 셈이다. 설령 일본식 문체를 모방했다 하더라도 한문에 비해서는 상대적 진보성을 갖고 있고, 언문체에 비해서는 상대적 보수성을 갖고 있으므로 양쪽을 만족시키거나 강한 거부 반응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유길준과 같은 일본식 개화 세력의 새로운 문체 필요성과 일치가 된 셈이다.

 

외적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제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언어 정책은 여러 제국주의 국가의 언어정책중 가장 잔혹한 정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이루어졌다(이성연:1988). 이는 세 단계로 획책되었다. 첫 단계는 한자말을 한자로 표기하도록 하여 일본글 모습과 비슷하게 하는 이른바 국한문 혼용 단계이고, 둘째 단계는 토씨나 씨끝을 제외한 모든 글자를 한자로 써서 한글을 약화시키면서 한자를 일본식 음으로 읽도록 유도하는 단계, 셋째 단계에서는 토씨나 씨끝조차 없앤 뒤 완전한 일본글로 동화시키는 단계이다. 조선에 진출한 언론인 지식인들과 조선의 친일 개혁 인사들의 노력으로 아예 둘째 단계 문체가 빠르게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일본 군대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1876년(고종 13년)의 이른바 강화도조약(조약의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며, 병자수호조약이라고 부름) 제3조에서 “이제부터 두 나라 사이에 오고가는 공문은 일본은 자기 나라 글을 쓰되 지금부터 10년 동안은 따로 한문으로 번역한 것 한 본을 첨부하며 조선은 한문을 쓴다.”고 했던 것이 같은 해 7월에는 더욱 악날해져 무역 규칙 항목에서는 “외교문서는 모두 일본말을 쓸 것이며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는다”로 강화되었다. 마침내 1885년에는 국한문 혼용문을 공식적으로 제안하게 된다. 이노우에(井上角五郞)는 국한문 혼용체로 신문을 내야 한다고 고종에게 건의서를 올렸던 것이다.

 

(12) 한문은 해득이 어렵고 배우기 힘듭니다. 다행히도 諺文이 있어 일본의 假名과 泰西의 “A·B·C”와 같이 매우 편리한 것입니다. 섞어 씀으로써 오늘의 國家 영원의 기초를 닦고 世宗大王의 正音制定의 聖意에 보답하기를 바라옵니다.

 

위의 글은 일제가 두 가지 목적으로 국한문 혼용을 조작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는 중국과 밀착되어 있던 우리나라를 이간시키기 위해 중국글(한문)만 사용하는 것을 버리게 하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들의 문자체계 -국(일)한 혼용- 에 걸맞는 문체를 심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럼 말글 침투의 핵심 일본인인 이노우에가 개화파와 결합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개화파의 핵심인물인 박영효는 1882년 수신사의 자격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신문 발간의 필요성을 크게 느껴 돌아오면서 기자와 인쇄공 등 몇몇의 일본인을 데려왔다. 이 때 이노우에가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1883년 신문 발간 허락을 고종으로부터 받게 되나 박영효의 좌천과 실무자였던 유길준 등의 병으로 인해 중지된다. 그러나 수구파의 신임을 얻고 있던 온건개화론자들에 의해 신문이 발간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신문은 한문체로만 발간되었다. 이 신문은 1884년 갑신란이 실패함에 따라 1년만에 종간되었다가 1886년 한성주보로 다시 복간되었다. 결국 한성순보부터 신문 발간에 깊숙이 관여한 이노우에는 개화기 최초의 이두식 국한문체를 한성주보를 통해 주도한 셈이었다. 이 신문은 한문체, 한글체도 사용하였으나 대부분이 국한문 혼용체였다.

 

이노우에는, “서양사정”이란 책을 썼고 유길준에게 많은 영향을 준 후키자와 유키지(福澤裕吉;1835 ~ 1901)의 제자였다. 이노우에가 국한문 혼용체 보급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한성주보에서의 행적 외에 본인의 회고를 참고할 수 있다.

 

(13) 먼저 여기서 발행되었던 것이 한자만으로 쓰여졌던 한성순보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조선인 또는 중국인 중에서도 이러니저러니 비난이 있었는데, 호를 거듭함에 따라서 세간에서도 차츰 그 필요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층 일반에 보급시키기 위해서는 한문체만이 아니라, 한문에 언문을 혼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깊이 느꼈다.

 

언문은 옛부터 내려온 조선문자인데, 중국 숭배 사상에 사로잡혀 상류 계층은 한문만을 쓰고, 언문은 이른바 하층민들만이 썼었다. 일찍이 조선에서 쓰던 동몽선집(童蒙選集)은 한문만의 기술이고, 중국을 선진국으로 숭배하고 제나라를 그 속국으로 여기고, 제나라 글자인 언문을 천대하여 어디까지나 중국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이와 같이 동몽선집이 조선 사람들에게 심한 잘못된 생각을 품게 했기 때문에 그후 러일전쟁을 거쳐 우리나라가 한국에 통감부를 둔지 얼마 안 될 무렵, 즉 한일합방 전에 한국 정부는 명령하여 이 동몽선집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귀족도 한문 외에 언문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에는 이 언문 외에 이두(吏文)라고 하여 정부의 사무 취급에 주로 쓰이고 있었던 문자가 있었다. 그것은 중인이라고 일컫는 무리로, 즉 관리도 아니고, 노비라고도 할 수 없는 자가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많이 있었다. 이 중인 계급이 관청의 사무에 이 이두를 언제나 썼다. 이와 같이 당시에 있어서는 한문, 이두, 언문이라는 세 갈래의 문자가 조선의 계급에 따라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선의 언문으로써 우리나라의 가명(가나:히라가나와 가다가나)과 비슷한 문체를 만들어 그것을 널리 조선 사람에게 사용하게 하여 우리나라(일본)와 한국을 같은 문체의 국가 상태로 만들고, 또 문명 지식을 주어, 일본에서 옛날의 고루한 사상을 바꾸고자 계획했던 후끼자와(福澤) 선생 뜻을 받들어 한문에 언문을 섞은 문체에 의해 신문을 발행하기로 했다. 그것이 곧 한성주보이다.-井上角五郞(1938:98)의 번역 인용

 

이런 맥락으로 보면, 국한문 혼용문 보급에 일본이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로서는 문체 보급에 가장 효율적인 신문 제작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성주보에서 본격화된 국한문 혼용체는 공문서에까지 사용하게 된다. 1894년에 펴낸 “종묘서고문”이라는 공문은 순한문체로만 발표하던 관행을 깨고 한글체와 국한문 혼용체를 함께 발표했던 것이다. 또한 국한문 혼용체는 몇몇 지식인들의 책 출판으로 지지층을 넓혀 갔다. 그런 흐름 속에서 국한문 혼용체 보급에 커다란 구실을 하게 된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이 나오게 된다. 이 문체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글체가 아니었음에도 한문체에 대한 상대적 진보로 인하여 개혁 문체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일본 유학생으로 일본의 개화론자인 후쿠자와의 제자인 이노우에와 가까이 지냈던 것으로 보이는 유길준이 위와 같은 문체로 책을 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둘째는 친일 내각 인사들이 주도하였다는 점이다. 개화파는 조선 사회 후기에 정권에서 소외되온 유학파를 중심으로 이른바 실학파가 형성되었는데 이들이 개화파로 발전되었다. 이들 개화파는 민씨 세력과의 대립 속에서 부르조아 개혁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갑신란(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개화파는 이 정변을 통해 나름대로 근대화를 시도하였으나 민중을 정치적 기반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 세력에 지나치게 기대는 잘못을 저질러 실패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민씨 정권은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민중과 개화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이런 흐름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굳혀 갔다.

 

봉건주의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안팎으로 고통을 당하던 민중 세력은 동학 등의 사상에 힘입어 마침내 갑오 농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이 전쟁은 봉건주의 세력과 일본군의 침략으로 실패했지만 수구 세력인 민씨 정권을 위축시키면서 개화파의 입지를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마침내 고종을 몰아 내고 대원군을 이용 일본화의 개혁을 이루려 하였으나 대원군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이른바 갑오 정권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들 세력에 의해 이른바 갑오 개혁이 시도된다. 그러나 갑오 개혁은 개화파의 의도와는 달리 일본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청일 전쟁 후, 일본의 본격적으로 침략의 길을 닦아 주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한문 혼용체는 일본을 추종하는 개화파에 의해 지지를 받아 지식인들 사이에 보편적인 문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문체는 내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학파의 후예들인 개화파도 지식인으로써 한문, 한자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그런 문체를 그 시대에 맞는 절충적 문체로 일반화시키는데 앞장 섰다고 볼 수 있다. 국한문 혼용 문체에 대한 김진경(1985)의 견해는 이런 관점에서 핵심을 찌른 것이라 볼 수 있다.

 

(14) 국한문 혼용체는 개화기에 일본이 식민주의 이념의 전파자로 선택한 중인계층출신 지식인들의 문체였고, 일제시대에는 식민지 토지자본가 혹은 상업자본가로 재편성된 토착지주와 중인계층출신들의 문체이자 식민지 사회의 공용어였다. 즉 국한문 혼용체는 일본문화 침략의 핵심적인 회로였으며 아서구화 혹은 아일본화된 친일 세력의 이념을 전파하는 매체인 것이다. 미래를 지향해야 할 국어교육의 한글전용을 파기한 것은 따라서 친일세력들이 학교교육을 자기계층의 이념을 확대재생산 해내는 장치로써 독점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언문체의 전통을 이어받은 다음과 같은 문체는 실효성을 거두지는 못했다.

 

(15) 논설

우리가 독닙신문을 오 처음으로 출판 조션속에 잇 외국 인민의게 우리 쥬의를 미리 말여 아시게 노라. -가운데 줄임-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거슨 샹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국문을 이러케 귀절을 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이라. 각국에셔 사들이 남녀 무론고 본 국 국문을 몬저 화 능통 후에야 외국 글을 오 법인 죠션셔 죠션 국문은 아니 오드도 한문만 공부 에 국문을 잘 아 사이 드믈미라 <독닙신문 창간호(1889) 논설 중에서>

 

위와 같은 언문체 흐름은 일본의 힘과 친일 개화파의 득세 때문에 여론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국한문 혼용문이 보편적인 것이 되고 그것이 아래 이광수의 주장처럼 신지식 수입으로 합리화되게 된다.

 

(16) 然則 엇던 文體를 使用까 純國文인가, 國漢文인가! 余의 마로 진 純國文으로만 쓰고 십흐며,  면 될 쥴 알되 ··· 今日의 我韓은 新知識을 輸入 급급 라. 이에 해키 어렵게 純國文으로만 쓰고 보면 新知識의 輸入에 저해가 되슴으로 此意見은 잠가 두엇다가 他日을 기다려 베풀기로 한고 只今 余가 주장 바 文體는 亦是 國漢文 竝用이라-이광수, 今日 我韓用文에 對하야, 황성신문 1910. 7.24-27

 

결국 위에서의 신지식 수입은 한자를 매개로 한 일본 문체를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은 개량적 개혁주의자들에 의한 기미독립선언서(기초: 최남선)까지 이어져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명문으로 소개되고 있다.

 

(17)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政權을 永有케 하노라.

 

 

4. 마무리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고종에 의한 국문 선포 칙령은 ‘국문’과 ‘국한문’의 맥락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상에서 논의된 바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1894년 고종 31년의 공문식 칙령은 친일 내각 친일 혁신 세력에 의해 제정되고 고종이 재가한 규정이다.

(2) 국문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국문체보다는 국한문체가 기본인 공용문서 규정이다.

(3) 이러한 국한문체는 한문체에 비해서는 상대적 진보를 국문체나 전통 주류 국한문체에 비해서는 상대적 퇴보를 보여주는 규정이다.

(4) 이때의 국한문체는 조사나 어미, 순우리말로 된 관형사 외는 모두 한자로 적는 ‘이두식 국한문체’이다.

(5) 이러한 문체는 경서언해체의 전거가 있으나 실제로는 일본식 국한문체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6) 이 칙령은 이러한 국한문체가 공용문서의 주류 문체로 자리잡게 한 주요 정치적 사건이다.

 

 

 

참고문헌---

강명관(1985). 한문폐지론과 애국계몽기의 국ㆍ한문논쟁. 『한국한문학연구』 8집. 한국한문학회.

고영근(2000). 개화기의 한국 어문운동 : 국한문혼용론과 한글전용론을 중심으로.. 『冠嶽語文硏究』 25. 서울大學校國語國文學科.

교수신문 기획․엮음/이태진․김재호 외 9인 지음(2005).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서울 : 푸른역사.

국사편찬위원회(1996). 『한국사 25․26․27』. 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권영민(1996). 개화 계몽 시대 서사 양식과 국문체. 『문학과 언어학의 만남』. 서울 : 신구문화사.

김경일(2003).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서울 : 백산서당.

김미형(1998). 한국어 문체의 현대화 과정 연구 - 신문 문장을 중심으로. 『어문학연구』 7. 상명대학교.

김미형(2005). 『우리말의 어제와 오늘』. 서울 : 제이앤씨.

김병철(1987). 19세기말 국어의 문체ㆍ구문ㆍ어휘의 연구.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석득․박종국 편(2001). 『한글 옛 문헌 정보 조사 연구』. 서울 : 문화관광부.

김수업(1978). 『배달문학의 길잡이』. 서울 : 선일문화사.

김슬옹(1995). 국한문혼용문은 일제 침략의 산물이다. 『사회평론 길』 1월호(61호).

김슬옹(1999).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저놈을 매우 쳐라』.서울 : 다른우리 .

김수열(2004). ‘국어(國語)’의 뜻넓이와 유래. 『자하어문논집』 19집. 상명어문학회.

김슬옹(2003). 언어전략의 일반 특성. 『한말연구』 제13호. 서울 : 한말연구학회.

김슬옹(2005a).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관련 기사를 통해 본 문자생활 연구. 서울 : 상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김슬옹(2005b).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 서울 : 한국문화사.

김슬옹(2005c). 언어 분석 방법론으로서의 담론학 구성 시론. 『사회언어학』 13권 2호. 한국사회언어학회.

김영황(1978). 『조선민족어발전력사연구』. 평양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김영황(1997). 『조선어사』. 평양 :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김완진(1983). 『한국어 문체의 발달. 한국어문의 제문제』. 서울 : 일지사.

김윤경(1963). 『새로 지은 국어학사』. 서울 : 을유문화사(한결 金允經全集 2, 延世大學校 出版部).

김인선(1999). 개화기 이승만의 한글 운동 연구. 연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김정수(1990). 『한글의 역사와 미래』. 서울 : 열화당.

김종택(1992). 『국어어휘론』. 서울 : 탑출판사.

김진경(1985). 일본교과서 문제와 한국의 교과서(1). 『민족의 문학과 민중의 문학』 서울 : 이삭.

김혜숙 편(1997). 『언어의 이해』. 서울 : 태학사.

남풍현(1996). 『언어와 문자, 조선시대 생활사』. 한국고문서학회 엮음. 서울 : 역사비평사.

려증동(1977). 19세기 한자-한글 섞어쓰기 줄글에 대한 연구. 『한국언어문학』 15집.

류렬(1992). 『조선말력사 1․2』. 평양 : 사회과학출판사.

민현식(2000). 공용어론과 언어정책. 『이중언어학』 17호. 서울 : 이중어어학회.

박영준․시정곤․정주리․최경봉(2002). 『우리말의 수수께끼』. 서울 : 김영사.

박종국(1996). 『한국어 발달사』. 서울 : 문지사.

박종국(2003). 『한글문헌 해제.』 서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백두현(2001). 조선시대 한글 보급과 실용에 관한 연구. 『震檀學報』 제92집. 서울 : 震檀學會.

백두현(2004a). 우리말[韓國語] 명칭의 역사적 변천과 민족어 의식의 발달. 『언어과학연구』 제28집. 서울 : 언어과학회.

백두현(2004b). 한국어 문자 명칭의 역사적 변천. 『문학과 언어제』 26집. 서울 : 문학과언어학회.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1988). 『조선문화사』. 평양 :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미래사 영인:1988).

심재기(1992). 개화기 교과서 문체에 대하여. 『국어국문학』 107호. 국어국문학회.

안대회(2004). “조선후기 이중언어텍스트와 그에 관한 논의들”. 『대동한문학회 2004 하계 발표대회 자료집』. 대동한문학회.

안병희(1985). 訓民正音 使用에 관한 歷史的 硏究-창제로부터 19세기까지. 『東方學誌』 제46․47․48 합집. 서울 : 연세대학교국학연구원.

위르겐 슐룸봄/백승종 외 옮김(2001). 『미시사와 거시사』. 서울 : 궁리

유동준(1968).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대한 일고찰. 『역사학보』 8집. 역사학회.

유동준(1987). 『유길준전』. 서울 : 일조각.

이근수(1979/1987:개정판.). 『朝鮮朝의 語文政策 硏究』. 서울 : 弘益大學校出判部.

이기문(1961/1972:개정2판). 『國語史槪說』. 서울 : 塔出版社.

이기문(1963). 『국어 표기법의 역사적 연구』. 서울 : 한국 연구원.

이기문(1970). 『개화기의 국문 연구』. 서울 : 일조각.

이노우에 가꾸로로오/김슬옹 옮김(1998). 협력하고 융합하여 복지를 도모하자. 『한글새소식』 308호(4월호). 한글학회.

이성연(1988). 열강의 식민지 언어정책에 대한 연구. 전남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이응호(1975). 『개화기의 한글 운동사』. 서울 : 성청사.

이재룡(2000). 조선시대의 법 제도와 유교적 민본주의. 『동양사회사상』 3집.

이해창(1977). 『한국신문사연구』. 서울 : 성문각.

임형택(1999). 근대계몽기 국한문체(國漢文體)의 발전과 한문의 위상.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소.

임형택(2000). 한민족의 문자생활과 20세기 국한문체. 『창작과비평』 107. 창작과비평사.

장세경(1984). 개화기 국어과 교육의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조규태(1991). 서유견문의 문체. 『들메 서재극 박사 환갑기념 논문집』(간행위원회).

조규태(1992). 일제시대의 국한문혼용문 연구. 『배달말』 17집. 배달말학회.

조동일(1992). 『한국문학통사 4(제2판)』. 서울 : 지식산업사.

주승택(2004). 국한문 교체기의 언어생활과 문학활동. 『大東漢文學』 제20집. 大東漢文學會.

최경봉(2005). 우리말의 탄생. 서울 : 책과함께.

최준(1979). 『한국신문사』. 서울 : 일조각.

최정태(1992). 『한국의 官報』. 서울 : 亞細亞文化史.

최현배(1940/1982:고친판). 『고친 한글갈』. 서울 : 정음문화사.

한국어학연구회 편(1994). 『국어사 자료선집』. 서울 : 서광학술자료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2004). 『한국사연표』. 서울 : 동방미디어.

허웅(1974). 『한글과 민족 문화』. 서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허재영(1984). 조선일보의 위험천만한 한자 복권 운동. 『말지』 1994년 4월호.

허재영(2003). 근대 계몽기의 어문 문제와 어문 운동의 흐름. 『국어교육연구』 제11집. 서울 : 서울대학교국어교육연구소.

홍기문(1946). 『正音發達史 上․下』. 서울 : 서울신문편집국.

홍윤표(1993). 『國語史 文獻資料 硏究 : 近代編 1』. 서울 : 太學社.

황호덕(2002). 한국 근대 형성기의 문장 배치와 국문 담론-타자․교통․번역․에크리튀르.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井上角五郞(1938). 協力融合, 福祉の 增進ぉ圖れ.( 朝野諸名士執筆, 소화11년,1938, 『朝鮮統治の回顧と批判』). 京城 ; 朝鮮新聞社.

小倉進平(1940). 『增訂 朝鮮語學史』. 東京: 刀江書院.

朝野諸名士執筆(소화11년,1938), 『朝鮮統治の回顧と批判』. 京城 ; 朝鮮新聞社.

 

 

 

[붙임 자료] 이노우에 회고록 전문

 

협력하고 융합하여 복지를 도모하자

 

이노우에 가꾸고로오(井上角五郞) 지음, 김슬옹 옮김

 

내가 처음 조선에 간 것은 그 유명한 대원군 사변이 있은 지 얼마 안 된 명치 15년(1882년) 12월이었다. 그 무렵 조선에서는 민씨(閔氏) 일파가 정권을 잡고, 나라정책의 개혁을 도모하기 위하여, 우리 군인을 불러들이고, 또한 우리나라의 문물제도를 시찰하게 하고, 점차 혁신의 기운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대원군 등의 수구파는 이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크게 그 대책을 강구하게 되고, 마침내 명치 15년 7월, 폭도는 왕궁에 난입하여 중요한 직책의 사람들과 우리 사관을 죽이고, 게다가 우리 공사관을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당시의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다다(花房義質)는 나가사키(長崎)로 돌아가 변고를 정부에 보고했다. 이리하여 이 사변도 이른바 제물포 조약으로 결말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타께소에 신이찌로오(竹添進一郞)씨가 조선공사로서 부임하게 되고, 나는 이 분과 같은 배로 그 곳에 건너가게 되었다. 나는 경성(서울)에 도착한 후에 정부에서 준 저동의 집에 들었다. 당시의 일본 공사관은 진고개(泥峴)에 있고, 타께소에(竹添) 공사를 우두머리로 공사 관원과 호위병 등을 포함하여 약 300명 정도의 일본인과 그 외 불과 십여 명의 일본 상인이 경성에 있었다. 실로 적적하고 쓸쓸한 상황이었다. 요전에 돌아가신 야마구찌타로오베에(山口太兵衛) 씨 등도 그 무렵부터 조선에서 터를 닦기 시작했던 분이다.

 

그리고 대원군은 그 난 때문에 중국 정부에 잡혀가 보정부(保定府)에 감금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원세개(袁世凱)와 진수당(陳樹棠), 그 밖의 참모와 함께 3천 명 정도의 군대를 거느리고 경성에 주둔하고 있었고 그들은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중국 상인은 크게 기뻐하여 속속 찾아와서 종로 부근에는 중국 상점이 줄지어 늘어설 정도였다. 그런데도 우리 쪽은 불과 12 명이라는 거의 보잘 것 없는 상태였다.

 

나는 조선 정부 아래에서 새롭게 신문 발행의 계획을 세워, 경성 남부의 저동(苧洞)에 있던 어용저(御用邸) 자리를 신문 공장으로 정하고, 여기에 인쇄 기계와 그 밖의 것을 설치하고, 그 옆에 새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교육 사무를 관장하는 박문국이라는 관청을 설치하여 그 총재로는 외어문독변(外衙門督辨) 민영목(閔泳穆)씨, 부총재는 한성판윤 김면식(金冕植) 씨 등이고, 나는 외어문(外衙門) 고문으로서 그것을 주재하고, 신문의 발행에 임하게 되었다.

 

먼저 여기서 발행되었던 것이 한자만으로 쓰인 한성순보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조선인 또는 중국인 중에서도 이러니저러니 비난이 있었는데, 호를 거듭함에 따라서 세간에서도 차츰 그 필요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층 일반에 보급시키기 위해서는 한문체만이 아니라, 한문에 언문을 혼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깊이 느꼈다.

 

언문은 예부터 내려온 조선 문자인대, 중국 숭배 사상에 사로잡혀 상류 계층은 한문만을 쓰고, 언문은 이른바 하층민들만이 썼었다. 일찍이 조선에서 쓰던 동몽선집(童蒙選集)은 한문만의 기술이고, 중국을 선진국으로 숭배하고 제나라를 그 속국으로 여기고, 제나라 글자인 언문을 천대하여 어디까지나 중국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이와 같이 동몽선집이 조선 사람들에게 심한 잘못된 생각을 품게 했기 때문에 그후 러일전쟁을 거쳐 우리나라가 한국에 통감부를 둔지 얼마 안 될 무렵, 즉 한일합방 전에 한국 정부는 명령하여 이 동몽선집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귀족도 한문 외에 언문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에는 이 언문 외에 이두(吏文)라고 하여 정부의 사무 취급에 주로 쓰이고 있었던 문자가 있었다. 그것은 중인이라고 일컫는 무리로, 즉 관리도 아니고, 노비라고도 할 수 없는 자가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많이 있었다. 이 중인 계급이 관청의 사무에 이 이두를 언제나 썼다. 이와 같이 당시에 있어서는 한문, 이두, 언문이라는 세 갈래의 문자가 조선의 계급에 따라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선의 언문으로써 우리나라의 가명(가나:히라가나와 가다가나)과 비슷한 문체를 만들어 그것을 널리 조선 사람에게 사용하게 하여 우리나라(일본)와 한국을 같은 문체의 국가 상태로 만들고, 또 문명 지식을 주어, 일본에서 옛날의 고루한 사상을 바꾸고자 계획했던 후끼자와(福澤) 선생 뜻을 받들어 한문에 언문을 섞은 문체에 의해 신문을 발행하기로 했다. 그것이 곧 한성주보이다.

