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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2500년前 한강유역서… 인류 최초 ‘쌀·콩·깨 재배’ 시작됐다 본문

현생인류출현~1만년전/문명의 시작

1만2500년前 한강유역서… 인류 최초 ‘쌀·콩·깨 재배’ 시작됐다

대야발 2025. 3. 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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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한반도 중부는 인구밀집지역 사냥·채집만으로는 ‘식량 부족’

남한강·금강유역 경작에 적합 ‘밥+콩장+깨양념’ 食문화 형성 밀 재배한 서양은 빵문화 생겨

벼, 기원전 28세기경에 中으로 기원전 7 ~ 5세기엔 日에 전파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② 농업혁명과 기마문화의 형성

 

<지식카페>1만2500년前 한강유역서… 인류 최초 ‘쌀·콩·깨 재배’ 시작됐다

문화일보

2019-06-05 10:56

 

 


약 1만2000년 전(일설 1만2500년 전) 지구 기후가 오늘날처럼 온난화되자, 고(古) 한반도 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나와 인접 강변과 해안에 ‘움막’을 짓고,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토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신석기 시대를 열었다.

 

고한반도 중부 초기 신석기인 인구밀집 지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식료 부족’이었다. 사냥·어로·채집만으로는 과잉인구의 부양이 불가능했다. 식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선 야생식물의 종자와 뿌리를 채용해 식료 생산을 위한 ‘농업경작’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한반도 중부 제1동굴지역의 동굴 밖 최근접한 남한강과 금강 상류 유역은 ①석회암 동굴 최근접 하천 유역에 비옥한 충적층 평야가 있었고 ②세계적으로 식물 종류가 매우 많아 온대작물 농업경작의 발생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에서 식료 부족 문제의 대책으로 ‘남한강’ 유역과 ‘금강 상류’의 저지대에서는 실제로 신석기 시대의 시작과 동시에 1만2000년 전쯤부터 오곡, 특히 단립벼의 재배가 시작됐다.

 


남한강 유역과 금강 상류 사이의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볍씨 18톨이 충북대 박물관(관장 이융조)에 의해 발굴됐는데, 농과학자들의 조사 결과 초기 재배벼임이 확인됐다.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소에서 소로리 볍씨가 포함된 토탄층 윗부분을 탄소측정한 결과 1만2500년 전으로 측정됐다. 이 소로리 단립벼 볍씨와 토탄층을 분리해 볍씨 8톨을 미국 애리조나대 고고연구소에서 탄소측정한 결과 토탄의 연대가 1만2552±90년 전, 고대벼가 1만2500±150년 전으로 측정돼 나왔다.

 


이 사실은 한반도의 남한강 유역과 금강 상류 유역에서는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즉시 ‘단립벼’의 경작이 시도됐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림 1> 한강 유역 출토 신석기 벼·탄화미.

 

 

 

그 후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강·금강 유역을 비롯해 고한반도의 크고 작은 강변에서는 강 하류에까지 곡물 출토 시계열이 성립되고 5000년 전쯤까지 재배 공간이 대폭 넓어지면서 단립벼·콩·팥·밀·보리·조·기장·수수·깨 등 곡물이 출토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 고한반도 ‘단립벼’ 경작의 발생 기원 지역을 지도에서 그려 보면 <그림 2>와 같다. 이 지역에서 동시기에 오곡이 농기구들과 동반 출토되므로, 이 지역이 동방 신석기 농업혁명의 기원지로 판단된다.

 

 

 

<그림 2> 한강문화의 신석기시대 재배 농경의 발상지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고한반도 출토 신석기 시대 토기 몇 점에 박힌 식물들의 압흔을 탄소측정했더니, 신석기 시대 ‘조기’ ‘전기’부터 조·기장·콩·들깨를 재배해 식용하고 있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콩’ ‘콩과 작물’이 신석기 초기부터 재배됐다는 사실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오산리 출토 신석기 초기 토기에 박힌 ‘콩’과 압흔 토기에 부착된 탄화물을 연대측정한 결과 절대연대 7175∼7160년 전과 절대연대 7000∼6940년 전으로 측정돼 나왔다. 즉 고한반도에서는 콩과 팥이 기원전 53세기(7175∼7160년 전)경에 이미 재배됐음이 확인된다.

