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음; 사람 이름, 칭호》

 

출처; 최춘태 지음, 갑골음으로 식민사학·동북공정

 

 

桓因(환인);

 

()의 갑골음은 [gəsər]가 되네. 앞서 재구한 ()의 갑골음 [gəsər]과 비교하면, 이 둘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라네. ()의 음 [gəsər]은 후대에 어두가 무성음화하여 k로 변천하였기 때문일세. 그것이 바로 갑골음 이후의 [kəsər]가 되는 게지. 그 후 어두 모음이 동음생략되어 [ksər]이 되고 복성모 k-s-가 각각 운모 ər과 결합하면서 두 부류 [ᄀᆞᄅᆞ kər(ə)][ᄉᆞᄅᆞ sər(ə)]로 분리 변천하게 된 것이라네. 이는 가라족과 사라족을 의미하네.

 

의 갑골음은 [gən(ᄀᆞᆫ)]으로 복원되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추리면, ()의 갑골음은 [gəsər(ᄀᆞᄉᆞᆯ)]이고, 의 갑골음은 [gən(ᄀᆞᆫ)]이니까 桓因(환인)의 갑골음은 [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이 되네. [ə()]는 후에 [a()]로 변천하였으므로 [gasar kan(가사 간)]이 되고, a()의 상대형 e()讀音(독음)될 경우에는 [geser kan(거서 간)]이 되네. 이는 朴赫居世(박혁거세) 왕의 위호 居西干(거서간)도 당시 음이 [gəsər gən(ᄀᆞᄉᆞ ᄀᆞᆫ)]이었으나 후대에 [gasar kan(가사 간)]으로 변천했고, 그 상대형인 [geser kan(거서 간)]이 되었던 것과 일치한다네.

 

아득한 옛날 桓因(환인)의 음이 [gəsər gən(ᄀᆞᄉᆞ ᄀᆞᆫ)]이었기 때문에 후대 사람이 이와 같은 이름인 居西干[gəsər gən]이란 칭호를 유전해 쓴 것일세. 桓因(환인)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지도자의 명칭일세. 桓雄도 마찬가지라네. ‘ᄀᆞᄉᆞᆯ ~ 가사는 누차 말했지만 (), (), , 의 갑골음일세.(300~304)

 

 

桓雄(환웅);

 

桓雄[gəsər gəm(ᄀᆞᄉᆞᆯ ᄀᆞᆷ)]이었다는 것, ‘ᄀᆞᆷ의 전신이니 ᄀᆞᄉᆞᆯ 곰이라는 것이고 ᄀᆞᄉᆞᆯ()를 말하니 예곰을 말하는 것이었네.

우리는 앞에서 ()의 갑골음을 [gəsər(ᄀᆞᄉᆞᆯ)]로 재구하였으니 桓因[gəsər gən(ᄀᆞᄉᆞ ᄀᆞᆫ)]濊王이며 빛의 왕이란 뜻이네. 桓雄이라 했네.

그래서 [gəm(ᄀᆞᆷ)], [gəm(ᄀᆞᆫ)] 둘로 읽혔던 게 아닌가 하네, 음절말 n/m교체는 한자에서 흔히 있는 현상이라네.

 

이로써 보면 고대시기에 [gəm(ᄀᆞᆷ)], [gəm(ᄀᆞᆫ)] 둘로 교체하여 익혔음을 알 수 있다네. 여기서 桓雄[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ᄀᆞᆫ()]의 의미로 쓰인 것인데, 실제로 의 뜻에는 당시 의 속성-수컷, 두목, 일인자, 용감함, 승리함, 영웅, 뛰어남, 웅장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네. 짐작컨대, (ᄀᆞᆫ)의 음이 변하자 (ᄀᆞᆫ)을 가져오는 동시에 족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네.(304~315)

 

 

蚩尤(치우); [ᄃᆞᆯᄀᆞᄅᆞ]

 

가라족의 우두머리(206)

 

 

伏羲氏(복희씨);

 

최초로 으로 한 사람으로 우리 조상이다.(255)

 