 

조선에서 이조 선조 이후의 정치사는 실질적으로는 당쟁사이고, 권력 투쟁사이다. 문관과 무관끼리 당을 만들고, 파를 이루어 서로 싸우고, 게다가 이것을 계속하며 또 스스로 여러 당파를 생기게 하여 격렬한 싸움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당파 싸움 때문에 또는 국왕파, 왕비파가 되어 서로 싸우며 밀어내고, 또 어떤 사람은 중국과 손잡고, 또는 일본에 의존하는 자도 있는가 하면, 그 외에 다른 곳에 매달리는 자도 있는 가지각색의 당파를 생기게 하고, 여기에도 누구인가의 당이 있고, 거기에도 누구인가의 파가 있는 상태에서 국왕은 그 거취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내가 갔을 무렵의 궁정에서는 국왕은 온 종일 주무시고, 오후 세 시 무렵이 되어 눈을 뜨시고, 네 시 무렵부터 입내(入內)라고 부르는 별입시(別入侍)란 자가 배알을 위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 별입시는 국왕을 뵙고 다양한 의견을 말씀드리는 자이고, 이들 가운데는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는 인물도 있는가 하면, 또 아첨만을 일삼는 아무런 포부도 없는 자도 있고, 여러 종류의 인물이 별입시로서의 자격 아래에 궁중에 출입하며 국왕에 대하여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말씀드렸었다.

 

아울러 당시의 국정은 국왕의 전제(專制)에 의해 행해졌던 관계상, 한 분의 생각에 따라서 제멋대로 방침이 정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럿의 별입시를 대하기 때문에 앞 사람에게 한 이야기와 다음 사람에게 한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을 때가 적지 않아서 그 말씀을 들은 별입시는 마침내 외부에서의 충돌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 싸움이 끊이질 않았었다.

 

이와 같이 마음에 드셔야만 궁중에 불러들이시고, 그것에 기초하여 정치를 행하시기 때문에, 각종의 병폐를 낳게 되고, 점점 그것이 심해지기 때문에, 우리 공사도 이것을 국왕에게 간하고, 원세개도 또 별입시 제도가 불가한 까닭을 말씀드렸다. 즉 국왕의 측근인 자가 여러가지를 말씀드린다는 것이 이미 나라를 어지럽히는 바탕이고, 이 별입시인 자가 조선을 그르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귀족을 양반이라고 하는데, 이 양반 가운데는 「사대부」라는 계급이 있었다. 이것은 어떤 나이에 이르면 관찰사라든가 군수라든가 하는 중요한 관직에 오르게 된다. 이 「사대부」의 가문 이외의 자도 양반이라고는 일컫지만, 좋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자는 아니더라도 「기인(其人)」이라고 부르는 계급이 아니면 영달은 불가능했다.

 

앞에 언급한 「중인」은 지방청에서의 회계를 담당, 조세의 징수를 맡았던 자이고, 현재에 상당한 사람들은 이 중인 출신인 자가 다수이다. 그런데도 당시는 「기인」 「중인」은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자가 많았지만, 그들이 관직을 얻는 일은 극히 곤란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당시의 정치를 구가(謳歌)하지 않을 뿐더러, 이것에 대하여 반항적 기분을 품고 있었다. 여기에도 또 조선의 혼란이 잦은 원인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송병준 씨와 같은 이는 뛰어난 중인 출신이었다.

 

한편, 귀족은 좋은 관직에 나가기 위한 등용문인 과거에 응시해야 하는데, 무인은 활, 창, 검(弓矢劍槍)에 의해, 문인은 문장에 의해 이를 시험했다. 급제하면 진사(進士)가 되어 크게 세력을 떨쳤다. 그리고 과거를 실시하기 위한 위원을 국왕이 선임하여 그들이 문제를 결정했다. 이 시험에도 여러가지 폐혜가 따라 미리 문제를 숙지하고 있는 사대부는 용이하게 진사가 될 수 있었다.

 

또는 무관의 가문이 좋은 자의 자제가 활을 쏘는 경우는 과녁이 자연히 따라다니며 맞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제도가 있어도 그것에 급제하는 일은 보통으로는 곤란했다. 또 실제로 과거의 문장 등은 상당히 어려웠다. 그것도 특수 계급 이외의 일반 사람은 이 과거에 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평 불만을 품고 정치를 저주하고 당시의 정부를 저주하는 결과에 빠지는 것이었다.

 

내가 박문국(博文局)에 있을 때, 주사(主事), 사사(司事)로서 수십 명의 조선 사람을 썼는데, 이 중에는 중인 계급 출신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이 중인 계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모든 점에서 뛰어났다. 그러므로 조선의 정치도 그것을 선도하고, 개혁하여 그 고루한 병폐를 없애고, 그것에 참신한 기를 살려 가면, 또는 그 혁신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을 지도 모를텐대, 결국 당파 싸움으로 일관하여 그 전도를 그르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민중의 생활 상태를 시찰하고, 행정, 세제의 실제를 살피고, 또한 토지가 많고 적은가 또는 교통이 편리한가 아닌가를 보기 위해, 명치 19년(1886년)의 11월 15일에 경성을 출발하여 경기, 충청, 전라, 경상의 각도 조선말을 타고 시찰 여행을 다녀왔다.

 

험한 길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 지방 관청(地方官衙)의 상황을 조사하고, 게다가 끊임없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조사 서류는 그것을 두 갈래로 나누고, 하나를 행정세제조사서(行政稅制調査書)라 하고, 하나를 지방산업개발조서(地方産業開發調査書)라고 하여 그것을 국왕 전하께 올리고, 다시 이 행정세제조사서에는 애초의 내 견해를 추가하여 그것을 “조선개혁의견서(朝鮮改革意見書)”라고 제목을 붙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씨가 조선정부고문으로서 부임할 때에 그에게 보냈던 것인데, 이 내 의견은 대개 이 이노우에씨가 인용하였다.

 

그리고 또 지방산업개발조사 가운데의 수리관개(水利灌漑)에 관한 것만을 정리하여 이또히로부미(伊藤博文) 공이 한국 총감으로서 한국에 부임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보냈던 것이다. 경성을 출발한 이래 바야흐로 해도 저물어 가는 12월 말일까지 약 40일간의 추운 겨울 여행은, 여전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추억거리이다.

 

그로부터 50년이 되는 지금, 그 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꿈만 같다. 그 무렵의 조선에 대한 감상으로서는 그저 변변치 못했을 따름이다. 길도 다리도 거의 없고, 물론 교통 기관도 없고, 전보 한 번 치고 싶어도 나가사끼(長崎)까지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경성, 인천에도 그러한 설비는 없었다. 동경과 경성 간의 여행에도 반달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고, 우선 요꼬하마(橫濱)로 와서 고오베(神戶)까지 배로 가서, 여기서 또 갈아타고 에도나이까이(瀨戶內海)를 지나 나가사끼에 가서, 거기서 또 배를 갈아타고 이즈가하라(嚴ケ原)에 기항(寄港)하고, 그리고 나서 부산을 거쳐 인천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인천에서 경성으로는 물론 기차는 없고, 가마를 타고 하루 걸려 가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고오베와 나가사끼, 나가사끼와 조선 사이의 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체재에 여러 날을 필요로 하는 셈이었다. 당시는 그러한 불편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선에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까딱하면 사대주의로부터 중국에게만 억눌리기 쉬워서 상당한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후, 청일, 러일의 두 전쟁에 이겨 통감부가 설치되고, 명치 43(1910)년에는 드디어 한일합방이 되어 조선 사람들도 한결같이 우리 천황의 은혜를 받아 문명의 혜택을 입게 되었던 것은 조선 민중에게 있어서 한없는 행복이다. 그때부터 역대 총감이 열심히 이룬 시설에 의해 더 한층 조선을 문명으로 이끌고, 그 복지를 증진시킨 일,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나는 옛날의 눈으로써 조선의 진보 상황을 보고, 상당히 경탄했다. 바라건대 그들 동포를 위해 융합 협력하고, 그 바탕 위에 더욱 더 행복의 증진을 도모하게 되기를 바란다.

 

 

<제3주제>

  

영어 교육의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이근희(세종대)

  

 

1. 머리말

국경 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어에 대한 학습의 동기가 점차 커지고 있다. 영어가 거의 세계어가 되다시피 한 오늘날 영어 학습은 이제 학습자의 선택 과제가 아니라 필수 과제로 통용된다. 영어를 익히면 외국인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 쓰인 문헌을 통해 지식의 장(場)을 넓힐 수 있고, 외국 방문 시에는 안내인이나 통역사가 따로 필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영어 학습자나 영어 사용 가능자 수가 늘면 늘수록 한국어에 전이되는 영어의 영향 또한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영어의 전이 현상이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구조나 사용관습이 매우 다르다는 점과, 영어 의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영어의 어휘와 구조에 치우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나 번역 에서 비롯되리라는 가정은 당연해 보인다. 따라서 본 논고는 먼저 번역문투가 무엇인가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실제 대학 3,4학년생의 번역문투의 번역사례를 통해 영어와 한국어의 상이한 어휘의 쓰임과 구조 및 사용관습을 비교분석하고, 번역문투와 영어교육 간의 상관관계와 이러한 번역문투의 표현이 한국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번역문투

 

번역문투를 의미하는 'translationese'는 'translation(번역)'에 접미사 '–ese'가 붙은 형태로 ‘-ese'는 특정 집단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전문어나 문체, 강세를 일컬을 때 사용된다. 이러한 신조어는 대개 난삽하고 과장되어 좋지 않게 인식하는 글에 사용하거나 조롱이나 멸시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번역문투를 일컫는 또 다른 용어 'translatese'나 'translatorese' 역시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문학관련 언론계에서 목표언어에 비추어 유려함이 떨어지는 번역을 비평할 때 경멸조로 사용하던 용어이다. 마크 셔틀워스(Mark Shuttleworth)와 머이라 카위(Moira Cowie)는 번역문투에 대해 “두드러지게 원천언어의 특징에 의존한 탓에 목표 텍스트에 쓰인 목표언어가 매우 부자연스럽고 이해가 어려우며 우습기조차 할 때 사용하는 경멸조의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번역문투에는 적절하지 않은 원천언어의 메타포를 사용하거나, 목표언어의 체계에 비추어 문법적인 어순이 부자연스럽거나, 잘 쓰이지 않은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목표언어 체계 내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나 문법구조 외에도 의미나 문체, 화용적인 기능도 포함된다. 어휘와 어휘의 호응관계, 즉 연어(collocation)가 원천언어와 목표언어 간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번역문투는“목표언어의 어휘적, 통사적, 화용적, 관용적인 용법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대응하는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로 번역하는 데서 비롯되는 생소하거나 부적합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번역문투는 원문의 이국적인 정취나 풍미를 전달할 수 있고, 원문 내의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나 등장인물의 특징 또는 신분을 구별하여 표현할 수 있으며, 목표 문화권의 문학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요소나 어휘를 도입하여 목표 언어 체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독성을 떨어뜨려 글의 이해를 어렵게 하고, 목표 언어 고유의 말과 글의 체계를 훼손 또는 왜곡시키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어 고유의 어휘를 잠식하여 다양한 고유어의 활용에 제약을 가한다는 점과 문화 간의 패권다툼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종래에 익숙지 않던 어떤 새로운 표현은 신선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며 한국어에 녹아들기도 하지만, 어떤 새로운 표현은 너무도 어색하고 이상해 듣는 이나 읽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토록 이상하고 어색했던 표현도 어느 순간에는 전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받아들여지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어의 다양한 토속어나 구문이 마치 세련된 표현이 아닌 양 여겨지면서 사라지고, 영어에서 비롯된 새로운 표현이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번역문투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목표 언어 체계에 인한 신속한 파급력으로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다.

 

 

3. 영어교육과 번역문투

 

영어에서 비롯되는 번역문투가 영어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가정한다면 중고교 과정에서 영어를 학습하고 영어 관련 전공을 하는 대학생들의 번역에서 그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바탕으로 영어 전공과 관련이 있는 대학생 84명(부록 1참조)의 번역을 분석한 번역문투의 예는 다음과 같다.

 

3.1 번역문투의 유형

 

3.1.1 대명사의 번역문투

[원문1] My parents would have about two hemorrhages apiece if I told anything pretty personal about them. They’re quite touchy about anything like that, especially my father.

[번역문1] 만약 내가 그들에 관해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이야기한다면 나의 부모님은 각각 매우 흥분하실 것이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그런 것에 꽤 민감하다.

[대안번역] 부모님에 관한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 두 분 모두 발끈하실 거다. 두 분은 그 같은 일에 상당히 예민하신데, 아버님이 특히 그러하시다.

 

영어는 문장의 문법적인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하므로 동일한 사람이나 사물을 반복해서 언급해야 할 때면 대명사를 이용해 표현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한국어는 문장의 문법적인 요소를 반드시 갖추기보다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간에 지시대상의 인지가 가능하다면 생략이 일반적이다. 표기해야 할 상황이라 해도 대명사 대신 동일한 명사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영어의 대명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맥락상 필요하지 않다면 가급적 생략하거나 상위 문맥에서 밝힌 이름, 호칭, 지칭 등의 명사로 바꿔주어야 한다. 예문의 ‘my parent’와 지시 대명사 ‘they’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우리 부모님’ 이나 ‘부모님’ 또는 ‘두 분은’으로 해야 적절하다. ‘my father’에 대해서도 ‘우리 아버지(님)’ 또는 ‘아버지(아버님)’라고 번역해야 자연스럽지만 ‘나의 부모님(내 부모님)’이라고 번역한 사례가 86.7%에 달했다. ‘그들’이라고 표현한 사례는 73.5%, ‘나의 아버지(내 아버지)’라고 번역한 사례는 43.9%에 달했다.

 

[원문2] To keep the wheels of industry turning, we manufacture consumer goods in endless quantities, and, in the process, are rapidly exhausting our natural resources.

[번역문2] 산업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는 양의 소비재를 생산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천연자원들은 급속히 고갈되고 있다.

[대안번역]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Φ) 소비재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Φ) 천연 자원을 급속히 고갈하고 있다.

 

원문의 ‘we’나‘our’는 특정인을 지시하는 대명사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지시하는 지시어이기 때문에 한국어에서는 생략하는 것이 관용적인 용법이다. 하지만 번역문에는 1번 적용한 예가 15.7%였으며, 2번 적용한 예는 73. 8%, 원문보다 1번을 더 추가하여 3번 적용한 예는 9.6%였다. 1번과 2번 적용한 예를 더하면 89.2%에 달해 거의 불특정 다수를 지시하는 대명사의 번역을 일대일로 대응시켜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3.1.2 동사(동사구)의 번역문투

영어가 to 부정사, 동명사를 활용한 명사형이 발달했다면, 한국어는 동사가 발달한 언어이다. 이는 서양권의 언어와 동양권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차이로서, 문화인류학자나 심리학자, 언어학자의 연구 실증자료를 통해 많이 밝혀진다(최인철 106, 144-155). 영어는 개념어로서 주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사물인지, 개념인지에 상관없이 동일한 동사를 적용하는 반면, 한국어는 주체가 따라, 상황에 따라, 주변에 쓰인 단어에 따라 적용되는 동사가 다르다. 예문을 통해 살펴보자.

 

[원문1] All the money he got went in books.

[번역1]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책 사는데 썼다.

 

[원문2] The first prize goes to James.

[번역2] 우승은 제임스에게 돌아갔다.

 

[원문3] The pain has gone now.

[번역3] 이제 안 아프다.

 

[원문4] The engine is going now.

[번역4] 엔진이 지금 가동 중이다.

 

[원문5] Go when you hear the bell.

[번역5] 종이 울리면 시작하시오.

 

[원문6] Go to court.

[번역6] 법에 호소하지.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go’가 쓰이고, 얼마나 다양하게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어에서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념이든 상관없이 ‘이동의 개념’만 있다면 ‘go'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사람에 따라, 사물에 따라, 맥락에 따라, 어우러지는 어휘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돈이 이동할 때는 ‘가다’라는 표현대신 ‘쓰다, ‘소비하다’, ‘들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우승이나 상과 관련해서 이동을 표현할 때는 ‘차지이다’, ‘타다’, ‘하다’, 심지어는‘먹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아픔이나 통증과 관련된 이동은 ‘사라지다’, ‘누그러지다’, ‘없어지다’, ‘덜하다’로 표현하며, 기계와 관련된 이동은 ‘작동 중이다’, ‘가동 중이다’로 표현한다. 벨이 울리면 이동하라는 맥락에서는 ‘출발하라’, ‘시작하라’를 사용하고, 법정과 관련해서는 ‘법정으로 가라’, ‘법에 호소하시오’, ‘법으로 해결하시오’, ‘소송을 거시오’ 등을 사용한다. 따라서 영어의 동사를 번역할 때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맥락에 적절한 어휘를 선정해야 한다. 동사나 동사구의 번역과 관련된 전형적인 번역문투의 예를 들어보자.

 

[원문1] They learn how to meet and talk to people because every conversation is a chance or opportunity to make important contacts.

[번역문투1] 그들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모든 대화는 중요한 접촉들을 만들기 위한 찬스이며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대안번역] 그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 배우는데 이는 모든 대화가 중요한 만남으로 가는 계기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make’는 사역용법을 포함해 용법이 매우 다양한 어휘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인 ‘~을 만들다’라는 종류의 번역을 기계적으로 하는 경향이 48.1%나 되었다.

 

[원문2] Increasingly, people need to be prepared to change jobs several times in their lifetime.

[번역문투2] 더욱 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직업을 여러 번 바꿀 준비가 필요하다.

[대안번역] 점점 더, 사람들은 평생 몇 번은 직업을 바꿀 대비를 해야 한다.

 

‘need’하면 으레 ‘~이 필요하다’, ‘~을 필요로 하다’, ‘~할 필요가 있다’라고 해서 꼭 ‘필요’라는 어휘를 삽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을 해야 한다’에 이미 ‘필요’의 의미가 포함되므로 ‘필요’라는 어휘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87.5%의 학생들이 ‘필요’라는 어휘를 삽입하여 번역하였다.

 

[원문3] Las Vegas offers all of these diversions and probably at the lowest prices available anywhere.

[번역문투3] 라스베가스는 이러한 다양함을 모두 제공하고 아마도 가장 싼 가격에 어디든지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대안번역] 라스베가스에는 이러한 오락거리가 다 있으며 대개는 어딜 가나 제일 싼 값으로 누릴 수 있다.

 

‘offer’의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는 물건이나 원조, 의견 등을 ‘제공하다’, ‘제출하다’, ‘제의하다’이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시 대개는 맥락상 ‘~이 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92.8%의 학생들이 번역문투의 번역을 하고 있다.

 

[원문4] Part of the problem is our exploding population. More and more people produce more wastes.

[번역문투4] 우리의 폭발적인 인구도 문제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쓰레기들을 생산해 낸다.

[대안번역] 그러한 문제의 일부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 문제가 자리한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다.

 

‘produce’의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는 ‘생산하다(만들다)’, ‘산출하다’이다. 하지만 본 예문의 번역으로는 ‘생산하다’, ‘만들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 ‘생산하다’, ‘만들다’라는 표현은 한국어에서 그 대상이 필요로 인해 의도적으로 생산하고 만드는 의미가 일반적인 반면 쓰레기와는 어우러지지 않는다. 쓰레기는 의도적인 어떤 행위의 부산물로서 발생되는 것이므로 대안번역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63.1%가 번역문투로 번역하였다.

 

[원문5] The guides provide a wealth of useful information on gaming, gambling lessons, shows, lounge entertainment, and sports.

[번역문투5] 가이드(책자)는 게임, 겜블링, 수업, 공연, 오락, 그리고 스포츠에 관해 풍부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안번역] 그러한 안내책자에는 도박이나 도박에 관한 지침, 극장이나 나이트클럽의 볼거리, 라운지의 여흥과 스포츠 등에 관한 유용한 정보가 풍부하다.

 

‘provide’는 대표적으로 ‘공급하다’, ‘주다’, ‘제공하다’, ‘준비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휘가 맥락과 주변어휘와 어우러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본 예문 역시 ‘제공하다’라는 표현보다 ‘있다’라고 표현하는 방법이 자연스럽다. ‘풍부하게 있다’도 가능하지만 91.6%의 학생들이 번역문투로 번역하였다.

 

[원문6] Several recent studies showed a connection between stress and illness.

[번역문투6] 최근 몇몇 연구는 스트레스와 질병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보여준다.

[대안번역] 최근의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스트레스와 질병이 서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show’는 ‘보이다’, ‘나타내다’라는 어휘가 가장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나 ‘show’의 번역에 있어서 대응어휘인 ‘보이다’를 생략하거나 우회해서 ‘~임을 알 수 있다’, ‘~라고 밝히다’, ‘~라고 하다’, ‘~라고 발표하다’로 바꿀 수 있다. 71.4%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원문7] “I realize that I have failed as a father if after all these years you feel that you have to lie to me.”

[번역문투7] 나는 모든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만일 네가 나에게 거짓말해야 한다고 느끼면, 내가 아버지로서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안번역] “이만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네가 아비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난 아비로서 실패한 게로구나.”

 

본 예문에서 ‘realize’의 사전적 의미는 ‘깨닫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이다. 그러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이러한 일대일 대응의 번역을 하면 매우 딱딱한 표현이 되거나 부적절하기가 쉽다. 특히 구어체의 표현에는 적절치 않다. 한국어의 구어체에서는 ‘깨달았다’라는 표현보다는 ‘알았다’라는 표현이 더 빈번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알았다’라는 의미도 본 예문에서와 같이 반드시 이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따라서 맥락에 적절한 목표언어의 활용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 65.7%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원문8] Scientists believe that the people of Hunza have these three main advantages or benefits.

[번역문투8] 과학자들은 훈자족 사람들이 세 가지 주요 이점과 혜택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대안번역] 과학자들은 훈자족에게 이러한 세 가지 이점이나 이익이 있다고 여긴다.

 

‘believe’의 사전적 의미는 ‘믿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믿다’라는 표현은 종교와 관련이 있거나 타인과의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한 상황에서 사용한다. ‘여기다’, ‘생각하다’, ‘~라고 하다(말하다, 언급하다)’, ‘밝히다’, ‘알아내다’, 등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믿다’ 류의 번역문투는 80.7%에 해당하였다.

 

[원문9] Because I had a few hours to spare, I decided to catch a couple of movies at a theater near the garage.

[번역문투9] 나는 몇 시간이 남기 때문에 나는 창고 근처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대안번역] 몇 시간의 여유가 있어,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정비소 근처의 영화관에서 보기로 했다.

 

‘decide’에 대해 먼저 떠올리는 어휘는 ‘결정하다(결심하다)’이다. 그러나 ‘~을 하기로 하다’, ‘~로 마음먹다’, ‘~을 작정하다’, 등의 표현이 문맥의 흐름상 더 자연스럽다. 번역문투는 77.4%에 달했다.

 

[원문10] A more famous example of different 원문yle of marriage is found among the early Mormons.

[번역문투10] 결혼 풍습의 다른 유형의 더욱 유명한 예는 초기 몰몬교에서 발견됩니다.

[대안번역] 초기 몰몬교도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듯이 색다른 결혼 풍습이 있었다.

 

‘find’의 대표적인 의미는 ‘찾아내다’ 이다. 노력해서 찾아내든, 우연히 발견해서 찾아내든 그것은 결국 어떠한 사실에 대해 ‘알다’라는 의미로 모아진다. 따라서 ‘find’의 번역으로는 ‘알다(알아내다)’ 라는 표현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고, 그 외에도 ‘깨닫다’, ‘~이다(있다)’, ‘볼 수 있다’, ‘나타내다’ 등의 표현이 있다. 번역문투는 79.5%에 달했다.

[원문11] Located on the southern Pacific coast, Acapulco is situated on Acapulco Bay, and is probably the mo원문 famous beach resort in Mexico.

[번역문투11] 남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아카풀코는 아카풀코 만에 위치하고 있어서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휴양지가 될 것이다.

[대안번역] 남태평양 해안에 있는 아카풀코는 아카풀코 만에 있으며 아마 멕시코에서 제일 유명한 해변 휴양지일 것이다.

 

‘be located in(on,at)의 번역에 있어서 ‘~에 위치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에 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는 이미 장소에 붙은 처소격조사 ‘~에’가 위치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위치하다’라는 표현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81.6%가 ‘위치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원문12] Children belonged to all members of the community, and all the adults worked hard to support themselves and shared everything they had.

[번역문투12] 어린이들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 속해 있어서, 모든 어른들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대안번역] 아이들은 그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의 아이들이었으며, 어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해 구성원들을 먹여 살렸고 가진 거라면 뭐든 함께 나누었다.

 

‘belong to’의 번역으로 선호되는 표현은 ‘~에 속하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이 문맥 속에 어우러져 자연스러울 경우를 제외한다면 다양한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맥락에 따라서 ‘~의 구성원(일원)이다’, ‘~의 것이다’, ‘~의 소유이다’, 등의 표현을 할 수 있다. 76.3%가 번역문투의 번역이었다.

