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배달국(18) 인물열전(2) 자부선생(紫府先生) 본문
자부선생(紫府先生)
자부선생은 14세 치우천왕 때의 신선이다. 일찍이 황제 헌원, 공공, 대요, 창힐 등에게 동방의 대도를 전수하였다.(1)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자부선생紫府先生은 발귀리發貴理의 후손이다. 태어나면서 신명하여 도를 얻어 날아 오르사, 일찌기 해와 달을 측정하여 이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오행의 수리를 따져서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저작하니, 이것이 칠성력七星曆의 시작이다.
뒤에 창기소蒼其蘇가 또 그 법을 부연하여 이로써 오행치수의 법五行治水之法을 밝혔다. 이 역시 신시황부의 중경黃部之中經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虞인 사우(禹)는 회계산(會稽山)에 이르러 조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허선인紫虛仙人을 통해 창수 사자蒼水使者인 부루扶婁를 뵙기를 청하여 《황제중경》黃帝中經을 받으니 바로 신시황부의 중경이다. 우임금이 이를 취하여 쓰니 치수에 공이 있었다.(2)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 자부선생과 《삼황내문》의 유래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은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황제 헌원에게 전해 주어 그로 하여금 마음을 닦아 의로운 정신으로 돌아가게 한 책이다. 선생이 일찍이 삼청궁에 거처하였는데 삼청궁은 청구국 대풍산의 남쪽에 있었다. 당시 제후이던 헌원이 친히 치우천황을 찾아뵙다가 도중에 선생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서 가르침을 전해들은 것이다.
경문은 신시시대의 녹서鹿書로 기록되어 세 편으로 나뉘어 있다. 후세 사람이 이 글을 부연하고 주를 덧붙여 별도로 신선음부의 설神仙陰符之說을 만들었다. 주(周)와 진(秦)시대 이래로 도가학파가 이것에 의탁하였다. 이따금 단약을 만들어서 불사약으로 먹기도 하였고, 그 외 허다한 방술의 설이 어지러이 뒤섞여 나돌아 이에 미혹되어 빠지는 자가 속출하였다.
서복과 한종 역시 회사 지역 출신이다. 본래 진나라에 모반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가 ‘바다로 들어가 신선을 찾는다’고 말하고는 도망쳐서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의 기이(紀伊)에는 서불(徐市)의 이름을 새겨 놓은 조각이 있다. 이국의 신궁에는 서불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고 전한다. 서복은 일명 서불이라 부르는데 이는 불(巿)과 복(福)의 음이 비슷하여 혼동된 것이다.(3)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
곰무리와 범무리가 서로 다투던 옛날 환웅천왕桓雄天王께서 아직 군림하시기 전 묘환苗桓은 곧 구황九皇의 하나였다. 옛적 이미 우리 환족桓族이 유목 농경하던 때에 신시神市의 가르침이 열렸다. 땅으로써 다스리기 위하여 적積을 하나로 하고, 음陰은 십거十鉅를 세우고 양陽은 무궤无匱를 만들고 충衷은 여기에서 생했다.
봉황은 날아 모여들어 백아강白牙岡에 살고 선인은 법수교法首橋로 오고 갔으니 법수法首는 선인의 이름이다. 사람과 문물이 어느덧 풍숙豊熟하였으니 때마침 이때에 자부선생紫府先生께서 칠회제신의 책력七回祭神之曆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폐天陛에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청궁三淸宮을 세우사 그곳에 거하시니, 공공共工 · 헌원軒轅 · 창힐倉頡 · 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와 여기서 배웠다. 이에 윷놀이를 만들어 이로써 환역桓易을 강연하니 대저 신지혁덕神誌赫德이 적은 바로 천부天符의 유의였다.(4)
<주>
(1)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503쪽
(2)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230-231쪽
紫府先生, 發貴理之後也. 生而神明, 得道飛昇. 嘗測定日月之纏次, 推考五行之數理, 著爲七政運天圖, 是爲七星曆之始也. 後, 蒼其蘇, 又復演其法, 以明五行治水之法. 是亦神市黃部之中經來也. 虞人姒禹, 到會稽山, 受敎于朝鮮, 因紫虛仙人, 求見蒼水使者扶婁, 受黃帝中經, 乃神市黃部之中經也. 禹取而用之, 有功於治水.
(3)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509쪽
三皇內文經, 紫府先生, 授軒轅, 使之洗心歸義者也. 先生嘗居三淸之宮, 宮在靑邱國大風山之陽. 軒侯, 親朝蚩尤, 路經名華, 有是承聞也.
經文, 以神市鹿書, 記之. 分爲三篇, 後人推演加註, 別爲神仙陰符之說. 周秦以來, 爲道家者流之所托, 間有鍊丹服食, 許多方術之說, 紛紜雜出, 而多惑溺, 至於徐福韓終, 亦以淮泗之産, 素有叛秦之志. 至是, 入海求仙爲言, 仍逃不歸. 日本紀伊, 有徐市題名之刻, 伊國新宮, 有徐市墓祠云, 徐福, 一稱徐市, 市福音混也.
(4)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98쪽
熊虎交爭之世, 桓雄天王, 尙未君臨. 苗桓乃九皇之一也. 在昔, 已爲我桓族, 遊牧農耕之所, 而及神市開天, 以土爲治. 一積而陰立, 十鉅而陽作, 无匱而衷生焉.
鳳鳥聚棲於白牙岡, 仙人來往於法首橋, 法首仙人名也. 人文早已發達, 五穀豊熟, 適以是時, 紫府先生, 造七回祭神之曆, 進三皇內文於天陛, 天王嘉之, 使建三淸宮而居之. 共工·軒轅·倉頡·大撓之徒, 皆來學焉. 於是, 作柶戱 以演桓易. 盖神誌赫德所記, 天符之遺意也.
창힐蒼頡;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엔 〈치씨蚩氏는 치우蚩尤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힐蒼頡은 고신高辛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大棘城에서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산동의 회북山東淮北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천왕의 영풍위열英風雄烈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震域留記曰, 通志, 氏族略, 蚩氏蚩尤之後, 或曰, 蒼頡與高辛, 亦皆蚩尤氏之苗裔, 生大棘城, 而轉徙於山東淮北者也. 盖蚩尤天王之英風雄烈, 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
제곡 고신은 치우천황보다 250년 이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