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창립기념 학술발표회]

 

주제

한겨레말글연구소 창립기념 학술발표회

1.신문의 국어사용 현실과 언론의 사명(발표 김세중 토론 김영명)

2.국민 글쓰기 능력향상 방행(" 최시한 " 이병민)

3.한국어 세계화의 과제(" 민현식 " 허 용)

4.남북 언어통합을 위한 새로운 모색(" 홍윤표 " 남영신)

5.남북 신문기사 문체비교(" 고창운 " 김승철)

 

입력 2005. 11. 22. 18:42수정 2005. 11. 22. 18:42

[한겨레] 22일 열린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최인호) 창립기념 학술발표회는 우리 사회의 국어사용 현실 진단들이 흥미를 끌었다. 신문의 국어 사용, 남북 기사문체, 국민 글쓰기 능력, 남북 언어 통합, 한국어 세계화 과제 두루 현실의 구조적 진단이 바탕이 돼야 개선 방안이 나올 주제들이기도 했다.

 

다섯 주제를 간추리면 '글쓰기 문제'와 '민족어 발전' 두 갈래로 뭉뚱그릴 수 있다. 바람직한 신문 글쓰기는 쉽고 바른 글쓰기로 요약되며, '국어능력의 총화'인 글쓰기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 민족어 발전 차원에서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남북 교류와 공동위원회 구성 및 겨레말큰사전 편찬, '대국언어'로서의 한국어 세계화 실천 방안과 한국어 교육학의 발전적 체계 마련들이 거론되었다. 또한, 언론은 국어를 통해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영향을 주는 매체이므로 우리말글을 쓰는 데서 각별한 소임이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함을 비판했다.

 

신문 고정란·제목에 외국어 남발 '국어파괴' 선도남북 언어 차이는 방언 개념…통일 대상 아니다

김세중 국립국어연구원 국어생활부장은 '신문의 국어사용 현실과 언론의 사명'발표에서, 요즘 기사 문장에서 "올바른 의미전달을 가로막거나 문법을 경시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맥락 설명이나 갖춰야 할 문장 성분이 생략되면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얼버무리는 등 올바른 문장 쓰기의 본보기가 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그 사례로 들었다. '-ㄴ 것으로 알려졌다', '-ㄹ 것으로 알려졌다', '~ 전해졌다'와 같은 표현은 "남용하면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기사화하는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전문가, 검찰 안팎, 일부, 일각'과 같은 말들 역시 기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사례로 들추었다.

 

'전문가' '일부' 남용 기사 신뢰 훼손

신문이 앞다투어 외국어를 고정란이나 기사 제목에 쓰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진단했다.(줌인, UP, 풋풋 토크, 원더보이, S위크엔드, 포인트, 스포츠 마케터, 레터 …)

그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신문이 독자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신문기사의 언어는 충분히 다듬어야 한다"며 "양심적인 기사, 정보 생략 없이 제대로 짜인 문장, 뜻이 분명히 파악되는 기사가 고급스러운 신문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명 한림대 교수는 토론에서 신문이 오히려 국어 파괴와 외국어 남용을 선도한다고 꼬집었다. "전체적으로 신문 가짓수가 많고 지면 역시 너무 많아 이를 채우기 위한 질 낮은 기사들이 양산된다"며 "상업적으로 살아남으려다 보니 국어 발전보다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 같은데, 신문 종사자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좀더 철저히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시한교수(숙명여대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장)는 국민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에서 '말에 대한 무지'에서 글쓰기 화두를 풀어갔다. 언어능력은 인간의 핵심 능력인 사고력과 표현력 그 자체이거나 그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그 참뜻을 몰라 말글살이가 가난해져 결국 우리의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떨어뜨리고 지식과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옷/드레스, 연립주택/빌라, 강변여관/리버사이드 호텔 …' 들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에는 계급이 형성된 지경이어서 이런 형편에 제대로 된 '글쓰기'란 어렵다고 진단했다. 여러 책임 가운데 학자 등 전문가들이 외국이론 도입에 몰두한 나머지 '지금 여기서' 쓰는 언어를 세련시키는 일에 소홀히한 탓이라고 반성했다.

따라서 잘못된 의식·제도를 개혁해야 하며, 그 방향은 △한국어 능력은 살아가는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므로 도구적 언어관을 타파할 것 △국어를 지식 아닌 능력 중심으로 학습할 것 △글쓰기 능력을 높일 환경을 마련할 것(영어에 들이는 힘의 1할만 투자하면 우리 문화 수준은 놀랍게 향상될 것) 등을 들었다.

이를 위해 △명문집 편찬 △높은 수준의 전문인 양성 △명문·실습 위주의 글쓰기 교육 등으로 국어교육 내용·방법·제도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병민교수(서울대 영어교육학과)는 토론에서 우리 사회나 역사는 문어적 성격보다는 구어적 성격이 강해 글쓰기 문화나 읽기 문화가 발달된 사회가 아니었다며 "구어 중심의 사회에서는 암기된, 천편일률적인 일상적 표현들이 자주 사용될 뿐 깊이있는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글쓰기 경험도 일천하고, 글쓰기 양식이나 형식에서도 고유한 것은 별로 없으며, 글쓰기 또한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관련이 깊으므로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민주화된 시기를 살고 있기에 이제 우리의 글쓰기는 막 시작이란 점을 자각하면서 구조적으로 글쓰기 능력 향상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현식교수(서울대)는 '한국어 세계화의 과제'발표에서 한국어는 한류 이전에 이미 세계화 초입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어를 '신흥 대국언어'(사용인구 7700만여명·13위)라고 일컬었다.

그는 한국어의 세계화는 재외동포 교육과 외국인 상대 교육의 두 축으로 진행될 터인데 "이런 측면에서 재외동포들은 한국어 세계화의 전초기지로서 귀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재외동포 660만명, 국내 외국인 60만명) 아울러 한국어보다 한국이 먼저 선진화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다른 민족에 대한 우월주의나 비하주의를 경계하고 '문화간 의사소통' 차원의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관-호텔 등 국어-외국어 계급 형성

또한 동포 및 외국인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맞춤형 교육 △문서화한 교육과정 △표준문법 정리 △한국어 능력평가 개선 △한국어교사 여건 개선 들을 꼽았다.

 

허용교수(한국외국어대 한국어교육과)는 토론에서,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이 특히 중요한데, "나라 발전을 위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를 통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원격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어·문화 교육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어가 언어의 특성상 문법 없이는 쉽게 배우기 어려운 까닭에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가까이 하기 위해 '문장 분석'을 위한 문법보다 '문장 생성'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언어 통합의 새로운 모색'

에서 홍윤표교수(연세대)는 독립·민주화·경제부흥·통일운동 가운데 통일은 이뤄지지 않은 채 우리의 피땀을 기다리고 있으며, "민족과 국가는 통일의 대상이 되지만 남북 언어는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한 언어의 방언형으로 본다"는 데서 '민족어 발전' 차원에서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실제로 느끼는 언어 차이는 대체로 어휘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간추리면 인위적으로 만든 낱말, 외래어 차용과 이를 달리 다듬어쓰는 말, 그리고 말뜻이 변한 말들 정도로서, 남북 분단 이후에 새로 만든 어휘들이나 차용한 어휘 차이로 나타나는 다름을 가령 '남한 안의 세대간 언어 차이'로 인한 다름 정도로 보았다. 이 정도는 잦은 교류로 풀릴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럼에도 통일·통합이 되어야 할 대상으로 언어문규범, 한글코드, 학술용어,한자 들을 들었고, △자료 교류 △말글 순화 △남북 방언조사 △남북 지명조사 △겨레말큰사전 편찬 들을 '민족어 발전을 위한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 구성 △민족어 공동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장은 기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추진 중인 <겨레말큰사전>이 성격상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으므로 남북 두루 실제 도움이 될 사전을 만드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신문기사의 문체 비교 분석'에서 고창운교수(건국대)는 형식·내용면에서 양쪽을 견주었다. 기사 길이에서, △북쪽 <로동신문>은 사설이 3500~6500자(남쪽 1000자 안팎)로 길고 △외신 등 일반기사는 남쪽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기사 수가 드물며 △대분의 북쪽 신문기사들은 간결성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시, 지적'의 기다란 인용, 장황한 수식, 높임 표현 들이 형식적 특징으로 드러났다. 이는 내용면에서 '선전지' 성격이 형식을 규정한 데서 온 탓으로 분석하면서 기사문체의 수평적인 비교가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어 세계화하되 우월주의는 경계

김승철 연구원(북한연구소)은 "북한 체제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에너지는 변화하지 않는 데 있다"며 신문기사도 한가지 구조와 문체로 수십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관행이 장차 북쪽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배워 민주시민으로 가는 통일 과정에서 '후유증으로 작용할 것'을 걱정했다.

정리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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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말글연구소 창립기념 학술발표회

1.신문의 국어사용 현실과 언론의 사명(발표 김세중 토론 김영명)

2.국민 글쓰기 능력향상 방행(" 최시한 " 이병민)

3.한국어 세계화의 과제(" 민현식 " 허 용)

4.남북 언어통합을 위한 새로운 모색(" 홍윤표 " 남영신)

5.남북 신문기사 문체비교(" 고창운 " 김승철)

곳 한겨레신문사 강당 때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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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 : “국어 발전과 신문의 사명”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

 최 시 한 (숙명여대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장)

 

1. 머리말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이라는 제목이 너무 커서, 논리적으로 보나 발표자의 능력으로 보나 제한된 시간 안에 짜임새 있는 논의를 펼치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도 나서는 까닭은, 주최 측이 이런 제목의 발표를 요청하게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무슨 방안이라도 내 놓는 편이 안 내놓는 편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그렇게 넘어가더라도, 제목에서 ‘국민’이라는 말이 걸린다. 일제 찌꺼기가 묻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발표회의 큰 주제(‘국어 발전과 신문의 사명’)에 사용된 ‘국어’라는 말이 그렇듯이, ‘국민’은 국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말이란 반드시 국가 단위로 사용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드물게도, 우리는 단일 민족이 단일 국가를 이루고 단일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간단히 생각하기 쉬우나, 따져보면 한국어도 대한민국 국민만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 미국, 중국 등의 ‘국민’인 한국어 사용자도 많으며, 물론 환경에 따른 차이가 있으나, 그들도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여기서는 ‘국어’와 ‘국민’을, 각각 ‘한국어’ ‘한국인’과 통하는 말로 간주하고 그대로 쓰기로 한다. ‘한국어’란 언어의 한 갈래이며, ‘한국인’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개인과 집단을 가리킨다.

 

한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의 언어활동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쓰기’만 따로 떼어 살피면 무리가 따른다. 그러므로 이 논의는 한국인의 말글살이 전반을 원론적인 차원에서 다루되, 쓰기 능력 향상에 초점을 두어 다루는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먼저 현재 한국인 국어생활 전반의 문제점을 훑고 그 원인을 살핀다. 그리고 개선 방안 마련의 바탕에 될 근본적인 관념의 개혁 방향 혹은 목표를 논의한 뒤, 구체적인 방안 몇 가지를 쓰기 위주로 제시하고자 한다.

 

 

2. 문제점과 그 원인

 

‘아이엠에프 사태’라는 말이 있다. 잘못은 아이엠에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저지른 성싶은데, 그 기관이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 말을 그야말로 온 ‘국민’이 써오고 있다. 필자는 어느 신문사의 중간급 책임자에게 그 신문만이라도 ‘외환위기’라든가 ‘구제금융 사태’ 같은 말로 바꾸어 쓰라고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라는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이 있다. ‘글씨’가 아니라 ‘글자’가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 대부분이 ‘주홍글씨’로 번역하고 있다.

 

단지 단어 차원의 두 가지 예를 들었는데, 더 이상의 예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고와 표현, 사물의 인식과 외국 문물의 수입 등에서 잘못되거나 부적절한 예를 한없이 많이 보기 때문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되지 않는 말,

머리말과 맺음말 사이, 또 주제문과 보조문 사이에 긴밀성이 없는 말,

외국어로 반죽된 말,

거창해 보이지만 도무지 졸가리가 잡히지 않는 횡설수설,

사실의 핵심을 놓치거나 잘못 표현한 말,

하나마나 한 동어반복 …… 우리는 그런 말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영어에 관해서는 ‘독해력’이라든가 ‘초급ㆍ중급ㆍ고급 영어’라는 말을 쓰면서 정작 국어에 관해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며, 국어 실력이 모자랄 경우 외국어 실력이 좋아지기 어려운데도 외국어 학습에만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붓는가 하면, 이른바 문화 콘텐츠와 정보산업을 중요시한다면서 그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의 중심에 언어가 있으니 그 쪽 전문가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우려는 이의 열정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오역투성이 책의 번역자들과, 배우가 욕설을 내뱉지 않으면 박진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영화감독들, 또 상황과 맥락은 무시한 채 말꼬리나 붙들고 늘어지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에 둘러싸여 황폐해져 가고 있다.

 

국어활동을 교육하거나 비판할 때, 흔히 말하는 이의 태도라든가 지식, 윤리성 등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지금 필자는 좀 더 내적(內的)이고 심층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황폐해지고 착종된 현실의 원인, 곧 우리의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떨어뜨려 지식과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으며, 국민 통합을 깨는 것은 물론 문화적 개성과 주체성을 잃게 함으로써 우리를 국제화시대의 미아로 만들고 있는 그 원인을 드러내지 않으면, 해결 방안도 모색하기 어려울 터이다.

 

현실의 문제점이 복합적이고 심각한 만큼 그 원인도 간추려 말하기 어렵다. 대략 몇 가지만 거칠게 지적해보면 이렇다.

 

첫째, 말에 대한 무지, 나아가 우리 말과 문화에 대한 무지와 열등감이 사회ㆍ문화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언어능력은 인간의 핵심 능력인 사고력과 표현력 그 자체이거나 그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 게다가 ‘사고력’이라는 말도, 이성적 능력(생각하는 힘)만을 주로 가리켜서, 감성적 능력(느끼는 힘, 정서적 능력, *감성력)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 이는 ‘상상력’이란 말을 자주 쓰기만 할 뿐 그것을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는 현상과 통하는, 우리 문화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현상이다.

 

한편 근대화의 초기에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나라마저 잃었을 때,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한국인의 병은 고치기 어려운 고질이 되었다. 그리하여 자기 고유의 말과 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생활의 근대화를 충실히 이루지 못하여 아직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에 대한 상식 수준의 기준도 마련하지 못하였고, 무분별하게 외국어 특히 영어에게 안마당을 내주는 데만 열심이었다.

 

이제 그 자기 것 경시, 국어 경시라는 고질병은 전신에 퍼져서 있는 말을 잡아먹는 단계에서 나아가 새말 만드는 능력 즉 조어능력마저 마비시켜 가고 있다. 신문과 잡지의 난(欄,) 이름, 상품 이름, 심지어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 이름까지가 외국어와 외국글자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이런 문제가 의외로 더 심각한 곳은 학문 영역인데,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든지 외국 이론을 들여올 때 한국어를 의식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문화와 학문은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며 종속된 위치를 벗어나기 어려울 터이다. ‘옷’과 ‘드레스’, ‘연립주택’과 ‘빌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에는 계급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어는 거의 천골(賤骨)이 다 되었다. ‘강변여관’과 ‘리버사이드 호텔’을 비교해 보라.

 

둘째, 한국어 사용능력을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연구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냐 한자 병용이냐의 표기문자 다툼에 정력을 낭비한 일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국어학자들은 대개 문장을 넘어서는 말덩어리는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아왔다. 그런가 하면 국문학자들은 작품 연구에만 매달리거나 외국 이론을 학습하여 활용하는 데 골몰하여 ‘지금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를 세련시키는 일에 소홀하였다. 그리하여 적어도 우리 국어국문학계는 어학과 문학 소양이 모두 필요한 문장론, 문체론이 아주 빈약하며, 바람직한 의미의 수사학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수사학회, 작문학회 등이 잇달아 창립되는 것은 그러한 현실의 반증이다.

 

셋째, 국어교육이 부실하였기 때문이다. 국어 교육은 언어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식(이라기보다 잡동사니 정보) 중심으로, 단계적 훈련 프로그램 없이, 또 사고는 제쳐둔 채 표현(이라기보다 정서법)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 현재 중등학교에서는 문법 교육과 작문 교육이 전혀 연관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그들과 문학 교육이 따로 놀고 있는데, 이 기이한 노릇은 너무도 오래 되어서 이제 아무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양성 과정에서 교사의 국어 능력을 충분히 기르지 않는데다가, 맹목적인 평균주의에 사로잡혀 학생과 시간을 배분하다보니 실습 지도가 어려우며, 입시 위주의 환경을 구실로 수업방식이 교사 중심, 암기 위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교육이 세칭 일류대학에 진학할 점수를 따는 데는 이바지했을지 모르나, 자신의 삶을 조리 있고 세련되게 인식ㆍ표현하며, 학문 언어의 심오하고 창의적인 세계 속에 사상의 집을 짓는 데는 거의 이바지하지 못했다고 본다. 일류대학 삼류대학 가릴 것 없이 대학생들이 똑같이 수다 수준 언어 일변도의 대중문화에 탐닉하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학이나 학자를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3. 능력 향상 방안

 

논의 범위가 넓고 문제점이 복합적이어서, 구체적인 방안 몇 가지만 내놓아가지고는 설득력을 얻기도 힘들고 보람 또한 적을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방안은, 쓰기를 포함한 한국어 말글살이 전반의 개선 방안 마련에 바탕이 될, 근본적인 관념과 인습의 개혁 방향 혹은 목표에 대해 먼저 논의한 뒤에 제시하고자 한다.

 

3-1. 개혁 방향

 

첫째, 도구적 언어관을 타파해야 한다. 국어 공부는 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요 한국어는 한국인의 의사표현을 돕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기에, “말이 좀 잘못 되면 어떠냐”는 소리가 지식인 입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이 부정확한 것은 관념과 생각이 부정확하고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저급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경험, 지식이 저급인 사람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가 취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 하듯이, 한국어 능력은 한국인이 살아가는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생각, 따라서 그 능력의 수준에 따라 삶의 가치와 보람이 좌우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혀야 한다.

 

도구적 언어관은 언어능력을 표현 중심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문법 공부가 국어나 글쓰기 공부의 핵심인 것처럼 안다든가, 주어진 글을 요약하는 게 읽기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어려운 단어를 쓰고, 말을 매끄럽게 하며, 입담이 좋아 청중(독자)을 사로잡을 줄 알면 국어능력이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물론 표현에 중점을 둔 그런 활동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사고능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꾸로 그 생각은 주로 말로 이루어진다. 도구적 언어관은 이점을 놓침으로써 특히 교육 분야에서 공허한 말놀음을 막는 데 소홀하였다. 알맹이 없고 사실과 논리에 어긋나는 말글이 가상(사이버) 공간과 텔레비전에 넘쳐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천박하고 위험스런 일이다.

 

언어 혹은 국어에 대한 관념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교육이나 시험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육과 시험은 말로 하는 것이고 말에 관해 하는 것인 까닭이다. 예를 들어 면접시험 따위가 달라질 터이다. 면접을 하면서 짧은 시간에 불가능한 일 곧 인간됨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의 정밀성과 논리성을 평가하게 될 터이다. 피면접자의 말은 그가 지닌 지식과 사고력의 대부분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평가할 고급의 국어능력을 지닌 면접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국어를 지식 중심이 아니라 능력 중심으로 이해하고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국어에 대한 지식은 많을수록 좋겠으나, 지식이 곧 능력은 아니다. 문법을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언어행위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는 대상, 상황 등에 따라 무한히 변하는, 어디서나 누구나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합리적으로 고안된 단계와 절차에 따라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 훈련해야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국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하는 것 아니냐, 글 잘 쓰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런 상황이므로 영어 교재에는 정밀한 훈련 프로그램이 있으나 국어 교재에는 그게 빈약하여 “국어 공부는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학생의 국어 점수와 논술시험 점수가 비례하지 않고, 직원의 학력과 업무수행능력이 따로따로가 된다. 한국에서, 직업상 말을 많이 써야 하는 언론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은, 비유하자면 거의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능력 중심으로 국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여러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과(理科) 사람도 국어를 잘 해야 하며, 인문과학 전공자도 산업체에서 할 일이 많다든가, 국어 교육은 국어 교사만 하는 게 아니고, 사원 연수가 언어예절이나 전문 기술 연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셋째, 국어 능력, 특히 국어능력의 총화인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글쓰기 교육에 관심을 가져도 국민의 국어능력은 달라질 것이다. 외국에 나가 영어를 익히는 데 들이는 돈과 시간을 십분의 일만 글 읽기와 쓰기에 투자한다면, 국가의 문화 수준은 놀랍게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언어능력에 대해 모르는 채 졸업장에만 관심을 두며, 학교는 읽기 쓰기를 지도해 줄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맹목적인 영어 숭상’에 빠진 회사 대표는 무작정 토익 점수로 사원을 뽑는다. 이렇게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무지와 열등감에 빠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대중가요와 신문, 잡지 등에 영어가 마구 사용되는데, 청소년더러 영어나 영문자를 섞어 쓰지 말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서울시 같은 공공기관이 ‘뉴타운 건설’ 운운하고, 정부 부서에서 무슨 ‘로드 맵’을 발표하며, 정당 대변인이 ‘아니면 말고’식의 언어폭력을 자행하는 사회에서, 국어를 적확하고 진실하게 사용하려는 정열이 솟아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식량’을 ‘먹거리’로 대체한 결과 얻어진 국가적 이익 같은 것에 예민한 공무원 또한 바라기 힘들다. 현재의 환경에서, ‘강(江)’이 ‘가람’을 밀어내듯이 ‘키(key)’라는 말에 ‘열쇠’가 밀려나면, ‘자물쇠’와 ‘쇠’(열쇠와 자물쇠를 모두 가리키는 준말) 또한 죽거나 ‘키’처럼 따로 설명해야 하는 단어가 되는 현상, 그런 현상에 내포된 사태의 심각성에 국민의 얼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언어는 섞이고 변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정도와 양상인데, 지금 한국 사회는 아예 그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듯하니 이 환경 전반을 개선하지 않고는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고 본다.

 

3-2. 쓰기 능력 향상 방안

 

첫째, 모범적인 문장, 좋은 글의 기준을 마련한다. 무슨 규정 따위를 제정해서 될 일은 아니므로, 조선 시대에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했듯이, 명문집을 편찬하여 외우고 베낄 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둘째, 높은 수준의 국어 능력과 관련 지식을 지닌 전문인을 양성한다. 정규학교의 교사는 물론, 실제로 관련 전문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방송과 언론기관 종사자, 학원 (논술, 국어) 강사, 독서지도사, 학습지 회사원 등을 (재)교육할 기관을 세우고, 적어도 일 년 이상 교육한 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준다.

 

셋째, 국어 교육 내용, 방법, 제도 등을 혁신한다. 국어 관련 교재를 명문(名文) 위주, 실습 훈련 위주로, 또 단계를 두어 편찬한다. 중등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글의 갈래는 문예문보다 경험, 사실, 논리 위주의 실용적인 글로 한다.

 

모든 초ㆍ중등학교 교사가, 어려우면 국어 교사부터, 앞에 언급한 재교육이나 6개월 이상의 특별 연수 과정을 밟게 하고, 급락(及落) 평가를 받도록 한다. 중등학교의 경우 과목의 경계를 허물고 이른바 통합교과적으로 쓰기 교육을 할 시간과 교사를 확보한다. 그리고 과목별 또는 계열별 활동 중심 쓰기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각 수업시간에 교사가 활용하도록 한다, 교사 양성 및 선발 과정에서 과목 구별 없이 쓰기 능력을 중요시한다. 독서이력철 같이 부작용이 더 클 제도를 도입할 게 아니라, 학교 도서관 재정을 파격적으로 늘리고 사서 교사를 학교마다 반드시 둔다. (최근에 그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대학의 경우,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교양교육 혁신 노력을 정부와 학교 당국이 적극 지원한다.

 

넷째, 글쓰기를 북돋울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 방송과 언론기관 종사자가 국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경우 제재를 하거나 벌금을 물린다. 국어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저술과 출판을 대학에서 업적으로 인정해 주고, 정부는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 방안의 하나로, 청소년을 위한 저술상, 출판상 등을 정부가 마련하여 시행한다. 국어기본법에 명시된 기관과 제도(국어위원회, 담당관, 국어 상담소, 국어능력시험 등)를 최대한 활용한다. 국립국어원 같은 기관이 나서서, 첨삭지도용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든가 취업시험에 사용할 국어능력시험 문제은행을 만들어서 무료로 사용하게 한다. 공직적성평가(PSAT) 같은 평가도구를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전시켜 모든 공무원시험에서 쓰도록 한다.

 

 

4. 맺음말

 

근래에 바람직한 변화가 없지 않았다. 실제야 어떻든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논술고사가 시행된 지 오래이며, 공직적성평가가 도입되고 국어기본법도 제정되었다. 대학에서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새로운 교양교육과정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점은 너무도 크고 심각하여, 전에도 여러 차례 그랬듯이, 한번 시도해 보다 말기 쉬운 형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력이 모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무엇보다 관념과 의식을 바꾸기가 어렵다.

 

국어 능력 혹은 글쓰기 능력 향상 운동은 문화 개혁운동이며 교육 혁신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고 파급 효과가 크다. 따라서 우리가 선진 문화를 이룩하고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한겨레신문사의 노력은 참으로 소중하다. 반드시 큰 보람을 얻어야 할 것이다. <끝>

 

 

한겨레신문사 한겨레말글연구소 학술발표회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 최시한 교수 토론 원고

 

이 병 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들어가는 말

우리 사회와 서구사회--특히 영어권 국가들--의 ‘literacy’(즉, 읽고 쓰는 행위, 리터러시) 활동을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글쓰기 능력을 문제 삼고 섣부른 대안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구어적 성격을 살펴보아야 하며, 그것으로 운영되는 사회 전반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된 대안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최시한 교수의 글 “국민의 글쓰기 능력 방안”을 읽고,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 현실, 구어적 성격과 글쓰기 교육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간단히 논의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리터러시 현실

우리말에 읽기와 쓰기를 합한 복합 개념인 영어 단어 ‘literacy’를 가리키는 표현이 없다. 최근에 ‘literacy’라는 말을 문해력(文解力) 또는 문식력(文識力)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한 단어들이 전해주는 의미는 매우 미약하다. 그들 사회에서 글쓰기나 리터러시 문제가 사회, 정치, 교육,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분야에 거의 관심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 교육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시험에서 평가하지도 않았고, 문제시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 국민의 문맹률이 0%라고 자랑하고 다녔으니, 글쓰기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다. 왜 그랬을까?

 

글쓰기는 한 사회가 운영되는 모든 개인적 사회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읽기나 글쓰기 활동을 한번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금속활자를 이용해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근대 서구문명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면, 우리가 발명한 금속활자가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찍어냈고, 그 책들이 얼마나 손쉽게 일반 민중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정보화 문명화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계 유래가 없는 매우 과학적인 문자인 훈민정음을 발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국민의 문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이용해서 국민들의 문자생활, 정보생활, 지식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한심할 뿐이다. 불법으로 비디오, 영화,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온라인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고, 기껏해야 수능과외 동영상이나 보는데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초고속 통신망이다. 그곳에 흘러 다니는 정보의 양이나 질이 형편없으니, 잘 닦인 왕복 10차선 고속도로에 쓰레기들만 널려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사용할 공간이라면, 국가나 기업이 수천억 또는 수조원을 투자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 21세기를 정보화 세상이라고 외쳤고, 손끝에서 정보가 묻어난다고 외쳤지만, 우리가 꿈꾸는 정보화된 세상의 모습은 과연 그런 모습이었을까? 구글(Google)은 현재 하바드, 옥스퍼드, 미시간, 스탠포드대학 및 뉴욕공공도서관과 손잡고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모든 책들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디지털화한 문서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하고,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금속활자나 훈민정음이나 초고속통신망을 그런 식으로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구어적(口語的) 성격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글쓰기 문화나 읽기 문화가 발달된 사회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문어적 성격보다는 구어적 성격이 강하다. 우리는 문자로 된 글보다는 멀티미디어 동영상, 그래픽, 음악, 또는 음성으로 된 정보 매체를 즐기고 좋아한다. 글로 된 책보다는 화면과 음성이 나오는 TV를 선호한다. 인터넷 동영상 사용률이나 온라인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사용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하고, 공적담화 (公的談話, public discourse)보다는 개인적/사적 담화 (私的談話, private discourse)를 즐긴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생활이고 문자생활이다.

 

약 100년 전부터 책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인쇄물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 활동사진(영화)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활동사진은 다시 라디오로 넘어갔고, 라디오는 다시 TV로 넘어갔으며, TV는 다시 인터넷 매체로 넘어갔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책이 주요한 삶의 매체로 자리 잡아 본 적이 없다. 서구가 18세기 후반 이후,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거의 200년 이상 순수하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즐기고, 정보를 공유하는 경험을 했다면, 우리는 실은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전체 국민의 극히 일부를 제회하고는 말이다.

