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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달국 고고학(3) 배달국 청구문화 본문

신시배달국시대/신시배달국

3. 배달국 고고학(3) 배달국 청구문화

대야발 2026. 3. 22. 15:40

 

 

 

 

 

B.C.4000년경 선진적인 선도제천문화를 지닌 환웅족이 요동 백두산 서편의 천평(天坪) 지역으로 이주한 후 토착세력 웅족과 연맹,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를 본령으로 하는 배달국을 개창하게 된다. 환웅족+웅족이 주도한 선도제천문화는 요동 천평지역에서 시작, 요서 대릉하 일대의 청구(靑邱)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을 양대 중심 권역으로 하여 재차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배달국의 주족이자 민족의 원류인 ‘[맥족(환웅족+웅족)] + 예족(호족) → 한민족(맥족·예맥족·새밝족)’이 성립되었다. 배달국의 양대 권역인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의 고고문화에 준해 볼 때, 배달국은 전기(B.C.4000년~B.C.3500년경), 중기(B.C.3500년~B.C.3000년경), 후기(B.C.3000년~B.C.2400년경)로의 3분기 구분이 가능하였다.

 

 

 

배달국의 선도제천과 천인합일 수행

 

동북아 고고학에 나타난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와 민족종교의 원형 회복(3)

 

Ⅱ. 배달국의 선도제천과 천인합일 수행

 

1. 제천신격 : ‘마고삼신-삼성’의 사상적 역사적 의미

 

1980년대 이후 요서지역 상고문화가 집중적으로 발굴되면서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일대의 흥륭와(興隆窪)문화(B.C.6200년~B.C.5200년경) 백음장한(白音長汗) 유형에서 출토된 모신상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학계에서는 이를 동북아 후기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모신상으로 주목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모신상 전통은 후기 구석기 이래 동·서 유라시아사회에서 두루 나타나 신석기문화로 이어진 것이었다. 동북아 신석기문화에서는 근래 흑수백산(黑水白山) 지구 오소리 강변의 소남산문화(小南山文化) 소남산유적 제2기층(B.C.7200년~B.C.6600년경)의 문화가 오히려 요서지역 흥륭와문화나 홍산문화의 원형인 것으로 밝혀졌으니, 흥륭와문화를 동북아 모신문화의 중심으로 바라본 기왕의 견해는 수정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요서지역 흥륭와문화기 이래의 모신상 전통을 살펴보게 된다.

 

흥륭와문화기의 마고모신상 전통은 조보구(趙寶溝)문화(B.C.5000년~B.C.4400년경)로 계승되었다. 대체로 흥륭와문화기 모신상이 두손을 모은 채 집자리 바닥 중앙에 꽂힌 모습으로 다리가 표현되지 않았던데 비해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은 준거좌(蹲踞坐, 쭈그려 앉은 자세) · 의좌(依坐, 기대앉은 자세) 등 좌식으로 다리가 표현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선도수행과 관련한 표현이 시작되었던 점이다. 곧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에서는 척추선이 표현되고 정수리 중앙에 구멍을 뚫거나 상투머리가 표현되었는데 이는 인체의 척추선에 자리한 단전 시스템을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정수리 중앙에 구멍이 뚫린 것은 선도수행을 위한 핵심 혈자리인 정수리 중앙의 백회혈(百會穴) 표식으로 상단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었다. 조보구문화기 모신상에 백회혈 자리를 표시하거나 상투머리를 강조하는 표현법은 홍산문화기로 이어졌다.

 

또한 홍산문화기에는 소조 기법이 크게 발달, 양적인 면에서 인물 소조상의 제작이 급증하고 질적인 면에서도 사실성과 예술성 방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이는 동시대 중원지역과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홍산문화 후기에는 모신상과 함께 남신상이 함께 제작되는 변화도 나타났다. 이러한 남신상들은 당시 선도제천의 주재자 겸 통치자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는 홍산문화 후기에 이르러 선도제천이 제천의 신격인 마고모신상 중심에서 제천의 주재자 겸 통치자인 남신상을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단초를 보여주었다.

