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5

인천 검단신도시서 900년전 비색청자 다기 세트(종합) (daum.net)

 

인천 검단신도시서 900년전 비색청자 다기 세트(종합)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강과 약 4㎞ 떨어진 인천 북부 검단신도시 사업 현장에서 900년 전 무렵 만든 고려청자 다기 세트가 출토됐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윤덕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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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주거지 126기·원삼국∼조선 무덤 250여기 확인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나온 고려청자 다기 (서울=연합뉴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인천 검단신도시 사업부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12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다기 세트를 찾아냈다고 25일 밝혔다. 참외 모양 청자 주전자와 청자 잔, 접시, 잔 받침, 그릇이 한꺼번에 나왔다. 2018.7.25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강과 약 4㎞ 떨어진 인천 북부 검단신도시 사업 현장에서 900년 전 무렵 만든 고려청자 다기 세트가 출토됐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윤덕향)은 인천 서구 마전동, 원당동, 불로동 일원에서 2015년 12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 126기와 원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250여 기를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유적은 신도시 사업부지 중앙에 있는 배매산(해발 123m) 남쪽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한 곳에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참외 모양 청자 주전자와 청자 잔, 접시, 잔탁(盞托·잔받침), 그릇이 한꺼번에 나왔다.

조사단은 "도자기 원료가 되는 흙인 태토와 기법으로 볼 때 동시에 만든 것 같다"며 "철분이 거의 없는 정선된 흙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닥면을 동그랗게 깎아낸 흔적이 작고 고온에 잘 견디는 내화토 받침을 이용해 만들었다"며 "12세기 전반에 청자를 많이 생산한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나온 고려청자 다기 (서울=연합뉴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인천 검단신도시 사업부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12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다기 세트를 찾아냈다고 25일 밝혔다. 참외 모양 청자 주전자와 청자 잔, 접시, 잔 받침, 그릇이 한꺼번에 나왔다. 2018.7.25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도자사 전공 장남원 이화여대박물관장은 이 유물을 12세기 전반 강진에서 만든 품질 좋은 비색 청자로 보면서 "시신을 안치하고 의례를 올린 뒤 묻었거나 부장품으로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 관장은 "액체를 담는 주전자나 병, 작은 잔이나 그릇, 접시나 받침은 고려시대 무덤에서 나오는 보편적 구성"이라면서도 "참외 모양 주전자는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사례가 흔하지 않고, 잔탁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위한 의례에 주로 등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2세기 전반은 전국에서 청자를 두루 쓰던 시기는 아니어서 무덤 주인공은 위세가 있는 사람이거나 부유한 상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나온 고려 석곽묘 (서울=연합뉴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인천 검단신도시 사업부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12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다기 세트를 찾아냈다고 25일 밝혔다. 참외 모양 청자 주전자와 청자 잔, 접시, 잔 받침, 그릇이 한꺼번에 나왔다. 2018.7.25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청자 다기 일체가 나온 석곽묘에서 남쪽 150m에 있는 또 다른 고려시대 석곽묘에서도 청자 잔, 병, 잔탁, 청동촛대가 출토됐다.

아울러 고려 토광묘 중 두 곳에서는 청자병, 잔탁, 그릇, 접시와 함께 중국 송대에 제작한 동전들인 황송통보(皇宋通寶), 대관통보(大觀通寶), 소흥원보(紹興元寶)가 나왔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구릉과 경사지에 조성됐다. 평면 형태는 직사각형,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며, 주거지 내부에서는 불을 사용한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벽도랑, 저장 구멍이 확인됐다.

유물로는 입구에 점토로 된 띠를 덧대어 만든 토기와 아가리 끝 부분에 사선을 새기고 구멍을 뚫은 토기를 비롯해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돌창, 반달돌칼, 가락바퀴가 발견됐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나온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 (서울=연합뉴스) 인천도시공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인천 검단신도시 사업부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 126기를 찾아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원 관계자는 "주거지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인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 사이에 조성됐고, 일부는 이후까지 사용됐다"며 "검단신도시 일대는 이번 조사를 포함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500여 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당시 한반도 중서부 생활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덤 유구는 흙이나 돌로 봉분을 조성하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원삼국시대 분구묘(墳丘墓), 삼국시대 목관묘(木棺墓·나무널무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석곽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목관묘와 토광묘가 확인됐다.

