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 민족과 민족주의는 언제 만들어졌나? (2)근대 초 민족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종교이다. 유럽은 16세기 초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되며 커다란 내적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유럽사회가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각 나라에서 국내적으로 큰 정치, 사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9.02.20 14:1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8>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⑤ - (2)
- 민족과 민족주의는 언제부터 만들어졌나?근대주의자들은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중세시대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대체로 부인한다. 그것을 18세기 말 이후 근대의 산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근대 시기에 민족이나 민족주의 비슷한 것이 있더라도 그 의미를 매우 과소평가한다. 따라서 근대주의를 비판하기 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9.02.03 14:3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7>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⑤ - (1)
-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은 무엇인가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기본적 원리들을 대체로 그대로 받아들였던 기존 해석에 대한 불만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또한 2차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들이 해방되며 '민족 내지 국가형성'이 사회과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던 1960년대를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12.30 08:2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6>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④
- 민족주의를 보는 관점들오늘날 민족주의 이론에서 가장 본질적인 논쟁점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최근에 등장한 근대주의적 해석이 민족과 민족주의를 근대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족과 민족주의를 근대적인 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11.28 14:5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5>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③
- 민족, 민족적 정체성, 민족주의우리가 민족, 민족주의와 같은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는 하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구분해서 쓰지는 않는다. 일반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학자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같은 현상을 설명하며 여러 단어들을 뒤섞어 혼용한다. 또 같은 단어를 매우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11.19 08:0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4〉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②
-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사회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지식인들의 상투어가 되어 있고 민족주의는 모든 악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서양 강대국들 사람들의 입장과 한국인의 입장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10.31 15:11: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3>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①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식민지 해방과 제3세계의 억압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 지역에서 탈식민화는 1960년대에 대부분 끝났다. 2차대전 후에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 해방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과거의 식민국가들은 이제 제국을 유지하는 데 정치, 경제적으로 너무 비용이 많이 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9.04 11:2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2>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⑥
- 고유문화의 해체와 식민지 문화의 형성결과적으로 식민지인들은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상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나 형벌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식민체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29 08:41: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1>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⑤
- 식민사회와 '정치적 협력자'의 문제식민세력이 들어오며 식민지의 전통적인 사회 구조도 무너지게 되었다. 새로 유럽인들이 지배계급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복잡한 사회구조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중남미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유럽인, 원주민,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흑인 노예들이 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27 09:2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0>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④
- 식민지의 경제적 착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처음 건설한 스페인 왕실이 계속 관심을 가졌던 것이 귀금속의 착취였던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처음부터 경제적 착취이다. 정착식민지의 경우 식민자들은 원주민들로부터 토지를 아예 강탈했으니까 이야기할 것조차 없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22 09:2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9>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③
-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지배 체제16세기 초에 중남미 지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정복의 권리'에서 찾았다. 자기네들이 정복한 땅이니까 그것을 점령하고 다스리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의 땅과 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20 11:1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8>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②
- 식민주의, 왜 지금까지도 문제인가제3세계국가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3세계 학자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식민주의에게 돌린다. 식민주의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생적인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 창조성도 억눌렀다는 것이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15 08:0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7> 식민주의와 그 역사적 유산 ①