 

우리의 글쓰기 경험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글쓰기 양식이나 형식에 우리 것은 별로 없다. 글쓰기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형식이나 양식이 제대로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글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조직이나 구성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다. 학술논문이나 논설문 형식의 글을 작성할 때,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쓰지만, 그것은 서구의 전통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기, 승, 전, 결 구조를 사용했으며, 그러면 그것과 이것은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쓰는 글이 기승전결 구조인지, 아니면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인지 구분이 없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독자중심(reader-centered)보다는 저자중심(writer-centered)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 부호를 사용하고, 뛰어쓰기를 하지만, 뛰어쓰기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원래 우리글에서는 뛰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문단(paragraph)의 개념도 역사적으로 우리 것이 아니다. 문단이라고 하면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낯설다. 문단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떻게 문단을 구분해야 하는 것인지, 문단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배우고, 연습해본 적이 없다. 영어 문장에는 단문, 복문, 중문이라는 구분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우리말에 단문, 복문, 중문의 구조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의식하거나 배운 적이 없다.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매일같이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맞춤법, 뛰어쓰기 연습을 하지만, 그것이 초기 글쓰기 교육의 전부다. 대부분 학교 교육에서 글쓰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여름방학에 일기 숙제를 내주기는 했지만, 다분히 형식적일 뿐 읽어주는 사람도 고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초ㆍ중ㆍ고등학교 시절에 교내 백일장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문학적 글쓰기였다. 시를 쓰거나 수필을 쓰거나 소설을 쓰는 정도였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글쓰기 양식을 가르쳐주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신춘문예와 같은 문예적 글쓰기가 주를 이루며, 그런 문예적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별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되었으며, 졸업논문이라고 하는 것이 유일한 제대로 된 글쓰기였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읽어 주거나 고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무책임하게 써내려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대학생이 쓴 글을 진지하게 읽어 줄 사람도 없고, 그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주는 사람도 없으며, 그러한 글을 서로 공유할 만한 공간도 별로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적 글쓰기 이외는 일상생활에서 그다지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쓸 이유가 별로 없었다. 공적인 글쓰기는 기회도 별로 없고, 표현할 곳도 별로 없었다. 그저 읽을 수 있고, 이름 석 자 쓸 수 있으면 되었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필요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우리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내 의견을 글로 발표하고, 내 의견이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 것인지 몰랐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다른 수단과 힘이 필요했지, 정당한 절차나 설득하는 논쟁적인 글을 통한 여론 형성이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힘을 가진 사람들이 은밀하게 밀실에서 자기네들끼리 결정하고, 국민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지시하고, 따라오게 했기에 글이라는 것이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

 

신문사에 있는 사람들이나 글을 쓸 수 있는 장(場)이 있었고, 소수의 지식인들이나 작가들이 책을 써서 말할 수 있었지, 일반 보통 사람이 어디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가? 그러니 대다수 국민들은 주어진 정보를 충실하게 잘 해독(decoding)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고, 국가나 권력자나 학자들도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예전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같은 언론사들이 국민들에게 그저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알려주고, 가끔 정부나 권력에 대해서 바른 소리 한 마디 해주면, 국민들은 그것으로 고마웠다. 신문은 자유의 대변자였고, 언론 자유는 소중한 것이었다. 어떤 언론인지 그 성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왜 조, 중, 동의 논조가 한겨례 신문의 논조와 다르고, 기사 내용의 숨은 배경을 살펴보고 읽어야 하는지,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가르치지도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정확한 뜻은 내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었다. ‘밑줄 쫙 긋고’ 식의 국어 선생님이 불러주는 해석을 열심히 받아 적는 것이, 그것이 글읽기 교육이었고 국어교육이었다.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은 보통 학생들의 몫이 아니었다. 왜 글에 대한 해석이나 생각이 사람들 간에 서로 달라야 하는지, 다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로지 소수의 통일된 의견만 듣고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반인들의 문자생활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문자경험이었다.

 

실은 글은 내가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거리낌 없이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고, 의미 있게 받아줄 사람들이 있을 때 쓰는 것이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할 때, 무슨 말인가 할 말이 있어도 ‘좋은 게 좋은 거야’하는 식으로 참아야 하는 상황에서 글을 쓸 기회는 별로 없다.

 

한편, 단순하게 생각을 글로 옮긴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종잡을 수가 없으며 일관성이 없다. 의식의 흐름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내적 사고는 어떤 일정한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도 않는다. 그것을 그래도 글로 옮겨놓아서는 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생각을 글로 옮기는데 정리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엄청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미국 사회는 우리와는 다르다. 기록을 중요시 하고 문자생활이 사회의 주류 의사소통 방식이며, 정보저장 방식이고, 신뢰받는 표현 방식이다. 빌 클린턴이 대학시절 R.O.T.C. 교관에게 병역문제와 관련하여 편지를 보냈던 기록조차 대통령 선거전에서 들추어지는 것이 미국 사회다. 미국 대법관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재판기록이 가장 주된 청문회의 증거자료가 된다. 무슨 판결을 했는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기록된 것들이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말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인정된다. 대학의 신문은 주간이 아니라 일간지로 발간되고, 대학신문의 편집장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선거로 선출된다. 중고등학교에서 학교 신문사 편집장은 가장 똑똑한 학생이 맡고, 편집장 경험은 IVY League 대학을 진학하는데 적극적인 가교 역할을 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은퇴하면 대부분 책을 낸다. 그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도 비슷하다. 조금이라도 말할 것이 있으면 책을 낸다. 주요 인물들의 자서전은 물론이고, 정말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2002년 월드컵 코치를 했던 네덜란드출신 코치가 2002년 한일월드컵 경험을 책으로 발간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았다. 그러나 월드컵 화보집 이외에 우리 사회에서 그 엄청난 경험을 책으로 묶어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어로 된 wikipedia.org 속에 담겨있는 정보와 우리 naver.com의 지식검색에 담겨있는 내용의 수준을 비교해보자. 요즘 책읽기를 강조하니까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많은 책을 사준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 자신은 책을 읽지 않는다. 아동출판물에 의해서 출판시장이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아동출판물도 ‘마법의 천자문’ 같은 만화책이 잘 팔린다고 하니, 출판사들이 너도 나도 어린이 만화물을 졸속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도 아이들의 공부와 관련된 학습 만화물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구어중심의 사회 모습

글보다 말로 운영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정보는 기록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으니 관리할 필요도 없다.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사적으로 표현되는 말은 영속성을 갖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그것은 흔적을 남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글은 그 글을 남긴 저자와의 접촉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의사소통과 해석에 정확성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문어와 구어가 다른 점이다.

 

구어중심의 사회에서는 암기된, 천편일률적인 일상적 표현들이 자주 사용되고, 깊이 있는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으며, 그만큼 책임도 따르지 않는다. 진지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수만 참여한다. 구어중심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모이고 공유하고 나눌 수 없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 소수가 모여서 결정하면 된다.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서 사회가 운영되지 않으며, 밀실에서 소수에 의해서 결정되고 운영된다. 그것이 구어중심의 사회 모습이다.

 

왜 우리 정치인들이 그렇게 ‘말 바꾸기’를 자주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러한 구어적 성격(Orality)때문이다. 그들이 한 발언 내용들이 문서로 표현되고, 문서로 남아있고,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공개되고, 접근이 가능하고, 그래서 신문사 기자들이나 학자들이 그러한 정보를 일일이 검토하고 확인해볼 수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대변했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면, 그런 말 바꾸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정구교수의 글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에서도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 수준과 구어적 성격은 그대로 드러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똑같은 논문을 가지고 전혀 달리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 국회의원은 그 논문 전문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맥을 제거하고 일부 몇 문장을 가지고 자기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사실에 기반 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국민들은 거기에 휩쓸려가고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우리 사회다.

 

마무리하면서

왜 갑자기 우리 사회에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지 궁금하다. 글쓰기 문제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하고 단순하게 인지적(認知的)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국민들을 향해서 단순히 기술적(技術的)으로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우리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비난하거나 한심하다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왜 우리는 글쓰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왜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왜 글쓰기 능력이 형편없으며, 왜 글이나 책보다는 동영상, 그래픽, 음악과 같은 화려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선호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글쓰기는 결국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관련이 깊고,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사회가 서로 어떻게 정보를 교류하고, 저장하고, 기록하는가 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국민 다수가 다수를 향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말하고, 교류하는 시기와 인쇄활자, 그리고 글쓰기는 역사적으로 상호 깊은 연관성을 맺으면서 발전했다. 서구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가 민주화되고 사회의 리터러시 수준이 향상되었다. 서구의 18-9세기를 ‘읽기 혁명(reading revolution)’이라고 칭하는데, 그와 같은 ‘리터러시 혁명’을 우리 사회는 이제야 맞고 있다. 서구가 약 200년 전에 그러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이제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민주화된 시기를 살고 있으며, 가장 리터러시가 발달된 시기를 살고 있다. 국민 누구나 글을 쓰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 (예,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홈페이지, 싸이월드, 등)을 갖게 된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글을 쓴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이고, 어떻게 쓸 것이며, 왜 글이 필요하고, 무엇 때문에 그러한 능력을 갖춰야 하는지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제 겨우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을 그렇게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문제이다.

 

그러나 모처럼 우리글에 대한 르네상스를 맞게 된 시기에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그것은 영어다. 우리 사회에 영어와 국어의 공존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우리 학자들이 영어로 글을 쓰고 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이나 여러 학술단체는 경쟁력이라는 명목 하에 영어로 된 논문을 쓰는 것을 장려한다. 젊은 어린아이들은 이중언어사용자(bilingual)을 꿈꾼다. 그러면 국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어떤 글을 모범으로 할 것인지 기준도 없는데, 영어는 밀려오고 있다.

 

더불어 난데없이 세상이 논술로 뒤덮여 가고,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다. 아이들이 논술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쓰면 좋은 세상이 될까? 그 세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이런 생각은 해보고 ‘논술’을 외치는 것일까? 그러한 세상은 평등하고, 자유롭고,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과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남녀의 차별이나, 나이의 차별이나, 상하(上下)의 차별이나, 권력에 의한 차별이나, 교수와 학생간의 차별이나,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갖지 않은 자의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세상이며, 편견이 없는 세상이다. 유교식 가치관에 의해서, 아니면 교사의 권의나 또는 직장 상사의 권위, 권력자의 권위에 의해서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복종하고, 암기하고, 다시 토해내고,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민주화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그러한 세상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될 때 전 국민의 제대로 된 글쓰기와 논술은 가능하다.

 

이제 우리의 글쓰기는 막 시작이다. 비로소 사회, 언론, 학계에서 읽는 문제와 쓰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섣부른 결론이나 제안보다는 우리의 리터러시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둘러보는 차분하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리터러시 행위가 담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사회가 운영되고 사람과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고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가 하는 측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글을 쓰고 읽는 방식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경험도 아니며,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문화와 시대,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기술과 매체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맞물려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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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07-11-15 20:55 등록 2007-11-15 20:55

남북 단일 어문규범 얼개 마련 (hani.co.kr)

‘기역→기윽, 디귿→디읃, 시옷→시읏’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서 의견 일치

기자강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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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 디귿, 시옷이 아니라 기윽, 디읃, 시읏”

남북 말글 통합의 벼리라 할 남북 단일 어문규범 얼개가 상당 부분 잡힌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남북이 나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어문규범을 60여년 만에 하나로 묶는 작업이어서 의미가 깊다.
권재일 서울대 교수(언어학)는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최인호)가 15일 연 ‘남북 단일 어문규범 얼개잡기’ 주제의 학술발표회에서 남북 학자들이 “자모 차례, 사이시옷, 품사 이름, 띄어쓰기, 형태표기 등 여덟 가지 주요 분야에서 폭넓은 의논 끝에 대체적인 얼개를 잡았다”고 밝혔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회(공동위원장 남쪽 고은 시인, 북쪽 문영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 남북 단일어문규범 작성위원인 권 교수는 2005년부터 11차례에 걸쳐 북한 학자들과 이 문제를 협의해 왔다.
권 교수가 이날 발표한 글 ‘남북 단일 어문규범의 현황과 과제’를 보면, 남북 학자들은 홑자음 ‘ㄱ, ㄷ, ㅅ’의 이름을 북한 표기를 받아들여 ‘기윽, 디읃, 시읏’으로 하기로 했다. 남한에선 현재 ‘기역, 디귿, 시옷’으로 부르고 있다. 반면 ‘ㄲ ㄸ ㅆ’은 ‘쌍’이라는 남쪽 이름을 북이 받아들여 각각 ‘쌍기윽, 쌍디읃, 쌍시읏으로 하기로 했다. ‘ㄲ ㄸ ㅆ’을 북에서는 ‘된기윽, 된디읃, 된시읏’으로 불러왔다.
자음 배열 순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ㄸ ㅃ ㅆ ㅉ’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고 권 교수는 밝혔다. 북에서는 ㅇ의 위치가 자음 글자가 다 끝난 뒤 놓이나 북이 양보해 ㅅ 다음에 놓기로 했고 겹자음을 몰아서 뒤쪽에 놓은 것은 북쪽 규범을 따랐다.
이 밖에 ‘것, 바’와 같은 일반 의존명사는 남쪽 방식대로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 의존명사는 ‘한명’처럼 붙여 쓰기로 했다. 문장부호의 경우, 대화를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 “ ”를, 책이나 자료의 출전을 표시할 때에는 북한의 인용표인 ≪≫를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권 교수는 “의견의 일치를 본 내용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한정해 적용한다는 게 큰 원칙”이지만 “앞으로 국가기관의 어문정책에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한국어 세계화의 과제

민현식(서울대 국어교육과)

 

1. 머리말

 

요즈음 국어국문학계에서는 한국어의 세계화가 큰 화두로 떠올라 있다. 이런 일이 즐거운 현상임에는 틀림없으며 관련 전공자들은 사명감 속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다양하게 거론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어의 세계화’는 탄탄한 이론의 토대 위에 서 있는 합리적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대외적으로는 한류 열풍의 호황 덕분에 경제 문화적으로 국가적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어 긍정적이며 장기적 발전 과제로 추진할 일들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영어 열풍에 따라 한국어가 처한 여러 위기적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한국어의 불안한 앞길이 모순되게 처한 상황이다.

 

돌이켜 보면 밖으로부터 불어온 한국어 학습 열기는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공산권 몰락과 개방화 속에 한국의 경제 성장이 주목받아 중국, 동남아, 동구권 나라들로부터 한국 배우기가 시작된 결과이다. 이것은 한국어가 배우기 쉽고 우수한 언어인 때문이 아니고 국어학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놓은 기존의 규범 문법이 재미있고 배우기 쉬워서 나타난 인기도 아니다. 광복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졌듯이 한류와 한국어 인기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측면이 강하다. 물론 모든 일에 우연이란 없다. 우연으로 보일 뿐 내면적 필연이 누적되어 모든 일이 벌어진다고 할 때 한국어 학습 열기는 한국의 산업화라는 내적 추진력과 문화 상품의 성공적 전파와 공산권 몰락이라는 외적 요인이 어울려 나타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는 영어가 세계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 영어가 우수해서가 아니고 해양국가로 영연방을 건설한 영국과 그들에게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 건너간 미국의 강력한 국가 건설 덕분이라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즉 언어는 철저히 언어공동체의 의식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언어 자체가 특별한 매력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언어 사용자인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가 투영된 산물로 경제적 평가가 내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어떤 언어의 세계화는 그 언어 사용 민족이 자기들의 민족어를 강력하게 경제, 산업, 문화의 도구로 성공을 거두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어의 세계화’란 명제를 두고 먼저 한국어의 위상을 점검하고 한국어 세계화의 개념과 문제점을 점검하여 한국어가 세계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방향이 타당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어교육의 과제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한국어의 위상과 정신문화사적 의미

 

2.1. 한국어 사용 인구

 

크리스탈(D. Crystal. 1987)의 언어학 백과사전의 언어 통계는 한국어를 1980년대 남북 6천만으로 하여 조사한 통계이지만 13위권으로 보고 있다.

 

세계의 20대 언어와 사용자의 수 (단위: 1,000,000인)

1. 북경어 (Mandarin Chinse 762) 2. 영어 (English 427)

3. 스페인어 (Spanish 266) 4. 힌디어 (Hindi 182, 우르두 Urdu 포함 223)

5. 아랍어 (Arabic 181) 6. 포르투갈어 (Portuguese 162)

7. 벵갈어 (Bengali 162) 8. 러시아어 (Russian 158)

9. 일본어 (Japanese 124) 10. 독일어 (German 121)

11. 프랑스어 (French 116) 12. 자바어 (Javanese 75)

13. 한국어 (Korean 66) 14. 이탈리아어 (Italian 65)

15. 판잡어 (Panjabi 60) 16. 마라티어 (Marathi 58)

17. 월남어 (Vietnamese 57) 18. 텔루구어 (Telugu 55)

19. 튀르크어 (Turkish 53) 20. 타밀어 (Tamil 49)

- D. Crystal(1992), The Cambridge Encyclopedia of Language 에서 인용

 

전 세계 6000여 언어 중에 한국어는 남한 4800만, 북한 2300만, 해외 600만 도합 7700만명이 사용하며 비례적 인구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위 순위는 한국어를 13위권의 대국언어로 보게 한다. 이들 대국 언어의 특징은 문화사적으로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국제어 또는 국제 외교어인 경우: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역사적 문명어: 중국, 힌디어, 벵갈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튀르크어

근대 제국주의어: 포르투갈, 일본어

다민족어: 자바어, 판잡어, 월남어, 텔루구어, 타밀어

신흥 대국어: 한국어

 

2차 대전 이후 신흥 독립국가로서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대표적 국가인 우리나라의 한국어는 사용 인구가 많아 신흥 대국어로 볼 수 있다. 또한 위의 나라들이 대부분 전쟁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전범 국가로 볼 수 있으나 한국어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바 없는 약소국가이었고 전쟁의 상처가 가장 오래 남아 아직도 고통 중에 있는 나라이므로 평화 애호 민족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국언어로서 한국어가 21세기 문명사에서 가지는 정신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본고의 주제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본령은 아니지만 특히 반세계화 물결과 반서구화 운동이 거센 아시아 제국에서 한국어의 인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1) 아시아의 공통점

① 아시아적 가치의 공유: 이 지역은 전 세계 모든 정신문화(한자 유교문화, 불교문화, 힌두문화, 회교문화, 유대문화, 기독교문화)의 발상 보존지이므로 고유한 아시아적 가치를 지녀 왔다. 오늘날도 ‘여가와 쾌락’을 추구하는 서구인들에게서 정신적 안식처는 동양 발상의 종교들이다.

 

② 아시아적 경험의 공유: 열강의 침략 대상으로 고난의 역사를 지내 왔고 그 후유증으로 저개발, 빈곤, 독재, 부패 등을 앓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식민지 외래문화의 경험을 소유하고 있고, 각종 문화와 이념 투쟁의 경험을 겪어 보았으므로 제3의 길을 창출할 능력이 있다.

 

③ 아시아적 희망의 공유: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라고 하는데 이미 긴 동면에 빠져 있던 아시아가 일어나고 있다. 일찍이 Oswald Spengler가 ‘서구의 몰락’에서 서구의 몰락과 위기를 예언한 바 있듯이 영원한 로마도 영원한 미국도 있을 수는 없다. 억압 받아왔던 아시아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 한국의 발전에 이어 중국이 일어나고 앞으로 아시아가 일어날 것이다. 아시아에는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이 있으므로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

 

아시아의 가치와 경험이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여 동서 문명의 인류 통합을 실현하면 인류의 미래가 순탄할 것이고 분열과 대립의 역사를 쓴다면 문명의 충돌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다.

 

(2) 한국의 장점과 아시아의 협동

① 문화 측면: 5000년 역사의 문화 민족이다. 전통 문화 10대 상징 참고.

② 정신 측면: 불교(삼국 시대, 고려 시대), 유교 문화(고려, 조선 시대), 기독교(현대) 문화의 내용을 모두 수용하여 국가 발전에 활용하였다. 종교 분쟁이 없으며 종교 우호적이다.

③ 평화 측면: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전통과 비교하여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 민족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제3 세계의 통합에 긍정적이다. 서구의 침략사는 서구가 이 시대에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하였음을 보여 준다.

④ 경제 측면: 대한민국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의 경제성장과 근대화 노력은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중동 건설, 동남아 국가들과 경제 협력에 기여하고 있다.

⑤ 정치 측면: 왕조정치, 식민지, 남북 분단, 군사정권 시대를 거쳐 민주화 성취를 최단시간에 이룩하였다.

 

대략 이런 한국의 평화와 근면의 국민정신이 보여 주는 국력이 정신문화사적 가치와 어울릴 수 있기에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이 가능하고 한국 알기, 한국어 배우기의 학습 열기도 뜨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2.2. 한국어의 이민 분포와 한민족 연합의 필요성

 

국제이주기구(IOM)가 2005년 6월 21일 발표한 보고서 ‘세계이민백서 2005’(World Migration Report 2005)에 따르면 전 세계 이민자의 20%인 3500만 명이 미국에 살고 있어, 미국은 ‘이민 천국’이며, 이민 송출국 1위는 중국으로, 그간 3500만 명이 이민 길에 올랐는데 전 세계 화교는 5500만 명이라고 한다. 2000년 현재 세계 이민 인구는 1억 7500만 명으로 세계 인구 35명당 1명이 이민자이다.

 

러시아가 받아들인 이민자 수는 1330만 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이민자가 많은 나라 상위 10국에는 독일·우크라이나·프랑스·인도·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호주·파키스탄이 포함되어 있다.

 

이민 송출국은 중국에 이어 인도(2000만 명), 필리핀(700만 명)이 2, 3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이 900만 명이고 한인 동포는 660만 명이므로 우리나라가 중국, 인도, 유대인, 필리핀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의 이민 국가로 볼 수 있다. 이미 개척 정신이 높은 진취적 국민성의 민족임을 보여 주어 이민자 총계로만 보면 세계화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민자들이 고향에 보내는 송금액수(2002년)는 멕시코가 110억 달러(약 11조원)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인도(84억 달러), 필리핀(73억 달러)의 순이었다. 국내총생산 대비 송금액 비율은 필리핀이 9.45%로 단연 1위였다.

 

한국은 지난 1980년대부터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 외국인 노동자가 크게 늘었고, 2003년 말 현재 그 수는 38만8816명이며 이들 중 35.5%가 불법취업자로 추산된다고 한다. 또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 중 5.2%만이 전문기술자라고 한다.

 

2005년 1월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 국적 동포 및 재외 국민은 175개국 총6,638,338명으로 추산되며, 2003년도 대비 약 4.8%(301,387명)가 증가하였다. 국가별 재외 동포수는 중국 2,439,395, 미국 2,087,496명, 일본 901,284명, 독립국가연합 532,697명, 캐나다 198,170명, 호주 84,316명, 브라질 50,296명, 필리핀 46,000명 순이며, 체류 자격별로는 시민권자 3,782,773명, 영주권자 1,708,210명, 일반체류자 908,228명, 유학생 239,127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중국에 거주하는 재외동포가 243만9000여 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미국 재외동포(208만7000 여 명) 수를 앞질렀다.

 

2003년 대비 재외동포 주요 증가 국가로는 중국 294,606명, 캐나다 28,049명, 호주 24,376명, 베트남 9,755명, 필리핀 8,900명, 영국 5,810명 등이며 주요 증가원인은 한.중간 경제교류증가, 해외유학생, 자영업자 등의 증가가 주요인이라 할 수 있다.

 

地域別 在外同胞現況 (單位:名)

年度別
地域別
2001 2003 2005 백분율(%) 전년비
증감율(%)
亞 洲 地 域 2,670,723 3,239,904 3,590,411 54.09 10.82
  日    本 640,234 898,714
 
 
 
①(260,168)
    901,284
 
 
 
②(284,840)
13.58 0.29
  中    國 1,887,5
 
 
 
 
 
58
 
 
 

 
 
(1,923,800)
2,144,7
 
 
 
89
 
 
 

 
 
(1,923,800)
2,439,395
 
 

 
 
 
(1,923,800)
36.75 13.74
  其    他 142,931 196,401 249,732 3.76 27.15
美 洲 地 域 2,375,525 2,433,262 2,392,828 36.05 -1.66
  美    國 2,123,167
 
 
 

 
 
 
(1,076,872)
2,157,498
 
 
 

 
 
 
(1,076,872)
2,087,496
 
 
 

 
 
 
(1,076,872)
31.45 -3.24
  캐 나 다 140,896
 
 
 
⑤(101,715)
170,121
 
 
 
 
⑤(101,715)
198,170
 
 
 
⑤(101,715)
2.99 16.49
  中 南 美 111,462 105,643 107,162 1.61 1.44
歐 洲 地 域 595,073 652,131 640,276 9.65 -1.82
獨立國家聯合 521,694 557,732 532,697 8.02 -4.49
 유    럽 73,379 94,399 107,579 1.62 13.96
中 東 地 域 7,208 6,559 6,923 0.10 5.55
아프리카地域 5,280 5,095 7,900 0.12 55.05
總    計 5,653,800 6,336,951 6,638,338 100 4.76

① 1952~2002년간 재일동포 귀화자 총수(조선적 포함)

② 1952~2004년간 재일동포 귀화자 총수(조선적 포함)

③ 2000년도 중국 전국인구조사상의 조선족(중국 국적) 총수

④ 2000년도 미국통계청 인구센서스상의 한인 총수

⑤ 2001년도 캐나다통계청 인구센서스상의 한인 총수

 

在外同胞 多數居住 國家(2千名 以上) 現況(單位:名)

順    位 國  家  名 同  胞  數
1 중 국 2,439,395
2 미 국 2,087,496
3 일 본 901,284
4 독 립 국 가 연 합 532,697
5 캐 나 다 198,170
6 오 스 트 레 일 리 아 84,316
7 브 라 질 50,296
8 필 리 핀 46,000
9 영 국 40,810
10 독 일 32,068
11 뉴 질 랜 드 31,500
12 인 도 네 시 아 23,025
13 태 국 19,500
14 아 르 헨 티 나 19,171
15 베 트 남 16,576
16 멕 시 코 14,571
17 프 랑 스 13,162
18 과 테 말 라 9,943
19 싱 가 포 르 6,952
20 말 레 이 지 아 5,920
21 파 라 과 이 5,803
22 이 탈 리 아   5,080
23 인  도 4,471
24 스 페 인 3,769
25 대 만 3,454
26 남  아 프 리  카 공 화 국 3,452
27 기타 2,000명 미만 국가 39,457
전체 해외 동포수(175개국) 6,638,338

이러한 해외동포들은 한국어 세계화의 전초기지로서 귀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인 동포들의 민족 교육으로서 한국어 교육이 성공하는 것이 외국인들의 한국어 교육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두 축이라는 점에서 이민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해외 동포의 한국어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에 관한 법률적 규정은 1977년 ‘재외국민의 교육에 관한 규정’(전문 24조)가 시초를 이루는데 현재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이 1999년 12월 3일 공포되었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를 ‘재외국민’과 ‘외국국적동포’로 구분하고 있다.

 

‘재외국민’이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 즉, 거주국으로부터 영주권이나 이에 준하는 거주 목적의 장기 체류 자격을 취득한 자 또는 해외 이주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해외 이주자(취업·혼인 등으로 인한 이주자)로서 아직 영주권 등을 취득하지 못한 자를 말한다.

 

‘외국국적동포’란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이 정하는 자” 즉,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와 부모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이상의 한민족 분포의 특징은 고난사(苦難史)의 결과라는 점에서 유대인의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 이들 재외 동포들의 유형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 조선말 북간도 농업 이민, 항일 이민, 재 중국 이민

· 강제 이주 이민: 재 러시아, 재 중앙아시아

· 일제 시대 이주 이민: 유학, 징용, 징병 이주

· 미주 이민(조선말, 한국전 후): 하와이, 멕시코 이민, LA, 남미 이민

· 전후 이민: 한국 전쟁 후 미주, 호주, 뉴질랜드 지역 등으로 이주.

 

특이한 점은 해외 이민의 분포가 4대 강대국(미, 일, 중, 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는 해외 동포들을 한민족 연합 구성원의 일원으로 묶을 수 있는 교민 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재외동포들도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이중언어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ㄱ)한국인이자 (ㄴ)주재국민이며 (ㄷ)세계시민정신을 가진 국제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인, 주재국민, 국제인이라는 삼중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동포 부모들은 가정에서 개방적 자세의 민족교육을 강화하고 유치원, 중등, 대학, 성인 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국어라는 문화유산을 잘 전승하여야 할 것이다.

 

2.3. 한국 내외국인의 교류 현황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따르면 2004년 총출입국자는 29,609,460명으로 전년도 동기 출입국자 23,972,928명보다 약 23.5% 증가하여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출입국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국민 출국자는 역대 최고이며 1995년 400만명을(4,508,076)넘은 지 10년 만에 2배인 9,139,314명을 돌파하여 인구 5명 당 1명꼴로 출국하고 있다. 외국인 입국자도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나 입국 인원이 국민 출국자의 약 63%에 불과하여 관광수지 적자현상은 계속된다.