 

[원문13] It was the last game of the year, and you were supposed to commit suicide or something if old Pency didn’t win.

[번역문투13] 그것은 그 해의 마지막 시합이었다. 만약 펜시가 이기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자살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대안번역] 그 경기가 그 해의 마지막 경기였기에, 펜시가 지기라도 한다면 자살 아니라 뭐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번역으로 흔히 ‘~하기로 되어 있다’라는 표현을 떠올린다. 그러나 ‘가정하다’라는 의미 외에도 ‘기대하다’, ‘생각하다’, ‘추측하다’ 등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맥락뿐 아니라 같은 문장에서 쓰이는 다른 어휘들 간의 호응관계 역시 고려해야 한다. 본 예문의 맥락에서는 ‘~자살이나 뭐라도 하기로 되어 있다’라고 번역한다면 무척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럽다. 번역문투는 69.2%에 달했다.

 

 

3.1.3 부사구의 번역문투

[원문1] For foreign language education, it is not enough just to hire a lot of foreign instructors.

[번역문투1] 외국어 교육을 위해 많은 외국인 강사를 고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안번역1] 외국어 교육에 있어서, 단지 외국인 강사를 많이 채용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대안번역2] 외국어 교육에 있어서, 외국인 강사를 많이 채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enough to~’의 번역으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하기에 충분한’이다. 그러나 과연 충분하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디까지를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보다는 맥락에 적절한, 주변의 어휘와 어우러지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바꿔 줄 필요가 있다. 80.2%가 번역문투의 번역이었다.

 

[원문2] They also had the certainty of a job for life, but they usually couldn’t choose to change from an employer to another or from one profession to another.

[번역문투2] 그들은 또한 삶을 위한 직업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고용주에서 다른 사람으로 혹은 전문직에서 다른 어떤 것까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할 수 없었다.

[대안번역] 그들은 또한 평생 직업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대개는 회사를 이리저리 옮기거나 이일저일 직업을 옮길 선택권은 없었다.

 

‘from~ to~’의 번역은 ‘~부터(에서) ~까지’, ‘~에서 ~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예문에서는 ‘어떤 고용주로부터(에서) 다른 고용주로’ 또는 ‘어떤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라는 표현이 부자연스럽다. 77.5%에 달하는 학생이 번역문투로 번역하였다.

 

 

3.1.4 무생물 주어의 번역문투

[원문] More research is needed to clearly establish the connection between the immune system and psychological factors.

[번역문투] 더 많은 연구는 면역체계와 심리적인 요인들과의 연계성을 명확하게 확립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대안번역1] 더 많은 연구로 면역체계와 심리적 요인들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대안번역2] 면역체계와 심리적 요인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영어는 무생물 주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이영옥 2001 56 재인용), 사역동사 ‘make’ 구문의 경우 무생물 주어의 사용빈도가 57%에 달했다. 한국어에서는 무생물 주어의 쓰임이 늘었다고는 하나 그리 자주 쓰이지 않는다. 한국어에서 무생물(무정명사)이 주어로 쓰이면 주격조사에 ‘~이/가’를 사용하지 않고 ‘~에(서)’가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주어를 별도로 상정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단체를 나타내는 명사라 하더라도 주어 자리에 ‘~에(서)’를 취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무생물 주어는 주격조사에 ‘~에(서)’를 적용하거나 ‘~으로’, ‘~해보니’와 같은 연결어미를 이용하여 부사절로 번역해야 한다. 피동문의 주어로 사용되었을 때는 목적격 ‘~을’, ‘~를’을 사용해야 적합하다. 본 예문의 번역으로는 무생물 주어의 주격조사에 ‘~에서’를 적용하거나 피동문의 주어를 목적어로 사용하여 번역하는 방법이 적절하다. 92.9%에 달하는 학생들이 무생물 주어에 ‘이/가’를 붙여 피동문으로 번역하였다.

 

 

3.1.5 문장부호의 번역문투

[원문1] My parents are quite touchy about anything like that, especially my father. They’re nice and all - I’m not saying that - but they’re also touchy as hell.

[번역문투1] 나의 부모님은 그와 같은 것은 무엇이든 간에 매우 과민했는데 특히 나의 아빠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멋지고 -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들은 지옥처럼 또한 거칠었다.

[대안번역] 부모님은 그 같은 일에 상당히 화를 내시는데 특히 아버님이 그러하시다. 두 분은 좋으신 분들인데, 음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불같이 화도 잘 내신다는 점만 빼면 그렇다.

 

줄표(-)의 사용은 한국어에서도 삽입이나 해설 또는 전환이나 생략 따위에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국어 고유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때에 따라서는 내용이 분산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문장부호를 생략하고 자연스럽게 앞뒤 문맥을 이어서 번역하거나, 줄표 안에 있는 문장을 수식어구나 예시어구로 따로 분리해 자연스럽게 전체 문장 속으로 삽입하는 번역 방법이 적합하다. 27.8%라는 적은 번역문투를 보이는 맥락이다.

 

[원문2] The ideas that we have about marriage are part of our cultural background; they are part of our basic beliefs about right and wrong.

[번역문투2] 우리가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은 우리의 문화적 배경의 부분이다; 그것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믿음들의 부분이다.

[대안번역] 결혼에 대한 생각에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또한 그러한 생각에는 옳고 그름의 토대가 되는 신념이 있다.

 

영어의 쌍반점(;)은 일반적으로 등위접속사의 역할을 하거나 앞뒤 문장의 경계를 표시한다. 따라서 번역자는 원천 텍스트의 쌍반점을 생략하고 논리적으로 문맥에 적합한 접속어나 연결어미로 연결해야 한다. 쌍반점을 그대로 옮긴 번역문투는 22.5%에 달했다.

 

[원문3] Without praise and encouragement anyone can lose self-confidence. Thus we all have a double necessity : to be praised and to know how to praise.

[번역문투3] 칭찬과 용기 없이는 누구든지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 두 가지 필요성을 갖고 있다: 칭찬 받는 것과 칭찬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대안번역] 칭찬과 격려가 없다면 누구라도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칭찬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칭찬하는지 알아야 한다.

 

영어의 쌍점(:)은 앞뒤 문맥의 관계가 동격이거나 설명, 인용의 관계이다. 한국어에서 쌍점은 내포되는 종류를 나열하거나, 소표제(小標題)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넣을 때,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 둘 이상을 대비할 때 사용한다. 내포되는 종류를 나열하거나 소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해도 접속어나 연결어미를 이용하여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을 적절히 이어주거나, 강조어를 삽입한다면 반드시 쌍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본 예문은 앞 문장에서 언급한 내용을 부연 설명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쌍점 표기를 생략하고 접속어나 연결어미를 이용하여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을 적절히 이어주는 방법이 적절하다. 쌍점을 그대로 표기하고 있는 경우는 25.3%에 달했다.

 

[원문4] The group’s first leader, Joseph Smith, believed that a man should be allowed to have several wives.

[번역문투4] 그 집단의 첫 번째 지도자인, 죠셉 스미스는 남자가 여러 부인들을 갖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고 믿었다.

[대안번역] 그 집단의 초대 지도자인 조세프 스미스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쪽에 별도의 반점을 표기한 뒤 삽입어구를 넣는 예문이다. 한국어에서는 반점으로 분리하기보다는 수식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번역하는 방법이 자연스럽다. 이에 대해 원문 그대로 번역한 학생은 12.%에 달했다.

 

[원문5] In Japan, for example, the daily newspaper Asahi reports a sudden rise in the number of businessmen who need psychological help for their clinical depression.

[번역문투5] 일본에서는, 예를 들면, 아사히 일간지는 우울증을 위한 심리학적 도움이 필요한 많은 직장인들의 급격한 증가를 보고했다.

[대안번역] 일례로 일본의 아사히 일보를 보면 임상 우울증에 대해 심리적인 도움이 필요한 기업의 경영자 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본 예문에서는 ‘for example’이 문장의 중간에 삽입되어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 이런 쓰임은 매우 빈번하다. 한국어에서는 ‘예를 들면’, ‘일례로’ 등과 같은 표현을 문두에 두는 관용적인 쓰임이 있다. 이에 대해 번역문투는 8.8%밖에 되지 않았다.

3.1.6 수(數)의 번역문투

명사의 수(number)에 따라 동사의 활용이 달라지는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문법적으로 수의 표현이 제한되지 않는다. 제한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수를 표지하지 않는 편이 보편적이어서, 명사의 수를 지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때는 명사를 단수형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사가 명사와 함께 쓰인 경우에는 명사에 복수 표지 접미사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며, 수량을 나타내는 부사가 명사와 함께 쓰인 경유에도 명사에 접미사 ‘-들’이 필요 없다. 가산성의 명사이긴 해도 특정한 문맥 가운데 놓인 명사가 아닐 경우에는 수에 있어서 중립적이기 때문에 접미사 ‘-들’이 붙을 수 없다. 그러나 질량성의 명사나 추상성의 명사라 할지라도 주어의 자리에서 쓰이지 않는다면 복수 접미사 ‘-들’의 사용이 가능하다. 처소를 지시하는 지시대명사가 주어의 자리에 쓰이지 않을 때는 복수 접미사를 덧붙일 수 있다. 따라서 영어 텍스트에 단수 표지가 되었다고 일일이 번역문에 단수표지 하거나, 복수형이 계속 나열되는 영어표현을 그대로 복수형으로 반복해서 번역한다든지, 불필요한 맥락에 복수 표지 ‘~들’을 붙인다면 번역문투가 된다. ‘여러분’이나 ‘우리’역시 이미 복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복수 표지 접미사가 필요 없다.

 

[원문1] All human beings are born into families – and families begin with the joining together of a man and a woman in marriage.

[번역문투1] 모든 인간은 가족 안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가족은 결혼 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안번역] 모든 인간은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며 가족은 남녀가 결혼해서 함께 결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간의 결혼은 일부일처제라는 전제가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또는 저자와 독자 간에 이미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수의 표지를 생략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18.5%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원문2] Most of them do not know that there are new ideas and methods about hunting for a good job.

[번역문투2] 그들 대부분은 좋은 직장을 얻는 데는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대안번역] 젊은이 가운데 대다수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데 톡톡 튀는 생각과 방법이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모른다.

 

‘생각’과 ‘방법’이 불가산 명사이므로 복수 표지를 않는 것이 더 적절하다. 복수 표지를 한다 해도 한국어의 언어 관습에는 복수 접미사를 붙여 복수의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보다 부사와 같은 수식어를 이용하여 복수의 의미를 나타내는 일이 빈번하다. 따라서 복수의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괄호로 표지 했듯‘다양하게’라는 부사를 삽입해도 좋을 듯하다. 3.6%가 ‘사상들’이라고 번역했으며 33.3%가 ‘방법들’로 번역하였다.

 

 

 

3.1.7 시제의 번역문투

한국어의 시제는 보통 활용어미에 의해서 표시되며, 사건시를 나타내는 부사와 함께 쓰여 시제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번역문투가 나타나는 시제는 대개 영어의 완료 시제와 미래 시제이다. 행동이나 작용의 완료나 계속, 경험, 결과에 적용되는 영어의 완료 시제에 대해 한국어는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의 사용이 적절하다.

 

[원문1] Some nations have begun to try to stop the pollution and the environmental destruction.

[번역문투1] 몇 몇 국가들은 오염과 환경파괴가 멈추도록 노력하기 시작해왔다.

[대안번역] 일부 국가에서는 오염과 환경 파괴를 멈추기 위한 노력을 이미 시작했다.

 

어간 ‘하–’의 뒤에서는 과제 시제의 선어말 어미 ‘–였–’이 사용되므로 ‘하였다(했다)’로 해야 적절하다. ‘시작하다’라는 동사에 ‘시작해왔다’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48.8%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원문2] “I’m going to go to LA for the weekend.”

[번역문투2] 나는 LA에 가서 주말을 보낼 예정이야.

[대안번역] 나는 주말에 엘에이에 갈 거야.

 

미래를 나타내는 ‘be going to~’ 문장의 번역에 있어서, 한국어는 ‘가다’에 관형사형 어미 ‘~(으)ㄹ’을 덧붙인 ‘갈’을 활용할 수 있다. 이미 미래는 예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휘 ‘예정’의 삽입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 가려고 해’, ‘~ 가’, ‘~갈 계획이야’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38%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3.1.8 어순의 번역문투

영어가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이라는 점과 한국어가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두 언어에는 관용적인 쓰임에서 비롯되는 어순의 차이가 있다. 연어가 달라서 생기는 예도 있고, 지칭이나 호칭이 고유명사와 함께 나란히 표현될 때의 어순이 다른 예도 있다. 범주화가 상위범주에서 시작하는지 하위범주에서 시작하는지도 다르다. 어순이 다른 예를 하나 보자.

 

[원문] Prime Minister John Howard of Australia, who went into the country’s election with a good– luck message from President George W. Bush, has been decisively re–elected, according to official returns.

[번역문투1] 대통령 George W. Bush로부터 받은 행운의 메시지와 함께 국가 선거에 출마한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John Howard는 공식적인 보고서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재선되었다고 한다.

[번역문투2] 조시 부시 대통령에게 행운을 비는 메시지와 함께 자기 나라의 선거에 출마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상 존 하워드는 공식 집행보고서의 따르면 압도적으로 재선거에 임하고 있다.

[대안번역] 조오지 W. 부시 미대통령에게 행운을 비는 격려를 받으며 선거에 출마했던 호주의 존 하워드 수상이 압도적으로 재선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본 예문에는 두 명의 인물에 대한 직위와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한 사람은 한국 문화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또 한 사람은 한국인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한국어의 관용적인 용법으로는 고유명사가 먼저 오고 신분을 지칭하는 명사가 그 뒤를 잇는다. 한국 문화권에 널리 알려진 ‘부시 대통령’은 한국어의 관용적인 용법대로 ‘부시 대통령’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크지만, 한국 문화권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호주의 존 하워드 수상의 경우는 영어의 어순대로 ‘수상 존 하워드’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64%에 달했다.

 

 

3.1.9 전치사의 번역문투

전치사의 번역으로 한국어에서는 부사격 조사가 많이 적용되는데 처소나 장소를 나타내는 격조사에는 ‘에’, ‘에서’가 있다. 처소격 가운데 지향점(指向点)을 나타내는 격조사에는 ‘에/에게’, ‘한테’, ‘더러’가 있으며, ‘에’는 무정명사 뒤에 결합되고, ‘에게’는 유정 명사 뒤에 쓰인다. 존칭 체언 아래에서는 ‘께’가 사용되며 ‘한테’와 ‘더러’는 ‘에게’와 동일한 기능이 있으면서 구어체에 쓰인다. 출발점을 나타내는 격조사에는 ‘에서’, ‘한테서’가 쓰인다. 원인과 이유를 나타내는 격조사에는 ‘에’, ‘로’가 쓰이며, 단위를 나타낼 때에는 ‘에’가 쓰인다. 도구격 조사로는 ‘으로’가 있고, 신분, 자격, 수단을 나타낼 때는 '로(서)’를 사용한다. 동반을 나타내는 격조사는 ‘와/과’, ‘하고, ‘랑’이 있다. ‘와/과’는 문어체에, ‘하고’는 구어체에 자연스럽다. 따라서 ‘from’이라고 해서 꼭 ‘로부터’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에서’, ‘한테서’, 등 부사격 조사를 이용하여 번역할 수 있다. ‘by’ 또한 꼭 ‘에 의하여’라는 표현보다는 근접, 범위, 정도, 수단, 방법, 경로, 때, 단위, 원인, 행위자 등 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

 

[원문1] By dumping sewage and chemicals into rivers and lakes, we have contaminated our drinking water.

[번역문투1] 강과 호수로 하수와 화학제품을 내버림에 의해, 우리는 우리의 식수를 오염시켰다.

[대안번역1] 하수오물과 화학물질을 강이나 호수에 버려 식수를 오염시켰다.

[대안번역2] 하수오물과 화학물질을 강이나 호수에 버리는 일은 식수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본 예문의 ‘by’는 원인이나 수단, 매개를 나타낸다. 수단이나 매개로 나타낼 때는 부사격의 조사 ‘~으로(써)’를 사용하거나 [대안번역2]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에 의해’라는 표현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그런데도 22.5%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원문2] one scientist with NASA discovered that house plants actually remove pollutants from the air.

[번역문투2] NASA와 더불어 한 명의 과학자는 실내 식물이 공기로부터 오염물질을 실제로 제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안번역] 나사(NASA)에 근무하는 과학자가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이 실제로 공기 중의 오염을 없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본 예문의 번역에서는 ‘공기로부터의 오염을’이라는 표현이 부자연스럽다. [대안번역]과 같이 ‘공기 중의’라고 해도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처소격 조사 ‘~에(서)’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원문3] Each culture has different ways to help the young people in the job–hunting process.

[번역문투3] 각 문화마다 직업을 찾는 과정에 있는 젊은 사람들을 돕는 다른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대안번역] 각 문화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 구직을 원하는 젊은이들을 돕는다.

 

전치사 ‘in’은 장소를 나타내는 ‘~안에서’, ‘~에’가 대표적인 의미이다. 이러한 번역문투가 53.6%에 달했다.

 

[원문4] Pollution comes in many forms. We see it, smell it, taste it, drink it, and stumble through it.

[번역문투4] 오염은 많은 형태들로 온다. 우리는 오염된 것들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마시고, 그것을 통해 비틀거린다.

[대안번역] 오염의 형태는 다양하다. 우리는 오염을 보고, 냄새 맡으며, 맛을 보고, 마시며, 오염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본 예문의 ‘through’는 ‘~속에서’, ‘~으로 인해’, ‘~때문에’, ‘~에 의해’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는 ‘through’의 대표적인 사전적 의미인 ‘~를 통해(서)’, ‘~을 통하여’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러한 번역문투는 75%에 달했다.

 

 

3.1.10 접속사의 번역문투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가 매우 발달하여, 원문에 쓰인 독립 접속사가 접속부사뿐 아니라 조사나 어미로 대체될 수 있다. 영어의 접속사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접속사 ‘and’의 경우, 문어체일 때는 ‘그리고, 그러나, 그러면, 그뿐 아니라, 그러므로, 그렇지 마는...…’을 쓸 수 있으며 구어체에서는 ‘-와(과)’, ‘-하고’, ‘-며’, ‘-에다’, ‘–(이)랑’ 등의 조사로 대체할 수 있다. 대등 접속사 ‘but’은 ‘그러나’보다 ‘~(지)만’, ‘~마는’, ‘~나’, ‘~는데’, ‘~다만’, 등을 이용해 번역하는 방법이 자연스럽다. ‘or’은 ‘~(거)나’, ‘~든지’, ‘~든가’, 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because’는 ‘~어서’, ‘~(으)니까’, ‘~(으)므로’, ‘~기에’, ‘~느라고’, ‘~이므로’, ‘~서(해서)’, ‘~이니까’,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if’는 ‘만일~한다면’이라는 표현보다 ‘~하면/되면’, ‘~면’이 적절하다. ‘though(although, in spite of, nevertheless)’는 보편적으로 ‘비록~에도 불구하고’, ‘비록~하지만’, ‘~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번역하지만 ‘그런데도’, ‘그렇지만’, ‘~도(어도)’, ~이긴 해도’, ‘~일지라도’, ‘~임에도’, ‘~(이)더라도’, ‘할지라도’, ‘~(으)ㄴ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번역문투의 예를 보자.

 

[원문] Although most common in office buildings and schools, the indoor pollution that causes sick–building syndrome can also occur in houses.

[번역문투1] 비록 사무 건물이나 학교에서는 아주 흔한 경우일지라도 sick–building 증후군을 일으키는 실내 오염은 집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대안번역] 사무실 건물이나 학교 건물에 가장 보편적이긴 해도, 병든 건물 증후군을 유발하는 실내 오염은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긴 하지만’, ‘~이지만’, ‘~이긴 해도’, ~일지라도’, ‘~임에도’, ‘~이더라도’, ‘~할지라도’ 등으로 대체가능하나 53.2%가 번역문투로 번역하고 있다.

 

[원문2] Power plants, factories, and apartment buildings can also avoid air pollution.

[번역문투2] 전력 발전소, 공장, 그리고 아파트 빌딩들은 또한 공기오염을 피할 수 있다.

[대안번역] 발전소며 공장이며 아파트 건물 또한 공기 오염을 피할 수 있다.

 

원문의 형태와 같이 ‘발전소, 공장, 그리고 아파트 건물’이라고 번역한 사례가 빈번하나 한국어에는 ‘, 그리고’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번역이 38,8%에 이르렀다.

 

[원문3] They learn how to meet and talk to people because every conversation is a chance or opportunity to make important contacts.

[번역문투3] 그들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모든 대화는 중요한 관계를 만드는 하나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안번역1] 그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지에 대해 배우는데 이는 모든 대화가 중요한 만남으로 가는 계기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안번역2] 모든 대화가 중요한 만남으로 가는 계기나 좋은 기회가 되므로 그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며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 배운다.

 

‘because’의 번역에 ‘~(으)므로’ 외에도 ‘~어서’, ‘~(으)니까’, ~기에’, ‘~해서’ 등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74.2%가 번역문투로 번역하였다.

 

[원문4] Experts say that there are jobs and employment for young people, but they need to learn new approaches to finding jobs.

[번역문투4] 전문가들은 젊은이를 위한 직업과 일자리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대안번역] 젊은이들이 구할 만한 직업이나 일자리가 있지만 젊은이들은 구직에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but’의 번역은 연결어미 ‘–지만’, ‘(으)나’, ‘데’, ‘지마는’,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하지만 ‘그러나’ 또는 ‘, 그러나’로 번역하는 경향이 33.8%에 달했다.

 

[원문5] If you thought about him just enough and not too much, you could figure it out that he wasn’t doing too bad for himself.

[번역문투5] 만일 그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적당하게 생각했다면, 당신도 그가 자기를 위하여 너무 나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대안번역] (Φ)선생에 대해 적당히 과도하지 않게만 생각했다면, 선생이 자신을 위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또는 ‘만일’이라는 어휘는 한국어로 ‘일만(一萬) 번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 또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정하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표현이 꼭 필요한 문맥이 아니라면 부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한)다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간략하고 매끄러운 표현이 된다. 75.3%의 번역문투가 있었다.

 

 

3.1.11 피동문의 번역문투

영어의 피동문은 화자나 저자가 능동문의 목적어를 부각시키고자 할 때, 능동문의 주어가 분명치 않거나 애매할 때, 주어가 너무나 분명해 밝히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때, 주어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싶지 않을 때, 자신할 수 없는 사실의 진술이나 행동 및 의견에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문장의 용이한 연결이 필요할 때, 공식적인 공고나 공표, 신문 보도와 같이 전형적으로 사용해야 할 때 주로 이용된다. 반면 한국어에서 피동문은 자연적인 변화에 따른 피동적 상황이거나, 강제성이 있을 때, 이로움이나 해로움을 입을 때, 피동자의 자발적 의사와 반대되는 불리한 행위일 때 사용된다. 따라서 번역문투가 유발될 수 있는 사례는 다음과 유형에서 비롯된다.

- 한국어의 관용적인 피동문의 용법을 고려하지 않고 영어의 피동문을 그대로 피동문으로 번역할 때

- 무생물 주어의 피동문을 피동문으로 옮기면서 주제격 조사나 주격 조사 ‘~는/은/이/가’를 적용할 때

- 영어 피동문의 행위자 표지 ‘by+행위자’에 대해 무조건 ‘~에 의하여(해서)’라고 번역할 때

- 영어의 피동문에 행위자가 한국어의 관용적인 용법에 비추어 생략하는 것이 바람직한 데도 행위자의 표기할 때

- 감정 및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영어 피동문의 행위자를 그대로 옮길 때

 

[원문] In traditional Chinese culture, marriage decisions were made by parents for their children.

[번역문투] 전통적인 중국 문화에서 결혼에 대한 결정들은 그들의 자녀를 위하는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안번역]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혼인의 결정을 자식 대신 부모가 했다.

 

한국어의 언어 체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피동문의 어떠한 용법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피동문으로 번역하는 방법이 부적절하다. 또한 무생물 주어의 주격 조사에 ‘–에(서)’를 사용하거나 능동문으로 바꾸어 목적격으로 번역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행위자 표지 ‘by’에 대해서도 능동문의 주격으로 번역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번역문투는 60%에 달했다.

 

 

3.1.12 화법의 번역문투

영어에서는 직접화법 문장에서 “~, she said, ~.” 와 같이 대화문이 분리된 예가 두드러진다. 한국어의 어법으로는 ‘누가 말하다’라는 표현은 문장의 앞이나 뒤로 미루거나 ‘누가 “~.”라고 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원문과 동일한 형식으로 번역한다면 맥락의 흐름을 방해하고 한국어의 화법 표기상 어색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을 문두나 문미로 옮겨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원문] “Since that day” says the shop owner, “whenever I think something nice about a person, I tell him. I might never have another chance.”