 

홍산문화 후기 소조 마고모신상 및 남신상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백회혈·인당혈 표식 외에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한 채 두 손으로 배 하단전을 감싼 모습이 나타났던 점이다. 이는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다시 상단전으로 생명력이 회복되어가는 수행 과정을 표현, 이즈음 선도제천의 수행적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흥륭와문화기 이래의 마고모신상은 대체로 다리 표현없이 양손을 가슴에 모은 형태로, 선도제천이 애초 신앙적 방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시사해주었다. 그러다가 조보구문화기가 되면서 선도수행과 관련한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홍산문화 후기 즈음에 이르러서는 반가부좌형 마고모신상 및 남신상까지 등장하였다. 요서지역의 선도제천은 애초 신앙적 방식에서 시작되었다가 홍산문화 후기에 이르러 선도수행적 방식으로 귀결되었음을 알게 된다.(자료1)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홍산문화 후기 마고모신상에는 선도적 세계관인 선도기학(仙道氣學)까지 표현되었다. 선도기학으로 바라볼 때 마고모신은 근원의 생명력인 ‘일기·삼기’를 의미하지만, 흥륭와문화기 이래 발굴된 실제 모신상에서 기학적 상징이 표현된 사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홍산문화기에 이르러 3명의 모신이 합체된 형상의 ‘마고3모신상’, 또 우하량 모신묘의 인체 3배·2배·등신대 크기로 등급화된 7기의 모신상이 십자형(十字形)으로 배치된 ‘마고7모신상’과 같이 선도기학적 상징에 의한 모신상이 등장하였다.

 

먼저 ‘마고3모신상’이다. 홍산문화 후기 오한기(敖漢旗) 지역 흥륭구(興隆溝) 유적 등지에서 발굴된 ‘마고3모신상’의 경우 3명의 모신이 분리됨없이 하나로 엉켜있는 형상으로, 일기의 세 차원인 천·지·인 삼기의 불가분리성을 표현하였다.

 

다음은 ‘마고7모신상’이다. ‘마고3모신상’도 그렇지만 선도기학의 핵심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한 경우는 우하량 모신묘의 ‘마고7모신상’이다. 우하량 모신묘는 십자형 구조였으며 모신상 또한 인체의 3배·2배·등신대 크기로 구분된 7모신상이 십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모신묘와 모신상에 반영된 십자형은 선도기학의 세계관인 ‘삼원오행론’을 표현한 것이었다.

 

선도문화에서는 근원의 생명력인 일기·삼기가 ‘물질화(현상화)’하는 단계를 신화형태로 설명하는 전통이 있어왔다. 곧 일기·삼기를 ‘마고모신(하느님·삼신, 마고·삼신)’으로 표현하고, 또 일기·삼기가 나뉘어 물질화(현상화)하는 단계적 과정을 마고가 궁희·소희를 낳고 다시 궁희·소희가 4천녀·4천인을 낳으며, 또 4천녀·4천인의 단계가 되면서 드디어 기·화·수·토가 어우러진 물질세계(현상세계)가 창조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마고나 궁희·소희, 4천녀와 같은 모신은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4대 기본원소 기·화·수·토의 눈에 보이지 않은 차원, 곧 물질화되기 이전의 단계까지에 대한 상징이다. 또한 이러한 일기·삼기의 분화 과정은 ‘입체 십자형, 실제로는 입체 구형(球形)’으로 표상화되었다. 이상 ‘마고신화’에 나타난 선도기학은 ‘삼원오행론(일·삼론, 일·삼·구론, 천부조화론, 기·화·수·토·천부론)’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마고신화(삼원오행론)을 이해할 때 모신묘의 7모신이 마고신화(삼원오행론)의 ‘마고7모신’에 대한 표현임을 알게 된다. 곧 ‘1기·3기(마고)’는 모신묘의 주실 중앙에 놓인 인체 3배 크기의 모신으로, ‘2기(궁희·소희)’는 모신묘의 동·서 측실에 놓인 인체 2배 크기의 두 모신으로, 또 ‘4기(4천녀)’는 모신묘의 주실 네 둘레에 자리한 등신대 크기의 네 모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에 모신묘의 7모신을 ‘삼원오행형 마고7모신’으로 명명해보게 된다. 이처럼 선도기학이 표현된 홍산문화기의 모신상들은 당시 선도제천이 선도수행의 방식으로 깊어져갔던 근저에 선도기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모신묘의 ‘마고7모신’이 일기·삼기의 단계적 분화에 의한 물질화(현상화) 과정중 물질화되기 이전의 단계에 대한 상징이라면, 마고7모신은 생명(기)의 차원일 뿐 물질(현상) 차원의 특정 인격신이 아니다. 곧 선도제천은 특정 인격신을 신앙하는 종교의례가 아니며 우주의 근원적 생명(기)과 사람속의 생명(기)의 합일을 지향하는 신인합일·천인합일·인내천의 수행의례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요서지역 홍산문화기의 마고모신상-남신상을 통해 이즈음 선도제천이 전형적인 선도수행형의 방식으로 깊어져가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흥륭와문화기 이래 홍산문화기에 이르기까지 선도제천의 이러한 변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국측의 선도사서에 자세하다. 한국측 선도사서들에 나타난 한국 상고사 계통 인식은 아래와 같다.(자료3)