 

 

이것은 인류 문명사에서 획기적인 것이다. 중국에는 ‘콩’이 기원전 7세기 고조선 후국 산융에서 도입됐다. 서양에는 ‘콩’이 18세기 초엽 동방에서 들어왔다고 기록돼 있다.

 


출토 곡물들로 종합해 보면, 고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한강 문화에서는 약 1만2000년 전부터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돼 약 5000년 전까지 단립벼·조·기장·콩·팥·수수·밀·보리·깨(들깨와 참깨) 등의 농업경작이 크게 발전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고한반도 신석기 농업혁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은 ‘단립벼’‘콩·팥’‘깨’의 경작이다.

 


당시 고한반도 신석기인들은 첫 ‘농업경작’의 큰 성공을 스스로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 상류에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농경 성공) 기념 선돌’이 2개나 남아 있다. 충북 옥천군 남곡리 개미재에 밭고랑을 새긴 1개의 선돌(남곡리 1호 선돌)과, 수북리 동정마을에 있는 다른 1개의 선돌(수북리 선돌)이 그것이다.(<그림 3> 참조)

 

 

<그림 3> 옥천 남곡리 1호 농경기념 선돌(왼쪽)과 수북리 선돌.

 

 

 

문자가 없던 시대이므로, 농업혁명(농업경작)의 위대한 업적을 ‘논밭고랑’ 그림으로 표시한 기념비 선돌이었다. 대전 괴정동 출토 ‘방패형 농경문 청동기’(약 2600년 전)에 새겨진 밭 가는 농부 그림을 보면, 이 선돌의 줄그림이 논밭고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한반도의 중부에서 시작된 신석기 농업혁명(농업경작)은 모든 한반도 강변과 해안에 주민 이동과 함께 전파됐다. 농업경작은 태양의 ‘햇빛’과 ‘따뜻한 온도’의 은혜에 직결돼 있으므로, 고한반도 초기 신석기인들은 매우 일찍 ‘태양(해) 숭배’ 사상을 더욱 갖게 됐다. 그들은 ‘태양’(해)이 제공하는 ‘밝음’(광명·光明)을 숭상했으며, ‘태양’이 있는 ‘하늘’을 숭배하게 됐다.

 

 

그들은 또한 족장과 자기들을 ‘태양’의 후손, 즉 하늘(天)의 후손으로 생각해 ‘천손의식’을 갖게 됐다. 또한 그들은 태양이 있는 하늘을 나는 ‘새’를 토템으로 애경했다. 후에 그들과 그 후예들은 자신들을 태양의 ‘밝음’을 의미한 “‘밝’족”으로 자처했고, 고대 중국인들은 이를 차음해 ‘발인(發人)’이라고 표기했다.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의 신석기 농업혁명은 두 곳이 구심지가 돼 일어났다. 그 하나가 약 1만2000년 전부터 고한반도 중부 남한강과 금강 상류 지역에서 고한반도 초기 신석기인인 ‘밝족’이 단립벼(쌀)·콩·수수·조·기장·깨 등의 농경에 성공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한 농업혁명이었다.

 

다른 하나는 약 1만1500년 전에 비옥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수메르족이 밀·보리 농경에 성공해 주변 지역에 전파한 농업혁명이다. 실증적으로 발굴 보고서들을 읽어 보면, 단립벼 재배는 고한반도에서 기원해 기원전 28세기경에 중국 산둥반도와 중국 동해안 일대로 전파됐다. 남쪽 일본 열도로는 기원전 7∼5세기경 한반도에서 일본 규슈 지방 등으로 전파됐다(<그림 4> 참조).

 

 

<그림 4> 단립벼의 재배 기원지와 보급 경로도.

 

 



중국 학자들도 농업경작을 고조선(이때는 동이(東夷)족으로 표현)에서 도입했음을 기록들에 남겼다. 중국에 농경을 처음 가르쳐 준 것은 동이족인 신농(神農)족이며(‘사기(史記)’ ‘부사년(傅斯年)’), 역시 동이족인 백익(伯益)이 쌀 농경과 목축을 가져와 가르쳐 줬다(‘사기’). 동이족인 근모(根牟)족은 밀·보리 재배를 가르쳐 줬다(중국학자 장푸샹(張富祥)). 가장 질긴 고급 명주와 그 직조 방법도 동이족이 전수해 줬다고 기록돼 있다(‘상서정의(尙書正義)’).



