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배달국 고고학(8) 대형 피라미드 – 우하량유적 13지점 본문
● 대형 피라미드 – 우하량유적 13지점

(출처;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9)뉴허량의 적석총들, 2007.11.30.
https://www.khan.co.kr/article/200711301556371)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9)뉴허량의 적석총들〉
〈뉴허량|이기환 선임기자〉〈동영상|이다일 기자〉 2007.11.30.
-동방의 피라미드-

1992년에 확인된 동방의 피라미드(제13지점). 아직 정식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잠깐 길을 잃었다가 뉴허량에서 1㎞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좐산쯔(전산자·轉山子)라는 곳을 ‘발견’했다. 저 멀리 낮은 나무가 서 있는 아주 낮은 구릉이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동방의 피라미드(제13지점), 즉 중국말로 진쯔타(金字塔), 즉 금자탑이란다. 이집트의 웅장한 피라미드와 비교한다면 ‘피식’거릴지 몰라도 중국학계의 자부심은 대단하단다.
“그럴 만도 하죠.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1000년이나 앞선 시기의 피라미드니까요.”
기자는 속으로 중국인들 특유의 ‘뻥’인가 싶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계단식 적석총을 흔히 피라미드라 하고, 그런 측면에서 고구려 장군총 역시 피라미드라 일컫는다. 그보다도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범상치 않은 모양이다.
“한 변이 100m나 되는 거대한 층급형 피라미드예요. 지금 확인되는 것은 7층까지랍니다.”
이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가운데는 판축의 형태로 흙을 다지고(층마다 8~10㎝로) 바깥쪽은 돌로 쌓았어요. 다진 할석의 면을 바깥으로 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견치석과 엇박자로 쌓는 석축의 방법은 훙산문화~샤자뎬 하층문화~부여~고구려·백제·신라~일본 규슈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적석총과 같은 모티브라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피라미드가 조성된 앞에 제단(60×40m)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훙산문화 사람들이 이 제단에서 피라미드의 주인공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얘기가 된다. 이 피라미드는 1992년 본격적으로 확인됐다. 아직도 표면만 발굴했을 뿐 중앙부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중국인들이 이 수수께끼 유적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라미드라 일컫는 이런 거대한 적석총의 존재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이집트 사카라에 있는 제2왕조 파라오인 조세르(BC 2630~BC 2612년 추정)의 계단식 피라미드다. 그런데 이 동방의 피라미드는 이보다 1000년 앞선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이교수는 “모티브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같다”면서 “이 건축물은 제단을 갖춘 무덤이며 그리스 신전 같은 역할을 했으니 훙산문화가 다른 세계문명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중국학계는 입이 딱 벌어졌다. 중국 고고학자 옌원밍(엄문명·嚴文明)은 “이 피라미드는 왕의 묘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중화문명 5000년 역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피라미드는 어떻게 다링허와 랴오허(遼河)를 건너 랴오둥 반도와 만주 일대, 그리고 한반도로 퍼졌을까. 고구려 지안(集安) 국내성 일대에서 발견된 1만 여기의 적석총은 이 뉴허량 적석총과 어떤 친연관계를 갖고 있을까. 기자는 이형구 교수와 함께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여행을 떠나보련다.(1)
우실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우하량유지 제13지점 거대 원형 적석 건축물
우하량유지 제13지점의 거대 피라미드 형식의 7층 원형 적석 건축물은 아직 정식 발굴이 되지 않고 시굴을 진행하여 전체적인 구조만 밝혀진 상태이다. 이것이 무덤인 적석총인지 또 다른 형태의 건축물인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이다. … 』(2)
우실하, 7층짜리 거대 피라미드는 ‘판도라 상자’
[한민족 시원, 만주]동방 르네상스를 꿈꾸다 (2)
광개토대왕릉 빼닮아…백제 적석총도 같은 형태
‘성소’ 여신묘에 곰 형상, 단군신화 웅녀족과 ‘끈’
수정 2019-10-19 20:29 등록 2010-02-04 10:08
중화문명 뿌리 찾다가 홍산문화 발견…요하가 원류 ‘정설’
이제 홍산문화로 들어가 보자. 홍산문화는 전기, 후기로 나눠는데 후기는 초기국가단계에 진입한다. 그래서 홍산문화는 요하문명의 꽃이라고 했다. 홍산문화의 발견은 전 세계 고고학계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줬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중국은 홍산문화가 발견되면서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재편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은 ‘동북공정’에 앞서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이라는 역사 공정도 벌였다. 그런 공정의 시발점이 홍산문화의 발견이었다.
하상주단대공정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존속 연대를 결정하는 것이 연구의 뼈대다. 이 세 나라가 언제 시작되어 언제 망했는지, 그 연대를 단정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을 단대(斷代·시대를 나누다)라고 한다. 그래서 하상주의 존속연대를 1년 단위까지 세밀하게 확정하는 작업을 했다. 5년 동안 동북공정처럼 수십억 돈을 쏟아부어 300명의 학자가 연구를 해 결론을 낸 것이다.
그 다음 작업을 한 것이 (하상주) 이전의 시기를 보기 위해, 즉 중화문명의 원류를 탐색하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이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은 2000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공정이라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대충 나온 결론은 중화문명은 요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요하가 중화문명의 시발점이라는 거다. 중국학자 몇 사람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기본 입장으로 굳어지고 있다.
단군신화 다시 읽어야…그 이전의 역사는 없었나?