〈최근 5년간 국민 출국자 추이〉

연 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인 원 5,795,044 6,739,255 7,441,059 7,386,088 9,139,314
전년대비
증 감 율
  △16.3% △10.4% ▽0.7% △23.7%

〈최근 5년간 외국인 입국자 추이〉

연 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인 원 5,212,729 5,027,951 5,204,670 4,657,595 5,750,545
전년대비
증 감 율
  ▽3.5% △3.5% ▽10.5% △23.5%

이러한 국내외 교류 속에 국내 방문 외국인의 한국어 학습은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다. 주로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모임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91일 이상 체류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등록하는 규정에 따라 9월 현재 48만 명이 체류 외국인이라 한다. 불법 체류자가 10만 여명 있다고 보면 60만 명의 외국인이 주로 산업 근로 현장에 있다. 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한국어 능력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3. ‘한국어 세계화’의 개념과 문제점

 

한국어의 세계화란 말은 어떤 개념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먼저 한국어의 세계화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라는 단어의 뜻과 사회적으로 함의하는 바를 분석하여 보아야 한다. 흔히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어를 온 세계 국민에게 알리고 보급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단어의 다음 뜻풀이를 보면 사회적으로 함의된 ‘보급’이란 뜻은 들어 있지 않다.

 

세계화(世界化) 󰃃��� 세계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임. 또는 그렇게 되게 함.

 

사전 뜻풀이가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사전이 보여 주는 ‘세계화’는 오히려 자기의 알림보다도 남을 알고 수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뜻풀이이다. 그러므로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어를 세계인들이 알고 배우기 쉽게 한다는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옳은 것이며 한국어를 한국 문화보다 열등한 나라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언어 강요가 되어서도 안 되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어를 세계인에게 긍정적으로 알리는 일”로 요약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알린다는 것은 배우기 쉽고 재미있는 언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세계화’라는 제국주의적 이미지가 풍기는 용어보다는 ‘국제화’라는 중립적 용어가 더 낫다는 의견들도 나타난다.

 

한 언어가 세계화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세계공용어(global lingua franca)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영어가 16세기 말에만 해도 주로 영국 내 6백-7백만 인구에 불과하던 언어가 대영제국의 번영으로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로 전개되어 오늘날 세계어로 자리 잡아 있음을 볼 때 세계어로 된다는 것은 다음의 단계를 상정할 수 있다.

 

1. 개별어 단계

2. 변이어(변종어) 단계: 영어의 분산, 제국주의와 식민지 영어

3. 외국어 교육어 단계: 식민지, 국제간 외국어 학습 대상으로 선정되는 교류어 단계

4. 국제 외교어 획득 단계: 외교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단계

5. 세계 공용어 단계: 권역별 또는 세계 공용어 획득 단계

 

현재 영어는 1번 단계에 40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영연방 등을 통해 2번 단계의 역사가 이루어졌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3번 단계를 거쳐 5단계에 와 있다고 하겠다. 불어, 독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같은 것은 동서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유엔을 중심으로 외교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 후 냉전 시대 해체는 영어의 완승과 영어 일방주의가 강화되어 전 세계의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게 되어 우리나라도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냉전 시대 해체와 함께 다원화 시대가 열리면서 90년대 이후 일본어, 중국어가 급부상하고 있고 여기에 한국어도 아시아를 중심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런 영어의 단계를 상정한다면 한국어도 다음 단계를 들 수 있다.

 

 

1. 개별 한국어 단계: 국력의 성장 발전과 교류 증가

2. 변이 한국어 단계: 제국주의 희생으로서의 변이어 출현

3. 외국어 교육어 단계: 국제간 교류, 외국어/이중언어로서의 한국어 단계

4. 국제 외교어 단계: 외교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단계

5. 세계 공용어 단계: 표준 한국어의 권역별 또는 세계 공용어화 단계

 

 

특히 2번의 변이어 단계는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등 제국주의 강요국들의 언어 상황에서 나타난 것과 달리 우리는 제국주의 희생물로서 2,3 단계에 도달한 점이 전혀 대조적이라 다르다. 그러나 제국주의 강요자이든 희생자이든 3 단계에 도달한 점은 공통적이다. 결국 한국어의 세계화는 외교어나 세계어 단계에 도달할 때 성취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언어의 세계화 논리는 언어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 논리가 지배하기 쉽다. 영어의 제국주의 논리에 비판적인 Phillipson(1992)은 군함과 외교관을 파견하는 대신 영어 교사를 파견하는 것이 오늘의 제국주의 언어교육이라고 비판함은 일면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언어제국주의는 언어 지배주의(linguicism)를 가져와 언어 강요로 인한 계층 갈등과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Master(1998)에서 지적한 문제점 중에서 다음 몇 가지도 언어 제국주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비판으로 적절한 지적이라 이를 우리는 도외시할 수는 없다(황적륜 2000).

 

ㄱ. 과다한 외국어 학습 시간으로 다른 교과의 성취 수준이 낮아지는 문제점. 모어로 배우는 사람들과 외국어로 배워야 하는 나라 사람들의 학문적, 사회 산업적 성취의 차이와 불평등 문제

ㄴ. 우세 외국어 세력이 소수 지배층과 결탁하여 지배를 공고히 하는 문제점

ㄷ.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축출함으로써 새로운 정신문화의 강요와 소외 현상 발생

ㄹ. 일방적 공용어 논리로 인하여 이에 부역하는 엘리트층 형성과 지배 계층간의 갈등 형성

ㅁ. 언어교육이란 이름 하에 획일적 외래문화만 가르치기 쉬운 점

 

물론 모든 외국어교육이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경우처럼 언어제국주의 논리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자연스러운 경제 문화 교류 상의 목적으로 국제교류, 세계화의 필요에 따라 나타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어교육의 목표는 언어제국주의 논리를 경계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의 갈등을 조정해 가는 자세로서의 외국어교육이 필요한데 이를 ‘문화간 의사소통능력’(intercultural communication competence)의 관점이라 한다. 이러한 문화간 의사소통능력 함양을 외국어교육의 목적으로 설정할 때 일방적 언어제국주의의 논리와 계층불평등을 유발하는 언어교육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교육의 현장에서도 학습자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동기로만 한국어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어 역시 오만한 언어제국주의나 한민족주의의 무기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교육의 목적의식과 목표 의식이 이런 사조에 휩쓸리면 한국어교육도 장차 반한(反韓), 혐한(嫌韓)의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상의 논의로 볼 때, ‘한국어의 세계화’는 언어제국주의 논리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한국어교육의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국어 세계화의 과제를 살피기에 앞서 한국어교육의 현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한다.

 

4. 국내외 한국어교육의 현황

 

한국어교육은 제2언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Second Language, 이하 KSL)교육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Foreign Language, 이하 KFL)교육을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재외 동포 지역에서 가정이나 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경우로 볼 수 있고, 후자는 학교의 외국어 학습 차원에서 나타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전자는 재중, 재미, 재일 동포 사회처럼 한국어 공동체가 존재하지만 후자는 그런 공동체를 상정하지 않고 1주일에 몇 시간 부과되는 수준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한국어교육의 현황을 들면 다음과 같다.

 

4.1. 국외 한국어교육 현황

 

일반적으로 재외 국민에 대한 교육은 한국학교, 한글학교, 한국교육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은 주요 지역 대학에서 동아시아 학과의 한국어 전공으로 이루어지거나 교양 외국어교육의 차원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이에 대한 주요 통계이다.

 

<2003년 재외동포 교육기관 현황>(조항록 2005)

지 역 별 한 국 학 교 한 국 교 육 원 한 글 학 교
학교수 교원수 학생수 교육원
파견
교원수
동포수 학교수 교원수 학생수
일 본 4 170 1,682 14 22 638,546
(640,234)
57(46) 155(123) 2536
(1,552)
아 주 12 496 3,820 1 1 2,341,190
(2,030,489)
133(111) 1,323
(1,111)
11,754
(10,243)
북 미 - - - 7 8 2,327,619
(2,264,063)
1,096
(1,085)
8,891
(8,758)
63,554
(64,363)
중 남 미 3 99 657 3 3 105,643
(111,462)
52(54) 363(410) 3,169
(3,561)
주, CIS 1 17 70 10 12 652,131
(595,073)
625(593) 1,511
(1,467)
32,981
(30,590)
아․중 동 4 38 106 - - 11,654
(12,488)
31(24) 202(215) 969(994)
14개국 24개교 807 6,335 14개국
35개원
46 6,065,129
(5,653,809)
96개국
1,963개교
(96개국 1,923개교)
12,243
(12,084)
113,994
(111,303)

 

1990년에 발간된 학술진흥재단의 조사보고서 “해외 한국학의 개황과 발전방향”에 따르면 당시 한국어나 한국관련 강좌(course)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32개국 152개처였다. 그러나 2004년 3월 기준으로는 60개국 661개처로 확대되었다(서아정 2005). 또한 해외 지역별 한국어교육기관과 학습자 인구는 다음과 같다.

 

<대학교 국가별 한국어․한국학 운영 대학>(서아정 2004)

동북아 (중국, 일본, 몽골, 대만, 홍콩)
5개국 384개 대학
*일본2년제 단기대학 75개 별도
유럽 12개국 37개 대학
북미 2개국 131개 대학 대양주 2개국 8개 대학
동유럽/CIS 14개국 54개 대학 아프리카․중동 8개국 10개 대학
동서남아 9개국 31개 대학 중남미 3개국 3개 대학
계: 55개국 658개 대학

고등학교 이하

○ 미국: 2004. 1월 현재 39개 중고등학교에서 약 3,800명 수강

○ 일본: 2000 일본문부과학성 통계에 따르면 163개 고등학교에서 4,587명이 수강

○ 중국: 조선족 초중고등학교(1,200여 곳), 그리고 2003년부터 상해지역 일부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강좌 운영

○ 중앙아시아: 고려인 community를 중심으로 다수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강좌 운영중 (타슈켄트 시 60개 중학교/ 교사 150명)

○ 호주: 37개 high school, 26개 primary school에서 약 2,000명 한국어 수강

○ 뉴질랜드 : 1997년 Intermediate School에 한국어 도입. 1999년에는 2,790명이 수강하여 정점에 달했으나 2000년부터 급감하여 현재 600 ~700명 수준으로 파악됨.

 

지역별 KFL 학습인구 현황 (학기당)

지역/국가 학습자수 비고
대학교 고등학교 이하
동북아 28,000 일본 163개 고교에서 4,587명*
중국 동북지방 조선족 community 초중고 약 1,200여 개 처에서 한국어강좌 운영 중.
* 2000 일본 문부성 통계
동서남아 3,000 0 베트남 일부 고등학교에서
개설 검토중
북미 5,000* 미국 39개 중고교 약 3,800명 ** * 2001 통계
** 2004. 통계
대양주 500 약 2,600명  
동유럽 2,000 NA* *-폴란드 세종고등학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60개 중학교, 교사 50여명
서유럽 700 0  
아중동 180 0  
중남미 50* 0 *대학 내 외국어연수원에서
운영
39,430 10,987  

 

(2) 국내 한국어교육 현황

한국어교육의 역사는 가까이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6.25 사변 이래로 1959년 최초로 창설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이나 1969년에 창설된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등에서 한국어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에서의 한국어교육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88 올림픽 이후이다. 1986년에 고려대(1986), 1988년에 이화여대, 1990년에 서강대 등에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기에 이른다. 최근에는 전국 지방대학에도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또한 한국어 교사 양성과정도 학위나 비학위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선교사, 주한 외교관, 군인, 기업인, 교환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그 동기가 매우 다양하다.

 

이상으로 보면 한국어교육의 두 축은 (ㄱ)동포 한국어교육과 (ㄴ)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이 기본임을 알 수 있고 이 두 축을 중심으로 각각에 고유한 교육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고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본다.

 

그동안 이러한 국내외 한국어교육 세계화의 과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는데 최근에만도 손호민(2005)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해외대학에 상급․최상급의 한국어를 광범위하게 도입하고 초등․중등․고등․대학을 통하여 초급으로부터 최상급까지의 한국어교육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조기 한국어교육으로 시작한 평생교육을 강조한다.

 

둘째, 학생들의 다양한 한국어습득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육을 다양화한다. 교과과정, 교재, 교수, 평가 등 전반에 걸쳐 학생 중심의 교육을 지향한다.

 

셋째,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문화교육을 실시한다.

 

넷째, 대표적인 해외대학에 한국어와 한국어교육에 대한 학사․석사․박사․교사자격증 제도를 도입하고, 일선교사, 한국어학자, 한국어교육 학자를 지속적으로 육성 배출시킨다.

 

다섯째, 모든 한인동포 후세를 한국어-거주국어의 이중언어인, 이중문화인으로 육성하고 시민과 민족의 이중적 정체성을 배양한다.

 

위의 다섯 가지 방향은 한국의 세계화 목표에도 부합하고 거주국의 국제경쟁력 증진 목표에도 부응하며 세계 한민족 공동체의 교육목표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현숙(2005)에서는 정부 차원의 발전 노력과 민간 차원의 발전 방향을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부가 한국어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문화관광부는 국외 보급을 중심으로 내세우고 교육인적자원부는 국제 교류 내지는 재외동포 모국(어) 교육을 중심으로 내세워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자격 인증과 지위도 일반적인 제도와 다르게 제도화되기도 하였다. 한국어 교육은 범 정부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한국어 교육의 목표부터 하나하나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어 교육의 목표가 정부 차원에서 정립이 된다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표준 교육과정과 이를 담아낸 표준화 교재가 개발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의 주변 환경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어 교육 발전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중국인 학습자의 증가, 한류 열풍과 한국어 학습 동기의 강화, 외국인고용허가제의 실시가 실질적으로 한국어 교육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책의 개발이 필요하다.

 

유석훈(2005)은 한국어교육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예측하고 있다.

 

첫째, 학제적 연구와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둘째, 열린 한국어교육이 활성화하여야 한다.

셋째, 내용 중심 한국어교육, 과제 중심 한국어교육과 같은 내용과 과제에 기반하여 학문, 직업 등의 특수 목적에 부응할 수 있는 한국어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한류(韓流)가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한국어교육이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한국어만이 아니고 한국문화 전반에서 진정성을 갖춘 전문가의 지속적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섯째, 이중언어 한국어교육 전문가의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아정(2004)에서는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비학문적 측면에서의 환경조성으로 한국어수요를 꾸준히 창출하고,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실적, 문화적 동기 부여가 필요하며, 우수학생에 대한 장학금 제공, 한국 방문 및 연수 기회 제공에서부터 태권도, 대중예술 보급, 국제 스포츠 행사를 통한 한국사회의 매력 표출, 경제발전을 통한 취업 기회 증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비중 확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치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와 민간, 그리고 국제교류재단 등이 연합하여 장기적 안목에서 공동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둘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을 가능하면 덜 어렵게 만들기 위한 제반 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모국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꾸준한 연구, 집적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다양한 교재 개발, 교사 양성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겠다.

 

특히 서아정(2004)는 한국어교육 지원 각종 사업의 실무자로서 다음과 같은 지역별 현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별 한국어 교육 당면 현안>

<공통>
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습자 규모의 영세성 (제한된 수요)
②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연구 부족 (언어권별 화자에 대한 언어적․문화적 이해, 대조분석, 교수법, 평가, 교과과정 및 교재 개발)
③ 자격 있는 교사․교수 인력 부족
<북미>
- 한국계 학습자와 외국인 학습자의 학급, 교과과정 차별화
- 한자교육 ※한국학 후속세대 양성
- 초중고교 교과과정, 교재 개발 및 교사 양성
<동북아>
- 일본: 고등학교 교과과정, 교재 개발, 교사양성
- 중국: 대학 교원의 현업교육
(한국어교육비전공자/동북지방 출신 조선족 교원들의 억양 및 어휘 문제 등)
<유럽>
- 한국어 학습수요 저조


 
<동남아/서남아>
- 언어권별 화자에 대한 언어적․문화적 이해, 대조분석을 바탕으로 한 교수법 및 교재 개발
- 자격 있는 교사․교수 인력 양성
<호주․뉴질랜드>
- 한국어 학습수요 저조
- 초중고등학교 교재 개발
및 교사 양성
<동유럽/CIS>
- 자격있는 교원 부족 ※한국인 교사(국제협력단 봉사자, 선교사 등)의 전문성과 자질 문제
- 교재, 교과과정 개발

 

아울러 국제교류재단 한국어해외보급 사업 향후 과제로 한국어학습기회 확대, 교원 양성, 교육 기반 확충이라는 3대 축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역별․국가별 현안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지원 사업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1. 해외 각급학교 한국어 교원 현업 교육 강화

2. 언어권별 한국어교수법 연구 지원 확대

3. 언어권별, 지역별 교재 현지화 지원 확대

4. 고등학교 이하 교육기관 교원 양성 체제 구축(미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CIS 등)

5. 국내 한국어 연수 기회 확대 및 연수환경개선

=> 학령별, 직종별 수요에 부합되는 연수 프로그램 개발 및 다양화

=> 연수자 전용 숙소 시설 확보

=> 한국학 후속 세대를 위한 어학 연수소 별도 설립 운영(일본어와 중국어의 경우 북미 17개 대학이 공동으로 일본 요꼬하마와 중국 남경에 Inter University Center for Japanese / Chinese Language Studies 운영 중)

6. 정규 교육기관 외부의 일반인들의 한국어 학습 수요 수용

=> (중국 등) 주요 도시에 한국어 문화교육센터 설립, 운영 포함

 

이상을 종합하여 최근에 제기된 한국어 세계화의 현안에 대해 우리는 한국어의 세계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시하며 이것이 동시에 해결 과제로 연결됨을 보이면서 논하도록 한다.

 

(1) 한국어 세계화의 외적 조건과 과제

ㄱ. 선진 한국의 실현: 국가 경쟁력 강화, 한국 국가 이미지 향상 => 선진화 목표

ㄴ. 선진 한국문화의 발현: 현대와 세계화 조류에 맞추는 한국문화의 재탐구와 재창조

=> 문화인 운동

ㄷ. 언어 정책 요인: 국어 정책/한국어 정책/외국어 정책

언어제국주의가 아닌 문화간 의사소통교육 차원의 정책

국제 이해 교육 강화: 국제간 문화 교류에 대한 바른 태도

폐쇄적 민족주의, 문화 제국주의 경계

=> 언어문화교육(국제 이해 교육) 강화

 

(2) 한국어 세계화의 내적 조건과 과제

ㄱ. ‘교육과정, 교재, 교수 학습, 평가’의 4대 영역별 과제

ㄴ. 한국학과 한국어교육의 상관성 정립

ㄷ. 교사 양성 / 교육 기관 정책

 

외적 조건은 한국어교육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요인과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내적 조건은 국내의 국어 정책과 외국어 정책이 모두 관여하는 요인들이다. 적어도 국어교육에서는 국민 누구나 예비 한국어 교사를 키울 각오로 국제화 시대에 국어 문화 교육을 하여야 한다. 또한 국어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추도록 하여 장차 한국어교육 상황에 직면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최근 90년대 이래 문법 교육의 부실로 한국어교사들의 문법 지식이 매우 부실한 상태에 있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문법 교육이 동시에 부실한 상황인 점은 한국어교육이 국어교육과 직결되어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보여 준다. 문화 교육도 평소 한국인으로서 사회, 예술 교육이나 국어교육 환경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령, 1인 1 문화 기술 교육이 이루어질 때 외국인에게도 문화 능력을 갖춘 한국인으로서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5. 한국어 세계화의 외적 조건과 과제

 

5.1. 선진 한국의 실현: 국가 경쟁력, 국가 이미지 향상

 

이는 한국어의 세계화가 한국이 선진국화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반드시 고려하고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의 선진화와 통하며 세계화는 선진화와 통한다. 이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비롯한 국민적 목표 의식이 거시적으로 설정되어야 할 내용이다. 지금처럼 1995년 1만 달러 소득 달성 이래 1997년 11월 외환 위기에서 6600달러로 추락한 뒤, 2003년에 1만 달러를 회복함으로써 10여년의 방황을 거치고 최근에는 안에서 이념 갈등이나 유발하고 있는 정치 상황을 볼 때 토론과 설득의 과정과 다수결에 의하는 수(數)의 정치가 합리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회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선진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한국어 세계화의 토양으로서 한국의 세계화는 국가의 정부, 기업, 가계가 3대 주체로서 힘쓸 일이다. 이는 결국 국력을 신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니 대체로 다음의 사항을 들 수 있다.

 

(1) 국가 선진화: 국가 경제력, 국가 경쟁력의 선진화

현재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중상위권이므로 선진화를 위해 정치, 경제 양측이 협력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109위), 인구(25위) 등 절대규모에서는 뒤지는 편이나 경제 규모를 대변하는 GDP 규모는 2003년 11위에서 2004년(6,815억 달러) 세계 10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무역 규모는 수출액과 교역 규모에서 각각 2,538억 달러와 4,783억 달러를 기록, 나란히 세계 12위에 올랐다. 교역에서 중계무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홍콩을 앞질러 세계 9위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세계경쟁력연감 2004’를 분석한 결과, 전체 60개의 평가대상 국가 및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의 종합경쟁력이 35위, 과학경쟁력이 19위, 기술경쟁력이 8위였다. ‘2005’에서는 한국은 29위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지난날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렸던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 중에서 홍콩이 2위, 싱가포르가 3위, 대만이 11위에 올라 있다. 그런데 한국만이 29위로 추락하고 있다. 각 국가의 부문별 순위 중에서 노사 관계는 꼴찌를 하여 60위로 평가받고 있다.

 

(2) 국가 도덕성

국가에 부패가 낮고 공직자의 부패도가 낮으며 투명도가 높은 나라이어야 한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2005년 10월 18일에 발표한 세계 159개국에 대한 부패지수 순위를 보면 한국은 헝가리, 이탈리아와 함께 40위에 속했다. 이 순위는 1인당 국민소득과 거의 비례관계이다.즉, 청부(淸富)의 청렴국가 건설이 필요하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40위 이상으로 올라 있는 나라는 싱가포르, 홍콩,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이다.

 

이러한 선진 한국 창조는 국민 의식 개혁을 위해 학교교육에서부터 바르게 되어야 한다. 특히 건국 세대 - 산업화 세대 - 민주화 세대 - 선진화 세대의 국가 발전 단계를 생각할 때 현 세대에게서 선진화 세대로서의 의무와 각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상론하지 않고 한국어 세계화가 결국 한국의 선진화를 달성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모든 분야에 대한 선진화라는 상위 개념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원론적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는 곧 선진화와 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5.2. 선진 한국 문화의 구현

 

(1) 호감 문화의 발전과 혐오 문화에 대한 반성

한국어교육은 한국이라는 국가 상표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국가 상품성은 문화로 나타난다. 최근의 한류는 이런 성공적 사례이다. 한국어교육 역시 이런 문화 교육 차원에서 문화를 보여 주고 언어와 문화를 통합하여 제시하는 한국어교육이 되고 한국문화와 양국 비교 문화에 의한 한국어 교육, 양국 문화 이해를 위한 한국어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 문화 우월주의나 문화 비하주의를 모두 경계하고 양국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문화 요목을 골라 교육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또한 전통이 무조건 우월한 것으로 과신하여서도 곤란하다. 가령, 미신 행위로 보기 쉬운 ‘지신밟기’를 미주 지역에서 보여주는 수업을 하였을 때 미국 학생들은 무료하게 바라보고 한국을 어느 아프리카 수준의 나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인 학습자나 서양인 학습자별로 비교문화 연구, 학습자 수용 실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 이런 연구의 토대 위에서 한국어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우리 문화적 전통을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냉철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의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도와 혐오도를 조사하여 한국어 교재 개발이나 교육과정 구성시 참고하여야 한다. 졸고(2001)에서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와 혐오도 인식 조사를 외국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는데 다음 결과가 나왔다.

 

 

【문6】한국어를 배우고 싶거나 혹은 계속 배우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다음 보기 중에서 있는 대로 모두 골라주십시오. (문5에서 ‘매우 많다.’, ‘어느 정도 있다.’고 답한 109명 대상)

 

  빈도 비율(%)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52 46.43
수입을 늘리기 위해 5 4.46
일 또는 사업과 관련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11 9.82
최신 지식 또는 정보를 얻기 위해 7 6.25
국제어이기 때문에 5 4.46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에 3 2.68
조상의 언어이기 때문에 3 2.68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9 8.04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5 4.46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좀 더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해 1 0.89
재미있어 보여서 4 3.57
친구, 애인 또는 가족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1 0.89
배우기 쉬워서 0 0
이미 배운 적이 있어서 1 0.89
기타만 기재 3 2.68
무응답 2 1.79
합계 112 100

 

위 응답에 따르면 한국어 학습 동기도 일반적으로 언어 학습 동기가 그러하듯 실용적으로 취직, 수입과 관련한 것임을 보여 준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배운다는 이들도 8%가 되고 한국이 좋아서 배운다는 이도 4.6%가 되는 것도 고무적이다.

 

【문7】귀하께서는 다음 보기의 한국어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빈도 비율(%)
한 글 109 12.23
김 치 107 12.01
인 삼 85 9.54
태 권 도 101 11.34
한 복 97 10.89
불 고 기 98 11.00
탈 춤 46 5.16
설 악 산 91 10.21
불 국 사 57 6.40
석 굴 암 52 5.84
거 북 선 30 3.37
종 묘 대 제 18 2.02
위의 것 중에는 없다. 0 0
합 계 891 1

 

이 문항은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한국 문화 10대 상징 중에 세계적 예술인을 제외하고 ‘거북선’을 추가하여 항목화한 것이다. 이것을 인지도 순서대로 재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한글 > 김치 > 태권도 > 불고기 > 한복 > 설악산 > 인삼 > 불국사 > 석굴암 > 석굴암 > 탈춤 > 거북선 > 종묘 대제

 

【문8】한국에 대한 귀하의 이미지나 느낌은 어떻습니까?
조 사 내 용 1.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 동의하지 않는다. 3. 보통이다. 4. 약간 동의함 5. 전적으로 동의함
한국은 부유하다. 4
(3.6%)
16
(14.4%)
55
(49.5%)
32
(28.8%)
4
(3.6%)
한국은 현대적이다. 2
(1.8%)
8
(7.2%)
47
(42.3%)
36
(32.4%)
18
(16.2%)
한국은 민주적이다. 6
(5.4%)
16
(14.4%)
37
(33.3%)
38
(34.2%)
14
(12.6%)
한국은 믿을 수 있다. 3
(2.7%)
25
(22.5%)
51
(45.9%)
24
(21.6%)
8
(7.2%)
한국은 이해하기 쉽다. 8
(7.2%)
31
(27.9%)
35
(31.5%)
31
(27.9%)
6
(5.4%)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0
(0%)
6
(5.4%)
36
(32.4%)
37
(33.3%)
32
(22.8%)

 

응답 외국인들은 ‘약간 동의자와 전적 동의자’를 합하여 보면 한국을 부유하고(약간 동의 + 전적 동의 = 32.4%) 현대적이며(48.6%) 민주적인 국가(46.8%)로 보고 있으며 한국을 좋아한다(56.1%). 그러나 믿을 수 있다(28.8%), 이해하기 쉽다(33.3%)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을 보여 외국인들에게 신뢰를 주고 이해할 수 있는 나라로 변화를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문9】귀하께서는 한국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11명 응답)
조 사 내 용 1.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 동의하지 않는다. 3. 보통이다. 4. 약간 동의함 5. 전적으로 동의함
한국인은 근면하다. 1
(0.9%)
7
(6.3%)
38
(34.2%)
36
(32.4%)
29
(26.1%)
한국인은 거만하다. 2
(1.8%)
12
(10.8%)
47
(42.3%)
40
(36.0%)
10
(9.0%)
한국인은 사귀기 쉽다. 6
(5.4%)
15
(13.5%)
46
(41.4%)
30
(27.0%)
14
(12.6%)
한국인은 이해하기 쉽다. 5
(4.5%)
35
(31.5%)
46
(41.4%)
20
(18.0%)
5
(4.5%)
한국인은 믿을 수 있다. 6
(5.4%)
22
(19.8%)
52
(46.8%)
24
(21.6%)
7
(6.3%)
나는 한국인을 좋아한다. 1
(0.9%)
7
(6.3%)
46
(41.4%)
34
(30.6%)
23
(20.7%)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약간 동의 + 전적 동의자를 합한 것만 보면 근면하다(58.5%), 거만하다(45%), 사귀기 쉽다(39.6%), 이해하기 쉽다(22.5%), 믿을 수 있다(27.9%), 한국인을 좋아한다(51.3%)의 분포를 보인다. 대체로 한국어 학습 초보자들이라 ‘보통이다’에 대한 응답이 40% 내외라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따라서 한국어 학습 초기에 이들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도모하는 교육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히 ‘거만하다’에 대한 응답률이 높은 것은 국민 의식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문11】‘한국 문화’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떠오르는 대로 모두 써주십시오.