 

 

입력 2007. 12. 3. 12:04수정 2007. 12. 3. 15:31

"유적 지뢰밭" 강릉 초당동 일대 사적 지정 (daum.net)

 

"유적 지뢰밭" 강릉 초당동 일대 사적 지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주나 풍납토성에 버금가는 "유적 지뢰밭"으로 꼽히는 강원 강릉시 초당동 일대 1만7천여 평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해변을 낀 구릉지대에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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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 8. 21. 10:55수정 2007. 8. 21. 10:55

대구 읍내동서 청동기 유물 발굴 (daum.net)

 

대구 읍내동서 청동기 유물 발굴

[쿠키 사회] 대구시 북구 읍내동 아파트 건립부지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 조선시대 우물집 등의 유물이 발굴됐다.20일 대구 북구청과 문화재 시굴조사를 맡은 (재)성림문화재연구원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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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대구시 북구 읍내동 아파트 건립부지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 조선시대 우물집 등의 유물이 발굴됐다.

20일 대구 북구청과 문화재 시굴조사를 맡은 (재)성림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2일부터 지난 6일까지 북구 읍내동 아파트 신축 예정부지 내 유적문화재 발굴조사 결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덩이와 함께 청동기시대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문토기 1점과 우물, 기와, 자기, 백자, 돌무더기 등이 다수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북구 구암동 함지고 신축 부지에서 삼국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취락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준구 기자입력 2023. 7. 25. 08:39

봉수에 불 피우는 화철, 국내 첫 발견…용인 건지산 (daum.net)

 

봉수에 불 피우는 화철, 국내 첫 발견…용인 건지산

[용인=뉴시스] 이준구 기자 =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의 건지산 봉수터에서 외적의 침입을 알리거나 급한 소식을 전하는 데 사용된 유물인 화철 등이 국내 최초로 발견됐다. 발견된 구조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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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송고시간2017-04-20 11:31

(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그동안 토성(土城)으로 알려진 국가사적 제56호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교하게 벽돌을 쌓아올린 석성(石城)이 발견됐다.

행주산성서 발견된 석성

(고양=연합뉴스) 국가사적 제56호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의 행주산성에서 조선 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교하게 벽돌을 쌓아올린 석성(石城)이 발견됐다. 2017.4.20
[고양시 제공=연합뉴스] nsh@yna.co.kr

 

고양시는 20일 "행주산성 종합정비계획 수립에 앞서 지난 2월 말부터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의뢰, 행주산성 정상에서 20m 아래 남서쪽 사면 문화유적 잔존 예상지 4곳에 대해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했다"면서 "조사결과 높이 3m가량의 석성과 삼국∼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과 철기 수십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은 보축성벽이 먼저 발굴되고, 몸통 격인 체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굴 관계자는 "석성은 돌과 돌 사이를 점토로 발라 일종의 아교 역할을 해 전혀 흐트러짐 없이 보존돼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무찔러 역사성이 높은 행주산성은 그동안 정확한 성곽 형태와 규모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고고학적 조사에서 삼국~고려 시대 유적이 확인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성곽은 둔덕 형태의 토성 400여m 정도만 발견됐다.

행주산성서 발견된 철기 유물

(고양=연합뉴스) 국가사적 제56호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의 행주산성에서 조선 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철기 유물이발견됐다. 2017.4.20 [고양시 제공=연합뉴스] nsh@yna.co.kr

 

이번 발굴에서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기와편과 화살촉, 수레바퀴 부속품 등도 함께 출토돼 행주산성에 공방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와편에서는 행주산성의 '행(幸)'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석성은 지난달 6일 시굴조사를 하면서 발견했다"면서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회의를 열어 발굴 유구에 대한 처리 방법, 복토 방법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부터 문화재청의 발굴 허가 및 지원을 받아 행주산성 석성의 축조기법과 구조, 축성 시기, 규모 등을 정확하게 밝히기 위한 전면 발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성이 위치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의 덕양산은 한강하구에 위치해 한쪽 면이 절벽으로 이뤄진 천혜의 요새다. 이 때문에 신라의 서해 진출, 고구려의 남하 등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국방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등록 2019-10-08 13:47

“고양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450m 석성” : 수도권 : 전국 : 뉴스 : 한겨레 (hani.co.kr)

경기도 고양 행주산성이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에 축성된 450m 규모의 석성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경기도 고양 행주산성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450m 길이의 석성.