[번역문투1] “그날 이후로”, 가게 주인이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좋은 생각을 할 때마다 그에게 말한다. 내가 다른 기회를 갖지 못할 수 있으므로.”

[번역문투2] 그날 이래로 내가 사람에 관한 좋은 어떤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한다고 가게 주인은 말한다. 나는 결코 또 다른 가능성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용부호 표기 안 함)

[대안번역] “그날 이후로 난 누군가에게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이야기해요. 다시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르잖아요.”라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말하는 이에 대한 언급을 문장의 맨 앞이나 뒤로 옮겨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63.3%d 달하는 번역문투가 있었으며, 인용부호를 생략한 경우도 45.6%에 달했다.

 

 

3.1.13 기타 번역문투

영어는 문장 구조상 명령문과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문법적인 구성 요소인 주어를 갖추어야 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가주어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주어가 존재한다. 반면에 한국어는 주어의 생략이 빈번하고 특히 구어체의 문장에서는 주어의 생략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언어습관으로 인해 화자와 청자 간에 주어를 지시하는 대상에 관한 정보가 공유된 상태라면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원문] Anyway, Jane1 wouldn’t answer him when he asked her if she2 knew where there was(sic) any cigarettes. So the guy asked her again, but she3 still wouldn’t answer him. She4 didn’t even look up from the game.

[번역문투] 어쨌든 제인은1 그가 그녀에게 그녀가2 담배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3 여전히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4 게임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대안번역] 아무튼 제인은1 (Φ)2 담배 못 봤느냐는 그 사람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재차 물었으나, 제인은3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Φ)4 심지어 놀이에서 눈조차 떼지 않았다.

 

‘그녀’라는 표현을 1번 적용한 예는 8.5%, 2번 적용한 예는 13.4%, 3번 적용한 예는 22%, 4번 적용한 예는 34.1%, 5번 적용한 예는 12%, 심지어 원문보다 더 많은 6번을 적용한 예가 2.4%였다.

 

 

 

3.2 번역문투의 유발요인

 

학생들의 번역문투를 분석한 결과 번역문투의 유발요인은 다음과 같다.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으로 쓰이는 하나의 사전적 의미를 원문과 일대일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번역에 접근한다. 이는 영어의 어휘 습득 과정에서 필수로 여기는 단어ㆍ숙어 관련 참고도서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참고도서에는 맥락이나 단어들 간의 호응관계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오로지 다양한 의미 가운데 사전 상에 우선적으로 등재되는 한두 가지의 의미만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무조건 암기하는 방식으로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미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는 사전을 참고하지 않는다. 의미를 모르거나 애매모호할 때는 사전을 참고하지만,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사전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번역문투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게 분화된 의미 가운데 맥락에 따른 적절한 의미가 아니라 암기를 통해 획득한 사전상의 대표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어 학습과정에서 행해졌던 번역은 학습자 자신의 이해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였으므로, 제 3자를 고려하는 전문번역이 매우 서툴다. 이해를 위한 도구와 제 3자를 전제로 하는 상품과는 분명 다르다. 전문번역은 다른 사람이 읽고 이해가 가능해야 하며, 번역 텍스트의 목적과 기능에 따라 원천 텍스트의 고유한 특징을 옮겨 독자에게 전달해서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텍스트의 맥락과 단어들 간의 호응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단어 대 단어를 대응시키는 접근의 번역을 한다 해도 한 단어의 다양한 의미가운데 맥락과 주변에 함께 쓰이는 단어들 간의 호응관계를 고려하여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이때 맥락을 이미지화해서 떠올 리면 그 상황에서 사용되는 어휘 선정에 유용할 수 있다.

문어체와 구어체를 구별하지 않는다. 말이란 문어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문어체의 표현을 적용해야 하고 구어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구어체의 표현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구어체와 문어체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문법 규칙이 다르고, 관용적인 쓰임이 다르며, 범주화가 다르고, 어휘가 주는 분위기가 다르며,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는 점을 번역 과정에서 떠올리지 않는다.

목표언어인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영어에 대한 지식보다 오히려 더 부족하다. 모국어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자신이 전공하는 영어에 대한 지식보다 훨씬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번역상의 번역문투가 우리글 속에 자리 잡게 됨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4.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영어의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번역문투가 한국 고유의 표현을 잠식한 예를 하나 들자면 ‘Good morning!’이 좋은 예이다. 이에 대한 번역 ‘좋은 아침!’이 이제는 너무나 상투적이 어서 번역문이 아닌 상황에서도 널리 쓰인다. MBC 라디오 방송의 ‘황희만의 뉴스의 광장’을 진행하는 황희만 아나운서는 매일 아침 뉴스의 말미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기 조심하십시오’, ‘웃는 하루 되십시오’, 등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데도 꼭 잊지 않고‘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한다. 이는 ‘good’이라는 영어의 어휘가 다양한 한국어의 고유 어휘를 잠식한 예라 할 수 있다. 영어의 접속사 ‘although’나 ‘though’ 등에서 비롯된 번역어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마찬가지이다. MBC 라디오 방송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사회자나 상대자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남발한다. ‘그런데도’, ‘그렇지만’, ‘그렇긴 해도’, ‘그렇다 해도’, ‘~에도’, 등의 다양한 표현은 이제 모두 잠식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be located in(at)' 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위치를 물어볼 때 “~이 어디에 있죠?”라고 묻기보다는 “~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죠?”라고 물으며 “~이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은 번역문투가 왜 번역문투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미 1988년에 영어가 우리글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 학생들의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에서 번역문투를 발췌해 놓은 황찬호 교수의 연구에서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1988).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에 대한 최근의 연구로는 김정우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다(2003).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번역문투의 영향에 대한 실태를 구문 형식과 굴절 요소, 전치사구/관용어구, 기타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조사한 김정우 교수의 논문은 우리 글 속에 자리 잡은 영어 번역문투의 예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2003). 그 중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번역문투1] 수준 높은 말솜씨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고등 국어 상: 158-6)

[대안] 수준 높은 말솜씨를 익힐 수 있게 된다. (김정우 154)

 

[번역문투2] 아이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창작된 놀이(중학 생활국어 2-2: 91-12)

[대안] 아이들 자연 발생적으로 창작한 놀이(김정우 150)

 

[번역문투3] 제일 긴 그 다리가 폭격에 의해 아깝게 끊어진 뒤로는......

(중학 국어 2-1: 143-20)

[대안] 제일 긴 그 다리가 폭격으로 아깝게 끊어진 뒤로는......(김정우 153)

 

[번역문투4] 여러분들이 어떤 고민이나 갈등에 빠졌는데......(중학 국어 1-1: 148-24)

[대안] 여러분이 어떤 고민이나 갈등에 빠졌는데......(김정우 2003 151)

 

[번역문투5] 그 사람으로부터 잘잘못을 들은 다음, ......(중학 생활국어 2-2: 103-6)

[대안] 그 사람에게 잘잘못을 들은 다음, ......(김정우 2003 152)

 

[번역문투6] 읽기 전 활동, 읽기 중 활동, 그리고 읽기 후 활동의 세 단계로 구성하였다. (중학 국어 2-1: 2-14)

[대안] 읽기 전 활동, 읽기 중 활동, 읽기 후 활동의 세 단계로 구성하였다. (김정우 155)

 

[번역문투7] 극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풍년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농업 기술이 발달했다. (중학 생활국어 2-1: 93-3)

[대안] 극심한 가뭄에도 풍년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농업 기술이 발달했다.(김정우 2003 155)

 

[번역문투1]은 소유를 의미하는 영어의 동사 ‘have’의 번역문투고, [번역문투2]는 수동문의 행위자 표지‘by’에서, [번역문투3]은 전치사 ‘by'에서 비롯된 번역문투이다. [번역문투4]는 ‘여러분’에 이미 복수의 개념이 들어있어 복수표지가 필요 없는 번역문투이다. [번역문투5]는 전치사 ‘from'의 번역문투이고, [번역문투6]은 나열문에 쓰인 'and'의 번역문투이다. [번역문투7]은 'nevertheless'나 ’notwithstanding', 'although', 'though'의 번역문투이다. 번역 텍스트가 아닌 한국 고유의 텍스트에 그것도 중고교 교과서에 이러한 번역문투가 빈번하게 출현 한다는 점은, 번역문투가 자생력을 갖고 한국 고유의 언어 체계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5. 맺음말

이상으로 번역문투가 무엇인지, 번역문투의 유형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대략 살펴보았다. 영어에서 비롯되는 번역문투는 두 언어의 구조적이고 관용적인 차이 및 학습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번역과 학습참고서에서 기인한다는 점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번역문투에 긍정적인 기능이 있긴 하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글에서 글로 전해지면서 한국어 고유의 어휘의 쓰임을 방해하고, 문법구조나 관용적인 용법을 왜곡하며, 종래는 한국어 고유의 체계에 뿌리내리면서 한국어 고유의 다양한 표현이 사라지는 부정적인 기능도 있다. 영어 번역문투가 영어에서 비롯된 것인지, 일본어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번역문투 쓰임은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알고서 사용하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알고 의도하는 바에 따라 적용을 해야 번역어투의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으며, 모국어인 한국어의 언어체계를 보호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대한 지식을 먼저 갖추는 일이 절실하다.

 

 

 

 

참고문헌---

 

김은희. 1984. 「국어 피동문 연구」, ?�새국어교육?� 39. 한국국어교육학회. 30-42.

김정우. 1990. 「번역문에 나타난 국어의 모습」, ?�국어생활?� 21.

국어연구소. 38-55.

김정우. 2003. 「국어 교과서의 외국어 번역어투에 대한 종합적 고찰」,

?�배달말?� 33. 배달말학회. 143-167.

남기심․고영근. 1985. ?�표준 국어 문법론?�. 서울: 탑출판사.

마쓰모토 야스히로․마쓰모토 아이린. 1997. ?�90가지 핵심 포인트?�.

김정우(역). 창문사.

문 용. 2000. 「번역과 번역 문화」, ?�국어생활?� 21. 국어연구소. 14-26.

문화관광부. 2001.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서울: 동화서적.

박여성. 1997. 「비난 또는 헌사: 서평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고찰」,

?�텍스트언어학?� 4. 텍스트언어학회.

박여성. 2002. 「번역교육을 이한 번역 파라디그마의 효용성-텍스트언어학의 입장에서 고찰한 “번역어투”(飜譯套)의 규명을 위한 연구: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한국어 번역본을 중심으로」, ?�번역학 국제학술대회 발표 논문집?� 1. 숙명여자대학교.

서계인. 2004. ?�영어 번역의 기술?�. 서울: 북라인.

서재극. 1970. 「개화기의 외래어와 신용어」, ?�동서 문화?� 4.

계명대 동서문화 연구소.

서정수. 1996. ?�국어문법?�. 서울: 한양대학교 출판원.

서화진. 1992. 「한국어의 주제(Topic)에 관한 화용론적 분석」.

?�언어연구?�6. 서울대학교 언어연구회.  

성초림 외 3인. 2001.「번역 교육 현장에서의 번역물 품질 평가-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교강사 설문을 중심으로-」, ?�번역학 연구?� 2, 2.

한국번역학회. 37-56.

송 민. 1979. 「언어의 접촉과 간섭 유형에 대하여-현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우–」, ?�성신여대 논문집 ?� 10.

송 민. 1988.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국어생활?� 14.

국어연구소. 25-34.

우인혜. 1993a. 「국어의 피동법과 피동 표현의 연구」. 서울: 한양대학교.

우인혜. 1993b. 「“되다”와 “지다”의 비교 고찰」, ?�한국학 논집?� 23.

한양대학교 학국학 연구소. 439-466.

우인혜. 1994. 「접미 피동법의 일고찰」, ?�한국학 논집?� 25.

한양대학교 학국학 연구소. 273-294.

유목상. 1993. ?�한국어문법의 이해?�. 서울: 일조각.

윤지관. 2001. 「번역의 정치학: 외국문학 번역과 근대성」, ?�안과 밖?� 10. 영미문학연구회. 26-47.

이강언 외 3인. 2000. ?�국어학습용어사전?�. 서울: 태학사.

이건수․여승주 옮김. 2001. ?�영어학의 이해?�. 서울: 신아사

(Koenraad Kuiper & W. Scott Allan. An Introduction to English Language).

이근달. 1998. ?�영문 번역의 노하우?�. 서울: YBM 시사영어사.

이근희. 2003. 「영한번역의 번역투 연구」. 서울: 세종대학교.

이영옥. 2000. 「한국어와 영어간 구조의 차이에 따른 번역의 문제-수동구문을 중심으로」, ?�번역학 연구?� 1, 2. 한국번역학회. 47-76.

이영옥. 2001. 「무생물 주어 타동사구문의 영한번역」, ?�번역학 연구?� 2, 1. 한국번역학회. 53-76.

이진학. 1998. 「문화에 나타난 한국어와 영어의 표현차이 연구」. 계명대학교.

이필영. 1988. 「국어의 복수 표현에 대하여」. ?�수련어 논문집?� 15.

수련어문학회.

이환묵. 2002. ?�영어전통문법론?�. 서울: 아르케.

임홍빈 외 3인. 2003. ?�바른 국어생활과 문법?�. 서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장진한. 1990. 「번역과 우리말」, ?�국어생활?� 21. 국어연구소. 23-37.

조성식. 1984. ?�영어학개론?�. 서울: 신아출판사.

조성식. 1999. ?�종합영문법 Ⅰ?�. 서울: 신아사.

조학행․정병균. 2001. 「영어 수동구문의 by-phrase와 한국어 수동구문의 –에/에게」, ?�인문학연구?� 25. 인문학연구소. 177-194.

채 완. 1979. 「화제의 의미」, ?�관악어문연구?� 4, 1.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5-227.

최인철 옮김. 2004. ?�생각의 지도?�. 서울: 김영사.

(Richard E. Nisbett. 2003. The Geography of Thought.)

황찬호. 1988. 「외국어식 구문」, ?�국어생활?� 14. 국어연구소. 46-58.

 

Baker, Mona. (ed.). 2000. The Translator: Studies in Intercultural Communication: Evaluation and Translation 6. Manchester: St. Jerome.

Chesterman, Andrew. 1997. Memes of Translation. Amsterdam: John Benjamins Publishing Co.

Chesterman, Andrew. 2001. “Classifying Translation Universals”. Paper read at the Third International EST Congress “Claims, Changes and Challenges in Translation Studies”. Copenhagen, 30th August to 1st September.

Encyclopedia, Britannica. 1986.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Unabridged and Seven Language Dictionary. 1. G & C Merriam.

Gellerstam, Martin. 1986. “Translationese in Swedish Novels Translated from English”, in Lars Wollin and Hans Lindquist (eds.). Translation Studies in Scandinavia: Proceedings from The Scandinavian Symposium on Translation Theory (SSOTT) ∏ Lund 14-15 June, 1985 [Lund Studies in English 75], Lund: CWK Gleerup, 88-95.

Munday, Jeremy. 2001. Introducing Translation Studies: Theories and Application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Reynolds, Matthew. 2003. “Browning and Translationese” in Essays in Criticism, 53, 2.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97-128.

Shuttleworth, Mark & Moira Cowie. (eds.). 1999. Dictionary of Translation Studies. Manchester: St. Jerome.

<토론문>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가 영어 교육의 영향인가”

 

한학성(경희대 영어학부)

 

 

이근희의 글 “영어 교육의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는 기본적으로 영어글을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을 나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 교육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간의 상관 관계를 규명하고자 시도한다. 그런데 이 시도에는 몇 가지 논리적 허점이 내포되어 있다.

먼저 제시된 번역 자체를 우리글 사용과 동일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시된 번역의 문제는 문자 그대로 번역의 질 문제이다. 사람에 따라서, 혹은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공을 들이거나 훈련을 받으면 훨씬 자연스러운 우리글로 번역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계적 번역을 나열하고 이를 근거로 우리글에 영어 번역문투가 팽배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기계적 번역을 보인 사람들이 우리글 사용에서도 동일한 양태를 보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일반인들의 글에 영어 직역문투가 자주 사용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둘째로 이런 번역상의 문제점을 “영어 교육”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논리적 비약이다. “영어 교육” 때문이라기보다는 “문법번역식 영어 교육”, 혹은 “잘못된 영어 교육”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영어 교육을 실시했다면 영어를 우리말 번역을 매개로 해서 이해하지 않고, 직접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도 문제의 핵심은 번역의 질 문제이다. 문법번역식 교육에서라도 번역을 제대로 훈련시켰다면 훨씬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적 문제 외에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필자는 2절에서 영어 직역투 문장 때문에 한국어의 다양한 토속어나 구문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빙성 있는 예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4절에서 든 “Good morning”과 “좋은 아침” 등의 예는 수긍하기 어려우며, 김정우 (2003)에서 인용한 부분은 필자 자신의 작업으로 보기 어렵다.) 어휘 간, 구문 간 경쟁은 토박이말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므로, 일부 토박이 어휘나 구문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영어 직역투 문장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다 더 신빙성 있는 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학생들이 번역에 사용한 직역투 표현의 비율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비율이 문제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60% 이상의 비율을 보이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3.1.4절이나 3.1.5절에서는 번역투의 비율이 10-20%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비율도 문제라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또 해당 비율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연스러운 번역을 했다는 것인지와 아예 잘못된 번역을 한 예는 없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셋째로 본 논문에서와 같이 잘못된 번역을 우리말 사용의 문제로 단정하고 대안 번역을 제시하는 식의 접근은 대안 번역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경우, 스스로의 근거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다. 다음은 대안 번역 자체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예들이다.

 

<대안번역 예시 1, cf. 3.1.3절 분사구의 번역문투>

 

[원문2] They also had the certainty of a job for life, but they usually couldn’t

choose to change from an employer to another or from one profession

to another.

 

[번역문투2] 그들은 또한 삶을 위한 직업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고용주

에서 다른 사람으로 혹은 전문직에서 다른 어떤 것까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할 수 없었다.

 

[대안번역] 그들은 또한 평생 직업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대개는 회사를 이리저리 옮기거

 이일저일 직업을 옮길 선택권은 없었다.

 

[대안번역 2] 그들도 평생 고용이 보장되기는 했지만, 회사를 옮기거나 직업을 바꿀 자유는 별

로 없었다.

 

 

<대안번역 예시 2, cf. 3.1.9 피동문의 번역문투>

 

[원문] In traditional Chinese culture, marriage decisions were made by

parents for their children.

 

[번역문투] 전통적인 중국 문화에서 결혼에 대한 결정들은 그들의 자녀를 위하는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안번역]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혼인의 결정을 자식 대신 부모가 했다.

 

[대안번역 2]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결혼할 상대를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가 결정했다.

 

<대안번역 예시 3, cf. 3.1.11 기타 번역문투>

 

[원문] Anyway, Jane1 wouldn’t answer him when he asked her if she2 knew where (sic?) there was (sic) any cigarettes. So the guy asked her

again, but she3 still wouldn’t answer him. She4 didn’t even look up

from the game.

 

[번역문투] 어쨌든 제인은1 그가 그녀에게 그녀가2 담배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3 여전히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4 게임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대안번역] 아무튼 제인은1 (Φ)2 담배 못 봤느냐는 그 사람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재차 물었으나, 제인은3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Φ)4 심지어 놀이에서

눈조차 떼지 않았다.

 

[대안번역 2] 아무튼 제인은 담배 없냐는 그 사람의 물음에 답할 생각이 없었다. 그 사람이

재차 물었으나, 제인은 여전히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하던 게임에서 눈조차 떼지

않았다.

 

위의 예들은 부자연스러운 번역의 문제는 번역 자체의 문제이며, 이는 오히려 번역자의 한국어 구사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거꾸로 영어가 번역자의 한국어 사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넷째로 필자는 한국어에는 어떠어떠한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단정적 서술을 하고 있는데 (예: 한국어에는 “--, 그리고”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단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표현이 과거에 없었다는 뜻인지, 오늘날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인지, 표준 한국어에서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이들 외의 어떤 다른 의미인지 궁금하다. 과거에 사용되지 않았다면, 특정 시점 이전의 모든 한글 문헌을 검색해 본 결과 그렇다는 것인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무슨 근거로 한국어에는 그런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언중이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임에도 문법학자들에 의해 잘못된 표현으로 낙인찍힌 표현들을 연상시킨다 (예: 영어의 "It's me./He is taller than me./Nobody said nothing./Answer either question 1, or question 2, or question 3./We had to come home early, due to bad weather./Everyone loses their cool now and then./John and Mary love one another---" 등). 다시 말해 이런 입장은 언중이 사용해도 좋은 표현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표현을 문법학자들이 지정해 주는 소위 규범 문법(prescriptive grammar)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데, 최근의 언어학에서는 규범 문법보다는 언중이 사용하는 표현을 모두 문법적으로 인정하는 기술 문법(descriptive grammar)적 경향이 더 일반적이다.

다섯째로 필자는 군데군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4절에서 어떤 방송 진행인이 방송 말미에 특정 표현(“좋은 하루 되십시오”)만을 사용하며 또 그것이 영어 표현(“Have a good day!”)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여, 영어 어휘(즉 “good”)가 한국어의 다양한 고유 어휘를 잠식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정인 하나가 한국인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으며, 이렇게 특정인 한 사람의 언어 습관을 근거로 한국어 전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서술하는 것은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개개인이 영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 자체가 개개인의 한국어 사용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외국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 사용을 할 때, 그런 직역투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문제는 학자 (혹은 지식인)들이 부자연스러운 직역투 표현을 글에서 남발하는 것이다. 이는 학자들이 스스로의 학문이나 사고를 하기보다는 외국의 이론을 번역하여 보도하는 이른바 “보도 기능”에 안주해 왔기 때문인데, 이런 사람들이 내용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남의 글을 직역투 문장으로 옮겨 설명하는 형식을 취해온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직역투 표현은 원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흔히 발생하며, 내용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한국어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역투 표현 자체보다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서술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우리말로 명확하게 사고하고 명료하게 글쓰는 훈련, 즉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명확하게 사고하고 명료하게 글쓰는 사람이라면 부자연스러운 직역투 문장을 거부할 것이 당연하므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 이런 부자연스러운 직역투 표현의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언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가 일어나는데 (예: “--- 보여진다”, “--- 생각되어진다” 등), 이 역시 언론인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영향력 때문에 이런 부자연스러운 직역투 표현이 일반인들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둘째로 인간 언어 능력의 가장 큰 특징은 “창의성”이다. 이는 과거에 없던 표현이라도 창의성을 발휘하여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어의 번역투 문장이 이 “창의성”과 잘 결합하면, 한국어 표현을 더욱 다양하게 하여 한국어를 더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이 번역됨으로써 과거에는 없던 다양한 표현들이 한국어에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어의 표현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없으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한국어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양한 표현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 자체가 한국어에게 나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중이 이들 중 자신에게 맞는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거나, 다양한 표현들 간에 적절한 의미 분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느 언어에서나 일어나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셋째로 영어 번역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운 직역투 표현 자체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어 교육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어 교육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이다. 이 문제를 여기에서 논의하기는 부적절하므로 논의를 피하기로 하겠으나, 오늘의 이 모임 자체가 그러한 잘못된 믿음에서 파생된 것임을 생각할 때, “영어 교육 혁신”의 필요성이 그만큼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제4주제>

 

외래·번역문투 손질하기/보도문투를 중심으로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

 

가. 들머리

 

신문기사 문장은 처음 언문일치에 걸맞은 입말 중심의 단신기사 문체(독립신문 등)에서 좀더 길어지고 사람 이야기 중심으로 쓴 문체(줄거리 중심), 광복 뒤 점차 기사 앞머리에 여섯종자(육하원칙·문장성분) 얼개를 앞세우고 자세한 사실·사건 정보를 따라붙이는 기사문체, 그리고 최근 내용과 갈래 따라 다양하게 부려쓰는 문체로 변해 왔습니다.

 

문장 길이도 점차 짧아지고 날씬해졌습니다. 사실·객관·공공성을 내세우면서 특히 보도기사는 사실 중심 서술과 설명, 직접 인용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이런 쪽에서 보면 오늘날의 기사는 썩 간략하고 쉽게 읽히는 과정을 밟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글자수 한 문장 평균 90자-정치/57자-해설/79자-사회/68자-경제/71자-국제, 95년 수치로서 06년 현재도 크게 바뀌지 않음, 한·중·조·동)

 

10여년 전부터 글쓰기와 신문제작의 전산화 덕분에 디지털 연장으로 글을 쓰는 방식이 일상화했으며, 한편으로 상업주의가 바탕이 돼 독자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글쓰기, 독자 영합 글자와 글쓰기가 횡행하고, 언론 권력의 의도가 스민 글쓰기에다 기존틀 깨기, 발칙한 글쓰기 권장 등으로 변화 몸부림이 복잡합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한글로 줄글을 박아쓰고 읽은 지가 오래되지 않았고, 상민들은 전통적으로 글자생활을 할 여가가 없었으며, 독립신문 등 순한글 신문이 나오자마자 일본물이 들어와 간섭하고, 마침내 지난세기 40년대 들어서는 조선 말글 말살바람에 억눌리기도 합니다. 뒤이어 60여년은 우리말글이 비로소 모든 말글살이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 가르치고 공부하며 써 오늘에 이릅니다. 비록 그 세월이 짧으나, 우리말글로서는 역사상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성싶습니다. 한편으로는, 한자와 일본어 자리에 영어가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으니, 뒤집어 생각하면 한시도 다른 말글의 간섭 없이 제대로 온전히 우리글을 부려쓸 여가가 없었다고 봐야 할 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뒤섞여 굴러가는 형편인 걸 알 수 있습니다.