-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식민화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산업혁명은 결코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한 도덕적인 자본 축적, 위대한 발명가들, 앞선 과학, 모험적인 기업가들, 이로 인해 탄생한 거대한 생산력, 이런 것들에 의해 미화될 수 있는 평화스럽고 단순한 경제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비유럽 지역 사람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13 12:0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6>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⑦
-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이는 면직산업 만에 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한때 번영하던 인도경제는 원자재를 빼앗기고 반대로 기계로 생산한 완제품을 사서 쓰는 한심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의 제3세계 국가들이 과거 식민지 시대에 대부분 똑 같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08 11:55: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5>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⑥
- 면직산업과 원료ㆍ시장ㆍ통상로 보호의 문제해군이 면직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은 1753-63년의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 함대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영국이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국이 패배했다면 인도나 아메리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8.01 12:0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4>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⑤
- 영국 면직산업의 성장과 국가의 역할산업혁명은 시작되고 나서도 한 세기 이상 몇 개의 선도적 부분에 제한되어 있었다. 면직산업, 철강산업, 철도와 운하를 포함한 운송산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면직산업은 1780-1860년 사이에 총 생산액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문이었다. 또 가장 먼저 기계화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7.30 11:5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3>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④
-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2)그러나 내부적 요인들을 강조하는 해석들은 1980년대에 오면 저항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역사적 실제와 잘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특히 핵심이라고 할 농업혁명은 문제거리이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실체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토니를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7.23 12:0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2>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③
-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1)즉 잉글랜드의 산업혁명은 18세기 말의 우연적인 기술발전의 산물로 나타난다. 기술발전으로 생산비용이 절감되며 해외시장을 하나하나 장악하게 되었고 이것은 마침내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외 수출의 확대는 기술혁신의 원인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7.16 17:1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1>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②
-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그러므로 산업혁명은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눈을 세계사적인 차원으로 돌리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의 약탈과 노동착취, 그리고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산업혁명의 기둥이라고 할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7.11 09:3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0>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①
- 세계사 속의 프랑스 혁명프랑스혁명의 맑스주의적 해석은 프랑스의 문화적 민족주의와 맑시즘의 기묘한 결합이다. 잘못된 교육은 사람들의 정신을 썩게 만든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7.09 11:0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9>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⑩
- 프랑스혁명과 식민주의, 노예제, 유대인 해방카리브 식민지와 관련해 혁명가들은 식민지 해방이나 노예제, 노예무역의 폐지에 전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노예해방은 카리브 식민지들이 영국의 손에 넘어갈까봐 취한 궁여지책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것은 흑인 노예들이었지 혁명가들은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6.27 11:12: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8>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⑨
- 프랑스 혁명기의 문화문화와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는 혁명기의 노력은 일부 살아남은 것도 있으나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함께 대부분 자취 없이 사라졌다.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종교문제가 특히 그렇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6.20 12:0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7>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⑧
- 프랑스 혁명과 자본주의1793년의 봉건제 해체를 포함한 혁명기 농촌사회의 변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봉건제 해체는 농촌사회의 토지소유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민들이 당시까지 영주들에게 내던 여러 공납이나 부담을 면제 받음으로써 자신들이 경작하던 땅을 이제 직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6.13 16:19: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6>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⑦
- 프랑스혁명과 봉건제 폐지맑스주의 역사가들에게 봉건제 내지 영주제의 폐지는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봉건적 생산양식의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에서도 봉건제 폐지를 통해 구체제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위해 필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6.06 16:1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5>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⑥
- 민주주의인가, 독재정치인가혁명에 의해 새로운 사회의 기준이 된 것은 무엇일까. 그 가장 중요한 것이 재산이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사회적 특권이 사라진 데 대해서는 불만을 느꼈으나 크게 잃을 것이 없었다. 소수의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귀족들이 망명을 했을 뿐 대부분의 귀족이 뒤에 남은 것은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30 08:2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4>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⑤
- 프랑스 혁명은 계급투쟁인가프랑스혁명을 귀족계급을 타도한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은 맑스주의자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그것을 통해 프랑스가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프랑스혁명은 프랑스사에만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28 07:39: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3>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④