 

 

 

송고시간2021-01-13 07:30

원형 잘 보존돼…남한강과 소백산맥을 품은 수려한 경관

 

 

온달산성 북쪽 성벽. 오른쪽에 수구가 보인다. [사진/조보희 기자]

 

(단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한국은 '산성의 나라'라고 할 만큼 산성이 많다. 그중에서도 원형이 잘 남아있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온달산성이다.

'바보' 온달이 전사한 곳으로 알려진 온달산성은 고구려·신라·백제가 치열한 영토 싸움을 벌였던 역사의 격전장이다.

 

◇ 휘돌아 가는 남한강과 소백산맥 줄기가 한눈에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다. 산자락은 골짜기를 끼고 있고, 계곡으로 모여든 물은 강이 되어 산과 산 사이를 흐른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면 멋진 풍광이 된다. 이것이 한국 지형과 자연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북미 그랜드캐니언이나 아프리카 대초원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숲과 물, 푸른 하늘과 바다가 조화를 이뤄 아늑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온 국민이 이름을 모르지 않을 온달산성도 그렇게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온달산성에 오르면 발밑으로 푸른 남한강이 크게 휘돌아 흐른다. 위로는 소백산맥 줄기가 첩첩으로 이어진다.

단양은 예부터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단양팔경'이 나온 연유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가자면 단양은 필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약 10년 전과 비교할 때 적지 않은 변화들이 감지됐다. 산천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시가지가 번화해지고 활기차 보였다.

명승지만 해도 단양팔경에 '제2 단양팔경'이 더해져 있었다. 단양팔경은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일컫는다.

제2 단양팔경은 북벽, 금수산, 칠성암, 일광굴, 죽령폭포, 온달산성, 구봉팔문, 다리안산을 말한다.

새로 개발된 관광지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단양강 잔도였다. 단양강변 절벽에 1.2㎞ 길이로 설치된 인공 데크 길이다.

벼랑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이 길은 인공이 창조한 제2의 자연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과 산을 눈으로 즐기고, 자연에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길이었다.

 

단양강 절벽에 데크로 이어진 잔도와 산 정상의 단양 스카이워크[사진/조보희 기자]

 

삼국시대부터 영남과 경기·충청을 연결했던 고갯길인 죽령옛길, 소백산의 장엄함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소백산자락길도 빼놓을 수 없는 보배로운 장소들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단양중에서도 온달산성에서 바라보는 국토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감동을 준다. 강은 몇 번이나 온몸을 뒤틀어 흐르며 이 땅을 적신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은 백두대간의 신성함을 새삼 일깨운다. 강과 산자락 사이에는 영춘면 인가들이 나지막이 앉아있다.

물론 온달산성은 경관 조망용 시설이 아니다. 남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강의 남안에 바짝 붙은 낭떠러지에 산성을 짓다 보니 자연히 주변 경관이 절경을 이루었다.

바퀴 달린 교통수단과 도로가 변변치 않았던 옛적에 수로와 배, 뗏목은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수로 중에서도 큰 강은 요즘으로 치면 고속도로였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는 국경지대에 있는 이 고속도로, 즉 남한강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다퉜다. 단양을 비롯해 충북지역은 3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던 접경 지역이어서 각축전이 심했다. 온달산성도 3국이 돌아가며 점령했던 곳이다.

 

◇ 삼국의 생사를 건 각축 현장

온달산성은 온달관광지에서 30분가량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간 곳에 있다.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의 전설을 주제로 조성된 온달관광지는 온달동굴, 온달전시관, 드라마세트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탈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 데크 계단이 설치돼 있어 탐방이 수월했다. 남한강이 보이는 쪽이 아닌, 길의 왼쪽은 아찔한 낭떠러지다.