 

반성하는 관점에서 기사를 읽어보면 사실 많은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외래어·외국어를 자주 쓰는 것 이상으로 문장이 꼬이고 비틀어진 게 많습니다. 문법에 어긋나는 글, 문제나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짚어 전달하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 기사가 적잖습니다. 또한 상당수 자료와 인용문의 생산자는 기자가 아닙니다. 어절, 표현까지 남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경우가 숱합니다. 결국은 잘 읽히지 않고, 너절하며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럿이 있을 것이로되 여기서는 주로 외국어 공부와 간섭, 무분별한 수용 태도에 화근이 있음을 두고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런 반성은 낱말을 중심으로 국어순화 차원에서 줄기차게 지속돼 왔습니다. 그러나 이은말이나 마디, 문장 쪽에 가서는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만 거론돼 논문 등을 통해 이따금 점검해 온 정도였습니다. 이는 이 분야에 깊고 폭넓은 바탕 점검이 모자랐으며, 더구나 실천을 아우르는 데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국어하계에서야 당연한 소임이겠지만, 최근에는 ‘번역학’이란 새 분야가 생겨 이 방면의 문제점을 짚어나가는 줄 압니다. 그 성과가 학생이나 일반인 쪽으로 번져 좀더 우리글다운 글쓰기와 손질을 바랄 수 있게 됐으면 다행이겠습니다.

 

마침 ‘우리말 속의 번역문투’를 주제로 그 문제를 두루 살피는 학술발표회를 하는 참에 끼어들어 보도문투에서 쉽게 눈에 띄는 번역투 몇몇을 살펴 타당한 이야기인지 점검을 받아보려 합니다.

 

 

 

나. 번역문투 유형, 갈래

 

오늘날 보도기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투·문투가 비슷해져서 국적을 가린다는 게 쓸데없는 일 아닌가도 싶습니다.

 

제 나라 안에서나 신문·방송을 보고 듣던 때 정도야 국경 너머, 물건너 쪽 것을 배우고 베끼고 견주는 데 재미가 나기도 하였으나 전자 매체가 발전한 오늘 그런 재미나 여유는 실시간으로 오가면서 반감되고, 이왕 네것내것이 없어진 시대가 되었으니 세계 통합 언어를 만들어 소통해야 한다는 말도 나올 법하겠습니다. 일부 한-영 잡지도 나왔지만, 신문·방송, 각종 자치단체 누리집도 한·영·일·중국어판들을 내는 지경입니다.

 

 

ㄱ. 외국글을 번역한 글:

본디말글에 충실하게 뒤친 글은 말차례나 표현·조합·서술, 연결 방식에서 우리말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본디뜻이나 말맛을 살리면서 우리말 방식에 가깝게 손질할 수는 있겠으나, 완벽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따라서 상당부분 낯설고 어색한 점을 이해하면서 읽습니다. 한수 접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야마다 번역서가 쏟아져 나오고 읽으니, 그쪽을 많이 읽는데서 오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를 읽고 배우는 이가 적지 않은 까닭입니다.

 

 

ㄴ. 우리글 속의 번역투

 

번역 또는 외국글과 무관하게 현재 우리가 쓰는 말글에 우리말답지 않은 문투가 적지 않습니다. 어색한 문투와 표현, 각종 이은말과 익은말들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말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괜찮겠으나 뜻·이해·호흡·짜임새에서 읽기를 방해하고, 헝클어뜨리는 구실을 한다면 이는 마땅히 추려내야 할 터입니다. 이는 이차적인 영향이라고 보는데, 곧, 한문·일본·영어 공부를 통해서 익은 말이나 문투를 자기가 쓰는 글에 일부러 또는 무심코 적용한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번역글을 읽어서 받은 영향이 간접적으로 우리글에 적용돼 굳어지거나 굳어져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외국문투와 직접적 상관이 없는 우리글에 스며든 외국어·외국글 문투로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ㄷ.비빔글과 보도문투

 

보도문투는 위 두 가지 사례가 뒤섞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쓴 부분과 외국인의 말이나 정보를 인용한 부분이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기사, 정치기사, 문화기사, 사회기사의 영역도 허물어지고 국내외 현실이 얽힌 사안이 많으니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편의상 비빔글이란 이름을 붙여봅니다.

 

 

ㄹ. 달리는 한문투, 일본문투, 영어문투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한문과 일본투가 뒤섞인 것, 일본어투와 영어투가 뒤섞인 것들도 짚을 수 있습니다.

낱말·이은말·마디·말차례·표현·문법적인 것들로 갈래를 나눠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통적으로 문자풀이 말투가 많았고, 이는 요즘 영어풀이 말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문자풀이나 영어풀이 말투는 대체로 원문을 괄호에 넣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 번역문투 판단 기준은?

 

근본적인 방식은 각 문장들을 널리 그리고 엄밀한 비교·검토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부터 기본틀과 활용틀을 점검해야 할 것이며, 다음으로 한-영, 한-일, 한-중 비교분석 끝에 추려내고, 거기서 다시 짚어 걸러낼 것을 확정하는 과정을 밟는다면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출 수 있을 터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쉬운 방식으로 인상적인 판단 기준을 짚어봅니다. 견주기, 문법적 저촉, 수용 가능성 정도를 견주고서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구실·영향면에서 번역문투가 우리말을 확장하느냐 다양화하느냐 하는 판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번역투가 섞인 글이 읽히느냐 안 읽히느냐, 자연스러우냐 부자연스러우냐, 굳어져 쓰이는 정도가 느슨하냐 단단하냐, 문장 길이가 적당하냐 아니냐, 읽기에 쉬우냐 어려우냐, 상투적이냐 아니냐, 군더더기인가 아닌가, 문법에 맞느냐 아니냐, 우리말법을 살리는 데 이바지하느냐 아니냐, 버려서 아까우냐 아니냐?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글을 읽고 손질하기는 어렵지만 한두가지라도 짚이는 보기가 보인다면 이를 모으고, 그러고서 여럿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 좀은 그럴듯한 판단이 나올 터입니다.

 

사실 어느정도 굳어진 것도 낱말만 바꾸면 되는 것, 쓰지 않아도 되는 것(군더더기·치켜들고 흔들면 떨어지는 말들), 강조투, 상투어들은 손질하기 쉬운 편입니다. 문장까지 손질해야 하는 것은 손질하다 보면 자칫 피가 날 때가 있습니다.

 

보도기사에서 상투적 표현, 서술어, 법률·외교용어들은 주로 한자말과 영어식이 많습니다. 이런 말들은 낱말만 바꾸기가 어려워서 통사 차원의 손질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기존의 보도용어에서 금기시하던 토박이말 갈래의 이른바 상말·낮은말·비속어들을 들춰 쓸 필요도 생깁니다.

 

 

 

라. 사례

 

신문기사에서 흔히 쓰이는 사례를 몇 가지 살펴봅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말들이 신문기사에서만 쓰이지도 않습니다. 하도 자주 쓰여서 상투어처럼 된 말들이어서 들추어본 것들입니다.

 

이 밖에도 고질적인 번역·외래문투들이 많으나 이 정도만 줄이고 손질해도 문장이 한결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보도문투뿐만 아니라 학술글, 기타 실용문을 가리지 않고 무슨 틀처럼 굳어져 쓰이는 말에, “-에 의하면·-에 따르면, -에 관해·-에 대해, -를 위해, -에 의해, -에 비해” 들이 있습니다. *아래 든 보기문장들은 <한겨레>를 비롯해 어느 신문 기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1. -에 의하면·-에 따르면

 

‘~에 의하면, ~에 따르면’ 하는 간접인용문 도입마디를 흔히 씁니다. 신문글에서 특히 흔하고, 일반글에서도 자주 눈에 띕니다. ‘~에 의해’(by)를 써 피동문을 남발하듯, ‘~에 의하면’도 같은 말에서 나온 말썽거립니다. 한자말 ‘依據’ 아닌 외자 ‘依’에 ‘하다’를 붙인 한문투로서, 일본말투에 흔하고, 여기에 영어 관련어(according to, in accordance with, pursuant to, judging from, by virtue of, by means of …)를 ‘-에 의하면, -에 의하여’로 가르치고 배워 쓰다가 굳어진 것으로 봅니다.

 

‘-에 의하면’에서 ‘의하면’을 ‘따르면’으로 바꿔 쓴 말이 ‘-에 따르면’인데, 본디 ‘따르다’는 타동사로서 “-을 따르다”로 써야 맞습니다. 토씨 ‘에’가 목적격 ‘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인용할 때, 주체와 주어 말끝 서술어 처리에서 호응이 안 되는 혼란이 옵니다. 우리말은 서술어가 말끝에 오는 까닭에 말이 길어지면 주술 호응을 놓칠 때가 잦은데, 이런 말로 시작한 인용문에서는 걸맞은 서술어를 찾아 쓰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특히 보도기사에서, 복수 출처를 싸잡아 대어 정보의 공공성을 떨어뜨리는 구실까지 하는데, 이런 폐단이 생기는 까닭은 본디 우리말 표현이 아닌 것을 관행화해 쓴 데서 옵니다.

 

남이 한 말을 빌려 쓰려면 분명해야 하며, 어법에 맞게 따와야 하는데, 이런 말들을 쓰다보면 자칫 글투가 비겁해지고 비틀어지며 마침내 이를 관용화할 위험이 생깁니다.

 

~에 의하면/~에 따르면(제보자, 현장인, 발표 출처, 전문가 등)은 *최근 당국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동아 37.9.15), 외무부에서 상공부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동보고서 내용에 의하면(47.3.30 경향)처럼 일제 때부터 70, 80년대에 많이 쓰였으며, 이는 90년대 들어 ‘-에 따르면’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릅니다. ‘-의하면’ 과 비슷한 쓰임으로 ‘거한즉’(據-)이 있는데, 이는 ‘보도를 거한즉, 전보를 거한즉, 소문을 거한즉’처럼 타동사로 쓰였다.(1910.7.22 대한매일신보)

 

△ 한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74%가 “자신감만 있으면 몸매를 드러낼 수 있다”고 답해 노출에 관한 달라진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한 조사에서, 여성의 74%가 “~ ”고 답해 ~.

 

△ 싸르트르에 따르면 문학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언어, 사물의 세계(현실초월적)와 산문의 언어, 기호의 세계(현실참여적)로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문학작품은 시와 산문으로 나뉘었다 → 싸르트르는 문학에 대한 인식을 시인의 언어, 사물의 세계(현실 초월적)와 산문의 언어, 기호의 세계(현실 참여적)로 구별한다. 그는 문학작품을 시와 산문 두 갈래로 갈랐다.

 

△ 28일 건설교통부와 대한건설협회,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올해 시공능력평가에서 6조6300여억원(잠정치)을 기록, 사상 첫 1위에 등극할 것이 확실시된다 → 28일 관련 기관들의 집계결과, 대우건설이 올해 시공능력 평가에서 6조6300여억원(잠정치)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2. -에 대하여, -에 관하여

 

이 말이 많이 쓰이게 된 연유는 두어 가지입니다. 먼저 일본말(-に 關して, -に 對して) 탓인데, 일제 행정·법률 문서를 그대로 베껴 쓰면서 자리잡은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영어 영향이 더합니다. 영어 단어나 익은말(for, as regards, as to, as for, in regard to(of), with regard to, in respect of, with respect to, as respects, about, concerning, regarding … ) 들을 마냥 ‘-에 관해, -에 대해, -에 관해서는, -에 대해서는” 따위로 가르쳐 버릇하고 배우며, 이를 번역문 아닌 보통 말글에서도 써댄 결과입니다. 둘 사이 뜻차이는 거의 없는데, ‘-에 관한’보다 ‘-에 대한’ 쪽이 더 잦은 편입니다.

 

예컨대 “다음 물음에 관해 답하시오. 평화에 대해 갈망하다,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누구누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다”가 아니라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평화를 갈망하다, 원-달러 환율, 누구누구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다”면 될 것입니다.

 

△이 물건이 쓸모가 있는지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 이 물건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이 이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할말이 없다 → 이 이슈를 두고는 아무 할말이 없다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은가 → 무엇을 알고 싶은가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미사일방어 계획에 대한 태도에 대해선 ~ → 미사일 방어계획을 다루는 아시아 다른 나라 쪽 태도 분석에서 △하원 인권 코커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 하원 인권위원회를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최근 들어 많이 다루는 주제는 북한 난민들에 관한 것입니다 → ~ 북한난민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 이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하여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주제로 토론하겠습니다.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인은 사진작가, 가장 낮은 직업인은 모델로 조사됐다./ 모델은 만족도가 2.25로 가장 낮았으며, 의사들도 2.84로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정도가 가장 높은 직업인은 사진작가, 가장 낮은 직업인은 모델로 나타났다./ 모델은 만족도가 2.25로 가장 낮았으며, 의사들도 2.84로 자기 직업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3.~을(를) 위하여/ ~을(를) 위해

 

요즘 자주 쓰는 ‘위(爲)하다’는 말·글에서 ‘이롭게 하는’ 구실보다 ‘해롭게 하는’ 구실을 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 ‘-하기 위하여, -를 위하여, -를 위한’ 꼴이 있습니다.

“특수목적 회사는 유동화증권 발행을 위해 만든 서류상 회사다.”

여기서 목적어를 ‘유동화증권 발행’으로 잡았는데, 이보다는 ‘유동화증권’으로, ‘발행을 위해’는 ‘발행하고자’로 한마디로 쓰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대체로 ‘-기 위해’는 의지를 가진 씨끝 ‘-고자, -하려고, -하도록’ 들로 바꾸면 간략해집니다. ‘-을 위해’는 ‘-을(를) 생각하여’로 바꿔 쓰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특수목적 회사는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자 만든 서류상 회사다”가 됩니다.

 

‘위하다’는 제목이나 법·단체 이름 등 말을 극히 줄일 때나 쓸모가 있을 뿐, 보통 글에서는 ‘부림마디, 매김마디, 어찌마디’를 길고 복잡하게 두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는 또 한문투를 만들기도 하고, 입말을 어려운 글말(문어체)로 바꾸며, 걸맞고 적확하게 쓰일 연결어미들을 죽이는 구실도 합니다.

 

요즘처럼 ‘위하여’꼴이 많이 쓰이게 된 데는 영어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영어 익은말(in order to, so as to, with a view to, in the cause of, for the cause of, for the sake of, for the benefit of, for one’s sake, in the interests of …)들을 ‘-하기 위하여, -를 위해, -를 위한’으로 익히고 써버릇한 까닭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벌지상주의 극복을 위하여 → 학벌지상주의를 극복하려면 △의뢰자들은 대부분 초·중·고교생 자녀를 조기유학시키기 위해 이민을 신청했는데 → ~ 자녀 조기유학 관계로 이민을 신청했는데 △신자유주의는 더 많은 일자리를 약속하지만 그러한 삶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우리의 삶이 더 망가지게 되어 있다 → ~ 그런 삶의 조건을 갖추자면 ~. △20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개막된 대졸자를 위한 비영리 일자리 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대거 몰려 박람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20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 대졸 구직자들이 몰려 바람회장을 가득 메웠다. △서울시설공단은 겨울철에 청계천의 설경을 즐기기 위해 눈을 치우지 않는 ‘스노우존’을 마련한다고 20일 밝혔다 → 서울시설공단은 겨울 청계천 눈구경을 즐기도록철에 .

 

 

 

4. ‘~에 의해’ 붙이/

 

‘-에 의해/-에 의하여’ 역시 외자 한자 ‘의’(依)에 ‘-하다’가 붙은 말로서, 물주구문과 피동문을 만듭니다. 영어에서 ‘by+행위자’를 직역한 투로서, ‘-에 의해 ~ 되다/ -에 의해 ~ 지다’ 식의 문투를 만드는데, “이 책은 김아무개 교수에 의해 쓰여졌다”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세상 ~” 따위가 쉬운 보기입니다.

 

이는 그 행위자에 주격토를 붙여 문장을 바꿔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문맥에 따라 은·는 따위 주제토나, 소유·목적·부사토에다 연결어미들로도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논문은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의대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작성됐다 → 논문은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의대 교수가 주도해 썼다.

 

△소방재청은 11일 업무지침을 개정해 제3자에 의한 자살기도 신고도 ‘급박한 위험사항’에 포함시켜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긴급구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 소방재청은 11일 업무지침을 고쳐 제3자가 자살기도를 신고했을 때도 ‘급박한 위험사항’에 포함시켜 ~.

 

△책하면 보통 거창한 이론을 떠올리게 되지만 앞으로는 책에서 제시하는 섬세한 디테일에 의해 책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 책 하면 보통 거창한 이론을 떠올리게 되지만 앞으로는 책에서 제시하는 섬세한 양식이 책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

 

 

5. ‘-에 비해’붙이

 

사람들은 사물을 견주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견주다 보면 서로 크고 작고, 옳고 그르고, 넘치고 모자람들이 나타나는 까닭입니다.

 

논문·기사·보고서에서도 어떤 사안을 계량화하여 나타낼 때가 많습니다. 수치나 통계로 보여야 머리를 끄덕이는 경향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숫자를 쓰지 않으면 글이 안 되는 것인 양 버릇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안이 통계적이고 복잡할수록 말은 간명하게 하는 게 좋은데, 숫자에 익은 사람조차 그런 글을 읽는 게 부담스럽고, 이로써 멀리하게 됩니다. 자세한 수치는 그림이나 표로 보여주고, 글에서는 핵심과 줄거리를 간추리면 될 터입니다.

 

사물을 견줄 때 “-에 비하여, -에 비교하여, 전년 동기 대비 …” 따위를 판박이로 씁니다. “-에 대하여, -에 관하여, -에 의하여” 무리와 유형이 비슷합니다. 이른바 외자 한자말(對·關·依·比 …)에 ‘-하다’를 붙여 쓰는 말투니까요.

 

이런 표현은 영어(in comparison with, as compared with, as against, in contrast with …)를 ‘~와(에) 비교하여/~에 비해’로 직역해 쓰는 게 버릇되어 굳어진 것으로 봅니다. 이는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일본어(比くらべる> -に比くらべて)의 영향도 적지 않겠습니다.

 

‘-에 비해, ~ 대비’는 토씨 ‘-보다’를 쓰면 저런 거추장스런 표현을 덜 수 있습니다. ‘보다’와 함께 동사 ‘대면·대어 보면, 견주어·견줘 보면, 보다’들은 입말에서는 자주 쓰는데도 글말에 가서는 ‘-에 비하여, -에 비해’에 자리를 내주는 까닭이 뭐겠습니까? 이는 사개맞춤을 할 자리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 올해 상반기에 발견된 위폐는 모두 1만4311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345장)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1만원권은 모두 9872장이 발견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6배나 늘었다 → 상반기에 발견된 위폐는 모두 1만4311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345장)보다 갑절 넘게 증가했다. 특히 1만원권은 모두 9872장이 발견돼 지난해보다 여섯 배나 늘었다.

 

△ 2분기 영업손실은 3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8억원, 전분기 대비 8억원 감소해 꾸준한 손익개선 흐름을 나타냈다 → 2분기 영업손실은 3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8억원, 앞 분기보다 8억원 줄어 꾸준한 손익개선 흐름을 보였다.

△ 이는 성인오락실 기기의 불량지폐 거부율이 일반 자판기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 위폐 사용이 유리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 일반 자판기보다 훨씬 낮아 위폐 사용이 유리한 까닭으로 분석된다.

△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내놓은 에너지 가격 구조 개편안에 의하면 경유가 휘발유에 비해 오히려 비싸질 전망이어서 경유 운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 ~ 개편안을 보면,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질 것으로 보여 경유차 운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 금년 말엔 국가빚이 280조으로 추산된다. 이는 작년 말 248조원에 비하여 13% 증가한 비율로서 매년 나랏빚이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 ~. 이는 지난해 말(248조원)보다 13% 늘어난 비율로서 해마다 나라빚이 쌓여가는 셈이다.

△ 그래도 저 사람은 돈밖에 모르는 저의 아버지나 형한테 비하면 없는 사람들을 꽤 동정하는 셈이에요 → ~ 아버지나 형한테 대면 없는 사람들을 꽤 동정하는 셈이에요.

△ 분양가는 일반 민영아파트에 비해 평당 10~20% 정도 싼 60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 분양값은 일반 민영아파트보다 평당 10~20% 정도 싼 60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6. ‘갖다·가지다’ 얘기

 

‘갖다·가지다’를 아무데나 쓰는데, 영어의 테이크·해브(take, have) 붙이를 획일적으로 뒤쳐 쓴 데서 온 영향으로 봅니다. 영어는 ‘해브’ 같은 하나의 동사가 맥락에 따라 여러 뜻으로 쓰이지만, 우리말은 주어나 목적어에 따라 쓰이는 동사 자체가 다르고 다양합니다. ‘have’의 쓰임도 그렇지만 ‘가지다’ 뿐만 아니라, 문맥에 따라 “있다, 보내다, 열다, 하다, 올리다, 쏟다, 두다, 기울이다 …” 들 여러 가지로 쓰이므로 마냥 ‘갖다·가지다’로만 번역해서는 말이 안 될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글 안에서 이처럼 마냥 대동사를 쓴다는 것은 우스개 같은 현실입니다.

 

예컨대 *회의를 가진 뒤 *접촉을 갖고 *만남을 가질 예정 *기도시간을 갖고 *기자회견을 갖고 *개회식을 가진다 *차례를 갖다 *경기를 갖고 …들처럼 쓴다는 것은 “열다, 하다, 올리다, 지내다, 치르다 …”뿐만 아니라 그 활용형들까지 쓸모없게 만듭니다.

 

 

7.~에 충분하다?

 

“ ~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한 도발적인 표현은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 가스공급을 줄인 것은 48시간도 안 됐지만 유럽국가들을 일순간에 긴장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남북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서 ‘~에 충분하다’ ‘아무리 ~ 해도 모자란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위들은 영어 구문((enough ~ to, no ~ enough ~ to, cannot be to emphasized 따위) 직역투들인데, 번역문이 아닌 데서도 흔히 쓰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공급을 줄인 지 48시간도 안 됐지만 유럽 여러 나라들을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도 남았다” “남북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도면 될 터입니다.

 

 

8. ~ 하는 대신?

 

“중앙일보 기자들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취재하는 대신 그를 열심히 수행·보호했을까?” “분노 대신 꿈을 나눈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가치 점수의 중앙값에 의하여 종목을 분류하는 대신에 전 종목이 3개의 동일한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는 종목군으로 분류된다.” “중고차가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는 대신 이를 버리고 다른 차를 사는 것이 더 쉽고 더 저렴하다.”

 

 

영어에서 “instead of ~” 구문을 “~ 하는 대신”으로 굳혀서 번역하고 이 말에 버릇이 들어 번역문이 아닌데서도 판박이로 쓰고 있습니다. 이는 “~ 하지 않고, ~ 하는 것보다, ~이 아니라, ~ 하는 것이 더 낫다” 식으로 다듬어 쓰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위는 “중앙일보 기자들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취재는 않고 열심히 수행·보호만 했을까?” “분노를 삭여 꿈을 나눈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가치 점수의 중앙값으로 종목을 분류하는 게 아니라 전체 종목이 세 개의 동일한 시가총액을 지닌 종목군으로 분류된다.” “중고차가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는 것보다 이를 버리고 다른 차를 사는 것이 더 쉽고 돈이 덜 든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 하는 대신’은 그 행위를 함으로써 뒤에 무슨 대가나 결과, 조건을 따르게 하는 문맥에서 써야 자연스럽습니다.

 

 

9. -고 있다·-고 있는?

 

“그는 아내의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김동인·배따라기)/ “어느덧 C의 팔은 비스듬히 춘심을 안고 있다.”(현진건·타락자)/ “어린 것을 꼭 안아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전영택·하늘을 바로 보는 여인)

“그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c의 팔은 비스듬이 춘심을 안았다/ 어린 것을 꼭 안고 웅크리고 떨었다.”

 

이 보기는 정광 교수가 논문(1920~30년대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일본어 구문의 영향)에서 ‘-고 있다’ 꼴이 일본어(-ている)에서 영향을 받은 글투임을 보기로 든 것들이다. 빗금(/) 부분은 이를 자연스럽게 고친 말입니다.