의 뜻으로 人頭蛇身(인두사신)인 것, 으로 가진 것, 를 가져다 준 것, 이 셋이 모두 [ᄇᆞᄅᆞ]였다는 것은 伏羲氏의 특성과 관련지을 수 있다. 이 종족이 토템을 지녔다 할 수 있다. 의 갑골음이 ᄀᆞᄉᆞᄅᆞ(gəsərə), ᄇᆞᄅᆞ(bərə) 두 가지 음이었음을 앞에서 확인했다. ‘ᄇᆞᄅᆞ’, ‘이고 ᄀᆞᄉᆞᄅᆞ()’, ‘()’의 갑골음과 일치한다. 동시에 흉노의 王姓(왕성) 阿史那의 갑골음이 [gəsərə(ᄀᆞᄉᆞᄅᆞ)]였음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천제 帝俊의 갑골음이 [gəsərə(ᄀᆞᄉᆞᄅᆞ)]이다.(256)

 

東夷(동이)에 해당하는 요건이 있는데, 오행은 이고 오방은 이고 오색은 이고 오계로는 이다. 이 요건들을 갖추어야 東夷(동이)가 되는 것이다.(256)

 

<楚辭>[왕일·구사·치세]<>에서 太昊(伏羲)쪽의 靑帝(청제)’라 한 것과 木德(목덕)’이라 한 것과 ()이라 한 것은 東夷(동이)의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여기서 은 동방의 ()이면서 그 갑골음이 ()와 같은 [gəsər]이다. 燧人氏(수인씨)가 처음 불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으나 伏羲氏(복희씨)나 염제 神農氏(신농씨)도 불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으니 삼황은 모두 北狄(북적)임에는 틀림없다.(257)

 

우선 [大皥 복희, 太昊 복희]에서 묘한 일이 있다네. 大皥(대호) 혹은 太昊(태호) 복희라 하고, <설문해자주>에서 大白이라 했는데 大白의 갑골음은 ᄃᆞᄅᆞᄇᆞᄅᆞ >ᄃᆞᆯᄇᆞᆰ으로, ‘크게 밝다는 뜻일세. 그런데 , 의 갑골음은 [ᄀᆞᄅᆞ]일세. 大皥, 太昊의 갑골음은 ᄃᆞᄅᆞᄀᆞᄅᆞ >ᄃᆞᆯᄀᆞᄅᆞ일세. 앞에서 [ᄀᆞᄅᆞ], [사라]의 뜻이 빛나다는 것을 이미 보았네. 大皥, 太昊크나크게 밝다는 뜻이 되네. ‘ᄇᆞᆰᄀᆞᄅᆞ가 유의어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네.

그런데 ()’ ()가 참 재미있다네. <설문해자주>()와 음이 같다고 했네. 묘한 것은 聲符(성부)가 같은 ()<설문>()라 했는데 갑골음이 ‘bərg(ᄇᆞᆰ)’이고 의 갑골음과 일치하네. 여기서도 가 뜻이 아니라 ᄇᆞᆰ의 음으로 나타내고 있다네. 뜻은 고함지르다는 뜻일세. 그런데 <廣韻>에서 이 熊虎聲이라 한 게 더욱 묘하다네. ‘으르릉거릴 가 하고 많은 동물 중에 왜 곰과 호랑이 소리라고 했겠는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족과 호족의 다툼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257~258)

 

게다가 伏羲(복희)와 그 이칭 宓犧(복희), 包犧(포희), 虙犧(복희)의 갑골음과 그 변천이 모두 ᄇᆞᄅᆞᄀᆞᄅᆞ >ᄇᆞᆯᄀᆞᄅᆞ >ᄇᆞᆰᄀᆞᄅᆞ라네.(259)

 

따라서 伏羲는 우리민족 北狄(북적)임에 틀림없어. 그런데 우리는 중대한 사건을 목격할 수 있네. 伏羲(ᄇᆞᄅᆞ >브르 >부루)임을 감안하면 北狄(북적)의 부루족임이 틀림없네. 은 모계이고 는 부계일세. 다시 말해서 伏羲氏는 부계가 ᄇᆞᆰ가라족임을 말하는 것일세. 특히 복희씨는 손에 컴퍼스와 곡자를 들고 있는데 이는 법률로 다스렸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네. 복희씨가 죽은 뒤 그 후손들은 淮河 북쪽에서 황하 하류 쪽으로 가 濟水(제수) 유역 일대에 터를 잡았다 하는데, 의 갑골음이 [ᄀᆞᄅᆞ]의 갑골음이 [gəsər(ᄀᆞᄉᆞᆯ)]이네.(263)