 

온달산성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벌판 [사진/조보희 기자]

 

나무 계단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길이 매우 좁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발아래 절벽이 현기증을 일으킬 때면 1천500여 년 전 군사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흘렸을 피와 산성을 쌓느라 쏟았을 땀이 더 애처롭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온달산성에 이르는 가파른 길은 선인들의 삶과 죽음, 생존의 현장이었다.

온달동굴은 강원 지역에 산재한 석회동굴 중 하나다. 한국에는 1천여 개의 자연 동굴이 있다. 그중 약 200개가 단양에 있다.

온달동굴은 단양에서 관람이 허용된 3∼4개 동굴 중 하나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온달동굴은 감염병 사태로 잠시 폐쇄돼 있었다. 이 동굴은 바닥에 물이 흘러 탐방하는 동안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추운 날인데도 온달관광지에는 관람객이 꽤 눈에 띄었다. '바람의 나라', '태왕사신기', 천추태후' 등 영화와 TV 드라마를 찍은 세트장은 조만간 촬영이 있을 예정인지 관련 인력과 차량이 작업 중이었다.

이곳을 찾은 탐방객들이 산성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촉박한 일정 때문일 것이다. 온달산성이 관광객들로부터 관심과 호기심을 끌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소득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관광산업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관광지 조성에 큰 힘을 쏟고 있다.

해외로 나가려는 관광객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려면 관광자원 개발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이 땅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이어져 온 삶의 고귀함에 우리 자신이 눈뜨는 것이다.

그러면 관광과 탐방은 자연히 활발해질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관광자원이 아닐까.

 

온달산성과 남한강 [사진/조보희 기자]

 

온달산성은 다리품을 팔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온달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 상주의 견훤산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산성으로 꼽힌다. 그중 온달산성은 주변 풍광이 멋질 뿐 아니라 산성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

튼튼하고 균형 있게 잘 만들어진 산성은 비록 군사용일지라도 미적 감성을 자극한다. 온달산성은 고대에 지어졌음에도 서쪽 구간 약 100m가 무너졌을 뿐 대체로 잘 보존돼 있다. 워낙 견고하게 잘 지어졌기 때문이다.

두께 5∼15㎝ 정도의 비교적 얇고, 잘 다듬어진 돌로 쌓은 성벽은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축조물이다. 성돌의 크기는 가로 70㎝, 세로 40㎝ 정도다.

온달산성은 해발고도 427m의 산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석성이다. 둘레는 683m로 크지 않다. 테뫼 산성은 산 정상을 둘러싼 성을 말한다.

동·남·북쪽의 문 3개 중 동문 쪽 성벽은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돌출돼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양식이다.

북문에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내밀어 쌓은 치(稚)가 있다. 치는 성벽에 바짝 붙어 공격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만들었다.

온달산성의 지세는 남고북저다. 고도가 가장 낮은 북문 쪽에는 성안의 물을 밖으로 빼내기 위한 수구가 있다. 성안에 우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까지 유적 발굴단이 찾지는 못했다.

고대 설화를 통해 바보로 알려진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고구려 장군이다.

고구려의 온달은 백제에 빼앗겼다가 다시 신라로 넘어간 죽령, 계립령 땅을 찾기 위해 아단성을 공격하다가 성 아래서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온달장군 동상 [사진/조보희 기자]

 

아단성은 서울 광나루 근처 아차산성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지금의 단양군 영춘면이라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이에 따라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은 온달의 전사지로 간주된다.

영춘면에는 온달과 관련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영춘면 상리 나루는 온달을 장사지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장례 때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았으나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자 비로소 관이 들렸다는 전설이다.

온달산성은 정확한 축성 연대가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산성으로서 기능을 거의 상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라면 단양은 국토의 중심부다. 내륙 깊숙이 있는 산성은 방어용 요새로서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 한국은 산성의 나라

우리나라에는 산성이 많다. 그래서 한국은 '산성의 나라'라고 불린다. 산이 많으니 산세를 이용한 산성이 군사시설로서 자연히 발달했다. 산의 절벽이나 경사면을 이용하면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난공불락의 기지를 구축할 수 있다.