 

 

[자료=정경희 교수 제공]

 

 

 

동아시아 상고시기 선도문화의 종주였던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삼대(三代)의 주역은 역대의 환인·환웅·단군이었다. 이들은 통치자이기 이전에 당대 최고의 선인(仙人)이자 스승으로서 선도문화의 본령을 전수해나간 ‘스승왕(사왕師王)’적 존재들이었다. 역대 스승왕들의 선도문화권 경영의 방식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갔다. 대체로 환국의 역대 환인들은 열악한 물질 조건의 개선을 우선, 선도문화의 문명적 기초를 닦았다.(조화造化·부도父道) 배달국시기 역대 환웅들은 스승과 군왕으로서의 두 역할 중 상대적으로 스승의 역할에 치중, 선도문화의 본령을 널리 알려 나갔다.(교화敎化·사도師道) 단군조선시기 역대 단군들은 상대적으로 군왕 역할에 치중, 강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선도를 정치·사회적으로 제도화하였다.(치화治化·군도君道)

 

이상의 역사인식과 요서지역의 고고문화를 배대해보면 흥륭와문화·조보구문화기는 환국시기, 홍산문화는 배달국시기에 해당한다. 환국시기 선도제천문화의 보급을 위한 기반 조성, 또 배달국시기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 보급이라는 선도문화의 성격 차이가 앞서 살펴온 흥륭와문화기의 신앙형 자세의 마고모신상, 또 조보구문화~홍산문화기의 수행형 자세의 마고모신상·남신상이나 선도기학이 반영된 마고모신상의 차이로 나타났음을 알게 된다.

 

또한 홍산문화기의 선도제천문화를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로 바라볼 때,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한 남신상이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를 주관하던 스승왕, 특히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를 개시했던 초대 ‘거발환 환웅’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거발환 환웅 이하 배달국의 역대 환웅들은 통치자이기 이전에 수행의 경지에 오른 선도스승으로서 제천을 집전하고 수행을 가르친 존재로 나타난다. 선도사서에서는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의 개시라는 시각에서 배달국 개창을 ‘개천(開天)’으로 표현하며 거발환 환웅을 ‘개천 시조’로서 극히 존숭한다. 이러한 높은 위상으로 인해 거발환 환웅상이 마고모신상에 버금가는 남신상의 형태로 제작·숭앙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고모신상 및 거발환 환웅상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요서지역은 배달국의 양대 중심지인 백두산 서편 천평天坪 권역(신주神州·신시神市, 현 길림성 통화를 중심으로 하는 압록강·혼강 일대)대릉하 청구(靑邱) 권역(현 조양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교래하·노합하·대릉하 일대) 중 청구 권역에 해당하였다. 배달국 개창시 배달국 최고의 소도제천지인 백두산 신시가 자리하고 있는 천평지역이 도읍으로 정해졌지만 배달국의 선진문명이 뻗어나가는 대외 창구는 청구 권역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달국의 선진문명이 점차 중원지역을 위시하여 유라시아 일대로 뻗어나가면서 청구지역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져갔고 급기야 배달국 말기 14대 치우천왕대에는 청구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이러할 때 요서지역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하는 반가부좌 선도수행형의 마고모신상 및 거발환환웅상, 또 선도기학을 반영하고 있는 마고3모신상 및 마고7모신상은 배달국 청구지역에서 펼쳐졌던 배달국의 난숙한 선도제천문화를 현시하는 유물이 된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홍산문화기에는 선도제천문화가 본격화되면서 마고모신상 외에 선도제천의 주관자인 남신상(거발환환웅상)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남신상(거발환환웅상)의 등장은 후대 한국사회의 제천문화에 나타난 마고모신과 삼성(환인·환웅·단군) 또는 단군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곧 1980년대 이후 동북아 상고문화에서 마고모신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 제천문화의 상징은 삼성(또는 단군)일 뿐이었고 한국문화의 기층에 자리한 마고삼신과 제천문화와의 관계, 또 삼성과 마고삼신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전무하였다. 그러던중 1980년대 이후 동북아 상고문화에서 마고모신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마고모신상 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남신상이 등장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선도문화에 대한 인식의 진전으로 마고모신상과 남신상의 관계, 곧 제천의 신격과 제천의 집전자라는 관계도 밝혀졌다. 비로소 마고삼신과 삼성의 관계가 풀린 것이다.