인류 최초 5대 독립 문명은 모두 독특한 농경문화를 문명의 기초로 해 시작됐다. 고조선 문명은 ‘단립벼(및 밀·보리)+콩+깨’ 재배의 농경문화 유형과, 이에 의거한 ‘쌀밥(및 밀·보리 식료)+콩장(간장+된장)+깨 양념(향료)’의 독특한 식문화 유형을 형성했다.

 

이와 달리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밀’(및 맥류) 재배와 ‘빵’ 식문화를 형성해 이집트문명과 그리스·로마를 거쳐서 서양에 전파됐다.

 

인도 문명은 ‘장립벼’ 재배와 장립벼 쌀밥 식문화, 중국 문명은 ‘잡곡’ 재배와 만두·국수 식문화, 아널드 토인비가 뒤에 독립 문명으로 추가한 마야·아즈텍 문명은 ‘옥수수’ 재배, 잉카 문명은 ‘감자’ 재배와 그에 따른 식문화 유형들을 각각 형성했다.



고조선 문명의 식문화는 단립벼 ‘쌀’로 ‘밥’뿐 아니라 무려 200여 종의 떡(이종미 교수)과 과자 등 온갖 파생 음식을 만들었고, 설탕(조청·엿)과 각종 술도 쌀로 빚어냈다. 염분을 소금 가루로 직접 섭취하지 않고 매우 독특하고 현명하게 콩 식물단백질과 융합시켜 섭취하는 콩장(간장·된장) 식문화도 창조했다. 깨(참깨·들깨)는 지금도 주로 한국인이 애호하는 독특한 향료·양념이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이와 유사한 식문화는 사실은 고조선 문명의 식문화가 전파된 것이다.(1)

 

문화일보,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② 농업혁명과 기마문화의 형성 <지식카페>1만2500년前 한강유역서… 인류 최초 ‘쌀·콩·깨 재배’ 시작됐다, 2019-06-05 10:56

 

 

 

 

 

영국의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농경의 시작을 ‘신석기혁명’이라 명명했다. 농경과 함께 나타난 토기와 간석기(갈아 만든 석기)의 출현을 신석기문화의 대표 요소로 들었다. 실제로 신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면 집 자리와 야외 노지 같은 곳에서 토기와 간석기가 자주 발견되며 신석기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면 어디서든 이들 유물을 볼 수 있다. 

 

 

■ [문화재의 뒤안길] 5,000년 전 빗살무늬토기 속 곡식 흔적

조상인 기자2019. 8. 15. 17:12

 

 
 
 
인천 운서동의 전기 신석기 유적의 토기 틈에서 신석기시대 조의 흔적이 발견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신석기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에 대해 흔히 그 무늬나 형태에만 주목하는데 토기 표면에 나 있는 작은 구멍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신석기시대의 농경을 가늠해볼 수 있는 조·기장 등의 재배식물과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팥·들깨·곤충·조개 등의 다양한 흔적이 구멍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석기인들은 토기를 제작하면서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식물이나 곡물들을 넣었고 이후 이들이 타고 남아 눌린 흔적이 토기에 종종 남아있다.

 

 

 

양양 송전리 신석기 중기 유적지에서 당시의 곤충 흔적이 발견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일반적으로 농경을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는 불에 타서 남은 종자, 토양이나 갈판에 남아 있는 화분·식물규산체·전분 등이다. 하지만 이 증거들 중에는 생물교란, 보존환경 등의 문제로 연대 해석이 잘못되거나 식물의 흔적이 보존되지 않아 분석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토기에 남은 흔적은 적어도 토기 제작연대와 동일한 시기라는 점, 신석기시대 출토 유물의 절대다수가 토기라는 점에서 그 분석이 매우 유용하다.