 

20~30년대 일본물을 먹은 작가들이 이런 진행형 문장을 썼다는 얘기인데, 요즘은 일본말보다 영어 쪽(-ing)의 영향을 직접 받아 아무나 일상적으로 써대는 형편입니다.

 

‘-고 있다’ 말고도 ‘-는 중이다’도 흔히 보이고, 심지어 이 두 말이 합쳐져서 “하고 있는 중이다, 가고 있는 중이다, 벌이고 있는 중이다”와 같은 말까지 만들어 씁니다. 거기에 더하여 ‘있다’의 높임말인 ‘계시다’까지 ‘-고 계시다’로 엮어댑니다.

 

몇 해 전 국어원에서 우리말 잦기조사를 했을 때 특히 자주 쓰이는 말 열 가지 중 ‘있다’붙이가 ‘것·하다’에 이어 셋째(보조동사)와 넷째(형용사) 자리를 차지했는데, 특히 보조동사 쪽의 쓰임은 이런 일본말과 영어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많이 써 제대로 된 표현을 죽인다는 점, 이로써 갈수록 문장이 너절해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제품 분야는 발효유.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개의 브랜드를 그가 관리하고 있다 → 현재 그가 맡는 분야는 발효유 제품이다.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가지 상표를 관리한다.

△ 하실골 대신 ‘하설골'로 불리고 있는 ‘하설산' → 하실골 대신 ‘하설골’로 불리는 ‘하설산’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우리는 어디로 밀려가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 우리는 어디로 밀려가는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가?

△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자금이, 선전에 능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관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기름으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자금을 대고 있는 프로그램에 같이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자금조차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제공하는 원조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 미국이 제공하는 이 자금이, 선전에 능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관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기름으로 떼돈을 버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자금을 대는 프로그램에 같이 쓰이는 까닭에 미국이 주는 자금조차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주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 순조롭게 반등하는 듯했던 주식시장이 이번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외국인 매도가 점진적으로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보여 1300선에 대한 신뢰는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 순조롭게 반등하는 듯했던 주식시장이 이번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부담으로 작용하는 외국인 매도가 ~.

△ 인기를 끌고 있다, 갖추고 있다 → 인기를 끈다, 갖췄다.

△ 다양한 형태 보험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다양한 형태의 보험상품이 봇물을 이룬다.

△ 기존에 가입하고 있는 금융상품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 이미 가입한 금융상품을 다시 짜야 한다.

△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제품 분야는 발효유.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개의 브랜드를 그가 관리하고 있다 → 현재 그가 맡는 분야는 발효유 제품이다.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가지 상표를 관리한다.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02년부터 이같은 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구매한 쌀은 모두 1500t에 이르고 있다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02년부터 이런 활동을 펼쳤으며, 지금까지 사들인 쌀은 모두 1500톤에 이른다.

 

10.요구된다, 요청된다/

 

 

‘요구·요청’이란 ‘무엇을 달라고 함’인데, 여기에 피동 접미사 ‘되다’를 붙여 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영어 “be required of ~’나 ‘ask·demande·request’ 등 이른바 권고적 간접명령 동사들을 ‘요구되는, 요청되는’이라 번역한 데서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체로 ‘필요하다’로 바꾸면 되고 문맥에 따라 ‘요구’의 적극성을 살려 달리 표현해야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것을 잘못된 번역문투라고 보는 것은 같은 형식의 “간구되다·청구되다·소구되다·요망되다 …”들이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비정규직의 경우도, 여성, 청소년, 노년층의 문제까지 확산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 (요구된다). … 한계산업과 외국자본에 지배당하는 기업의 경우도 국내기술의 유지와 산업 연관성 확보를 위해 공기업화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이 (요구된다). … 뿐만 아니라 사유화로 치닫고 있는 각종 연금관련 정책에서도 사유화 반대와 수급 현실화의 방안을 제시할 것이 (요구된다). … 여성문제, 장애인문제, 환경문제 등 갈수록 자본의 이윤논리에 대립하는 저항운동의 확산과 관련하여서도 적극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이는 어떤 정당의 당면 과제를 짚은 글 두 단락에서 추린 것입니다. ‘요구되다’를 얼마나 버릇으로 쓰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 공명선거 의지입니다. 공명선거를 치르려면 흑색선전을 근절할 집중적인 단속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 지금 필요한 것은 공명선거 의지입니다. 선거를 공명히 치르려면 흑색선전을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합니다/~ 흑색선전부터 뿌리뽑아야 합니다.

△ 신사참배, 긴 호흡의 대응 요구된다 → 신사참배,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

△ 황 교수팀, 지혜로운 대처 요구된다 → ~, 지혜롭게 대처해야(제목)

△ 공연장의 운영철학 절실히 요구된 한 해 → 공연장 운영철학이 절실해진 한 해

△ 근본적인 식품안전 대책이 요구된다 → 근본적인 식품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11. ‘-로 인해’?

 

까닭·원인·이유를 나타낼 때 ‘인’(因)에다 ‘-하다’를 붙여 ‘인하다’란 말을 만들고, 앞말에 토씨 ‘로’를 붙여 ‘-로 인하여, -로 인해, -로 인한’ 따위 이은말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활용이 안 되니 일종의 불구동사입니다. 이는 일본말(因る→ -に 因り, -에 인하여)을 옮겨다 ‘-로 인하여’로 쓰고 있는 말입니다. 영어(by+사물)를 번역하면서도 이를 가져다 쓰기도 합니다. 이는 토씨 ‘-로’가 ‘원인’이란 뜻구실을 하므로 아예 ‘인해·인하여’가 필요 없을 때가 많습니다. 대체로 명사 ‘탓·때문·덕분 …’들이나 ‘-로 말미암아’로 바꿔써야 할 말입니다. 개정된 민사소송법에는 ‘-로 인해’를 대체로 ‘-로 말미암아’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설 연휴로 인해 택배발송이 다소 지연될 듯싶습니다 → 설 연휴 탓에 물품 발송이 늦어질 듯합니다 △폭설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 폭설로 큰 피해를 본 △○○일보 기사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은 → ○○일보 기사로써 정신·물질적 손해를 본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로 인해 → ~ 카트리나와 리타로 말미암아 △최근 들어 유가와의 동행관계가 깨어진 듯하지만, 이것은 석유시장의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유가가 펀더멘털과 유리되어 급등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 최근 들어 기름값과의 동행관계가 깨어진 듯하지만, 이는 석유시장의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 △영국 당국은 작년에 발생한 런던 폭탄테러 용의자를 감시 카메라 테이프로 인해 평소보다 일찍 찾아 낼 수 있었다 → ~ 감시 카메라 테이프 덕분에 평소보다 ~ *뇌출혈이나 경색, 종양의 발생으로 인하여 안면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 ~ 종양 탓에 ~.

 

 

12.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

 

영어 비교법보다 우리 견줌법이 훨씬 합리적이고 수준이 높은데, 이를 우리말에 잘못 적용하여 재미없는 번역투를 만드는 때가 잦습니다.

우리말 ‘가장’은 견줌법에서 ‘맏높음’을 나타내는데, 영어로 치면 비교법에서 ‘최상급’에 해당하는 말을 ‘가장’으로만 굳혀서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잘한다, 가장 아름답다, 가장 작다, 가장 좋다 …” 들은 자연스럽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 가장 오래된 것들 중의 하나 …” 식은 말이 안 됩니다. ‘가장·제일·최고’가 여럿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로 -est/most+of(in) ~ 구문을 잘못 옮겨와 굳어진 번역문투로 봅니다. 대체로 우리말에서 영어투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를 표현하고자 할 때 쓸 만한 말은 ‘맏높음’에 해당하는 ‘가장·지극히·극히·최고·최대·제일 …’이 아니라 이에 버금가는 ‘아주·심히·매우·대단히·몹시·참·굉장히·사뭇·무척·퍽·자못 …’ 들에서 주체와 어울리는 말을 골라 쓰는 게 걸맞습니다.

예컨대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의 하나다”는, 자신이 있으면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도 가장 활기찬 곳이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동대문 시장은 생명체와 같아서 서울에서도 무척 활기찬 곳의 하나다” 정도로는 가다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13. 더 이상?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실제로는 많이 쓰이는 말에 ‘더 이상/ 더이상’입니다.‘덜 이하’란 말이 없듯이 ‘더 이상’이란 말도 성립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말을 강조하려다 생긴 군더더기로 봅니다.

‘더 이상’은 반드시 뒤에 ‘안 된다, 못한다, 아니다,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무리다, 어렵다 …’ 따위를 데리고 다니는데, 영어 비교법 문장에서 “no more ~, no longer ~, not ~ any more, not ~ any longer, not one more ~” 따위를 한결같이 ‘더 이상 ~ 아니다’ 식으로 뒤치고 가르친데서 온 문투로 보고 있습니다. 번역문이 아닌 일반 문장은 물론, 입말로까지 버릇해 쓰고 있는 어색한 말인데, 될수록 쓰지 맙시다.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더이상 ‘금빛 질주’는 없다 △더이상 연구원들을 농락하지 마십시오 △그런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던 교수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더이상 안통해! △더이상 감출게 없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더이상’들은 두루 ‘더는, 이제, 이젠, 더, 다시, 다시는, 또, 절대 …’들로 바꿔 쓰면 품위도 서고 자연스럽습니다.

 

 

14. ~에도 불구하고/

 

입말에서는 덜하지만, 연설문·신문글·논문 따위에서 군더더기를 넣어 호흡과 말의 자릿수를 늘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흔히 쓰는 ‘~ 간에·~ 불구하고’가 그렇습니다. ‘불구하다’는 독립적으로는 거의 쓰지 않고 ‘-에도 불구하고, -ㅁ에도 불구하고, -ㄴ데도 불구하고’로 쓰는데, ‘물구(勿拘)하고’도 비슷한 뜻으로 썼으나 이는 앞에 목적어를 둔 쓰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에도 불구하고, -데도 불구하고” 들이 부쩍 많이 쓰이게 된 데는 일본말 영향에다 영어 이은말·낱말들(In spite of, for all, though, although, despite of, disregarding, nomatter, for all that, with all, never the less, none the less)이 들어간 문장을 ‘-에도 불구하고’로 판박이로 가르치고 번역해 버릇한 까닭으로 보고 있습니다. 쓰지 않아도 될 말이므로 될수록 삼갑시다.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기업투자는 여전히 정체돼 있다 → 수출은 잘되지만 ~. △정부의 강력한 보급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품질사고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는 바이오디젤 업계가 협의회를 활성화할 계획이어서 → 정부는 보급확대 정책을 강력히 펴고 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 가 맞지않고, 자기중심적이다 → 그런데도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 △얼굴관리를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피부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먼저 화장품 자체의 문제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 얼굴 관리를 잘하는데도 피부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

 

 

15. -의 경우

 

요즘 “그 경우, -의 경우, -ㄴ(-은·-는) 경우, -ㄹ 경우” 들이 무척 많이 눈에 띕니다. “그 경우, 만일의 경우, 최악의 경우, 대개의 경우, 이런 경우, 비가 올 경우 …” 들이 그렇습니다.

이는 일본말 ‘-の 場合’을 ‘-의 경우’로 번역해 쓰면서 ‘-ㄴ 경우, -ㄹ 경우’ 들로 번져 쓰인 내력이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영어(case, in case, an occasion, time, circumstances, conditions, situation, an instance)를 마냥 ‘경우’나 ‘-의 경우’ 로 가르치고 익힌 까닭에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이 말을 굳혀 쓰고 있습니다.

이는 ‘-의 경우’가 아예 필요 없거나(만일의 경우, 대개의 경우 → 만일, 대개), 이음끝으로 쓰거나(비가 올 경우, 실패할 경우 → 비가 오면, 실패하면), 주격토 ‘은·는’으로 바꿔(전자의 경우 → 전자는·앞은) 쓰면 그나마 자연스럽습니다.

아니면 ‘경우’를 ‘때’로 바꿔 쓰는 것도 좋은 방식입니다.(최악의 경우, 저런 경우 → 최악일 때, 저런 때)

 

 

 

16. ~ 조처를 취하다?

 

가끔 “-에 대해 강경한 조처를 취하다, 의무화하는 조처를 취하다, 응분의 조처를 취하다, 제재조처를 취하다, 견제조처를 취하다”처럼 ‘조처를 취하다’란 말이 나옵니다. 이는 영어 익은말(take (strong) action, take measure …) 들을 직역한 말투로서 통상 “강력히 조처하다, 의무화하도록 하다, 마땅히 조처하다, 제재에 들어가다, 견제하다” 정도로도 충분할 터입니다. 왜냐하면 ‘조처’에 이미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여 처리하다’란 뜻이 들어있고, ‘취(取)하다’ 역시 ‘어떤 행동을 하다, 대책을 쓰다’는 뜻이니 서술식 한자말이 겹치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징계조처를 가하다, 제재조처를 가하다 …’ 따위도 있는데, 그냥 ‘징계하다, 제재하다’나 심심하면 다른 자연스런 부사어, 서술어를 더하여 쓸 수 있을 터입니다. 이런 말투들은 특히 행정문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그대로 인용해 쓰다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행정문투에 보도문투가 이끌려 가는 보기입니다.

 

 

17. ‘가능·가성능 ~’붙이

 

‘크다/작다 많다/적다 높다/낮다’는 규모·분량·부피·비율에 따라 적절한 말을 골라 씁니다. 그런데 특히 ‘성질’을 나타내는 한자말 ‘성’(性)이 들어가는 말, 예컨대 ‘가능성·실현성’ 같은 말이 나오면 ‘많은’ 것이나 ‘높은’ 것을 가리지 않고 ‘크다’를 쓰는 이가 많습니다. 앞말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가능성’ 뒤에는 ‘많다·높다/적다·낮다’가 어울립니다.

‘가능하다’로 비롯된 쓰임에서 탈을 만드는 때가 또 있습니다.

그냥 ‘가겠다’면 될 것을 “가능한 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조건을 달아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를 “가능한 가겠다”처럼 쓰는 것인데, ‘가능한’은 관형어여서 뒤에 반드시 명사가 와야 합니다. 아니면 한정하는 부사 ‘한’(限)을 제대로 갖추어 써야 합니다.

그보다 제일 좋은 방식은 ‘가능한 한’처럼 까다롭게 쓰다 탈을 만들지 말고 “되도록, 될수록, 되도록이면, 될수록이면, 가능하면 …” 들로 바꿔쓰는 것입니다.

‘가능·가능성’을 지나치게 많이 쓰게 된 데는 일본말투나 번역투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영어(as ~as can, possible, possiblity, practicable, feasible, chance, likelihood …) 들이 들어간 말을 기계적으로 ‘가능한 한, 가능한, 가능성’으로 뒤쳐 써버릇한 결과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8.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가능성’을 즐겨쓰지만 ‘탈’을 많이 만든다는 점은 그것이 끌고다니는 말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안을 실컷 단정하고 한쪽으로 몰고나서 “~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는다” 따위로 쓰는 때가 많습니다.

이는 남의 말을 따올 때나 기자 스스로 분석할 때 두루 나옵니다. 얄궂은 말맛이 있는데다 영어(rule out the possbility, can’t exclude the possibility …) 또는 그 번역문투에 익어서 버릇된 말입니다. 그냥 “가능성도 있다, ~ 할 수 있다”로 쓰거나, 심에 차지 않으면 “ ~ 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 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도로는 상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또 이런 표현은 자칫 비겁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19. 엔시엔디/긍정도 부정도 아니하다(NCND)

 

흔히 “긍정도 부정도 아니하다, 시인도 부인도 아니하다, 확인도 부인도 아니하다’란 말을 씁니다. 두루 알다시피 이 역시 영어 익은말(neither confirm nor deny, refused to deny or confirm, declined ether to affirm or to deny)을 뒤쳐 써버릇한 문투입니다. 정직하게 말하기 곤란할 때, 투명하지 못할 때를 상정하여 나온 표현이긴 하나 즐겨쓸 말은 아닐 것입니다. “확인해주지 않았다, 언급이 없었다, 말이 없었다 …” 식으로 간략하게 쓸 수도 있고, ‘기다 아니다 말이 없다’도 대안이 될 수 있을 터입니다.

“기다 아니다 말이 없다”면 “그렇다 그렇지 않다 ~,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다 ~, 있다 없다 ~, 맞다 틀리다 ~” 정도까지는 담을 수 있는 말입니다.

*CIA의 고전적인 답변 방식으로 내가 대답하자면, 그런 시설이 존재하는지에 관해선 긍정도 부정도 않겠다 → ~ 그런 시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 줄 수는 없다.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선) 미국도 몇십년 동안 엔시엔디(NCND)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우리의 기본 입장도 엔시엔디다. → 미국도 몇 십년을 ‘모른다’(NCND)는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우리의 기본 정책도 그렇다.

*홍 의원은 “그건 이야기 할 수 없다”며 당권출마에 대한 말을 회피하면서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당권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한 모습이다 → ~ 당권 도전에 대한 말을 피하면서도 기다 아니다 확인을 하지 않고 있어 ~.

*지마켓은 상장 추진을 두고 “노 코멘트”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증권가에서는 하반기 상장 추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 지마켓 쪽은 하반기 상장 문제를 두고 ‘할말이 없다’며 확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라크 납치범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이라크 납치범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을 두고도 그는 기다 아니다 언급이 없었다.

 

 

20. 고려에 넣다?

 

흔히 “계산에 넣다, 계산에 넣지 않다”란 말을 씁니다.

이것이 번져 “고려에 넣다, 고려에 넣지 않다”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는 영어 익은말(take account of/ take … into account/ taking into … account/ leave out of account /leave out of considertion)을 뒤친 표현입니다.

한자말 ‘산입하다’(算入-)를 ‘셈쳐 넣다, 셈해 넣다, 셈에 넣다’로 다듬어 쓰는데, 실제로는 ‘계산에 넣다’로 많이 씁니다. 셈이란 어차피 아울러 여럿을 헤이리는 행위이므로 그냥 “아우르다, 헤아리다’ 정도로 끝내서 모자랄 게 없습니다.

“고려에 넣다, 고려에 넣지 않다”란 ‘계산에 넣다’를 다시 뒤친 표현으로서, 무척 부자연스럽습니다. 표현도 저급한데다 말의 자릿수만 늘릴 뿐인데, 이는 “고려하다, 고려하지 않다”가 낫고, 이 역시 ‘헤아리다·생각하다’로 바꿔 써야 간명하고 쉬워집니다.

*환경적,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에 넣지 않고 오로지 ‘돈’만을 가지고 따질 경우 → 환경이나 현실적 요소들을 헤아리지 않고 ‘돈’으로만 따진다면.

*해외 용병을 수입하는 경우,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 외국선수를 데려올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같은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에 넣어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 이런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고려에 넣어 입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을 헤아려서 태도를 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21. 상향(하향)조정하다

 

수치나 등급을 올리거나 낮출 때 흔히 ‘상향조정하다·하향조정하다’란 말을 씁니다. 이 말은 ‘부사+명사+하다’ 구조로 되어 읽기에 몹시 불편을 줍니다. 그런데도 ‘상향’이 부사 구실을 못하는 까닭에 ‘상향 조정하다’로 띄어도 말이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조합된 한자말이 요즘 부쩍 많이 쓰입니다.

이는 영어들(revise upward/ revise downward, upward adjustment/upgrade, downward adjustment/downgrade, the upward course/ the downward course)을 한자말로 뒤친 데서 버릇된 것으로 보는데, 말이 무겁고 잣수도 많아 불편합니다.

‘높이다·올리다, 내리다·낮추다, 오르다·올리다, 내리다·떨어지다 …들이나, 나아가 올려잡다·높여잡다·내려잡다·낮춰잡다, 높아지다·올라가다, 내려가다·떨어지다·낮아지다 …들에서 골라잡아 쓰면 간명하고 쉬워집니다.

△ 한국신용평가는 1일 현대건설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기업어음 등급을 ‘A3+’에서 ‘A2-’로 각각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 ~로 올렸다고 발표했다.

△ 건설교통부는 31일 올해 전국 2548만여 필지에 대한 개별공시지가를 산정, 전국 평균으로 작년보다 18.56%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개별공시지가가 대폭 상향조정됨에 따라 토지소유자 보유세 부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 ~ 전국 땅 2548만여 필지에 개별 공시지가를 매겼더니, 지난해보다 전국 평균 18.5% 높아졌다고 밝혔다. 공시지가가 큰 폭으로 오름에 따라 땅임자들의 보유세 부담도 그만큼 늘어나게 됐다.

△ 상향 평준화 → 질높은 평준화 △하향 평준화 → 질낮은 평준화 △하향 안정세 → 내림세.

△ 퇴임 후 구체적인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보다는 국가를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지를 주로 고민할 것 같다 → 퇴임 뒤 구체적인 정치 현안을 언급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를 만들지를 주로 고민할 것 같다.

 

22. -ㄴ 가운데/

 

보통 말 첫머리에서, 어떤 상황이나 일을 끌어대면서 관련된 사건을 덧붙여 전해주는 글말체 문장을 이따금 봅니다. 풀이씨 줄기에 매김꼴 ‘ㄴ’ 또는 ‘는’을 붙여 매김말로 만들고 ‘가운데’를 대어 쓰는 형식입니다.

이런 형식은 같은 시간대와 공간에서 동시에 또는 서로 관련되어 벌어지는 사건을 아우르고자 할 때 쓰는데, 별로 권장할 게 못 됩니다. 배경 설명이 뒤에 다시 나와 겹칠 때가 잦으며, 사안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려는 뜻도 문장이 너절너덜해져 별 성금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손질만 잘하면 ‘가운데’ 앞 부분은 잘라내도 피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 곧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중’(中)을 뒤친 말이기도 한데, 사실 우리말에서는 이 ‘중’보다는 ‘끝’을 더 적절히 써먹습니다. “연기 끝에 실수를 저질러 같은 장면을 여러번 찍어야 했다” “책 읽던 끝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16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병원에 입원했다”처럼 말입니다.

이는 또 ‘하고 있는 가운데, 하고 있는 중’처럼 써서 과정 또는 진행 상태를 겹으로 늘어뜨리기도 합니다. ‘과정’의 뜻으로 쓰이는 ‘가운데’에 해당하는 위치말로는 ‘중’ 말고도 ‘사이·참·동안·겨를·속 … 들이 있습니다.

‘-ㄴ/-는 중, -ㄴ/-는 가운데’가 쓸데없이 많이 쓰이게 된 데는 영어(as, in the course/middle of, while, at the same time …)나 일본말(なが, しているうちに, しながら)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말을 늘어뜨리고 흐릿하게 이어붙이는 품새에서 그 정체를 헤아리게 합니다.

△ 브라질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룰라 다 시루바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브라질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룰라 다 시루바 대통령이 ~.

△ 중국의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기록 행진을 하는 가운데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위안화 추가 절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 중국 인민은행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

△ 본격적인 한여름 더위가 시작된 가운데 2일 서울 한강둔치 잠실지구에서 ‘2006 서울국제 여자 비치발리볼대회’가 열려 한강을 찾은 많은 시민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 2일 서울 한강둔치 잠실지구에서 ‘2006 서울 국제 여자 비치발리볼 대회’가 열려 더위를 피해 한강을 찾은 시민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 바쁘신 가운데서도,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서도, 피곤한 가운데서도 → 바쁘신데도, 어려움이 많은데도, 피곤한데도.

△ 포항건설노조 3차 상경투쟁단의 투쟁이 2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전국의 39개 인권단체로 이뤄진 인권단체 연석회의가 경찰청 앞에서 하중근 조합원 사망에 대한 책임을 경찰에 물으며 집회와 시위에 대한 완전한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 포항건설노조 3차 상경 투쟁단의 투쟁이 이틀째로 접어든 9일 전국의 ~.

△ 올 고교야구 판도는 서울세와 호남세가 양분하는 가운데 영남세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 ~ 서울세와 호남세가 두드러지고 영남세가 이를 추격하는 양상이다.

△ 주가가 조정을 겪는 가운데 각 증권사가 투자위험을 대폭 낮춘 파생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 주가가 조정을 겪으면서 각 증권사들이 투자위험을 대폭 낮춘 파생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3. 유력하게 검토하다?

 

“물망에 오르다, 하마평이 무성하다, 낙점하다, 유력하게 거론되다 …”

관직 인사 때 흔히 나오는 말들입니다. 여기서 ‘하마평’(下馬評)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라고 합니다. 노둣돌 곧 ‘하마석’은 있어도 ‘하마평’이라면 어울리지 않는 조어인 까닭에 쓰기를 삼가자고 합니다. 대신 물망(物望)을 많이 쓰는데, 대상자로 거론되는 이들을 물망에 올랐다고 합니다. 아무리 제도·절차가 달라지고 명경알 같은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나 골목공론·쑥덕공론은 따라다니기 마련이지요.