지리적 요충지에 쌓은 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고 영토를 보존하기 위해 전술·전략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최악의 경우 농성만 해도 적을 무찌를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위씨 조선 때부터 산성을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공주의 공산성, 부여의 부소산성 등 도읍지에 산성을 쌓았던 백제는 단연 산성의 왕국이었다. 고구려는 백제보다 더 일찍 산성을 쌓았다. 신라가 쌓은 산성도 많다. 3국 각축장이었던 충북 지방에는 다른 지역보다 산성이 많았다.

 

성안에서 발견된 공격용 석환(둥근돌) [사진/조보희 기자]

 

고려, 조선 시대 들어서는 삼국시대에 쌓은 산성을 주로 보수해서 이용했다. 두 왕조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산이 아니라 해안가에 주로 진지를 구축했다.

산성의 발달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징에서 비롯됐다. 산성은 한민족이 면면히 이어온 저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 몽골이 침략했을 때 산성에서 항쟁했고,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에 승리를 거둔 장소 중에는 산성이 많았다. 임란 때 조선 군대가 소중한 승리를 거둔 행주산성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부 이남에만 1천200여 개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매진(imazine) 제작을 위해 방문했던 지역 중에서만도 예천, 상주, 문경, 괴산, 청양, 부산, 밀양 등에 산성터가 있었다.

혹시 동네 뒷산에 산성터가 없는지 눈여겨보자. 분명 멀지 않은 곳에 크고 작은 산성터가 있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송고시간2020-03-18 17:39

문화재청, 네 차례 보류 끝에 지정 예고

인천 계양산성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인천=연합뉴스) 박상현 홍현기 기자 = 삼국시대에 축조해 한강 유역 교두보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계양산성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된다.

18일 문화재청과 인천시 계양구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는 최근 인천시기념물인 계양산성 사적 지정 안건을 검토해 가결했다.

계양산성은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계양산 주봉(主峯)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봉우리에 자리한 유적으로, 둘레는 1천184m다.

 

삼국시대에 조성한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활용했다. 용도는 군사 거점이자 행정 중심지로 판단된다. 이러한 역사적 특징 때문에 축성기술 변천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 등에 계양산 고성은 석축(石築·돌로 쌓음)이라고 기록됐다. 조선 사대부 오희문이 쓴 일기인 '쇄미록'을 보면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주둔했다.

현대에는 상당 기간 공동묘지로 사용됐다. 현재 성벽은 80% 이상 유실됐고, 잔존 성벽 최대 높이는 7m다.

계양산성에서는 10차례 학술조사를 통해 문터, 치성(雉城·성벽 바깥에 돌출한 구조물), 집수시설, 건물터 등이 확인됐다. 유물은 백제 한성도읍기 목간(木簡)과 항아리, 통일신라시대 대표 토기로 알려진 인화문(印花紋·찍은 무늬) 토기, 화살촉·자물쇠·쇠솥·덩이쇠 등이 출토됐다.

계양산성 내 건물터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앞서 계양구는 2016년 7월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신청했고, 문화재위원회에서 네 차례 보류되자 지속해서 서류를 보완해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조사를 한 문화재위원들은 "성을 처음 쌓은 시기와 주체 세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원형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계양산성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 학술·문화재 가치가 높아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오는 23일 예고하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양산성 출토 유물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입력 2019. 12. 18. 11:29

할미산성 수구


[용인=뉴시스] 이준구 기자 = 용인시는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산40-1번지 일원 선장산(할미산)에 석축으로 조성한 ‘할미산성’을 6차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 때 축조한 원시적 형태의 수구(水口)를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시는 2004년 조사에서 발견한 수구의 흔적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남동측 성벽을 중심으로 성벽 구간 70㎡와 집수시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내부 400㎡를 정밀 발굴했다.

 

이 과정에서 수구의 입수구와 배수구가 모두 성벽의 중간을 통과하도록 만들어진 ‘성벽통과식’ 형태라는 점을 확인했다.