 

반응한 내용을 보면 10대 상징이 많이 나타나지만 10대 상징 외에도 여러 가지 특징을 거론하고 있다.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우리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 것도 있어 이런 부분의 환경 및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들을 다시 빈도순으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빈도수 2 이상 어휘 목록

 

순위 어휘 빈도 순위 어휘 빈도
1 김치 27 10 한일관계 4
2 한복 12 14 한국 역사 3
3 음식과 음식 문화 11 14 추석 3
4 예의바르다/예의범절 10 16 친절하다 2
4 사물놀이 10 16 소주 2
6 술과 술자리 8 16 세종대왕 2
7 전통놀이 탈춤 7 16 한글 2
8 한국 가요, 음악 5 16 2
8 유교 5 16 남녀 성차별 2
10 인정 많음 4 16 깨끗하다 2
10 매운 음식 4 16 한국여자 2
10 태권도 4 16 경주 2

 

이상으로 한국어 호감도 조사를 하였는데 조사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앞으로는 다음의 사항에 주의하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ㄱ. 동양인 중심의 조사는 가급적 피하여야 한다. 한국어 학습 기관에는 대개 한국어에 대해서나 한국에 대해 환상과 기대를 가진 동양계(중국, 일본, 동남아) 사람들이 많으므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하려면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ㄴ. 우리의 본 예비 조사에서는 국내 외국인만 대상으로 하였지만 앞으로는 재외 공관 지역을 포함하여 해외 여러 지역에서 대사관이나 한국문화원, 한국교육원 등에서 설문지를 상시 비치하여 한국어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하여 국가 이미지 제고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004년 8-9월에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위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한국관광의 대표 이미지]

[질문]귀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3가지 선택)

 

 

한국의 대표 이미지를 물어본 결과, ‘김치’(16.0%)를 가장 많이 언급하였고, 2위는 ‘기타 한국음식’(9.4%), 3위는 ‘서울’ (8.9%)로 나타났으며, 이외에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드라마/드라마 촬영지’(7.2%)도 높게 응답되었으며, '전통/역사/문화’(6.5%),‘한국어(6.1%),’아름다운나라‘(746명),’친절한국민성’(5.7%) 등의 순으로 응답되었다.

 

한국 방문시 가장 하고 싶은 것에 관해 설문한 결과, 자연경관/명소방문(24.0%)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다음으로 음식체험(13.8%), 문화체험(13.5%), 쇼핑(11.0%), 역사유적지 방문(9.0%), 한국어공부(8.8%) 등의 순으로 조사되었다. 2003년과 비교해서 ‘문화체험’, ‘역사유적지 방문’, ‘한국어 공부’, ‘한류체험’의 비율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는데, 이는 한류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일본인의 응답비율이 높은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세계화의 외적 요소는 한국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요구한다. 한국이 세계화하지 않고는 한국어가 세계화할 수가 없다. 한국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문화와 한국인이 매력적임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정하여야 한국어도 세계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한국어 교재가 우수하게 개발되어도 국가 신용도가 낮고 국가 신뢰도, 인지도가 낮다면 한국어를 배울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국어 경제력은 국력과 비례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 호감도와 혐오도의 개념도 필요하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와 혐오도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고 특히 우리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외국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우리는 최고라며 강제로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런 점에 대한 정기적인 인식 조사가 국가 이미지 개선 전략과 국민 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이런 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단기적 처방에 흐르기 쉬우며 학교 교육과 국민 계몽을 통한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라는 경제학자는 문화산업을 국가경쟁 최후의 승부처라고 단언했으며, 존 나이스비트 (John Naisbit)는 21세기를 문화전쟁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는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됨을 의미한다. 정부도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아 문화관광부의 2005년도 정부 보고에 따르면 문화 강국(C-Korea) 전략에 따라 콘텐츠(Contents), 창의성(Creativity), 문화(Culture)의 3C를 바탕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인 문화․관광․레저스포츠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여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이끌어 내고 지역불균형 및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화 강국 산업 전략, 국가경쟁력 강화 속에 장기적 국민 의식 개혁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어의 보급을 위한 세계화 전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제 이해 교육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밝히 알고 이해해 주어야 우리의 언어문화도 대접 받을 수 있다. 이는 도덕적 우위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도덕적 우위에 서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호감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아시아 국가에서 반일 감정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근면하고 정직한 이미지가 있어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은 그들의 문화 홍보가 한 몫 하였다고 하겠다.

 

(2) 국제 이해 교육의 강화

우리의 국제 이해 교육은 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7차 교육과정에서 국어 이외의 교과에서 문화를 거론 한 과목은 도덕과와 사회과인데 국제 이해 교육은 도덕과에서 행하고 있다. 이들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도덕과]

1.1.1.1.1.1.1. 교육과정 총론에서 추구하는 인간상과 초등학교 교육목표를 보면, 도덕과와 관련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 형성,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호, 민주 시민 의식과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태도,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자세 등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총론의 운영 지침에서는 환경 교육, 경제 교육, 에너지 교육, 근로 정신 함양 교육, 보건․안전 교육, 성교육, 소비자 교육, 진로 교육, 통일 교육, 한국문화 정체성 교육, 국제 이해 교육, 정보화 및 정보 윤리 교육 등을 중시하면서 한국문화 정체성 교육이 지침으로 제시되었다.

 

국어문화교육과 관련하여서는 3학년의 인사·언어 예절이 주목되고, 일반 문화교육과 관련하여서는 4학년의 문화 유산 애호, 5학년의 국제 문화 이해 교육 등이 제시되어 있다.

 

5학년

㈐ 올바른 국제 문화 교류

지구촌 시대의 국제 문화 교류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국가 간의 문화 교류 및 외래 문화 수용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와 의지를 가진다.

① 지구촌 시대의 국제 문화 교류의 의미와 중요성

②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국제 문화 교류의 긍정․부정적 현상과 그 원인

③ 외국인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와 예절

④ 일상 생활에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 고쳐야 할 점들과 국제 문화 교류의 올바른 자세

 

6학년

(4) 국가․민족 생활

㈏ 해외 동포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

㈐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

 

한편, 국제 이해 교육 차원에서 볼 때 특정 나라를 혐오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반미나 반일 또는 반중 풍조가 시시각각으로 나타나 모두 신민족주의의 산물이란 점에서 성숙한 국민적 판단이 요구된다. 자민족 중심주의와 타자부정은 문화 교육에서 경계할 일이다. 문화 개방의 시대에서는 '전통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타문화가 반드시 자문화를 저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다는 '열린 의식'과 '열린 민족주의'를 고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사고의 배양이 포함된다. 그것은 한국인이 중국이나 일본, 서구 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등 심리적 구속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김철수 1998).

 

한편, 한국어의 세계화는 외국어 교육 정책의 변화와 수용에 대한 열린 자세도 연계되어야 한다. 이는 외국어교육의 강화를 의미한다. 국제화 시대에는 내 언어만 남에게 수출할 수는 없다. 타 언어에 대한 개방적 수용 태도를 통해 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런 개방성 위에서 우리 문화 한국어도 발전한다는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

 

외국어 이해 인구가 많을수록 해당 외국어로의 한국어 세계화 전략도 진일보할 수 있다. 타 언어와 문화를 모르면서 내 언어와 문화를 강요하거나 바르게 번역하여 전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어 교육 강화가 영어 공용어 정책과 같은 망국적 정책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정부는 국제화와 투자 유치를 위해 영어 능력을 높이고자 경제 특구를 설정하고 영어 공용어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어 공용어 정책과 외국어교육 강화 정책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의미한다. 영어 공용어화는 외국어교육 강화로도 충분할 것을 스스로 민족 개조를 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문제가 많았듯이 정부의 공용어 정책은 ‘민족어 개조론’에 해당하는 망발이라 하겠다. 앞으로 국제화 시대에는 국민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 국가경쟁력이 될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외국어교육 강화로 나아가는 것과 영어 공용어화 같은 과도한 정책으로 나아가는 것은 심각한 차이를 가져 온다. 적어도 후자는 민족과 민족문화, 민족어의 정체성 혼돈을 유발하며 도리어 민족과 민족문화, 민족어의 정래에 큰 해독으로 돌아올 부메랑이 될 것이다.

 

가령 경제 특구에 영어 사용에 불편 없도록 영어 전문 인력을 키우고 이에 대한 장기적 대책으로 내국인의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쓰고 공공 안내문 간판 등에 한글을 우선하고 영문이나 로마자를 부기하는 정책을 쓰는 것과 영어 공용어 정책에 따라 영어를 한글에 대등하게 만드는 것은 언어정책과 문화 정책의 명분에서도 큰 차이를 가져 온다. 적어도 한영 병기 정책의 정신을 유지하여 한국어의 가치를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한국어의 세계화는 궁극적으로 한국어가 국력 신장, 외교어 지위 획득, 세계 공용어 단계로의 발전을 궁극적으로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한국어가 외교어를 거쳐 세계어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한국어 자체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외적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아니 이러한 외적 조건이 더 중요하고 결정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한국의 세계화, 한국인의 세계화, 한국어의 세계화는 밀접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세계화와 통하므로 우리는 이를 외적 조건과 과제라 하였다. 즉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과 한국인의 세계화를 전제로 가능하며 한국의 세계화와 비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6. 한국어 세계화의 내적 조건과 과제

 

한국어 세계화의 내적 조건과 과제는 한국어교육 관련 사항으로 정책 기관, 교육과정, 교재, 평가도구, 교수학습 분야에 대한 연구와 프로그램과 각종 자료 개발을 들 수 있다.

 

6.1. 정책 기관의 역할 분담 문제

 

국내의 한국어교육과 관련된 법규로는 ‘국제교육진흥원법’이 유일하고, 문화예술진흥법과 문화예술진흥법시행령에 규정된 한국어 발전 및 보급에 관한 조항이 있다. 최근에는 국어기본법이 공포되어 시행에 들어가 있다. 현재 한국어교육 업무 수행 및 소속 교육 기관은 다음과 같이 분산되어 있어 비효율적인 면도 있다.

 

(ㄱ) 敎育部: 국제 교육 협력관 산하의 재외 동포 교육 담당관실

국제 교육 진흥원

한국 교육원(Korean Center. 주요 동포 지역에 설립한 한국어 교육기관)

한국 학술 진흥 재단(한국학 교수 파견사업)

한국교육과정평가원(한국어교육 교재개발사업 및 한국어 능력시험 주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 학술대회, 초청 연수)

(ㄴ) 文化觀光部: 문화정책국 국어민족문화과

국립국어연구원(한국어교육 연구 자료 개발, 초청 파견 연수)

한국어 세계화 재단(한국어 교재 보급, 연수, 능력시험 주관 등)

 

(ㄷ) 外交通商部: 재외동포재단(Teen Korean 학습 프로그램 개발)

한국국제교류재단(한국학 교류, 한국어교육 사업 지원)

한국국제협력단(한국어 교육자 파견)

 

(ㄹ) 노동부: 한국어능력시험(고용허가제)

(ㅁ) 정보통신부: 한국정보문화진흥원(IT 청년봉사단 파견 사업)

 

과거에 이들 기관들의 한국어 교육 정책이 중복 투자가 많아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한국어 국외보급 사업 협의회’라는 조정 협의체가 만들어져 이를 뒷받침하는 운영 규정도 2005년 7월 1일자로 만들어져 업무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기관은 국무조정실, 교육부 국외인적자원정책과, 외교부 문화협력과, 문화부 국어민족문화과의 4개 정부 부처와 학술진흥재단, 국제교육진흥원, 교육과정평가원, 국립국어원, 한국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 등 6개 사업기관이다.

 

그러나 기구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만큼 중복 사업이 우려되므로 기관별 세부 특성화에 따른 통합 조정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일 것이다. 적어도 교육부, 문화부를 중심으로 한 동포 한국어교육 지원 전문 사업기관과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한국어교육 전문가 지원 사업 기관이라는 2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정책기관의 정책 통합의 축은 다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ㄱ) 동포 한국어 교육 지원

ㄴ) 외국의 한국어교육 지원

 

ㄱ)은 한국어교육의 기본축이 해외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주도록 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교육을 지원하여 이들이 주재국에서 소수민족의 차별을 받지 않고 정체성을 살려 생존하고 모국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모국과 주재국 모두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바람직한 이중언어인으로 성장하게 함이다. ㄴ)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경우도 개도국에 대해서는 언어제국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하고 호혜 교류 차원에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동포 교육의 중요성은 폐쇄적 민족주의 차원이 아니라 개방적 민족주의의 전형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화교나 유대인들의 민족주의를 비교하고 미합중국과 같은 다민족국가의 민족 융화주의의 정책을 비교 연구하여 좋은 점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교민의 한국어교육 정책이 중요함은 다음과 같은 손호민(2005)의 강조에서 좋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1) 한국어 습득은 가족의 화합에 기여하고 한국인 사회에 참여하게 한다. 자녀가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동시에 한국 문화도 익히게 되고, 이민 부모, 조부모, 친지, 기타 한국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2) 아동들의 정체성(ethnic identity) 갈등의 문제가 해결된다. 모든 동포는 필연적으로 거주국 시민인 동시에 한국 민족이다. 이러한 시민-민족의 이중적 정체성이 어려서부터 확고히 인식되어야만 정체성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3) 동포 자녀의 한국어 능력은 21세기 국제인으로서의 필수 자질이다.

한국어는 미국, 일본, 중국, 호주 등을 위시한 세계 주요국가에서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의 하나이다. 한국어에 능통하면 경제 강국으로 급부상하는 한국의 모든 분야를 실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속속들이 파고들어 자국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4) 이중언어인이 단일 언어인보다 지능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더 우수하다. 이것은 그 동안 많은 실험과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제2언어의 습득은 습득자의 분석적인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므로 한 언어만 아는 아동보다 이중언어 사용 아동이 언어간의 차이를 더 잘 인식하고 각 언어의 문법적 특성에 잘 주목하여 모국어와 외국어를 더 정확히 배운다.

 

(5) 외국어 교육은 학생이 어릴 때 배울 수록 더 효과적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신속한 언어습득은 두 살부터 열두 살 사이에 이루어진다. 한국어는 언어구조상, 어휘상, 존대법 등 사회언어적 특성상 성인 특히 서양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언어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조기 한국어교육의 시기를 놓친 뒤에 부모와 자녀가 크게 후회하는 예를 흔히 본다. 아이들의 12살까지의 한시적 천부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원칙상, 동포만이 완전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이중언어를 구사하면서 자라고 한글학교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거주국이 갈구하는 완벽한 이중언어 국민이 될 수 있고 모든 국제 관계에서 견인차 노릇을 할 필요불가결한 인재들이며 모든 분야에서 거주국과 한국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주역들이다.

 

(7) 취업 영역, 성공 범위를 넓힌다. 각종 전문 직종에 많은 한국어 화자가 필요하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전문직 종사자는 한국의 전문직들과의 교제뿐 아니라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고객을 자유로 상대할 수 있다.

 

(8) 대학 진학과 학문 연구에 극히 유리하다. 많은 대학에서 입학 요건으로 2년 이상의 외국어 학습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려서 한국말에 접한 아동들은 이것을 손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대학의 경우 80%가량의 대학에서 졸업 요건으로 1년 또는 2년의 외국어 학습을 하고 있는데 이중언어인은 이것이 면제된다.

 

6.2. 한국어 교육과정의 표준화와 다양화

 

전 세계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교육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가정에서 비계획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교육에서부터 의도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교육과정의 양상만도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ㄱ) 학습자 언어권별 교육과정: 영어권, 일어권, 중국어권, 남아시아권(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러시아· 중앙아시아권(러시아, CIS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유럽어권, 남미권 등

 

ㄴ) 동포 국적별 교육과정: 재외 국적 동포(이민) 자녀 가정교육 / 한국적 유학, 주재원 자녀 가정교육 / 탈북 귀순자 및 자녀 가정교육

 

ㄷ) 정규 초,중등 교육과정: 외국 초중고교 한국어 교육과정(일본, 중국, 미국 등 동포 지역 또는 호주 등의 단순 지역 현지 초중고교 외국어 프로그램) / 귀국자 자녀 국내 적응 교육과정 / 탈북 귀순자 자녀 한국 적응 교육과정

 

ㄹ) 정규 고등교육 전공과 교양의 교육과정: 외국 대학 한국어 전공 교육과정, 교양 한국어 교육과정

 

ㅁ) 특별 교육과정: 주말 한글학교 교육과정(재외 국적 동포 자녀 교육과정 / 주재원 자녀 교육과정)

 

ㅂ) 특수목적 교육과정: 일반 교육과정(생활 한국어 교육), 특수목적 교육과정[학문 목적, 직업 목적 교육과정(고용허가제에 따른 근로자 한국어 교육 등)]

 

ㅅ) 기관별 교육과정: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한국교육원, 재외 한국학교 정규 및 비정규 교육과정 / 민간(한국인, 외국인) 사설 한국어 교육기관

 

ㅇ) 국내외 한국어 교사 양성 교육과정: 국내외 대학 학과 학위과정 / 대학 부설 비학위과정(단기 교육과정)

 

이런 다양한 학습자와 교사 교육과정을 생각할 때 국내의 자국어교육으로서의 국어교육과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것이 한국어 교육과정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다음 절차에 따라 문서화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수립 절차와 구성 내용]

ㄱ) 요구 분석(need analysis, 학습자, 교사, 관리자, 학부모, 국가 사회의 요구 분석)

ㄴ) 상황 분석(situation analysis, 교육 상황의 분석)

ㄷ) 교육 목적(goals)과 목표(objectives, 과정 목표와 최종 산출 목표) 분석과 설정

ㄹ) 교육 내용 구성(학년, 등급별 교육 내용에 따른 과정 설계)

ㅁ) 교재 개발(material development, 교육용 교재, 부교재 개발 제작)

ㅂ) 교수 학습 방안 제시(teaching & learning)

ㅅ) 교육 평가 방안 제시(tests & evaluation, 진단 평가, 수시 평가, 결과 평가, 교육 내용 및 교육과정 전체 총평 등)

 

교육 내용 구성을 위해서는 학습자의 요구, 교사의 요구, 국가 사회적 요구 등을 면접, 설문 조사 등의 방법으로 심층적인 조사 분석을 한 뒤에 구체적 교육내용 구성과 설계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학습자 동기 분석이 매우 중요하여 학습자 동기에 따른 교육과정과 교재 개발을 하여야 한다. 동기 부여가 없는 외국어교육은 반드시 실패하므로 한국어교육에서도 학습자 동기(학문 목적, 문화 이해 목적 등)를 분석하여 그에 맞추는 교육과정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대체로 공교육과정에서는 국가적 요구에 따라 문서화한 교육과정을 공시하고 있으나 국내외 한국어 교육과정을 선도하고 있는 대학 부설 한국어교육기관들조차 공식화한 교육과정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단순히 기관 프로그램 형식으로나 개발된 교재의 진도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국내외 유관 기관들은 기관의 교육적 공공성을 투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문서화한 교육과정을 수립하여 정기적으로 개정, 공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는 과정에서 국가별, 지역별, 수준별, 언어권별 표준 교육과정도 구축하여 교수 학습, 평가 등에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재정, 시간, 전문 인력이 부족한 한국어교육기관마다 이상적 교육과정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지역, 기관별로 연합하여 표준 교육과정을 만들어 공유하고 공동으로 발전시키는 모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합을 위해서는 지역별 한국어교육자들이 조직화하고 자체 교사 연수를 실시하며 끊임없이 교육과정 및 교재, 교수학습, 평가 방법의 개선에 공동 노력을 기울이고 한국 정부는 이들 지역 교사 연합체들의 연합을 지원, 감독하고 언어권별, 학교 급별 교육과정의 표준화와 다양화를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교육 유형별로 교육과정의 표준 모형을 구축할 수 있다.

 

① 교육 유형별 교육과정: 정규 교육과정, 비정규 교육과정

② 능력 급별 교육과정: 1급 - 6급

③ 각 급별 기술 포함 사항: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화, 문학

 

현재는 각 기관들의 등급목표와 영역별 교육내용을 기술할 때 항목들의 설정과 내용의 기술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는 표준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 바 있다(졸고 2003).

 

[모형: 한국어 표준교육과정]

 

Ⅰ.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1. 교육이념과 목적: 기관의 교육이념,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목적 기술

2. 등급별 일반 교육목표: 등급별로 중점 지도목표를 개괄 기술

3. 교육과정별 편제와 배당 시간: 등급별, 교과목별 편제와 배당 시간을 기술

4. 학습자 상황: 학습자의 요구와 특성을 기술

 

Ⅱ. 교육과정의 내용

1. 교육내용: 6대 영역(1-6급별로 위계화한 6대 영역 기술)

(1) 선수 시간: 사전 선행학습 조건 기술

(2) 주제 영역: 학습목표 관련 훈련 주제들을 기술

(3) 상황 영역: 학습목표 관련 훈련 상황들을 기술

(4) 담화 영역: 위 주제, 상황을 병행하여 고려한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영역별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기술

(5) 문법 영역: 문장과 표현, 어휘, 발음, 표기 영역별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기술

(6) 문화 영역: 문학을 포함하여 문화 전반의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기술

2. 교수 학습법: 3대 영역별로 표준 교수 학습법 제시

3. 교재: 3대 영역별로 교보재 개발 및 활용 방법 제시

4. 평가: 3대 영역별로 평가 유형, 평가 영역, 평가 방법 제시

 

특히 이 시안에서는 교재 개발의 교수요목표를 작성할 때 이상적인 항목으로 다음 6대 영역을 기준항목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졸고 2004).

 

(1)선수 시간, (2)주제, (3)상황, (4)담화(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5)문법(문장과 표현, 어휘, 발음, 표기), (6)문화

 

 

6.3. 한국어 교재 개발의 개선

 

한국어 교재는 근대계몽기부터 1958년까지는 여러 나라의 외국인이 외국어로 된 문법․회화서 형식의 교재를 많이 개발하였다. 1959년대부터 1985년까지는 국내외에서 언어교육기관이나 대학 중심의 교재를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재외동포를 위한 교재도 개발하였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는 한국어교육기관의 증가와 학습자의 증가로 교재 개발이 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과제 중심 교육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교재 개발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마련하였다. 1998년부터는 그 이전의 교재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과제중심, 기능통합형 교재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교재가 개발되었다. 또한 한국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어 문화 소개나 문화 교육이 교육현장과 교재에 반영되었고, 다양한 온라인 교재나 멀티미디어 교재 개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이지영 2005). 손호민(2004: 4-7)은 한국어교육 자료 개발의 방향으로 아래와 같은 항목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어교육 자료 개발의 다양화

․초등, 중등, 고등, 대학의 한국어교육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는 교육 자료 개발

․한국어를 다른 학과목과 연계시키는 교육 자료 개발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교육 자료 개발

․학습자의 모국어와의 언어적 차이점들, 모국 문화와의 문화적 차이점들을 잘 반영시키는 교육 자료 개발

․의사소통 능력의 효율적 습득을 위한 참신한 이론과 실제, 교수법, 교재 개발 방법론, 능력 평가법 등이 충분히 반영된 교육 자료 개발

․한국어를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교육 자료 개발

 

김중섭(2005)은 교재 개발의 문제점으로 다음을 들고 있다. 첫째, 개발되고 있는 교재의 등급이 초급, 중급에 편중되어 있다. 이에 점점 증가하고 있는 중․고급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한국어 교재의 개발이 절실하다.

 

둘째, 기능별 교재의 부족이다. 실제 의사소통은 네 가지 언어 기능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 한국어교육 기관의 교육과정과 교수요목이 통합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학교 기관의 교재들 역시 언어의 네 가지 기능과 문화, 그리고 주제, 기능 등이 통합된 것으로 개발되어 출판되고 있으나 오히려 읽기 교재, 듣기 교재, 쓰기 교재, 문법 교재 등 영역별 전문 교재 또는 참고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셋째, 보조 자료 개발의 부족이다. 국내 한국어 학습자들의 학습 동기와 목적이 취업 및 진학 등의 뚜렷한 양상을 나타내면서 교육 현장 밖에서의 학습 자료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주 교재 개발과 함께 연습교재(워크북), 나아가 한국어 문화 항목이 반영된 부교재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 내용의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교사용 지침서의 개발도 함께 진행되어야 하겠다.

 

김영만(2005)은 교재 개발 과정에서 고려할 점으로 다음을 들고 있다. 첫째, 명확하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교재나 수업 진행의 뼈대가 되는 교육 과정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교재 개발 자체가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을 먼저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둘째, 교재 출판 이전에 충분한 논의와 실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 이미 개발된 교재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집필 중인 교재를 수정한다. 새로운 교재는 앞서 출간된 교재의 장점을 살리고 취약한 부분이나 누락된 사항들을 새롭게 첨가시키는 작업이 요구된다.

넷째, 다양한 종류의 교재가 개발되어야 한다. 학습자 국적의 다양화, 학습 목적의 다양화 등은 결국 새롭고 다양한 종류의 교재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새로 출간된 교재를 다시 검토․평가하여 보다 효율적인 교재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재 구성과 관련되어 고려할 점으로 다음을 들고 있다.

 

첫째, 실제성을 고려한 개발이 되어야 한다. 문법적 설명이 교재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교재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습자의 학습 의욕을 높이며, 실제적인 교육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학습자의 흥미를 고려한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 이제 문법의 이해와 숙달이 외국어 교육의 목표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교재는 학습자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학습자의 요구와 흥미를 고려한 내용으로 짜여져야 한다.

 

셋째, 다양한 의사소통 환경을 고려한 교재 구성이 필요하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의사소통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특히 현실 공간(off line)뿐 아니라 가상 공간(on line)에서의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고 한국어교육적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교실 환경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학습자의 정서적 측면을 고려한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 교재 자체가 학습자의 심미적, 감성적 측면을 고려한 내용으로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각 등급별 교재가 연계성을 가지고 개발되어야 한다. 교재 개발에서 등급별 난이도 조정과 연계성 구축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여섯째,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사용하려면 한국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졸고(2000)에서도 13가지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중에 다음 몇 가지를 강조하여 둔다.

 

(1) 표준 교육과정을 만들고 그 교수요목에 따라 교재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술한 대로 한국어 교육 분야는 아직 공교육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대학의 부설 기관에서 이루어지거나 사설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공적인 표준 교육과정이 아직 공시되고 있지 않으며 기관마다 내부적으로 등급별 교육목표나 간이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교재를 만들어 왔다. 따라서 한국어 교재의 질이 발전하려면 한국어 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문화 영역의 목표와 내용을 기술하고 그에 따라 교수요목을 기술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표준 교육과정이 없이 한국어 능력 시험의 급별 수준을 제시한 것이 오히려 역으로 교육의 방향이나 교재 집필의 방향을 제시하는 현상을 빚고 있으므로 교육과정 수립에 따른 교재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한국어 교육용 표준 문법을 바탕으로 한 교재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문법 1 세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의 교육 문법은 국정 고교용 문법 교과서 한 권만 개발해 놓은 상태이고 이를 심화한 개인 저작으로 규범 문법 개론서들이 몇 권 나온 정도이다. 따라서 9품사, 7 성분 체계에 따른 1차 기술은 되어 있으나 교육문법을 위해 문법 체계의 심도 있는 2차 세부 분류와 설명 체계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나마 학교 문법 용어가 정해졌으나 문법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영문법 지식으로 국어를 접근하는 상황이다.

 

문법 항목 학습, 문형 학습, 어휘 학습은 모두 이러한 교육과정 속에서 횡적, 종적 위계 관계 속에 체계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건만 현재 각 교재들의 문법, 문형, 어휘 학습은 그러한 교재 등급별 위계화 작업에서 분명히 제시된 기준이 없다.

 

표준 문법에의 요구는 국내 국어교육보다는 한국어교육에서 그 필요가 절박하다. 간결한 체계와 설명력 있는 문법 체계를 갖추는 일이야말로 한국어를 배우기 쉽게 만드는 기초 작업이므로 한국어 문법 교육의 표준화는 시급한 일이며 문법 용어의 표준화도 당연한 과제이다.

 

그런데 현행 국내외 한국어교육용 교재들을 보면 각 교재마다 60년대의 문법 용어가 아직도 잘 쓰이고 있어 현재의 학교 문법과도 다른 경우가 많고 다른 용어로 기술한 상이한 한국어 교재들을 볼 때 외국인 학습자를 혼란시키는 것은 당연하며 외국인들이 한국어 학습을 어려워하는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체계적 문법 설명의 부족이라고 볼 때 국내 한국어 교재에서의 문법 체계의 간결화, 표준화, 문법 용어의 통일, 학습자 언어로의 문법 번역 용어 통일 등은 시급한 과제이다. 다음은 주요 교재들의 문법 기술에서 용어 번역의 혼란상을 대비해 본 것이다.