자, 그럼 사진을 중심으로 홍산문화를 자세히 알아보자. 홍산문화의 꽃은 ‘우하량’ 유적이다. 그곳에서 거대 적석총과 여신묘가 나왔다. 우하량 지역에서는 많은 피라미드식 적석총이 나온다. 이 시대의 묘장문화가 적석총인데, 가장 큰 것은 한변이 60m가 넘는 거대 피라미드식 적석총이다. 여신묘(무덤이 아니라 여신의 사당)에서는 홍산문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이 일대(적석총과 여신묘가 발굴된 우하량 제2지점 지역)는 홍산문화 당시 성소였을 것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터가 나왔다. 이 지역에서 반경 수십㎞ 이내에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주거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지역을 성소로 본다.
여신묘는 십자형으로 돼 있는데, 주실에서 여신상이 나왔다. 가장 큰 여신은 인간 실물의 3배가량 된다.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눈은 둥근 청옥을 정교하게 갈아 넣었다. 그런데 여신 옆에서 진흙으로 실물 크기로 빚은 곰 형상이 발견되었다. 지금은 5천 년이 지났으니까 다 부숴져서 발 부분과 채색된 아래턱만 남아 있다. 이게 발굴이 되면서 홍산문화의 주도세력이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단군신화의 웅녀족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대부분의 중국학자들이 곰 형상과 곰 토템 부족이었음을 인정한다.

이제 단군신화는 다시 읽어야 한다. 단군신화라고 하면,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기원전 2333년에 우리들의 사고가 고정이 돼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역사는 없었나? 우리의 단군신화를 보면 처음에 환인이 있었고,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를 세웠다고 한다. (법륜 스님 역사특강 2강 참조)내려오자마자 단군이 탄생하나? 환웅족이 외부에서 유입되어(하늘에서 내려와) 한참 살다 보니까 곰족과 호랑이족이 와서 “인간을 만들어 달라” 애원하며 공존하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한참을 공존하다가 곰이 여인이 되고 환웅과 결혼을 해서 단군을 낳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기원전 2333년 이전에도 우리 역사가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군신화라는 신화구조로 남아 있다. 그리고 고조선 지역으로 추정하는 요서에서 (신화를 뒷받침 할) 유적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1980년 이전에 어떤 역사기록에도 없고 어느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서양 틀로는 설명 못해…청동기 없이도 국가 형성 가능 보여줘