 

 

華胥(화서);

 

복희씨의 어머니. 의 갑골음도 [ᄀᆞᄅᆞ]인데 뜻도 우리처럼 빛나다는 뜻일세. 漢族(한족)이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던 韓族을 따라 부른 것과 같은 것일세.(263)

 

도 갑골음이 [ᄀᆞᄅᆞ]일세. 이러한 정황의 증거가 ()에 있는데, 고음은 [sər]ᄉᆞᄅᆞ의 축약형일세. , 華胥(화서)[ᄀᆞᄅᆞᄉᆞᄅᆞ]를 말하는 것인데, 읽기는 [ᄀᆞᄉᆞᄅᆞ(gəsərə)]로 읽었을 것이네. ()의 갑골음 [gəsər(ᄀᆞᄉᆞᆯ)][ᄀᆞᄅᆞᄉᆞᄅᆞ] >[ᄀᆞᄉᆞᄅᆞ]의 축약이기 때문이네. 복희씨의 어머니 華胥족임을 알 수 있네.(264)

 

()의 갑골문은 의 합성이라 했네. 華胥大人(대인)의 발자국을 밟고 나서 복희를 낳았다는 것은 복희의 아버지는 족이라는 것이고 風氏라고 했으니 부루족임에 틀림없네. 일세. <論衡>(奇怪)의 시조 后稷(후직)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후직의 어머니가 大人의 발자국을 밟아 따라 가 후직을 낳았기 때문에 라 한다고 되어 있네.

의 갑골음이 [ᄀᆞᄅᆞ]라네. 의 백성은 화족이지만 왕족은 동이족일세.

大人()를 말하고 [ᄀᆞᄅᆞ]족임을 뜻하네.(264)

 

 

아사나(阿史那); 흉노의 성  [gəsərə](321)

 

檀君王儉(단군왕검);

 

이제 지금까지 재구했던 檀君王儉의 갑골음을 총괄해 보세. 앞에서 의 갑골음은 [tərə(ᄃᆞᄅᆞ)]라 했고 그 교체형은 [tənə(ᄃᆞᄂᆞ)]였네. 의 갑골음은 [kərə(ᄀᆞᄅᆞ)]였고 교체형은 [kənə(ᄀᆞᄂᆞ)]였네. 의 갑골음은 [gərə(ᄀᆞᄅᆞ)]였고 교체형은 [gənə(ᄀᆞᄂᆞ)]였네. 의 갑골음은 [gəsərə]였네. 결국, [,ᄃᆞᄅᆞ(>ᄃᆞᆯ)/ᄃᆞᄂᆞ(>ᄃᆞᆫ)], [,ᄀᆞᄅᆞ(ᄀᆞᆯ)/ᄀᆞᄂᆞ(>ᄀᆞᆫ)], [,ᄀᆞᄅᆞ(ᄀᆞᆯ)/ᄀᆞᄂᆞ(>ᄀᆞᆫ)], [(ᄀᆞᄉᆞᄅᆞ)]로 읽혔는데 이 네 부류 의 조합은 매우 복잡한 양상일세.

 

