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로동과 력사’…북으로 간 17개 언어 천재 김수경 평전

두음법칙 폐지, 한글날 변경 등 남북 차이 주도
전쟁 통에 처자식과 헤어진 비극적 개인사도

기자최재봉
  • 수정 2024-02-23 10:57 등록 2024-02-23 05:02
김수경이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언어학 강좌)에 재학 중이던 1942년 무렵에 찍은 사진. 김수경은 이해 봄방학에 서울에서 열린 경성제대 동기 리명선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가했다가 신부 쪽 들러리였던 이남재를 만났고 두 사람은 이듬해 3월17일에 서울에서 결혼했다. 푸른역사 제공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 l 푸른역사 l 3만원

남북한은 오랫동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 이후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언어생활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두음법칙의 유무다. 이를테면 남쪽에서 ‘노동’ ‘여자’ ‘역사’라고 쓰는 것을 북에서는 ‘로동’ ‘녀자’ ‘력사’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남과 북 사이의 이런 언어 이질화에 맞서 2005년부터 진행돼 오고 있는 것이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다. 2006년 편찬위원회 자리에서 북쪽 인사들은 두음법칙에 관한 북쪽 방침의 근거로 언어학자 김수경(1918~2000)의 논문을 제시했다. ‘조선어학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 중에서 개정할 몇 가지-기일 한자음 표기에 있어서 두음 ㄴ 급 ㄹ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1947년 6월 사흘에 걸쳐 ‘로동신문’에 실렸다. 1946년 8월에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도서관장을 맡은 김수경은 초창기 북한의 언어학과 언어정책의 중핵을 담당한 인물이다.

1986년, 전쟁 통에 헤어진 아내 이남재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남재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김수경의 사진. 푸른역사 제공

이타가키 류타 일본 도시샤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북한 언어정책의 토대를 세운 언어 천재 김수경의 삶과 업적을 다룬 평전이다. 경성제국대학 철학과에서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를 사사했으며 해방 전에 이미 17개 언어를 습득했고, 도쿄제대 대학원(언어학 강좌)에 다니며 오구라 신페이의 지도로 조선어의 비교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한 김수경은 월북 이후에 훈민정음 창제일과 해례본 반포일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내 10월9일 한글날을 1월15일로 바꾸도록 했고, 북한 최초의 문법서인 ‘조선어 문법’(1949)의 초고를 집필하는 등 언어학자로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구조주의 언어학을 창시한 소쉬르의 주저 ‘일반언어학 강의’(1916)를 1928년에 세계 최초로 번역한 고바야시 히데오는 1940년 개역판 역자 서문에서 김수경을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거명하며 개역판 출간에 기여한 데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 자신이 빼어난 어학 능력을 지녔던 고바야시는 김수경을 가리켜 “나는 내심 그의 끝없는 어학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수경이 초고를 집필한 것으로 짐작되는 북한 최초의 규범 문법서 ‘조선어 문법’(1949).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김수경의 유족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푸른역사 제공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은 김수경의 삶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전쟁 초기 북한 당국은 김일성대 교수들로 하여금 이남의 ‘해방지구’에서 정치 강습 등을 하도록 내려보냈다. 김수경 역시 남쪽 끝 진도에 파견되었는데,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바뀌면서 귀환 지시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평양으로 돌아왔지만, 그사이 가족들이 그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어머니와 아내 및 자녀 4명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김수경은 1988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학술 행사에 참가했을 때 캐나다에서 온 둘째 딸과 비로소 만났고 이어서 평양에서 장남(1996년)·아내(1998년)와도 차례로 상봉했다. 북에 있는 아버지와 다시 만나고자 외국 이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간호학을 전공한 맏딸의 선택 덕분이었다.

김수경과 이남재의 결혼식 사진. 푸른역사 제공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주인공의 곡절 깊은 생애를 한 축으로 삼고, 언어학자로서 그의 업적을 다른 한 축으로 삼는다. 책은 개인사를 시간순으로 좇은 역사 서술과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언어학 서술이 교차하는 구성을 지녔는데, 지은이는 이를 가리켜 ‘대위법적 평전’이라 이른다. 경북 상주 지역의 식민지 경험을 다룬 논문으로 도쿄대 대학원 문화인류학 과정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 부르며, 공적·사적 문헌과 통계는 물론 인터뷰와 전자우편,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논의를 펼친다. 한국어판 서문 제목을 ‘이 책을 우리말로 읽는 독자들에게’로 삼고, ‘우리말’이라는 표현이 한국인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는 이질적·복합적 가능성을 지닌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전쟁 통에 헤어졌다가 48년 만인 1998년 평양에서 재회한 김수경과 이남재. 푸른역사 제공

김수경은 1946년 5월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지만, 그가 “식민지기에 사회주의자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해방 전에 나온 그의 유일한 언어학 저작은 서울에서 1945년에 인쇄한 ‘‘로걸대’ 제 판본의 재음미’로, 일제 말기에 아마도 학도병 동원을 피해 도쿄제대 대학원을 자퇴한 뒤 경성제대 조선어학연구실 촉탁으로 일하면서 규장각 장서를 섭렵한 결과를 담은 것이었다. 월북한 뒤인 1947년 진단학보에 실린 논문 ‘‘룡비어천가’ 삽입자음고’는 두 개의 어사를 잇는 삽입자음이 일본어 조사 ‘노’(の)에 해당하는 속격을 나타내는 문법적 기능을 지닌다는 주장(오구라 신페이, 최현배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조선어 음운의 동화작용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북쪽에서 발표한 논문들에서도 그는 구조언어학에 마르크스주의적인 사회경제사를 결합하는 방식을 이어 갔다.