여신묘에서는 다량의 옥기가 출토되었다. 오로지 옥기로만 부장품을 넣어줬다. 이런 옥기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중국의 옥기 전문가들이 옥을 자를 때 쓴 도구를 발견했는데, 그 시대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해봤다. 그랬더니 실제 발굴되는 것과 비슷한 1.5cm정도 두께의 옥에 모래나 옥가루를 뿌려가면서 나무 막대기를 돌려서 구멍을 파는데 순수한 작업시간만 31시간이 걸렸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견되는 정교한 옥기 하나를 완성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홍산문화 적석총에서는 옥기가 무더기로 발굴된다.
이는 홍산문화 시대에 옥기를 만드는 장인집단이 따로 존재했었고, 신분이 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묘장 마다 크기가 다르고, 매장 방식이 다른 것도 신분 분화의 증거다. 중국 학자들은 홍산문화 시대에 최소한 7등급으로 신분이 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씨족단계나 부족단계에서 무슨 여신묘를 짓겠나? 또 한 변이 20~30미터짜리 3층 피라미드식 적석총이나 가장 큰 60미터짜리 7층 피라미드식 적석총을 쌓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씨족이나 부족 단위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군중을 통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홍산문화 당시 사회구조가 씨족이나 부족단계를 넘어서서 여신이라는 단일신을 중심으로 통합된 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까닭에 중국학계에서는 홍산문화 후기 단계를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우하량 제2지점 제단 유적지 안내문에는 ‘약 5500년 전에 이미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홍산문화유적지’라고 쓰여 있다. 기존의 역사학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단계에 진입한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문자와 청동기다. 홍산문화 시대에 문자와 청동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초기 국가단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옥기가 있기 때문이다. 홍산문화의 유적이나 유물을 보면 청동기가 없어도 국가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산문화나 요하문명이 발견되기 전까지 옥기시대라는 말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세계사적으로 청동기시대가 되면 여러 가지 문화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신격이 여성신 중심에서 남성신 중심으로 바뀐다. 그런데 홍산문하는 초기 국가단계로 넘어갔는데도 신이 여성신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지니고 있는 서양 역사를 기준으로 한 편년이나 틀에 하나도 안 맞는다. 문자나 청동기가 없는데도 이미 초기 국가단계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홍산문화 시기를 설명하려면 ‘옥기시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500-1000년 앞서…중원에는 없어

문제의 60m짜리 피라미드식 거대 적석총은 아직도 발굴이 안 된 상태다. 처음에는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무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변을 파봤더니 돌이 쌓여 있었다. 이것도 혹시 적석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시굴을 하고, 그것을 기초로 평면도를 그렸다.

7층짜리 피라미드식 적석총인데, 한 변의 길이가 60m나 된다. 그 밑에는 가로 세로가 60미터, 40미터인 평평한 돌을 깐 제단까지 나왔다. 이 거대 적석총을 발굴하면 그 안에 뭐가 나올지, 진짜 세계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나온 것보다 더 많은 게 나올 수밖에 없다. 저 큰 무덤 안에 달랑 옥기 하나 나올 리는 없지 않은가?
동북아시아 상고사와 고대사를 보는 눈을 새롭게 다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가 메소포타미아 우르지역에 나오는데, 그게 기원전 2600-2500년까지로 추정한다. 그런데 홍산문화의 이 거대 적석총은 그것보다 500-1000년가량이나 앞선다.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기원전 2500년까지 밖에 안 본다.이런 피라미드식 적석총은 중원에는 안 나온다. 중원 가까운 곳에서는 허베이성 위쪽과 내몽고자치구가 만나는 영하시에 있는 서하왕국의 서하왕릉에서 흙벽돌로 쌓은 피리미드식 묘를 발견할 수 있다. 거기는 전부 황토 고원이라 돌이 없으니까 흙으로 피라미드를 쌓았다. 그쪽 사람들의 조상 역시 홍산문화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 수도 국내성 터 일대 적석총 수천 기 널려 있어
홍산문화의 피라미드식 적석총이 우리 민족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홍산인들이 고구려, 백제를 거쳐 한반도로 적석총 문화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군총이다. 장군총은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이 있었던 중국 집안시에 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장군총 앞에 서면 기가 죽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장군총의 한 변의 길이는 30미터, 31미터다. 그런데 평면도를 보면 홍산문화의 적석총과 구조가 똑같다. 물론 연대와 크기는 홍산문화 거대 적석총에 비교할 수 없지만. 장군총뿐만 아니라 광개토대왕릉, 북한이 발굴했다는 단군릉도 모두 7층, 9층의 피라미드식 적석총 구조다. 또 집안시의 환도산성 아래 ‘산성하 무덤군’에 아직도 수천 기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 적석총이 널려 있다. 모두 홍산문화 적석총과 연결된다.