 

고려대 연세대 서울대

격조사 particle case particle particle

case marker case marker

보조사 particle auxiliary particle particle

단위명사 numeral classifier classifier classifier

동사 verb action verb action verb

형용사 adjective quality verb descriptive verb

(adjective)

서술격 copula copula copula

종결어미 sentence ending sentence-final endings sentence endings

연결어미 conjunctive ending conjunctive ending particle, connective,

connective suffix non-final ending,

conjunctive ending

 

이러한 문법 표준화는 등급별 어휘 수준의 표준화도 필요하다. 그동안 교재마다 어휘량을 공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앞으로는 교재 편찬자나 기관은 자기 교재에 대하여 어휘량 표시를 명시하여 주는 것이 좋다. 서울대 ‘한국어’ 1에서는 450 단어, ‘한국어 2’에서는 700 단어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백봉자 외(1997)에서 개략적 수치를 제시한 것에 따르면 각 등급마다 대개 500-600 단어 수준인데 기관 교재마다 다소 넘나듦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어 어휘 빈도 조사들이 여러 가지로 발표되고 있는데 구어 말뭉치나 문어 말뭉치를 적절히 안배한 교육 말뭉치가 구축되어 수준별 어휘 사정이 이루어지면 더욱 양질의 교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국립국어연구원’은 ‘한국어 학습용 어휘 목록’(2003)을 발표하여 59,000여 단어에서 빈도순위 10,352 등위어를 정하고 6인에게 검정시킨 결과 최종적으로 1단계 982개, 2단계 2,111개, 3단계 2,872개, 총 5,965개 단어를 정했다.

 

(3) 문화 교육은 초급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언어 교육에서의 문화교육의 목표는 상호문화적인 의사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학습자가 목표 언어의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학습자의 모어 문화에 대해 재인식하여 목표 언어의 모어 화자와 상호문화적인 교류를 해 나가는 것이다(이희경 2005).

 

더욱이 영어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한국어를 포함한 소수 언어에 대한 관심은 유럽 언어에 비해 낮으므로 문화 교육은 한국어에 대한 학습 동기와 흥미를 부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목표 언어문화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학습자가 모국 문화와 목표 언어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성공적인 언어 학습에도 필수적이므로 문화 중심 교육과정과 교재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손성옥 2005).

 

문화 교육에의 요구는 전술한 설문조사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사실인데 우리는 다음의 방법들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한다고 본다. 문화 학습을 위해서는 문화 교육을 위한 문화 교수요목을 다양하게 수집하고 그 내용을 기본(초급) - 전개(중급) - 심화(고급)의 3 단계 방식으로 기술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가령 조항록(2000)에서 제안하였듯이 우리의 돌 풍습을 소개할 때 ‘돌잔치(초급) → 돌잡이(중급) → 돌잡이 선물, 덕담(고급)’으로 심화하여 전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모든 문화 교수요목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예는 다음과 같이 모든 문화 항목에 대하여 다양하게 가능할 것이다. 가령, 문화부에서 정한 10 대 문화유산에 대하여 이런 확대 심화가 가능하다.

 

아울러 문화 교육에서 주의할 것은 문화 교육이 문화 내용에 치중하여 언어 교육에 소홀하기 쉬운 점을 주의하여야 하며 문화 제시에서 객관적 자세로 학생들의 판단과 경험을 존중하여야 할 것이며 교재 구성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학생들의 의견과 경험을 존중하는 구안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개의 교재는 문화 항목을 중, 고급에 놓는 경향이지만 설문 조사에서는 초급 학습자들부터 문화에 대한 학습 요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초급부터 흥미 있는 것을 중심으로 쉽게 배치하여야 한다. 하와이대에서 개발한 Integrated Korean은 문화 교육을 언어 학습의 주된 요소로 선정하고 각 단원마다 문화 항목을 단원 서두 학습 목표 첫머리에 제시하고 있다. 문화 내용의 선정은 초급과 중급 교재의 경우 각 단원의 대화 및 읽기(narration) 본문에서 직접 언급되거나 단원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 중심으로 각 단원마다 2-3개씩 소개하고 있다. 초급반 교재의 경우 모두 15단원 36항목, 중급 과정 교재는 15단원 50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중급 과정이 초급 과정보다 문화 항목이 더 많은 것은 중급 과정으로 갈수록 단원의 주제와 대화 표현들이 더 다양해지고 문화 학습의 필요성도 더 절실해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Integrated Korean 초급 과정 첫 단원(주제: 인사)의 경우 인사 예절 문화(non-verbal behavior)뿐 아니라 한국어 경어법 사용과 관련된 상하구조 집단주의 문화를 서구의 개인주의 평등주의 문화와 비교 관점에서 제시하여 문화와 언어 학습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손성옥 2005).

 

또한 문화 항목이 실제 현실 문화를 소개하고 응용하여야 하는데 예전의 전통 문화 위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비율의 조절도 사전에 계획하여야 한다. 각 단원의 맨 뒤에 위치한 문화는 언어 기능 학습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단지 덧붙여 있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본문 학습과 연계된 문화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언어교육에서 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므로 한국인의 비언어적 행동과 타 문화권과의 차이에 대한 이해 교육도 배려하여야 한다.

 

6.4. 교수 학습의 개선

 

교수 학습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 가지를 교사나 학습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 매체가 발달한 선진국과 매체 활용이 어려운 개도국들을 생각할 때 학습자 언어권에 따른 교수 학습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매체가 부족한 곳이나 실용 언어교육을 강조하여 번역 실습 강의를 많이 개설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는 문법 번역식 교수 학습이 여전히 중요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습자 동기를 고려한 의사소통식, 과제 중심 교수법의 장점을 종합하여 개선된 교재들을 만들고 이런 매체 활용 교수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 교재 및 교안의 개발 노력은 물론 교수 학습법의 경험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전 세계 모든 한국어 교재와 교안과 교수 학습법들을 모아 ‘교재 은행(또는 교안 은행)’을 인터넷 상에서 구축하고 누구나 활용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시설이 취약한 개도국에는 학습용 시디를 제작하여 제공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훌륭한 교사는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남의 수업을 참관하여 자기 학습법 증진에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고 자기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6.4. 한국어 능력 평가의 개선

 

각국의 언어 능력 시험들은 그 나름대로의 영역 설정을 하여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이 1997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1-6급 시험 체제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 평가의 개선 방안으로는 김유정(2005)의 개선 요구를 중심으로 다음 사항을 들 수 있다.

 

(1) 유사 시험이 고용 허가제에 따른 한국어능력시험이 생겼고 민간 차원의 한글학회 주관의 ‘세계한국말인증시험’도 따로 생겨나 차별화가 필요하다. 유사 시험의 중복 출현보다는 한국어 능력 측정의 목적이나 대상이 다른 점을 명확히 하여 평가 도구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2)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을 위한 한국어 능력 평가, 대학 또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한국어 학습자들을 위한 학문 목적 능력 평가, 일반적인 회사 취업용 언어 능력 평가 등 다양한 목적의 평가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때이므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들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3) 1-6급 평가 체계가 등급간 차이와 난이도 조절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서 점수제로 전환하는 방안이나 1-4급 체제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4) 말하기 능력 평가를 반영하는 방안이나 별도 평가시험을 개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5) 평가 전문 인력 양성과 공정한 주관식 채점을 위하여 채점자 훈련이 필요하다. 채점자의 부실한 채점으로 응시자가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능력시험은 각 급별로 1, 2급은 10%, 3, 4급은 20%, 5, 6급은 30%의 주관식 문항이 출제되었는데 2006년부터는 쓰기 문항에만 주관식 문항이 출제될 것이라 주관식 문항에 대한 채점이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시험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6) 평가 분야의 연구 활성화를 위해 평가 결과에 대한 사후 연구 분석 공표가 필요하다.

 

(7) TOEFL처럼 컴퓨터 평가(CBT: Computer-Based Test) 방식이나 듣기와 문법을 수험자의 수준에 따라 출제 문항의 난이도가 자동 조정되게 만든 컴퓨터 개별 적응시험(CAT: Computer Adaptive Test)이 이루어져야 한다.(8) 등급별 어휘 목록이나 평가 항목을 담은 수험생용 지침 안내서가 나와야 한다.

 

(8) 배치고사, 중간 평가, 기말 평가, 수행 평가 등에 관한 방법론도 학교별로 연합하여 공동 연구를 하여 방법론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6.5. 교사 교육 제도의 개선

 

유능한 언어 교사의 자질을 교육자적 자질, 언어적 자질, 언어교육자적 자질의 세 영역을 갖추어야 한다. 언어 교사는 입과 몸으로 말하고(언어적 자질) 머리로 말하며(언어교육자적 자질) 가슴으로 말한다는(교육자적 자질) 사실을 원리로 하여, 한국어 교사는 한국의 힘을 토대로 한국어의 힘을 세계로 펼칠 선구자요 한류의 진정한 주역이며 한국문화의 전도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한국인을 대표하는 자세로 한국어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데 힘써야 한다. 최근에 많은 대학원이 한국어교육자들을 배출하는데 대부분의 대학원의 교육과정이 비슷하고 대학원마다 개성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대학원 학위과정들은 권역별로 대상 언어권별로 특성화를 지향하고 현지 외국어 능력도 대학원 과정에서 함양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

관계 기관들은 한국의 얼굴, 대학의 얼굴로 한국어교육기관과 교사들을 키우고 육성할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한국어교육기관이 성공하고 국제화 요구에 부응하는 길은 이러한 교사들, 관리자들의 각성과 상호 이해를 위한 협동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국내외 한국어 교사의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 주된 이유는 공교육 체제하에서 관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국립대학이나 사립대학이나 부설 교육기관의 교강사들은 정식 교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신분 보장과 예우가 시급한 과제이다. 시간강사 체제가 불가피하더라도 대우 전임교원들을 늘리고 학교 직제 안에서 의료보험, 연금 등에서 복지 혜택을 강화하여야 한다.

 

국외에서도 많은 개도국 강사들이 한국어 강사 월급 50-200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부업을 여러 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재정, 시간 등에서 부족하여 학문적 자립이 불가능하고 교육과정 개발, 교재 개발, 교육 자료 제작의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개도국 강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초청 연수, 프로젝트 공동 개발 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7. 한국어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 정립

 

한국어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려면 한국어교육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어교육학은 88 올림픽 이래로 발전되어 와서 그 역사가 매우 짧아 한국어교육학의 학문적 성격과 구조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립된 것이 없다. 이는 국어교육의 경우에도 사정이 비슷하여 학문적 정체성 규명이 요구된다. 이러한 정체성이 규명되어야 교사 양성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교사 양성, 임용, 연수 단계에 따라 한국어교육학이 적용될 수 있어 더욱 발전하게 되며 학습자도 체계적 교육과정에 따라 재미있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을 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국어기본법(2005. 1. 27 공포)에 따라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고 인증하게 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한국어 교사 양성도 일정한 표준 교육과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다음은 국어기본법에서 전문 교사 양성을 명시하고 그러한 교사 양성에 필요한 교육과정의 요구를 시행령(2005. 7. 27 공포, 대통령호 제18973호)에 밝힌 내용이다.

 

한국어교원 자격 취득에 필요한 영역별 필수이수학점 및 이수시간(제13조제1항관련)

 

번호 영역 과목 예시 대학의 영역별 필수이수학점 대학원의 영역별 필수이수학점 한국어교원
양성 과정
필수이수시간
주전공 또는 복수전공 부전공
1. 한국어학 국어학개론, 한국어음운론, 한국어문법론, 한국어어휘론, 한국어의미론, 한국어화용론(話用論), 한국어사, 한국어어문규범 등 6학점 3학점 3~4학점 30시간
2. 일반언어학 및 응용언어학 응용언어학, 언어학개론, 대조언어학, 사회언어학, 심리언어학, 외국어습득론 등 6학점 3학점 12시간
3.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한국어교육개론, 한국어교육과정론, 한국어평가론, 언어교수이론, 한국어표현교육법(말하기, 쓰기), 한국어이해교육법(듣기, 읽기), 한국어발음교육론, 한국어문법교육론, 한국어어휘교육론, 한국어교재론, 한국문화교육론, 한국어한자교육론, 한국어교육정책론, 한국어번역론 등 24학점 9학점 9~10학점 46시간
4. 한국 문화 한국민속학, 한국의 현대문화, 한국의 전통문화, 한국문학개론, 전통문화현장실습, 한국현대문화비평, 현대한국사회, 한국문학의 이해 등 6학점 3학점 2~3학점 12시간
5. 한국어 교육 실습 강의 참관, 모의 수업, 강의 실습 등 3학점 3학점 2~3학점 20시간
  합계   45학점 21학점 18학점 120시간

 

위 도표는 한국어 교사에게 요구하는 교육내용이므로 이는 한국어교육학이라는 학문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규명하는 단서도 된다. 이미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필요한 학문으로는 다음의 체계들이 거론되어 온 바 있다.

 

백봉자 외(2001)에서는 교사교육과정을 일반교사 양성과정, 전문교사 양성과정, 국외교사 연수과정의 세 종류로 나누고 표준교과과정을 제시하여 각각 (1)국어학, (2)언어학, (3)교육학, (4)한국어교수법, (5)한국학의 5대 영역으로 학문 영역을 나누었다. 이 중에 (1)(2)는 국어학으로 통합할 가능성이 있고 (3)(4)는 ‘한국어교육학’ 영역으로 통합할 수 있어 이렇게 통합하면 한국어교육학은 국어학, 교육학, 한국학의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이 분류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의 기능 영역을 교육학 속에 넣은 것이 특징이다.

박영순(2001)에서는 한국어교육학의 학문 체계를 언어 내적 분야, 언어 외적 분야라는 체계로 구별, 분류하고 있다.

 

(1) 언어 내적 분야:

① 언어기능교육: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② 문법교육: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한국어사

③ 문화교육: 한국인의 가치관과 전통, 한국의 예술, 한국의 문화재, 한국의 생활풍습, 한국의 문학

(2) 언어 외적 분야

① 교육 분야: 교육과정론, 교육방법론, 교육평가론, 교재론, 교사론

② 학습자 연령 및 학력별: 초, 중 고, 대학, 일반인별

③ 학습자 성격별: 외국인, 재외동포

④ 언어능력별: 초급, 중급, 고급, 원어민급

⑤ 지역별: 영어권, 중어권, 일어권, 노어권...등

 

손성옥(2003)은 미국의 최근 학문 동향과 관련하여 한국어교육의 학문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1) 일반언어학 이론

(2) 언어교육론 및 교수법 이론

① 언어교수법과 문법교육

② 언어습득론

③ 언어능력 측정 평가론 및 통계학

(3) 응용언어학

① 담화분석론

② 말뭉치언어학

 

위 (3)은 (1)의 일반언어학과 관련할 때 ‘언어학’ 영역이라 할 수 있어 언어학의 다양한 이해가 중요함을 보여 주며 평가론 분야를 중시한다. 우리는 한국어교육학이 다음의 영역으로 체계화될 수 있다고 본다.

 

(1) 한국어학

① 이론언어학: 음운론, 문자론, 어휘론, 문장론, 의미론, 담화론(텍스트언어학, 화용론, 담화분석), 언어규범학(맞춤법, 표준어, 표준화법, 언어에절 등), 언어사(국어사), 언어학사(국어학사), 언어연구방법론

② 응용언어학:

ㄱ. 습득 영역: 언어습득(모어습득, 외국어습득), 대조언어학, 오류분석론, 이중·다중언어론, 언어교육학(외국어교육학)

ㄴ. 기능 기초 영역: 독서론, 화법론, 작문론

ㄷ. 학제간 영역: 사회언어학, 심리언어학, 전산언어학(국어정보학, 말뭉치언어학), 인류언어학(민족지학), 문화인류학(국어문화론), 매체언어학, 소통학(커뮤니케이션학), 언어논리학, 언어철학, 사전편찬론(국어사전론), 응용언어연구방법론

 

(2) 한국어교과론

① 기능교육 영역: 말하기·듣기교육론, 읽기교육론, 쓰기 교육론

② 문법교육 영역: 발음교육론, 문자교육론(한글 한자교육론), 어휘교육론, 문장교육론, 의미교육론, 담화(텍스트론, 화용론)교육론, 규범교육론

③ 문화교육 영역: 한국어문학교육론, 한국어문화교육론(한국학교육론)

 

(3) 한국어 교육과정론

① 교육 기본 영역: 한국어교수요목론, 한국어교수학습론(교수학습방법론, 다매체교육론), 한국어교재론, 한국어교육평가론,

② 교육 정책 영역: 한국어교육정책론, 한국어교사론, 한국어교육사, 한국어교육학사

③ 실습 영역: 교육실습(참관, 모의수업, 강의실습)

 

우리는 (2)를 분과 내용별 영역이라 한국어교과학이란 용어를 썼고, (3)을 한국어 교육과정론이란 새로운 용어를 썼다. (3)은 교육과정의 기술 내용에 교수요목, 교재, 교수학습, 평가가 다 포괄되므로 한국어 교육과정론이라는 용어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어교육학은 이러한 세부 영역별 논의를 통하여 학문적 정립과 세분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8.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어 세계화의 과제를 다루어 보았다. 우선 한국어 세계화라는 용어가 문제점이 있어서 언어제국주의의 도구로 추진되기 쉬우므로 후진국에 경제 문화 식민지를 강요하도록 하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국어 세계화의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을 언급하고 이러한 조건들이 곧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보았다. 외적 조건으로는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 문화 국가로 발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타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문화의 정신이 필요하며, 호감 문화는 발전시키되 혐오 문화는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의 세계화, 한국인의 세계화, 한국문화의 세계화 위에서 가능하거니와 세계화는 곧 선진화와 통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타 민족에 대한 우월주의나 비하주의를 청산하고 국제간 문화 이해를 위해 ‘문화간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내적 조건으로는 한국어 관련 정책기관들이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기관 협의회의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교육내용 문제로는 교육과정의 표준화와 다양화가 필요하고, 한국어 교육용 문법의 기술, 각종 문법 용어의 통일을 토대로 언어권별 문법 용어의 번역 통일이 필요하며, 교재 개발시 문화교육이 철저히 연계되도록 할 것, 학습자가 배우기 쉽고 재미있는 교재를 만들 것, 능력 평가 시험을 위한 등급 목표의 구체적 표준화, 대학원마다 한국어 능력과 외국어 능력을 함양한 언어권별 전문 한국어 교사 양성을 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한국어 교사의 신분 보장과 복지 강화, 교사간 상호 수업 참관 등을 통한 신뢰와 발전의 관계 함양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어는 대국언어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 요구에 따라 한국어 연구자들이 한국어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한국어의 기초 연구 자료, 교육용 자료들의 개발에 힘쓰며 한국어교육학의 학문적 체계 확립에 힘쓴다면 한국어교육은 21세기에 주목받는 학문 분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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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언어 통합 방안

 

홍윤표(연세대)

 

1. 머리말

 

통일은 우리가 지난 1세기 동안 노력해 온 목표의 최후 과제다.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경제 부흥운동, 통일운동 중에서 다른 것들은 이룩되었지만, 통일은 아직도 우리의 피땀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통일도 언젠가는 다른 목표들처럼 우리 앞에 다가서 있을 것이다.

 

통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민족의 문화를 잇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민족의 언어다.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곧 언어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동일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은 우리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정치적으로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곧 통일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남북의 언어를 통합하여야 할 당위인 것이다.

 

이 발표의 목적은 남북한 언어의 통합 또는 통일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 언어의 통일’이란 국토의 분단처럼 남의 언어와 북의 언어로 분단되어 이질화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남북한 언어의 통합’도 우리말이 둘 이상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자는 남북한 언어가 분열되어 이질화되어 있거나 둘 이상으로 쪼개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 극복을 위하여’라거나 ‘남북한 언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하여’라는 식의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발표에서는 통합의 대상이 되는 언어 문제를 논의하고, 지금까지 남과 북이 민족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가를 살펴 보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안해 보고자 한다.

 

2. ‘북한어’의 개념

 

언어는 지역적으로 분화되어 변화한다. 지역적으로 분화된 국어를 일컫는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 중부방언, 동남방언, 서남방언, 동북방언, 서북방언, 제주방언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제주도 방언, 전라도 방언, 경상도 방언, 충청도 방언, 경기도 방언, 강원도 방언, 황해도 방언, 평안도 방언, 함경도 방언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말, 대구말, 부산말, 전주말, 광주말, 평양말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명칭은 방언이나 지역어의 범주에 따라 붙인 것이다.

 

‘남한어, 북한어’라는 이름은 방언이나 지역어의 범주에서 벗어난 명칭이다. 방언이나 지역어는 한 언어가 지역적으로 분화된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남한어’나 ‘북한어’는 지역적으로 분화된 국어를 지칭하지만, 방언이나 지역어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이름은 학술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면서도 실제로는 널리 쓰이고 있다. 한 언어의 분화이면서도 그 분화의 요인이 ‘국가나 민족의 분단’이라는, 언어학적으로 전혀 정의되지 않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가 분단 또는 분열되면서 분단 또는 분열된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름을 붙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분단된 지역의 이름을 붙여 ‘남한어, 북한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남한어, 북한어’가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 등과 동일한 차원의 명칭은 아니다. 왜냐 하면 이들 명칭은 각각 성립된 국가 이름을 붙여 부른 명칭이지, 분단된 뒤의 언어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어, 북한어’는 한 언어가 분화된 것의 명칭이어서 한 언어임이 분명하지만,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는 한 언어가 아닐 수도 있다. 한 언어가 분화 또는 분열된 것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어, 북한어’란 말은 남과 북이 분단된 뒤에 생겨난 용어이어서 그 사용의 역사가 짧다. 그래서 ‘남한어, 북한어’는 단순히 ‘남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특히 ‘북한어’란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남과 북이 분단되기 이전에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은 ‘북한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북한어’는 ‘분단된 뒤의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로 쓰이는 것 같지만, 엄밀히 검토해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반딧불’(벌레 이름)을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양강도) ‘에디벌레’라고 한다고 해서, 그리고 ‘수수’를 ‘가내수끼’(함북)라고 한다고 해서, ‘에디벌레’와 ‘가내수끼’를 ‘북한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 말들은 ‘북한 방언’이라고 할 뿐이다. 대신에 북한에서 ‘도넛’은 ‘가락지빵’이라고 하고,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이라고 하는데, 이 말들은 ‘북한 방언’이라고 하지는 않고, ‘북한어’라고 한다. ‘가락지빵, 가두녀성’은 분단 이전부터 있었던 말이 아니라, 그 이후에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어’는 ‘분단 뒤에 북한에서 새로 만들어 쓰는 말’로 인식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 북한에서 쓰이는 말 중에 남한의 말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말들도 ‘북한어’라고 하기도 한다. 예컨대 북한에서 ‘일 없다’는 ‘초연하다, 괜찮다’란 의미를 가지고 쓰이거나, ‘바쁘다’가 ‘힘에 부치거나 참기 어렵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을 북한어라고도 한다.

 

그래서 북한어는 ①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 ② 분단 후에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 ③ 분단 후에 북한에서 새로 만들어낸 말 ④ 남한의 말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말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북한어’까지도 수록범위에 넣은 국립국어원 편찬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북한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사전에서 ‘북한어’란 올림말은 찾을 수가 없다. ‘일러두기’의 ‘수록범위’에 분명히 “표준어를 비롯하여 북한어, 방언, 옛말을 두루 수록하였으며 흔히 쓰는 비표준어도 올렸다”고 하였는데, ‘북한어’란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전들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어’란 단어를 올린 국어사전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행히 ‘표준국어대사전’의 ‘일러두기’에

 

북한어는 <조선말 대사전>(1992)에 수록된 단어 가운데 남한에서 쓰임이 확인되지 않은 단어와 어문규정의 차이로 달리 표기하는 단어를 편찬원칙에 따라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남한에서 쓰는 단어라도 북한에서만 쓰는 용법이 있다면 북한어 뜻풀이를 덧붙였다

 

란 내용이 있어서, 여기에서 ‘북한어’의 개념을 유추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북한어’란 ① 남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 ② 어문규정의 차이로 남한과 달리 표기하는 말 ③ 남한과 뜻이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북한어’의 개념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암시하고 있는 ‘북한어’의 개념을 종합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① 북한 지역에서만 쓰이고 남한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말

② 남북 분단 후에 북한 지역에서 새로 형성되거나 만들어낸 말

③ 남한의 단어와 형태는 동일하지만 뜻을 달리하여 쓰이는 말

④ 어문규정의 차이로 남한과 달리 표기되는 말

 

그런데 일반인들은 ‘북한어’가 모두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일부 단어의 뜻풀이에 그러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단어만을 북한어라고 한다면 북한어 어휘수는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남한어에도 그러한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발표자에게 ‘남북한 언어 통합 방안’이란 제목이 부여된 것도 ‘남북한어’의 ‘남한어’와 ‘북한어’란 개념을 이렇게 남과 북이 서로 달리 쓰는 국어로 생각하고 이를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발표자는 ‘남한어’와 ‘북한어’를 통일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민족과 국가는 통일의 대상이지만, 언어는 통일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표자가 생각하는 ‘남한어’와 ‘북한어’의 개념은 오히려 더 큰 의미를 지닌 용어로 쓰고자 한다. 즉 남한어와 북한어란 현재 남한과 북한에서 쓰이는 국어를 말하려고 한다.

 

3. 남한 지역어와 북한 지역어의 뿌리

 

남한 지역어와 북한 지역어의 역사적 뿌리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북한이 옛날 고구려의 영역 안에 있던 지역이어서 북한어의 뿌리는 고구려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남한 지역어는 신라어와 백제어를 뿌리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북이 갈려 있고 남한은 동서가 지역감정으로 갈라지면서,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라는 용어가 자리잡는 안타까운 실정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재의 국어와 연관시켜 볼 때 부질없는 것이다. 북한 지역어는 고구려어를 기층으로 하였고, 주로 동남 지역어는 신라어를, 그리고 서남 지역어는 백제어를 기층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 언어는 하나인 것이다.

 

오늘날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가 같은 언어였던가 다른 언어였던가 하는 문제는 학계에서조차 논란이 심하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 국어학자들의 견해차도 심하다. 그러나 발표자는 삼국의 언어는 하나의 언어였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삼국의 언어가 각각 달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문헌 자료 중에서 몇몇 단어를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진 연구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고구려어에서는 ‘왕’을 ‘皆’()라고 하였는데, 백제에서는 ‘鞬吉支’라고 하였다는 점 등이다. 기본적인 단어들은 대개 방언형이 지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몇몇 단어의 차이점만으로 삼국의 언어가 달랐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삼국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가장 적극적인 증거는 삼국의 언어가 달랐다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는 점, 그리고 삼국의 언어가 달라서 통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화나 민간전설이 하나도 없다는 점,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증거는 이 세 지역의 언어가 오늘날 서로 큰 무리 없이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에 삼국의 언어가 다른 언어였었다고 가정한다면, 오늘날 세 지역의 언어가 큰 무리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언어로 통일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그러한 역사적 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삼국의 언어가 서로 다른 언어(설령 친족관계에 있다고 하여도)가 아니라 한 언어의 방언형이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남한 지역어와 북한 지역어도 각각 다른 언어가 아니라, 한 언어의 방언형인 것이며, 그래서 남북한의 언어는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4. 남북한 언어 차이와 그 배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언어와 북한의 언어가 이질화되었다고 계속 주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에 국어학자들은 남한 지역과 북한 지역의 국어는 방언의 관점에서 분류ㆍ기술ㆍ설명하여 왔다. 그렇다고 국어의 방언을 남한 방언과 북한 방언으로 크게 구분하지는 않았었다. 단지 도별로 함경도 방언, 평안도 방언 등으로 구분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남과 북의 언어가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은 분단 이후, 한참 이후의 일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1970년대에 남북이 접촉하면서(7.4 공동성명 발표 및 남북 적십자회담 등), 회담장에서 시중들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는 호칭을 썼더니, ‘접대부’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 말이 전래되면서, 남북의 언어가 달라졌다는 소문이 크게 나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6.25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도 그 이전에는 흔히 사용하여 왔던 ‘동무, 인민’ 등의 단어가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에 이러한 단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당국에 신고할 대상이 되었다. 즉 간첩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남과 북의 언어 차이는 과장되어 갔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의 언어, 즉 북한어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1970년도 초기에 간행된 북한어와 연관된 책은 모두 정보 관련 연구소나 기관에서 간행된 것이다. 1971년에 나온 『북한 용어 해설집』은 ‘북한문제연구소’에서, 1973년에 간행된 『북한 언어 정책 자료집』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나왔고, 『북한 말다듬기 자료집』도 1973년에 중앙정보부에서 출판하였으며, 『북한 용어 대백과』도 1976년에 ‘국민방첩연구소’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남과 북의 언어는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한 언어 안에서 두 지역의 언어가 차이가 있다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➀ 언어학적으로는 언어체계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음운체계, 문법체계, 어휘체계 등에 차이가 있을 때 두 지역어는 차이가 있다고 하고 그것을 방언이라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 중부방언, 동남방언, 서남방언 등의 ‘방언’이라고 하는 개념이 바로 언어체계가 달라졌을 때에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일반인들이 두 지역어가 다르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언어체계를 검토한 적이 없으면서도 말이 다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➁ 그 지역어의 억양 등의 특색이 다를 때 그 말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이나 북한 출신의 말을 듣고 북한말이라고 하는 것은 곧 그들의 말씨를 통해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억양이나 말씨가 다르다고 의사소통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➂ 그 지역어의 어휘가 서로 다를 때, 그 지역어가 다른 지역어와 다르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표준어와 다른 어휘를 사투리라고 하여 ‘사투리가 심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는 것은 주로 어휘다. 그래서 어휘가 다르거나, 그 어휘의 의미가 서로 다를 때, 우리는 두 지역어가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남북 언어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대개 이 세 번째의 경우이다. 그래서 남한어, 북한어란 말은 주로 그 어휘가 남한에서 쓰이는 것인가 북한에서 쓰이는 것인가를 기준으로 하여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의 어휘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이 문제는 남한어와 북한어의 어휘가 형성되는 과정을 검토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어휘가 형성되는 경우는 몇 가지가 있다.