일단, 檀君王儉桓因, 桓雄의 두 음절 명칭으로 보아 檀君王儉으로 분리하여 논의 해야 할 것으로 보이네. 王儉[ᄀᆞᄂᆞ ᄀᆞᄉᆞᄅᆞ]王濊의 갑골음과 일치하며 예족의 왕이란 뜻이 되네. 그러나 檀君[,ᄃᆞᄅᆞ(>ᄃᆞᆯ)/ᄃᆞᄂᆞ(>ᄃᆞᆫ)][,ᄀᆞᄅᆞ(ᄀᆞᆯ)/ᄀᆞᄂᆞ(>ᄀᆞᆫ)]의 각 ()는 여러 방면으로 을 조합 해봐도 桓因桓雄의 갑골음 [gəsər kən(ᄀᆞᄉᆞ ᄀᆞᆫ)]과의 관련성을 찾아보기 어렵네. 그러나 檀君, 의 갑골음과 일치하는 [ᄀᆞᆫ]이므로 [ᄀᆞᄉᆞᆯ]로 읽힐 수는 없을까? 만약, 그렇다면 桓因, 桓雄, 檀君은 모두 [ᄀᆞᄉᆞᆯ ᄀᆞᆫ]이 되는 것일세. 신라를 건국한 居西干의 당시 음도 [ᄀᆞᄉᆞᆯ ᄀᆞᆫ]이었으니 ᄀᆞᄉᆞᆯ ᄀᆞᆫ이라는 명칭이 桓因 代부터 전해내려 온 것이 되는 걸세.

 

결국, 橿gəsər> gəsərg> gərg> gər/gəg> gəŋ으로 변천한 것일세. 그런데 이 橿同字로 쓰인 것과 두 개가 모두 박달나무라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네. 다시 말하면 橿과 같은 음 [gəsər]로 읽었다는 것일세. 은 앞세서 재구했듯이 [kənə(ᄀᆞᄂᆞ)/kən(ᄀᆞᆫ)], [kələ(ᄀᆞᄅᆞ)/kəl(ᄀᆞᆯ)]이었으니 檀君桓因, 桓雄의 갑골음 [gəsər gən]과 동일한 음으로 읽었다는 것일세. 결국, 桓因, 桓雄, 檀君[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으로 읽혔던 것이네. 檀君[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으로 읽혔던 또 다른 증거로 桓因[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檀因이라고도 했음을 볼 수 있다네. [gəsər]였으니 또한 [gəsər]였던 걸세. 의 본음은 [gəsər]이고 전주음으로 [dan]음을 가졌던 거지.(315~329)

 

 

解慕漱(해모수);

[가라마리솔] ‘가라 우두머리 솔’ (‘은 관직의 호칭)(206)

 

解夫婁(해부루);

[가라부루](206)

 

金蛙王(금와왕);

[sərkər(ə) kən] ‘濊王(예왕)’

 

[skər(ə)], [ksər(ə)]는 성모의 순서상의 문제로 둘 다 ()의 갑골음으로 쓰였다.(206)

 

高朱蒙(고주몽);

[가라달마리]

 

[가라달]만 해도 가라의 머리가 되는데 이 시기에 (<ᄃᆞᆯ)’우두머리라는 뜻을 잃고 아예 관직명으로 굳어진 것 같다. 그래서 주몽으로 읽을 때는 ()를 합쳐 고주몽이라 해야 온전한 뜻이 된다.(205)

 

鄒牟(추무)[가사마리] ‘()의 우두머리(205)

 

衆解(중해)[달가라] ‘머리 가라(205)

 

善射(선사)[달가라] ‘머리 가라

의미로 해석해서 활을 잘 쏘는 자라 하지만 이름의 본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당시는 왕족의 이름으로 별명을 붙인 예가 거의 없다.(205)

 

朴赫居世(박혁거세);

 

朴赫居世의 이두를 읽을 줄 알아야 하네. 을 안내한 ()인데 밝다는 뜻일세. [, , ]음이 있으니 의 의미, 밝다는 의미로 읽어달라는 요청일세. 붉다는 뜻이지만 이 둘이 겹친 것은 밝다’, ‘빛나다는 뜻일세. 여기서 은 의미를 따라 [ᄇᆞᆰ]으로 해야 하네.

이처럼 [sar]로 읽혔고 가 이 시기 [kar]였으니 居世[ka rsar]가 되고 생략형은 [kasar(가살)]이 되네. 더 앞선 음은 [gəsər(ᄀᆞᄉᆞᆯ)]이었을 것이네.