김수경(왼쪽)이 1942년 도쿄제대 도서관 앞에서 경성제대 동문인 국어학자 이희승(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푸른역사 제공

김수경은 주시경의 제자인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김일성대 초대 총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낸 김두봉의 후원을 등에 업고 한글 자모를 해체해 옆으로 나란히 쓰는 ‘가로쓰기’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예컨대 ‘감’을 알파벳처럼 ‘ㄱㅏㅁ’으로 풀어서 쓰는 방식으로, 타자기 개발 등의 기계화에 대비하자는 것이었지만 이 정책은 실행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남쪽 출신 인사들과 연안파 등을 대상으로 한 숙청 바람에 휘말려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까지 20년 동안 언어학자로서 공식 활동을 하지 못했던 김수경은 1989년의 박사학위 논문 ‘세나라시기 언어력사에 관한 남조선학계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복권을 알렸다. 이 논문에서 그는 고구려어와 신라어를 상이한 언어라고 주장한 이기문 등 한국 연구자들의 한국어 계통론을 비판하는 한편 남쪽 학계와 대화를 시도했다. 1968년 중앙도서관(인민대학습당) 사서로 ‘좌천’되면서 박탈당했던 김일성대 교수직도 1991년에 되찾았지만, 1995년에 뇌혈전으로 쓰러진 뒤 병마에 시달리다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석 달여 앞둔 2000년 3월1일 여든두 해 가까운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김수경(왼쪽)과 이남재의 둘째 딸 김혜영(가운데)이 1988년 평양을 방문해, 김수경이 북쪽에서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넷째 딸 김혜옥과 함께 만경대(김일성 생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푸른역사 제공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29536.html

 

 

 

여권 재발급 받으려면 ‘유씨’가 되라니요…결국 법원 간 ‘류씨’들

2012년 여권법 규칙 개정 후
여전히 성씨 바꾸는 사람들
서울서만 한달 평균 10명 변경 요청

기자장예지
  • 수정 2023-01-23 17:41등록 2023-01-23 17:41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11월 방역 완화로 국외 여행을 갈 꿈에 부푼 류아무개(32)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만료된 여권을 재발급 받기 위해 서울의 한 구청을 찾았다. 구청 여권과 직원은 평생을 ‘류씨’로 살아온 그에게 10년짜리 여권을 재발급받기 어렵다고 했다. 2010년 처음 여권을 만들었을 땐 주민등록부상 기재된 성씨인 ‘류씨’ 이름의 여권을 만들 수 있었는데, 2012년 법이 바뀐 이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성씨로 여권을 만들어야만 10년 복수여권 발급이 가능해지면서다. 류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유씨’라고 표기돼 있었다.

주민등록부와 가족관계등록부 모두 성씨가 똑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문제될 일이 아니지만, 리(이), 류(유), 라(나)씨 등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성을 가진 류씨는 여권에 적힐 자신의 성씨를 지키기 위해 법원 문을 두드려야 했다. 류씨처럼 법원에서 직접 성씨의 한글 표기를 고치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신청하는 일은 전국 가정법원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경우 세부 집계를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접수된 ‘두음법칙 관련 성 표기 정정사건’ 수만 30건 남짓이다. 서울 지역에서만 한달 평균 10명이 두음법칙으로 바뀐 성씨를 고쳐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만약 이들이 직계 자녀 등에 대한 성씨 변경도 함께 요청했다면 성씨가 변경된 국민의 수는 더 늘어난다.

20일 오전 11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모습. 이승욱 기자

류씨 가족은 그간 호적정정을 하지 않다가 여권 재발급 문제가 불거지면서 성씨 정정에 나선 사례였다. 2008년 1월 호적제도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신설되면서 호적기록 전산도 그대로 이관됐는데, 이때 가족관계등록부상 류씨 가족의 성은 두음법칙을 따른 ‘유씨’ 그대로 옮겨졌다.

여기에 2012년 7월, 여권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 이름을 여권에 표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면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씨’와 주민등록부상 성씨를 맞춰야 하는 행정상 필요는 더욱 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여권 관련 문의가 들어오면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부상 성씨를 일치시키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민등록부상 성씨를 쓰면 1년 단수여권만 발급이 가능해서 되도록 가족들과 상의한 뒤 성씨를 맞출 것을 권유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류씨 남매에게 성을 물려준 아버지가 대표 격으로 나서 “한자 성씨의 한글표기를 ‘유’에서 ‘류’로 정정해 달라”는 등록부정정허가 신청서를 가정법원에 냈고, 류씨 남매는 여기에 동의하는 확인서를 함께 제출했다. 더불어 평생을 ‘류씨’로 살아왔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한 통장 사본 등 각종 자료와 함께 기본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 등 법원이 요구하는 자료도 준비했다. 그 뒤 법원이 사실관계를 확인해 성씨 정정을 허가하기까지는 최소 한 달이 걸려 절차와 과정 모두 까다로운 편이다.

이 때문에 성씨 정정을 원하는 ‘류씨’ 종원들을 위해 종친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류씨’ 대종회 사무총장은 “성씨 정정을 위해 자신이 몇대손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문의는 해마다 꾸준히 오고 있다. 문중에서도 족보를 확인해 주고, 법원 입증자료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에 걸쳐 자신의 성씨를 되찾는 데 성공한 류씨는 <한겨레>에 “평생을 류씨로 살아왔는데, 내 성씨를 여권에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박탈감이 컸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일을 계기로 성씨를 바꿨는데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이걸 해낸 뒤엔 뿌듯함이 컸다. 갓 태어난 조카도 완전한 ‘류씨’로 살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6710.html

 

 

 

 

 

[왜냐면] 사이시옷과 두음법칙 개선 검토해야 / 김종관

  • 수정 2013-10-09 19:34 등록 2013-10-09 19:34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인 한글은 참으로 우수하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를 잘 배우고 사용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말을 세계인이 쉽게 배우고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발전시켜 가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사이시옷과 두음법칙에 대하여 개선 방안을 함께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의 사용을 개선하거나 최소화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장맛비’ ‘등굣길’ ‘우윳값’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장마비’ ‘등교길’ ‘우유값’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배우기 쉽고 편리하지 않은가.
두음법칙도 이제는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ㄹ’과 ‘ㄴ’ 발음으로 시작하는 외국어 발음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우선 ‘량’(量)을 ‘양’이라고 발음하지 말고 ‘량’으로 사용하도록 개선하기를 바란다. 어찌하여 분량을 뜻하는 ‘량’을 소, 말, 양(羊)과 같이 동물을 의미하는 ‘양’과 똑같이 표현하는가. 언어생활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하여 한꺼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량’과 ‘양’도 ‘자장면’과 ‘짜장면’처럼 두가지를 모두 표준말로 허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봄 직하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한글 창제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말을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언어로 꾸준히 발전시켜 가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문화국가로서 우리말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세계인이 쉽게 배우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진취적이고 실용적인 언어 정책을 시행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국립국어원 등 관련 기관과 국어학계에서는 더욱더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사이시옷 사용과 두음법칙을 개선해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세계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김종관 서울시 중구 인현동