➀ 어휘가 생성되는 경우이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어휘가 만들어지는 경우인데, 이때에는 어느 한 개인이 쓰기 시작했던 것이 널리 알려져서 모든 사람들의 동의 아래 한 언어의 어휘로 정착되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어휘들은 이러한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전혀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형태소들을 결합하여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서양에서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기존에 있었던 사물의 명칭에 ‘양(洋)’이나 ‘서양’(西洋)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만든 어휘들이 널리 통용되어 ‘양복, 양말, 양재기, 양철. 양초, 생철(서양철)’ 등처럼 국어 어휘로 정착된 것들이 많은데, 이제 ‘양’의 의미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➁ 인위적으로 어휘를 만드는 경우이다. 이것은 대체로 관련 단체나 국가기관(예컨대 ‘국립국어원’ 등)이 제정하여 보급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전문용어나 학술용어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갓길, 말뭉치, 말모둠’ 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➂ 외국어에서 어휘를 차용하여 쓰는 경우이다. 대부분이 외국어를 음차하여 들여온다. 어느 것은 국어로 정착하기도 하고 어느 것은 외국어로 남아 유행어처럼 쓰이다가 사라지곤 한다. ‘컴퓨터, 와인’ 등이 정착된 예들이다.

 

➃ 어휘를 순화하여 또는 다듬어서 만드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외국어 또는 외래어로 쓰이는 것을 우리 고유어로 바꾸어 대치시키는 것인데, 일제 강점기에 들여온 일본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순화시킨 경우와 최근에 영어로 들어온 말들에 대한 표준화 내지는 순화 차원에서 다듬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인터체인지’를 ‘나들목’이라고 다듬어서 성공하였고, 북한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승강기’, ‘에스컬레이터’를 ‘계단 승강기’라고 하여 대치시켜 성공하고 있다.

 

➄ 어휘의 형태는 그대로 있되, 어휘의 의미가 변화하는 경우이다. 북한에서 ‘동무’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이란 뜻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혁명대오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란 뜻으로 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어휘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에는 그 어휘가 만들어지는 일정한 규칙, 즉 조어법이 적용되고 또 검증된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진 어휘들은 그것이 지역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어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라도 어느 지역에서 ‘깍두기’를 ‘똑딱지’라고도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무를 ‘깍둑깍둑’ 썰었다는 의미와 연관시켜 ‘똑딱똑딱’ 썰었다는 의미를 연상하게 될 것이며 또한 ‘짠지, 오이지, 싱건지, 단무지’ 등의 ‘지’에 유추되어 쉽게 이해함으로써 국어 어휘로서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휘들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존재한다고 해도 남과 북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표현의 다양성을 보여 주어 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과 북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어휘들에는 큰 차이가 없거나 의사소통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어휘들을 남한어나 북한어로 지칭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

 

남과 북의 어휘 차이를 보이는 것에는 주로 어휘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와 외래어 차용과 다듬어 쓰는 경우, 그리고 어휘 의미가 변화한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휘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의 대부분은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들인데, 남과 북의 학술적 발달이 주로 광복 이후에 이루어졌고 또 남북의 학문 발달의 배경이 다르며 남북이 상의하지 않은 채로 학술용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북의 학술용어 차이는 자못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학술용어는 과학적 개념을 정확히 표현하여야 하기 때문에 단일성과 규범성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과학기술의 발전ㆍ보급ㆍ응용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에 이의 통일이나 표준화는 시급한 실정이다.

 

외국에서 어휘를 차용하여 쓰는 경우에는 남과 북이 각각 다른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기 때문에, 동일한 어휘이면서도 다른 어휘로 인식될 만큼 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예컨대 북한에서는 ‘베트남’을 ‘윁남’, ‘헝가리’를 ‘웽그리아’로 표기함으로써 두 개가 전혀 관계없는 어휘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들어온 외래어들을 순화시키거나 다듬어 왔다. 남한에서는 ‘우리말 도로 찾기’를 시작한 8.15 광복 직후(1948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국어 순화운동을 벌여 왔다. 1947년에 ‘국어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말을 도로 찾는 운동으로 주로 일본어투 심의를 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각종 용어를 계속해서 순화하여 왔다. 국립국어원에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순화한 어휘수만도 약 20,000개가 넘을 정도였다. 민간단체에서 순화한 단어는 더 많은 편이다.

 

북한에서도 이 작업은 1946년부터 약 3,4년간 문명퇴치운동을 벌이고, 1949년에 한자 폐지를 단행한 후, 계속하여 말다듬기 운동을 하여 왔다. 지난 10여년간에 약 5만여 단어를 다듬었다.

 

남북한의 국어 어휘 순화, 또는 말다듬기 작업은 서로 상의 없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 남한의 국립국어원과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가 협력하여 남북한에서 순화한 자료를 통합해 검토한 결과 순화한 내용은 거의 80 퍼센트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의미가 달라진 어휘도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대개 기본적인 개념의미가 바뀐 것이 아니라 내포의미가 바뀐 것이 많은 편이어서, 광의의 변화로 본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수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북한의 언어는 광복 이후에 새로 만든 어휘들이나 차용한 어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남북한 간의 언어차이가 되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남북한의 언어차이라고 하기 어렵다. 언어변화로 인한 결과이어서 그것은 세대간의 언어 차이로 인식되어야 한다. 오늘날 남한에서 세대간의 언어차이로 인해 부자간이나 모자간, 또는 부자간이나 부녀간에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북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이에 비한다면 남북한 언어 차이는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북한어의 차이는 ➀ 방언적 차이 ➁ 새로 만든 말(학술용어 등) ➂ 새로 차용한 말 ➃ 다듬은 말(순화한 말)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언어의 기본이 되는 기초어휘들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서 시행하는 ‘21세기 세종계획’의 ‘한민족 언어 정보화’ 분과에서 남과 북의 기초 어휘 10,000개를 비교하여 ‘남북한 언어 비교 사전 검색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남북한 언어에 차이가 많다는데, 왜 이 사전 검색 프로그램에는 왜 차이가 없느냐고 하면서, 차이가 나는 단어 3,000개를 골라 ‘남북한 이질화된 언어 검색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하여, 그것을 만드느라고 연구진들이 애를 먹었던 일이 있다.

그래서 남북한어의 차이는 ➀ 방언적 차이 ➁ 새로 만든 말로 인한 차이 ➂ 다듬은 말(순화한 말)로 인한 차이 ➃ 의미변화가 일어남으로 인한 차이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5. 통합 및 표준화의 문제

 

남한과 북한의 언어는 통일 또는 통합하여야 할 대상이 있다. 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➀ 남과 북이 각각 내적으로는 통일시켜 놓았으되 남과 북이 공적으로는 통일 또는 표준화하지 못한 것

➁ 남과 북의 어느 한쪽만 내부적으로 통일시켜 놓고 다른 한쪽은 내부적으로 통일시키지 못한 것

➂ 남과 북이 모두 내부적으로도 통일시켜 놓지 못한 것

 

(1) 어문규범의 통일 문제

 

남한과 북한이 각각 내부적으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남과 북이 통일시키지 못한 언어상의 문제는 어문규범이다. 한글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이 남한과 북한이 각각 다르다. 부분적으로 동일하고 부분적으로 다른 규범들을 통일시키는 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어두 ㄹ이나 ㄴ의 표기 문제, 사이시옷 표기 문제, 그리고 한글 자모 배열순서 등이 가장 큰 핵심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가 중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관련 기관들은 이를 통일시키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합의되었을 때 돌아올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내지는 정치적인 문제로 심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조금만 양보하여도 더 많이 양보하였다는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하고, 또 어문규정의 개정은 출판을 비롯한 모든 국민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합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1995년 8월과 1996년 8월에 중국에서 남의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과 북의 조선어사정위원회 담당자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결론은 앞으로 더 많은 차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남과 북이 어문규범을 더 이상 손대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현재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후로 남북의 어문규범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어문규범 단일화 논의로 이어졌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 내의 ‘어문 규정 단일화 위원회(가칭)’는, 북은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담당자들이, 그리고 남은 국립국어원이 지정한 위원이 각각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 산하의 독립된 기구에 소속되어 어문규정 단일화 작업을 하고 있다. 남북의 공적 기관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겨레말큰사전 어문규범 단일화 위원회가 합의한 남북 어문규범은 일단 겨레말큰사전에만 적용하는 것임을 구두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합의된 가칭 ‘겨레말 어문규범’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전면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이 통일안에 따라 남과 북이 각각 한 항목씩이라도 내부적으로 수정하기를 계속하여서, 통일되었을 때에는 남북의 어문규정이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남북 어문규범 단일화 위원회는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어문규범이 단일화되면 제일 먼저 이 규범에 따를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중국의 우리 동포들이다. 그들은 남과 북의 어문규범 통일을 우리보다 더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이다. 중국 동포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조선어 어문규범에 따라 후세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이 규범들은 북의 규범에 가깝다. 그러나 최근에 남한과 교류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남한의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게 되어 자신들이 정해 놓은 어문규범보다 남한의 어문규범에 따른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어문생활에 상당한 혼란에 야기되고 있다. 어문규범 책임자와 담당자들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들이 남북 어문규범을 통일시키면 거기에 따라 그들의 규정을 고치겠다고 발표자에게 약속한 바 있다.

 

이것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남의 ‘표준어’와 북의 ‘문화어’ 개념에서 벗어나 민족어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통어’ 개념이 도입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앞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유의해서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어문규범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의 국민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문규범의 수정이 결코 서로 양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효율적인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 합리적인 규칙을 도출해 내는 것이지, 어느 한편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던 어문규범을 서로 양보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컨대 남에서는 ‘냇가, 장맛비, 낚싯대’로, 북에서는 ‘내가, 장마비, 낚시대’로 쓰던 것을 ‘냇가, 장마비, 낚시대’로 통일시켰다고 해서 남에서 북에 한 개를 더 양보했다고 아우성치는 그러한 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어문규범의 통일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2) 우리말 정보화를 위한 한글 코드의 통일 문제

 

남한과 북한이 각각 내부적으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남과 북이 통일시키지 못한 언어상의 문제로 한글 코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세 가지 걸림돌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글’의 명칭, 국제표준기구(ISO), 어문규범의 문제이다. 국제표준기구에서 남북이 한글코드를 합의하여 통일시킨다고 해도 국제표준기구에 등록하는 일에 찬성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유니코드로 통일시킨 국제문자코드를 재조정함으로써 야기될 수많은 손실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등록시킬 코드의 명칭이 ‘한글’로 되어 있는데, 북한에서는 ‘한글’ 대신에 ‘조선글’을 쓰고 있어서, 등록 단계부터 난항을 겪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글코드는 자모 배열순서가 동일하여야 코드도 통일시킬 수 있는데, 통일시켜야 할 어문 규범 중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 한글 자모순 배열순서이어서 이 한글 코드는 산적한 남북한 언어문제의 축소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한글 코드 통일 노력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었다. 1994년부터 국어정보학회를 중심으로, 중국 연변에서 이루어졌던 ‘코리안 컴퓨터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글 코드를 통일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6년에는 한글 자모순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였고, 2001년에는 ‘한글’과 ‘조선글’을 ‘정음’으로 통일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막상 코드를 통일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참여자들이나 기관은 남북 학자들이 모여 합의하여 통일하였다는 데에만 의의를 둘 뿐, 이를 어문생활에 적용시켜야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고 또 내면에는 통일시켜도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실효성을 잃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남북 학자들이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또 남북의 실상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여, 앞으로 남북 당국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중요한 디딤돌을 놓은 셈이 되었다.

 

(3) 학술용어의 통일 문제

 

북한은 내부적으로 표준화시켜 놓았지만, 남한은 아직 내부적으로 통일시키지 못한 것이 학술용어다. 남북의 원활한 학술 교류를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화하여야 할 대상이 이것이다. 현재 남북이 각각 학술용어집을 간행하여 그 실상은 대략 파악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남과 북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한 정밀한 연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남북한 과학용어를 모두 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제공한 것도 있으나, 데이터베이스 구축만으로는 단순 비교밖에 되지 않는다.

 

남북의 학술용어를 통일시키기 위한 노력은 일찍부터 있었다. 1994년부터 국어정보학회를 중심으로 하여 코리안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대회가 금년까지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이 모임에서 한글 자모순, 컴퓨터 자판, 한글의 명칭 등을 잠정적으로 통일시켰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용어를 통일시켜 통일 용어집을 간행하여 남북이 각각 배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용어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현장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책임진 국가기관이 부담감으로 인하여 관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용어 통일의 전제조건이 그 용어를 표기하는 어문규범의 통일이기에 실현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학술용어 표준화 작업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남한만의 표준화 작업이며, 또 하나는 남북 학술용어 통일 작업이다. 학술단체연합회에서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9개 학회를 대상으로 학술용어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15만 개의 학술용어를 정비하여 놓았고, 이러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표준화된 학술용어가 교육인적자원부의 교과서 편수용어나 대학의 교과서에 적용되어 사용될 때에만 효력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표준화에는 아직도 험난한 길이 남아 있다.

 

남북한 학술용어를 통일하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문용어센터(KOTERM)에서는 10여년 전부터 북한의 전문가들과 접촉하면서 자료의 교환을 시도하고 있는데, 지금도 표준화를 위한 정지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한국 학술 진흥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연구진(연구책임자 : 고려대 정광 교수)이 북한의 김일성 종합대학의 연구진(연구책임자: 김영황 교수)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산발적이면서도 비체계적인 노력이지만 남북의 학술용어를 표준화하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표준화를 위한 별도의 남북 창구와 기구가 필요하다.

 

(4) 한자의 통일 문제

 

남북한이 모두 내부적으로도 표준화시키지 않은 언어 문제에 한자가 있다. 한자가 어문생활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전통문화의 정보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하도록 한다. 물론 남과 북이 각각 교육시켜야 할 한자를 선정해 놓고는 있지만, 한자의 구체적인 문제는 아직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자는 일정한 새김과 음을 가지고 있다. ‘天’이면 ‘하늘’이라는 새김과 ‘천’이라는 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한자의 석음은 남북이 내부적으로도 표준화시키지 못한 실정이다. 예컨대 ‘李’를 ‘오얏 리’라고 알고 있지만, ‘李’씨 성을 가진 사람조차도 ‘오얏’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이 ‘오얏’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두의 잘못’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자 새김의 보수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잘못된 단어를 새김으로 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북한에서는 ‘오얏 리’라고 하면서도 ‘조선말대사전’에는 ‘오얏’이란 단어를 ‘추리’라고 풀이하였다. 그리고 ‘자두’는 ‘추리의 잘못’으로 풀이되어 있다. 결국 북에서도 ‘오얏’을 잘 쓰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 연변에 가면 ‘자두’를 전혀 모르고 그것을 ‘오얏’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자 정리는 남북한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한자의 이체자 정리도 현재 정리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한자어 정리도 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남북 학자들이 논의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6. 민족어 발전을 위한 과제

 

지금까지 남북의 교류를 통하여 민족어의 발전을 위한 진지한 의식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들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관심의 대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① 어문규범의 통일 문제

②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족어의 문제(부호계 통일, 자모순 통일, 용어 통일 등)

③ 자료의 교류 문제

④ 우리말과 글의 순화 문제

⑤ 남과 북의 방언 조사 문제

⑥ 남과 북 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 문제

 

이러한 남과 북의 교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성과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①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의 신뢰가 쌓여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6.15 공동선언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오랜 동안 서로의 존재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모두가 우리말과 글을 통해 통일을 이루고 우리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려는 학자들의 내면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② 이러한 신뢰의 결과로 몇 가지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글 자모순 통일, 컴퓨터 자판 통일, 컴퓨터 용어 통일, 남과 북의 방언 조사 합의,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합의 등등 많은 합의가 이루어졌다. 현재로서는 그 합의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이 있는데, 대개 남과 북의 교류 초기에 이루어진 합의보다는 최근에 합의한 내용들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 편이어서 앞으로의 전망이 매우 밝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존의 교류를 바탕으로 하여 민족어를 발전시키는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 구성

 

계속적으로 시행될 이러한 학술적 교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구체적인 중요한 일은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그 주체가 남과 북의 국가기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국립국어원(남)과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북)가 담당한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며, 여기에 해외(특히 중국)의 우리글과 우리말을 다루는 기관이 동참할 필요가 있다. 각각 위원회가 구성되고 공동위원장은 남과 북에서 번갈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예산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곳에서 담당하고, 공식적인 창구를 미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각 위원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2) 민족어 공동 연구소 설립

 

남북 학자들이나 담당자들이 모이지 않고 잠깐 만나 회의를 하는 정도로는 연구가 진행되기 어렵다. 따라서 늘 학자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공동 연구소 설립이 필요하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에서는 북한의 개성에 공동 사전편찬실을 차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남북 공동 연구소 설립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동 연구소에서는 남북의 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신어나 전문용어를 공동으로 심의할 수 있으며, 학술대회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학자들이 만나기 위해 해외에 쏟는 비용을 이곳에 투자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인데,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직접 협의하여야 할 것이다.

 

(3) 자료의 교류

 

학문에서 자료와 이론은 학문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그리고 실험이라는 앞바퀴가 있어야 한다. 자료와 이론은 어느 편이 더 크거나 작으면 학문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고 말 것이다. 특히 이론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지만, 자료는 변화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의 자료 교류는 이론적 교류보다 더 시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는 잘 아는 바와 같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1차 자료와 2차 자료가 그것이다.

 

➀ 연구 자료

 

남과 북의 연구논저들은 정보의 부족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의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남에서는 북의 연구업적들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근에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회에 북측 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한 자료목록들이 있으나, 그 공개가 가능한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남한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서 구축해 놓은 기사색인을 통하여 국어 논저 목록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국립국어연구원에서도 '국어 연구 논저 목록(1)<1991년-2001년> (2)<1981년-2002년> 의 두 가지를 CD로 제작하여 연구자들에게 배포한 바가 있다. 이 자료들은 북의 학자들에게 공개될 수 있을 것이지만, 역시 본문이 없기 때문에 남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 주제를 파악하는 데에나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북 학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는 쉽게 각각의 연구업적들을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의 구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글의 연구 자료 구축의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➁ 말뭉치(코퍼스)

 

두 번째의 자료 교류는 소위 말뭉치(코퍼스)의 교류이다. 현재 북의 코퍼스 구축 현황은 알 수 없다. 남에서는 '21세기 세종계획'이라는 국어 정보화 중장기 발전계획에 의하여 구축된 코퍼스가 상당량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코퍼스를 남과 북이 공동으로 구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남과 북이 각각 구축한다면 비용과 노력에서 쓸데없는 이중 노력을 하는 편이니, 각각 구축해 놓은 코퍼스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과 북이 계속적으로 코퍼스를 구축하기 위하여서는 코퍼스 구축 계획이 필요할 것인데, 이 문제도 가칭 위원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4) 남북 지역어 조사

 

방언은 민족의 중요한 언어 문화재다. 오늘날 세계가 급변하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또는 인터넷의 영향과 농촌사회의 도시화로 방언의 소멸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따라서 방언의 조사, 수집, 정리, 보존과 활용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이러한 인식은 남과 북이 동일함을 알 수 있었다.

 

현재까지 남북한 언어를 종합적으로 조사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는 1980년도 초에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남한의 방언조사와 구비문학 자료 조사를 대대적으로 한 적이 있으나 아직까지 그 자료들이 정리되지 않은 셈이다. 방언조사 자료집은 간행되었으나, 자료집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다른 용도, 예컨대 사전의 올림말로 이용된 적도 없을 정도이다. 또한 그 조사표도 대개 음운체계를 연구하기 위한 조사로 조직되어 있어서, 실용성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북)와 국립국어원(남) 사이에 이러한 조사 계획이 논의되고 있고, 조사를 위한 기초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립국어원과 북한의 사회과학원의 언어학연구소가 같이 남한과 북한의 각 도별로 방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은 4 개도에 각 2개 지점에 대한 방언조사를 마쳤으며, 남한도 각도별로 2 개 지점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그것을 전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도 각각 한 지점씩 조사를 마쳤다. 어휘 항목 약 3,000개를 조사하기 위한 질문지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으며, 음운 조사표와 문법 조사표도 만들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자료를 직접 전산화하여 검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직접 그 방언형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갖추어 놓고 자료를 정리할 태세를 갖추어 놓고 있다. 북한 학자들과 자료 조사의 경험을 나누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임도 한 차례 가진 적이 있으며, 이 자료는 남북이 공유하기로 하였다. 현재 12월에 모임을 갖기로 합의하여 놓은 상태에 있다.

 

이 조사는 예산의 부족, 전문가의 부족, 준비기간의 부족(예산처리와 연관된 시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남북이 각각 맡은 지역을 조사하고 있어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지역 조사를 공동으로 하는 문제도 논의조차 하지 못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당국자들간의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 않아, 늘 제3국 사람을 통하여 남북 접촉을 시도하여야 하는 문제로 계획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해서도 남과 북뿐만 아니라 해외의 방언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데, 두 가지 과제가 겹치는 일이어서 서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 과업들도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에서 돕는 방안을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5) 남북 지명 조사

 

지명 조사는 남과 북, 그리고 가능한 한 만주 지역에 걸쳐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특히 현재 불리고 있는 자연부락명과 행정구역명이 동시에 조사되어야 하며, 또한 그 지명에 대한 역사적 자료도 수집하여야 할 것이다. 남에서는 한글학회에서 조사한 자료가 '한국 땅이름 전자사전'이라고 하는 제목을 가진 CD로 보급되어 있으며, 각 지방별로 지명 조사가 이루어져 있지만, 더 정밀하게 조사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에서는 방대한 지명사전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남에 알려진 것은 10권으로 간행된 ‘고장 이름 사전’뿐이다. 지명 조사는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의 행정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서 선뜻 자료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지명사전은 공개하여 연구자들의 편의를 돕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고 국가와 국가간의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섣불리 제안하기 힘들지만, 만주 지역의 지명 조사는 우리말의 계통을 아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가능하다면 남북과 중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조사하여 연구자들에게 제공되었으면 한다. 이 문제도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에서 논의되었으면 좋을 것이다.

 

(6) 겨레말큰사전 편찬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시작은 2004년 12월 13일에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모여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출발하였지만, 실제로 그 뿌리를 찾아보면 멀리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국어대사전’을 남북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제안하였고, 김일성 주석이 이에 동의하여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남북관계 등으로 그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2004년 1월에 문익환 목사 10주기 추모행사에 북에서 대표단을 보내왔을 때, 박용길 장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약 15년간 잊혀졌던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요청하면서 민족적 사업인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작업에 불을 당기게 되었다. 그 후 남의 사단법인 통일맞이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와 북의 ‘민족화합협의회’가 사전 편찬을 위한 실무접촉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길고도 긴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남북 편찬위원들이 금강산과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3차에 걸친 편찬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지난 2005년 7월에는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요강을 남과 북이 합의하여 발표하게 되었으며, 2005년 8월 15일에는 이 편찬사업을 우리 모든 민족에게 보고하는 보고대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이제까지의 과정은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으나, 남북의 사전 공동편찬요강 합의문은 ‘사전의 성격, 사전의 편찬 원칙, 사전의 올림말과 뜻풀이, 작업방식과 사전의 완성 형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사전 편찬의 큰 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합의문은 남과 북이 각각 국어사전을 편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사전 편찬 방법의 최대공약수를 추출하여 온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언어가 한 민족을 확인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어서, 편찬위원들과 남북 당국자들의 마음 속에 이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은 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해 필수적이며 1차적인 사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인식이 무르익어 갈 즈음인 2005년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이 6개항에 합의하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 6개항 속에 “남과 북은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사업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적극 밀어주기로 하였다.”는 항목이 들어가게 되면서 남북의 당국에서도 우리 민족의 고귀한 유산인 말과 글을 통합 집대성하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이야 말로 남북통일에 중요한 요소가 됨을 같이 인식하게 되었다. 앞으로 겨레말큰사전은 원래 민간 단체에서 진행시켜 왔지만, 이제는 이 사업이 목적한 바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당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민간단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또 실제 노력해 왔던 겨레말큰사전을 정부 차원에서 후원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야 하기 때문에, 남의 편찬위원들과 사단법인 통일맞이가 주축이 되어 지금은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사업회법(가칭)’의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어 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역어나 방언은 물론,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말을 조사하여야 하며, 또한 인터넷이나 통신망을 통해 지금까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우리말을 발굴해 내는 과정도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어 조사를 위한 남북 편찬위원 및 관계자들의 성호 방문이 필수적이며, 사전 편찬을 위한 모임 및 토론과 공동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단체들만의 힘만으로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남과 북의 당국자 간에 편찬위원 및 관계자들의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정한 지위를 갖추어서 남북 당국의 위임을 받은 단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지금까지의 계획으로는 2005년 1월부터 시작하여 2011년 12월까지 최소한 약 7년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자료 채록 및 조사 작업이 약 5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하여 7년 뒤에는 겨레말큰사전이 결실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전이란 출판으로 그 편찬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일단 출판된 그 시점부터 편찬사업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은 이 사전이 결실을 보는 2011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남의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이 편찬된 2001년 이후에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지원이 적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그러나 남북 공동으로 편찬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아니 통일이 된 뒤에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OED, Oxford English Dictionary)이 1858년에 계획되어 18884년에 그 첫권이 반행된 뒤에 최종 12권째는 무려 64년 뒤인 1928년에 간행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사전은 1972년에 증보 1권이 간행된 이후, 1992년까지 무려 20권의 방대한 사전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유명한 ‘그림 독일어사전’(Deutsches Wörterbuch von Jacob Grimm und Wilhelm Grimm)은 그림 형제에 의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방대한 독일어대사전(1854-1968)인 16권 32책으로 계속 보완되고 있음도 우리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특히 그림 사전은 2차대전 이후 동서독으로 나누어져 있으면서도 동서독이 초정치적인 입장에서 협력하여 사전 편집실을 운영하여 1838년에 입안한 이후 약 120여년에 걸쳐 대사전을 편찬하여 일단 완결되었다. 1965년 이후에도 이 사전은 독일의 대표적인 사전이 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이 성격은 다르겠지만, 그림 독일어사전에서 본받을 점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해 지금까지 계획되고 시행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➀ 남과 북의 사전 편찬 방법에 대한 비교

➁ 자료 조사 및 수집

ㄱ. 지금까지 구축된 말뭉치의 수집

ㄴ. 20세기 이후의 남한과 북한의 문학 작품 목록

ㄷ. 지금까지의 방언 조사 자료 수집

ㄹ. 방언을 반영한 문학작품 목록 작성 및 방언 자료 추출

ㅁ. 사전 통합 검색기 개발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조선말대사전(북한)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조선어사전(조선총독부) 국어대사전(금성사판) 연세한국어사전(연세대)

17세기 국어사전(홍윤표 외) 어원사전(김민수 외)

 

ㅂ. 검색 프로그램(깜작새) 개발

 

➂ 사전 편찬 요강 작성

 

외적으로는 이 사전 편찬을 돕기 위한 법안을 만들었으며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7. 맺는 말

 

앞에서 간략하게 북한어와 남한어가 어떻게 다르며, 다르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통합하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말과 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남과 북이 학술적으로 어떻게 교류하여 왔으며, 그 성과는 어떠했고,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과제는 앞에서 제시한 것들 이외에 훨씬 다양하고 많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룩할 수는 없으므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시행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장 상식적인 방법론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가칭) 민족어 발전을 위한 남북 공동위원회를 시급히 구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 발표를 마치도록 한다.