인사뿐만 아니라 정책·방안을 결정할 때도 ‘거론되다·검토되다’ 식으로 말하는데, 이는 책임을 비켜가려는 말법입니다.

흔히 물망에 오른 이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을 두고 “유력하게 거론되다, 유력하게 검토하다”라고 쓰는데, 이는 “유력한 대상자로 거론된다, 유력한 후보(방안)로 검토한다”는 뜻으로 쓰는 듯하나 의미상 호응이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이 형식상 ‘부사어+서술어’ 짜임을 갖추기는 했지만 실제에서 모순이 벌어진다는 말이지요. 곧 ‘힘있게, 힘차게, 세게’ 거론·검토한다는 말인데, 아무리 거론하고 검토하는 일 자체가 힘차고 힘있어 봤자 시끄럽기만 할 뿐 당사자가 유력하고 유력하지 않고와는 상관이 없는 짜임입니다.

자릿수를 늘리지 않으려면 그냥 “긍정적으로 거론하다, 적극적으로 검토하다” 정도로 바꿔 쓰는 게 낫다. 달리는 “유력한 방안(인물)으로 거론(검토)한다”도 말이 됩니다.

‘누구를(무엇을) 적극적으로·긍정적으로·신중하게’ 검토해야 객체를 고려한 느낌을 아우르게 됩니다. 이는 ‘유력하다’가 서술어·관형어 구실에 어울리지 부사어(유력하게)로 써먹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지요.

또한 관형어 ‘유력한’과 ‘검토·거론’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검토·거론이란 조심스럽거나 적극적·긍정적으로 하는 행위 곧 움직임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 건교부는 시공사 선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총회 때 재적 조합원 과반수 이상이 직접 참석해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결의한 것만 인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 ~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 장관은 1년반 가량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으며 국정현안 전반을 잘 파악하고 있고, 후반기 역점 정책들을 뒷받침하게 하고자 정책실장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 국정현안 전반을 꿰뚫고 있는데다 후반기 역점 정책들을 뒤받침하는 데 적임자로 보고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위원장에는 재선급인 ○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 ○○위원장에는 재선급인 ○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 대검 중수부는 24일 소환되는 ○○○ ○○그룹 회장을 구속 수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구속수사하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 학연·지연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한 변호사의 이름도 유력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 학연·지연으로 관계가 깊은 한 변호사도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 유동적인 남북상황에 따라 단계적 확대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단계다 → 남북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단계적 확대안을 검토하는 단계다.

△ 그동안 유력하게 검토하던 배양과정을 다시 시연하는 방안도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 그동안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

 

 

24. 반면?/

 

글을 이어갈 때 내용을 바꾸거나 숨을 조절하고 강조하기도 하는 대표적인 말에 문장부사가 있다. 주로 문장 첫머리에서 쓰이던 ‘한편·반면·물론 …’ 들이 요즘 들어 문장 가운데서 부쩍 많이 쓰입니다.

‘한편’(일방·일변)은 한편으로·한편으로는, ‘반면’은 반면에·반면으로 …처럼 토를 달아 쓰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홀로 쓰일 때가 많고, 쉼표(,)를 찍어 토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반면’은 내용을 맞세울 때, ‘한편’은 말을 덧붙일 때, ‘물론’은 점층으로 연결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두루 관형어를 앞에 두고 말마디를 이어가는데, ‘물론’은 토씨 ‘은·는’과 어울릴 때도 적잖습니다.

‘반면’은 앞뒤 풀이말이 같은 표지로서 생략되기도 하며, 공통표지가 생략될 때는 상반된 서술어가 오거나 비교 주체를 달리하여 뜻을 맞세우게 됩니다.

‘한편’은 앞뒤에 붙는 풀이말이 자유롭다. ‘물론’은 임자말을 덧보태거나 말마디를 이끄는 구실을 하며, 뒤에 오는 풀이말에 이끌립니다.

이처럼 문장 가운데 쓰는 방식은 예전에는 좀체 보이지 않던 쓰임으로서, 산문 문장이 발달하고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생긴 표현이자 짜임새입니다.

여기서 ‘반면’은 영어(in addition to, while, but, besides, in a way, in the mean time, on the other hand …) 번역투 영향을 많이 받은 문투로 봅니다. 그보다는 ‘서술어+는데/은데’ 등 토박이말 씨끝을 활용해 쓰는 게 간략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반면’과 관련된 말로, 중국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반동’들을 두고 “일부 중죄인을 빼고는 체포·숙청하지 말고, 제자리에 두고 고립시킨 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는 말에서 ‘반면교사·반면교원’이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이 역시 ‘거울’이나 ‘반성거리’ 정도로 넘길 말입니다.

△ 대기업에서는 해당기업 핵심역량 보유형 인재와 직무분야 전문가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서는 조직관리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7.1%로 가장 높았다 → ~ 높은데, ~ 높았다.

△ 실제로 가족 수는 점점 줄어든 반면 집은 점점 커졌다 → 실제로 가족 수는 줄어드는데, 집은 점점 커졌다.

△ 시보레는 매년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 반면, 장기 분납이 가능했다 → 시보레는 해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는데다 장기분납을 할 수 있었다.

△ 노후대책 수단으로 한국 노인은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일본 노인은 주식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았다 → ~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고, ~ 주식투자를 하는 비율이 높았다.

△ 여타 가수들이 저음을 불안하게 내는 반면, 환희는 안정적으로 저음역을 구사하는 것도 이런 장점 때문이다 → ~ 불안하게 내는데, 환희는 안정적으로 저음역을 구사하는 것도 ~.

△ 그는 제자 육성에 나서는 한편, 현재는 마술공연도 즐기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 그는 제자도 가르치면서 요즘은 마술공연을 즐기며 식사도 하는 레스토랑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한다.

△ 이들 제품의 특징은 비용 절감은 물론 기업의 보안 강화라는 토끼까지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 이 제품들의 특징은 비용을 줄이면서 기업의 보안은 강화해준다는 점이다.

 

 

25. 알려졌다?

 

이 말은 본디 ‘이름이 유명해지다’ 정도로 쓰던 말이었으나 요즘은 ‘다른 사람이 알게 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말을 전할 때 전통적인 풀이말로 ‘하더라’가 있고, ‘한대, 하데, 합디다, 하더이다 …’ 들도 있습니다. 한때 유행하던 ‘카더라’는 ‘-고+하더라’로 분석되는 말이지만 사투리로 친다. 이에는 흔히 “아니면 말고” 또는 ‘아니면 그만’이 덧붙는데, 최근에도 면책특권에 기댄 국회의원의 발언, 알권리에 기댄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를 들출 때 본보기로 삼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ㄴ 것으로 알려졌다”처럼 쓰이는 말에는 ‘밝혀졌다, 드러났다, 확인됐다, 전해졌다 …’들도 있고, “-고 밝혔다”처럼 쓰이는 말에도 ‘말했다, 지시했다, 명령했다, 확인했다, 판결했다, 보도했다 … 들이 있다. 대체로 사실이나 소문을 인용하는 말에 써서 월의 자릿수를 늘릴 뿐입니다.

널리 알리는 글(보도문)은 사건 또는 확인된 사실을 정확·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건 현장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관계자)이 전해주는 말로 기사를 쓰게 될 때도 잦은데, 이런 때 흔히 쓰는 말이 ‘알려졌다’붙이입니다.

한 다리 건넌 정보로서, 정치 뒷얘기, 국제관계 기사들에서 흔히 보입니다.

‘알려졌다’보다 분명함을 더하는 말로 ‘밝혀졌다, 드러났다, 확인됐다 …’ 들이 있다. ‘알려졌다, 전해졌다’붙이는 정보 출처를 대지 않고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풀이말이어서 편법으로 쓸 때가 잦습니다. 자동사여서 사물을 바로 주어로 삼을 때도 잦습니다. 이런 연유로 무책임, 정직하지 못함의 표상처럼 된 말이다. 그러나 ‘알려졌다’의 모든 쓰임을 싸잡아 몰아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처럼 전에는 잘 쓰지 않던 말이 흔히 쓰이게 된 연유는 뭡니까? 책임이나 부담을 덜고자 하는 표현들이 관행적으로 번지게 된 결과입니다. 이런 관행의 배경에는 번역투 또는 영어투(be/get/become known to, come to ~ knowledge, become generally known …)가 도사립니다.

‘확인’을 거치면 월성분의 자릿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 대장균의 유전자 수는 4288, 염기쌍 수는 464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 염기쌍 수는 464만이다.

△ 상시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외주용역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을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 ~ 대책이 제시됐다.

△ 현대아산은 북측으로부터 1천만평 규모의 개성공단 개발 독점 사업권을 받은 바 있어 이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1천만평 규모의 개성공단 개발 사업권을 받은 현대아산으로서는 당연히 반발한다.

△ 노 대통령은 24일 여당 재선의원들과의 만찬에서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현안과 관련한 속내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 ~ 털어놨다고 한다.

△ 실제 항우연은 지난 5월12일 나사본부를 방문해 한국의 ISS 참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주저울 개발은 이미 항우연이 선행 연구를 수행한바 있어 시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 의견을 교환했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이번 경우에도 엔진에 이상이 생기자 조종사가 활공 비행을 하다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기 조종사는 추락 직전 무전교신을 통해 ` 엔진에 이상이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 분석했다. ~ 것으로 드러났다.

△ 이번에 발주된 VLCC는 31만dwt급 탱커로 공동구조규칙의 적용을 받아 척당 선가가 1억 27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번에 발주된 초대형기름배(VLCC)는 31만dwt급으로 공동구조 규칙 적용을 받아 척당 값이 1억2700만달러에 이른다.

 

 

26. 접촉하다?/

 

사람 사이 만남을 두고 ‘접촉’ 또는 ‘접촉하다’란 말을 씁니다. 본디 신체 접촉 따위 동물이나 사물이 서로 닿거나 마찰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사람 사이 관계나 만남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니면서 만남·사귐·회담·교섭·관계·대화 같은 말을 제치고 이 말이 판을 치게 된 배경은 뭐겠습니까?

교통·통신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무척 편하고 빨라졌지만 말버릇 경계들이 함께 허물어지면서 말글 쓰임도 어긋나는 현상이 뚜렷해진 까닭입니다. 접촉·접속 … 들도 성분상 탈바꿈 상태에 놓인 듯합니다.

한자말로 촉접(觸接)은 적의 동태를 살피는 일을 가르켰고, 접선(接線), 접우(接遇), 접반(接伴), 접대(接待) …처럼 사람을 맞는 일에 쓰던 ‘접’자 돌림들이 있긴 했으나 접선·접대를 빼고는 죽은 말이다. ‘접선’은 수학에서나 염알이꾼말로 쓰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들먹이는 ‘접촉’은 여전히 상스럽습니다.

“접촉이 잦다, 접촉을 끊다, 접촉을 삼가다, 접촉을 강화하다, 접촉을 가지다, 접촉을 미루다, 접촉을 앞당기다 …”들은 “자주 만나다, 발을 끊다, 만남을 삼가다, 관계를 돈독히하다, 만나다, 만남을 미루다, 만남을 앞당기다” 정도로 순화해 쓸 말입니다. ‘접촉’이 단독으로 만남·대화·통화·회합·의사 타진 … 들의 대용으로 쓰는 일은 말을 부려쓰는 이가 지닐 태도가 아닌 까닭입니다.

‘실무접촉, 예비접촉, 공식접촉, 물밑접촉’의 접촉 역시 만남·교섭으로 바꿀 일인데, 굳이 써서 협상이 잘 된다면 못 쓸 것도 없겠지요.

‘접촉·접촉하다’는 말이 많이 쓰이고 유행하게 된 배경에 영어(contact, touch, osculation/ make contact, come into contact with, come into touch with …)가 있는데, 적절하지 못한 번역도 한몫을 했을 터입니다.

남북 사이에 그런 ‘접촉’이라도 많았으면 좋겠으나 ‘진정한 만남’이 잦아지는 것만은 못 할 터입니다.

△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치인’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접촉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 ~ ‘정치인’과 자주 어울린다 점이다. ~ 잦다고 한다.

△ 오는 16일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갖자. 모두 4명이 실무접촉에 참석할 것이다. → 오는 16일 금강산에서 실무모임을 열자. 우리는 네 사람이 가가겠다.

△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영화나 노래도 접촉하다 보니까 한국어에 대한 흥미도 많아졌다 → ~ 한국영화나 노래를 자주 대하다 보니 한국말에 재미가 붙었다.

△ 중국 경제정책의 거물을 접촉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천연가스 문제를 논의한다. → ~ 거물을 만나는가 하면 ~.

△ 하지만 이미 유럽연합은 연립정부가 구성되면 새 정부와 접촉하고 원조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부분적으로 원조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 새 정부와 대화도 하고 원조도 재개하겠다는 뜻을 ~.

△ 현재 일본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이 퇴직 전 직무와 관계 깊은 기업에 2년간 갈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퇴직 공무원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의 직원들과 접촉하는 것을 막는 법률은 없습니다. → ~ 부처의 직원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막는 법률은 없습니다.

 

 

27. 문제의 심각성?

 

‘큰일’이라면 위급하거나 일, 중대한 일, 예삿일이 아닌 일, 다루기 어려운 일, 엉뚱한 일 따위를 일컫는다. 대사(大事) 대례(大禮)란 뜻도 있긴 합니다.

문제가 중대하고 큰일임을 따로 떼어 말할 때 ‘사태의 심각성, 문제의 심각성, 문제의 시급성 …’이란 말을 씁니다. 주로 사회·정치·정책, 상황·상태가 보통 수준이 아님을 강조하는 효과를 줍니다.

‘문제의 ○○○’이란 짜임에서 동그라미 자리에는 모든 명사가 올 수 있는데, 일테면 문제의 효과, 문제의 사람, 문제의 책자, 문제의 발언, 문제의 소문, 문제의 기사, 문제의 병 …’처럼 뒤엣말에 ‘문제’란 모자를 씌우거나 낙인하여 옭아매는 재미가 있어 즐겨 쓰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짜임은 우리말에서 익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자연스런 짜임도 아닌 것으로 봅니다.

우선 ‘문제의 심각성’은 ‘문제가 심각하다’를 이은말 형식의 체언으로 바꾼 말입니다. 여기서 ‘-의’는 영어에 흔한 전치사(=of)를 뒤친 것이면서, 일본말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토 ‘의’(の)를 본받아 버릇된 것임을 짚을 수 있습니다.

‘심각성’도 그런데, 중대함·중대성, 긴박함·위험성·위중함, 심각하다·중차대하다·긴박하다·문제가 많다 … 들로 쓰일 말들도 마냥 ‘심각성’으로 뒤쳐 이 말을 넣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양으로 글을 쓰는 판이 되었습니다.

‘문제’란 말 자체에 어려움·심각함·다급함 들이 담겼는데 여기에 ‘심각성’까지 덧붙이면 글의 미덕인 정확하고 간결함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런 식의 영어 표현들(the seriousness of problem, the seriousness of the sistuation, list of problems …)을 그대로 쓰다간 우리말을 비틀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 북의 발표 직후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즉시 고위대책회의를 여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 북한에서 발표한 직후 정부는 사태가 중대하다고 보고 즉시 ~.

△ 그런데도 은행 보험 캐피털 등 금융회사를 통한 신규 대출이 여전히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 신규 대출이 여전히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 가스 누출 예방 시스템은커녕 사고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처할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제의 지하상가는 ~ → ~ 대처할 시스템이 전혀 없었던 게 문제다. 이 지하 상가는 ~.

△ 우리 사회의 중앙집중화 현상은 수직화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우리 사회의 중앙 집중화는 수직화 형태를 띤다는 점이 큰 문제다.

△ 글의 처음 부분에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이유와 문제의 심각성을 쓰고 글의 가운데 부분에는 원인에 따른 해결 방안을 쓰고, 글의 끝 부분에는 강조하는 말 또는 정리하는 말을 쓰면 되겠어요 → ~ 이유를 쓰고 글의 가운데 부분에는 ~.

△ 최근에는 이런 환경 오염이 지구 곳곳에서 기상 이변을 일으키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직접적인 결과로 노출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한층 되새기게 한다. → ~ 노출되고 있어 그 재앙을 실감하게 한다.

 

 

28. 전적으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툴 때면 먼저 그런 것을 잘 짚어 경고·위협을 합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함인데, 이 위협·경고는 ‘붙어 보자, 싸워 보자, 겨뤄 보자’는 얘기를 하기 전에 명분을 쌓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라 사이(외교)에 쓰는 말도 그렇습니다. 문명·야만,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아이들이 싸울 때 하는 말 수준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너 때문이다, 모두 네 책임이다, 네가 못살게 구니까 때렸다, 한번만 더 그래 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 두고 보자, 너하고는 반대다, 잘 지내 보자 …”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요즘 자주 듣는 “그 일로 생기는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그쪽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다” “모든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따위도 눈귀에 익은 말인데, 어떤 행동으로 생길 결과·책임까지 죄다 행위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말버릇입니다.

여기서 꼬집을 건 ‘전적(全的)으로’란 말이다. 이를 바꿔쓸 말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두, 모든, 전혀, 전부, 싹다, 죄다, 모조리, 오로지, 깡그리, 톡톡이, 온통, 모든 …”

영어 쪽(altogether, entirely, totally, wholly, utterly, fully …)도 그 환경이나 문맥에 따라 적절한 말을 골라 쓰겠지만 우리는 ‘전적(전적)으로/ 전적인’처럼 판박이로 쓰고 뒤칩니다. 어른들이 말 가려쓰는 의식이 희미해졌다는 얘기로서,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쓰는 말이 때가 좀더 묻었을 뿐임을 깨닫습니다.

△ 계 운영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계주에게 있기 때문에 계원들간에는 서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 계를 운용하는 모든 책임은 계주한테 있으므로 계원들 사이에는 서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다른 나라 또는 비국가적 실체들에게 이전한다면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그러한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할 것이다 → ~, 우리는 그런 행동으로 말미암은 결과들을 모두 책임지도록 할 것이다.

△ 이번 합의는 전적으로 무효화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 이번 합의는 무효화해야 마땅하다.

△ 작년 1년 동안 소란을 피워 국민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전적으로 책임은 나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1년 동안 소란을 피워 죄송하게 생각한다. 책임은 모두 저한테 있다.

△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떨지는 오로지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 시위와 진압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게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라는 건 아니다 → 시위와 진압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게 죄다 정부 책임이라는 건 아니다.

 

 

29. -ㄹ 수/

 

‘일을 할 힘, 가능성, 수단·방법’을 뜻하는 말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추측·예정·의지·가능성 …’을 담고서 미래시제를 아우르는 매김꼴 ‘-ㄹ’을 만나 쓰일 때가 많은데, 주로 ‘있다·없다’와 어울리는 ‘-ㄹ 수’는 의지·추측를 담아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쓸모 있는 표현입니다. 일 따라 쓰임 따라 말맛을 달리하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허투루 쓰일 때도 잦습니다. 버릇처럼 쓰다보니 다른 적절한 말을 덜 쓰게 하고, 새로운 표현을 막는 구실도 합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란다면 이는 달리 표현한 말일 수 있습니다. “잘 하도록 도와주는 일”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미세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표현의 다양성에서는 한 손을 들어 줄 만도 합니다.

허투루 쓰인다는 말은 뭡니까?

예컨대 “이용할 수 있는 방법,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빠르게 갈 수 있는 길, 가늠할 수 있는 방법, 돈을 벌 수 있는 요령, 이길 수 있는 힘”과 “이용하는 ~, 쉽게 접근하는 ~, 빨리 가는 ~, 가늠하는 ~, 이기는 ~, 돈을 버는 ~”을 견줘봅시다.

여기서 ‘-ㄹ 수 있는’은 ‘하는·-는’ 또는 ‘-ㄹ’로 써야 걸맞을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대체로 ‘-ㄹ 수’ 쪽이 표현(말수·뜻) 중복에다 에루름(완곡)이 지나칩니다. 특히 ‘있다·없다’와 어울릴 때는 ‘판단’을 전제로 하는데, 판단이란 정확하고 솔직해야 미덕입니다. 지나치게 에두르거나 모호해서는 말이 서기 어렵습니다.

‘ㄹ 수’, ‘가능’ 따위가 많이 쓰이게 된 데는 바깥말 영향이 적잖다고 봅니다. 특히 영어(can/-able·-ible 붙이 기타) 영향이 직접적입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 있어서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다.

△ 이번 테마북에서는 윈도우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나아가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을 정리해 보았다 → ~ 윈도스 개념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책들을 ~.

△ 항공안전본부는 항공사·공항공사 등과 협의해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 ~ 최소화할 방안을 찾을 방침이다.

△ 분단국이라는 현실을 우리의 저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변환시킬 수는 없는 것인가? → ~ 극대화하는 힘으로 바꿀 수는 없는가?

△ 외연을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로 넓혀보면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아니라 도덕적 힘의 우위를 추구하는 중급 국가를 지지할 수 있는 우호세력은 폭넓게 존재한다 → ~ 중급 국가를 지지할 우호세력은 폭넓게 존재한다.

△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업체를 골라 발품을 팔아가며 가격을 비교해보는 수밖에 없다 → 믿고 거래할 업체를 골라 발품을 팔아가며 가격을 견줘보는 수밖에 없다.

△ 다국적 기업 제품들은 전세계 표준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주려 할 때 우리는 우리 식에 맞춰 적시적소에 가장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한다 → ~ 긁어줄 묘안을 ~.

△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으며, 자신이 대단히 독특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해줍니다 → 자신이 바라는 건 뭐든 이루게 하고, 자신이 대단히 독특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30.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말을 구분하면서 말차례를 들춥니다.

같은 말이라도 차례를 바꿔 쓸 수 있고, 강조하고자 하거나 운율을 고려하여 앞뒤 말을 가끔 바꿔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시나 연극 따위 대사에서 보일 뿐 실용문에서는 잘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요즘 우리말에서 말차례를 바꿔 쓰는 경우가 두엇 있는데. 전에 없던 버릇입니다. 곧 숫자를 주체 앞에 두거나 문장부사를 말 중간에 두거나 무엇을 싸잡아서 말하거나 할 때 보입니다.

1.호주머니 안에 5개의 동전이 만져졌다.

2.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선거 당선을 목표로 하기에 당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 세력에 민감하다.

3.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태가 심각하다며 버블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썼다면 칭찬하고 넘어갈 만한 말들입니다. 좀 어색하긴 하나 어법이나 뜻 전달에서 큰 지장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디 우리말 차례에서 벗어난 말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대체로 “호주머니에 동전 다섯 개가 만져졌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당선을 목표로 하기에 선거에 영향을 끼칠 만한 특정 세력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태가 심각하다며 거품붕괴를 경고한다” 정도로 해야 자연스러우니까요.

싸잡아서 하는 말투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은 영어(most of ~, the bulk ~, the major ~, greater ~ …) 말차례를 그대로 따온 것이며, 숫자말을 앞세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서 말의 구슬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를 견주면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을 이끄는 부사를 말 가운데 두는 것도 삼가야 할 버릇입니다.

△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짧은 말을 제일로 친다 → 정치인들은 대체로 짧은 말을 즐겨 쓴다.

△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상속세 폐지를 반대할 정도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진짜 부자들도 상당수 있다 → 재산을 대부분 사회에 되돌리며 상속세 폐지를 ~.

△ 하지만 대부분의 통화 기록이 삭제된 상태여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하지만 통화기록이 대부분 삭제된 상태여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러나 일단은 사태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했다 →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일단은 사태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미국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슬쩍 받아주는 척하면서 의약품에 대한 독점적 공급을 보장하는 특허기간 연장을 즐겁게 수용할 것이다 → 미국은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

△ 조사대상 520개 사업장 가운데 여성 관리직이 한 명도 없는 곳이 28%나 되고 임원급 여성이 없는 곳은 76%에 이르렀다. → 조사대상 사업장 520곳 가운데 ~.

△ 계속된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로 인한 25개교 1700여명이 직접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 잇따른 식중독 사고로 전국 학교 25곳 1700여 학생이 직접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마. 마무리

 

앞에 들춘 몇몇 보기들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이들마저 앞으로 더 굳어져 손댈 수가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외래·번역문투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고쳐야 할 범위를 확정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말이란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더라도 쓰다보면 익어서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굳어진 정도가 별스런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로서 문장을 획일·상투화하고, 있던 말을 쓰지 않게 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는 말 가난입니다. 여기서 이미 문제로 삼았던 것, 문제 삼을 만한 것들을 좀더 추려내어 가다듬을 필요가 절실해집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맞는 글의 본보기나 틀, 바탕을 확정해 보는 성과를 낸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한편으로, 그런 일이 쓸모없는 일이라거나 말이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해가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말글 현실을 내버려두고 스스로 정화하거나 변해가도록 지켜보는 게 편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무리 다잡아도 외래·번역문투가 늘어나는 추세는 더해질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 결과를 누가 보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말의 생명력이 질기다 해도 마냥 맷집이 튼튼하지는 않을 터입니다.