출처; [왜냐면] 사이시옷과 두음법칙 개선 검토해야 / 김종관 (hani.co.kr) 등록 :2013-10-09 19:34

 

 

 

[주간조선] 남북 언어통일 최대 쟁점, 두음법칙 폐지 논란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입력 2013.06.10. 14:14업데이트 2013.06.10. 14:29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 photo 조선중앙통신·로이터

리설주·이설주·최룡해·최용해….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북한 인사들의 이름이다. 사람은 둘이지만 이름은 넷이다. 동일매체에 실린 기사에서도 네 이름이 중구난방으로 등장한다. 혼란이 빚어진 것은 지난 5월 30일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이 “최룡해(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부인)리설주의 이름을 각각 ‘최용해’와 ‘이설주’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한 직후다.

국립국어원은 “리설주의 경우 성(姓)의 첫글자가 ‘리’기 때문에 ‘이설주’가 맞고, 최룡해의 경우 이름(룡해)의 첫글자가 ‘룡’이기 때문에 ‘용해’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그간 국내 언론은 북한의 인명, 지명 표기를 최대한 존중해 최룡해, 리설주로 표기해 왔다. 이 같은 혼란은 지난 2004년 북한 ‘룡천역’ 폭발사건 직후에도 국립국어원이 “룡천역이 아닌 용천역으로 표기해 달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벌어진 바 있다.

두음법칙 폐지론이 국내 일각에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두음법칙을 두고서는 수십 년간 어문학자와 한글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했다. 일부 학자는 남북통일에서 앞서 언어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어문규칙 가운데 하나로 두음법칙을 꼽기도 했다. 동일인을 두고도 두음법칙 적용 여부에 따라 남북이 ‘이명박’과 ‘리명박’ 식으로 달리 표기하는 일이 벌어져서다. 배경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은 별개 인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국어학자인 국립경상대 려증동 명예교수는 “북한의 동생은 리씨인데, 남한의 형이 이씨가 말이 되냐”고 주장했다.

국립국어원이 표기 수정을 요청한 것은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1992년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문화부 국어심의회 한글분과위원회는 “인명, 지명 등 북한의 고유명사를 표기할 때도 한글 맞춤법을 준수할 것”을 심의·결정한 바 있다. 1988년 고시된 한글맞춤법 제5절의 제 10~12항은 “어두에 ‘ㄹ’음을 써서는 안 된다”며 두음법칙 적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제10항은 “한자음 ‘녀·뇨·뉴·니’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여·요·유·이’”로, 제11항은 “‘랴·려·례·료·류·리’가 단어 첫머리에 오면 ‘야·여·예·요·유·이’”로, 제12항은 “‘라·래·로·뢰·루·르’가 단어 첫머리에 오면 ‘나·내·노·뇌·누·느’로 적는다고 규정한다.

국립국어원 정호성 어문연구팀장은 “두음법칙은 어문학자들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알타이어에 있는 특수한 음운현상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우리말의 뿌리인 알타이어는 말머리에 ㄴ, ㄹ 등을 피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있고 이에 따라 두음법칙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유어인 ‘니름’은 ‘이름’으로 ‘님금’은 ‘임금’으로 ‘(옷)닙다’는 ‘입다’로 바뀌었다.

두음법칙은 국내에서도 성씨(姓氏) 표기 등을 예외로 인정하면서 흔들린 측면이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7년 ‘호적에 성명을 기재하는 방법’ 제2항을 개정과 동시에 ‘호적상 한자 성의 한글 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하면서, “한자 성(姓)의 한글표기에 두음법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과 이름에 두음법칙을 강제하는 것이 ‘국민행복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판단 요지였다. “두음법칙은 전통적인 고유 성씨를 말살시키는 창씨개명과 같다”는 주장을 일부 수용해서기도 하다.

림(林)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국 주나라 때 사람 림견(林堅)에서 유래된 림씨는 장림산(長林山)에서 유래됐는데, 두음법칙에 따라 림씨가 임씨로 바뀌어 유래가 흐려졌다는 것. 풍산 류(柳)씨 일족들도 두음법칙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류(劉), 유(兪)씨 등이 도매급으로 ‘유’로 표기되며 생긴 혼란 때문이다. 이에 조선 중기 유학자 ‘류성룡’과 탤런트 ‘류시원’씨는 각각 ‘유성룡’과 ‘유시원’이 아닌 ‘류성룡’과 ‘류시원’이라고 쓴다. 국가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도 풍산 류씨 문중의 의견을 반영해 ‘류성룡전(展)’을 개최한 바 있다.

당시 국립국어원도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만약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서기의 부인 리설주가 “리설주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리설주’란 이름을 인정해줘야 하는 셈이다. 국립국어원의 정호성 어문연구팀장은 “정확한 표기법대로라면 ‘이설주’로 쓰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북한의 모든 이씨들에게 물어볼 수 도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외래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두음법칙을 적용한 표기법도 상당수 깨진 지 이미 오래다. 라디오, 뉴스, 라면 같은 외래어도 원칙대로라면 두음법칙에 따라 ‘나디오’ ‘유스’ ‘나면’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루이지애나’ 같은 미국의 지명들도 원칙대로라면 두음법칙을 적용해 ‘유욕’ ‘노스앤젤레스’ ‘누이지애나’로 표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두음법칙이 한국인들의 ‘R’ 발음과 ‘L’ 발음 구분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조선족 동포들도 두음법칙에 대한 불만이 많다. 조선족 인구는 약 190만명. 특히 연변(延邊)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동포들이 쓰는 말은 함경도말이 근간인데 문화어(평양 표준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족 동포 주요 매체인 연변일보,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료녕신문은 모두 ‘리설주’ ‘최룡해’ 등의 표기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한글 사용의 한 축인 북한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북한은 1966년 ‘조선말규범집’을 통해 “두음의 ‘ㄹ’과 ‘ㄴ’은 제대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중국과 국경을 접한 북한은 일찍부터 교류가 많았다. 북·중 간 교류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알타이어 고유의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고 한자음 그대로 표기를 했다고 한다. 이에 ‘력사’ ‘로동’ ‘리해’ ‘려행’과 같은 한자어는 한자음 그대로 표기하는데, 이 같은 표기법은 60대 이상 고령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한도 중국과 교류가 급증하며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셈.

