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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달국 고고학(4) 홍산문화(红山文化) 또는 발해연안문명 본문

신시배달국시대/신시배달국

3. 배달국 고고학(4) 홍산문화(红山文化) 또는 발해연안문명

대야발 2026. 3. 22. 15:42

 

 

 

 

 

제단(祭壇), 여신전(女神殿), 각종 형태의 거대 적석총이 발견된 우하량유지는 홍산문화 후기 유적이다. 홍산문화 후기의 우하량유지는 이미 ‘초기 국가단계’ 혹은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으며, 이 우하량유지는 ‘홍산문화의 꽃’이자 ‘요하문명의 꽃’이다. 우하량유지는 BC35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탄소14 연대 측정 이후 나이테 교정을 거친 절대연대는 BC 3779-3517년이다.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우실하는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에서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는 동북아시아 고대사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첫째, 1935년 하마다 고사쿠(浜田耕作)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고, 1955년 윤달(尹達: 1905-1983)에 의해서 정식 명명되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9년 동산취유지를 시작으로, 1983-1985년 우하량유지가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둘째, 홍산문화는 (1) 홍산문화 전기(BC 4500-3500: 신석기시대)와 (2) 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 동석병용시대)로 구분한다. 홍산문화 단계에서는 이미 발달된 농경사회로 접어든다. 홍산문화 시기는 농업 위주이면서 수렵과 목축을 겸하는 사회였다.

 

 

셋째, 홍산문화 만기의 우하량유지에서는 동(銅)의 주조한 도가니 조각과 순동 귀고리가 발견되어 동북 지역 최초의 동석병용시대로 보고 있다. 홍산문화 후기는 흔히 후홍산문화로 부르는 소하연문화(BC 3000-2000)로 이어져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잇는 고리 역할을 한다.

 

 

넷째, 제단(祭壇), 여신전(女神殿), 각종 형태의 거대 적석총이 발견된 우하량유지는 홍산문화 후기 유적이다. 홍산문화 후기의 우하량유지는 이미 ‘초기 국가단계’ 혹은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으며, 이 우하량유지는 ‘홍산문화의 꽃’이자 ‘요하문명의 꽃’이다. 우하량유지는 BC35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탄소14 연대 측정 이후 나이테 교정을 거친 절대연대는 BC 3779-3517년이다.

 

 

다섯째, 동북아시아 최초의 적석총인 ‘토광적석총’과 ‘석관적석총’은 흥륭와문화 백음장한 2기 유적지에서부터 이미 나온다. 그러나 흥륭와문화의 대표적인 묘제가 되지는 못했다. 적석총 가운데 가장 발달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계단식 적석총’을 비롯한 각종 돌무덤은 홍산문화 시기에 모두 보이며, 홍산문화 시기에 보편적인 묘제가 된다. 특히 홍산문화에서는 피라미드식의 거대한 계단식 적석총이 최초로 등장한다. 이런 적석총과 계단식 적석총은 이 시기의 황하문명이나 장강문명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흥륭와문화 시기에 시작된 적석총문화는 홍산문화 시기에 보편화되어 후에 만주 일대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묘제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후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일본의 묘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섯째, 한 변이 20-30m에 이르는 3층 계단식 적석총을 비롯한 다양한 크기의 적석총들은 1명의 ‘지고무상한 존재’, ‘왕의 신분에 상응하는 인물’이 출현했고, ‘신분의 등급 분화’와 ‘예제의 조기 형태’가 이미 제도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일곱째, 홍산문화 후기에는 이미 (1) 인간 실물의 1배, 2배, 3배의 여신을 모신 여신 신전인 여신묘가 단독으로 등장하며, 여신상들은 실물의 1배-3배까지 층차를 보이며 ‘주신’이 이미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여덟째, 거대한 제단, 여신묘, 다양한 거대 적석총과 계단식 적석총 등을 갖춘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한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 단계를 군장국가(君長國家, chiefdom)로 보기도 한다.

 

 

아홉째, 홍산문화 후기에는 황하문명의 중심지인 앙소문화 지역이 교류가 되어 앙소문화의 채도가 유입된다.

 

 

열째, 홍산문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옥기가 매우 풍부하게 발굴되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많게는 하나의 무덤에서 최고 20개의 옥기가 부장품으로 나온다. 이를 통해 홍산문화 시대는 신분이 분화된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한째, 홍산문화 후기에는 옥장인이 직업적으로 분화되어 있었다고 보며 필자는 석장인도 분화되어 있었다고 본다.

 

 

열두째,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에 옥기시대를 새롭게 설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서구와 달리 동북아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 이전인 옥기시대에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청동기나 문자가 없이도 문명단계, 국가단계에 진입한 세계적인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바탕으로, 옥기시대인 홍산문화 후기에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열셋쩨, 홍산문화 후기의 많은 무덤들에서는 남녀 1쌍이 합장된 적석석관묘들이 많이 보여서, 일부일처제가 이미 확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열넷째, 홍산문화 후기의 우하량유지에서 발견된 남녀 두개골 총 17개 가운데 76.47퍼센트에 달하는 13개의 남녀 두개골이 ‘두개골 변형’이 이루어진 ‘편두’이다. 남녀가 보편적으로 편두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변한과 진한 사람들의 편두 전통과 연관지어 보면, 이것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정보이다.

 

 

열다섯째, 홍산문화 후기는 (1) 한 변이 20-30미터에 이르는 수많은 3층 계단식 적석총을 비롯한 다양한 크기의 적석총, (2) 인간 실물의 1-3배의 여신을 모신 단독의 여신묘와 1-3배의 층차를 보이는 ‘주신’의 출현, (3) 천단의 원형으로 보고 있는 3층 원형의 거대한 제단, (4) 옥장인과 석장인의 직업적 분화, (5)일부일처제의 확립, (6) 거대 적석총 중심대묘의 주인공인 1명의 ‘지고무상한 존재’, ‘왕의 신분에 상응하는 인물’의 출현, (7) 부장된 옥기의 수량이나 형태 등을 통한 ‘신분의 등급 분화’와 예제의 확립 등을 통해서 ‘최소한 6-7등급 신분’이 분화된 ‘초기 국가 단계’ ‘초기 문명 단계’로 보고 있다.』(1)

 

 

 

 

<주>

 

(1) 우실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383-3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