입수구는 너비 32㎝, 높이 23㎝이며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반듯한 네모모양이다. 배수구는 석재를 나란히 깔아 계단처럼 만들었는데 약 4m의 높이로 물이 성 바깥으로 흐르도록 했다.

성벽 바깥의 수구 하단부에는 물의 흐름을 계곡 방향으로 유도하도록 석재 1장을 놓아 낙수받이로 사용했다.

시는 이 수구가 성벽을 중심으로 조성된만큼 성벽의 축조양상도 파악해 견고함을 분석했다. 외성벽은 밀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풍화암반을 굴착해 조성했고, 하단부엔 너비 약 80㎝, 높이 약 30㎝의 기단보축을 성벽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세워쌓아 성벽을 조이는 역할을 했음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 시는 지난 10일 이곳에서 학술자문회의를 열어 이번 발굴 결과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문화재청 전문위원인 백종오 한국교통대 교수는 “할미산성 성벽에서 확인된 수구는 삼국시대 석축산성 내 만들어진 수구의 시원적 형태로 낙수받이의 축조방법과 함께 잔존양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심정보 한밭대 명예교수는 “수구는 성벽이 밖으로 밀릴수록 견고하게 조여드는 성벽 중간에 설치돼 있어 과학적 축성의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임도수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할미산성의 배수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며 “할미산성의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자료뿐만 아니라 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시는 18일 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열어 시민·관계자 등 참여자들에게 이번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입력 2019. 12. 4. 10:37

초기철기 33점·삼국 91점·조선시대 1점 등 유구 125점 발견
[대구=뉴시스]김정화 기자 = 대구 동구 안심창조밸리 공영주차장 조성부지에서 초기철기 시대, 삼국시대, 조선 시대의 분묘와 건물 등이 한곳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북쪽 생활유적 전경. (사진 = 대구시 동구 제공) 2019.12.04. photo@newsis.com

[대구=뉴시스] 김정화 기자 = 대구 동구 안심창조밸리에서 초기철기 시대, 삼국시대, 조선 시대의 유물이 한곳에서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4일 동구와 동국문화재연구원 등에 따르면 대구시 동구 안심창조밸리 내 공영주차장 예정부지에서 초기철기 시대, 삼국시대, 조선 시대의 분묘와 생활유적 등이 확인됐다. 현재 구청과 동국문화재연구원은 이곳에서 지난 7월부터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영주차장 예정부지는 유물산포지에 해당했고 동구는 지난 2월 조성사업을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 후 표본조사 실시, 조사하던 중 유적이 발견됐다.

표본조사 결과를 받은 동구는 지난 7월 문화재청 발굴허가를 받아 주차장 예상부지 중 4616㎡를 정밀발굴조사로 전환, 본격적인 유적조사에 나섰다.

[대구=뉴시스]김정화 기자 = 대구 동구 안심창조밸리 공영주차장 조성부지에서 초기철기 시대, 삼국시대, 조선 시대의 분묘와 건물 등이 한곳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31호 석곽묘 동단벽 출토유물. (사진 = 대구시 동구 제공) 2019.12.04. photo@newsis.com

 

1차 정밀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의 석곽묘, 목곽묘, 토광묘 등 분묘 88개, 수혈, 우물 등 3점의 유물과 초기철기 시대의 수레바퀴 흔적 2개, 구덩이(수혈) 22개 등 33점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에 동구는 주차장 예상부지 4573㎡를 대상으로 추가 시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를 확인한 동구는 2045㎡를 정밀발굴조사로 전환을 결정,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구=뉴시스]김정화 기자 = 대구 동구 안심창조밸리 공영주차장 조성부지에서 초기철기 시대, 삼국시대, 조선 시대의 분묘와 건물 등이 한곳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31호 석곽묘 중앙부 출토유물 -철도(鐵刀). (사진 = 대구시 동구 제공) 2019.12.04. photo@newsis.com

 

현재까지 북쪽 생활유적 2748㎡ 중 46.85%에 해당하는 면적 1260.03㎡에서 초기철기 시대 유구 33점이 발견됐고, 북쪽 분묘유적 1868㎡에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유구 91점 등 총 124점의 유구가 발견됐다.