그간 남북 어문학자들은 두음법칙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입장 차만 확인했다. 남북관계까지 경색되며 언어통일을 주관하는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사업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사업회 이사)에 따르면, 남북한은 다른 쟁점인 사이시옷과 띄어쓰기 등은 조금씩 입장을 양보하는 식으로 의견을 좁혔으나, 두음법칙을 두고서는 의견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과 대만·홍콩의 어문학자들이 간체자(簡體字)냐 번체자(繁體字)냐를 놓고 수십 년간 지속했던 논란과 비슷하다. “7000만밖에 안 되는 한글 세계화에 두음법칙 같은 복잡한 어문규정이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은 이 때문에 나온다.

권 교수에 따르면, 현재 남측은 “두음법칙은 자연적 언어현상이다”란 입장이고, 북측은 “위치에 따라 한 글자가 두 개의 표기를 갖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권재일 교수는 “1933년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1945년 광복 이후 남한은 그대로 지켜왔고, 북한은 인위적으로 바꿨다”며 “우리 학계에서는 언어현상을 인위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아직은 대다수”라고 말했다.

출처; [주간조선] 남북 언어통일 최대 쟁점, 두음법칙 폐지 논란 (chosun.com)입력 2013.06.10. 14:14업데이트 2013.06.10. 14:29

 

 

 

 

 

 

‘자모음 배열순서’부터 차근차근

‘남북어문 단일규범’ 의견일치 어디까지

  • 수정 2007-11-15 20:08등록 2007-11-15 20:08
한재영 교수(왼쪽)가 토론자로 나섰다. 강창광 기자<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ㅇ’ 오는 순서 ‘ㅅ’ 다음으로
단위 의존명사는 붙여쓰기
≪≫는 자료출전 표시때 사용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이날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글 ‘남북 단일 어문규범의 현황과 과제’를 보면 남북 학자들이 서로 다른 어문 규범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꽤 성과를 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권 교수는 가장 주요한 성과로 △자모 배열의 순서와 이름 △띄어쓰기 △문장부호에서 의견의 일치를 이뤄낸 점 등을 꼽았다.

‘남북어문 단일규범’

글자의 배열 순서에서 남북은 ‘초성 순서에서 ㅇ의 위치’ ‘초성 순서에서 겹자음 ㄲ, ㄸ, ㅃ, ㅆ, ㅉ 위치’ ‘중성 순서에서 겹모음글자 위치’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남쪽에서는 ‘ㅇ’의 위치가 ‘ㅅ’ 다음이지만, 북에서는 ‘ㅇ’이 자음 글자가 다 끝난 뒤 나온다. 이 문제는 남북 분단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ㅅ’ 다음에 ‘ㅇ’을 두는 것으로 의논했다고 권 교수는 적었다. 초성의 겹자음은 우리의 경우 ‘ㄱ’ 다음에 ‘ㄲ’이 오지만 북에서는 ‘ㅎ’까지 모두 끝나고 ‘ㄲ, ㄸ, ㅃ, ㅆ, ㅉ’이 차례로 놓인다. 이는 북쪽의 순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홑모음과 겹모음 글자의 순서는 남쪽은 ‘ㅏ ㅐ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이며, 북쪽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이다. 이에 대해선 △홑모음 글자를 먼저 배열하고 이어서 곁모음 글자를 배열하며 △홑모음 글자의 배열순서는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겹모음 글자의 순서는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권 교수는 밝혔다.

띄어 쓰기에서도 두드러진 성과가 있었다. ‘것, 바, 줄, 수’ 등과 같은 의존명사는 남쪽에서는 띄어 쓰고 있으나 북쪽에선 붙여 쓰고 있다. 남북 학자들은 일반 의존명사는 띄어 쓰는 원칙을 존중하되,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는 ‘한명, 두마리’처럼 붙여 쓰기로 이견을 좁히고 있다. 수사는 현행 남쪽 표기 방식대로 만, 억, 조 단위로 띄어 쓰기로 했다. 예컨대, ‘십이억 삼천오백육십만 사천오백팔십’처럼 표기된다. 북에서는 현재 백, 천, 만, 억, 조 단위로 쓰고 있다.

가장 최근 열렸던 지난 10월 중국 선양의 11차 대회에선 문장 부호 단일화에서 상당 부분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문장부호의 형태, 이름, 기능을 단일화하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인용표, 거듭인용표 ≪≫, <>와 남한의 큰 따옴표, 작은 따옴표 “”, ‘’의 형태를 모두 받아들이되, 그 기능을 나누기로 했다. “”는 대화를 직접 인용할 때, ≪≫는 책이나 자료의 출전을 표시할 때 사용하기로 했다.