 

 

 <토론문>

 

남북 언어 통합 논의의 위험성

 

국어문화운동 회장 남영신

 

해박한 지식으로 남북한 언어 문제를 설명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짚어 주신 발표자께 경의를 표합니다. 발표자께서 “‘남한어’와 ‘북한어’를 통일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민족과 국가는 통일의 대상이지만, 언어는 통일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선을 그으시면서 남북한의 언어를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견해에 대해서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토론회에서 ‘남북한 언어 통합 방안’이라는 주제를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궁금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표자께서는 남북한 언어에 통합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볼 만한 것으로 ① 어문 규범의 통일, ② 우리말 정보화를 위한 한글 코드의 통일, ③ 학술용어의 통일, ④ 한자의 통일 등 네 가지 통일 대상을 제시하셨고, 이제까지 남북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하여 온 것 가운데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로 ① 어문규범의 통일 문제, ②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족어의 문제(부호계 통일, 자모순 통일, 용어 통일 등), ③ 자료의 교류 문제, ④ 우리말과 글의 순화 문제, ⑤ 남과 북의 방언 조사 문제, ⑥ 남과 북 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 문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이 가운데에 어떤 것은 남북한 언어 통합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고 논하기 어렵거나 경중을 따질 때에 가벼운 논제들이 있어서 저는 남북한 언어 통합이라는 주제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문제에 논점을 집중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마지막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대한 제 우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문 규범의 통일

남북한 언어 통합을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문 규범의 통일일 것입니다. 국어사전의 표제어 순서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고, 사이시옷 규정이나 두음법칙 등은 전혀 달라서 혼란스럽습니다. 외래어 표기의 차이는 더욱 크지요. 이런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발표자도 말씀하셨듯이 어문 정책 당국자의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고 다만 차이를 확대하는 어문 규정 개정은 하지 말자는 정도의 합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꾸준히 논의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솔직히 어문 규범은 북한이 남한의 어문 규범을 따르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리라고 봅니다. 남한의 경제 규모를 생각한다면 남한에서의 어문 규범 개정은 대단한 경제적 충격을 줄 개연성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북한의 어문 규범 개정 작업은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어문 규범 개정 때문에 생기는 비용을 남한이 부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서는 기분 좋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문 규범을 개정하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남북한의 국어관, 국어 문법과 국어 이론의 차이점 등이 해소되어야 하고, 남북한 주민의 언어생활이 새로운 어문 규범을 수용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남북한 주민이 접촉하여 언어적 불편을 느끼는 상황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발표자도 지적했듯이 어문 규범 통일 작업이 협상에 의해서 주고받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자연스럽게 남북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조정되는 것을 지켜본 뒤에 어문 정책 당국자의 정책에 의해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섣불리 통합을 논의하는 것은 발표자가 우려하는 주고받기 방식의 통합 논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자모의 순서나 자판의 통일 같은 것은 어문 규범의 통일과 별도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북한 언어 조사와 언어 매체 개방

발표자가 지적하신 대로 남북의 언어에는 우리가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문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한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사회생활의 차이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낱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달라지거나 용법이 달라지기도 하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서 낱말의 의미가 바뀌기도 해서 일부 낱말은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남북이 각기 외래어를 순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이때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새 낱말을 만들어 쓴 것도 없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정도의 이질화는 남북이 아니라도 교류가 적은 지역 간에는 언제나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남한에서 전라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내륙 지방으로 여행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서부 지방을 여행하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방언을 통합시키자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방언을 지키고 가꾸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북한어와 남한어는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일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국어에 단순하게 대입한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논의는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한 언어 통합보다는 남북 언어 공유하기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어와 남한어의 차이를 가르쳐 주는 사전이나 남북한 표현의 차이를 보여 주는 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한 언어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남북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이를 남북한 국어사전에서 찾았으나 이제부터는 실제 언어생활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 언어 조사 사업이 중요하고, 이 일이 국립국어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그 성과를 기대해 보고자 합니다.

 

한 가지 제 제안을 보태려 합니다. 지금의 남북한 언어 조사는 학자들 중심으로 남북한 언어의 실상을 마치 고고학자가 고대 유물을 찾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상대방의 서적이나 방송 같은 직접적인 언어 매체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조사의 실익이 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 협상 당사자들이 언어 매체의 개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저는 남북이 방언 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북 언어 교류가 이제 제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처럼 실제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작업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남북이 서로 공유함으로써 이질화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고, 실제 통일부의 자금 지원과 국립국어원의 인력 지원을 받아 이 일이 올해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발표자인 홍윤표 선생께서 이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사전이 남북한 언어 통합에 무슨 도움이 될지 확신을 하지 못합니다. 현재 남북한 언어 실상을 자료로 남길 생각이라면 모르지만 남북한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두 가지 제시하겠습니다.

 

첫째, 이 사전의 올림말이나 뜻풀이 내용과 방식이 남북한 어느 쪽에도 만족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이와 관련해서 남북한의 사전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이란 언어생활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보는 것인데 자기의 언어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가 많이 들어 있고 뜻풀이가 자기들이 익히 보아온 방식과 다르다면 외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북한의 국어사전에 그들이 알아야 할 남한의 언어 정보를 넣어 주고, 남한의 국어사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북한의 언어 정보를 넣어 주는 사업이 더 중요하지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둘째, 남한의 문제에 국한해 본다면 표준국어대사전과 이 사전이 어떤 연관을 맺을 것인지도 문제입니다. 남한의 언어생활의 기준은 표준국어대사전으로 통일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전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아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독자를 위해 만든 국어사전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편찬하는 두 사전이 경쟁 관계에 있을 것인지 보완 관계에 있을 것인지 궁금하고, 만일 경쟁 관계에 있을 것이라면 왜 경쟁 관계에 있는 사전을 편찬해야 하는지, 그리고 보완 관계에 있을 것으로 본다면 무엇을 보완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밖에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편찬 기간을 7년으로 잡으셨는데 이 기간이 합리적으로 설정된 기간인지 의문입니다. 과거 국립국어원이 남한 안에서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엮는데 7년이 걸렸는데 남북 언어를 아우르는 사전을 만들면서 7년 정도 걸려 편찬한다면 졸속이 되지 않을까요? 둘째로 사전은 편찬에 못지않게 수정․보완 작업이 중요한데 이 사전을 편찬한 뒤에 수정․보완할 계획을 세워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통일 국어대사전’ 또는 ‘겨레말큰사전’ 같은 대형 사전의 편찬에 집착하지 말고 남북한 모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알찬 사전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끝)

 

 

남북한 신문 기사의 문체 대조 연구

 고 창 운(건국대학교)

 

1. 머리말

 

이 글은 남한과 북한의 신문 기사를 대상으로 여기에 나타난 문체의 차이를 분석하여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지 60 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으며,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이념과 체제에서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 깊어지면 질수록 우리는 한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잃어가게 되어 극단적으로는 민족 통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배타적인 이질감을 가지고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손쉬운 한 방법은 남과 북이 현실적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대화하고 교류함으로써 더 높은 단계로 옮아가는 데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남한과 북한의 신문 기사를 대상으로 그 문체적 차이를 분석하는 일이 가지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문체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에서는 ‘글을 쓴 사람의 면모를 알려주는 모든 언어 표현적 특성’이라는 뜻으로 보고자 한다. 흔히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데에 나타나는 문체의 개념인 셈이다. 이 글에서는 신문 기사를 분석하게 될 것이므로 기사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를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신문에 나타난 언어 표현적 특성을 신문의 문체라고 규정했을 때 기본적인 분석의 틀은 형식적 관점과 내용적 관점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기호로서 일정한 형식과 내용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아래에서는 먼저 남한과 대비되는 북한의 신문 기사를 크게 형식과 내용의 면으로 나누어 분석하여 그 차이를 대조적으로 기술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글은 신문 기사를 단위로 그 속에 나타나는 문체적 차이를 분석하여 기술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문장 단위만을 고려하여 분석되는 남북한의 근본적 언어 차이에 대한 언급은 신문의 문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하지 않기로 한다.

 

북한 신문의 문체 특성을 분석하기 위한 자료로는 <노동신문>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노동신문>이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북한 신문이라는 점을 고려하였다.

 

한편, 대조적 특성 기술의 효율성 위해 이미 잘 알고 있는 남한 신문의 문체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삼가고, 남한과 차이를 보이는 <노동신문>의 특성을 중심으로 기술하기로 한다.

 

 

 

2. 남북한 신문 기사의 문체 대조

 

 

2.1 남북한 신문 기사의 형식적 차이

 

여기에서는 기사의 형식적인 면에서 북한의 신문 기사가 남한과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분석하여 기술하기로 하겠다.

 

먼저 기사의 형식과 길이에 있어 나타나는 차이점을 제목, 본문, 문장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사의 제목은 비록 압축이 되더라도 문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북한의 신문도 남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완결된 하나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기사 제목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큰제목과 작은제목을 포함한 2005년 5월 9일치 1면 <노동신문>의 기사 제목 몇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로씨야련방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시였다

 

진보적인류의 영원한 스승

여러 나라 인사들이 전문들에서 높이 칭송

 

지금은 모내기전투에 모든 힘을 총집중, 총동원할 때이다(사설).

 

탄산소다생산능력확장공사 힘있게 추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

 

모내기전투준비 활발!

모든 력량을 집중하여

평양시 주변농촌들에서

 

 

본문 기사의 길이 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단연 사설이다. 다른 일반적인 기사들의 경우 남한이나 북한 모두 크고 작은 다양한 길이의 기사가 게재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사설은 큰 차이가 난다. 남한 신문인 <한겨레>의 경우를 보면 매일 세 개의 사설이 실리며, 띄어쓰기를 포함한 사설 하나의 길이는 800자 정도인데 반해 <노동신문>의 경우 하나의 사설만 실리는데, 2005년 5월 9일치 사설은 3,600자 가량, 9월 20일치 사설은 3,900자 가량이며,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8일치는 무려 6,550자 가량이나 된다. 이처럼 북한신문에서 사설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북한이 남한에서보다 사설의 중요성과 효용을 더 크게 인정하고 사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기사 본문의 형식에서 또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에서 나온 출판물이 그러하듯이 신문 기사의 경우에도 김정일의 지적이 인용된다는 사실이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 -습니다.>>” 형식의 기술이 나타나는데, “<< >>” 안에는 기사의 내용과 관련지을 수 있는 김정일의 말이 그때마다 적절하게 인용되어 나타난다. <노동신문> 5월 9일치 1면을 보면, 모두 7개의 기사 가운데 이런 지적이 4개의 기사에 등장하며, 3면에는 모두 9개의 기사 가운데 7개의 기사에 김정일의 지적이 나타난다. 이는 과거 김일성 시대에서부터 있었던 일인데, 재미있는 것은 부자 사이의 위계 질서를 고려한 것인지 김일성의 경우는 “교시하시였다.”로 표현하고 김정일의 경우는 “지적하시였다.”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한편 이러한 ‘교시’ 혹은 ‘지적’의 빈도를 보면 김정일의 ‘지적’은 거의 모든 기사에서 언급되는 것에 비해 김일성의 ‘교시’는 김정일에 대한 김일성의 언급 내용에 한정하여 매우 드물게 인용된다는 점인데, 이는 김일성 사망 이후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일에 대해 김정일이 확고한 지위와 절대적 입장을 굳혔음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신문 기사 문장이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요건 가운데 하나는 되도록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 상식으로서 남한의 신문 기자들은 호흡이 짧은 문장 속에 정확하고 분명한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북한 신문을 살피면 기사가 다루는 주요 내용에 따라, 그 편차가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먼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인 경우 남한의 신문이나 북한의 신문이나 원칙적으로 그 길이가 차이가 날 수 없을 것이다. 새 정보 제공이 최대의 목적일 때, 신문 문장은 간결하면 할수록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북한 신문에서도 이러한 상식은 잘 지켜지고 있는데, 그것은 외국 관련 보도 기사이다. 아래에 <노동신문>의 외국 소식 보도 기사를 예로 보인다.

 

보도에 의하면 4일 미국신문 <<워싱톤 포스트>>가 글을 발표하여 대통령 부쉬의 핵정책을 비난하였다.

신문은 미국이 자기는 핵무기를 만들고 핵시험을 계속 벌리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기술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신문은 부쉬의 핵정책을 그릇된 것으로 락인하였다. - 2005년 5월 9일치 6면

 

3일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이 자불주에서 미군과 교전하였다.

전투과정에 미군 1명이 황천객이 되였다.

한편 5일 이라크의 쉐르카트시에서는 미국의 강점통치를 반대하는 이 나라 항쟁세력과 경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이라크경찰 1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하였다. - 2005년 5월 10일치 6면

 

보도에 의하면 4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이 미국에서 빈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데 대해 쓴 글을 발표하였다.

통신은 미행정부가 <<빈궁과의 전쟁>>을 선포한 때로부터 40년이 넘었지만 빈궁자수는 계속 늘어나고있다고 하면서 그 대표적인 실례로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빈궁자수가 550만명 증대되여 현재 3,700만명에 달하고있는 사실을 밝혔다.

특히 흑인들의 빈궁률이 전국적인 빈궁률에 비해 2배나 높은데 대해 전하면서 통신은 빈궁실태에서 미국은 자본주의 나라들가운데서 최악의 기록을 내고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통신은 <<빈궁은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병이며 고칠 희망이 거의 없다>>고 비평하였다.

- 2005년 10월 8일치 6면

 

위에 있는 기사들을 보면 다소 이질적인 어휘 이외에는 남한의 일반적인 기사 문장과 길이와 호흡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의 6면에 나타나는 외국 관련 보도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북한 내부 관련 기사에서는 이러한 간결성의 원리가 무시된 긴 길이와 호흡을 가진 문장들이 많이 나타난다.

 

먼저 김일성과 김정일이 문장에 등장하는 경우, 이러한 간결성의 원리는 철저히 무시되어, 쉽고 정확하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장으로 나누어 볼만한 것도 굳이 한 문장으로 기술한다. 여러 기사에 나타난 아래의 문장을 살펴보자. 매우 길지만 모두가 한 문장의 형식이다.

 

봄빛가득 넘치던 전선길에서 병사들과 함께 나무를 심으시는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위대한 선군혁명실록의 력사적인 화폭을 남기시는 그 순간에조차 앞에 있는 애어린 잣나무아지에 손상을 줄세라 촬영가를 다정히 일깨워주시던 그 음성을 새기며 우리 얼마나 크나큰 진리를 받아안았던가.

- 2005년 5월 9일치 2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 상반년에 도달한 높은 생산실적도 자세히 분석하여보면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여 놓친 고리가 적지 않을것이라고, 생산실적이 높은 공장, 기업소들에도 들어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더 동원할 예비가 있을것이라고, 꼭 하고야말겠다는 결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닥치는 난관을 뚫고나갈 묘술이 있기마련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 2005년 5월 10일치 2면

 

 

류례없이 간고한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우리의 인공지구위성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대규모의 토지정리와 발전소 건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었으며 현대적인 닭공장과 메기공장들이 도처에 일떠서고 과학기술발전에서 새로운 성과들이 이룩되고 있는 오늘의 이 눈부신 현실,

어버이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그토록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 조국통일의 전망이 환히 열리고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지위가 전례없이 높아진 이 자랑찬 현실은 정녕 조선로동당의 총비서이시며 위대한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 2005년 10월 8일치 2면

 

 

뜻깊은 경사의 날을 맞이하는 크나큰 감격과 행복감에 휩싸여 <<우리 당이 고마워>>, <<10월입니다>>, <<선군승리 열두달>>, <<내 나라 제일로 좋아>>, <<강성부흥아리랑>> 등의 노래선률에 맞추어 경축의 춤바다를 펼치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새 형의 혁명적당,조선로동당을 창건하시고 우리 당을 불패의 당으로 건설하시였으며 이 땅 우에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뜨겁게 어리여있었다.

- 2005년 10월 9일치 5면

 

여기에 제시된 문장만 보더라도 이렇게 문장이 기형적으로 길어지는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장황한 수식 표현 때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 번 보고는 뜻을 바로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외국 관련 기사에서 보듯이 분명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문장을 구성해야 한다는 상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장황한 표현이 온통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은 우리에게 김일성과 김정일이 적어도 북한에서는 종교적 절대자보다도 더 큰 권위를 실질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간결한 문체라는 신문 기사의 근본 원리를 훼손하면서도 특정인에게 거의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황한 표현을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부여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정인의 이름과 그 표현 사이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되어 결국에 그 특정 이름과 관련 표현은 하나로 녹아붙어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신문 지상에 김정일과 김일성 관련 표현이 경우에 따라 길고 짧게 다양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결같이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최소한의 요약적 표현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높임 표현의 사용도 남한과 북한의 신문 지상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남한 신문의 경우 기사의 본문에는 결코 높임 표현이 장하지 않고, 추도사 등을 전문 인용하여 게재하는 특이한 경우에만 신문 지상에 높임 표현이 등장한다. 북한 신문에서도 역시 남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를 빼고는 본문 기사에서 높임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예외가 있는데, 바로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이들은 북한의 신문 지상에서 등장할 때에는 언제나, 심지어 제목에서조차, 높임 표현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주체 높임 어미 ‘-시-’, 높임의 조사 ‘-께서’, 높임 접미사 -‘님’ 따위의 높임 표현 형식은 <노동신문>에서 이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데, 그 표현 효과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북한 신문의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이처럼 김정일, 김일성을 절대화하는 일과 관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원인도 있다. 신문 기사문은 간결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식어는 되도록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더구나 사실 보도 기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북한의 신문에서는 기사 본문의 문장 구성에서 관형어나 부사어 등의 수식어가 과도하게 등장하고, 같거나 유사한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체 문장의 길이가 늘어나는 특성을 보인다. 다음 문장을 보자.

 

청진철도국 청진기관차대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로동자들이 집단적혁신의 불길높이 대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갖추고 모든 기관차들을 제때에 수리정비하여 당창건 60돐을 높은 수송성과로 빛내이기 위한 투쟁을 과감하게 벌리고 있다. - 2005년 5월 9일치 1면

 

연구집단의 과학자들은 당의 과학기술중시로선을 높이 받들고 첨단과학기술이 인민들의 생활에 실제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도록 나노기술개발을 위한 연구목표를 현실성있게 세우고 피타는 탐구정신을 발휘하였다. - 2005년 5월 10일치 1면

 

온천군, 증산군안의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 어머니당의 아들딸답게 자랑찬 알곡생산성과로 10월의 대축전장에 들어설 불타는 결의를 안고 벌마다에 충성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흘리고 있다.

-2005년 9월 20일치 1면

 

만포시안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을 안고 백두산천출위인들의 령도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기 위하여 한사람같이 떨쳐나 짧은 기간에 천연화강석을 다듬어 길이 10.8m, 높이 3.8m의 혁명사적비를 훌륭히 건립하였다. - 2005년 10월 8일치 2면

 

공동사설과 공동구호에서 제시된 전투적과업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로동자들이 어머니당에 드리는 로력적선물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하게 벌려 4호해탄로 개건대보수를 성과적으로 끝내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다. -2005년 10월 9일치 3면

 

 

몇 가지 사례를 보았지만, 이처럼 수식어가 많이 동원되고 같거나 비슷한 표현이 되풀이되는 사례는 <노동신문>의 거의 모든 기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수식어나 중복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분석하기로 하겠다.

한편 무리한 도치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노동신문> 기사의 한 특징이다. 다음 문장이 그 예이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고 남포시 인민보안서 김봉일동무가 일하는 단위의 인민보안원들과 륙해운성 무역짐배 <<왕재산>> 호 선원들이 영예군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고 있다. - 2005년 5월 10일치 1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전당, 전군, 전민이 당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칠 데 대한 당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선군혁명총진군을 힘차게 다그쳐나가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고전적로작 <<당세포를 강화하자>> 발표 14돐을 뜻깊게 맞이하게 된다. - 2005년 5월 9일치 2면

 

 

위의 첫 문장에서 앞에 제시된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고”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어순이 되려면 “선원들이” 바로 다음에 나타나야 할 것이고, 둘째 문장에서 “전당, 전군, 전민이 당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칠 데 대한 당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선군혁명총진군을 힘차게 다그쳐나가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는 “14돐” 다음에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앞으로 어순을 옮겨 도치한 것은 그 내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적인 도치 현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신문 문장의 종결 표현에서도 북한 신문의 한 특성이 드러난다. 남한 신문 경우는 한정된 지면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생각에서 신문 문장은 압축적인 표현을 쓰고 있으며, 기사 문장의 종결형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다, -되다’의 과거형은 언제나 ‘-했다, -됐다’로 지면에 실현된다. 반면에 이 표현은 <노동신문>에서는 언제나 줄어들기 이전의 본래 형태대로 실현되어 “강조하였다, 언명하였다, 말하였다, 락인하였다, 지적하였다, 이룩하였다, 구원하였다’ 등으로 또는 ‘재건되였다, 진행되였다, 건립되였다, 계속되였다, 발행되였다’ 등으로 실현되는 특성이 있다. 이 표현이 입말에서 실현되는 것을 볼 때, 남한에서는 언제나 ‘-했다, -됐다’로만 실현되는데,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본래 형태대로 실현된 북한의 문장 종결 표현은 북한 입말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신문 기사문에서 나타나는 문체 차이가 아니라 남과 북의 근본적인 언어 차이가 될 것이다.

 

 

2.2 남북한 신문 기사의 내용적 차이

 

여기에서는 기사의 내용적인 면에서 북한의 신문 기사가 남한과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분석하여 기술하기로 하겠다.

 

먼저 신문에서 다루는 기사의 전반적인 내용에 있어 어떤 차이가 나타는가 하는 점을 살펴본다.

남한 신문의 경우 지면에 오르는 기사는 한마디로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어떤 일이 새로 일어났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실 보도 기사에서부터 그 사건의 중요성과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동기 등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전망하는 해설 기사를 비롯하여 그 사건에 대한 신문사의 주장을 펼치는 논설 기사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존재와 개인적 존재로서 우리의 다양한 삶과 관련된 모든 내용이 기사로 다루어진다. 이런 기사들이 각 면별로 적절히 안배되어 신문 지상에 등장하는데, 2005년 10월 25일치 <한겨레>를 예로 들어 보면 기사들이 종합면, 국제면 사회면, 지역(수도권 또는 지방)면, 경제면, e 세상(컴퓨터 및 정보 기술)면, 재테크면, 과학면, 문화면, 기획면, 방송면, 스포츠면, 사람면, 토론면, 여론면 등의 이름 아래에 나뉘어 게재되어 있다.

 

이에 반해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들의 내용은 거의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하는 목적성을 드러내는 기사들로서 상호 연관성을 가진 유사한 내용의 기사들이 지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보인다. 2005년 5월 9일치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 들의 요지를 정리하여 각 면별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 1면>

1. 모내기전투에 모든 힘을 총동원할 때이다(사설)

2. 여러 나라 인사들이 김일성을 칭송한다

3.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 확장공사를 다그치고있다

4. 평양 주변농촌에서 모내기준비를 다그치고있다

5. 청진기관차대 일군들이 기관차들을 제때에 수리정비하고있다

6. 청산협동농장이 모내기준비로 들끓고있다

 

<2면>

1. 숲은 강성대국의 미래를 부른다(일종의 수필)

2. 인민군부대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

3. 장군님의 <<당세포를 강화하자>> 발표 14 돐을 맞이하여

 

<3면>

1. 백암땅이 감자심기전투로 끓고있다

2. 백암군 읍협동조합에서 감자종자싹틔우기에 힘을 넣고있다

3. 백암군 동계협동농장 제4작업반 2분조포전에서 감자심기전투가 벌어지고있다

4. 봉산군 마산리당위원회는 <<당부>> 수첩을 만들어 리용하고있다

5. 구성시 청룡협동농장 농산 제12작업반에서는 계급의식을 높여주기 위한 사업을 강화하고있다.

6. 콩농사에서 기계화비중을 높여야 한다

7. 김현영동무가 맡은 일을 정열적으로 하고있다

8. 평양시 형제산구역 하당피복공장 일군들이 인민경제계획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다

9. 북청군 종산리당위원회에서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고 있다

 

<4면>

1. 단위 1 건설사업소 일군들이 군인들을 성심성의로 원호하고있다

2. 시안 인민들과 군인들사이에 원군원민의 정이 뜨겁게 오가고있다

3. 함흥성천강피복공장 종업원들이 인민군대 후방가족들을 도와주고있다

4. 문천시 일군들이 옳은 교육사업 방법론을 탐구하고있다

5. <<사랑의 검수조>>는 장군님의 은정을 전한다

 

<5면>

1. 업억광산일군들이 혁신적성과를 이룩하고있다

2. 신기철동무가 혁명동지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3. 덕천시인민병원 의료일군들이 환자에게 동지적사랑을 나누었다

4. 박명수동무가 알곡증산을 위해 헌신하고있다

5. 문덕군 성법협동농장 일군들이 전쟁로병과 영예군인들을 돌봐주고있다

6. 남조선에서 미국을 규탄배격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있다

7. <<보안법>> 폐지 국민련대가 <<한나라당>>을 규탄하였다

8. 남조선에서 브루쩰라병이 퍼지고있다

9. 민족공조로 반미투쟁을 벌려야 한다

 

<6면>

1. 일본은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가입에 대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2. 로씨야인민의 조국전쟁승리 60돐을 기념한다

3. 로시야에 조국전쟁 승리기념탑이 개건되였다

4. 일본은 력사외곡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5. 미국이 중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책동하고있다

6. 꾸바와 베네수엘라가 쌍무협조를 위해 노력하고있다

7. 까스뜨로가 미국을 비난하였다

8. 이란이슬람교혁명지도자가 미국을 규탄하였다

9. 미국에서 이라크전쟁에 대한 반대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10. 브라질대통령이 미국과 서방에 대한 의존을 줄일것이라고 강조하였다

11. <<워싱톤 포스트>>가 부쉬의 핵정책을 비난하였다

12. 팔레스티나민족당국 내무성 대변인이 이스라엘의 학살만행을 규탄하였다

 

앞에 정리한 <노동신문>의 각 면에 드러난 기사의 요지를 보면, 남한과 북한의 신문 기사가 내용에 있어 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1면에서 5면의 다섯째 기사까지는 순전히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된 것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내용, 농업, 공업 등 산업 분야에서의 성과를 독려하는 내용, 군에 대한 지원과 소위 ‘혁명적 동지애와 사랑’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적 존재로서의 삶의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 5면의 여섯째 기사부터 나머지 기사는 남한과 관련된 기사인데, 모두 북한의 반미정책과 체제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일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6면은 외국 관련 소식으로서 다른 면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데, 기사의 면면을 보면, 수많은 외국 소식 가운데에도 북한 당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에 유리한 기사만을 의도적으로 골라서 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노동신문>은 철저하게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 지향적 관점의 입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만 담은 기사들을 게재함으로써 남한의 일반적인 신문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차원이 다른 선전지로서의 성격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남한 신문과 본질적 차이를 보이는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2005년 5월 10일치 <노동신문>을 대상으로 기사에서 주로 언급되는 대상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서술되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 또 이러한 언급 대상과 서술 내용에 대해 어떤 내용으로 수식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나누어 북한 신문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좀더 자세히 분석하기로 한다.

 

먼저 기사에 언급되는 중심적 대상)을 각 면별로 정리하여 보이면 다음과 같다.

 

<1면>

김정일, 김정일, 김정일, 김정일, 화력건설련합기업소 로동자들, 남포시인민보안서 인민보안원들, 락원기계련합기업소, 해주화학공장, 과학원 레이자연구소 과학자들

 

<2면>

김정일, 김정일, 김정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위원장

 

<3면>

남포시당위원회, 검덕광업련합기업소 금골광산 4. 5갱 채광1소대 당세포, 전국당선전일군돌격대 평양시려단 보통강구역대대 참모장 김신도동무, 신천군 우산리당위원회, 리원군 염성리당위원회, 함흥제분공장, 화암역, 평양메기공장, 북창고려약공장, 로씨야련방 특명전권대사

 

<4면>

육종학자 계응상선생, 장강군 읍협동농장 제3작업반 농장원들, 악보 표기법, 제3차 전국태권도기술혁신경기대회, 해방탑과 쏘련군장병들의 묘, 평안북도인민병원 안과 의료일군들, 사리원시 경암제1중학교 분과장 전칠성동무, 이천군 기초식품공장 일군들, 벽성군 벽성협동농장 제8작업반장 홍성수동무, 우리 보건제도

 

<5면>

민족자주공조, 분렬의 장벽, 북에 대한 선제공격음모, 총련사회, 독도우표, 미군철수 금요집회, 과거사청산, 비정규직보호법안, 교육시장개방정책

 

<6면>

 

제 14차 국제공산주의자들 토론회, 부쉬패거리들의 대조선압박공세, 사회주의의 수호자 조선인민군, 중국의 대중적기술혁신운동, 대량살상무기, 국제테로확산의 장본인 미국, 자본주의세계를 휩쓰는 환률파동, 로씨야대통령의 조국전쟁승리 60돐 기념비제막식 연설, 이란이슬람교혁명지도자 미국에 경고, 수리아 미국 단죄, 베네수엘라 미국에 테로분자송환 요구, 이스라엘의 선거방해책동 배격, 이란과 세네갈의 국방 양해각서 채택, 아프가니스탄의 반미군사활동

 

앞의 내용을 보면 <노동신문>의 지면별 내용 특성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면에서 4면까지 각 면에 등장하는 내용은 모두 북한 내부와 관련한 것으로 이를테면 ‘국내 소식’으로 볼 수 있다. 등장하는 대상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김정일이 가장 두드러지며, 나머지는 그의 ‘지적’을 생활에서 실천에 옮기는 단위 조직과 여기에 속한 북한 주민들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주민들은 모두 북한 체제의 경제적, 정치적 활동 속에서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언제나 어떤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만 언급될 뿐 개인적 존재로서의 자아는 전혀 없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5면은 민족공조와 남한 관련 소식 등이 게재되어 4면까지 등장한 내용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체 6면이라는 한정된 지면에서 남한에 대한 기사를 지면에 반영하고 있어서 북한이 남한 문제를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막상 다루고 있는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남한의 부정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역시 어떤 목적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면은 모두 외국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국제면’이라고 하겠는데, 친북 성향과 반북 성향국가의 구분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친북 성향 국가들에 대한 기사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긍정적인 내용이 언급되는 반면,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의 관련 기사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내용만이 언급된다는 점에서 그 의도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노동신문>에 흔히 나타나는 서술 표현으로서 남한 신문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말들을 찾아 정리해 보이면 아래와 같다.