- 수정주의 해석의 발전최근 2, 30년 사이의 프랑스혁명사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맑스주의적 해석이 삽시간에 거의 붕괴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연구가 지나치게 맑스주의 도식에 의존함으로써 역사현실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21 07:1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2>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③
- 맑스주의적 해석이란맑스주의적 해석은 프랑스 혁명을 앞에서 말한 대로 새로 흥기한 부르주아 계급과 전통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귀족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본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의 흥기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르페브르는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을 중시했고, 나중에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16 08:15: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1>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②
- 프랑스 혁명의 두 얼굴20세기 전반에서 3/4분세기까지 그것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 대체로 맑스주의적 해석이다. 반면 80년대 이후에는 수정주의적 해석이 점점 세력을 확대하며 지금은 오히려 맑스주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14 08:12: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0>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①
- 근대 유럽과학의 절대화는 피해야따라서 서양과학과 비서양과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서양의 우월을 이야기하는 데는 그럴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이 서양인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17세기 이후 유럽과학의 발전을 유럽인의 창의성 탓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09 11:1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9>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⑦
- 비유럽의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서양학자들은 유럽과학이 그리스의 전통을 이었으며 따라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과학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리엔트 지역의 과학은 실용적인 수준에 머물렀으므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면에서 그리스 과학보다 한참 뒤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5.07 15:01: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8>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⑥
- 하비, 보일, 파라켈수스주의이들에게서 과학적 사고와 비과학적 사고는 단순한 병치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데 얽혀서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근대과학적 측면만을 따로 떼어내 평가한다는 것은 얼마나 작위적이며 이 시기의 역사상을 왜곡시키는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30 16:04: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7>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⑤
- 점성술, 연금술, 마법적 전통그러면 케플러와 뉴턴의 경우를 통해 이 시기 과학과 비학의 관계를 한 번 살펴보자. 케플러가 점성술사였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천문학자로서의 사명으로 생각했다.1601년에 프라하에서 발간한 <점성술에 대한 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23 10:3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6>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④
- 16-18세기의 유럽 과학의 모습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근대 과학이 처음 시작되어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인 분야는 천문학이며 천문학의 발전은 수학과 역학의 발전을 동반했다. 이 학문들이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아리스토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16 09:21: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5>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③
- 과학혁명의 개념과 그에 대한 비판과학혁명이라는 말은 요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이고 그것을 일반화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은 영국 역사학자 허버트 버터필드이다. 그가 1949년에 낸 <근대과학의 기원: 1300-1800>이라는 책이 대중들의 큰 호응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09 13:4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4>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②
- 17세기 유럽과학의 발전과 유럽중심주의근대에 들어와 유럽과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손쉬운 주장들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슬람과학이나 중국과학 등 비유럽과학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근대 유럽인의 독창성을 과장하여 유럽과학 발전의 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04 09:3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3>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①
- 차별의 원리로서의 계몽사상사실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합리적인 유럽문화와 이성을 가진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비유럽인과 그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상체계이다. 그래서 그 후 서양인들이 보편성으로서의 유럽문화가 야만상태에 있는 비유럽문화에 대해 갖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4.02 09:4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2> 계몽사상의 재조명 ⑤
- 문명과 진보의 이데올로기우리는 오늘날 '문명'이라는 단어에 별 주의를 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고 만들어진 단어이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다른 지역의 문화와 구분되는 독특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에 대한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3.28 08:15: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1> 계몽사상의 재조명 ④
- 계몽사상과 합리성자연법으로서의 상업의 자유는 유럽인들의 통상확대에는 도움이 되는 논리였지만 비유럽인에게는 제국주의적인 논리 이외의 것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다른 나라에 가서 문호개방과 통상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했다.인간의 몸의 미학적 가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3.26 07:32: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0> 계몽사상의 재조명 ③
- 계몽시대는 세속화된 시대였나그러니 얼마 안 되는 계몽사상가들이 마치 세속화에 큰 역할을 하여 일거에 세상이 바뀐 것처럼 생각해서 안 될 것은 당연하다. 물론 18세기에 세속화를 위한 모든 주된 논의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세속화는 그 후 오랜 시간이 걸린 느린 과정이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3.21 07:4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9> 계몽사상의 재조명 ②