권 교수는 이렇게 의견일치가 이뤄진 경위에 대해 “남한에서도 맞춤법 개정때 마다 ‘ㄱ’을 ‘기윽’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다”면서 “이처럼 내부적으로 상대쪽 규범이 합당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 남과 북이 상대 쪽 규범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논의 진전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역사’냐 ‘력사’냐? 두음법칙 표기 큰 난관절충 아닌 단일화로 접근…서울·평양말 통합도 만만찮아남은 과제 어떤 것 있나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최인호)는 15일 한겨레신문사 3층 강당에서 ‘남북 단일 어문규범 얼개잡기’를 주제로 하는 제3차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남북 단일 어문규범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두음법칙 표기 △외래어 표기 △공통어(규범어)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 두음법칙 어떻게 풀까=권재일 서울대 교수는 남북 학자들 사이의 협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가장 큰 과제는 ‘역사’와 ‘력사’, ‘여성’과 ‘녀성’의 표기를 단일화하는, 두음법칙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다만 두음법칙에 대해 남북 학자들은 복수표기나 절충이 아닌 어느 한쪽으로 단일화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연구·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음법칙이란 ㄹ계열 낱말(주로 한자어)이 어두에 놓일 경우 소리 대로 표기하도록 한 규정이다. 북한은 1948년 1월 <조선어 신철자법>을 공포하면서 이 원칙을 버렸다. 남쪽의 경우 서양외래어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김정수 교수(한양대)는 이날 발표문 ‘두음법칙 표기 등 어떻게 해야 할까?’에서 두음법칙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이라기보다 ‘임의적이고 한정적인 규칙’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때문에 일관된 적용이나 획일적인 배제는 피해야 한다고 게 그의 판단이다. 사람의 성·이름 등 고유명사는 예외를 인정하는 등 허용 한도를 지금보다 크게 넓힐 필요는 있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도 “머릿소리 규칙은 무수한 어휘의 충돌을 무릅쓰고 발음의 편의를 위해 일반 언중이 선택한 것”이고, 그 바탕은 힘 덜 들이기 곧, “노력 경제”라고 짚었다.

민현식 교수(서울대)는 토론에서 “언어적 역사성과 구조적 순리성”을 들어 발표자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남북은 이 부문에서 관습 아닌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논의해 적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을 주문했다. 또 현행 맞춤법에서 두음법칙 조항을 보완할 것도 짚었다. 또 다른 토론자인 한재영 한신대 교수는 남쪽은 한자어를 국어 어휘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에 북은 한자어 자체를 외래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두음법칙 적용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한자어가 국어 어휘의 일부라는 인식을 공유할 때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외래어 표기는=외래어에 대해선 우리말의 한 부분이므로 따로 외래어 표기법을 둘 것이 아니라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에서 아울러야 하며, 현재처럼 음운 단위가 아닌 낱말 단위로 비교·확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최호철 고려대 교수는 발표글 ‘남북 외래어 표기 차이와 단일화 모색’에서 남쪽 3만7천여 낱말, 북쪽 7900여 낱말 중 일반 외래어 3000여 낱말을 비교한 결과를 소개하면서 “다른 나라의 말을 들여 와 쓰는 외래어는 단어 단위로 인식되므로 단어를 단위로 하여 거기에서 드러나는 각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통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어 발음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반영되었는지를 따질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우리글의 표기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논의해 통일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을 위한 대원칙으로 △자음 표기에서 경음(ㄲ·ㄸ 등)보다는 격음(ㅋ·ㅌ 등)으로, 경음이나 격음보다는 평음으로 △저모음(ㅐ·ㅏ 등)보다는 고모음(ㅟ ㅡ 등)으로, 후설 모음(ㅜ·ㅗ 등)보다는 전설 모음(ㅣ·ㅔ 등) 쪽으로 선택돼야 한다는 등 14가지 통일안을 제안했다. 현 남북 외래어 표기 규정의 근간은 외래어의 개별 음운 단위를 우리글로 적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토론에 나선 정희원 학예연구관(국립국어원)은 이 원칙에 찬동하면서 “남북의 표기 차이를 단일화하자면 어느 정도 양쪽의 원칙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와 있다”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표기법 원칙의 재론 기회로 삼자고 밝혔다.

■ 표준어냐 문화어냐=문화어와 표준어는 두 가지 큰 지역어(평양·서울)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을 공통어(규범어)로 할 것인지도 첨예한 쟁점이다. 한용운 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은 발표문 ‘표준어와 문화어 통합 방안’에서 공통어 차이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면서 통일 이전에 비교와 통합이라는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북에서 차이가 나는 어휘들은 복수 표준어처럼 양쪽 말을 아울러 공통어(규범어)로 함께 다루는 것으로 해결하자고도 했다. 그는 표준어와 문화어 통합 방안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들었다. 이로써 남북 어휘 차이를 해소하고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는데 밑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에 나선 이승재 연구관(국립국어원)은 지금까지 써왔던 말보다 앞으로 써 나가야 할 신조어·전문용어 등에 대한 정비작업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끊임없는 조사와 정보교환을 통한 정비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다면 ‘통합 사전 작업’은 한때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인호 한겨레말글연구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규범이란 하나의 ‘약속’이어서 낯설면 언중들이 싫어하게 된다”며 “남북 학자 간 회의에서 아직 얼개를 잡지 못한 분야는 토론에서 나온 비판과 제안들을 아울러 충분한 논의를 통해 좋은 틀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 겨레말큰사전2005년 결성된 남북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회에서 내기로 한 남북공동 국어사전 이름이다. 북쪽의 <조선말대사전>과 남쪽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중심으로 남북에서 쓰는 30만 낱말을 모아 편찬하기로 하였다. 남쪽 편찬위 조재수 편찬실장은 현재 이 사전에 올릴 “30만 낱말을 이번 12월 12차 남북 회의에서 확정할 것”이라며 단일 어문규범 작성과 병행해 올림말 선정을 끝내고 낱말 풀이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7년 예정으로 출발했으며, 북쪽은 평양에 사업회를 두고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 학자들이 편찬에 참여하고 있다. 1989년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합의한 열 가지 항목 가운데, 남북공동 국어사전을 편찬하자고 한 것이 큰 계기가 되어 이 사업회가 출범했다.

 

 

 

 

두음이 아닌 한글 두음법칙 원음으로

리기원 성씨찾기 추진위원  | 기사입력 2007/06/25 [00:53]

 

두음이 아닌 한글 두음법칙 원음으로 단일하게 개정요망 
 - 단어의 중간이나 끝에 오는 한자어의 'ㄹ‘’ㄴ‘을 원음대로 단일하게 표기 요망 - 

  두음법칙이란 용어의 취지대로 단어의 첫 음에만 ‘ㄹ’이나 ‘ㄴ’을 ‘ㄴ’이나 ‘ㅇ’으로 하면 단순하고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을 단어의 중간이나 마지막 부분까지도 발음현상을 의식하여 한자어의 원음을 버리고 변이음으로 표준어를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두음이 아닌 두음법칙으로 맞춤법을 복잡하게 만든다. 