 

한가지 더, 후대 한국사회의 삼성신앙은 환웅에 국한되지 않고 환인·환웅·단군 삼성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렇게 환웅이 삼성으로 확대된 문제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홍산문화 후기에 등장한 남신상은 당연히 배달국 스승왕의 대표격인 초대 거발환 환웅천왕이었지만, 배달국 이전의 스승왕으로 거발환 환웅에게 천부삼인을 전수해주었던 환국의 환인천왕, 또 배달국의 스승왕 전통을 계승한 단군조선의 스승왕 단군천왕까지 더해보면 삼성이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선도 전통에서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삼대를 선도제천문화의 이상기로 바라본다. 물론 배달국시기에 이르러 선도제천문화가 본격화되었기에 스승왕에 대한 본격적인 신앙은 환웅에서 비롯되었지만 선도제천문화의 기반을 닦았던 역대 환인, 선도제천문화를 강화시켜갔던 역대 단군까지 포함하여 삼성 환인·환웅·단군에 대한 신앙으로 확대되었음을 알게 된다.(1)

 

 

 

 

필자는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동북아 상고문화의 표지(標識)인 ‘단(壇, 제천단) · 묘(廟, 제천사祭天祠, 중국학계에서는 여신묘女神廟로 호칭하나 동북아 상고·고대문화에서 여신은 ‘모든 생명을 낳는 어머니’의 의미이기에 필자는 모신母神·모신묘母神廟으로 지칭함) · 총(塚, 무덤)’ 및 ‘옥기(玉器)’를 한국계 ‘선도문화’로 인식한다. 곧 동북아 요동~요서지역의 B.C.4000년~B.C.2400년경 신석기 후기 ~ 동석병용기 문화를 맥족(예맥족)에 의한 배달국 선도제천문화로 보았다.

 

 

한국사의 출발점은 배달국, 한국문화의 원류는 배달국시기의 선도 제천문화

  • K스피릿입력 2022.01.18 10:15 업데이트 2022.01.19 16:09

 

[기고]동북아 고고학에 나타난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와 민족종교의 원형 회복(2)

 

Ⅰ. 머리말

 

동북아 상고문화에 대한 기왕의 연구경향은 대략 두 방향으로 정리된다.

첫째, 샤머니즘적 시각이다. 근대 이후 일본인들이 한민족문화의 시베리아기원설을 주창한 이래 민족문화의 시원을 시베리아·몽골·만주지역의 샤머니즘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였고 지금까지도 역사학·민속학의 대세로 이어오고 있다.

 

둘째, 동북공정을 주도한 중국학계의 ‘(샤머니즘에 기반한) 예제문화’라는 시각이다.1) 중국의 동북공정은 애초 동북아 상고문화를 중원지역으로 연결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되었기에 이 지역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는 중원지역 문화의 요체인 예제문화를 투사해서 바라보았다.