 

최근 토기에 남은 눌린 흔적을 찾는 조사(압흔 분석)를 통해 한반도 중서부지역인 인천 운서동의 전기 신석기 유적에서 그동안 보고되지 않았던 조와 기장이 발견됐다. 5,000년 전 토기 덕에 당시의 생계활동과 농경 출현 경로 등이 새롭게 조명받게 됐다.(2)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 조미순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 [문화재의 뒤안길]5,000년 전 빗살무늬토기 속 곡식 흔적, 2019. 8. 15. 17:12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7000년 전의 팥 흔적이 국내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출토 토기 압흔(壓痕·눌린 흔적) 조사에서 신석기 시대의 팥 흔적이 발견됐다"며 "지금까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팥을 재배한 시기로는 5000년 전이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번 조사 결과로 이보다 2000년 더 이른 시기에 팥이 재배됐을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14일 밝혔다.

 

 

■ '동북아 最古' 7000년 前 팥 흔적 발견.. 신석기 시대 농사 지었을 가능성 시사

김남중 기자2014. 10. 15. 02:50

 
 
 

 

 

 

발견된 팥 압흔은 2점이며 팥 압흔이 있는 토기 표면의 탄화유기물을 미국 베타연구소에 보내 연대 측정한 결과 7314∼7189년 전으로 나왔다. 팥 압흔의 크기는 각각 2.2㎜, 2.8㎜ 정도로 현재의 팥(4∼8㎜)보다 작다.

 

 

연구소는 또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에서 발견된 점토 덩어리에서 신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곤충의 압흔을 확인했다. 이 곤충은 농업 해충으로 알려진 노린재목에 속하는 것으로 선사시대 유물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송전리 출토 토기에서는 다량의 조, 기장, 들깨 압흔도 발견됐다. 이는 신석기 중기에 와서 조, 기장 등의 잡곡과 들깨까지 직접 재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미순 연구사는 "지금까지는 신석기는 채집사회였으며 농경은 청동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며 "신석기 유물에서 기장이나 조, 들깨 등의 흔적이 다량 발견됨에 따라 신석기 시대에도 경작이나 농경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의미를 설명했다.(3)

 

국민일보,  김남중 기자, '동북아 最古' 7000년 前 팥 흔적 발견.. 신석기 시대 농사 지었을 가능성 시사, 2014. 10. 15. 02:50

 

 

 

 

팥은 오곡중 하나로 떡고물을 만들거나 동짓날 죽으로 쑤어먹는 친숙한 곡식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7000년 전 농경을 시작한 증거로 보이는 당시 팥알들의 흔적이 발견됐다. 신석기시대 조상들이 수확해 토기에 담은 팥알들로 추정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토기들을 최근 분석한 결과 토기 안에 팥알이 눌려 남은 흔적인 '압흔'(사진)을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팥의 압흔은 신석기 조기(8000~6500년 전)와 중기(5500~4500년 전)에 각각 1점이 확인됐다. 팥알 흔적의 크기는 각각 2.2㎜, 2.8㎜ 정도로 현재의 팥(4~8㎜)보다는 작다.

 

 

■ 7천년 전에도 '팥' 먹었나?

2014. 10. 14. 10:50

 

 

신석기 토기서 팥알 '압흔' 발견

동아시아서 가장 오래된것 추정

'5천년전 농경 시작' 학설 뒤집어

 

 

지금까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팥을 재배한 가장 이른 시기는 5000년 전으로 추정해왔다. 쌀도 90년대 경기도 고양에서 발견된 5000여년 전 가와지 볍씨 등으로 미뤄 비슷한 시기 시작됐다는 학설이 나온 바 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보다 2000년 이른 시기에 곡물 농경이 시작됐을 가능성을 비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신석기 조기~중기에 팥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크기가 점차 커지는 재배화(栽培化) 흐름도 보여 동아시아 농경의 뿌리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양양군 송전리 유적에서 나온 점토 덩어리에는 5000여년 전 신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곤충의 압흔이 확인됐다. 농작물 해충으로 알려진 노린재목에 속하는 것으로, 선사시대 농경과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또 같은 유적 출토 토기에서는 다량의 조, 기장, 들깨의 압흔 등도 드러났다. 연구소 쪽은 "신석기 중기에 조, 기장 등 잡곡과 들깨까지 재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오산리와 송전리 유적은 2006년 발굴조사 당시 신석기 시대 조~중기에 해당하는 주거지, 야외노지, 저습지 등이 드러난 바 있다. 중부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상을 보여주는 주요 유적들로 꼽힌다.(4)

 

한겨레, 노형석 기자,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7천년 전에도 '팥' 먹었나?, 2014. 10. 14. 10:50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26일 오전 11시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 발굴 현장에서 신석기시대 경작(耕作) 유구인 ‘밭’을 발굴하고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발굴된 것은 중국, 일본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는 동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밭 유적으로 추정된다.