  두음법칙 때문에 한자어의 원음 즉 으뜸소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되었고 발음의 편의성을 쫓다가 원음의 표기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맞춤법에서 두음법칙이 3개 조항에 다만이 9개 붙임이 20여개로 그 내용이 복잡하기 그지없어  국문법을 정확히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고 장담한다.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발음대로 쓰지는 않는다, 표음문자는 한글뿐이 아니라 다른 문자도  발음대로 쓸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뜻의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에 영어에서도 발음이 변하거나 없어진 것도 철자는 그대로 두는 묵음현상이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표준어로 삼고 있는 한글발음도 따지고 보면  앞뒤의 연음 등에 따라 표기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예를 들면 천리( 철리로 발음) 국립(궁닙으로 발음) 속리산 ( 송니산 으로 발음) 선릉( 설릉으로 발음) 진입(지닙으로 발음) 박혁거세(바켝꺼세로 발음) 국련( 궁련으로 발음) 치과 (치꽈로 발음) 성과(성꽈로 발음) 종로(종노로 발음) 등과 같다. 

  아래에 예시한 단어들은 두음법칙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중간이나 끝에 올 때의 표기를 모아본 것이다. 맞춤법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한번 검토해 보기 바란다. 제 생각에는 국어를 전공했거나 한글이나 국어학자가 아니면 맞춤법대로 정확히 쓰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중에서 현행 맞춤법규정에 틀리는 것은 오직 ‘고냉지’ 한 단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문법의 두음법칙 문제가 정말 복잡하다는 것이 실감날 것이다. 
 

           아        래 

類類相從(유유상종)/종류(種類) 赤裸裸(적나라)/ 반나체(半裸體). / 전라 (全裸)

戰列(전열)/항렬(行列) 2007년도(年度) 출생자/  졸업 연도(年度)/제작 연도

거래(去來)/ 왕래(往來)/내내월(來來月)   生産量(생산량)/구름量(양)

先烈(선열)/극렬(極烈/劇烈)  균열(龜裂)/ 분열(分裂)/ 결렬 (決裂) 

낙뢰(落雷)/ 附和雷同(부화뇌동) 비논리적(非論理的)/의논(議論)/ 이론(理論)/ 토론(討論),


高冷地(고랭지)/ (고냉지)

독자란(讀者欄)/ 비고란(備考欄)/ 가정란(家庭欄)/ 廣告欄(광고란)/ 스포츠欄(난)/ 어린이欄(난)

쾌락(快樂) /극락(極樂)/ 失樂園(실낙원/ 喜喜樂樂(희희낙락)

六十六(육십육)/ 五六十(오륙십)/오륙도(五六島),  手榴彈(수류탄)/銃榴彈(총유탄)

破廉恥(파렴치)/ 몰염치(沒廉恥),   암龍(용)/ 登龍門(등용문)/ 雙龍(쌍룡)

婦女子(부녀자)/ 兒女子(아녀자),/ 남녀(男女)/新女性(신여성)/ 남존여비(男尊女卑)

變動率(변동률)/명중률(命中率)/ 當選率( 당선율 )/ 백분율(百分率)

砂上樓閣(사상누각)/ 고루(高樓)/ 광한루(廣寒樓)

국제 연합(聯合)/ 국련(國聯) 교육 연합회(聯合會),교련(敎聯)

중노동(重勞動) /근로자(勤勞者)/ 육체노동(肉體勞動)  열역학(熱力學) /체력(體力)

규율(規律)/자율(自律)/운율(韻律)/법률( 法律)  선이자(先利子) /연이율(年利率)/ 금리(金利)

청요리(淸料理)/ 재료(材料)/ 원료 (原料)  상노인(上老人)/ 남녀노소 (男女老少)/ 촌로(村老) 

  현행 맞춤법의 원리를 익히면 정확한 구별이 가능하겠지만 단순화 하면 편리할 것을   무엇 때문에 ‘독자란’이 맞느냐? ‘어린이난’이 맞느냐 ‘생산량’이 맞느냐? ‘구름양’이 맞느냐? 따지고 있어야 합니까? 이것이 그렇게 교육적으로 중요한 이론이며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복잡한 세상에 온 국민이 머리를 썩여야 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한글의 세계화 선진화를 위해서 존속할 가치가 있는 이론입니까? 

  한자어의 ‘ㄹ’이나‘ㄴ’음 해당 문자가 단어의 중간이나 끝에 올 경우 한자어 원음표기대로 적고 발음을 하게 되면 글자표기 문제는 아주 간단명료해집니다. 그리고 복합명사의 경우 ‘교육련합회‘와 같이 붙여 쓰도록 하면서 한 단어 개념으로 취급하면 ’교련‘과도 일관성이 있고 더욱 간단하게 처리된다. 그러나 발음에서는 현재의 습관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까지 사용하던 ‘규율’을 규률‘로 적고 발음하려면 어색할 수 있으므로 표기는 ’규률‘로 통일하고 발음은 ’규율‘과 ’규률’ 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말과 글의 세계화 선진화를 위해서는 한자어이든 외래어이든 원음에 충실해야 하고, 간단명료해야하고, 우선 한글을 사용하는 남북한 ,중국의조선족 등 한민족간 표기와 발음의 통일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음이 아닌 두음법칙을 원음으로 단일화해서 한글을 일부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종대왕의 창제이념대로 국민 모두가 쉽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두음법칙의 개정을 바랍니다. 

출처; 두음이 아닌 한글 두음법칙 원음으로: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07/06/25

 

 

 

 

두음법칙 폐지론자 려증동 교수의 열변

“말글살이 뒤흔든 두음법칙, 남북 형제 성씨도 갈라놨다”

  •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국문학
  • 입력2006-01-13 16:03:00

“말글살이 뒤흔든 두음법칙, 남북 형제 성씨도 갈라놨다”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국문학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배달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배달로 쳐들어 왔다. 심산(心山) 김창숙씨는 이를 ‘경인란(庚寅亂)’이라고 불렀다. 경인년에 일어난 ‘란(亂)’이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끼리 싸움을 벌인 경우에는 ‘란’으로 표기하는 게 바르다. 반면 북배달은 이를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한다.