 

실제로 동북아 상고문화의 본령은 선도문화로 이것이 훗날 중원지역으로 들어가 지역화하고 또 내용면에서도 크게 변질된 것이 예제문화이므로 후대의 예제문화로써 선도문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학계에서는 예제문화로 접근하되 이로써 해명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할 경우 예제문화 대신 샤머니즘으로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2)  

 

이처럼 동북아 상고문화는 주로 ‘샤머니즘(무巫)’로 인식되어왔다. 반면 필자는 샤머니즘의 원형을 ‘선도문화(선仙, 선도제천문화)’로 인식한다. 동북아 상고 선도문화는 동아시아사회 전역으로 퍼져나가 동아시아사회 공통의 문화자산이 되었지만 본류는 한반도사회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그 문화적 본령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한국사회 속에서 답을 찾아보게 된다. 선도제천문화는 ‘밝음’을 이상시하여 ‘밝문화’로도 불린다. 여기서 ‘밝음’은 눈에 보이는 ‘하늘’ 또는 ‘해·달’이 아닌, 존재의 실체인 ‘생명, 기(氣), 일·삼, 일기(一氣)·삼기(三氣), 인격화된 표현은 하느님·삼신 또는 마고·삼신3)’을 의미한다. 이렇듯 선도제천문화는 존재의 본질을 기에너지로 바라보기에 기를 매개로 사람 내면의 기를 깨워내는 ‘천인합일, 신인합일, 인내천’ 수행에 기반하게 된다. 선도수행의 대표격이 ‘제천’이다. 기왕의 샤머니즘적 시각에 의할 때 제천은 태양신앙과 같은 종교의례로 인식되어왔으나 선도문화적 시각에 의할 때 ‘천인합일 선도수행의 형식화’, 곧 ‘수행의례’로 바라보게 된다.4)

 

이렇게 선도수행을 통해 사람속의 생명력을 회복한 후에는 실천을 통해 사회 전체의 생명력을 회복해가게 되는데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 또는 ‘광명이세(光明理世)'5)이다. 선도제천문화에서는 선도수행을 통한 개인의 생명력 회복을 ‘성통(性通)’, 생명력을 회복한 개인의 실천을 통해 전체사회의 생명력이 회복되는 것을 ‘공완(功完)’으로 보되 양자를 동일시해왔다. 이러한 ‘성통-공완’의 기준에 부합하는 이상적 인간형을 ‘신선’으로 본다면 신선은 ‘홍익을 실천하는 생활인’일 뿐이며 탈속적 은둔적 이미지는 훗날 부가된 잘못된 이미지임을 알게 된다.

 

필자는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동북아 상고문화의 표지(標識)인 ‘단(壇, 제천단) · 묘(廟, 제천사祭天祠, 중국학계에서는 여신묘女神廟로 호칭하나 동북아 상고·고대문화에서 여신은 ‘모든 생명을 낳는 어머니’의 의미이기에 필자는 모신母神·모신묘母神廟으로 지칭함) · 총(塚, 무덤)’ 및 ‘옥기(玉器)’를 한국계 ‘선도문화’로 인식한다. 곧 동북아 요동~요서지역의 B.C.4000년~B.C.2400년경 신석기 후기 ~ 동석병용기 문화를 맥족(예맥족)에 의한 배달국 선도제천문화로 보았다. 중국이 단·묘·총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인 ‘선상황제족(先商黃帝族) - 선상고국(先商古國) - 샤머니즘巫에 기반한 예제문화(禮制文化)’라는 시각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것이 실상 ‘맥족-배달국-선도제천문화’였음을 밝힌 것이다.6)

 
 

먼저 선도의 기학적(氣學的) 세계관(선도기학仙道氣學)을 ‘삼원오행론(三元五行論, 마고신화)’7)으로 정리한 후 이에 의거하여 단·묘·총과 옥기에 나타난 선도제천문화를 규명하였다. 옥기 이하 각종 유물에 나타난 신성 표상,8) 또 우하량 모신묘의 십자형 구조 및 십자형으로 배치된 마고7모신상을 삼원오행론으로써 해명하였으며 모신상에 나타난 선도수행 표식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9) 적석(積石) 단(壇)·총(塚)[이하 적석단총]에도 삼원오행론이 반영되었음을 밝혔다.10)

 