- 계몽사상이란 무엇인가계몽사상은 18세기 유럽에서, 특히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발전한 것으로 서양 근대사상의 기초를 마련했다. 계몽사상가들로는 계몽사상가의 왕으로 불린 볼테르를 비롯해 몽테스키외, 루소, 흄, 디드로, 달랑베르, 칸트 등 많은 사람을 들 수 있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3.19 08:1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8> 계몽사상의 재조명 ①
- 인종주의의 극단화와 유대인 학살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인종주의적 사고를 전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체임벌린(H.S.Chamberlain)이다. 그는 영국 출신이나 독일로 귀화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로 나중에 오페라 극작가로 강한 인종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던 리햐르트 바그너의 사위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체임벌린은 인종의 순수성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가치이므로 인종적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29 10:2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7>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④
- 근대적 인종주의의 본격적 발전19세기 인종주의 이론의 중요한 발전은 미국에서도 이루어졌다. 그것은 미국이야말로 노예제의 합리화가 중요한 과제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노예제는 미국민의 자유와 평등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24 09:52: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6>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③
- 전근대 유럽사회와 인종주의생물학적 인종주의가 발전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프리카 노예의 수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노예화하려 하면 도망치거나 싸우다 죽는 등 노예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플랜테이션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22 00:3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5>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②
- 인종주의, 왜 문제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양의 많은 사람들은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황인종이나 흑인종을 깔보고 경멸한다. 그것은 이 세계가 식민주의 시대 이래 불평등하게 만들어졌고 오늘날에도 백인종과 다른 인종 사이에 경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17 01:0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4>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①
- 존 로크와 식민주의자연법 이론의 이런 식민주의적 성격은 계몽사상에도 대체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식민주의를 옹호하거나 상업의 자유를 주장하며 비유럽지역에 대해 통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17-18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들은 거의가 무역을 확대하기 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15 08:3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3>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③
- 그로티우스와 식민주의적 열망3. 그로티우스와 '바다의 자유' 그로티우스와 '바다의 자유' 네덜란드 사람인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근대 자연법의 창시자이자 국제법의 아버비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1609년에 <자유로운 바다: Mare liberum>라는 글을 통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10 03:2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2>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②
-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자연법은 유럽인들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정에는 그렇게 볼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자연법의 발전이 근대 초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적 열망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자연법의 발전이 애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08 00:5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1>
- 월러스틴 세계체제론과 유럽중심주의사실 월러스틴이 세계체제론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정열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의 객관적 이해에 실패한 것은 이러한 유럽중심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며 전 세계를 하나로 포섭하기 이전에도 이미 전 세계의 주요 지역들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03 00:4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0>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④
- 근대 초 아시아경제의 재평가당시의 아시아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18세기 사람으로 <국부론>을 쓴 영국의 뛰어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관찰이 적절해 보인다. '중국과 이집트, 인도는 세계의 어떤 나라들보다 부유하다. 중국은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훨씬 부유한 나라'라는 것이다. 사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8.01.02 02:1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9>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③
- 유럽 자본주의는 어떻게 발전했나이렇게 유럽 자본주의의 성장과 관련한 월러스틴의 주장은 아메리카와의 관련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상당부분 1970년대까지 유럽중심주의적 학자들이 주장한 내재적 성장론을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아시아와의 관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27 10:1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8>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②
-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없으므로 약 50년을 주기로 팽창과 정체를 되풀이하는 경기변동을 맞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가 재정비되며 더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18 01:5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7>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①
- 인류 최대의 홀로코스트그러나 1492년 이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유럽 문명이 아메리카를 매개로 국제적이고 지구적인 우월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유럽의 8배나 되는 광대한 토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수천만의 노동력,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13 01:25: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6> 유럽의 해외팽창 ④
- 유럽은 어떻게 아메리카를 착취했나?아메리카의 이런 엄청난 착취가 스페인을 16, 17세기에 유럽 최대의 부국으로 만든 바탕이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은 중남미 지역에서도 활동했으나 북아메리카에 대한 침탈은 17세기 이후에야 본격화 했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11 03:3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5> 유럽의 해외팽창 ③