그러니까 朴赫居世[ᄇᆞᆰ]를 뜻하네.(353)

 

乙支文德(을지문덕);

 

乙支古音(고음)가라덕이고 文德도 이두로 가라덕으로 읽혔네. 文德乙支[을지]로 읽지 말고 [가라()()]으로 읽어 달라고 안내했던 것이네. 당시 [teg()]으로 읽혔네. <신증동국여지승람 29>에서 <경북 문경>의 옛 지명을 高思曷伊라 하고 冠文이라 했네. 曷伊과 대응되므로, [ᄀᆞᆯ> 가리/]로 훈석되었네. [()]은 당시 우리말로 [높다]는 뜻이네. , 文德 또한 [가라덕]이 되네. 乙支文德을 다 읽으면 [가라덕가라덕]으로 반복되네. 따라서 당시는 [을지문덕]장군이 아니라 [가라덕(乙支) 장군이라 해야 하네. 이름으로 보면 武將이라기보다 덕장 일게야.(350)

 

 

姓氏(성씨)

 

();

 

의 본관이 冶爐(야로)였던 것은 의 고음이 [ᄉᆞᄅᆞ]였기 때문인데 [ᄉᆞᄅᆞ]의 고음이기도 했네.

[ᄉᆞᄅᆞ]는 후한 시기만 해도 (ᄉᆞᄅᆞ> ᄉᆞᆯ> -)의 뜻이었는데 후에 이 뜻을 상실하고 송나라/성씨/나라이름뜻만 남았네. 그러나 삼국시대 冶爐(야로)라는 지명을 지을 당시 의 갑골음 [ᄉᆞᄅᆞ]가 유지되었던 모양일세. 은 쇠붙이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다()’는 뜻인데 의 음이 [ᄉᆞᄅᆞ]였고 의 음과 같았기 때문에 제철소인 冶爐(야로)를 본으로 삼게 된 것으로 생각되네.(369)

 

();

 

金山 加利村 촌장이었다는 것 자체가 쇠와 관련되었을 테고 [ᄇᆞᄅᆞ(bere)]의 상대형 [브르(bɯrɯ)]가 있는 것으로 보아 [> ]로 변천한 것으로 보이네. 아마 의 의미일 것 같네. 유리왕으로부터 이 성을 하사받았다는 것은 金山 加利村의 쇠를 녹이는 불가마를 담당한 것으로 보는 걸세. 옷치렁치렁할 ()’일세.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보통 옷과 다른 제사장의 옷을 말하는 게야. 아마 상고대부터 야로 는 쇳물 가마를 가동하기 전에 제사나 고사를 지내는 제사장이었던 것 같네. 여기에 야로 송씨는 실제 가마를 운용하는 사람으로 보이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둘 다 본이 쇠가마인 冶爐라는 것과 모두 ()과 관련되어 있고 의 음이 ᄉᆞᄅᆞ()이고 의 옷이 무당 옷이기 대문일세. 현재 경남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에는 야로 배씨들의 집성촌이 있다네.(371)

 

韓氏(한씨);

 

韓氏箕子(기자)의 후손일세. 기자조선의 마자막 왕 準王(준왕)의 아들 삼 형제가 , 鮮于, 을 나누어 가졌다고 하네. 이 설이 사실인지는 음을 재구해 보면 알 걸세. 鮮于는 나중에 상세히 나올 것이니 음만 보면, [ᄀᆞᄅᆞ]로 읽혔고 [ᄀᆞᄅᆞ]로 읽혔네. 鮮于(), ()의 음으로 [ᄉᆞᄀᆞᄅᆞ]였네. 씨는 행주, 씨는 청주, 鮮于씨는 태원을 본으로 하는데, 이들은 모두 중국 산동성 태원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네. 여기가 바로 의 본산일세. 東夷(동이)의 색은 이라 했으니 이들에게는 과 함께 한다네.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 이 이름들도 모두 기자조선이 망하자 후손들이 살길을 찾아 은둔한 장소인데 그들의 집성촌은 가야면 靑里일세. 가야산을 갈사’, ‘개산이라고도 하는 것은 [ᄀᆞᄅᆞ> 가라> > ]로 변천했기 때문일세. 충청도 靑州에도 가야산(< ᄀᆞᄅᆞᄃᆞᆯ)’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의 갑골음은 [ᄀᆞᄉᆞᄅᆞ]일세.(371~372)

 

 

 

 

<참고자료>

 

 

최춘태, 갑골음으로 식민사학·동북공정》, 북랩,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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