언론 보도글에서는 가지런히 간략하게 정확하게 쉽게 바르고 곱게 하기를 일삼습니다. 그 대상에 외래·번역문투가 짐스럽게 등장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우선 일선 언론 종사자들이 가다듬을 일이지만, 넓게는 학교사회, 교육자, 언어정책 입안·시행자를 비롯한 우리말글을 쓰는 사람 두루 이 문제와 상관이 깊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소임을 구구이 덧붙여 짚는 일은 줄입니다.

 

끝으로 얻어쓰기, 빌려쓰기, 베껴쓰기, 뒤쳐쓰기에서 물이 덜든 옛글 읽기, 최근에 나온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글들 찾아 읽기도 이 방면에서 큰 참고가 될 터입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글자살이가 편리해진 시절에 좋은 글을 써내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런 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런 글을 많이 읽고 쓰게 하는 일 말고 달리 나은 방책이 없을 듯합니다. 끝으로 최근 읽은 좋은 책을 한 권 권하며 말을 접습니다. <배달말 가르치기>(김수업 지음, 나라말 펴냄)란 책입니다.

 

 

바. 붙임. 번역문투 얘기를 한 분들

 

1. 이석주(국어문체론, 94, 대한교과서주식회사)는 ‘문제변화의 전망’에서 “가)지금까지 한자가 위축되고 한글이 강화해 온 추세에 비추어, 빠르면 10년 정도 지나면 한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한글화하면 세로쓰기는 곧 가로쓰기로 완전히 바뀔 것이다. 나)표기가 한글화하면 한자 어휘 가운데 동음이의어, 난해어 등은 풀어쓰던가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로 대체되어 어휘면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다’는 생략) 라)외래어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영어 중심에서 벗어나 여러 언어에서 유입이 나타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겠지만, 한-일 간의 특수성 때문에 일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는 거부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어는 계속 들어올 것이다. 마)문장 길이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현재 신문문장의 길이는 평균 50자 정도이나, 100자가 넘는 긴 문장도 많으므로 긴 문장들에서 단축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바)표현은 더욱 구어체로 흐를 것이며 간결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2. 송민(언어의 접촉과 간섭유형에 대하여-현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우-, 논문집 성심여대 제10집, 1979/ 한국어내의 일본적 외래어 문제:일본학보 23집, 1989)은 rather than ~ -보다는 오히려/ in spite of~, ~애도 불구하고/ enought to~, 하기에 충분하다/ must be ~, ~지 않으면 않된다/ it means to ~ -을 의미한다/ just as if~, 마치 ~ 인 것처럼/ from ~ to ~, -에서 -까지 등을 영어투 영향으로 쓰인 것을 들춘 바 있고, 또 ‘수사적 관용구’라며 통사층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일본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짚은 바 있다.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의기에 불타다, 원한을 사다, 엉덩이에 불이 붙다, 종지부를 찍다, 순풍에 돛을 달다, 흥분의 도가니, 손에 땀을 쥐다, 손꼽아 기다리다, 도토리 키재기, 낯가죽이 두껍다, 패색이 짙다, 이야기에 꽃을 피우다, 콧대를 꺾다, 반감을 사다, 무릎을 치다, 비밀이 새다, 마각을 드러내다, 폭력을 휘두르다, 새빨간 거짓말, 눈살을 찌푸리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눈을 빼앗기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낙인이 찍히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금메달을 넘보다, 전화를 넣

다, 전보를 치다”

또한 ‘-있을 수 있다, -한/-던 것이다’를 일본어 번역차용으로 봤고, ‘보다, 뿐만아니라’가 말머리에서 부사로 쓰이는 것도 일본어 직역투로 봤다.

3. 정광(일본말투 문장:한국신문방송말글변천사, 교열기자회, 1996, 1920~30년대 문학작품에 보이는 일본어 구문의 영향, 한국어학2, 1995)은 *영어-일본말투 사례 28가지를 들춘 바 있다. 또 ‘-고 있다’, 피동표현과 일본어 수신표현, 사역·사동형 등을 들춘 바 있다.

4. 정진석(한국신문방송말글변천사, 교열기자회, 1996)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번역투 표현으로 들춘바 있다. 조율 fine tuning 내용조율 관계조율/ 채찍과 당근 stick and carrot/ 청신호 green light/ 뜨거운 감자 hot patotato/ 병목현상 bottleneck/ 언론 두들겨 패기(*언론 때리기) media bashing/ 반김 정서 anti-Kim sentiment/ 반일정서 anti-Japaness sentiment/ 국민정서 national sentiment/ 돈세탁 money laundering/ 마녀사냥 witch hunt/ 공공연한 비밀 open secret/ 보수적 추정 conservative estimate/ 피갈이 new blood/ 행간에 숨어 있는 뜻 read between the lines/ 환자가 의사를 방보러 다닌다 shop around/ 희화적으로 graphically/ 정치의 문법 the grammar of politics/ 간판의 사회학 the sociology of signs/ 계산된 의도 calculted ~/ 거품 경제 buble economy/ 먹이 사슬 food chain/ 지적 자극 intellectull stimmulation/ 백뱅 big bang/ 마지막 카드 last card/ 공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the ball is now in theother court/ 아킬레스의 건 the Achilles heel/ 황금알을 낳는 거위 goose that lays golden eggs/ 무서운 아이들 street kids, Hollywood kids/ 협상 테이블 the regotiating table/ 핵 투명성 nuclear transparency/ 태풍의 눈 eye of the strom/ 뉴스 뒤의 뉴스 news behind news/ 전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 틈새시장 niche market

5. 이수열(우리말우리글 바로알고바로쓰기, 1994, 지문사)은 ‘치졸한 말’에서 “뿐이 없다, 바라겠습니다, ~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고 싶다, 기대하고 싶다, 있게 돼겠습니다, -ㄴ 것 같아요, 모양 같다, 기억난다, 배워주다, 있으시다, -이 그렇게 -ㄹ 수가 없다, -이 아닐 수 없다, -이 아니가 싶다, 종이 난다, 이뤄지다, 다름아니다 …” 등을 들었다. 그는 또한, 에로의, 에게로의, 에게서의 따위를 일본식문투로 보았다.

6. 황찬호(국어생활 14호 1988)는 ‘외국어식 구문’에서 학생들의 숙제글이나 신문기사에 두드러진 영어식 구문의 특징으로 피동태, 명사화 구문, 과거완료 시제, 인칭대명사 남용, 상투적 표현들을 꼽았다.

미시시피강에로의 방랑, 외계에로의 굳센 의욕, 무의식으로의 몰입, 월세계에의 도달, 그것에의 단골이 얼마인지 모른다, 권위에의 도전, 조직 집단에의 순응성, 국제화에의 노력, 사고의 문으로서의 지나간 영예의 보람 들을 들었는데, 이런 말들을 일본어와 영어의 이중 영향으로 봄직하겠다.

7. 이근희(번역산책, 한국문화사·2005)는 영어 쪽 동사의 쓰임을 다양한 우리말 서술어로 번역하지 않은 점 등을 들며 50여 가지의 영어 번역투를 짚어내 적절히 손질해 보인 바 있다.

8. 이오덕(우리글바로쓰기, 1989년 한길사)은 일본말투, 서양말투 등 신문글·잡지글·소설 등에 나타난 외국말투들을 모아 바로잡은 바 있으며, 이후 우리글바로쓰기 1, 2, 우리문장 쓰기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운동을 벌여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깨우쳤다.

9. 고창운(신문문장 이해, 2006, 박이정)은 신문기사 문장의 영어식 표현으로 수동 표현(요구·요청된다, -에 의해 -되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요하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자마자, -기 위해서, -보다는 오히려, 진행표현(-고 있다) 등을 들었다. 일어식 표현으로는 -에 값한다, -에 의해 등을 들었다.

10. 김문호·홍사만(쉽게 고쳐 쓴 우리 민법, 2003, 국어연구원)은 한문식 일본 문어체, 일본어투 문장, 용어 등 수십 가지를 우리말투로 다듬은 바 있다.

11. 이재호(영한사전 비판, 궁리, 2005)는 ‘영-일 사전’을 베낀 ‘영-한 사전’의 문제점 등을 둘춘 바 있다.

12. 기타 김정우(국어교과서의 외국어 번역어투에 대한 종합적 고찰, 배달말 33호) 등

 

<토론문>

 

‘외래․번역문투 바로잡기 시론’ 토론문

정상훈(과천외국어고등학교)

 

 

1. 들머리

 

발표자는 논문에서 우리말답지 않은 번역문투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보도문에 나타난 외래어식 표현이나 번역문투 표현에 대한 지적은 우리말다운 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올바른 국어교육의 방향 또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기술한 점은 지금껏 관행처럼 잘못 사용되었던 보도문의 실질적인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발표자의 논의를 좇아가노라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관습적으로 쓰던 보도문을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여 모두 고쳐 쓸 수 있겠는가? 둘째, 언어의 통시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셋째, 우리말다운 표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세 가지 의문을 토대로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하겠다.

 

 

2. 신문 기사의 표제의 문제점

 

2.1. 신문 기사의 표제에는 종종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접사가 생략되고 어근만 자립 형태처럼 쓰이는 경우가 있다.

 

(1) 가. 최근 출산율 저하 뚜렷

나. 학교 급식 시설에 세균 득실

 

(1가)는 ‘뚜렷하다’에서 접사 ‘-하다’가 생략되었고 (1나)는 ‘득실거리다’에서 접사 ‘-거리다’가 생략된 채 어근만 표기되었다. 아마도 발표자가 언급한 신문기사의 특징의 하나인 짧고 날씬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근만 자립 형태처럼 쓰이는 위 문장은 전혀 우리말답지 않다.

 

2.2 시제의 표현

신문 기사의 표제의 용언의 종결어미를 보면 용언의 기본형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언중들이 용언의 기본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용언의 기본형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날씬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언중들의 이해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2) 가. 정부의 부동산버블 대책 지지부진하다

나. 총선 TV토론 다음 주에 시작하다

다. 어제 홍길동씨 취리히로 떠나다

 

예문 (2)의 용언을 살펴보면 모두가 기본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시제는 각각 다르다. (2가)의 ‘지지부진하다’는 현재시제이며, (2나)의 ‘시작하다’는 미래시제이다. 그리고 (2다)는 미래시제임을 인지할 수 있다.

시제와 관련하여 고등학교 국어 교사용 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下,p.153)

 

선어말 어미를 통한 국어의 시제와 상 표현

  시제 기능 상 기능 서법 기능
ㄱ. -는/ㄴ-, Ø 현재 진행상,지속상 직설법(현실법)
ㄴ. -았/었- 과거 완료상 완결법
ㄷ. -더- 과거 미완료상 회상법(경험법)
ㄹ. -리-,-겠-,-ㄹ것- 미래 예정상 추측법(추정법)

 

교사용 지도서를 보면 용언의 기본형은 현재 시제이며,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제 구분도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교사는 한 걸음 물러나서 기본형태의 어미는 다양한 시제를 지닌다고 가르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미를 가지고 분명하게 시제를 표현할 수 있는데도 굳이 일상생활에서 쓰지도 않는 기본형을 쓰는 것은 전혀 날씬하지도 우리말답지도 않다.

 

2.3 조사가 없는 명사구 표현

‘환경 미화원 900만 원 돈가방 주인 돌려줘’. 이 표현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상)에 신문기사와 소설을 비교하는 글의 예시로 쓰인 신문기사 표제이다. 이 문장에는 조사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3) 가. 스쿠버다이버 산에서 죽다

나. 정부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 지지부진

다. 박은하씨 한국무용 ‘말은 없다’

라. 부시 기념도서관 모셔라

 

(3가)는 스쿠버다이버와 산이 어울리지 않으므로 어떤 특정 산을 비유적으로 표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3나)도 수식이 중의적이어서 ‘정부 내에 있는 신용불량자에 대한 구제 대책’인지 ‘신용불량자에 대한 구제 대책’인지 알 수가 없다. (3다)도 의미가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3라) 문장은 더욱 심하다. 부시의 기념도서관을 유치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부시 대통령에게 캔사스에 있는 모든 기념도서관을 유치하라고 종용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도서관을 모시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의심스럽다. 아무튼 이러한 표현은 전혀 우리말답지 않다.

 

 

3. 언어 변화의 수용 여부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부터 받아들인 단어를 차용어(borrowings) 또는 외래어(word of foreign origin)라 하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단어를 고유어(native word) 또는 토착어(dinigeonous word)라 한다.

여기서 차용어와 외국어의 구별은 동화의 정도에 있다. 동화되어 자국어화한 것은 차용어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외국어인 남의 나라 말인 것이다.

차용어의 동화현상은 음운론적인 동화, 문법론적인 동화, 어휘론적(의미론적) 동화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음운론적인 동화와 어휘론적 동화에 대해서는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문법론적 동화만은 일단 따지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3) 가.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나.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다.

다. 만약 나를 이기려면 너 자신을 먼저 이겨라.

 

(3)의 예문이 우리말답지 않은가? 현재의 우리말은 (3가,나)처럼 중국어로부터 ‘-的’을 받아들여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 등과 같이 매우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3다)도 ‘....하면(하거든)’과 같이 가정구의 끝에 어미를 사용하여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漢語)의 가정법에 쓰이는 ‘若(萬若, 萬一)’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고 해서 우리말답지 않은 것을까? 이런 표현이 우리말답지 않다면 모든 국어교과서에서 ‘만약(만일)...하면(하거든)’과 같은 접속부사와 어미 사이의 호응관계의 설명은 삭제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법률상,체계상,구조상’ 등과 같이 '~에 관하여' '~에 있어서'의 뜻으로 쓰이는 접미사 ‘-상’이 있다. 이 접미사는 원래 ‘上,じょう’으로 쓰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그런데도 이 접미사는 국립국어원 사전에 떳떳하게 우리말처럼 실려있다. 더욱이 일반인들은 이 접미사가 일본어에서 왔다는 인식조차 못한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문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언어의 발달사를 보더라도 두 언어가 만나서 단어를 차용하기도 하고 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언어가 발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접촉(language contact)은 ‘피진(pidgin)’이나 ‘크레올(creol)’과 같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우리말을 찾는 것이 진정 바람직한 것인지 회의가 생긴다.

 

 

 

4. 관용표현에 대한 수용 여부

 

어떤 언어 표현이 관습적인(conventional) 성격을 띠게 되면 언중은 그러한 표현을 관용구 또는 숙어로 익히게 된다.

 

(4) 가. 눈에 밟히다

나. 손에 땀을 쥐다.

다. 원한을 사다.

라. 패색이 짙다.

마. 낯가죽이 두껍다.

바. 도토리 키재기

사. 콧대를 꺾다.

 

(4가)의 표현이 “잊혀지지 않고 자꾸 떠오르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눈에 밟히다’를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의 의미를 고려할 때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 표현을 그런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4나-사)의 예문은 우리말답지 않은 것인가? (4가)와 차이가 있다면 (4나-사)의 예문은 일본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용구라는 점이다. 물론 (4나-사)의 관용구를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순수한 우리의 관용구가 있다면 국어순화 측면에서 고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이 모두를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5. ‘-어지다’의 수용 여부

 

고등학교 국어(하) 교과서에서 피동법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있다.

 

주체가 다른 주체에 의해서 어떤 동작을 당함을 표현하는 것을 피동 표현이라 한다. 이 때 사용되는 문법 요소가 접미사 ‘-이-/-히-/-리-/-기-/’와 ‘-어지다’,‘-되다’, ‘게 되다’가 있다.

 

그러나 위의 설명처럼 ‘-어지다’의 ‘-지-’가 단순히 피동의 뜻을 지닌다고는 볼 수 없다. ‘-지-’는 구개음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5세기 국어에서는 ‘-디-’로 표현되었다. 당시의 ‘-디-’는 ‘상태변화’의 의미 기능을 하면서 제한된 자동사 및 타동사와 결합할 수 있었으나 형용사와는 강한 제약을 가졌다. 그러다가 16세기 말 이후부터 ‘-디-’가 형용사와 결합할 수 있게 되고, 17세기 이후 ‘-지(디)-’의 생산성은 계속 확대되어 동사 및 대부분의 형용사와 결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지-’에 피동 요소로서의 기능이 추가된다. (이정택,2001)

임홍빈(1977)에서는 ‘지다’를 ‘생기다(生)’라는 의미를 가진 보통동사로 설명한다. 이는 ‘지다’가 기동성이나 피동성 등의 문법적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한 낱말로서 그 선행어 또는 이은말로 결합하여 의미 서술을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5) 가. 길이 좁히어졌다.

나. 길이 좁아졌다.

 

보통 (5가)를 고등학교 문법에서는 잘못된 문장으로 본다. 그 이유는 피동이 중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예문을 보자.

 

(6) 가. 그의 형편이 좋아졌다. (형용사)

나. 신이 날마다 닳아진다. (자동사)

다. 이 책상이 잘 만들어졌다. (타동사)

 

예문 (6)을 살펴 보면 ‘-어지다’의 선행용언이 다양하다. (6가)는 형용사 (6나)는 자동사이다. 즉, ‘-어지다’는 선행용언은 타동사가 아니더라도 매우 자유롭게 결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밖에도 ‘-어지다’의 선행용언에 다른 문법 요소가 개입된 경우도 있다.

 

(7) 가. 그 굴이 곧 뚫리어 진다. (피동접미사 개입)

나. 그 재산은 후손의 손에 고스란히 남겨 졌다. (사동접미사 개입)

 

(7가)는 ‘-어지다’의 선행용언에 피동접미사가 개입되어 있으며 (7나)는 ‘-어지다’의 선행용언에 사동접미사가 개입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어지다’는 단순히 피동을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5가)의 ‘좁혀졌다’가 반드시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는 발표자가 문제로 제기한 ‘알려지다’라는 표현에 대해 살펴보겠다.

 

(8) 가. 대장균의 유전자 수는 4288, 염기쌍 수는 464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 대장균의 유전자 수는 4288, 염기쌍 수는 464만이다.

 

(8가)의 ‘알려지다’의 형태소 분석을 하면 ‘알-+-리-+-어-+-지-+-다’이다. 즉 ‘알다’의 동사 어간에 사동접미사 ‘-리-’와 ‘-어지다’가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8가)의 표현이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은 아닌 것이다.

발표자의 글에서도 나타났듯이 (8가)와 같이 ‘알려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사실 확인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 것일 뿐, 결코 이러한 표현이 외국어식 표현이나 번역투의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외국어 번역투의 피동문도 있다. 발표자의 지적대로 ‘~에 의해’는 영어에서 ‘by+행위자’를 직역한 표현이다.

 

(9) 가. 논문은 섀튼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작성됐다

나. 논문은 섀튼 교수가 주도해 썼다. (보다 간결한 표현임)

 

(9가)와 (9나)의 차이를 살펴보면 (9가)는 피동문이고 (9나)는 능동문이다. 또한 (9나)가 (9가)보다 간결한 표현이다. 간결한 전달을 위한 보도문을 위해서는 (9가)와 같은 표현을 지향해야겠으나 피동문도 그 나름대로의 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반드시 버려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6. 지나친 어휘 다듬기의 문제점

 

스포츠 관련 보도에 자주 쓰이는 '기라성'이라는 단어는 일본어 기라보시(きらぼし.綺羅星)를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기라성’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기라성(綺羅星)「명」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높거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빛나는 별'로 순화.

 

(10) 가. 기라성 같은 선수

나. 기라성 같은 선배

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기라성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국어원 사전을 참고하여 우리말로 하면 ‘빛나는 별과 같은 선수/선배’ 그리고 ‘전문가가 빛나는 별처럼 한자리에 모였다’로 고칠 수 있으나 왠지 어색하다.

따라서 '쟁쟁한/유명한/훌륭한 선수/선배'처럼 적절한 다른 단어를 찾아 바꿔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단어가 없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11) 가. 4승3패를 거둔 일본이 결승에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나. 두 사람의 결혼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 이름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요즘 '해프닝'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는 일, 웃기는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주로 쓰이는 이 말은 다소 비웃는 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의 영어 '해프닝(happening)'과는 거리가 멀다. 영어에서 'happening'은 우연한 일이나 사건을 가리킨다. 그것도 주로 복수 형태인 'happenings'로 쓰인다.

또한 우연히 생긴 일이나 극히 일상적인 현상을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처리하는 예술 행위를 일컫는 예술용어로 'happening'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해프닝’은 사리에 맞지 않거나 웃기는 일 등의 뜻으로 한국식 영어이다. 그래서 (11)의 예문을 고치게 되면 ‘웃음거리’ 정도이겠으나 이것도 매우 어색하다. 따라서 이러한 어휘를 대체할 수 있는 고운 우리말을 찾아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하겠다.

 

 

7. 우리말다운 번역에 대한 의문점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입문서이자 수신서인 <小學>을 언해했던(한글로 풀어썼던) 책으로 <飜譯小學>과 <小學諺解>가 있다. <번역소학>은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역을 하였으나, 원문의 의미와 다소 멀어지는 부분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자 축자 번역을 목표로 한 <소학언해>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한문의 통사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 해석이 어색한 부분이 많다.

둘 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겠으나 역시 우리말다운 번역은 <번역소학>일 것이다. 한문의 통사구조와 우리의 통사구조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의역하여 번역하는 것이 더 우리말답겠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12) 가. 조류독감이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나. 조류독감이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발표자의 논의대로라면 (12가)는 영어 번역문투에 해당하며 (12나)가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그렇지만 (12가)와 (12나)는 어감의 차이가 느껴진다.

 

(13) 가. 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야.

나. 그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도 있어.

 

(13가)의 예문의 번역으로 어느 것이 알맞은 것인가? (13나)와 (13다)는 조사 ‘-이’와 ‘-도’의 차이 때문에 의미에 있어서도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보도문에서만 쓰이는 표현이지만 그것을 버리고 순화해서 쓰면 왠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14) 가. 정치인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정치인과의 만남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표자의 의견대로 사람 사이 만남을 두고 ‘접촉’ 또는 ‘접촉하다’란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신문 보도문이란 특성을 염두에 두면 그대로 인정해도 될 듯싶다.

(14가)를 읽으면 정치인과의 부적절한 만남을 강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며, (14나)는 순수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정치인과의 만남을 강화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느낌이 든다. 굳이 긍정적 만남과 부정적 만남을 구별하기 위해 풀어서 기술하는 것은 간결성을 요구하는 보도문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8. 마무리

 

한글이 만들어 진 지 560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기존의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현하려 했던 아득한 시기도 있었다. 이제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곱게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란 도구를 손아귀에 쥐고서도 우리말답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말다운 표현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말다운 표현은 어떤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단단한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언어는 역사 속에서 변화, 소멸, 생성되어 간다. 기존의 음운,형태 등이 소멸되는가 하면 새로운 음운 또는 형태가 생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몇몇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말의 변화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점진적인 우리말의 변화가 본디 지녔던 우리말다움을 잃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인지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언어도 역시 변한다. 다만 일시에 너무 많은 양의 변화가 있다든지, 상식에 맞지 않는 변화로 인하여 우리말의 조화가 깨지고, 의사 소통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가 되면 큰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같다.

 

 

 

 

참고문헌---

 

남풍현(1985), 국어 속의 차용어, 국어생활 제2호, 국어연구소.

우인혜(1997), 우리말 피동 연구, 한국문화사.

이정택(2001), ‘-지(디)-’의 통시적 변천에 관한 연구, 국어학38, 국어학회.

임홍빈(1977), 피동성과 피동구문, 논문집 12, 국민대학교.

최혜원(2002), 어문규범 준수 실태 조사3, 국립국어원.

한겨레말글연구소 소개

 

□ 2005년 6월30일 세움

 

□ 사외 연구위원

김수업 전국국어교사모임 우리말 교육대학원장 / kse39@naver.com

조재수 한글토피아 대표·사전학 / dalmoe@hanmail.net

김하수 연세대 교수·국어학 / soling@yonsei.ac.kr

김정수 한양대 교수·국어학 / zskim@hanyang.ac.kr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언어학 / jwonlyu@naver.com

권재일 서울대 교수·언어학 / kwonjil@snu.ac.kr

박창원 이화여대 교수·언어학 / wonpark@ewha.ac.kr

이태영 전북대 교수·국어학 / yty@moak.chonbuk.ac.kr

 

□ 사내 연구원 ․ 자문위원

최인호 교열부장·소장

김인숙 교열부 기자(차장)

박정숙 교열부 기자

안창현 경제부문 기자(간사)

성한용 국내부문 선임기자(부장)

이근영 국내부문 기자(차장)

류재훈 민족국제부문 워싱턴 특파원(차장)

김재섭 경제부문 기자(차장)

안수찬 문화부문 기자

김수영 출판사업단 차장

김보근 통일문화재단 사무국장

 

□ 한겨레말글연구소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어상담

2. 언론말글 바로잡기

3. 남북 말글통일

4. 국어사전 연구

5. 글꼴 연구

6. 말글환경 개선

7. 배달말과 관련된 기타 사업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