 

 

■ 강원 고성 문암리유적에서 신석기시대 경작유구(밭) 발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06.26 오전 12:37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 발굴 현장 © News1

 

 

 

2010년부터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 종합정비사업의 하나로 발굴조사 중인 이 유적에서 발굴된 밭은 크게 상·하 2개 층으로 구분된다.

 

상층 밭은 전형적인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이름) 밭의 형태를 띠지만 청동기시대 밭의 형태와 비교할 때 두둑과 고랑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고 이랑이 나란하게 이어지지 않는 고식적(古式的) 형태이다.

 

하층 밭은 상층 밭과 다르게 복합구획 밭의 형태로 원시적인 모습을 띤다. 특히, 신석기시대 중기(기원전 3600년~기원전 3000년)의 토기편(짧은빗금무늬토기), 돌화살촉과 함께 그 층을 파고 조성한 신석기시대 집자리 1기가 확인돼 신석기시대 중기의 밭 유적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밭 유적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은 청동기시대(기원전 1,500년~기원전 400년)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석기(돌괭이, 뒤지개, 보습, 갈판, 갈돌 등)와 탄화곡물(조, 기장)을 근거로 그 존재 가능성을 추정하여 왔으나, 구체적인 농경의 증거인 ‘밭’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농경과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유적퇴적환경분석, 규산체분석, 토양미세형태학적분석 등 다양한 과학적 분석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물체질(water-sieving, water-floatation) 방법 등으로 당시 재배 식물 종류의 확인은 물론 보다 정확한 연대 결정을 위해 AMS(방사성탄소연대측정)와 OSL(광자극 루미네선스측정) 등 다양한 분석을 시행할 계획이다.(5)

 

뉴스1,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강원 고성 문암리유적에서 신석기시대 경작유구(밭) 발굴, 2012.06.26 오전 12:37

 

 

https://youtu.be/jYcTZJ6ZaCg

 

 

 

 

 

 

 

 

<자료출처>

 

 

(1)

 

 

(2) [문화재의 뒤안길]5,000년 전 빗살무늬토기 속 곡식 흔적 (daum.net) 2019. 8. 15.

 

 

(3) '동북아 最古' 7000년 前 팥 흔적 발견.. 신석기 시대 농사 지었을 가능성 시사 (daum.net) 2014. 10. 15.

 

(4) 7천년 전에도 '팥' 먹었나? (daum.net) 2014. 10. 14.

 
 

(5) 강원 고성 문암리유적에서 신석기시대 경작유구(밭) 발굴 - 뉴스1 (news1.kr)2012-06-26

 

 

 

<참고자료>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신석기시대 농경

 

 

선사시대, 제주에서 농업이 늦게 태동한 이유는? - 헤드라인제주 (headlinejeju.co.kr)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세계의 신석기문화

 

 

 

고고학지 제21집 | 간행물 검색: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2015-12

 

 

고양 가와지볍씨 1 조사와 연구 | 경기도메모리 디지털 아카이브 (library.kr)

 

 

 

 

 

Millet agriculture dispersed from Northeast China to the Russian Far East: Integrating archaeology, genetics, and linguistics - (북중국에서 극동 러시아로 확산한 기장농업: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의 통합) 2020 Tao Li

 

 

 

(PDF) Sedentism, Settlements, and Radiocarbon Dates of Neolithic Korea (researchgate.net)March 2015Sung-Mo Ahn

 

 

 

 

 

Early millet use in northern China | PNAS

 

 

Archaeological Soybean (Glycine max) in East Asia: Does Size Matter? - PMC (nih.gov)

 

 

 

Rice, Ethnicity, and the Collation of Archaeobotanical Data for Prehistoric Korea | Archaeologies (springer.com)

 

 

Archaeological and genetic insights into the origins of domesticated rice | PNAS

 

 

The Transition from Foraging to Farming in Prehistoric Korea on JSTOR

 

 

The emergence of rice agriculture in Korea: archaeobotanical perspectives | 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 (springer.com)

 

 

Agriculture Driving Male Expansion in Neolithic Time (scieng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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