아울러 남쪽 생활유적 2280㎡에서는 59.65%에 해당한 1360㎡ 면적에서 조선 시대 건물지 1점이 확인됐다.

동구 관계자는 "발견된 유물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적법한 소유 절차를 확인한 후 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며 "유적 문화재 정밀발굴조사 결과는 조사가 완료된 뒤 언론과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k@newsis.com

 

 

등록 2019.11.29 13:55:31

6~7세기 축조된 뒤 조선시대까지 지속운영

 

[오산=뉴시스] 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성곽이 최초로 확인됐다. (사진 = 오산시 제공)


[오산=뉴시스] 정숭환 기자 = 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이하 독산성)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성곽이 최초로 확인됐다.

경기 오산시는 독산성 성곽 보수 및 정비에 앞서 원성벽의 구조와 축조방업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결과 복원성벽 아래에 묻혀있던 삼국~조선시대 성벽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독산성 북동치 및 북문지 주변 성곽 일부에서 배부름 및 이탈 현상 등이 확인됨에 따라 (재)중부고고학연구소와 한신대학교박물관이 성곽 보수 및 정비에 앞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실시됐다.

조선시대 성벽 아래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성벽은 내벽과 외벽을 함께 쌓는 협축(夾築)방식과 외벽만 쌓는 편축(片築)방식을 모두 이용해 지형에 따라 축조기법을 달리 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외벽은 대체로 장방형 혹은 방형의 성돌을 이용해 바른층 쌓기로 이뤄졌으나 일부 구간에서는 세장방형의 성돌을 이용해 쌓은 것으로 볼 때 수차례 고쳐 쌓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벽의 바깥쪽으로는 체성벽 하단부를 보강하기 위한 기단보축을 조성하고, 이에 덧대어 점토를 다시 보강하기도 했다.

내벽은 일부 구간에서만 확인되었고 높이는 약 4m이며 외벽과 달리 가공하지 않은 할석을 이용해 층을 맞추어 쌓아올렸다.

조선시대 성벽은 삼국~통일신라시대 성벽의 적심부 상면에 쌓아올렸으며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문 아래층에서 조선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문지와 적대 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성 안쪽 내탁부에서는 상부에 여장(女墻)이 확인됐고 성 안쪽을 보다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조성한 계단식 석축시설은 종·횡방향으로 쌓여 있었다.

유물은 삼국~통일신라시대 타날문토기편과 단각고배편 등 토기와 도기편, 연화문 와당, 고려시대 청자편·반구병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유적의 연대는 성벽 축조기법과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6~7세기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조된 후 15~18세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파악하고 된다.

오산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독산성에서 삼국시대 성벽이 처음 확인되어 독산성의 초축시기 및 수축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확보되었다”며 “서울·경기 지역의 관방체계와 산성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시와 조사기관은 오는 12월 4일 오전 10시 30분에 일반인과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현장공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 및 현장공개 참가는 한신대학교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newswith01@naver.com

 

 

장우성 기자입력 2018. 7. 11. 18:22

아차산성에서 발굴된 집수시설 전경(광진구 제공)© News1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서울 광진구(구청장 김선갑)는 12일 오후 3시 삼국시대 역사를 밝혀줄 사적 제234호 아차산성 발굴조사 성과를 현장에서 공개한다.

광진구는 (재)한국고고환경연구소에 의뢰해 아차산성 남벽 일대에 4차 발굴조사를 한 결과 남벽 12m, 북벽 6.5m, 동서벽 12m 사다리꼴의 집수시설을 확인했다. 집수시설 안에서는 목간을 포함한 다양한 목기와 씨앗 등이 확인됐다. 삼국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집수시설이 매몰된 후에 상부에 조성된 배수로에서는 부여 부소산성 출토품과 비슷한 대형 철촉이 조사됐다. 이 철촉은 성벽에 고정하거나 이동식 쇠뇌에서 사용한 노촉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군사 운영을 알 수 있는 실마리다.