 

<1면>

애국적 소행을 발양하다, 당의 경공업혁명방침을 받들다, 새세기의 요구에 맞다, 기업관리를 짜고들다, 알곡을 나라에 바치다, 원료기지를 꾸려놓다, 봉사사업을 잘하다, 농업혁명방침을 결사관철하다, 감사를 받아안다, 불길이 타번지다, 벽체쌓기에 달라붙다,

 

<2면>

긍지와 존엄을 떨치다, 총진군길을 다그치다, 가르치심을 주시다, 신념과 의지가 빛발치다, 백두산총대를 틀어쥐다, 모습을 새겨안다, 세상에 빛을 뿌리다, 승전고가 터져오르다, 미래를 담보하다, 일대 비약을 일으켜나가시다

 

<3면>

힘을 넣다, 품을 넣다, 요구성을 제기하다, 편향이 있다, 당사업무실무들을 배워주다, 사랑을 부어주시다, 충성의 열정이 굽이치다, 친필서한을 받아안다, 실천하기 위한데 모를 박다, 사업에 떨쳐나서다, 당원들을 발동하다, 장군님께 기쁨드리다

 

<4면>

이름을 빛내이다, 수령님의 품에 안기다,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다, 목을 떼다, 깨끗한 양심을 바치다, 발표회를 조직하다, 첫째가는 주목을 돌리다,

 

<5면>

구호가 심장마다에 높뛰다, 과제가 나서다, 틀고앉다, 까밝히다, 사람들을 얼려넘기다,

 

<6면>

떠들다, 부산을 피우다, 여론을 내돌리다, 발광하다, 아무짓이나 망탕하다, 조폭하게 놀다, 가로타고앉다, 뇌까리다

 

여기 제시된 표현들의 내용을 보면 역시 면별로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1-4면까지의 내용과 5-6면의 내용이 대조된다. 앞의 내용이 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 반해 5-6면의 내용은 대부분 부정적 성격을 띠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4면은 북한 내부 관련 기사로서 김정일과 그의 ‘지적’을 실천하는 북한 주민에 관한 내용인데, 서술 내용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긍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그 실천을 독려하는 획일적인 목적과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5-6면의 부정적 성향의 표현들은 모두 미국이나 남한과 관련된 표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더구나 6면의 표현 내용은 단순한 부정적 성격을 넘어 비속어로도 볼 수 있는 표현인데, 모두 미국에 대한 표현이다. 재미있는 점은 남한과 미국에 대한 표현이 부정적 내용을 담은 것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남한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얼려넘기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에 비해 미국에 대해서는 “뇌까리다, 떠들다, 발광하다” 따위의 표현을 씀으로써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결국 김정일과 김일성에 대해서는 최상의 높임과 긍정적 표현으로 그 지위를 절대적으로 ‘높이’ 올리고, 북한 주민에게는 적극적 활동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끊임없이 김정일의 ‘지적’을 ‘받들어’ 실천에 옮기도록 독려하며, 미국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표출하고, 남한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비난하거나 공조를 요구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제 기사에 등장하는 주요 대상에 대해 어떻게 수식하는가 하는 점을 살피겠다.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형식의 면에서 <노동신문>의 기사 문장은 수식어가 길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는데, 관형어로 실현되어 기사문의 주어나 목적어를 꾸미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면>

애국적 소행을 발양한, 자력갱생의, 간고분투의, 좋은,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결사관철하기 위한, 깨끗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감사를 받아안은, 숭고한 공민적, 당의 은정에 충성으로 보답할, 혁명적, 맡은 일에 자기의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가고있는, 당의 은덕에 보답할, 뜨거운, 값있는, 보람찬, 자애로운, 새 세기의, 혁명적 동지애의, 피타는

 

<2면>

선군혁명령도의 상징으로 우뚝솟은,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총대로 사회주의를 수호하시고 강성번영의 새 아침을 불러오시려는, 백두의 메부리마냥 억센, 조국과 민족이 우리 세대에게 맡겨준 무겁고도 영예로운, 강성대국으로 온 세상에 빛을 뿌릴, 수령결사옹위의, 김일성민족의 자랑찬 미래를 담보하는, 우리 조국과 민족의 권위와 존엄이 온 세상에 높이 떨쳐진, 강성대국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일으켜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철령을 넘으신 력사의, 우리 군대와 인민을 혁명적대고조에로 힘있게 떠밀어주시던, 최고사령관 명령에 끝없이 충실하였던, 위대한 선군령장의, 철의 신념과 의지와 무한한 헌신의,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이민위천>>의 사랑으로 심장을 불태우신, 철의 신념과 의지,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와 전사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3면>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직한, 활동력이 있고 전투력이 있는, 당세포사업을 도와주기 위한, 당사업 실무수준을 높여주기 위한, 아래에 내려가기 위한, 관리일군들의 정치실무수준, 현대적인 농업과학기술지식을 습득시키기 위한, 혁명과업수행정형을 기본으로 하여 당생활을 평가하는, 당세포비서들의 수준을 체계적으로 높여주기 위한,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위해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주신 위대한 사랑과 믿음의,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신 영광의, 장군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려는 충성의,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서한을 받아안은, 당원들의 정치사상적열의를 발동하기 위한, 장군님께 기쁨드릴, 당세포의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더욱 높이기 위한, 당세포들의 실무수준을 높이고 그들의 사업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당원들과 농장원들을 선군혁명 총진군에로 힘있게 추동하기 위한, 당조직관념을 높일데 대하여 주신, 백두산3대장군의 숭고한 당조직관념을 따라배우며 자각적인 당생활기풍을 높이 발휘해가고있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뜨겁게 어린, 영농물자수송을 중시하고 여기에 선차적인 힘을 넣고 있는,

 

<4면>

조직과 집단을 떠난 과학자의 목숨은 벌레와 같다는,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강성대국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크나큰 격정을 안고 당창건 60돐과 조국광복 60돐이 되는 올해의 첫아침 공동사설을 받아안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지켜선, 높은 의학과학기술로 당을 받들어나가려는, 혁명적 학습기풍을 세워나가기 위한, 올해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맡은 높은 책임감을 안고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해 언제나 앞채를 메고나가고있는,

 

<5면>

특기할 표현 나타나지 않음

 

<6면>

특기할 표현 나타나지 않음

 

 

관형어로 실현되는 수식 표현 역시 면별로 그 차이가 확연함을 볼 수 있다. 북한 내부 관련 기사인 1-4면의 경우 대개 단순한 관형사가 아니라 관형절의 형식으로 매우 긴 수식 표현이 실현되는 반면에 남한이나 미국 등 북한 외부의 대상과 관련한 기사인 5-6면에는 이런 수식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북한 특유의 수식 표현이 집중된 1-4면까지의 내용들을 보면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실현되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한마디로 김정일, 김일성을 높이고, 북한주민들을 “혁명 사업”으로 내몰아 그 실천을 독려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는 앞서 기사의 언급 대상, 서술 표현과 관련해 분석한 내용과 같은 것으로 그 목적성과 의도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장황하고 상투적이기까지 한 수식 표현은 <노동신문>의 문체적 특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인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렇게 수식해 나갈 때 그 관형절 속에 포함된 내용은 처음부터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곧 김정일은 북한 주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며, 북한 주민은 김정일의 의도와 지시를 충실히 따라 각자가 체제와 조직 속에서의 소임을 다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신문>의 서술 표현과 함께 부사어로 나타나는 수식 내용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알심있게, 힘있게, 가슴깊이, 깐지게, 높이, 남김없이, 세차게, 수많이, 책임적으로, 변함없이, 훌륭히, 성실히, 신발이 닳도록, 아글타글, 제때에, 높이, 현실성있게, 부족한 것이 많은 어려운 속에서도 자체의 힘과 기술로,

 

<2면>

질풍같이, 뜨겁게, 억세게, 자랑차게, 가슴벅차게, 단숨에, 힘있게, 소중히, 끝없이, 굳건히,

 

<3면>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목적지향성있게, 착실히, 알기 쉽게, 계획적으로, 실속있게, 옳게,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깐지게, 어김없이, 세차게, 누구라없이, 본때있게, 4월계획을 넘쳐 수행한 기세로, 인민군대지휘관들의 일본새를 따라, 전투적으로,

 

<4면>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때없이, 직심스럽게, 적극, 낮에 밤을 이어, 인민군대식으로,

 

<5면>

특기할 표현 나타나지 않음

 

<6면>

특기할 표현 나타나지 않음

 

 

<노동신문>에서 서술어에 대한 수식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이 문체 형식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점은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도 북한식 관형어 수식이 나타나지 않았던 5-6면에 서술어에 대한 부사어 수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면에서 다루는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특정 내용의 무의식적 주입을 위한 북한 내부 관련 기사인 1-4면에서만 서술어에 대한 수식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앞에 제시한 부사어들을 보면 “힘있게, 세차게, 깐지게” 등 어떤 행위의 수행 양태를 강조하는 내용들,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인민군대식으로” 등 북한 당국의 지시와 방침을 나타낸 내용들, “부족한 것이 많은 어려운 속에서도 자체의 힘과 기술로” 등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고 자주성을 강조하는 내용들로 대별된다. 경우에 따라 그 표현의 내용은 조금씩 바뀌지만, 이는 결국 ‘초월적이고 자애로운 김정일의 ‘지적’에 따라 어려운 현실이지만 각자 맡은 ‘혁명적 과업’을 더 열심히 완수한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내용이다.

 

 

3. 맺음말

 

지금까지 북한 <노동신문>을 분석하여 남한 신문과 차이를 보이는 문체적 특성을 논의하였다.

먼저 형식적 관점에서 남한 신문과 대조되어 드러나는 <노동신문>의 문체적 특성을 기술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사설의 길이가 대단히 길다. 이는 신문의 목적성을 드러낸다.

2. 거의 모든 기사에 김정일의 ‘지적’이 인용되어 언급된다. 이는 확고한 김정일의 지위를 말해준다.

3. 기사에 높임 표현이 나타나 김정일과 김일성에게만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이들을 절대화한다.

4. 관형어나 부사어 등의 수식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같거나 유사한 표현의 반복으로 간결성의 원리 를 위반한 긴 길이의 문장들이 많다. 이 역시 의도성과 목적성을 나타낸다.

6. 무리한 도치 표현이 나타난다. 이 또한 신문의 목적성과 관련이 있다.

7. 문장종결에서 ‘-하였다, -되였다’처럼 줄지 않은 본래 형태대로 나타는데, 이는 북한의 언어 현실을 반영한다.

 

다음으로 내용적 관점에서 남한 신문과 대조되는 <노동신문>의 특성을 분석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전체 6면의 지면 가운데, 1-4면은 순전히 북한 내부 관련 기사인데, 모든 내용이 일과 체체 유지로 귀결된다.

2. 5면에 남한 또는 재외동포 관련 기사가 실리며, 남한 관련 기사는 주로 부정적 내용이다.

3. 6면은 외국 관련 기사로서 친북 국가 기사는 긍정적 내용, 적대 국가 기사는 부정적 내용이며, 미국 비난 내용이 중심이다.

4. 기사의 중심적 언급 대상은 김정일이 가장 두드러지며, 나머지는 그의 ‘지적’을 생활에서 실천에 옮 기는 단위 조직과 여기에 속한 북한 주민들이다.

5. 서술 표현은 적극적, 긍정적 내용으로서 김정일을 높이고, 그의 ‘지적’을 받는 북한 주민에게 실천을 독려하는 내용들로 정리된다.

6. 관형어로 실현되는 수식 표현의 내용 역시 김정일을 높이고, 북한 주민들의 “혁명 사업”을 독려하는 것과 관련된다.

7. 부사어로 나타나는 수식 표현 또한 김정일의 지시 아래 북한 주민들이 “혁명적 과업을 잘하고있다.” 는 것과 관련된 내용 일색이다.

 

결국, 형식의 면에서나 내용의 면에서나, 남한 신문과 대조적인 북한 <노동신문>의 문체적 차이는 철저하게 일관된 의도성과 목적성 때문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곧 북한의 <노동신문>은 김정일을 절대적 존재로 높이 올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그의 ‘지적’을 받들어 실천에 옮기도록 끊임없이 독려하는 선전지로서 남한의 신문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남북 신문기사 문체대조 토론】

【2005년 11월 11일】

 

남북한 신문 기사의 문체 대조 연구

(토론)

 

김승철(북한연구소 연구원)

 

1. 머리말

지금까지 남북한의 차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의 차이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념과 정책, 제도 등의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이념과 정책, 제도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남북한의 사회, 문화적, 의식적 특성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야 세부적인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되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제가 이번에 토론을 맡게 된 고창운 교수님의 「남북한 신문 기사의 문체 대조 연구」는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세부적으로 다루었다는데 큰 성과가 있다고 본다. 많은 연구자들이 북한의 신문에 대해 연구를 했지만 신문의 구성이나 정보의 습득 및 활용, 북한 동향파악의 정도에서만 연구가 이루어졌지 그 문체와 북한신문의 문체의 특성들이 갖는 사회적, 의식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연구가 없었다.

 

때문에 저는 고창운 교수님의 논문에 대한 토론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평소에 갖고 있던 견해를 바탕으로 「남북한 신문기사의 문체 대조 연구」에 대한 제 의견을 밝히려고 합니다.

 

1. 남북하 신문의 성격 규명

일반적으로 신문의 문체는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적 경향성과 수용능력, 정보전달 및 인식능력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 신문의 문체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향후 북한에 자유와 민주주의 등의 적극적(또는 급속한) 변화가 있을 경우 북한사회와 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수용능력이나 방법과 과정 등에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본 논문에서 남북한 신문 문체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남북한 신문의 특성과 기능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갔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신문은 교양 기능을 갖고 있고 남한의 신문은 정보전달 기능을 갖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다. 전달의 측면에서 본다면 남한신문은 사실 전달이 목적이고 북한은 사상과 정책을 주입하고 교양하기 위해 정보를 활용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형식적 차이에서 볼 때 남한신문은 면의 성격이 상대적인 고정성을 가지고 섹션을 비롯한 다양한 편집으로 면의 유동성이 있는 반면에 북한의 신문은 면의 기능이 고정되어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1면은 사설․논설 및 중요보도, 2면 사상 및 정책교양과 해설 3면 경제관련 기사, 4 문화․교육․생활 등 사회일반, 5면 남한(남조선)의 투쟁과 문제점으로 일명 ‘남조선 면’ 6면 국제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북한의 일반 엘리트들에게는 상식이다.

 

▣ 북한 신문에서 사설, 논설, 정론 등의 문체는 「교양강좌」적 목적성을 갖고 있고 시기적으로 중요한 정치교양을 위한 의제의 전달과 강조가 목적이다. 따라서 사론설의 문체는 기본적으로 확신, 강조, 요구 및 명령형의 문체로 되어있다. 그리고 북한의 신문에서 사설과 논설, 정론 등은 그 내용 일정한 도식에 의해 전개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정한 문제를 언급할 때 항상 김일성, 김정일 교시와 말씀을 서두에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도식적 틀의 구조 때문이다.

 

▣ 북한의 노동신문 문체에서 문장이 기형적으로 길어지는 것은

① 북한주민들에게 주고자 하는 주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수식어가 많고 문장이 길어지면 분석능력을 저하시켜 논리적 판단을 배제하게 한다.)

 

② 북한주민들에게 주고자 하는 주제의 전달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감성적인 전달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문체가 길어진다. 사설과 논설 등의 문체에서 문장이 길어지면서 수식어가 많아지는 경우 북한주민들의 훈련된 감성적 의식 구조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훈련은 조선중앙방송, 텔레비죤, 녹음강연 등을 통해 진행되며 그러한 방법이 신문에서는 문체로 나타난다.

 

 

▣ 다음으로 북한의 신문기사 문체에서 종결형식의 차이에 대한 차이에 대한 원인분석이다. 남한은 ‘-하다’, ‘-되다’와 ‘-했다’, ‘-됐다’로 지면에 실현되는데 북한은 ‘-하였다’와 ‘-되었다’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해당 문제나 사실의 원인과 결론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되었다’ 형식의 문체는 북한의 신문에서 ‘김정일, 노동당, 조직 등에 의해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체가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 형식을 보면 아래와 같다.

남한 : (주어) -이 … … -했다.(됐다.)

북한 : (주어) -을 … … -에 의하여 … … -하였다.(-되였다)

 

예 :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우리인민들은 올해 생산계획을 102%로 넘쳐 수행하게 되었다. (자의적으로 작성한 문체)

 

이런 문체 문화가 북한주민들의 언어생활에 녹아들어 나타난 것이 북한사람들의 대화방식인데 어떠한 사실을 부정할 경우 북한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남한 : ○○○을 하지 않았다. = 어떠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순서대로

북한 : ○○○을 아이(아니) 했다. = 어떠한 것을 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여 먼저 표현

 

▣ 다음으로 북한의 문체에서는 남한에서는 낯선 수식어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북한이 정치사상교양적 목적의 전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한 수식어(관형사, 부사)를 사용하는 것을 방관 또는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의 언어학자들이 북한의 단행본, 소설, 시, 신문 등의 출판물에서 나타난 표현을 가지고 남북한 언어차이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북한의 신문기사에서 교양, 선전, 주입 등을 위한 사설, 논설, 정론, ‘긍정감화기사’ 등에서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관형사와 부사를 많이 사용하여 특정한 목적성과 의도성을 실천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형식은 오랫동안 북한주민들이 TV, 라디오, 신문, 일반강연, 학습, 녹음강연 등에서 훈련된 문체로서 언어적 강조, 명령, 지시, 경고(특정한 경우인데 예하면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요, 버리면 죽음이다’라는 식의 문체) 등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한 감성적 인지, 습득, 학습 구조가 훈련이 되어 일방적이고도 감성적인 정치사회화(정치교육,교양)의 효과성을 확장하려는 목적도 있다.

 

▣ 마지막으로 노동신문의 문체에서 남한의 연구자들이 짚어내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데 우상화와 정치사상 교양을 위한 문체의 특화로 인한 특정 단어의 전용화이다. 특화로 전용화된 단어들은 일반 주민들이나 신문 문체에서 일상이나 다른 문장에서 사용하지 않는(사용하면 무언의 혹은 유언의 비판에 직면하거나 문제시 된다)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와 정치사상 교양을 위한 문체의 특화로 전용화된 단어들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속한다.

예 : 위대한, 어버이, 자애로운, 존엄, 경애하는, 숭고한, 친필, 손수, 교시, 베풀다, 탄생, 칭송, 령도, -님(장군님․수령님 등), 은혜, 혜택, 신조화, 절대화, 신격화 등

 

이 외에도 북한 노동신문의 문체는 남한의 신문들이 추구하는 목적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특성화되고 구조화되어 오랜세월 변화가 없었다. 북한체제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에너지는 변화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북한의 신문의 문체나 구성도 마찬가지로 벌써 수십년 넘게 한가지 형태와 구조와 문체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남한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경쟁, 선택, 책임) 등의 사회원리로 주민들이 살아가지만 북한은 통제와 교양, 훈련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치사회화 되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의도에 맞게 정치적, 사상적, 정책적 교양, 선전 목적을 가진 신문 문체에 적응되고 훈련되고, 내면화된 북한주민들은 분명 자유로운,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 문체에 익숙한 남한주민들과 사고방식과 인식, 분석, 판단능력에서 차이를 보일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신문 문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사고방식, 사회현상과 지적 능력의 인지와 습득, 이해와 해석 등의 과정에서 고착된 관행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배워 민주시민으로 되어가는 통일 과정에서 후유증을 발생시킬 수 있다.

 

▣ 질문

이러한 것에 대한 연구가 이어서 더욱 심화되어야만 진정한 내적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고창운 교수님께서는 북한신문 문체의 특성이나 남북한 차이와 관련하여 어떤 연구과제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한다.

 

 

 

  • 수정 2005-08-16 22:49등록 2005-08-16 22:49

기틀 마련한 ‘겨레말큰사전’ (hani.co.kr)

‘합의가능 수준’ 완성뒤 차이점 장기보완키로

기자안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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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 ‘조선말’ 모체로 올림말 선정두음법칙 등 이질적 어문규범 난항 예상

 ‘한글 창제 이래 대사건’이라는 <겨레말큰사전>의 남북 공동편찬 사업이 지난 2월 첫발을 뗀 데 이어, 두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2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의 공식 출범 이래 이번 공동 편찬요강의 최종합의는 6개월 만의 성과다. 시작이 절반이라면 절반을 넘어선 것이겠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문영호 공동편찬위 북쪽위원장(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은 이날 발표된 공동 편찬요강에 대해 “이제 하나의 잣대를 갖고 사전 편찬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편찬요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남북의 언어적 차이를 한꺼번에 다 없앨 수 없는 조건에서, 단계를 설정하고 하나하나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전을 완성하되 이를 지속적으로 보충한다”는 ‘사전 편찬 원칙’이다. 남북 언어를 기계적으로 통일시키지 않고, 우선 ‘합의 가능한 수준’에서 사전을 만든 뒤 장기적으로 이를 보완하는 과정을 밟겠다는 것이다.

또 ‘사전 편찬 작업방식’은 겨레말큰사전 완성본의 대강을 짐작하게 해준다. 우선 기왕의 남북 말글을 집대성한, 남쪽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쪽의 <조선말대사전>을 모체로 올림말 선정 등을 진행한다는 게 공동편찬위의 계획이다. 여기에 한반도 전역과 재외동포 거주지역의 ‘방언’과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어휘 등 남북의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새말 보충작업’도 이어진다.

남북 어문규범을 통일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언어규범 남북단일화 문제 등 언어학적인 문제는 편찬위원회 모임과는 별개로 ‘남북 어문규범 단일화 모임’ 등이 지속적 협의를 거쳐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기왕의 편찬위원 외에도 남쪽의 국립국어원, 북쪽의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자들이 합류할 예정이다. 공동편찬위는 겨레말큰사전의 단일 어문규범이 마련되면, 훗날 통일된 남북이 국가적으로 반포할 단일 어문규범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사전 편찬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남북 공동 전자국어사전’을 펴낸다거나, 새 한글서체를 남북 공동으로 개발해 사전에 싣기로 하는 등 부수적이지만 의미심장한 공동작업도 펼칠 예정이다.

큰 사업이니만큼, 당연히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분단 이후 다른 길을 걸어온 남북 어문규범의 차이는 적지 않다.(표 참조) 이들 어문규범은 사소한 듯 보이지만 말글 생활의 중대한 차이를 빚고 있다. 두음법칙 등 원천적으로 ‘양보’나 ‘타협’이 불가능한 규범들도 적지 않다. 어휘에서도 남쪽의 외래어나 북쪽의 이념 어휘들은 ‘올림말 선정’ 과정에서 이견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디 감에도 통일된 겨레가 써야 할 말과 글의 본보기를 만들자는 사업은 이제 한방향으로 전진해가고 있다. 89년 방북한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국어대사전>의 공동편찬을 제의해 김 주석과 합의한 지 16년 만이다. 다만, 장영달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이사장의 호소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는 예산도 거의 없고, 사무실도 없으며, 일하는 사람도 부족합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수정 2019-10-19 11:23등록 2008-12-04 18:33

한-영 자동번역 ‘성공률 85%’의 벽을 넘어라 (hani.co.kr)

한겨레말글연구소 학술발표회

기자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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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il@hani.co.kr" />한겨레말글연구소가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쉬운 소통-기계번역기 점검·평가’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발표회에서 임종남 엘엔아이소프트 대표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번역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기술(IT) 혁명에 힘입어 국경을 넘는 정보의 교류와 소통이 급격히 늘어난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의 신속한 획득과 확산을 가로막는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최인호)는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회의실에서 국내에서 개발된 번역기의 성능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자동번역의 기초가 되는 전자 국어사전의 됨됨이를 살펴보는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아직 70~80% 수준…영→한 보다 한→영이 떨어져85% 넘어야 사용자 만족…“정부 외면이 발전 막아”

정보기술(IT) 산업의 성장에 따른 자동번역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동번역기의 한국어-영어 번역 성공률은 사용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확도와 효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본어-한국어 자동번역 시스템도 관용어와 동음이의어 등을 번역할 때 오역 사례가 잦아 후편집(교정)을 위한 체계적 매뉴얼 작성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박상규 박사는 이날 ‘한-영 자동번역 현황’이란 발표문에서 “한-영 자동번역 시스템의 번역률을 분석한 결과 70~80%에 머물렀다”며 “특히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것이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보다 번역률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박 박사는 “특허문서의 경우 2005년 ㅅ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83%로 번역률이 가장 높았다”며 “영어 웹신문 번역률은 ㅋ사의 것이 77%, 기술문서 자동번역은 지난해 ㄹ사가 개발한 시스템이 80%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전자통신원은 최근 1000개의 특허문서에서 (비교 가능한) 100개의 문장을 뽑아내 국내에서 사용되는 자동번역시스템을 이용해 번역한 뒤, 이것을 외부 번역전문가 7명에 의뢰해 평가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 번역률을 산출했다.

그는 “한국어와 어순·문법체계가 유사한 일본어를 제외하면, 영어·중국어 등 다른 외국어의 경우 획기적인 번역률의 향상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며 “지금 수준의 번역률로도 실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응용분야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 박사는 국내 자동번역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정부의 근시안적 연구개발 지원정책 △전문인력 부족에 따른 기술개발의 어려움 △자동번역 서비스는 공짜라는 소비자들의 그릇된 인식 등을 꼽았다.

토론자로 나선 임종남 엘엔아이소프트 대표는 “정보 습득을 위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자동번역 기술은 국가경쟁력 제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국내 업체들은 10년 남짓한 기간에 세계가 주목할 기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자동번역 기술에 대한 정부의 외면으로 이제는 개발투자조차 이뤄지지 않는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계번역기의 문제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이종혁 포스텍 교수는 기계(자동)번역기에서 사용되는 언어변환 방식을 비교한 뒤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언어변환 방식은 △규칙기반방식(RBMT) △예제기반방식(EBMT) △통계기반방식(SBMT) △다중엔진방식(Hybrid MT) 네 가지가 있다. 이 교수는 “어떤 변환방식도 어휘의 중의성이나, 문법적 이질성에 따른 번역의 난점을 모두 해결하기 어렵다”며 “다만 알비엠티는 원문 분석에, 디비엠티는 언어 변환에, 에스비엠티는 번역어 생성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계번역은 다중엔진 방식의 번역기와 정교한 평가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지속적으로 품질이 향상되는 추세다. 게다가 인터넷 상에서 웹브라우징과 채팅, 전자메일, 정보검색 등에 기계번역을 활용하거나 번역메모리와 문맥색인기 등 오프라인 번역지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 교수는 “당분간은 범용이 아닌 특수목적용으로 활용되겠지만, 장기적으론 기계번역이 음성언어 번역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자동번역·통역이 글로벌 정보화 시대의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경쟁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수용자 처지에서 한-일 번역기를 점검 평가한 오상현 연세대 박사는 “기계번역이라도 사용자가 오역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후편집(교정)을 꼼꼼하게 수행한다면, 인간번역의 한계인 느린 속도와 번역어 선택의 비일관성을 극복할 수 있는 보조수단으로 충분히 유효하다”고 결론지었다.

기계번역이 완전성을 갖추려면 의미·등가성·정확성·기교 등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기계번역은 텍스트 밖의 중요 정보인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는 게 오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동일하고 문법적 활용과 기능이 유사해 기계번역에 어려움이 거의 없음에도, 모호성과 동음이의어, 관용어 등의 특이요소가 섞인 문장은 오역 소지가 다분해 반드시 후편집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상용화된 일-한 기계번역은 96%, 한-일 기계번역은 92%의 번역 품질을 보이고 있다”며 “더 완벽한 품질을 확보하려면, 한층 다양한 상용어구와 복잡한 용언 활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부분 구문 분석과 부분 변환 방식이 채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남북 공동 국어사전 단계적 진행을”

등록 :2006-07-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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