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배달국(16) 단군왕검檀君王儉(BC 2333년-BC 2241년) 대저 신시개천神市開天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나셨다. 웅씨熊氏의 비왕裨王으로서 마침내 신시神市에 대신하여 구역九域을 통일統一하고 관경管境으로 삼한三韓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고 한다. 본문
1. 배달국(16) 단군왕검檀君王儉(BC 2333년-BC 2241년) 대저 신시개천神市開天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나셨다. 웅씨熊氏의 비왕裨王으로서 마침내 신시神市에 대신하여 구역九域을 통일統一하고 관경管境으로 삼한三韓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고 한다.
대야발 2026. 3. 9. 15:16
단군왕검檀君王儉
《고기》에서 말한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熊씨의 왕녀이며 신묘년(BC 2370) 5월 2일 인시에 밝달나무(檀木) 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년(BC 2357)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무진년(BC 2333) 제요도당帝堯陶唐때에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의 檀木단목의 터에 이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까지 사셨다.
《삼국유사》
《삼국유사》 古朝鮮(王儉朝鮮)조 단군왕검 기상이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 ……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 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으로,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京)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궁(弓) 혹은 방(方)이라고 한다. 홀산(忽山)이라고도 하며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 후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1)
《삼성기 전 상편》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의 박달나무 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환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彭虞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와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겐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菲西岬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2)
《삼성기 전 하편》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를 가르치시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때에 구환(九桓)은 모두 삼신(三神)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和白)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구환은 모조리 삼한(三韓)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이라고 불렀다.(3)
《태백일사》 〈단군세기〉
《고기》에서 말한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熊씨의 왕녀이며 신묘년(BC 2370) 5월 2일 인시에 밝달나무(檀木) 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년(BC 2357)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무진년(BC 2333) 제요도당帝堯陶唐때에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의 檀木단목의 터에 이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까지 사셨다.
무진 원년(BC 2333) 바야흐로 신시의 다스림이 시작되었을 때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며 풀잎으로 옷을 해입고 맨발로 다녔다. 개천 1565년 상월上月 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 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님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함께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니 구한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했다.(4)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웅족 가운데 단국이 있어 가장 강성했다.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이를 단군왕검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 구한의 삼한관경을 모두 통합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회복하니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서 온세상이 그를 천신과 같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숭보의 예는 영세토록 바뀌지 않게 되었다.(5)
《태백일사》 〈신시본기〉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그 후 단군왕검이라 불리는 분이 아사달에 도읍을 세우시니 지금의 송화강이다. 이때 비로소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칭하시니 삼한, 고리, 시라, 고례,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와 맥이 모두 그의 관경이었다.(6)
대저 신시개천神市開天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나셨다. 웅씨熊氏의 비왕裨王으로서 마침내 신시神市에 대신하여 구역九域을 통일統一하고 관경管境으로 삼한三韓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고 한다.(7)
《태백일사》 〈삼환관경본기〉
뒤에 웅녀의 군(君)이 천제의 신임을 받아서 세습하여 비서갑의 왕검이 되었다. 왕검은 속어로 말하면 대감(大監)이니 땅을 관리하고 지키며, 포악함을 제거하여 백성을 돕는다. ……
사와라환웅 초기의 일이다. 웅녀군의 후손으로서 여(黎)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단허에 책봉받아서 왕검이 되매, 덕을 심어 백성을 사랑하고 영토를 차츰 크게 넓히니 여러 곳의 왕검들이 나아와 특산물을 바치며 이로써 귀화하는 자 천여 명을 헤아렸다. 뒤에 460년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비왕이 되었다. 섭정하신 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전쟁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환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곧 나라의 인물들을 불러 약속을 세워 가로대, 「앞으로는 백성의 뜻을 물어 공법을 만들고 이를 천부라 할지니, 그 천부란 만세의 강전이며 지극히 존중하여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삼한으로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시니, 진한은 스스로 천왕께서 다스리시고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여시사 조선이라 하시고, 이를 일세 단군이라 한다. 아사달은 삼신을 제사 지내는 곳인데, 후인들은 왕검의 옛집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왕검성이라 했다.(8)
<주>
古記云, “ …… 孕生子號曰壇君王倹.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 唐堯即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 今西亰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又名弓 一作方忽山又今旀逹.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2)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20-21쪽
後, 神人王儉降到于不咸之山, 檀木之墟, 其至神之德兼聖之仁, 乃能承詔繼天而建極, 巍蕩惟烈, 九桓之民咸悅誠服, 推爲天帝化神而帝之.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設都阿斯達, 開國號朝鮮. 檀君, 端拱無爲, 坐定世界, 玄妙得道, 接化群生. 命彭虞闢土地, 成造起宮室, 高矢主種稼, 臣智造書契, 奇省設醫藥, 那乙管版籍, 羲典卦筮, 尤作兵馬. 納菲西岬河伯女爲后, 治蠶. 淳厖之治, 熙洽四表.
(3)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34-35쪽
(4)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55-56쪽
古記云, 王儉父檀雄, 母熊氏王女, 辛卯五月二日寅時, 生于檀樹下, 有神人之德, 遠近畏服. 年十四, 甲辰, 熊氏王聞其神聖, 擧爲裨王, 攝行大邑國事. 戊辰, 堯時, 來自檀國至阿斯達, 檀木之墟, 國人推爲天帝子, 混一九桓, 神化遠曁, 是謂檀君王儉. 在裨王位二十四年, 在帝位九十三年, 壽一百三十歲. 戊辰, 元年(BC2333), 大始神市之世, 四來之民, 遍居山谷, 草衣跣足, 至開天, 一千五百六十五年, 上月三日, 有神人王儉者五加之魁, 率徒八百來御于檀木之墟, 與衆奉祭于三神. 其至神之德兼聖之仁, 乃能奉詔繼天, 巍蕩惟烈, 九桓之民咸悅誠服, 推爲天帝化身而帝之.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立都阿斯達, 建邦號朝鮮.
(5)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57쪽
熊族之中, 有檀國最盛, 王儉亦自天而降, 來御于不咸之山, 國人共立爲檀君, 是謂檀君王儉也. 生而至神, 兼聖圓滿, 統合九桓, 三韓管境, 復神市舊規, 天下大治, 擧世視同天神, 自是崇報之禮, 永世不替者也.
(6)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73쪽
朝代記曰, ……
其後, 有號曰, 檀君王儉, 立都阿斯達, 今松花江也. 始稱, 國爲朝鮮, 三韓·高離·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夫餘·濊與貊皆其管境也.
(7)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82쪽
蓋自神市開天,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而始有檀君王儉, 以熊氏裨王, 遂代神市, 統一九域, 分三韓以管境, 是謂, 檀君朝鮮也.
(8)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95-196쪽
斯瓦羅桓雄之初, 熊女君之後, 曰黎. 始得封於檀墟爲王儉. 樹德愛民, 土境漸大, 諸土境王儉, 來獻方物, 以歸化者, 千餘數. 後四百六十年, 有神人王儉者, 大得民望, 陞爲裨王, 居攝二十四年. 熊氏王崩於戰, 王儉遂代其位, 統九桓爲一, 是爲檀君王儉也.乃召國人, 立約曰, 自今以後, 聽民爲公法, 是謂天符也. 夫天符者, 萬世之綱典, 至尊所在, 不可犯也. 遂與三韓, 分土而治. 辰韓天王自爲也.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是爲 一世檀君. 阿斯達, 三神所祭之地. 後人, 稱王儉城以王儉舊宅, 尙存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