어떤 사람들은 홍산문화 적석총과 고구려 적석총이 연결된다고 하면 ‘고구려 적석총은 빨라야 기원후 3~4세기 이고, 홍산문화 적석총은 기원전 3500년인데, 어떻게 4천 년 가까운 간격을 뛰어 넘어 두 유적을 연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집트 사람들이 기원전 2500 년에 피라미드를 짓고 지금까지 한 번도 다시 지은 적이 없다. 또한 마야, 잉카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었지만, 그 이후로 현재까지 이들은 한 번도 그런 거대한 피라미드를 다시 지은 적이 없다. 그렇게 4천 년 동안 한 번도 안 지었다고 현재의 이집트인들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경우에는 고구려, 백제 시대에 과거의 피라미드를 복원까지 하지 않았는가?”
홍산문화 시절엔 한국도, 중국도 없어…후손들 여러 갈래로

백제 적석총을 보면 고구려 장군총에 비해서 규모는 훨씬 소박하다. 그러나 형태는 홍산문화의 것과 거의 똑같다. 돌을 깎거나 다듬어 네모나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석을 크기에 맞춰 축대 쌓는 식으로 가지런히 쌓았다. 일본에서도 3단으로 쌓은 피라미드 무덤이 발견된다. 당연히 백제를 통해 일본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요하문명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문화가 하가점-하층문화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기 비파형 동검이 나오고, 고구려 석성의 독특한 형태인 ‘치를 갖춘 석성’의 원형이 발견된다. 치가 무엇이냐 하면 석성을 쌓을 때 일정 거리를 두고 톡톡 튀어나오게 한 부분이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고대 군사 전략상 치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적군이 치에 들어오면 한 방향이 아닌 삼면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어 성의 방어에 무척 용이했다. 고구려의 치를 모방해 당나라, 명나라 성에서도 치가 발견되는데, 치가 좀 더 발달한 형태가 옹성(甕城) 구조이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유적 가운데 삼좌점 석성에 아직도 치의 형태가 25개나 원형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 4천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깨끗하게 남아 있다. 하가점-하층에서 치를 갖춘 석성이 나오기 전까지 치는 고구려 성에서만 발견되는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동아시아 어디에도 없는 고구려의 발명품으로 알았다. (시각차가 있을 수 있지만) 고구려와 하가점-하층문화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비파형 동검 분포지역 지도를 바꿔야

지도에서 비파형 동검(세형 동검을 포함)이 출토되는 지역을 보면 요서, 요동, 한반도 지역에 몰려 있다. 최근에는 산둥반도 주변에서도 한 두 개가 발견되기는 한다. 요서일대에서 이주한 세력이거나 유배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파형 동검은 중원에서는 하나도 안 나온다. 만리장성 바깥에, 요동, 요서, 한반도에 쫙 깔려 있다.
최근 요하지역에서 비파형 동검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것을 감안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비파형 동검 분포지역 지도를 바꿔야 한다. 현재의 교과서 지도로는 어디가 중심지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 요서 지역 하가점-하층문화, 하가점-상층문화 지역과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발굴되는 것은 두 지역이 동일한 문화권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은 고조선,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의 문화와 밀접하게 맥이 닿아 있다.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정리 박종찬 기자
◆ 우실하 교수는=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중국 요녕대학 한국학과 교수 역임. 문화사와 사상사, 문화종속론, 문화이론, 동양사회사상 전공. 주요 저서로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1997), ‘전통문화의 구성원리’(1998), ‘동북공정의 선행 작업과 중국의 국가전략’(2004) ,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2004),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2007), 등 7권의 단독 저서와 ‘고대 동북아 연구’(2008),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2008) 등 8권의 공저가 있다. 우리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원류를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고, 상고사를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남다르다.(3)
<참고자료>
'동북아 시원문명전시회' 개최 (ybstv.net)2015.10.20
요하문명 유적·유물에 인류 최고의 문명이 숨쉰다 (brainmedia.co.kr)2015년 04월 15일
홍산옥기 전문가 박문원 한국홍산문화학술원 원장 인터뷰 | 일요신문 (ilyo.co.kr)2014.02.17
피라미드 이집트·고구려 등 다양...헤로도토스가 첫 기술 - 머니S (moneys.co.kr)2013.12.13
[류병학의 1분 미술학교]피라미드, 고조선이 기원? - 경향신문 (khan.co.kr)2011.06.03
적석총, 석관묘, 빗살무늬 토기...이 '낯익은 유물'의 주인공은 누구? - 오마이뉴스 (ohmynews.com)0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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