- 유럽은 어떻게 아메리카를 정복했나?1492년의 아메리카 인구는 적게는 5천만에서 많게는 2억 정도까지도 본다. 그러나 1억 정도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는 당시 유럽의 인구와 맞먹는 것이다. 그 가운데 3/4이 16세기 한 세기 동안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또 17세기 중반이면 90%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06 01:5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4> 유럽의 해외팽창 ②
- 아메리카의 발견?반면 인도에 도착한 바스코 다 가마에 대해 유럽인들은 그가 인도를 발견했다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갖고 있던 인도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메리카인의 존재와 그 문화를 전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2.04 04:4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3> 유럽의 해외팽창 ①
- 르네상스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이렇게 '서양 근대문명의 흥기'라는 큰 논의 틀의 일부로 연구되어온 르네상스 연구는 이제 심각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시대를 규정하는 이름만으로는 당분간 르네상스를 받아들인다 해도 부르크하르트가 강조하는 '근대성'이나 '진보'라는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29 00:34: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2> 부르크하르트와 르네상스 ③
- 부르크하르트가 보는 르네상스와 그 문제점앞에서도 보았듯이 인문주의자들이 고대의 비기독교적 문화에 접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비종교적인 인물들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개혁 이전 이탈리아의 교회가 많이 부패하고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르크하르트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27 00:12: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1> 부르크하르트와 르네상스 ②
- 르네상스, 무엇이 문제인가?그러면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이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었고, 인문주의라는 학문을 통해 고대의 세속적인 가치를 다시 받아들임으로써 기독교의 억압을 분쇄했고, 신분제를 해체함으로써 인간중심적이고 자유로운 사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22 01:0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0> 부르크하르트와 르네상스 ①
- 유럽의 도시는 특수하다고?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아시아 도시의 성격은 유럽중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정치적 성격이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고 아시아 경제가 18세기까지도 유럽보다 훨씬 발전했으며 활력 있었다는 주장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럽도시의 경제적 성격을 지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20 06:2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9> 유럽 중세도시는 자유로웠나? ③
- 유럽 중세도시의 실상또 도시민은 여러 계급으로 구분되어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계급에 따라 사는 지역도 달랐다. 도시민이기는 하나 시민권이 없는 경우에는 성안에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 계급에 따라 입는 옷, 심지어 착용하는 장신구까지 세세히 규정되어 있었다. 근대초인 1621년에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15 00:4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8> 유럽 중세도시는 자유로웠나? ②
- '자유로운 유럽 중세도시'라는 신화이런 생각은 20세기 후반의 서양 역사가들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페르낭 브로델은 1995년에 쓴 <문명의 역사>라는 책에서 '13-14세기에 지어진 서양 도시의 석조성벽은 독립과 자유를 향한 의식적 노력의 외적인 상징'이며 '도시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13 00:1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7> 유럽 중세도시는 자유로웠나? ①
- 그리스문화의 이상화이처럼 고대 그리스를 멋모르고 동경하고 칭송하는 데에는 큰 함정이 숨어 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에 비추어 그런 행동은 비서양인인 우리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 따라하기'가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08 08:56: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 그리스문명에 대한 환상 ③
- 빙켈만이 이룬 대전환조각과 문화, 그 시대에 대한 빙켈만의 이런 높은 평가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과 교양 계층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고 그리스와 그 문화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빙켈만의 주장이 이렇게 받아들여진 것은 당시 유럽 지식인 사회가 기독교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06 07:23: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 그리스문명에 대한 환상 ②
- <블랙 아테나>와 문화전쟁그러나 이런 인식은 사실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스 문명은 결코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문명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또 유럽이 그리스 문명의 독점적인 후계자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 이슬람 문명이나 비잔틴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1.01 11:50: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 그리스문명에 대한 환상 ①
- 유럽중심적 역사의 해체를 위하여그러니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에 지레 겁을 막고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감연히 맞서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그러려면 보다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그들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의 학문적 전통을 만들어 낼 수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0.30 01:11: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
-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은 누가 만들었나유럽중심주의적 생각은 역사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근대 유럽 학문에서 나타난다. 이들 학문이 18세기나, 또 유럽의 우월이 확실해진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강력한 모습을 갖고, 또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분야가 역사학이다. 유럽 사람들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0.25 09:07: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 헤겔에서 홉스봄까지
- 역사는 객관적으로 쓰여지지 않는다사실 서양의 역사학은 19세기 이래 크고 작은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왔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인종주의, 식민주의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폭 넓은 영향을 미친 것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인 유럽중심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 2007.10.23 00:48:00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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