다음으로 요동·요서지역 적석단총의 시기와 형태 비교를 통해 거칠게나마 시기·중심권역·종족 등 배달국사의 대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곧 B.C.4000년경 선진적인 선도제천문화를 지닌 환웅족이 요동 백두산 서편의 천평(天坪) 지역으로 이주한 후 토착세력 웅족과 연맹, 본격적인 선도제천문화를 본령으로 하는 배달국을 개창하게 된다. 환웅족+웅족이 주도한 선도제천문화는 요동 천평지역에서 시작, 요서 대릉하 일대의 청구(靑邱) 지역으로 확산되었고11)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을 양대 중심 권역으로 하여 재차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었다.12) 이러한 과정에서 배달국의 주족이자 민족의 원류인 ‘[맥족(환웅족+웅족)] + 예족(호족) → 한민족(맥족·예맥족·새밝족)’이 성립되었다.13) 배달국의 양대 권역인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의 고고문화에 준해 볼 때, 배달국은 전기(B.C.4000년~B.C.3500년경), 중기(B.C.3500년~B.C.3000년경), 후기(B.C.3000년~B.C.2400년경)로의 3분기 구분이 가능하였다.14) 이상의 연구는 시작점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향후 좀 더 깊은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보완되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현재 한국학계의 상고문화에 인식이 부정확하며 부정적이기까지 한 문제, 또 연구 시각이 틀어져 있는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현재의 한국학계에서는 배달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한국사의 출발점을 단군조선, 또 한국문화의 요체를 샤머니즘으로 바라보는 경향이다. 샤머니즘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민속·무속, 또 민족종교에 준하고 있다.

 

필자는 민속·무속이나 민족종교에 준해서 상고문화를 인식할 수는 없다고 본다. 민속·무속, 또 민족종교는 상고문화의 후대적 변형태일 뿐, 상고문화의 원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는 한국사의 출발점을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국, 한국문화의 원류를 배달국시기의 선도제천문화로 보고 선도제천문화가 후대에 이르러 민속·무속화하였고, 또 이렇게 변질된 민속·무속문화를 계승한 것이 근대 이후의 민족종교라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에 따라 본고에서는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가 후대에 이르러 민속·무속화하고 근대 이후 다시 민족종교화하는 대체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한국의 민족종교나 민속·무속문화가 그 첫출발점으로서의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더 나아가 그 원형성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보았다.

 

일단은 그간 필자가 연구해온 바, 동북아 고고학 성과에 의거한 배달국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을 먼저 제시하였고 이러한 원형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후대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특히 배달국 선도제천문화를 ① 선도제천을 통한 천인합일 수행[성통], ② 선도정치(선도 천자제후제)를 통한 홍익인간·재세이화적 사회실천[공완], 두 방면으로 나누어 보았고 그 계승 형태로서의 민속·무속문화도 이러한 양대 기준을 적용하여 고찰하였다.

 

Ⅱ장은 배달국 선도제천에 나타난 천인합일 수행[성통] 방면이다. 먼저 제천의 신격인 ‘모신상-남신상’ 유물, 곧 ‘마고삼신-삼성’의 사상적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겠으며, 이어 대표 제천시설인 ‘적석단총’ 유적, 곧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에 담긴 천인합일 수행문화를 살펴보겠다.

Ⅲ장은 배달국 선도정치, 특히 배달국-중원지역간의 ‘선도 천자제후제’에 나타난 홍익인간·재세이화적 사회실천[공완] 방면이다. 먼저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 및 ‘북두-일월 표상’에 나타난 ‘선도 천자제후제’의 운영 원리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어 배달국말 중원지역에서 ‘선도 천자제후제’에 반하는 ‘패권적 천자제후제’가 생겨났음을 살펴보겠다.

Ⅳ장에서는 제천신격의 변화 과정을 통해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종교화) 과정을 가늠해보겠다. 먼저 민속·무속화(종교화)의 일차 배경으로 ‘신격 중심’ 및 ‘신격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겠다. 신격 중심의 면에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바뀌면서 모신의 지위가 낮아져 마고삼신에서 삼성으로 변해갔고, 훗날 중국 유교문화의 도입으로 재차 삼성에서 단군으로 변해갔음을 살펴보겠다. 신격 인식의 면에서는 유교로 인해 천신(생명신·창조신)에서 산신으로 변해갔음을 살펴보겠다. 민간사회에서는 마고삼신-삼성 전통이 강고하게 지속되었지만 내용적 원형을 잃어버림으로써 종내 민속·무속화(종교화)하였음도 살펴보겠다.

Ⅴ장에서는 민속·무속문화를 이어 근대 이후 등장한 민족종교가 선도제천문화의 원형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음을 논하겠다.