1592년 음력 4월13일 새벽 일본이 부산포에 쳐들어온 것을 배달겨레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른다. 반면 침략자 일본은 이를 ‘문록전역(文祿戰役)’이라고 한다. 그해 일본 년호가 문록(文祿)이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본에선 ‘경장전역(慶長戰役)’으로 쓰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을 ‘력사용어 일방통행’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는 어느 쪽이 침략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침략을 당한 쪽에서는 ‘란’으로 부르는 반면 침략한 쪽에서는 전쟁이라 칭한다. 북배달이 경인란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곧 침략을 자인하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경인란을 흔히 ‘6·25 동란’ 또는 ‘6·25 전쟁’이라 쓰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읽는 대로 적으면 ‘륙이오 전쟁’인데, 이를 통상적인 력사용어로 풀이하면 ‘륙’국과 ‘이오’국이 전쟁한 것이 된다. 청과 일본의 ‘청일전쟁’이나 러시아와 일본의 ‘러일전쟁’처럼. 또 전혀 엉뚱한 의미의 ‘유교전쟁’으로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유엔군은 경인란을 ‘코리안 워(Korean War)’라고 부르고, 우리는 이를 ‘한국전쟁’이라고 번역한다. 이는 완전히 엉터리 번역이다. ‘코리안 워’를 정확히 번역하면 ‘코리아 사람 전쟁’이다. 다시 말해 ‘배달겨레끼리 벌인 전쟁’이라는 의미다. 이는 제3자가 사용하는 력사용어다.


그로부터 5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남배달과 북배달은 너무도 먼 나라가 돼버렸다. 한민족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가 형성됐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말과 글이다. 심지어 성(姓)도 달라졌다.

전후 50년 만인 지난 2000년, 금강산에서는 역사적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이때 만난 남쪽 동생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는 ‘이삼근’이라고 적혀 있고 북쪽 형의 이름표에는 ‘리원근’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형제지간인데도 ‘이’씨와 ‘리’씨로 성씨가 달라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쪽 표기가 옳다. 북쪽은 으뜸말과 으뜸소리를 굳게 지키는 프랑스식을 택해서 말글살이가 비교적 바르게 정착됐다.

‘李’자의 뜻과 음은 ‘오얏 리’다. 으뜸소리가 바로 ‘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 ‘李源根’은 ‘리원근’이라고 읽고, ‘行李’는 ‘행리’라고 읽고 쓴다. ‘李’자가 앞에 나오든 뒤에 나오든 상관없이 똑같이 ‘리’로 쓴다. 북한이 1992년 3월 발행한 ‘조선말 대사전’을 보면 일본말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한 우리말로만 정리돼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이처럼 옛 으뜸말과 으뜸소리를 그대로 지켜 나가는 프랑스식 말글살이를 따르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은 남한뿐이다. 남한의 말글살이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은 두음법칙이다. 글자 첫소리에 ‘ㄹ’과 ‘녀·니’가 오면 이를 ‘ㅇ’과 ‘여·이’로 바꿔서 쓰고 읽도록 한 것.

한글학자인 리숭녕씨가 이를 처음 주장했고, 리희승씨와 최현배씨가 이에 동조하면서 정해진 법칙이다. 자신의 이름을 ‘리승만’으로 고집했던 대통령도 결국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녀석’은 되는데 ‘녀자’는 안 된다. ‘년놈’은 되는데, ‘년세’는 안 된다. ‘놈’을 ‘옴’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도대체 뭐가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게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우리의 말글살이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말글살이를 만든 세종대왕이 ‘녀자’ ‘년세’라고 썼던 것을 굳이 바꿀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으뜸소리 무시한 오류

엄연히 존재하는 으뜸소리를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합리적이다. 단적인 예가 한글로 한자자전을 찾을 때다. 한자자전에서 ‘女’자를 찾으려면 ‘녀’자로 들어가야 한다. ‘여’자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할 때 사용된 ‘리’는 한자 ‘理’다. 한자 첫소리의 ‘ㄹ’은 ‘ㅇ’소리로 표기하라는 두음법칙은 이 대목에서 뒤틀리게 된다.

리숭녕씨는 두음법칙을 쓰는 이유에 대해 ‘첫소리에 ㄹ소리를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리~리~리 자로~ 끝나는 말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이 있는데도 ‘羅’씨를 ‘나’씨로 표기하라는 이유는 또 뭔가.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두음법칙과 비슷한 예가 ‘쇠고기’라는 단어의 변형이다. ‘牛’의 으뜸소리는 ‘소’다. 필자는 ‘쇠고기’는 ‘철사고기’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으뜸소리를 써서 ‘소고기’가 맞다는 견해를 오래 전부터 피력해왔다. 그런데 한글학자 리희승씨는 “내가 자랄 때 쇠고기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을 표준으로 한다”면서 ‘철자법’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글학회는 리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를 ‘맞춤법’이라며 ‘쇠고기’로 표기하도록 권장했다.

그렇다면 ‘염소+고기’는 ‘염쇠고기’여야 하는 것 아닌가. 리씨가 고인이 된 지금도 ‘쇠고기’라는 표기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소고기’와 병용되고 있다. 또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는 여전히 쇠고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 중에 정육점에 가서 “쇠고기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리희승씨라면 몰라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으뜸소리를 표기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그들은 ‘Descartes’라고 표기하고 ‘데카르트’로 읽는다. 발음하거나 들을 때 ‘s’소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표기에서는 으뜸소리 ‘s’를 굳게 지킨다. 발음은 자유지만 표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통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에스프리’라고 발음하면서 ‘esprit’로 표기해 ‘t’를 버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몇 사람의 학자에 의해 표기가 좌우되고 있다. ‘님’은 그대로 쓰면서도 ‘님금’은 읽기 불편하다고 ‘임금’으로 바꿔버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두음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집현전 7학사 하옥사건

이들 학자는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관련한 ‘세종실록’ 기록 중 일부다.

