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대한민국 (78) 제6공화국 : 이명박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 본문
대한민국 (78) 제6공화국 : 이명박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
대야발 2025. 7. 18. 17:13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년간 준비해온 '친일인명사전'이 마침내 발간했다. 사전은 총 3권에 분량은 3000쪽에 달한다. 여기에는 일제 식민 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000여명의 주요 행각과 광복 이후 행적 등이 담겼다. 수록된 인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작곡가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등이 포함됐다.
이 사전은 오른 '친일 인사'는 4389명이다. 1948년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규정한 688명의 약 6배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하에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5명에 비해서도 4배 많다.
■정치·언론인도 피하지 못했다…4389명 친일인사 '역사적 청산' [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년간 준비해온 '친일인명사전'이 마침내 발간했다. 사전은 총 3권에 분량은 3000쪽에 달한다. 여기에는 일제 식민 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000여명의 주요 행각과 광복 이후 행적 등이 담겼다. 수록된 인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작곡가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등이 포함됐다.
친일 인사 4389명…선정 기준 두고 논란
이 사전은 오른 '친일 인사'는 4389명이다. 1948년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규정한 688명의 약 6배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하에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5명에 비해서도 4배 많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죄질이 무거운 반민족행위자만을 선정한 반민특위와 달리 친일인명사전은 부일협력자까지 대상에 포함했다"며 "친일인명사전은 처벌이 아니라 역사적 청산과 학문적 정리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물 선정을 두고 여러 논란이 일었다. 인명에 대한 형평성이나 당시 사정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친일 경력이 불확실하거나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인물도 수록돼 비판받았다.
보수층에서는 대표적 친일 인사 일부가 사전에 오르지 않는 점을 꼽아 좌파 친일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대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공신력 없는 단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물 선정 논란에도 정부는 이 사전을 바탕으로 독립유공자 19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다.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사후에 친일 행적을 했다면 취소하는 게 마땅하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 인물은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라며 "친일 행적이 분명한 일부 인물들이 애국지사로 추앙받은 점은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전도된 가치 기준을 바로 세우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일부 유족들 소송까지 갔지만, 모두 패소

친일 인물로 지목된 이들 반발도 거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는 사전이 발간되기 전 서울북부지법에 발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당시 지만씨는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행한 행적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일 인사로 확정 짓는 것은 사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지만씨뿐만 아니라 화가 장우성과 법조인 엄상섭의 후손, 언론인 장지연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도 모두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사전이 발간된 후 진행된 소송에서도 법원은 민족문제연구소 손을 들어줬다.
친일 명단에 오른 일제강점기 만주국 고등관 홍순일씨 아들 홍모씨가 제기한 친일인명사전 복제와 배포금지 청구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원고 패소했다.
"안익태는 친일"···'애국가 폐기' 논란 재점화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2006년 독일에 있던 한 유학생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이 유학생은 안익태의 친일 행적 증거로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안익태는 일본인이 쓴 가사에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해 이를 직접 지휘했다. 이에 친일 인사가 만든 애국가를 아무런 문제 없이 불러도 되냐는 의문이 제기되며 폐지 논란까지 번졌다.
잠잠했던 논란은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불거졌다. 당시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열렸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불러온 애국가와 작곡가 행적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1940년대 상해 임시정부가 공식 국가로 인정한 후 대한민국 국가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1)
수록된 인물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현상윤 전 고려대총장, 김성수 동아일보 전 사주,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주, 김활란 전 이화여전 교장, 이숙종 전 성신학교 교장, 작가 이광수, 역사가 최남선, 음악가 안익태, 현재명, 무용가 최승희, 언론인 장지연·박희도·이훈구, 시인 서정주·모윤숙·김용제, 종교인 정인과·강대련·이종욱·전필순·허영호·양주삼, 화가 김기창·김은호, 33인 민족대표의 최린 등이 포함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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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숙명아트센터가 측의 안전 문제로 대관 계약을 일방 취소하자 참석자들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장소가 변경하여 묘소로 이동하고 있다. |
| ⓒ 유성호 |
해방 후 우리 나라의 친일파 청산은 국민적·역사적 과제인데도 미제로 남겨졌다.
이승만 정권에서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그 후 군사정권은 친일세력이거나 그 후손들이 많이 참여해서인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던 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친일파 당사자들은 이미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친일행위에 대해서 기록으로 남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위해 일찍부터 나선 것이 민족문제연구소이다. 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을 계승하고,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잇고자 1991년에 설립되었다.
연구소는 출범 이래 친일파 관련 문헌자료 수집을 시작했고, 1991년 말 학자·전문가 등 150여 명으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각 분야별 전문가 180여 명이 집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편찬위원회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일제강점기의 공문서·신문·잡지 등 3천여 종의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약 250만 건의 인물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5천여 명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하여 20여 개의 전문분과회의에서 심의를 거쳤으며 자문위원회의 최종 자문을 받아 선정했다.
사전발간 비용은 민족문제연구소 5천여 회원과 3만여 명의 시민들이 보낸 7억 원이 넘는 성금으로 충당했다. 수록대상자의 선정은 주관적 평가나 판단을 피하고 자료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서술 범위는 전 시기의 경력과 행적을 포함하되 (민족운동경력, 해방이후 경력·행적 포함), 일제강점기 친일경력과 행적을 중심으로 하였다.
이같은 원칙으로 일제강점기 친일파 4300여 명의 행적을 기록한 3천 쪽 분량의 <친일인명사전> 3권이 2009년 11월 간행되었다.
수록된 인물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현상윤 전 고려대총장, 김성수 동아일보 전 사주,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주, 김활란 전 이화여전 교장, 이숙종 전 성신학교 교장, 작가 이광수, 역사가 최남선, 음악가 안익태, 현재명, 무용가 최승희, 언론인 장지연·박희도·이훈구, 시인 서정주·모윤숙·김용제, 종교인 정인과·강대련·이종욱·전필순·허영호·양주삼, 화가 김기창·김은호, 33인 민족대표의 최린 등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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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8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
| ⓒ 유성호 |
발간사
'고백과 성찰'을 위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돌이켜 보면 해방공간과 정부수립 직후 친일 행위자들의 역사적 죄과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이 반성하고 자숙하기보다 오히려 권력의 최고 상층부로 도약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의 정통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최소한의 가치기준마저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상식과 배치되는 퇴행적 현실은, 정의는 칼을 쥔 자의 것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편이라는 자조적인 역사인식을 일반대중에게까지 확산시켰으며, 그 결과 우리사회는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할 자정능력조차 상실하고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하는 실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본군 장교가 되고 총독부 관리를 지낸 것이 무슨 문제냐고 강변하고 오히려 자랑으로 삼는 비뚤어진 역사인식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이 부정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이 같은 자조적인 역사인식과 역사 허무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더욱 성숙하고 올곧은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목적은 수록된 개개인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정리와 역사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후대에 타산지석과 반면고사로 삼을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한 데 있다는 점을 거듭 말씀 드립니다.
목적의 정당성에 걸맞게 위원회는 객관성과 엄정성을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록기준과 수족대상자 확정에도 최대한 신중을 기하였습니까. 장시간에 걸친 폭압적인 지배하에 놓인 개개인의 삶을 쉽게 재단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2)
<자료출처>
(2)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