 

 

1) 정경희,「배달국초 백두산 천평문화의 개시와 한민족(예맥족·새밝족·맥족)의 형성」, 『선도문화』28, 2020, 3~6쪽.

2) 정경희, 「요서지역 조보구문화~홍산문화기 마고여신상의 변화와 배달국의 ‘마고제천’」,『고조선단군학』36, 2017, 241~242쪽 : 정경희,「중국 ‘요하문명론’의 ‘장백산문화론’으로의 확대와 백두산의 ‘선도 제천’ 전통」, 『선도문화』24, 2018, 117~118쪽.

3) 밝음의 ‘일기·삼기’로서의 仙道氣學적 의미, 또 ‘마고·삼신, 하느님·삼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경희,「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 -‘음양오행론’의 포괄」,『동서철학연구』48, 2008 :「중국의 음양오행론과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 『동서철학연구』49, 2008 :「한국선도의 일·삼·구론(삼원오행론)에 나타난 존재의 생성·회귀론」,『동서철학연구』53, 2009 참조.

4) 정경희, 「한국선도의 수행법과 제천의례」, 『도교문화연구』21, 2004 : 「신라 ‘나얼(奈乙, 蘿井)’ 제천 유적에 나타난 ‘얼(井)’ 사상」, 『선도문화』15, 2013 참조.

5) 『三國遺事』 卷1 紀異 古朝鮮王儉朝鮮 「庶子桓雄 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下視三危太白 可以弘益人間···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 卷1 紀異 新羅始祖赫居世王 「因名赫居世王 蓋郷言也 或作弗矩内王 言光明理世也」

6) 정경희,『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만권당, 2020.

7) (주)3과 같음.

8) 정경희, 「홍산문화 옥기에 나타난 ‘조천’사상(2) - 2기 · 5기 · 9기형 옥기를 중심으로」, 『백산학보』88, 2010 : 「홍산문화 옥기에 나타난 ‘조천’사상(1) - 1기 · 3기형 옥기를 중심으로」, 『선도문화』11, 2011 : 「동아시아 북두-일월 표상의 원형 연구」, 『비교민속학』46, 2011 등.

9) 정경희,「홍산문화 여신묘에 나타난 삼원오행형 마고7여신과 마고제천」,『비교민속학』60, 2016 :「요서지역 흥륭와문화기 마고여신상의 등장과 마고제천」,『선도문화』22, 2017 : 앞의 글,『고조선단군학』36, 2017.

10) 정경희,「동아시아 적석단총에 나타난 삼원오행론과 선도제천문화의 확산」, 『선도문화』29, 2020.

11) 정경희,「통화 만발발자 제천 유적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Ⅰ)- B.C. 4000~B.C. 3500년경 ‘3層圓壇(母子合葬墓) · 方臺’를 중심으로 -」, 『선도문화』26, 2019 :「백두산 서편 제천유적과 B.C.4000년~A.D.600년경 요동·요서·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에 나타난 맥족의 선도제천문화권」,『단군학연구』40, 2019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Ⅱ) -제2차 제천시설 ‘선돌 2주 · 적석 방단 · 제천사’를 중심으로-」, 『선도문화』27, 2019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동북아고대역사』1, 동북아고대역사학회, 2019 :「요동~요서 적석단총에 나타난 맥족(예맥족)의 이동 흐름」, 『동북아고대역사』2, 2020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 추보(追補) 연구:『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를 중심으로」,『동북아고대역사』3, 2020.

12) 정경희, 앞의 글,『백산학보』88, 2010 : 앞의 글,『선도문화』11, 2011 :「동아시아 ‘천손강림사상’의 원형 연구 -배달고국의 ‘북두(삼신하느님) 신앙’과 천둥번개신(뇌신) 환웅」,『백산학보』91, 2011 : 앞의 글,『비교민속학』46, 2011 : 위의 글, 『동북아고대역사』2, 2020.

13) 정경희, 앞의 글, 『선도문화』28, 2020.

14) 정경희, 앞의 글, 『동북아고대역사』2, 2020.

 

 

 

<자료출처>

 

(1) 배달국의 선도제천과 천인합일 수행 - K스피릿

 

(2) 한국사의 출발점은 배달국, 한국문화의 원류는 배달국시기의 선도 제천문화 - K스피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