아차산성 최북단에 위치한 망대지 일대에 대한 2차 발굴조사를 담당한 (재)한강문화재연구원은 망대지 하단부 평탄면을 조사한 결과 장축 15.6m 석축 위에 기단석열과 초석을 갖춘 1호 건물지를 비롯해 총 10기의 건물을 확인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초기때 토기와 기와 등 유물도 무더기로 출토됐다. 특히 4호 건물지에서는 의도적으로 훼기한 동경(구리거울) 조각이 한 점이 확인됐는데, 테두리의 문양이 중국 동한시기의 것과 비슷해 관심을 끌고 있다. 모형 철제마, 차관, 보습, 철촉 등 철기류도 확인됐다.

이러한 동경과 철제유물의 조합은 포천 반월산성, 화성 당성, 이천 설봉산성, 광양 마로산성 등지에서 확인된 제사유적의 양상과 비슷해 삼국시대 산성 내부의 제사 흔적을 복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아차산성은 삼국시대 격전지이며 중요한 역사 자료가 있는 곳으로 아차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지속적으로 관리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nevermin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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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미 기자입력 2017. 8. 29. 09:18수정 2017. 8. 29. 10:13

평택 국제화지구 부지서 '구석기~조선시대' 유물 다량 출토

원삼국시대 4호주구토광묘 조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 News1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경기도 평택의 한 개발 지구에서 다량의 선대 유물들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평택 고덕면 해창리 일대의 '국제화계획지구' 부지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분과 집터 등을 발견, 선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확인됐다고 29일 밝혔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호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 중인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 조성사업' 부지는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해창리·좌교리 일원이다.

평택 국제화계획지구 개발 사업 시행에 앞서 지난 2007년 지표조사가 시행됐다. 그 결과, 유물 산포지 36개소 등이 확인됐으며, 이에 지난해 3월부터 발굴조사를 시행해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량의 유구와 유물이 확인됐다.

초기철기 시대의 무덤군은 5기의 토광묘로 주로 토기가 출토됐으며, 검은간토기인 흑도장경호, 흑도단경호가 묶음으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청동투겁창(나무 자루를 끼우는 창)이 함께 출토됐는데, 이는 경기 남부 지역으로 청동기 문화가 유입·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설명이다.

초기철기시대 5호토광묘 청동투겁창 출토. (문화재청 제공) © News1

 

삼국 시대의 고분(주구토광묘·토광묘·옹관묘)은 한 구역에서 30여 기가 집중적으로 조사됐다. 고분들의 규모에 따라 군집양상을 이루고 있다.

이 중 4호 주구토광묘는 매장주체부 길이가 460㎝에 달하며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고리자루큰칼), 소환두도자(素環頭刀子), 마구(馬具, 재갈), 철부(鐵斧, 철도끼), 철모(鐵矛), 철정(鐵鋌, 덩이쇠) 등 다수의 철기와 함께 토기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무덤의 크기와 유물 양상 등을 미루어 볼 때 무덤의 주인은 수장급의 인물"이라고 추정했다.

원삼국시대 4호주구토광묘 매장주체부. (문화재청 제공) © News1

 

또한 단독으로 조성된 2호 토광묘에서는 철정 2점이 나란히 부장되어 있는데, 표면에서 옻칠흔이 확인돼 향후 정밀분석이 이뤄질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들 무덤군에서 나온 철제 유물은 당시 경기도 지역에 철기 문화가 어떻게 정착·확산되었는지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했다.

원삼국시대 4호주구토광묘 마구(재갈). (문화재청 제공) © News1

 

조선 시대 유구는 구들이 시설된 주거지와 토광묘가 다수 조사됐고, 유구 내에서는 분청사기·백자, 동전(조선통보) 등이 출토됐다. 구들이 시설된 주거지는 평택 국제화계획지구 조성사업 부지 내의 조사사례와 비교검토를 통해 당시의 마을구성을 복원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지역의 지명이 '해창리'(海倉里)라는 점과 과거 곡식을 보관하던 '해창'(海倉)과의 관련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 유적의 발굴조사 성과는 29일 오후 3시에 발굴조사 현장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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