‘癸亥 12月,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이를 직역하면 “1443년 세종 25년 12월, 이 달에 왕이 친히 28자를 만들어 알렸다”로 된다.

하지만 리숭녕씨는 이를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을 만들어서 세종에게 바쳤다”고 풀이했다. 세종은 이를 반포했을 뿐이라는 것. 이런 잘못된 번역은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대로 실렸다.

실제로 세종은 중국 황제가 모르도록 집현전 학자들에게만 이를 살며시 전해줬다. 왕이 뜻을 폈다면 ‘반교문(頒敎文)’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세종실록 어디에도 ‘훈민정음 반교문’은 나오지 않는다. 또 ‘훈민정음’이라는 한자로 정리한 책도 만든 적이 없다.

세종이 비밀리에 제일 먼저 간행을 지시한 책이 바로 ‘룡비어천가’라는 ‘조선 님금노래’ 책이다. 이 또한 세종이 직접 만들어놓고는 권제와 정린지, 안지가 지어서 올린 것으로 꾸몄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는 이들 3인이 한글을 사용할 줄 몰랐다는 것. 또 룡비어천가 제1장을 보면 ‘해동 륙룡이 나라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신하들이 만든 것이라면 능지처참을 당할 중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륙룡이라면 ‘목조(이안사)-익조(이행리)-도조(이춘)-환조(이자춘)-태조(이성계)-태종(이방원)’을 의미하는데, 정작 주상전하인 세종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이 지은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현전 학자들은 오히려 한글 사용을 반대했다. 당시 기득권자이던 집현전 학자 7명은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소(疏)를 올리는가 하면 세종의 설득에도 아랑곳없이 대들다가 의금부에 잡혀간 적도 있다. 그것이 바로 ‘집현전 7학사 하옥사건’이다.

세종은 집현전의 학자들이 한글사용을 반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집현전 대제학을 임명하지 않는 등 나름의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 세종 32년(1450) 2월, 세종이 승하할 때까지 대제학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로부터 460년 뒤인 1910년(경술)에 나라를 잃으면서 한글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광복 후 한글학회가 만들어지고 세종의 업적이 뒤늦게 평가받으면서 한글이 뒤늦게 부흥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더 훼손되고 말았다.

으뜸소리 지켜야 충돌 적어

급기야 1996년 10월, 대법원 판사 13명이 “사람 이름 성씨 적기는 두음법칙에 따른다”는 내용을 담은 ‘호적례규’를 발표했다.

이 례규의 적용을 받게 된 ‘ㄹ성씨’는 라(羅), 량(梁), 려(呂), 렴(廉), 로(盧), 로(魯), 류(柳), 륙(陸), 리(李), 림(林) 10개. 이 성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림잡아 1000만명에 가깝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자신의 성씨를 빼앗긴 채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이를 끝까지 거부한 집안도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류씨(豊山柳氏) 집안이다. 조선 선조 때 류운룡(호 겸암)과 류성룡(서애) 형제가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온 풍산류씨는 지금도 ‘류’씨를 고집하고 있다.

필자는 1977년부터 두음법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의 으뜸소리를 지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필자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羅(라)’씨의 경우 으뜸소리 ‘라’를 그대로 사용하면 ‘那(나)’씨와 충돌이 생기지 않는다. 굳이 괄호 속에 이 두 성씨를 구분하기 위해 한자를 적지 않아도 된다. ‘梁(량)’씨와 ‘楊(양)’씨, ‘呂(려)’씨와 ‘余(여)’씨, ‘林(림)’씨와 ‘任(임)’씨도 마찬가지다.

▲‘盧’ ‘魯’는 두음법칙상 ‘노’로 읽고 쓰지만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모두 ‘Ro’다. 이 두 글자의 으뜸소리도 ‘로’다. 굳이 이를 ‘노’씨로 부르고 영문표기를 ‘No’로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柳’의 으뜸소리는 ‘류’다. 이를 사용하면 으뜸소리가 ‘유’인 ‘’씨, ‘劉’씨 등과 충돌이 줄어든다. ‘李(리)’씨와 ‘異(이)’씨, ‘伊(이)’씨도 같은 경우다.

실제로 두음법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성씨가 으뜸소리를 써왔다. 남한 정부 초창기 대통령과 부통령의 이름을 ‘리승만’과 ‘리기붕’으로 썼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신문사에 ‘리승만’이라고 써서 보내면 ‘이승만’으로 모두 고쳐버린다. 이것이 인권 침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훈장엔 ‘려’씨, 주민증엔 ‘여’씨

필자는 2005년 10월4일 리용훈 신임 대법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리 대법원장이 1996년 호적례규를 발표한 13명의 대법원 판사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공개서한 내용 중 일부다.

‘성씨 적기는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법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적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법적으로 규제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998년에 65세 정년퇴직할 때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에는 이름이 ‘려증동’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런데 관청에서 발행하는 주민등록증의 이름은 ‘여증동’입니다. 그나마 은행통장은 ‘려증동’으로 발급받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두음법칙’은 국회를 통과한 법이 아닙니다. 두음법칙을 만든 사람은 서울대 리숭녕 교수입니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경성제국대학을 다니면서 일본 교수로부터 ‘ㄹ소리 버릇’을 배웠고, 그것을 조금 바꿔서 두음법칙이라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2005년 1월, ‘연합뉴스’가 펴낸 ‘한국인물 사전’은 그동안 받아온 고통을 조금이나마 씻겨줬습니다. 라종일(羅鍾一) 려증동(呂增東) 류갑종(柳甲鐘) 리영희(李泳禧) 림영철(林永喆) 등을 원래 성씨대로 표기해줬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양대 서정수 명예교수가 “남북 언어학자 모임에 다녀왔는데, 남한에서 시행하고 있는 두음법칙을 없애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서울에서 열릴 세미나에서 필자가 평소 주장하는 두음법칙 폐지론에 대해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 기회가 된다면 필자는 그곳에서 두음법칙이 사라져야 할 당위성을 다시 한 번 피력할 것이다.

출처; 두음법칙 폐지론자 려증동 교수의 열변|신동아 (donga.com) 입력 2006-01-13 16:03:00

 

 

 

 

<참고자료>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2226.html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36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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